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지 17. 참된 애국심

2016.01.03 23:35

김반석 조회 수:

17. 참된 애국심

  선지자선교회

애국심의 근원

 

최덕지 목사의 애국심은 실로 강한 것이었다. 선지자적 애국심이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민족의 구원이 애국심의 중심 사상이었다. 최 목사의 국가관은 시편 1271절에 나타난 대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한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축복하여야 그 나라가 형통한다고 증거했다.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함과 같이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정치가의 수완, 외교가의 활동, 군대의 강함에 있는 것보다 그 국민의 신앙과 도덕적 능력과 정신에 있다고 했다.그 국민 도덕이 고상하고 신앙과 진리를 사랑하며 성별된 백성 공의가 실천되는 진실한 나라가 될 때 그 나라가 번영하고 부강하고 행복하리라고 믿었다. 그의 애국심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경적 예수님의 애국심을 본받음이고, 둘째 외국의 구제품을 거절함이요, 셋째 국가 안 보는 기도로서 지켜진다는 신념이다.

 

성경적 애국심

 

예수께서 제자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태 105-6)

여기 예수님께서도 세계 인류 구원에 앞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한 애국심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 2337)

이는 그 나라를 구원하려는 애국심의 간절한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모세의 기도를 보면,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쭈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우상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1-32)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를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아론으로 더불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범죄한 자기 동족을 향한 애국심에서 자기 자신 하나님께 버림당할지라도 그들의 사죄를 위한 애절한 기도이다. 그 누가 모세의 이 기도에 접할 때 그의 그 위대한 애국심을 의심할 수 있으리오.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애국자이니 신학에서도 바울의 심정이 또한 그러하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라.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로마 91-3)

 

이는 바울이 유대인을 향한 애국심을 보인 것이다. 유대인은 선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들의 구원을 위한 바울의 태도는 노여움에서가 아니라 슬픔에서 시작한다. 분노와 저주와 추방이 아니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애절한 슬픔이다.

 

그는 자기 동족을 그리스도만 믿게 할 수 있다면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던질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죄는 미워해도 죄인을 사랑하는 입장이다. 여기서 모세의 기도와 마찬가지임을 보게 된다. 바울은 그의 생애에 있어 아무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자기 동족을 구원하는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감수하려는 심정이다. 여기 바울은 죄인을 구원코자 하면 죄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최 목사의 애국심은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서, 모세에게서, 바울에게서 배운 그대로 이 백성의 죄를 회개케 하여 성별된 백성, 심령과 생활이 재건된 정의의 나라를 이룩하고자 함이 그의 애국정신이다.

 

유다 나라에는 거짓 애국자가 있었고 참애국자가 있었다. 이 거짓 애국자는 또한 거짓 선지자(예언자)들이고 참애국자는 또한 참선지자들이다.

이 진위의 분별은 일반 백성이 분별하기 힘든 일이다. 거짓 선지자(거짓 애국자) 이는 참선지자 즉 하나님의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만 알 수 있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당시 애국자들이다. 나라의 이익을 주장하고 국위의 선양을 부르짖고 국가의 부강을 도모하려 함을 겉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권력자에 아부하고 정치가와 결탁하고 세력을 잡고 백성의 칭송을 받고자 한다. 이런 자는 종교와 신앙도 국가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이용하고자 한다. 이런 고로 그들은 정의나 공도에 있어 여호와 하나님보다 일시적 이익이 앞섰다.

 

거짓 선지자와 참선지자

 

여기 반해 참선지도 물론 나라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라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앞세웠다. 국왕이나 정부 용인이나 정치가나 나라에 잘못이 있을 때 그 죄를 책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 이익이나 명망이 안중에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영광을 늘 먼저 높이기에 열심을 다한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가 38)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는 용기 있는 결단은 거짓 선지자는 못하는 것이다. 백성의 반대가 무서웠거나 나라를 사랑하는 인정이 그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가 이 인정을 초월해 대담하게 그 죄와 허물을 책하고 드러낼 수 있었다. 구약성경에는 참선지자 대 거짓선지자의 예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열왕기상 22장에는 참선지자 미가야와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를 볼 수 있고 에레미야 28장에는 참선지자 에레미야 대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나타나고 아모스 7장에는 아모스 대 아마샤를 읽을 수 있다. 그 대조되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참선지자 미가야가 원하는 바는 다른 나라를 공략함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개혁에 있었다. 라못의 왕을 정복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의 회개를 외쳤다. 거짓 선지자는 나라의 팽창을 원했지만 참선지자는 백성의 개심을 원했다.

거짓 선지자는 국위를 밖으로 떨치기를 원했으나 참선지자는 안으로 거룩되기를 바랐다. 거짓과 참은 여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국위냐, 진실이냐, 부냐, 깨끗함이냐는 그 원함에 따라 진위가 나타난다.

 

나라의 부강에 안목을 두는 자보다 나라의 신성에 뜻을 두는 자, 그가 참선지자다.

같은 일을 아모스 대 아마샤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과를 경계하여 너희가 회개치 않으면 그 벌로서 이삭의 잔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다.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아모스 79)

여기에 대해 아마샤는 여로보암 왕에게 불경된 말로 고하기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아모스 710)라고 했다. 아모스를 배반자요, 국적이라고 모함했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거짓 애국자)의 눈에 비친 아모스는 백성을 문란하게 하고 왕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였다. 참선지자(참애국자) 아모스의 눈으로 볼 때 아마샤야 말로 역신국적이요, 하나님의 뜻과 그 의를 따르지 아니한 자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을 두려워했다. 그 당시 거짓 선지자(거짓 애국자)는 무력을 상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나라를 유지하고자 한 자들이다.

 

고 최덕지 목사는 당시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본처를 버린 죄악을 책망했고 성일을 범하게 한 것, 국기배례 강요 등 모든 죄악을 직언으로 책망하였다. 그의 우상 파괴나 기도나 전도나 이 모든 것이 민족의 죄악을 회개시키고 구원코자 한 애국심의 발로였다.

 

더욱이 무력이나 미국에 의지하여 나라를 세우고자 함에 만유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나라를 세워야 함을 주장하였다.

애국심에는 넓은 애국심과 좁은 애국심이 있다. 자국의 이익만을 위하고 타국을 희생케 하려는 것은 다 편협한 애국심이다.

자기 나라도 사랑하고 타국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넓은 애국심이다. 또한 애국심은 깊고 높은 애국심과 낮은 애국심이 있다.

 

병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국민의 외부적인 부와 번영만 바라는 애국심은 얕은 애국심이다. 그 보다 그 국민의 정의와 진실과 내부적 성화는 깊고 높은 애국심이다.

또 강한 애국심과 약한 애국심이 있다. 군대나 병기만을 의지하는 애국심은 약한 애국심이요, 만군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과 용기는 강한 애국심이다. 누가 최 목사의 애국심을 따를 수 있으리오.

 

그가 순국령에 묵도하지 않은 것으로, 국기배례하지 아니했다고 비국민이요, 사이비 종교라고 하는가. 이런 것으로 애국심을 판가름 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얕은 애국심이요, 우주의 주재 복의 근원 힘의 원천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죄에서 멀리하여 공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신앙의 국민, 거룩한 국민이 된다면 이 국가는 만세반석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영원토록 번영과 형통을 누릴 것이다.

최 목사는 이렇게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가르쳤다. 재건교회 성도들은 이 애국심을 이어받아 이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 구원되고 보존되고 번영되기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외국 구제품을 거절하고

 

최 목사는 외국의 선교비나 구제품을 일체 거절하였는데 이는 그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하겠다. 한국교회에 있어서 해방된 후 외국 달러의 도움 없이 운영한 교회가 있는가. 세워진 신학교가 있는가. 모든 학교기관이나 병원이 외국의 원조 없이 세워지거나 운영되어 졌는가.

그리고 자선사업, 고아원이나 양로원, 모자원, 이 모든 것이 외국이 원조하는 금품에 의해서 운영되어지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선교사의 신앙과 인격을 존경하기 보다는 물질에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가. 물질에 의한 불미한 사건들이 그 얼마나 많이 전해지고 있는가.

그러므로 최 목사는 외국 선교사들을 존경하나 그 구제나 원조는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 그들에게서 복음이라는 최대 최고의 것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복음의 은인이다. 복음의 부채도 큰 것인데 물질적 부채까지 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신앙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나라의 재건은 외국의 군사나 경제적 원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치적 독립은 경제적 독립이 선행하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경제의 자립에는 민족의 자주정신이 요구되며 따라서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선교 단체에서 원조코자 했으나 거절했으며 이 정신에서 자라온 재건교회는 전국 어느 교회에서도 625동란 후 그 많은 구제품도 다 거절하고 신앙의 독립심과 우리의 자주 정신을 나타내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을지라도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36)한 대로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뛰어서서 걸으며 성전에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여 하나님을 찬미한 것처럼, 이 민족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 것을 모르는 앉은뱅이처럼 구걸하는 가련한 내 동포가 외국의 구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재건되어 자주자립자행하는 축복을 받기 원하는 것이다.

 

진리의 토대 위에 서서 이 강산을 믿음으로 개발하고 한 손에 진리 싣고 한 손에 구제품 실어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빚을 갚고 물질의 빚도 다 갚는 축복받은 백성이 되자는 것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 외국의 구제를 거절한 정신이요, 애국심이다.

 

국가 안보는 기도에 의해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신념이 그의 애국심이다. 최 목사는 국가의 위기나 환란에 대한 구원은 기도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믿었다. 그리하여 매일 일일 4차 때를 정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였다.

 

칼빈이 인간성은 부패하였으므로 규칙, 제제가 없이는 도무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함과 같다. 따라서 옛 성도들도 때를 정해 놓고 기도한 줄 안다. 기도로 나라 구한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사무엘의 기도와 승리(삼상 77-12)이다. 사무엘이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 미스바에 모여 지난 날의 우상 섬긴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등 불레셋이 치러왔으나 사무엘이 전심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우뢰를 발하여 이 불레셋을 진멸하였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에벤에셀 즉 도우심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둘째는 여호사밧의 기도와 승리(역대하 201-4, 18-23)이다. 여호사밧왕 때 모압, 암몬, 세일 삼대 연합군이 치러왔으나 여호사밧은 믿음으로 찬송하며 진군하니 여호와께서 암몬과 모압이 세일을 치고 세일이 멸한 후 암몬과 모압이 피차 쳐 살육당하게 하였다.

 

셋째 히스기야왕의 기도와 대승리(열왕기하 191-19, 35-37)이다. 앗수르 왕의 참모장 랍사게가 와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항복을 청할 때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이사야가 전해 주는 말을 믿고 자신이 성전에서 기도하였더니 하룻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에서 치시니 십팔만 오천이 다 송장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기도의 위력은 크시다. 최 목사는 국가 안보를 미국의 군대가 지켜 준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군이 현대병기로 지켜준다고 해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물론 이 모든 것이 세력균형상 필요하다), 우리가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그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면 위기에서 구원하심을 분명히 보아 왔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의지하는 자를 구하고 찾는 자를 도와주신다.

 

625당시 많은 유엔군이 죽었다. 우리나라는 생명에까지 빚을 지게 되었으니 언제든지 복음의 빚, 생명의 빚을 한 손에 구제품 들고 한 손에 복음 들어 세계만방에 전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고 최 목사는 거듭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