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0 14:41
19 ● 거지 취급받고 설교하던 아버지
생략
그때 아버지는 얻어 입은 옷이 맞지 않아 헐렁한 차림새였고, 나와 동장이 역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깡통만 찼다면 영락없는 거지 가족의 몰골이었으리라. 그러니 그들이 무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온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은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종 여유 있고 밝기만 했다. 그런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표정이다.
이윽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천천히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설교를 시작하려고 성경을 펼치는가 싶더니 웃음 띤 온화한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아버지의 눈은 그때까지도 강대상 위에 떡 버티고 있던 가미다나 우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해방이 되었는데도 광복의 자유를 실감하지 못하고 옛 습관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기에 이 우상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버지는 좌우를 한번 휘 둘러보고 나서 손으로 그 우상을 밀어 떨어버렸다. 와장창! 유난히 큰소리를 내며 일제의 잔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든 성도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여 앉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놀라움의 빛을 띠고 아버지를 주시했다. 여태껏 예배를 드릴 때면 으레 그 우상에게 먼저 절해온 그들이다. 하나님보다 먼저 경배를 드린 우상이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온 그들이다.
그랬는데 누추하기 짝이 없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생긴 목사가 그토록 대단한 우상을 그대로 내동댕이쳐 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리 없었다. 우매하고 심약한 성도들이다. 이 우상의 모양은 나무로 깎고 다듬어서 만든 작은 집 모양으로 그 안에는 천조대신이라고 또렷하게 글자를 새긴 것이 들어 있다.
하긴 일제시대에는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그 우상에 절하지 않고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만약 이를 거부하면 아버지처럼 감옥에 끌려가야 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일본의 법을 더 무서워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제 해방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또 무엇이 두려워서 그런 나쁜 구습을 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성경 말씀에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고전10:14)]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들만을 탓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들에게 허물이 있다면 지도자와 목자를 잘못 만난 죄밖에 없었다. 교단 지도자들이 평양신사에 가서 참배까지 했으니 그들의 설교를 믿고 따르는 일반신자들에게 무슨 허물을 씌울 수 있겠는가. 신사참배에 찬성하고 적극 실행한 목사들 중에는 제 1,2 계명은 구약 시대의 것임으로 신약시대의 지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한 망언을 늘어놓은 이들도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렇게 범 교회적으로 한국교회가 타락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해방 후 삼팔선이 그어졌노라고, 해방은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순교자들과 옥중 성도의 공이요. 삼팔선은 일본 앞잡이가 되어 선량한 성도들을 현혹하고 나쁜 길로 인도한 교회 지도자들의 죄의 대가라고,,,,,,
사실 일제시대에, 그 강압과 고문의 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막연히 느끼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죽음도 두렵지 않는 투철한 신앙심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설교는 그런 저간의 사정을 맹렬히 지적하면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마치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뇌성과 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성도들의 나약한 신앙을 꾸짖었다. 출옥 후 처음 하는 설교였다. 그렇기에 5년 간 차곡차곡 쌓인 신앙의 지극한 열정이 그토록 당당한 외침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회개하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설교는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 그대로였다. 성전을 어지럽히는 장사치들을 질타하던 예수님의 외침 그대로였다.
교회 안은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잠잠해지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이곳저곳의 회개의 울음이 터져 나오면서 온통 통곡의 바다로 변해버렸다. 가슴을 치며 껑충껑충 뛰는 이, 눈물이 범벅이 되어 쉬지 않고 중얼중얼 기도드리는 이, 옆 사람과 얼싸안고 교회당이 떠나가라 찬송을 부르는 이,,,,,,,
그야 말로 하늘 문이 열리는 충만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그 동안 참 말씀에 주려왔던 신도들은 실로 오랜만에 열린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생수와도 같은 말씀의 폭우에 온몸을 적시며 하나님 진리의 말씀에 새롭게 눈을 뜨는 듯 했다. 메마른 그들의 신앙은 아버지의 설교의 양분을 흡수하고 비로소 소생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만해도 반 거지 취급을 했던 그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초라하고 어리숙하게 생각하고 업신여긴 사람에게서 전율과도 같은 신앙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어떻게 그토록 비쩍 마르고 야윈 몸에서 저토록 크고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올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그때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나는 경이로움을 넘어서 차라리 황홀한 심정으로 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아버지의 육신은 말라비틀어진 가을 낙엽처럼 볼품없었지만 그 영은 날로 풍성해져서 하늘을 흔들고 땅을 진동시키는 빛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설교 내용을 지금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회개하라는 외침만은 가슴 깊이 박혀 여태껏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열정적인 몸짓과 함께.
그 날의 일 가운데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성도들이 끓여 내온 팥죽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는 설교 도중에 예화를 들면서 우연히 팥죽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그 날은 마침 동짓날이었습니다. 하긴 추위를 가릴 변변한 겨울 옷 한 벌 없는 수인들의 처지에서 동지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루바닥에 앉아 신세 한탄을 하거나 이 춥고 견디기 어려운 겨울을 어떻게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를 궁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도하지요. 분명히 그 감옥소에는 팥죽 끓일만한 일도 없고 팥죽 먹을 만한 곳도 아닌데 이상하게 팥죽 냄새가 코끝을 살짝 지나갔습니다. 난데없이 따끈따끈한 팥죽 한 그릇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먹밥도 원 없이 못 먹는 실정에 팥죽이라니 참 가당치 않는 욕심이었습니다. 팥죽에 든 새알 하나라도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었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 끓였는지 여기 저기 팥죽을 가지고 와서 팥죽 파티가 벌어졌던 것이다. 참 세상인심이란 요지경이다. 전날만 해도 개밥 주듯이 찬밥 한 덩어리씩만 던져주던 성도들이 다음날 아침에는 아버지의 설교에 감동해서 너도나도 팥죽을 끓여왔으니, 덕분에 우리는 팥죽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아버지는 여러 곳을 다니며 특별설교를 했다.
동장이와 나는 고아원에 있었음으로 해방이 되고 바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으나 다른 식구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있었고 서로서로 소문을 따라 찾아다녔다.
그때 산 속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던 작은 오빠는 황 고모에게 나 부산 박신출(두 오빠가 다니던 통 공장 사장) 집사님 댁에 볼 일이 있으니 잠시 다녀올께요하고 박신출 집사님 집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비로소 해방이 된 것을 알았다. 작은 오빠는 해방이 되고 나서도 두 주 동안이나 해방이 된 줄을 몰랐던 것이다.
마침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감옥에 있을 때 편지를 주고받던 박신출 집사 집으로 우리 가족의 소식을 알려고 갔었다. 그리하여 박신출 집사 집에서 작은 오빠와 아버지는 우연히 상봉을 하게 되었고 작은 오빠가 그동안 우리 집을 도와 준 남강 다리 밑의 거지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버지는 우선 그곳부터 들르자고 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나환자를 모아놓고 진정으로 우러나는 감사의 눈물을 흘린 후 남강다리 밑에서 부흥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마친 후 아버지는 황 고모를 만나기 위해 작은 오빠와 함께 옥종면 북방리 움막으로 가서 그토록 만나고 싶던 황 고모와 겨우 해후하게 되었다. 세 사람은 이렇게 헤매 다닐 것이 아니라 우선 애양원으로 가서 거기서 아직 못 만난 가족들을 기다리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아버지와 작은 오빠, 황 고모, 이렇게 세 사람이 손잡고 애양원으로 돌아가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애양원으로 접어드는 긴 둑길에 나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 손 목사님이 돌아오신다. 할렐루야!
보라!. 우리의 목자가 환란을 이기고 돌아오신다.
오! 목사님, 우리 목사님
온 애양원의 나환자들이 긴 둑길로 구름처럼 몰려나와 고함을 지르고 함성을 울리며 아버지를 환영해 주었다. 아버지는 나환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기도 하고 얼싸 안기도 하고 그동안 안부를 묻고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도 했다.
이때가 해방이 되고 한참 지난 다음이다. 서로 찾아 헤매다가 어머니와 큰오빠가 있는 곳을 누군가 알려주어서 애양원에서 사람을 보내 남해 산골에 숨어 지내던 어머니와 큰오빠, 동림이를 불러왔고, 큰오빠는 고아원에 있던 나와 동생을 데랴가려고 왔다. 포악하던 일본 원장 안토는 쫓겨 갔고 전쟁 중에 울며 떠나갔던 윌슨 박사와 윈가리 선교사도 돌아왔다.
어디 그뿐인가. 신앙의 자유를 찾아다니던 북방리 산속 움막의 나환자들도 돌아왔고 남강다리 밑에서 천막을 치고 살던 거지 나환자들도 돌아왔다. 험한 세월이었지만 하나님은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가 때가 되자 고스란히 보내주신 것이다.
드디어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참으로 꿈만 같은 일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버리지 않으셨다.
안타까운 일은 그와 같이 큰 기쁨을 함께 할 수 없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7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늘 옥중에 있는 아들을 염려하고 자식들의 장래와 굳건한 신앙을 위해 기도와 편지를 끊이지 않던 우리의 믿음의 뿌리인 할아버지께서 불과 4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신 것이다. 1945년 4월 13일 해방되기 불과 4개월 전에 이 기쁜 날을 못 본 채 이역 만리 하얼빈에서 눈을 감은 것이다.
독수리처럼 강하고 비둘기처럼 유순한 할어버지께서는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점심 식사 후 손자들과 함께 봄볕을 쪼였다고 한다. 저녁이 되자 이제부터 나는 기도할 테니 방에 불 좀 많이 때라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천장에 달려있는 줄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그 자세 그대로 돌아 가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기 직전까지도 기도를 하고 계셨다. 감옥에 잇는 아버지와 고아가 된 우리들, 또 흩어진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그 자세 그대로 하늘나라에 간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평생을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할아버지다. 우리 가족의 믿음의 시초요, 구심점이며 터전이었던 할아버지다. 우리 가족들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 했다. 어린 내 가슴이 그러한데 두 오빠의 가슴이 그러한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아버지의 가슴은 오죽했으랴.
평소 살아 계실 때 내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유골은 훗날 큰오빠가 만주에서 모셔와 칠원 선산에 묻었다.
산산 조각났던 우리 가족들은 애양원을 떠난 지 만 5년 만에 그리운 옛집 애양원으로 돌아와 아버지는 다시 목회 일을 보게 됐고 또 다시 나환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누구하나 간섭할 자 없는 자유의 세계. 철창 속을 벗어 난 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뻤다. 만물이 소생하듯 우리는 다시 소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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