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어찌 이런 일이 또......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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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19506.25 동란이다.

 

천만 뜻밖에도 동족과 동족 간에 총을 들이대고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이 삼팔선으로 갈라진 이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다. 바로 내가 이화여중 3학년 때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방이라는 크고도 귀한 선물을 안겨 주셨는데 무엇이 모자라 형제간에 총부리를 들이대야 했을까? 감사하기는커녕 싸움으로 일관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짓이란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인지도 몰랐다. 하나님의 선물인 해방의 은혜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오만해지기까지 한 이 나라 백성에게 내리는 불화살인지도 몰랐다. 36년 간 일제의 고통 속에서 건져 준 하나님의 선물을 외면한 이 나라 이 백성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형벌인지도 몰랐다.

 

온 천지가 불바다로 화했다. 북녘의 공산당들은 이미 이 나라의 백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백성이 되어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만 힘을 얻는 악마들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선전포고도 없이 쳐내려 왔다.

 

그런 상황을 보고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다.

 

,,,,,,,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죄의 값으로 다른 민족에게 압박을 받다가 특별하신 당신의 은총이 있어 해방된 지 5년이 되었건만 삼팔선은 여전히 굳어져 갈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일어나는 민족의 어려움이 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먼저 부르심을 받은 무리들이 옳게 그 직분을 다하지 못함인가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어 주시던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소돔 고모라를 만들지 마옵시고, 니느웨 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날리면서 회개하게 하시고 주의 진노를 거두어 주셔야하겠습니다.,,,,,,

 

628일 새벽, 한강대교가 폭파되었다. 국군들은 물밀 듯이 내려오는 공산당의 남하를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세는 돌이킬 수 없었다. 서울 하늘은 화염에 휩싸였다. 온 시민이 공포에 덜고 숨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한강 물은 죽은 사람들의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국군들은 서울 사수를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북한군들은 우리 국군들 뒤를 끝없이 밀고 쳐내려갔다.

 

나는 그 때 이화여중 3학년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한 붉은 기가 학교 정면에 매달려 잇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무서움에 떨었다. 여순 사건 때는 두 오빠가 죽었는데 이젠 내가 죽을 차례인가? 그러나 살고 싶었다. 서울은 벌써 붉은 물결 천지였다.

 

하늘에는 파편과 총알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무장한 붉은 군인들을 보면 나를 잡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리곤 했다. 나와 황고모는 이 난리 통에 절대로 떨어지지 말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했다.

 

북한군들은 서울에 침입하기 하루 전에 서울에 거주하는 목사들을 모두 납치해 갔다. 토요일 밤 11시경에 잠깐 물어볼 말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하며 데리고 가서는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을 노리고 목사님들을 납치한 것일까? 남은 가족들은 돌아올 줄 모르는 목사님들을 기다리다가 피난도 가지 못했다.

 

나와 황 고모는 그 때 다른 교인들과 함께 안용준 목사님 집에 숨어 지냈고 어떤 때는 땅굴에 숨기도 했다. 어쩌다 가끔 우리 편 사람을 만나면 전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 보면 들려오는 소식은 희망이 없는 것들뿐이었다.

 

우리는 합심하여 하나님께 참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이 때처럼 살려달라고 간곡히 기도에 매달린 적도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믿음은 견디기 힘든 환란을 통해 더욱 깊어진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우리는 땅굴 속에서 잠을 잘 때도 완전 무장한 채로 잤다. 신발도 벗지 않았다. 둘러 맬 봇짐을 베개로 사용했다. 옷은 말할 것도 없이 항상 단단히 차려입은 상태였고 허리띠도 꼭 조여 맸다. 그렇게 완벽한 준비 상태에서 잠을 청하다가 누군가 뛰어라 하고 소리치면 죽어라고 도망을 치곤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무려 3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하나님은 김일성이라는 파렴치한 인간을 몽둥이로 삼으시고 오만한 이 나라를 매질하시는 것 같았다. 세상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재만 남은 거리엔 부서진 건물들, 널려 잇는 시체들, 부모 잃고 우는 아이들, 폭탄에 맞고 신음하는 부상자들,,,,,,,, 아비규환의 세상이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그 전쟁도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3개월 후 928, 마침내 서울이 수복이 되었다. 숨어 지내던 우리들은 그때야 비로소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은 하늘이다. 그러나 그 맑은 하늘이 숨기고 있는 엄청난 비극을 그 때까지도 나는 사상하지 못했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닥칠 비극이 아직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기 저기 바람처럼 소문이 날아온다. 서울에서 납치당해 간 목사님들이 모두 이북으로 끌려가 학살당했다는 소문도 들려왔고 북한군들이 후퇴하면서 우익인사들을 구덩이에 쳐 넣고 생매장 시켰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하나같이 끔찍하고 어두운 소식들뿐이다.

 

이북에서 납치당한 목사들은 모두 학살되었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이 환란 중에 무사하신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남쪽 끝이니 아무 일 없겠지 싶은 마음이면서도 한 가닥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길이 없었다.

 

어느 날 황 고모와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아버지는 과연 어찌 되었을까 하고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다. 그 때 갑자기 안용준 목사님이 우리 자취방에 들어왔다.

 

어머, 목사님이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목사님은 말이 없었다. 그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게 보였다. 늘 죽음이란 단어에 민감한 나는 말을 듣기도 전에 가슴이 쿵하고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럼,,,,,,,,

그래, 네 아버지마저 끝내,,,,,,

 

안 목사님은 말을 맺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 이 어찌 된 일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단 말인가. 하나님, 맙소사! 하늘이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안 목사님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아버지가 후퇴하는 공산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셨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두 오빠의 죽음으로 쓰라린 가슴이 아직도 그대로인데 채 2년이 못되어 아버지마저 순교의 제물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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