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주여! 순교의 축복을.....

선지자선교회

1. 옥중전도

형무소 감방의 첫 날, 해가 저물었다. 콩밥이 들어왔다. 콩과 좁쌀과 수수와 밀잡곡 밥으로 덩어리가 잘 뭉쳐지지 않아 퍼석하다. 대로 만든 젓가락이 소반에 얹혀 있다. 국은 역시 희끄무레한 소금 국으로 시금치나 시래기를 삶은 물같은 텁텁하고 짠 소금 국이다.

주 목사는 여전히 앞에 놓고 찬송을 부른다.

?구주여 해변서 떡덩이를.......?

일 절을 부르고 기도를 하였다. 감방 안에는 잡 범들이 몇 있었다. 그들 중 한 청년은 전에 믿다가 낙심된 자이고 다른 이들은 모두 흉악범들이었다.

주 목사가 기도를 하고 나니, 밥덩이는 누가 주어 먹어 버리고 말았다. 국도 없다. 그러나 주 목사는 성내지 않고,

?오죽 배가 고팠으면 남의 밥을 먹었겠오. 괜찮아요, 나는 오늘 들어오면서 같은 동지들의 가족들로부터 사식을 얻어먹어서 그렇게 배고프지 않아요.? 도리어 위로를 하는 것이었다. 주 목사는 이 감방에 같이 지내게 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나는 목사입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같은 감방에서 지내게 되는 일이 우연한 일이 아닌 줄로 압니다.?

주 목사의 밥을 집어먹은 사람도 주 목사의 모든 언행에 감동이 되었다. 마침 믿다가 낙심된 청년이 성경전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주 목사 앞에 성경을 내밀었다.

?목사님 사실 저는 전에 교회에 좀 나갔습니다. 그러다 중도에 그만 두고 나쁜 친구들하고 휩쓸려 돌아다니다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다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넣어 준 것이지요. 성경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해서 그냥 가지고만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들어오셨으니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도우신 모양입니다. 잘 지도하여 주십시오.?

주 목사는 성경을 가지고 있질 못했다. 거창에서부터 성경은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가족들의 면회가 없으니 성경이 전해질 리도 없었다.

성경은 줄곧 옛날 대구 유치장 시절에 암송했던 것을 암송하면서 지냈는데 성경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 시간부터 주 목사는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밤 열시가 되었다.

?취침, 취침!?

간수의 찢어질듯 한 목쉰 소리가 들렸다. 감방 하나에 잠자리가 준비되었다. 그러나 그냥 자리에 누우면 된다.

취침 나팔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긴 여음을 남기면서 흘러가는 나팔소리, 두고 온 가정을 생각나게 한다.

수인들은 꿈에나마 가족을 만나고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다. 감옥의 하루가 취침 나팔소리와 함께 그 막을 내리는 것이다.

희미하게 방안을 비추던 전등이 가버리고 감방 안에 암흑이 깔린다. 바람기 하나 없는 더운 감방, 변기 통에서 번져나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 목사는 어두운 감방 안에서 모두들 잠을 청하는 시간에 혼자 앉아 기도를 드린다. 모든 d수인들이 다 잠든 시간에 자리에 누워 피로한 육신을 쉬는 것이다.

잠이 어렴풋이 들려는 시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뜬다.

?-...... , .?

무엇인가 몸을 툭 쏜다. 전신이 바늘 침을 맞는 것 같아 살갖을 만지는 순간 손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진득진득한 액체였다.

사실 그것은 빈대였다. 감방 안의 벽은 시멘트로 되어 있지만 밑은 마루였다. 마루는 칸과 칸 사이가 딱 붙은 마루가 아니고, 구멍이 많이 난 엉성한 마루였다.

여름엔 이 마루 틈서리에 빈대가 나오고 겨울엔 찬바람이 올라온다. 마루를 이렇게 엉성하게 하여 둔 것은 수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이다. 빈대와 더위와 싸우면서 밤을 지냈다.

아침 7. 기상 나팔 소리가 방정맞게 들린다.

간수의 목쉰 소리가 복도를 누빈다.

?기상! 기상!?

세면은 한 사람씩 세면장까지 뛰어서 하고 온다. 그리고 아침식사가 들어온다.

주 목사는 감방 안에서 시간만 나면 성경을 펴놓고 함께 있는 수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처음엔 비웃기도 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주 목사의 경건생활과 영적 이상한 힘에 끌려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열심으로 성경공부를 하였다. 드디어 아침저녁 감방 예배를 드리는데 모두 합심이 되었다.

어느 날, 새로운 죄수 한 사람이 들어왔다. 김형석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신의주가 고향이라 했다. 몹시 거칠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미였는데, 주 목사는 그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

김형석은 커다란 눈 속에 주 목사를 담으면서,

?나는 종교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외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 두 없구, 되는 대로 살아갈 것이오. 나를 상관 마시오.?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였다. 그러나 주 목사는 계속 복음을 전하였다. 김형석은 주 목사의 그 성자다운 태도와 생활 모습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가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 가는 듯 하였다.

드디어 그는 굴복하고 말았다. 하루는 김 형석이.

?목사님, 나도 예수님을 믿기로 마음에 작정하였습니다. 나를 지도해 주십시오.? 그 오만하던 태도가 없어지고 얌전해지면서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았다.

?참 반가운 일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리하여 36호실은 교회가 되었다. 아침저녁 예배를 드리고 시간만 나면 성경공부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평양의 가을은 짧았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들락거린다 싶더니 추위가 다가왔다. 햇볕을 구경할 수 없는 감방 안은 더욱 음산하고 춥기만 하였다.

2. 검사출정 명령

1110일경부터 머리 뒤에 부스럼이 생기더니 점점 험해갔다. 부스럼은 목 뒤 급소에 생겨 목을 움직일 수 없는 통증을 가져왔다.

발치대종이다. 의사가 와서 치료를 하였다.

이것은 수술해서는 안 되는 종기인데 칼로 짼 것이다. 그러니 더욱 악화되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까지 되자 의사가 주 목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소. 병보석으로 나가도록 하시오.?

그러나 주 목사는 거절하였다.

?나갈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죽기로 각오하고 들어온 몸입니다. 죽으면 영광이지요.?

주 목사는 정말 괴로워 한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는 병보석으로 나가도록 간곡히 권유했지만 주 목사는 반대하였다.

꿈에도 소원이요 바라는 순교다. 겁날 것은 없었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이제는 떠나가나 보다>

생각하니 주 목사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주님! 나의 영혼을 거두소서. 이 땅에 미련은 없나이다.?

주 목사의 두 눈언저리엔 뜨거운 눈물이 번진다.

앞에서 김형석이 입을 연다.

?목사님, 돌아가시면 제가 맏상제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모두 상제노릇을 하겠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말을 하였다.

122,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간수가 오더니 철문을 열고 주 목사에게 검사 출정을 명령했다.

주 목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수인들이,

?목사님, 그래가지고 나가시겠습니까??

염려를 한다.

?가다가 쓰러지더라도 어쩌겠습니까??

주 목사는 일어나 간수를 따라나갔다.

머리에 용수를 씌운 다음 손에는 수갑을 채웠다. 차거운 수갑이 팔목에 매달리니 전신이 저릿하면서 냉하여 온다.

고등계 형사실에 성도들이 모였다. 신사참배 반대자들만 이 날은 심문하는 것이었다. 용수를 씌워 놓았기 때문에 서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일절 말도 못하게 하였다.

형사들과 간수들은 성도들을 다시 노끈으로 엮었다. 행동을 같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줄을 서서 고등계 형사실을 나와 마당을 걸었다. 법정까지 걸어가야 했다.

옥중성도들은 한 줄로 서서 길을 걸었다. 형무소를 나와 법정으로 가는 길이다. 형무소에서 법정까지는 약 오릿길이나 된다. 자동차가 귀한 전시라 걸어가야 했다.

주 목사는 목 뒤 종기로 인하여 몸에 열이 나고, 걸음을 조금 걸으니 허벅지에 몽우리가 생겨 발을 잘 옮길 수가 없다.

그는 그만 길에 주저앉고 만다. 간수가 회초리를 들어 주 목사를 후려갈겼다.

?일어나!?

간수는 다시 발길로 찼다.

주남고 목사는 일어서면서

?아시가 이다이카라(다리가 아파서....)?

일본말을 하였다. 그가 얼른 쉽게 알아들으라고 일본말로 한 것이다. 그러나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다시 발길로 걷어찰 뿐이었다. 간수의 지독한 횡포에 겨우 발을 디뎌 놓은 주 목사였다.

이 때 두 사람 뒤에 한상동 목사가 가고 있었다. 한 목사는 그 목소리가 귀에 익은 듯하여 용수 틈서리에 눈을 주어 앞을 보니 주남고 목사였다.

주 목사는 괴로운 듯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억지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법정에 이르니 대기실에 모든 성도를 세웠다.

용수를 벗기고 수갑을 끌러 주었다. 일절 말은 금지되어 있었다. 혼자만 들어가 설 수 있는 칸막이가 있었다. 그 곳에 한 사람씩 세우는 것이었다. 칸막이가 나무로 만들어졌고, 혼자 앉을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뜻밖에 주 목사는 한상동 목사 옆자리에 들게 되었다. 한 목사가 손을 내밀어 주 목사의 손을 꼭 쥐었다. 따뜻한 사랑이 손과 손을 통하여 피부에 느껴진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말은 없지만 마음과 마음은 전류처럼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수고합니다.>

<참고 또 참읍시다. 순교의 그 순간까지....>

뜨거운 눈물이 두 목사의 동공에서 솟아 나와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쉴새없이 눈물과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약 없는 사람들. 이것이 이 땅위에서 마지막 만남이 될는지 모른다. 말이 필요 없었다. 두 목사는 손과 손을 맞잡고 울고 또 울었다.

주남고 목사는 간수에게 이끌려 검사 앞에 나갔다. 검사는 주 목사의 병색이 짙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주 목사의 얼굴은 굶주림과 추위와 병으로 누리끼리하게 살갗이 부어 있었다.

검사는 연미의 눈초리를 주 목사 얼굴에 보내면서,

?신사참배를 하겠는가? 하면 산다.?

말을 던졌다.

?못합니다.?

주 목사는 그 유순한 눈동자를 아래로 깔면서 싸늘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다시 묻겠다. 일본 역대 천황은 사람이면서 신인줄을 아느냐??

?일본 역대 천황은 하나님께서 일본 국가를 통하라고 세운 통치자인 줄 압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가든, 지옥으로 가든, 가고 말지 신으로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신을 섬기는 것은 사신인 줄 압니다.?

검사의 얼굴에 노기가 등등하였다.

검사는 소리를 빽 질렀다.

?너는 불경죄를 지었으니 살아남지 못하리라.?

?.....?

?너는 당연히 처형되어야 해. 나가!?

주 목사는 검사실을 나왔다. 사십 여명의 옥중 성도들이 한결같이 심문을 받고 나왔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심문을 받았다.

아무도 검사의 심문에 항복한 분이 없는 듯 하였다. 그들은 다시 용수를 쓰고 수갑을 차고 노끈에 묶여 감방으로 돌아왔다.

3. 옥중 세례식

128.

일본 천황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태평양전쟁이 터진 것이다.

전투개시는 이날 새벽 날이 밝기 전, 해군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도 이소로꾸가 진주만을 기습하고, 200여대의 항공기가 호놀룰루를 폭격하므로써 성공적 전적을 거두었다.

조선총독은 각 국장들에게 진주만의 전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리하여 민족주의 정신과 자유주의 정신을 말살시키고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꺾으려 한 것이다.

친일파의 무리들은 어깨를 으쓱대며 민족주의자들과 기독교 신자들에게 앞장서서 박해를 가하였다. 전쟁의 냉혹한 바람은 평양 형무소에도 밀어 닥쳤다. 그 하찮은 콩밥이 달라진 것이다. 콩알맹이가 콩깻묵으로 바뀐 것이다.

콩알맹이 통째로 주어도 영양이 겨우 생명 유지에 불과한데 깻묵으로 변하였으니 견딜 수 없는 일이다.

12월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햇빛을 구경할 수 없는 음울한 감방 안. 모든 것을 대각대각 얼어붙게 하는 싸늘한 바람만이 구석구석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마루 바닥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은 유리조각에 살이 베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아픔을 안아다 주었다.

밤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참아야 했다.

1942년 새해가 밝았다.

1월 첫 주일, 감방 안에서 첫 번째 세례식을 가지게 되었다. 김형석, 김종원 두 사람에게 세례 문답을 끝내고 세례를 주었다. 김종원은 밖에서 믿다가 낙심되었던 청년이었으나 열심으로 성경을 배웠고, 새사람 될 것을 작정하고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을 집례 하는 주 목사와 세례를 받는 두 성도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봉현이란 사람은 세례 받기를 원했지만 주 목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아직 미숙한 것 같아서 학습을 세웠다. 감방 안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세례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주 목사는 세례를 주고 나니 마음에 무거움이 왔다.

?세례를 받고 나가서 신사참배를 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생긴 것이다. 그 후론 세례를 주지 않기로 하였다. 몇 사람이 세례 받기를 원하였지만 주 목사는 그들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세례를 받고 신사참배를 하면 세례 받지 않은 것 보다 못한 결과가 됩니다. 훗날 사회에 나가서 신사참배 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면 그 때 세례를 받으십시오.?

4. 이름을 남선으로 개명

주 목사는 목 뒤에 생긴 대종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으로 갈 줄 알았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다.

?병 보석으로 나가서 치료하도록 하시오. 생명이 위험한 종기이기 때문에 이 감옥 안에서는 가망이 없오.?

간수들도 주 목사에 대하여 수군거렸다.

?고집 때문에 저 사람은 죽는 거야.?

감방 안에 함께 있는 수인들도 안타까워하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렇게 성이나 검붉게 부어오른 종기가 점차 사그라지면서 아픔이 점점 가시는 것이었다.

드디어 대종을 앓기 시작한 지 오십여일 만에 낫게 되었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밥맛이 돌아왔다. 짐승 사료 같은 그 콩깻묵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옆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이제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입맛이 돌아오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다. 깻묵 밥 한 덩이를 다 먹고 소금 국을 다 마시고 나니 목이 갈 했다. 물을 찾았지만 물이 없었다.

물을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간수들은 빈정거리며 고함만 빽 질렀다.

?물이 어디 있어! 지금은 전시란 말야! 대 일본의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물이 없어 목이 타 죽어 가는 형편인데, 감옥 안에서 평안히 지내는 죄수 주제에 물이라니, 양심이 있어 없어??

목마름을 참기란 배고픈 것을 참는 것보다 더 하였다.

다음부터는 국을 마시지 않기로 하였다.

목에 종기가 낫고 나니 잠도 평안히 잘 왔다.

어느 날 밤, 주 목사는 꿈 가운데서 윤산온 박사를 만났다.

윤산온 박사는 숭실 중학교 교장으로 있었으나 신사 참배 반대자로 조선 총독부 당국으로부터 교장직 파면을 당하고 출국까지 당하였다. 그는 그의 젊음을 한국에 복음사업과 교육사업을 위해 바친 위대한 교육자였다.

미국 사람으론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얼굴이 미남형으로 잘 생기고 말이 능했다. 한 때 미국에서 영화배우가 되라는 권면을 받을 만큼 말쑥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특기가 하나 있었다. 한 번 만난 사람이면 반드시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두는 것이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이름을 부른다. 여기에서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았다. 이렇게 그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 빈틈이 없었다.

윤산온 반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인격적 감화를 받았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몇 번 만나 회답을 얻기도 하였다. 그 정신적인 은사 윤산온 박사가 주 목사의 꿈에 나타난 것이다.

윤산온 박사는 생시와 꼭같은 모습으로 주 목사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주남고 목사!?

주 목사는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윤산온 선교사님!?

하고 그의 손을 잡았다.

?주 목사의 이름이 좋지 않아요. 남고라고 하지말고, 남선이라 하시오.?

?남선......?

?그렇소, 얼마나 부드러운 이름입니까??

주 목사 스스로 남선을 중얼거리며 깨니 꿈이었다. 그로부터 남고라는 이름 대신 남선으로 부르게 되었다.

5. 나는 충성을 버릴 수 없다.

19425.

검사에게 불려 나갔더니 예심 판사에게 넘겨졌다.

주 목사는 예심 판사 앞에 섰다. 예심 판사는 준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왜 신사참배를 반대하는가??

주 목사는 뼈만 남아 앙상하게 여윈 몸집이지만 바로 서서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신사참배는 성경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는 경배하지 말라고 하였기에 우상을 섬기는 일이 되므로 반대합니다.?

?조선의 모든 목사가 다 신사참배를 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조선의 목사가 모두 신사참배를 한다 해도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대로 나는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고쳐지기 전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성경을 고치도록 하지!?

?성경을 누가 고친단 말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사람이 고치지 못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성경을 고칠 수 없습니다.?

?지독하군! 당신이 버티면 얼마나 가겠나? 지금 대 일본 제국은 세계를 점령하게 된다.?

판사의 얼굴에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패기가 넘치고 있었다. 이 무렵 전세는 일본의 완전승리처럼 보였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일본에 동조하여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태평양 전쟁은 세계전쟁으로 번졌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 세 동맹국과 미국, 영국, 불란서 연합군으로 인류 사상 최대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홍콩이 함락되고 말레이 반도가 일본의 발길에 짓밟히고, 싱가폴에 일본군이 상륙하였다. 일본 수상 도오죠오 히데끼는 연설을 하기 위하여 연단에 오를 때, 오르는 계단에 미국, 영국의 국기를 깔고 그 위를 밝고 오르기까지 하였다.

이런 전시인지라 예심 판사의 기백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당당한 예심판사 앞에 주 목사는 조금도 겁나는 빛을 띄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 있는 음성으로,

?일본은 전쟁에 지고 맙니다. 일본은 망합니다. 천조대신을 섬기는 일본은 망합니다.?

놀라운 말이었다. 예심 판사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예심판사는 주먹으로 탁자를 탁 치며 소리쳤다.

?코노야로, 사형감이다!?

주 목사의 얼굴엔 놀란 빛도 없었다. 태연히 주 목사는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판사님, 당신은 당신 나라에 충성하기 위하여 이렇게 판사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내 나라를 위해서 싸우며, 나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위해서 정조를 굽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주 인 예수님께 충성하고 싶은 마음 그것뿐입니다.?

?가정에서 당신의 처자들이 얼마나 기다리겠나? 집으로 돌아가서 처자들을 돌보아야 되지 않겠나??

?나는 모든 것을 나의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가정도 처자도 심지어 나의 생명까지 다 맡겼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나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판사는 다시 조용히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기 도장만 꾹 찍으면 무사히 나가게 된다. ! 손 도장을 찍으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나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심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주 목사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쳐 있었다. 심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강한 힘이 솟아 오른 것이다.

그 힘은 성령님의 능력의 힘이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더욱 성령님의 강한 역사를 체험하였다.

6. 딸의 면회

8대 총독 미나미 지로는 이해 5월 어느 날, 이 땅을 떠났다.

그가 이 땅에 와서 가진 못된 짓을 다하며 일본 제국을 위해 충성을 하였지만 그는 군사참의관이란 별로 큰 벼슬도 아닌 직책에 임명되어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미나미 총독이 이 땅을 멍들게 한 죄악의 진상은 역사에 길이 남아 이 민족의 가슴에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미나미 총독은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몹쓸 짓을 많이 하였다. 그는 내선일체를 주장하였고,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국민복을 입히고 머리를 깎았다.

1937년에는 애국금채회라는 것을 만들어 한국의 귀족과 고관부인들의 금비녀 금반지 등을 일본제국에 바치토록 하였다.

19383월에는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국인의 생활을 괴롭혔다. 이는 국민의 모든 생활을 정부가 마음대로 간섭하고 징발 또는 징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게 된 것이다.

193919월부터는 노무자까지 징용하여 규우슈우지방, 혹카이도 지방 탄광이나 군수 공장에 보내었다.

황국신민 서사란 것을 만들어 집집마다 제창하게 하였으며,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일본어 사용을 주장하면서 한국어 사용을 금하였다. 또한 창씨개명으로 우리의 성씨마저 앗아 버렸다.

193822일 칙령, 95호를 공포하여 육군 특별 지원병제를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17세 이상의 남아들은 의무적으로 입대하여 사지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이같은 몹쓸 일을 감행한 미나미 총독은 일본국으로 소환되어 갔다.

1942529.

새 총독이 이 땅에 발을 디뎌 놓았다.

고이소 구니아끼, 그는 육군 대장이었다. 고이소 총독은 미나미 총독에 비하여 조금도 인간미를 더 가졌다고는 할 수 없는 고약한 사람이었다.

우선 그 생긴 모습부터가 험상스러워 마치 부르도크를 연상케 하였다. 그는 2년 전 이미 한국 땅에서 조선군 사령관의 직위에 있었다. 그러기에 한국의 모든 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고이소 총독은 미나미 총독의 쌓아 올린 그 지독한 제도 위에 더 악랄한 방법으로 자신의 위치를 구축하여 갔다.

평양 형무소의 대접은 말이 아니었다.

콩깻묵과 조, 밀껍질의 이 형편없는 밥덩이는 생명을 이어나갈 영양이 되지 못하였다. 형무소 안의 성도들은 부황증세를 나타내었다.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어 남의 얼굴들 같았다.

물론 사식이 없었다. 가족들이 면회로 와서 사식을 넣을려고 하자, 간수의 폭언이 쏟아졌다.

?지금 대 일본 제국의 피끊는 젊은이들이 일선 지구에서 전쟁으로 죽어 가는 판국에 감옥에 있는 것들이 사식을 얻어먹어! 말도 아닌 소리! 대 일본 제국을 반대하는 비국민들은 굶어 죽어도 마땅하고 감옥에서 썩어 나가야 해!?

전쟁의 파문은 형무소 구석구석까지 살얼음처럼 깔려 있었다.

더위가 한참인 8월 초순 어느 날, 경순이 평양에 올라왔다. 일본에서 간호학교를 다니다가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면회하기 위하여 평양으로 온 것이다.

경순은 한상동 목사 부인 김차숙씨를 만났다.

?아버지를 면회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경순이 눈에는 눈물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김차숙 여사는 형무소에 살다시피 출입하므로 간수들이며 고등계 형사들이 다 낯이 익었었다. 경순은 김차숙 여사의 주선으로 아버지 주 목사를 면회할 수 있게 되었다.

면회실에 들어서서 간수가 경순에게 말을 던졌다.

?일본말로 대화를 하여라.?

?아버지는 일본말 잘 못하실 터이니 조선말로 하겠습니다.?

?일본말 안 하면 면회가 되지 않는다.?

?잘 좀 봐주세요.?

?면회는 간단히 하는 거야.?

?!?

?면회하러 온 길이니 아버지 납득을 시켜 생각을 돌릴 수 있도록 하여라. 여기서 고생이 말이 아니다.?

지극히 주 목사를 위해 주는 듯한 말투였다. 경순은 싸늘하게 한 마디 던졌다.

?나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리고 아버지는 어른이십니다. 내 생각보다는 아버지 생각이 바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나는 모릅니다.?

?그럼 안부만 하고 그쳐!?

경순은 의자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순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감회에 젖어 들었다.

얼마 만인가? 그렇게 인자하시고 다정하시던 아버지!

남을 해롭게 하신 일이 없고, 언제나 어려운 것은 자신이 하시고 쉬운 일은 남에게 돌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 없이 다 주시던 고마우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이런 형무소에서 고생을 하신다니 너무나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경순이 일본으로 건너 갈 때, 흰 두루막 입은 사람만 보면 혹시 아버지신가 하여 뒤 돌아 보며 아버지를 그리워하였다.

그렇게 보고 싶던 아버지! 아버지를 이 형무소에서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듯 아파 오며 가슴이 뛰었다.

얼마 후, 면회소의 창문이 열리고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경순이 뛰어가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버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이 꽉 메이고 눈물이 눈을 덮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을 몰랐다.

?경순이 왔구나!?

주 목사의 눈언저리에 가느다란 액체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공부는 잘 했나??

?!?

"경도 오빠도 잘 있고!?

?!?

?집에 엄마랑 동생들 잘 있더냐??

?!?

경순은 차마 어머니와 동생들의 고생하는 모습을 이야기 할 수가 없었다.

주 목사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에 부황증이 들어 본래의 모습은 차장 볼 수가 없었다. 목소리만으로 그가 아버지이심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이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저렇게까지 고통을 주는 것인가? 남의 것을 탐낸 일이 없고, 남을 때린 일이 없고, 몹쓸 일을 꾸민 일이 없는 저 손에 수갑이 웬 말인가?

경순은 아버지 앞에서 말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경순은 자꾸 자꾸 울기만 하였다.

주 목사는,

?울지 마라. 나는 괜찮다.?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건만 주 목사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는 것이었다.

한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아버지! 제가 어쩌면 아버지를 도와 드릴 수 있겠습니까??

?너는 돌아가서 공부나 잘 해라, 그것이 아버지를 위하는 일이다.?

간수가 주 목사 곁에 나타났다.

?시간이 되었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3분의 시간은 너무 짧다.

?우리 아버지 좀 더 말하게 두어 보세요.?

경순은 애원했지만 간수는 주 목사를 데리고 판자문으로 사라졌다.

경순은 울면서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며 아버지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경순은 김차숙 여사에게,

?나도 여기 있고 싶습니다. 사모님처럼 나도 남아서 우리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고 부탁을 하였다. 김차숙 여사는 조용히 경순을 타일렀다.

?집으로 내려 가거라. 여기서는 아무 일도 할 것이 없다. 사상가의 자녀를 누가 쓰겠니!?

?식모라도 좋아요. 우리 아버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나를 우리 아버지 옆에 있게 해 주세요.?

경수는 울면서 애원하였지만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기철 목사 부인 오정모 여사도 경순을 권면하였다.

?여기서 취직도 되지 않고 일할 것이 없어요. 신분이 분명해야 식모살이라도 할 수 있지, 사상가의 자녀는 역적의 자손이라고 써주지를 않아요. 일본으로 들어가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해요. 그것이 아버지를 위하는 일이고 너를 위하는 일이지.?

경순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평양에 올라온 지 일 주일만에 다시 거창으로 내려갔다.

7. 옥중의 특별 기도제목

옥중 생활은 기도와 성경을 암송하는 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옥중에서 성경을 허락하였지만 뒤에는 허락지 않았다. 성경 읽는 것을 감시하였고, 성경이 발견되면 심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간수들이 책을 읽으라고 넣어 주는 것이 불교 서적이고 아니면 정신교육을 위한 일본 전제주의 사상전집 등이었다. 읽을 수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은 책들만 넣어 주었다.

주 목사는 전날에 암송해 둔 성경구절들을 눈을 감고 암송하며 찬송과 기도로 나날을 보내었다.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그러면서 특별한 제목 여섯 개를 세워 기도하였다.

(1) 말세의 바벨론 우상제국이 파괴되도록

일본 제국주의는 바벨론 우상국가다. 이 우상국가는 망해야 한다.

(2) 신앙 자유를 이한 기도.

일제의 탄압으로 순수신앙이 말살되어 간다.

?이 땅에 참 신앙의 자유를 주옵소서.?

(3) 조선의 자주독립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 나라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국이 되도록 기도하였다.

(4) 일본 신사가 소멸되어야 한다.

?이 땅에 세워진 모든 신사가 다 불타게 하옵소서.?

(5) 조선 교회 지도자 교양을 위하여 수도원을 설립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고, 이 땅에 남아있는 교역자 대다수가 신사참배에 가담하였다.

이 땅에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가고 신사가 불타 버릴 때 다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때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운 마음의 무장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수도원이 필요하다. 또 이곳에서 신학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교역자를 양성시켜야 한다.

(6) 거창에 성경학원을 하나 설립하도록 기도하였다. 지방교회 청년들을 위하여 신앙의 훈련과 성경공부를 시켜야 하므로 성경학원이 필요한 것이다.

주 목사는 이 여섯 가지를 특별기도 제목으로 정해 기도하였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란 주의 말씀대로 이 여섯 가지의 특별 기도제목은 그 후 이루어졌다. 믿음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은 것이다.

8. 주기철 목사 순교하던 날

1944413.

옆방에 있던 주기철 목사가 신병 때문에 병감으로 옮겨가던 날이다. 이 날 주 남선 목사는 심히 마음이 허전하였다.

서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지는 못했어도 옆에 있을 땐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극도로 쇠약한 몸으로 병감으로 옮겨졌단다.

이 감옥 안에서 병들었다면 살아날 가망은 없다. 약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무엇으로 치료를 받으며, 무엇을 먹고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벌써 여러 목사와 장로들이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 기철 목사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하였다. 자리에 누워 어렴풋이 잠이 들려는데 비몽사몽간에 우렁찬 찬송소리가 들려왔다.

주남선 목사는 찬송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찬송은 윤산온 박사가 부르는 것이었다. 윤산온 박사는 곡조 찬송을 높이 들고 힘차게 찬송을 불렀다.

?십자가 군병되어서 예수를 좇을 때,

무서워 하는 맘으로 주 모른 체 할까

그리스도 내 구주여 나를 속량했으니

내 십자가를 벗은 후 저 면류관 쓰리.?

주남선 목사는 너무나 황홀한 중에 찬송을 듣다가 정신이 들었다.

꿈이었다. 환상이었는지 모른다. 정신이 말아 오면서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주기철 목사가 순교한 것이 아닐까??

이제 막 그 찬송이 순교자를 위한 개선가로 생각이 되어졌다.

주남선 목사는 마음이 기뻐지며 감사의 기도가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또 한 분의 순교자를 받으셨나이까? 나의 때는 언제이옵니까? 주님이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음날 정오에 소제부가 들어 왔다.

?주기철 목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남선 목사는 소제부에서 속삭이듯 물었다.

소제부는 부르튼 얼굴로 시원찮게 말을 던졌다.

?어제 밤 아홉시 반 경에 세상 떠났오!?

이 땅에 찬란히 빛나던 또 하나의 별이 떨어진 것이다. 주남선 목사는 주기철 목사의 승리의 순교를 부러워하며 종일 금식을 하였다. 들리는 말에는 예수 천당의 최봉석 목사도 별세하였다고 했다.

419. 주기철 목사보다 2일 앞서 가신 것이다.

평양 형무소는 갑자기 적막해 지는 듯 하였다.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지 알 수 없는 초조 속에 더욱 기도와 찬송과 성경암송으로 깨어 있는 나날을 보내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일본은 전쟁에 신통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듯 하였다. 간수들의 움직임에 별로 생기가 없었다.

함께 부산에서 올라온 이현속 장로도 별세하였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최상림 목사도 세상을 떠났단다. 모두들 영양실조로 굶어 죽은 것이다.

주남선 목사는 자신의 생명도 얼만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더욱 기도에 힘썼다.

724. 고이소 구니아끼 총독은 일본제국의 내각총리대신으로 소환되어 본국으로 갔다.

조선 제10대 총독으로 아베 노부유끼가 부임해 왔다. 아베 총독은 일본의 내각수반을 지낸 바 있는 정계의 거물이었다.

그는 육군대장 출신이다. 그는 부임하자 부임성명을 통하여,

?전쟁 완수의 근본은 사람에게 있다. 힘쓰면 불가능이 없는 것이다.?

하고 외쳤다. 그리하여 전쟁의 인적, 물적 자원의 80퍼센트 이상을 한국에서 얻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남자들은 징병과 징용으로 뽑아 내었고, 여자들은 근로 정신대를 조직케 하였다.

여자 근로 전신대는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 없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1944823일부터 동원하였다. 일본은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었다. 형무소 안의 생활도 더욱 견디어내기가 힘겨워 갔다.

9. 일본은 망한다.

14412. 예심정에 출정명령을 받았다. 주남선 목사는 비틀거리며 예심 판사 앞에 나가 섰다. 예심 판사는 되바라진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천조대신은 여호와와 같은 신인데, 왜 다른 신인 줄 알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가??

주남선 목사는 머리를 들어 예심 판사를 응시하면서 또렷한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여호와 하나니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참 신이며,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신이신데, 어찌 천조대신을 여호와와 같은 신이라 하십니까? 천조대신은 사람이 만든 사신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참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외엔 참 신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가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면 일본의 천황에게도 통치권이 있는가??

?없습니다. 천년왕국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통치권이 있습니다. 만일 천황이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통치권이 있습니다.?

?일본은 신사참배를 하는데 천황 폐하가 예수를 믿을 것 같으냐? 예수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통치권은 없습니다.?

?예수의 재림시엔 일본국가가 망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일본은 망합니다.?

예심 판사는 노기 띤 목소리로,

?요시!?

하더니 이빨에 힘을 주고 입을 다문다. 다시 입을 연 예심 판사는 고함을 쳤다.

?나가!?

발악적인 고함이었다.

주 목사는 밖으로 나왔다.

감방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10. 장질부사와 최후 심문

19443울 초순.

조선 총독부 5층 비밀창고에서 아베 총독은 총독부 경무국 사무관 세이데와 비밀 회담을 하고 있었다.

아베 총독은 일본의 패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미군이 한국에 상륙하는 날, 한국의 인물들을 살육하자는 것이었다.

그 수는 3만 명이었다. 세이데 사무관은 아베 총독에게

?저들의 처형은 감쪽같이 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아베 총독은 이때부터 더욱 많은 한국의 각계 인사들을 예비 검속하였다. 사학가들의 말에 의하면 서울 인사들만도 이천 여명이라 했다. 총독부의 학살 음모는 치밀하게 진해되었다.

학살 대상 3만 명중에는 옥중 성도들과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학자들,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까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소위 조선총독부 보호관찰령 제3호란 것이었다.

아베 총독은 이 찰령 시기를 계산하였다. 미군의 제주도 상륙을 8월 하순이나, 9월 초로 추정하였다.

그렇다면 학살 시행은 8월 중순에 단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비밀리 학살 준비를 단행하고 있었다.

4월 어느 날, 평양 시내에 장질부사가 유행하였다. 이 유행성 병균은 시설이 불결하고 영양실조에 태양 빛을 보지 못하는 평양 형무소 내에도 찾아왔다.

수인들 가운데 환자가 늘어갔다. 건강인들도 견디기 어려운 형무소 생활에 괴질이 찾아 온 것은 수인들의 근심을 또 하나 첨가시킨 결과이다.

위생관리도 의료시설도 말이 아닌 형무소였다. 여기에서 이 무서운 열병에 걸리는 날엔 그만이다. 죽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수인들 중 몇이 이 무서운 괴질에 걸려 신음하였다. 약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죽고 만 것이다.

주 목사도 예외 없이 이 괴질에 걸렸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면서 주 목사는 눈을 감았다.

온 전신이 어슬어슬 추워오면서 견딜 수 없는 열기가 얼굴로 발산 되었다.

주 목사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앉아서 기도로 병을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이 병으로 저를 받으시렵니까? 소원입니다. 순교는 저의 평생 소원입니다. 어서 속히 저를 받으시옵소서!?

주 목사의 얼굴엔 괴로움의 빛도 두려움의 빛도 없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서 그 무서운 괴질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죄수 한 분이,

?목사님! 누워서 이불을 덮고 몸을 더웁게 하십시오. 그러시다가 큰일나겠습니다.?

하고 걱정을 한다.

?염려 마십시오. 죽든 살든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열병은 오래 계속되었다. 매일처럼 열이 40도를 오르내려 그 고통이 극심했다. 옆에 수인들이,

?아무래도 이 열병으로 돌아가시겠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상제노릇을 하지요.?

그들의 얼굴엔 슬픈 빛이 서려 있었다.

주 목사는 조금도 근심스러운 빛을 띠지 않고 의연하게 말했다.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살아서 필요하다면 이 열병에서 낫게 해 주실 것이고, 나를 데려 가실 때가 되었으면 나는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목사는 열심히 기도하였다. 예수님의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피땀나는 기도를 계속하였다.

훗날 주 목사는 이 때의 기도를 통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를 다소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기적이 나타났다. 장질부사에 걸린지 20여일 만에 몸의 열기가 떠나가는 것이었다. 몸이 가벼워지며 입맛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서도 예심 판사는 출정 명령을 내렸다. 병중이란 걸 통고하였더니 얼마 동안 말이 없었다. 주 목사가 일어나 음식을 먹으며 차차 생기를 찾게 되던 어느 날, 형무소 사무실로 예심판사가 찾아왔다.

그 때가 5월 초순이었다. 주 목사는 겨우 일어나 사무실로 나갔다. 주 목사의 모습을 바라본 예심판사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든지 길게 심문하지 않았다.

?전 번 심문할 때와 지금과 마음의 변화가 조금도 없는가??

판사는 조용히 물었다.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나의 대답은 그 때 대답한 그대로입니다. 몇 십번 몇 백번 물어도 그 외의 답은 할 수가 없습니다.?

판사는 더 노하지 않고 역시 조용한 음성으로,

?그럼 이 관계서류를 지방법원 공판정으로 보낼 수밖에 없군.?

그리고는 돌아가라 했다. 주 목사는 다시 감방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왔다. 피곤하였다. 주황색 이마에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혔다. 감방에 들어오자 쓰러졌다.

?주님, 주님은 빌라도의 법정 앞에서 얼마나 괴로우셨습니까? 저에게 힘을 주옵소서.........?

기도를 올리는 주 목사의 눈언저리에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 이후 주 목사는 불리어 나가지 않았으며, 조용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형무소 안도 비교적 조용하였으며, 간수들도 전처럼 날뛰지 않았다.

전쟁은 이미 일본의 패전으로 기울고 있었다.

724. 독일, 이탈리아는 손을 들었고, 미국, 영국, 소련과 불란서, 중국은 포츠담 회담을 개최하여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졌으며, 89일에는 소련이 일본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였다.

무서운 원자탄은 나가사끼에도 떨어졌다. 원자탄은 무서운 위력으로 폐허를 만들었다.

일본 대본영 발표는 가공할 신형폭탄이 떨어졌다고 발표를 하였지만 이 신형폭탄인 원자탄의 위력을 그들도 가히 짐작을 하지 못하였다.

얼마나 무서운 위력의 폭탄인가? 조그마한 두 개의 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두 지방 도시에 떨어졌는데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이 막대하였다.

건물이 파손되고 모든 초목까지 말라죽은 것은 물론, 인명의 피해는 사망자 35만명, 피폭환자 30여만명을 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병으로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 고통과 사회의 문제성을 만들어 낼 줄 누가 알았으랴?

이 원자탄 투하로 인하여 일본은 생각밖에 빨리 손을 들었고, 아베총독의 그 무서운 음모 보호관찰령 제3호는 미처 시행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은 모른다. 하나님은 순교자들과 옥중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신 것이다.

원수들에게 승리를 주시지 않으시며, 불의한 자에게 기쁨을 주시지 않으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의인의 고통을 길게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 땅에 생명 잃은 교회를 그대로 방치해 두시지 않으시고 생명 있는 산 교회로 부활시켜 주시기 위하여, 일본을 전쟁에서 패전케 하신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23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시고 file 선지자 2016.01.07
22 주남선 목사님의 성경책 file 김반석 2016.01.03
21 신학교 졸업 사진 file 김반석 2016.01.03
20 신사참배를 이긴 출옥성도 주남선 목사님 file 선지자 2015.12.30
19 한국 교회사에서 찾는 좋은 목사님, 주남선 목사를 중심으로 - 이상규 교수 선지자 2015.12.30
18 주남선 목사의 생애와 신앙인격 - 강용원 교수 선지자 2015.12.30
17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16장. 해와 같이 빛나리 선지자 2015.12.30
16 해와 같이 빛나리 - 제15장 선지자 2015.12.30
15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14장. 생과 사의 길목 선지자 2015.12.30
14 해와 같이 빛나리 - 제13장. 살인 명부 선지자 2015.12.30
13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12장. 기쁨과 슬픔의 사이 선지자 2015.12.30
12 해와 같이 빛나리 - 제11장. 살려 놓은 하나님의 뜻 선지자 2015.12.30
11 해와 같이 빛나리 - 제10장. 위로하는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 선지자 2015.12.30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9장. 주여! 순교의 축복을..... 선지자 2015.12.30
9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8 장. 목화 이삭 줍는 사모님 선지자 2015.12.30
8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7장. 평양으로 가는길 선지자 2015.12.30
7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6장 일본제 고문과 한국제 신앙의 대결 선지자 2015.12.30
6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5장. 맹물 솥에 불때는 사택 선지자 2015.12.30
5 해와 같이 빛나리 - 제4장. 10년 걸린 졸업 선지자 2015.12.30
4 해와 같이 빛나리 - 제3장. 선동자 삼형제 선지자 201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