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7 17:30
■ 최상림 목사님과 남해읍교회
‘98년 전통의 남해읍교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하나 있다. 19세기 말에 파란 눈을 가진 선교사들이 부산을 통해 남해까지 온 선교사들의 열매로 지난 1909년 이봉언씨의 전도로 박태선, 김진혜씨가 신앙을 가져 남해읍 북변리 172번지 초가를 매입해 북변리교회를 지은 것이 남해읍교회의 시초로 현재 98년된 교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후 호주장로교 선교부 나대관 선교사의 주례로 김재덕, 김진혜씨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기도 했으며, 1914년 한태준씨가 북변리에 대지 90여평을 헌납해 남해읍교회로 교회명을 개명하게 되었다.
최상림 목사 순교비
1932년에 최상림 목사가 남해읍교회 부임하면서 남해군 복음화를 위해 전도집회와 여러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바람이 거세어지던 1938년 당시 경남노회장이었던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노회를 해산시켜 전국 노회 중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가결하지 않는 노회를 만들었다.
그 길로 연행되어 형무소에 수감되기를 49회를 거듭하면서 1945년 5월 6일 새벽3시 평양형무소에서 순교했다.
이후 남해읍교회 정동호 목사는 최상림 목사의 정신을 기리고 믿음의 후손들에게 좋은 교훈을 남기고자 최상림 목사 순교비를 1998년에 교회입구에 세웠다고 전했다.
2006.05.13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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