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어린 순교자들의 목소리

  선지자선교회

돌아보면 그 날의 시나리오는 너무나 완벽하게 짜여있었다. 하필 그 무렵 나는 소풍을 가게 되었다. 다음날은 마침 학교를 안 가도 되는 쉬는 날이었고, 소풍 장소도 애양원에서 가까운 신성포여서 나는 곧바로 부모가 계시는 애양원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다. 늘 여유 없는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때마침 쌀이 떨어졌던 터라 우리를 돌봐주던 오촌 당숙은 나보다 한발먼저 애양원으로 쌀을 가지러 떠났다.

 

동장이 마저 신풍리 집으로 보내 버리고 순천에는 어린 동림이와 오빠들만 남아있었다. 두 오빠의 신변을 간섭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완벽한 구도의 각본이 짜여진 것이다. 누군가 오빠를 지켰다고 해서 상황이 변했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분하고 허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에 그 날 내가 소풍을 가지 않고 오빠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한다. 그랬더라면 모르기는 해도 나 역시 오빠들과 함께 시체가 되어 누워있을게 뻔하다.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오빠들인데, 그들이 두들겨 맞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는가. 아마도 나는 몽둥이를 든 학생들에게 죄 없는 오빠를 왜 때리느냐고 악을 쓰며 달라 들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 무슨 두려움이 일겠는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부르며 총에 맞고 쓰러진 두 오빠를 보았다면 눈이 뒤집혀 뵈는 게 없었을 것이다. 아무나 붙잡고 물고 뜯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악에 받쳐 ,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더러운 살인자들아! 추악한 악마의 자식들아! 하고 온갖 욕을 다 퍼부었을 것이다. 입에 거품을 물고 끝까지 내 오빠들을 살려내라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았을 게 틀림없다.

 

그랬다면 광기에 사로잡혀있던 그들은 나 역시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그때 그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너무나 간단하고 손쉽고 일상적인 행위였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살인을 하고 다녔으니까. 그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던가.

 

사람의 운명이란 묘한 것이다. 그날 소풍을 갔기 때문에 이 모진 목숨이 살아남았다. 하나님이 어째서 나를 살리셨을까를 가끔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그 날의 일을 증언할 임무를 맡기기 위해 나를 살려 두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악몽과도 같던 그 날의 정황을 작은 오빠와 같은 반 친구였던 나제민 장로의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 하려한다.

 

두 오빠가 죽던 날 하필이면 집에 쌀이 떨어져 큰오빠는 가까운 거리에 있던 나덕환 목사님 댁으로 쌀을 꾸러 갔다고 한다.

 

아이고, 동인아 이를 어쩌지. 앞으로 쌀값이 내린다기에 조금씩 사먹었는데 그 마저 다 떨어졌구나. 사모님이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큰오빠는 오히려 명랑한 어조로 목회자들의 생활이 다 그렇지요, ...... 라고 했다.

 

사모님은 큰오빠에게 난리 통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들 다치고 죽고 하는 판이니 쌀이고 뭐고 우선 피신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댁의 나제민 오빠도 10분전에 다른 곳으로 피했다는 것이다.

 

큰오빠는 우리의 피난처가 하나님 외에 어디 있겠습니까? 하며 한없이 맑은 미소를 지으며 평소 잘 부르던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가를 휘파람으로 부르며 돌아갔다.

 

이것이 두 오빠와 마지막이었다고, 훗날 사모님은 나만 보면 동희야, 그때 너희 오빠 죽던 날 쌀 못준 게 지금까지 한이 맺혔단다 라고 말씀하곤 했다.

 

그날 따라 새벽 일찍 일어난 두 오빠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동장이를 깨워서 서둘러 애양원으로 보냈다. 난리가 났으니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며 동장이를 집으로 보낸 것이다. 그런 후 두 오빠는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목욕을 마친 후 두 오빠는 다른 때보다 훨씬 길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전날 순천은 반란군의 손에 의해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다. 19481020일 오전 11시경, 작은 오빠는 순천중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총소리를 듣고 난리가 난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중에는 총알이 교실 지붕위로 핑핑 날아가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귀청을 뚫는 총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겁에 질린 학생들은 재빨리 책상 밑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한 시간쯤 지나자 총소리가 멎었는데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은 아주 침울한 음성으로 다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드디어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작은 오빠는 제민 오빠와 함께 귀가하는 길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뒤 헤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싸움은 정의 대 불의의 싸움이요, 신자 대 불신자의 싸움인 것 같아. 그러니 우리는 참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야.

 

큰오빠는 그보다 먼저 그 날 아침에 볼일이 있어 순천역에 나갔다가 기차 안에 가득타고 있는 군인들을 보고 난리가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대강 짐작했다. 손님은 한 사람도 없고 객차 안에 무장한 군인들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으니 그것이 어찌 예사로운 일이겠는가.

 

큰오빠는 수상쩍게 돌아가는 바깥 공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작은 오빠가 오지 않아서 걱정스런 마음으로 밖에 나갔다가 경관들과 군인들이 서로 총질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런 판국이 되자 두 오빠의 투철한 믿음 생활을 익히 알고 있는 옆방에 세 들어 사는 양 집사님의 피신 권유는 참으로 간절했다.

동인 학생, 세상이 정말 험악하네. 보통 난리가 아닐세 다들 피난을 가는 모양이니 우선 피하고 보세.

 

쌀을 구하러 나덕환 목사님 댁으로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와 할 수 없이 부엌에 남아 잇는 것으로 되는 대로 요기를 하고 있는 오빠들에게 양 집사님이 근심스런 목소리로 피할 것을 간곡히 권했으나 오빠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신 할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 품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는 없을 것입니다. 피신을 하려다가 도중에 붙잡히기라도 하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없을 것이고 그들은 나더러 총을 잡으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일을 당하더라도 집에서 당하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큰오빠의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아무리 피신을 권해도 듣지 않는 두 오빠들인지라 양 집사님은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었다.

 

1021

이날 큰오빠는 학교에 갔다가 세상이 어수선하다하며 일찍 돌아왔고, 작은 오빠는 순천중학교가 포위당하는 바람에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10시경 양 집사님이 염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쿵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대문 앞에서 들려오는가 싶더니 폭도로 변한 좌익학생들이 대문을 박차고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저마다 손에 몽둥이며 쇠 파이프, 총 따위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동인이 이 녀석 이리 나와.

그들 중 한 명이 욕설을 퍼부으며 신발을 신은 채 방으로 들어와 오빠를 끌어냈다. 그들은 큰오빠를 밧줄로 꽁꽁 묶은 다음 닥치는 대로 마구 때렸다. 우악스럽고 잔인한 매질이 계속되었다.

 

이봐. 맞더라고 이유나 알고 맞자. 말해봐라. 무슨 죄로 나를 때리는 거냐?

큰오빠는 무수히 쏟아지는 몽둥이질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이 자식아. 그걸 몰라 물어? 말해주지. 너는 기독학생회 회장이니 예수 대장에다 거기다가 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친미주의자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들은 철저한 반미주의자들이다. 미국을 미워하는 것만큼 기독학생들 역시 친미파라 하여 매사에 못마땅하게 여기고 못살게 굴었다. 더구나 그 무렵 큰오빠는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영어 공부에 열심히 매달리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눈에는 더 없는 친미주의자로 비쳤을 것이다.

 

친미주의자라고? 이 사람들아 나는 다만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일 뿐이야. 오빠의 목소리는 쉴새 없이 쏟아지는 매질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힘찼다.

 

집어치워. , 예수 좋아하고 있네. 차라리 내 팔뚝을 믿어라.

그들은 오빠를 마음껏 조롱하고 비웃고 때렸다. 온갖 욕설이 터져 나왔고 갖은 모욕이 다 퍼부어졌다. 오빠의 몸은 곧 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작은 오빠가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 대들었다.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리는 예수님만 믿을 뿐입니다. 예수님 믿는 일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우리가 도둑질을 했습니까? 사기를 쳤습니까?

 

네 놈도 똑 같이 정신 나간 예수쟁이구나

그들은 두 오빠를 나란히 땅바닥에 엎어놓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머리가 터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매질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런 와중에 무리들의 일부는 친미파라는 증거를 찾는다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 오빠들의 서랍을 뒤지고 책이며 물건들을 꺼내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피에 젖어 신음하는 두 오빠를 내려다보며 잔인한 미소를 짓던 학생들은 총대로 쿡쿡 찔러서 오빠들을 일어나게 했다. 그리고 큰오빠의 손을 뒤로 묶고 작은 오빠는 손을 들게 하여 등뒤엔 총을 겨누고 이미 반란군에게 점령 되어 있던 순천경찰서로 끌고 갔다. 오빠들은 끌려가면서도 사악한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봐, 우리는 같은 동족이고 같은 학생이 아닌가. 같은 동족끼리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이야. 예수 믿고 선한 일을 해야 이 나라가 복을 받지, 그렇지 않고 동족끼리 헐뜯고 싸우면 망하기밖에 더 하겠어?

 

이 녀석이 누구한테 훈계하는 거냐? 그러고 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에잇 맛 좀 봐라.

 

학생 중 한 명이 오빠들을 발길로 걷어차고 각목으로 내리쳤다. 오빠들은 주먹으로 얻어맞고 발길에 차이고 총 자루로 무수히 난타 당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피가 흘러내려 온몸이 선홍빛으로 변했지만 예수 믿고 기독교의 정신으로 새 삶을 찾으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눈뜬장님이었다. 이 광경은 우리 집 단골로 애용하던 사진관의 사진사 서종문씨의 부인인 정 여사가 끝까지 따라가며 목격한 사실이다. 정 여사는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오빠들의 꿋꿋한 모습이 떠올라 그 후 일주일간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훗날 우리에게 말했다.

 

두 오빠는 순천경찰서 뒤에서 총살당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그중 윤순응 학생의 말을 토대로 해서 그 상황을 묘사하려고 한다.

 

드디어 오빠들은 그들이 사형장으로 사용하고 있던 순천경찰서 뒤뜰까지 끌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폭도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룬 채 쌓여 있었다. 큰오빠를 사형대에 앉혀놓고 강철민(가명)이라는 학생이 거칠게 말했다.

 

반동새끼, 너 그 지독한 예수 사상을 끝내 고집 할 테냐? 지금이라도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하면 살려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어떠냐? 우리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우리와 같이 협력하며 살 테냐, 아니면 바보처럼 예수쟁이 앞잡이가 되어 죽을 테냐?

 

오빠는 총을 겨누고 있는 그들에게 담대히 대담했다.

너희들은 내 목숨은 빼앗을 수 있지만 내 신앙은 빼앗을 수 없다. 일본인들이 악랄한 수법으로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지만 도리어 자기네가 망한 걸 너희들도 보고 겪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런 악한 짓을 그만 두고 예수 믿어 구원받고 선한 사람이 되어라.

 

이 말을 들은 폭도들은 더욱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고는 , 이 놈 봐라 그래도 예수 사상은 못 버리는구나 라고 소리쳤다.

 

예수사상이라니 그 무슨 말이냐?

네 놈이 믿는 그 예수 사상 말이다.

큰오빠는 그들의 꽉 막힌 마음 문을 열기 위해 열심히 예수님을 전했으나 허사였다. 순간의 광기에 휩싸인 악의 노예들이다. 그들 중 한 명이 개머리판으로 큰오빠의 얼굴을 강타했다. 여기저기서 죽여라! 죽여!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그 놈은 구제불능의 예수병 환자다. 총을 쏘아 죽여라. 죽여 없애버려!

 

너희들은 내 육신을 죽일 수는 있으나 내 영혼은 죽일 수 없다.

그들은 큰오빠를 향해 총을 겨눴다. 죽음의 그림자는 시시각각 큰오빠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작은오빠가 급하게 뛰어나가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안 돼요. 동인형은 우리 집의 장남입니다.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차라리 날 죽여요. 형 대신 날 죽여요.

동신아, 너 왜 그러니? 너를 죽이려는 게 아니지 않느냐. 내 대신 네가 부모님을 잘 모셔야 돼. 어서 집에 가. 이러다가는 너마저 죽어.

죽음을 앞에 놓고 서로 자기가 죽겠다고 다투는 작은오빠를 누군가가 강제로 떼어놓으며 큰오빠의 눈을 검은 수건으로 가렸다. 작은오빠가 큰오빠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들에게 동정심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거친 동작으로 작은오빠를 붙잡아 끌어냈다. 최후가 다가왔음을 짐작한 큰오빠는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엄숙하고도 당당하게 말했다.

이제 나는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마는 너희들은 그 죄 값을 어떻게 다 치르려고 하느냐. 지금이라도 예수 믿고 회개하도록 해라.

 

잔소리 집어치우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거든 해라.

당시 노래를 잘 불렀던 큰오빠는 마지막으로 찬송을 한 곡 부르겠노라고 간청한 후 이윽고 오빠는 그 맑고 고운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수건으로 가리워진 눈을 하늘로 향한 채였다. 오빠의 마지막 한 가닥 찬송 소리는 구름 덮인 하늘로 멀리 울려 퍼졌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찬송이 끝났다. 짧은 생애를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부르는 오빠의 간절한 찬양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 바쳐진 큰오빠의 마음이었다.

 

쏘아랏, 하나, , !

방아쇠가 당겨졌다. 총이 불을 뿜었다. 고막을 찢는 듯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큰오빠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작은오빠는 잡고 있던 이들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갔다. 쓰러진 큰오빠를 부여안고 상처 입은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형님, 형님. 나도 형님 따라 천국에 가렵니다 하며 큰오빠 시체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통곡했다.

 

작은 오빠는 벌떡 일어나 미친 살인자 집단을 향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거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를 토해냈다.

무엇 때문에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합니까? 하늘의 심판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이럴 수 있습니까? 회개하시오. 작은오빠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들을 앞에 가로막고 외쳤다.

 

내 신앙도 형님 신앙과 같소. 나도 쏘시오. 나도 형님 가신 천국에 함께 가겠소. 이 더러운 세상 살기 싫다. ! 총을 맞을 터이니 너희하고 싶은 대로 쏘려면 쏘아라.

 

, 저 놈은 제 형보다 더 지독한 놈일세.

저런 놈, 살려둬선 안 되겠다.

작은오빠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형상으로 두 팔을 벌리고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죽음이 두려울 리 없고, 그들의 흉기가 무서울 리 없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님이 피 흘리며 쓰러진 마당에 무엇이 겁나고 무엇이 무섭겠는가. 예수님을 증거 하다 죽으면 그보다 더 한 영광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누군가의 입에서 저 놈도 마저 해치우자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자 다들 눈을 번들거리며 떠들어댔다.

그래, 저 놈도 제 형 꼴로 만들어 주자.

소원이라는데 못 들어 줄 것 없잖아. 마저 해치우자.

작은 오빠는 다시 쓰러진 큰오빠 곁으로 다가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가슴에 묻고 마구 비벼댔다. 슬픔이 파도처럼 작은오빠의 가슴으로 밀려왔다. 이런 허망한 최후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잔인한 죽음은 현실로 다가왔고,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다. 피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새벽에 동장이와 함께 순천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작은오빠는 다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옆으로 벌린 채로 하늘을 우러러 소리쳤다.

 

아버지 하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그리고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 ! ! 공기를 찢으며 총탄이 또 발사되었다. 작은오빠도 큰오빠 곁에 마저 쓰러졌다.

 

이미 숨이 끓어졌지만 누군가가 다가와 쓰러진 작은오빠를 향해 두 발을 더 쏘았다. 확인 사살까지 한 것이다. 무자비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 학생의 이름은 강철민이었다. 인민 해방 투쟁을 꿈꾸며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온 좌익 학생들의 명단에 처형 대상 1호로 올라 있던 두 오빠는 이렇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한 것이다.

 

일주일에 불과했던 짧은 여순사건! 이 기간에 들이닥친 태풍은 두 오빠를 이렇게 쓸고 가버렸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늘 칭찬을 들어온 오빠들이었지만, 매사에 하나님을 들먹거린다는 이유로 좌익 학생들은 오빠들을 원수처럼 미워했다.

 

평소 난폭하고 사납기 그지없는 학생들인데 그들을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으니 그 등등한 기세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독학생회 회장(두목)이라 하여 큰오빠 이름을 그들이 죽이기로 한 명단에 제일 앞자리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음모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어지러운 시국에 대해서 작은오빠와 같은 반 친구인 나제민(나덕환 목사 아들) 오빠가 직접 쓴 글을 옮기겠다.

 

...... 좌익 학생들은 좌익 학생들끼리 뭉쳐 다녔고 방과 후에는 자기네들끼리 모여 토론하고 사교의 모임도 갖고, 좌익 서적도 나누어 보곤 했다. 이 모임에는 상급생들도 끼여 있고 여학생들도 끼여 있다. 동맹휴학은 으레 그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되었다. 그들은 우리 기독학생들을 가리켜 골수분자 라고 불렀다. 좌익 학생들에 맞서서 우익 학생들도 학생연맹(학련)을 조직하여 모임을 가졌다. 좌익 학생들이 점차 힘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우익 학생들도 처음엔 주먹으로 대하다가 나중에는 서로들 손에 붕대를 감고 붕대 안에다 압핀을 박아서 위협하며 다녔다. 누가 누구에게 얻어맞았다, 누가 누구를 구타했다 등의 소식이 아침에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접하는 소식이다.

 

좌익 학생들은 우리 기독학생들을 우익 학생으로 여겼다. 첫째는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았고 둘째는 그들이 전개하는 사상에 항상 반발하여 맞섰기 때문이다. 하기야 좌익 핵심분자 중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와 함께 공부해온 친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친한 친구이지만 사상논쟁이 심해지자 그들은 우리를 경계하고 따돌리기도 했다.

 

때로는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하여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등의 여러 서적을 권하기도 해서 자기들에게 동조하기를 권하기도 했다. 이것이 잘 안되면 기독교에 대해서 자기네들 생각대로 혹독한 비판도 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기독교 서적을 권했다. 교회에 관한 서적인 일본 하천풍언, 내촌감삼, 강원룡 목사의 저서 등을 아버님 책장에서 뽑아서 그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이런 서먹서먹한 관계는 날로 심해져서 3학년 내내 계속됐다.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국어 선생님이 급한 사정으로 수업에 못 들어오시게 되어 자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좌익 학생 한 명이 일어나더니 유물론과 유실론을 거론하면서, 성경의 말씀을 모두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며 우리 기독 학생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고 나았다.

 

그의 주장은 유물론의 우위를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예컨대 요한복음 11절을 말씀 같은 것도 다르게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라는 구절은 태초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 움직임에 따라 생각(로고스)이 생겨났다.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갓난애를 보더라도 어머니의 젖을 빨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먼저 있고, 그 움직임이 어느 정도 계속된 다음에야 언어를 배우게 되고 생각이 발달되는 것 아니냐면서 하나님이란 생각도 이 움직임의 소산이라고 주장했다. 생각은 환경과 시대와 장소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11절은 태초에 움직임이 있었느니라. 이 움직임이 사람과 함께 있었으니 이 움직임은 곧 사람이니라고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학우들이 이 주장을 매우 독특하고 명쾌한 논리라고 여기는 듯했다. 일부 학우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기독학생들의 반박이 이어져야 할 차례였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다들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동신이가 일어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전제한 다음 칼과 의사와 도둑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날카로운 칼이 의사의 손에 주어지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이기가 되지만 도둑의 손에 들어가면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흉기가 된다. 이처럼 의사나 도둑의 생각이 칼을 움직이는 것이지 칼이 의사나 도둑의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칼이든,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든, 책상이든, 학교 건물이든, 뭐든 우리의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지 이 모든 것에서 우리의 생각이 나온 것이 아니다. 생각인 로고스가, 즉 말씀이 먼저이지 물건이나 움직임이 먼저가 아니다.

동신이의 반론이 끝난 후 대 논쟁이 벌어졌다. 좌익 학생들은 환경론에서 무신론, 무신론에서 유신론, 유신론에서 결정론, 결정론에서 자유의지론, 자유의지론에서 사회 계급론, 자유와 핍박, 착취와 노동 등을 꺼냈고 그리고 우리 기독학생들은 사랑과 용서와 화해, 박애와 평등, 속죄와 구원, 천국사상의 기원, 산상보훈에 나타난 역설적인 파라독스의 종교 등을 내세웠다.

 

지금 생각하니 꽤 근본적인 문제들을 거칠게, 떼로는 억지를 써가면서 말씨름을 한 것 같다. 이기려고 서로가 우겨대다가 주먹이 나오기 직전에 국어 선생이 들어오셔서 이 논쟁은 일단 끝났으나 이와 같은 논쟁은 좌익 학생들과 기독학생들 사이에 3학년 내내 계속됐다. 어느 날, 좌우익 간에 논쟁이 점점 벌어지다가 나중엔 대 격투가 벌어지고 말았다.

 

학생들과 선생들을 창 밖으로 내던지는 참극이 온 학교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교무 회의에서는 좌익 선생은 우익 학생 처벌을 요구했고, 우익 선생들은 좌익 학생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이 단결해서 등교를 거부하여 동맹휴학을 했고, 선생들의 싸움은 학생 동맹휴학으로 계속 이어져갔다.

 

선량한 최복현 교장님은 가능한 한 학생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했으나, 허사로 끝났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 어느 날 아침 최복현 교장님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학교 정문 앞까지 끌려가 실컷 구타당한 후 시궁창에 내던져졌다. 간신히 생명은 구했으나 최교장님은 사표를 내고 서울로 귀향하고 말았다. 좌우익간의 싸움은 날로 심해져서 여순사건 터지기 직전까지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