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 유부장 (15)

1. 유부장

  선지자선교회

1940513, 평양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부장 이었던 유()부장은 이인재를 평양신학교 기숙사에서 체포하였다. 그리고 이인재의 손에 포승을 지우고 종로경찰서로 연행해갔다. 당시 고등계 형사하면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의 눈에 조선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조금만 혐의가 있어도 무차별적인 구타와 고문이 가해졌다. 그래서 고등계 형사가 나타났다하면 사람들은 고양이 앞에 쥐 모양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죄를 짓지 않아도 겁을 낼 정도였다.

 

고등계 형사가 그 정도인데 형사부장이야 그 세도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에게는 겁나는 사람이 없었다. 유부장이 나타나면 유치장 감방 안의 모든 죄수들이 긴장을 하였다. 그러한 유부장이 수시로 이인재를 불러내어 고문도 가하고 질문도 했다.

 

514, 오후 3시쯤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던 이인재를 유부장이 불러냈다. 그리고 3층 고등계 형사실로 데려갔다. 이인재가 형사실로 들어서자 유부장은 느닷없이 뺨을 갈겼다.

이 미친 놈!

눈앞에 불길이 튀었다.

 

구둣발로 아래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형사실에서 흔히 있는 취조의 시작이었다.

취조가 끝나자 유부장은 이인재를 지하 유치장 3호 감방에 구금(拘禁)시켰다.

2. 공포의 2시간

 

8시가 되었다.

간수가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취침!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도 자리에 누워야 하고 또 잠을 자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이인재는 자리에 누웠다.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구니모도! 구니모도 나오라!

 

감방 문이 열렸다.

고등계 유부장이었다.

이인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부장을 따라 나갔다. 희미한 불빛아래에서 유부장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유부장의 뒤를 따라가는 이인재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때 주님의 속삼임이 이인재의 귀에 들려왔다.

오늘밤에 너를 고문하려고 한다.

이인재는 당황하여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막아 주소서! 나는 약하여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님, 꼭 막아 주소서!

이인재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었다. 간신히 계단을 올라갔다.

유부장이 3층 취조실로 들어갔다. 이인재도 따라 들어갔다. 벽에 걸린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부장이 의자에 앉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 오지 않다니...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에 오기로 한 사람은 다름아닌 평양 종로경찰서에서 제일 매질을 잘하는 형사였다. 바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큰 매를 쳐야할 경우엔 이 사람이 항상 적임자였다.

 

종로경찰서에는 사상범(思想犯)을 잡아들이는데 활동하는 고등계 형사가 40, 일반 잡범(雜犯)을 잡는데 뛰는 형사가 40, 도합 80명의 형사가 있었다.

 

낮에는 밖에서 일을 하고 저녁이면 모두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날 저녁에는 별로 형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유부장은 매 전문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가 지나가는데도 그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인재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마음이 여유로와진 것이다.

 

부장님! 부장님도 예수님을 믿으세요.

뭐요?

유부장은 노한 얼굴로 이인재를 바라보았다.

 

매를 맞기 위해 온 사람이 형사부장에게 전도를 하다니 유부장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부장님도 예수님을 믿으시라구요. 예수님을 믿으면 살맛이 납니다.

 

닥쳐! 나는 예수 안 믿어!

 

유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인재 전도사는 계속 전도를 하였다.

유부장에게는 초조하고 무료한 시간이었다. 매 때리는 형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오지 않으니 몹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유부장에게 이인재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이인재는 유부장이 밉지가 않았다. 그저 측은한 생각만 들었다.

11시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기다리는 형사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말없이 기다리는 유부장의 모습을 보고 이인재는 그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 생겼다.

 

자기의 직무에 충성하고 있는 사람, 일본의 국록(國祿)을 먹고사는 형사부장으로서 일본을 위하여 충성하니 장한 일이로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님께 충성하려고 하니 충성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대는 썩은 일에 충성하니 허무한 충성이요, 나는 생명 있는 충성이니 소망이 있도다. 충성은 충성이로되 충성의 질이 다르니 그것이 문제로다.

 

이인재는 유부장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1110분이되자 유부장은 기다리다 지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유부장은 이인재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감방 문을 열고 넣어주면서 말하였다.

 

오늘 재수 좋았어!

 

이인재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막아 주신 것이었다. 주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試驗)을 허락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3. 두려워 하는 유부장

 

수시로 이인재를 불러내어 취조를 하며 고문을 하던 유부장이 거의 한 달 가까이 보이지 않았다.

 

이인재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궁금하였다. 그가 충성스럽게 고등계 형사부장직을 감당하였기 때문에 혹시 영전이 되어 다른 곳으로 전근되어 가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한 유부장이 약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나타났다. 얼굴이 조금은 핼쑥한 듯하였다.

이 선생, 안녕하셨슈?

 

유부장이 이인재 전도사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 유부장님, 참 오래간만이네요. 그동안 어디 가셨습니까? 보이지 않으시던데요

내가 보이지 않으니 좋았겠지요?

 

.....

그야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유부장이 아주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 예수쟁이 건드렸다가 벌 받아 죽을 뻔 했수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병으로 대단히 고생한 모양이었다.

유부장 자신이 직접 매질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질 잘하는 형사들을 시켜서 종종 매질을 지시했던 것이다. 특히 옥에 갇혀 있는 기독신자들을 자주 불어내어 매질을 가하였다.

 

얼마 전에도 주기철 목사가 발바닥에 매를 맞고 발등이 퉁퉁 부어 올라 걷지 못한 일이 있었다. 결국 방계성 장로에게 업혀서 감방으로 돌아갔다.

 

유부장은 자신이 혹독한 질병으로 고생한 것이 기독신자를 때렸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유부장님 어디가 아프셨습니까?

이인재는 유부장에게 물었다.

 

말도 마슈! 혼이 났어요.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 날 이후 유부장은 기독신자들을 고문하는 일엔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전처럼 불러내지도 않았고 때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