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기쁨과 슬픔의 사이

선지자선교회

1. 거창 성경학교 개교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주 목사의 간절한 염원이었다. 신학교를 이미 시작한 주 목사는 그 신학교를 뒷받침 해 주는 성경학교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194111. 오종덕 목사가 부산에서 고등 성경학교를 할 뜻을 가졌다는 소식이 왔다. 주 목사는 부산으로 내려가 한상동 목사와 오종덕 목사를 만났다. 그리고 고등 성경학교를 설립하는 일에 뜻을 모두었다.

오종덕 목사는 부민동에 땅을 마련하여 12월에 고등 성경학교를 개교하였다.

오목사는 초대 교장이 되고 주목사와 한 목사는 이사가 되었다. 이 고등 성경학교는 고려 신학교의 부속기관으로 고려 고등성경학교라 칭하였다.

주 목사는 거창 지방에도 성경학교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농촌 청년들의 신앙 자질을 위해서 성경학교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거창 지방 성경학교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우선 전담 교사가 필요하였다. 실력이 있고, 신앙 사상이 투철한 신앙인이 있어야 했다. 물망에 오른 사람 중 제일 유력한 사람이 남영환 전도사였다. 남전도사는 강도사로서 이번 노회시 목사 안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는 사천 정의동 교회를 시무하였다. 정의동 교회는 미조직 교회로서 청빙이 안되므로 지방 전도목사로 안수를 받으려고 절차를 밟았다.

주 목사는 남 전도사에 말했다.

?거창에서 성경학교를 하려는데 남 조사님이 전임 강사로 수고하여 주십시오? 남 전도사는 갑자기 받는 청원이라 당황하였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으려는 때이다. 마음으로 그는 망서려졌다. 그러나 상대가 주 목사다. 신앙의 선배요, 마음으로 존경해 오던 어른이다.

?남 조사님, 목사장립 청원서 들어갔지만 보류시키고 가십시다.?

남 전도사는 주 목사의 간청을 거절 할 수가 없었다. 목사 안수야 다음에 받으면 된다.

?남 조사님, 성경학교 전임 강사이지만 우리 거창읍 교회 전도사로 청빙하는 것이니 꺼려하지 마시오.?

주 목사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말투로 이야기하였다.

?난 성경학교를 단순히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시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옥중에서부터 생각해 온 계획 중의 하나를 실행하려는 것입니다.?

주 목사는 잠시 말을 멈추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남 전도사는 전임강사가 되고 나는 교장이 되어 우리 함께 일을 해 보십시다.?

남 전도사는 완전히 주 목사의 말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도와 힘써 보겠습니다.

남 전도사는 기쁨으로 거창으로 갈 것을 허락하였다.

노회가 끝나고 이어 남 전도사는 거창으로 이사를 하였다.

410. 성경학교가 개학되었다. 50여명의 많은 학생들이 모여왔다.

과목으로는 구약사기, 대선지서, 신약에서 공관복음, 옥중서신, 요한 계시록, 요리문답 등이었다.

요리문답은 주 목사가 맡고, 그 외의 과목은 모두 남 전도사가 강의를 하게 되었다.

1, 3학기를 나누어 수업하기로 하였으며, 교실은 죽전에 있는 건물을 이용하였다.

개학 날, 주 목사가 설교를 하였다.

성경학교는 주간으로, 본격적인 교육이 실시되었다.

2. 전임강사 남영환 전도사

남 영환 전도사는 거창 성경학교 전임 강사의 위치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주일이면 거창읍 교회를 섬겼다.

즐거움이 있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대한 즐거움이었다. 보람을 느꼈다.

남 전도사는 거창으로 참 잘 왔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 시대에 사용하기 위해서 단련시켜 주신 것이라고 느꼈다.

주 목사를 도와, 주 목사와 함께 일하게 됨을 생각하니 기쁨이 치솟았다.

남영환 전도사는 1915210,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실리에서 태어났다. 시골서 자라고, 산나물 밭곡식으로 그의 뼈는 굵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들어가 대판 모리꾸지에 있는 경판 상업학교를 다녔다. 귀국하여 부모를 도와 농사에 손을 대다가 19세 때, 박명순 씨와 결혼을 했다.

신혼의 즐거움도 가시기 전, 그의 마음은 허영으로 들떠 있었다. 세비로 양복이 입고 싶었다. 흰 칼라의 와이셔츠에 넥타이가 메고 싶었다.

시골에 그냥 눌려 있어 세월을 축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술을 마셨다. 방종한 생활을 해봤다.

그러나 신통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허물어지고 자신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침 집에서 논 판 돈을 장롱 속에 감추는 것을 먼 눈으로 보아 두었다.

한날 밤, 논 판 돈 200원을 훔쳐, 일본으로 건너간 영환은 야하다 철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기도 했고, 대판으로 올라가 외칠촌댁에 식객이 되기도 하였다. 외칠촌이 대판 중앙교회 집사로 있었기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입신하였다.

다음 해인 19383월에 관서 학원대학 신학부 예과에 들어가 수학을 하다가, 신사참배 문제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고 만주로 건너가 봉천신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여기서도 일경의 손이 뻗혀 수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서평서 정가돈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끈질긴 추적 때문에 다시 몽고로 갔다. 여기서 해방을 맞았다.

그는 19467월에 서울을 들러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진해로 갔다.

진행에서는 박윤선 목사를 모시고 하기 신학강좌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강좌에 참석하였다가 주남선 목사를 만난 것이다.

남영환 전도사는 그 후, 박형용 박사를 모시러 만주로 가던 도중 병을 얻어 요양을 했다. 건강이 회복 되는 대로 지방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였고, 고려 신학교에 다시 편입을 하여 졸업하였다. 강도사가 되고 목사 안수를 받으려는데 주 목사를 만나 성경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거창으로 오게된 것이다.

3. 비극의 제36회 총회

19503월 어느 날. 대구 제일 교회당에서 제36회 총회가 회집 된다는 소식이 주 목사에게 날아왔다. 19474월부터 신학교 문제로 총회는 시끄러웠다. 조선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 교수를 총회에 고발하였는데, 김 교수의 성경관이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것이었다.

1948422. 서울 새문안 교회당에서 모인 제34회 총회에서 김재준 교수를 1년 간 미국 유학시키기로 학고 전 교수진도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고려 신학교 문제는 총회와 관계가 없으니 노회가 친서를 주지 말라는 결정을 보았다.

520. 신학문제 대책위원회는 서울 창동교회에 모여 장로회 신학교 개교를 결정짓고 이사회를 조직하였다. 이리하여 총회 안에는 신학교 문제로 금이 생겼다.

대구 제일 교회당에서 모이는 제36회 총회는 시끄러울 것이 분명했다. 주남선 목사는 심신이 피로하였다. 교회 목회만도 힘에 벅찬데, 총회 문제로 더욱 머리를 써야 했고 기도해야 했다.

극도로 심장이 약해졌고, 가슴도 아팠다. 기침이 심하게 나고 가래가 끓는다.

그러나 그의 기도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총회를 앞두고 철야 기도를 하였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쇠약한 그의 몸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 했다. 그런 그 앞에 한 장면이 전개되었다.

안개 같은 뿌연 상태에 강둑이 보였다. 거창읍 교회 앞의 강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바짝 마른 강이었다. 그런데 위에서부터 탁류가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었다. 강물은 둑을 삽시간에 넘어 흘러 황토물이 교회당으로 밀려왔다. 물살은 교회당 주춧돌을 때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주춧돌은 굳건했다.

눈을 떴다. 어둠이 교회당 마루에 깔려 있었다. 꿈이었다. 총회일이 염려되었다. 황토물이 밀려오듯 교계에 위험이 올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주춧돌이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낮에 남영환 전도사를 만났다.

주 목사는 지난밤의 꿈을 남 전도사에게 이야기하였다. 남 전도사는

?목사님, 저도 간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신령한 꿈도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머리를 떼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 해 보세요.?

주 목사의 얼굴에 근엄한 표정이 지나갔다.

?나는 거창 앞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니 옆에도 목욕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약신 목사와 심문태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심문태 목사가 밖으로 뛰어 나가지 않겠습니까? 잠을 깨고 일어나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총회 때에 심문태 목사가 우리측에 서지 않을 것 같단 말입니다.?

남영환 전도사의 말을 듣고 있던 주 목사의 눈언저리에 괴로운 감정의 조각들이 싸이고 있었다.

421. 대구 제일 교회당에서 제36회 총회가 최재화 목사 사회로 개회되었다.

개회 벽두부터 회원 자격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경남노회가 5노회로 총대가 올라왔다. 조선 신학교를 지지하는 3노회 총대와 고려 신학측 총대, 그리고 중간 세력의 총대들은 모두 인정 할 수 없다고 주장하므로 문제는 심각해졌다.

결국 난투극이 벌어지고, 무장경관의 출동으로 총회는 비상정회가 되었다.

치욕의 역사를 남기고 정회된 총회는, 돌아서는 총대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주 목사는 걷잡을 수 없는 무거운 마음으로 거창에 왔다. 남영환 전도사를 만나 주 목사는 씁쓸한 말을 던졌다.

?남 조사님 꿈 그대로야, 총회가 수라장이 되었지! 심문태 목사는 중간 세력에 가담되었어!?

주 목사의 얼굴에 어두운 구름이 지나갔다.

거창 성경학교는 13학기로 정하여 철저한 교육을 실시하려고 계획을 세워 진행했지만 한 학기로 문을 닫고 말았다. 6?25동란 때문이었다. 동란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거창에도 신비로운 역사를 남겨 놓았다. 거창 성경학교 학생 중에 순교자 한 사람을 내었는 바, 그가 배추달 집사였다. 한 사람의 순교자를 내기 위하여 거창 성경학교는 창설되었는지 모른다.

주 목사는 애초 요리문답을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너무 분주한 목회생활과 당회 일 때문에 한 시강의 강의도 하지 못하였다.

다만 개학식날 설교와 방학식날 설교를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학교는 순교자의 아름다운 혼 심었고, 거창지방의 교회사에 깊은 한 면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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