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와 서정환 전도사

  선지자선교회

- 대구중앙교회사, 3장 광복후 교회의 재건(1946~1949)에서 인용

 

 

잔악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박해 앞에서도 굴하지 아니하다 옥중에서 고생한, 소위 옥중 성도들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코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서정환 목사 때문이다.

 

 

서정환은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보상동에서 태어았다. 그의 나이 15세까지는 서당 에서 한문을 배우고, 16세에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세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27세까지는 고향에서 대서업자로 일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의 직업이 전환된 것은 선교사 감부열(Gampbell)을 만남으로 인해서였다.

 

 

청년 서정환은 감부열 선교사를 만남으로 장로교 신자가 되었고 그 후 그의 인생관 이 바뀌어 고향땅 고산진교회의 집사와 영수로 약 3년간 봉사를 하였다. 1932년부터 강계읍에 이거하여 읍내의 남교회의 집사로 봉사하는 한편 선교사 감부열의 서기로 봉 사하였다. 얼마후 남교회의 장로가 되었는데 이 때는 바야흐로 한국의 교회가 신사참 배의 열풍에 휘말리고 있던 때였다. 장로 서정환은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을 수 없어서 19389월부터 강계군 전천면 전천교회로 옮겨서 전도사로 봉사하기 시작한 다. 이렇게 교회를 옮긴 것은 신사참배를 온몸으로 도전하며 그 거센 태풍을 막아 보 자는 의도에서였다. 전도사 서정환은 신사참배에 대해서 매우 단호했다. 그래서 그는 교인들에게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이며 십계명의 제 1계명을 범하는 것이고, 여호와에 대한 영적 간음이라고 가르쳐 오면서 동시에 감부열 선교사의 집에서 11명의 신앙동지 들과 함께 성경 연구 모임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참뜻을 참아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신앙으로 무장시켜 나갔다.

 

 

그러나 그 시절에 일본 순사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고 1939년에 성경 연구 모임 중 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서정환 전도사는 간악한 일제 형사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받으 면서 온갖 회유화 능욕을 감당해야만 하였다. "신사참배를 하겠다"는 한마디만 하면 석방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정환 전도사는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로 결단하였다. 거의 7년에 걸친 일제의 회유와 협막에도 신앙의 절개를 꾿꾿하게 지켜오던 옥중성도들과 함께 1945518일에 재판을 받았다. 이 재판이란 곧 사형으로 이어지는 수순에 불과한 것으로써 당시의 용어로는 예심종결이라 하였다. 예심종결이란 이제 더이상 회유와 협박을 할 가치가 없어 죽여버리겠다는 신호탄이었 다. 서 전도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21명의 동지들과 함께 예심 종결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고 있었다. 당시의 예심종결에 나타난 죄목은 다음과 같다.

 

 

(중략)

 

 

일제는 이와 같은 얼토당토한 죄목으로 7년 동안 감옥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켜오던 서정환 전도사를 학살하려 하였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를 방관하지 않으시고 8.15 해방이란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다. 해방이 아니었다면 818일에 있을 일제의 학살 음모에 의해 모든 옥중성도들과 함께 서정환 전도사도 학살되었을 것이다. 그리 고 본래부터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던 그는 옥중에서 끝마칠 가능성이 아주 농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고 해방을 보게 하였다.

 

 

해방을 맞이하여 서정환 전도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토록 간구하고 기도하던 신앙의 자유를 얻어 지옥과도 같았던 옥고를 끝마치고 출옥하였다. 출옥시의 그의 감 격과 기분은 과연 어떠했을까? 감히 생각만 해 보아도 가슴 떨리지 않을 수 없다. 전 도사의 신분으로서 7년간의 옥고는 그 어떤 신학수업보다도 소중하기에 서정환 전도사 가 소속했던 노회에서 이 7년의 형기를 신학훈련으로 인정받아 출옥 후 곧 목사 안수 를 받게 되었다. 목사가 된 서정환은 1947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자신의 신앙의 조 력자인 감부열 선교사를 만났다. 감부열 선교사는 옥중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서정 환 목사를 만나자 크게 기뻐하면서 서 목사에게 작은 교회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이 교회는 청송 복동교회였다. 선교사 감부열은 서정환 목사와의 재회를 훗날 감격의 글 로써 남겨 두었다. 감부열은 출옥 후 만났던 서 목사와의 만남을 대화체로 "The Christ of the Korean Heart"라는 책에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그 내용들을 여기에 싣고자 한다.

 

 

"한 십여 차례 뺨을 맞고 나면 아무런 감각이 없어져서 아픈 줄을 모르게 됩니다. 물 론 그들은 여러 번 물을 먹였지요. 나는 그럴 때마다 십자가에서 당하신 주님의 고생 을 생각하고 견디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은 물 먹이는 법은 거짓말하는 죄수를 참말하게 한다고 그럽디다. 그 래 제가 '내가 참말을 하는 줄은 당신들이 아는 것 아니요?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 은 날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것 아닙니까?' 하자 그 들은 그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유월에는 저를 의주로 끌고 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사십일 동안 매를 맞았지요. 그럴 때 나는 주님의 사십일 금식한 일을 기억했습니다."

 

 

"저들은 많이 자란 내 머리털과 수염을 잡아 흔들었습니다. 여러 번 매를 맞고 나서 목이 아플때 나는 물을 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나는 십자가 위에 서 갈하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당하신 고갈은 나의 죄를 위한 것이었 다고 느끼게 되어 눈물이 흘러서 내 입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 후에 나는 곧 시원함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내 문제의 해결은 신사앞에 나가서 머리 한 번 숙이는데 있다고 하 면서 '왜 그렇게 너는 어리석느냐? 한 번 머리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 다. 곧 내 머리속에는 '만일 나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하는 마귀의 말이 생각나고, 뒤이어 주님의 대답하신 말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하신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 후부터 그들은 더 권유할 수 없었지 요."

 

 

"얼음장 같이 얼어 드는 시멘트 바닥에서 자는 일은 가장 참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 습니다. 그들이 내어 준 모포 한 장에는 이 벼룩이 욱실거렸지요. 빈대가 많아서 잘 수는 없고 죽이려니 어둔 밤에 뵈지는 않고..."

 

 

"맨 발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위에 줄을 지어 서서 그들이 강조하는 목욕 차례를 기다 리는 일도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이른 아침 찬 바람이 불어오면 전신이 얼음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았지요. 나를 세상에 두셔서 쓰실 일이 계셨던 것 같았어요."

 

 

"이와 빈대에 물려서 내 몸은 ''이 걸렸던 악창과 같이 거뭇거뭇했습니다. 나는 ''과 같은 기와 조각으로 긇고 싶었던 일이 종종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일은 '바울'사도가 빌립보서에 말씀하신 것 같이 복음을 전하는데 진보 가 되었습니다. 나는 일본 사람들에게 여러번 심문을 받았는데, 그들은 일본말 성경책 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금하는 말씀이 어디 있냐고 힐문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지요. 그들은 내 말에 이기지 못할 때마다 분을 내며 나를 때리라고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다수는 내가 옳다고 알고 있었지요. 그래도 그걸 시인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일본 고간들에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은혜이었지요. 일반 사회에서라면 도저희 그런 이들에게 증거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많이 들려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마음속에서 자라도록 언제나 위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떤 날 밤에는 일본 순사 하나가 내 감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아주 신기한 일이었습 니다. 보통은 언제나 내가 끌려 나갔던 것이었지요. 나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 가고 수상해 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늘 조심해 보아왔소. 당신처럼 예수 믿는 신앙이 큰 것을 나도 처음 보았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싶소.'"

 

 

"잘 할 수도 없는 일본말로 그에게 증거할 수 있던 일은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었습니 다. 나는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하여 죽어셨으며, 그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시며, 영생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증거했습니다. 그 날부터 제가 받는 식사는 퍽 나아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소화 불량증이 있어서 그것을 다 먹지 못했습니다. 나는 감방에 있는 동 료들과 나누어 먹었지요. 동료들이 석방되어 나갈 때면 그들은 나의 손목을 잡고 눈물 로 감사를 표하며, 나가면 자기들도 예수 교인이 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적어도 80명은 그런 약속을 하고 나갔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나온 후로 그들 여럿을 만나서 자기들의 약속을 지켰는가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들은 확언했습니다."

 

 

"나는 끌려 가는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 기들도 믿겠노라고 했지요. 내 생각에 한 200명은 틀림없이 믿게 된 줄로 압니다."

 

 

"감옥안에는 다른 교인들도 나와 같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주님이 하신 것과 같이 40일을 금식했습니다. 죽게 된 줄 알고 간수들은 그들을 놓아 주었는데, 후에 들으니 그들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약해서 감옥을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신의주에 있던 사랑하는 교유들이 찾아 와서 어떤 집으로 옮겨 갔습니다. 나는 거기서 무한한 보양을 받으며 천국에 온 감을 느껴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고 싶었습니다. 강계로! 내가 체포되고 심문을 받고 일본말 성경을 읽으면 서 일본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던 강계로! 가기를 열망했습니다. 나는 일본 경관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가고하 하였던 때문입니다."

 

 

"내가 강계로 갔을 때에 나는 일본 경관 200명이 아직 그 곳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 다. 그들은 모두 경찰서에 모여서 귀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강계 사람들에게 당할 복수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이 체포되었던 고 목사님과 같이 경찰서로 찾아 갔습니다. 우리 는 허락을 얻어서 그들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나를 때리고 심문하던 얼 굴도 보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조대신이 기독교의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늘 말했지요? 천조대신은 모든 신들보다 힘이 있어서 일본에게 늘 승리를 가져다 준다고요? 이제 당신들은 그것 이 틀렸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 때에 당신들의 거짓을 증거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들은 우리를 때렸지요? 당신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했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을 저주하려고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무서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사랑하신다는 소식을 전하려 왔습니 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한 일을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용서합니다. 또한 당신들이 참 마음으로 돌이키고 뉘우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용서하여 주실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압 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당신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 다. 당신들이 그를 믿기만 하면 주님은 죄를 용서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 을 허락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십시요."

 

 

"여러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서며 우리들의 손을 힘있게 붙잡았습니다."

 

 

"나는 '바울'사도가 '빌립보'감옥에서 간수들을 대하던 일들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보배로운 말씀을 반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로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 원을 얻으리라."

 

 

"그렇게 마음이 걍팍하던 일본 경관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고국에 돌아가면 꼭 예수 교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옥중 생활 7년이 말과 글로는 간단하지만, 당시의 형무소의 상황을 생각하고, 당시의 일제 순사를 생각 한다면 분명히 그 생활이란 고난의 십자가였음이 분명하다. 당시에 이 민족의 십자가 앞에서 그는 자기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골고다 언덕의 주님과 빌립보 감옥의 바울을 친구 삼아 긴 형기를 살아왔던 것이다. 서정환 목사의 옥중 고 백 앞에서 오늘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가 어디로 가야하며 신앙이 어떠해야 할 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세속적인 부귀 명예와 권세의 유혹에 빠져 방향 을 잃어가는 오늘의 교회를 향항 서 목사의 외침을 우리는 겸허하게 들어야 할 것이 다.

 

 

교권과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에 바빠서 참 신앙을 잃어 버리며 시기와 반목으로 얼룩 져 있는 우리들을 향해 도전하는 서 목사의 음성은 진정 20세기말의 예언자의 음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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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이야기

 

서정환 목사님은 저(서진택, 1969)의 할아버지십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신앙을 본 받았으며, 저는 아버지의 신앙을 본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