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지 15. 예배를 생명으로

2016.01.03 23:34

김반석 조회 수:

15. 예배를 생명으로

  선지자선교회

종교관

 

사람들은 그 기질이나 관점에 따라서 종교를 다르게 해석한다. 그 종교관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생각하는 자.

2. 옳은 생활의 영감으로 생각하는 자.

3. 이성의 최대 활동으로 생각하고.

4. 예배로 생각한다.

 

신약 성경에서 예배로 보는 종교관이 히브리서라고 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그로부터 교통하는 가운데서 그 종교심의 만족을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지상의 종교임을 증명하려 할 때 예배 문제를 다룬 것이다. 종교의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길을 열어주며 그로부터 교통할 방침을 가르쳐 주는 데 있다.

 

구약(유대교)에 있어 예배(제사)가 모든 짐승을 잡아 그 피로서 죄 많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예배 방식에 대해 신약(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번 드린 제물, 대속의 피로 인해 우리가 영구적 효력을 가지고 직접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된 것이다. 이는 모든 종교의 예배 방식과 대조할 때 우리 기독교가 온전한 예배를 드린다는 증명이 되었고 또한 모든 종교의 목적이 우리 기독교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최대 최고의 종교가 된 것이다.

 

축복은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그에게 있어 종교는 예배다. 사람의 최고 특권은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목사에게 있어서는 그의 생명은 이 예배에 있었던 것이다. 고로 예배를 빼앗기는 것은 생명을 빼앗기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는 축복은 전부가 이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악한 마귀는 이 예배를 빼앗고 우리의 신앙생명을 빼앗은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예배는 절대적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 예배는 빼앗길 수가 없었다. 고로 최 목사님은 일제 때 이 예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투쟁한 결과 한 번도 예배를 꺾이지 않고 완전 승리한 것이다.

 

625사변 당시 서울서 공산 괴뢰군에게도 예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싸워 승리한 것이다. 그가 창설 인도한 재건교회는 우상에게 빼앗긴 이 예배를 다시 찾아 하나님께 바치자는 것이다.

 

에스라, 느헤미야 등이 파사의 고레스왕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바벨론 70년 포로에서 석방됨에 조국재건에 앞서 성전을 재건하고 황폐한 제단을 다시 쌓고 잃어버린 여호와의 경배를 찾음과 같이 우리도 조국 해방과 아울러 조국 재건에 먼저 오천만 민족이 다 이 예배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 있어 실제 예배생활은 이러하였다.

 

1. 새벽예배=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잠깐 감사기도가 있은 후 바로 교회로 간다. 교회 새벽예배를 인도한다.(대개 여름은 4, 겨울은 4시 반 시작) 이 예배 때 교인 각 가정을 호명기도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 예배 때 죄를 참회하는 통곡의 눈물이 마루를 적시고 국가 민족의 사죄와 공의를 부르짖는 소리에 먼동이 튼다. 많은 부녀자들이 철야기도했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일터에 갔다. 한국교회가 이 새벽예배로 생명이 유지되고 한국의 아침은 밝아졌다.

 

교회예배 마치면 집에 돌아와서 가족과 더불어 가정 새벽예배를 드린다. 대개 성경 한 장씩 윤독한다. 아침은 금식하고 오전예배(11)시까지 기도시간에 들어간다.

 

2. 오전예배=평일에는 이 예배시간에 은혜 받으려고 최 목사집에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었다. 11시가 되면 사도신경을 봉송하고 찬송을 하고 성경요절을 주며 계속 설교하고 기도하였다. 이 기도는 전국 교회와 국가 민족을 위해 하였다.

 

참석한 성도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었다. 지금 재건교회 성도들 중에는 주일은 성일이니 교회 나가 엄수하나, 평일에는 각자 가정에서 바쁘다 핑계하고 일만 한다. 핑계하고 가정예배를 외면하지 아니 하는가 반성해야 한다.

 

3. 오후예배=최 목사는 12시 오전 예배 마치고 식사(이 식사시간에는 언제나 3, 4명 많으면 5, 6명은 동참하게 된다)를 한 시간 정도로 마치고 모든 교회 문제를 상담 처리하고 개인의 신앙상담 등 맡아 의논하며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에 곧 오후 3시 예배를 시작한다.

혹 신앙 동지가 오면 3시 예배를 인도케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친히 자신이 인도한다. 언제나 그의 예배시간은 늘 부흥회와 다름없이 많은 성도들이 모여 들었다. 아무리 바쁜 손님이라도 이 예배 시간에는 예배 안 드리고는 보내지 않았다. 그만큼 예배를 존중시하였다.

 

하루 네 번 예배 시간 철저히 지켜

 

이 정신 그대로 재건교회는 주일에 오후 예배 시간이 있다. 현대 교회가 도시인의 시간편리를 보아 6, 91부 예배, 112부 예배, 오후 1시에 3부 예배하는 그런 따위의 형식이 아니라 일일 4차 예배드림을 말함이다.

전자는 주일 어느 시간이나 한 번 출석하면 되거니와 우리는 각자 네 번 예배드림을 말한다. 그 중에도 이 오후 예배가 늘 말썽이다.

 

처음 재건교회 출석하는 자 중에는 오전예배 드리고 계속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예배드립니다 할 때 의구심을 가지거나 지금 같이 바쁜 시대 예배 한 번이면 족하지 계속 무슨 예배냐고 한다.

 

재건교회 가정에서 자란 청년은 습관적으로 드릴 뿐 즐겁고 기쁜 맘으로 드리지 않는다. 지식이 있는 청년학생들에게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또는 재건교회를 염려하는 층에서도 재건발전에 저해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교회가 오전 예배 드린 후 대부분 나가버린다.(안 그런 교회도 있다) 혹 젊은층이 남아 있다면 부모님의 체면, 목사님의 안면을 위함이 많다.

 

어떤 이는 오전예배 폐회 무렵에 와 그대로 가기 민망해 오후예배 참석하고 가는 자도 있다.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시대 과연 오후 예배가 시간낭비인가. 우리가 외면해도 되고 소홀해도 되는가. 또 계명이 아니니 맘대로 해도 되는가.

 

최 목사는 성경대로 생활하였고 또 우리를 그렇게 가르쳤다. 본래 유대인은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즉 오전 9, 12, 오후 3시다. 시편 5517절에는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하였다.

 

다니엘 610절에도 하루 세 번 기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신약 사도행전 31절에도 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라고 하였다. 9시는 오후 3시를 말한다.

 

그러면 4번은 지나치지 않은가. 성경에 있는 대로만 하면 되지 지나치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경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119164절에 주의 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하였다.

 

3번 식사 시간에 찬송과 기도, 4번 예배시 찬송과 기도 이렇게 일곱 번이다.

 

우리 재건교회 부산노회 측은 이 성경 원리대로 실천한다. 주일에도 교회에서 하루 네 번 예배드림으로 오전 예배, 오후 예배가 계속되거니와 평일에도 가정이나 직장에서까지 심지어 여행 중 배 안에서 열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까지 그 어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가민족과 재건교회를 위해 예배드리는 그 경건하고 열심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4. 밤 예배=최 목사에 있어서 밤 예배는 대부분 가족들의 예배요, 한 날을 지켜 주신 감사의 예배다. 손자손녀를 위해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을 암송하고 그 잠자리 옆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바로 그의 신앙생활의 기본 자세인 것이다.

 

성도 위해 찰떡을 굽는 데도

 

그는 우리에게 예배의 존중성과 절대성을 교훈해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주고 있다.

일제박해 시 마산에 거주하는 호주 미순회 여선교사 태매시 선생 댁에서 시간예배를 드릴 때다. 김영숙, 염애나 조사(현 여목사) 등이 마산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6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나와 있었고 최덕지 목사도 도경에서 12일 금식기도 후 출감되어 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와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3시예배 시간에 태 선생댁에 최덕지, 김영숙 두 선생이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후 두 선생은 얼마나 울었던지 눈시울이 빨개진 채 찾아오고 있었다.

 

사유인 즉 당시 의신학교 기숙사 사람들이 이 옥중에 있는 종들을 주기 위해 찰떡을 굽는다고 예배시간을 안 지켜 최 목사가 그 떡 철판을 뒤집어 엎었는데 떡은 재로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

 

이 떡은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종들이 먹을 것인데 예배시간 안 지키고 떡판에 떡부터 굽는다니 될 말이냐. 예배시간 어겨가며 굽는 떡 먹고는 싸움에 실패한다하고 최덕지 선생이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김영숙과 최덕지는 울며 자복기도 하느라고 늦게 오신 것이다.

 

또한 최 목사는 어떤 가정에 가셔서 예배 드릴 때 대접하기 위하여 예배시간 불참하거나 혹은 예배드리다 다 안 마치고 음식 준비한 것은 그 대접 받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함은 그것이 바로 불경이었다. 성도를 죄 짓게 하고 그 음식 먹을 수 없다고 교훈해 주었다.

 

그런고로 최 목사댁에서 예배 드릴 때 간혹 부엌에서 밥이 탔을 때가 있고 음식을 망칠 때가 있어도 그 예배만은 경건하게 마쳤다.

 

고 최덕지 목사가 남긴 위대한 예배의 유산은 고이 간직되어야 한다. 재건교회가 이 한국교회에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위대한 신학이 아니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두드러진 사업이 아니다.

 

오직 하루에 네 번 새벽, 오전, 오후, 밤 정한 시간에 경건하게, 성실하게 몸소 본을 보여준 예배정신이다. 현대의 교회가 생명을 잃어 감은 이 예배를 외면하고자 함에 있다.

 

새벽에는 잠자기 위해 귀찮아하고 오전에는 바쁘다고 포기하고 오후 예배는 남이 안 한다고 외면하고 밤 예배는 피로해서 안식을 찾는다면 과연 신앙생활을 바로 하겠는가.

 

재건 성도들은 뜻을 굳게 하고 최 목사가 이끌어 준 예배의 유산과 축복을 자랑하고 고이 간직하여 우리 후손 자손 만대에 그대로 전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