간추린 한국 교회사 연표 (선교사 활동을 중심으로)

  선지자선교회

1866 제너럴 셔어먼호 사건(토마스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  병인양요

 

1871 대원군 전국에 척화비 건립   신미양요

 

1873 대원군의 하야(下野)와 고종의 친정체제 확립

 

1882 최초의 한글 성서(누가 요한복음) 만주에서 출간(로스, 이응찬 등)  조미수호통상조약

 

1883 조영수호통상조약

 

1884 매클레이 한국방문해서 김옥균의 도움으로 고종의 선교사업 윤허 받음   알렌 서울에 도착  갑신정변 때 알렌이 민영익의 중상을 치료  일본에서 韓漢 성서와 한글 마가복음 번역 출간(이수정, 루미스)

 

1885 언더우드, 아펜젤러 입국  광혜원 개원 (알렌)  헤론의 입국   배재학당 설립 (아펜젤러)  황해도 소래교회 설립(서상륜, 서경조)

 

1886 이화학당 시작 (스크랜톤 여사)  육영공원(育英公院) 설립 (헐버트, 벙커, 길모아 교수)

 

1887 새문안교회 (언더우드) 설립  정동교회 (아펜젤러) 설립   성서번역위원회 발족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톤, 헤론)

 

1888 조정 기독교 금교령 발표

 

1889 배재학당 안에 三文出版社 설립(올링거)- 최초의 인쇄소로 단편 성서, 전도용  소책자, 기독교정기간행물 이외에 독립신문, 협성신문 등 일반신문도 간행

 

1890 중국 지푸의 선교사 네비어스 입국 세미나 네비어스 원칙 조선 선교에 적용   자진전도(自進傳道, Self-Propagation)     자력운영(自力運營, Self-Support),   자주치리(自主治理, Self-Government)      헤론 이질로 병사 (양화진에 최초로 매장)      성공회 선교 시작(코르프)

 

1892 레이놀즈, 테이트 등 입국

 

1893 곤당골(승동)교회 설립 (무어) 양반과 천민 같이 예배

 

1894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1895 명성황후 시해  춘생문 사건(명성황후 죽음 후 불안해하는 고종을 이어(移御)하려는 음모에 선교사들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

 

1897 평양 숭실학교 설립 (베어드)

 

1898 러시아정교회 선교 시작 (니콜라이 알렉세예프)

 

1900 장로교 남만주에 휘트모어와 안승원을 선교사로 파송

 

1902 벙커의 옥중전도로 이상재, 이원긍, 유성준 등 정부고관 기독교로 귀의  아펜젤러 성서번역위원회 참석차 목포로 가던 중 익사  알렌과 존스가 주도한 조선인들의 대규모 하와이 이주 시작(감리교 선교차원)

 

1903 황성기독교청년회 (YMCA) 발족

 

1904 러일전쟁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남대문 밖에 종합병원 설립 (에비슨)  대한매일신보 창간 (베델)

 

1905 고종 헐버트를 워싱턴에 밀파, 미국의 도움으로 일본의 침탈 막으려 시도  한국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 결성-장로교와 감리교의 협의체로 하나의 개신교회  설립을 목표로 함  을사늑약(일제 외교권 박탈)

 

1906 통감 이등박문의 선교사 회유책(다수의 선교사들 일제의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고  협력) 성경기독교, 성경을 사랑하는 기독교인 - 선교사들이 본 당시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 성서공회에 고용된 수많은 무명의 한국인 권서들은 전국 각지를 돌면서 성경과 기독교 소책자를 보급하는 역할

 

1907 평양대부흥운동 (장대현교회)  동양선교회(성결교) 선교 시작  장로교 독노회 조직  상동교회에서 헐버트의 정보제공으로 헤이그 밀사사건 논의  헐버트는 헤이그 현지에서 로비활

 

1908 구세군 선교 시작 (호가드)

1909 선교구역 분할 확정(장로교와 감리교의 교단 사이에 선교의 중복을 없애고자 행정구역 단위로 선교구역을 분할하는 협정을 맺은 것)

 

1910 한일합방

 

1912 105인 사건 일제가 기독교 세력 제거 목적으로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건 조작해  서북지역의 기독교계 지도자 대거 검거. 선교사들 노력으로 외교 문제로 비화 결국 날조로 밝혀짐. 교회에 자행된 일제의 엄청난 폭력

 

1915 연희전문학교 창립 (북장로회, 캐나다장로회, 미감리회, 남감리회의 연합)

 

1913 장로교 총회 산동지역 선교사(박태로, 사병순, 김영훈)파송 선교사들 중국교회로 교적 이전재한외국인선교사들이 자국 파송교회의 교적을 유지한 것과 대조)

 

1919 31 운동  장로교 총회에서 선교사에게는 언권(言權)만 주기로 결정

 

1925 ‘허시모사건(안식교 선교사 헤이머스가 자기 과수원의 사과를 따먹은 아이의 두 뺨에 초산은으로 도적이라 써서 추방당한 사건)  ‘조선기독교봉역자회의’ (한국교회대표 31인과 선교사 31인이 모여 선교사들의 인종차별의식과 우월의식에 대한 열띤 논쟁)

 

1926 구세군 한인사관 서양인과의 차별에 항거, 구세군 사학생 28명 퇴학

 

1932 해주 폐결핵 요양원에서 크리스마스 씰발행 (셔우드 홀)

 

1935 신사참배 문제로 한국 교회에 시련  일제의 반()선교사 정책(미와의 관계 악화, 식민지 경영에 가시 같은 존재들신사참배 문제가 빌미 제공)

 

1936 숭실학교 맥큔, 숭의여학교 스누크 신사참배 거부로 교장 인가 취소

 

1937 ‘풀턴성명강경한 신사참배 반대성명  맥큔과 언더우드의 차이 (맥큔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경배하지 말라’ -우상숭배절대불가 언더우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타협적 찬성론) 신사참배 반대로 다수의 기독교학교들 폐교

 

1938 개역성서 발행 - 26년 동안 16명의 선교사들과 6명의 한국인 번역에 참여 장로교 총회 불법적으로 신사참배 가결 (천주교와 타교단들 이미 가결)

 

1940 신사참배 반대로 기독교인 대거 검거  외국 선교사 대거 추방 시작     

 

1941 세계평화기도문사건 발발(미국 영국 부인 선교사 등 15명 구속)  대동아전쟁 발발

 

1942 외국인 선교사 전원 출국, 몇 사람은 포로로 억류되어 일본군과 교환

 

1945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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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기독교강요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김반석 2016.09.16
61 ‘기독교강요’를 저술한 본래의 목적 김반석 2016.07.19
» 간추린 한국 교회사 연표 (선교사 활동을 중심으로) 김반석 2016.01.28
59 한국교회의 분열 선지자 2016.01.16
58 무디의 부흥운동 선지자 2016.01.16
57 세계침례교회의 역사와 한국침례교회의 역사 선지자 2016.01.16
56 한국 개신교 찬송가의 역사 선지자 2016.01.10
55 평양신학교 file 선지자 2015.12.14
54 한상동 출옥 70주년, 역사적 의미와 과제 선지자 2015.08.25
53 1906' 아주사거리부흥운동 선지자 2015.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