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숙 24. 소녀 사형수

2016.01.0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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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소녀 사형수

  선지자선교회

예수님! 이 어린 죄수 소녀를 보십니까? 예수님의 그 자비하신 눈으로 보시는 이 화춘이는 측은해 보일 것으로 믿어집니다. 이 소녀를 낚아채고 주리틀며 괴롭히는 악령을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랑의 힘으로 모조리 소멸하여 주시고 화춘이에게 예수님으로 인해 오는 평안을 보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우리 구주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기도를 마친 후 눈을 뜨고 화춘이는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나를 의지하는 힘찬 표정을 했다. 나는 일부러 웃음을 띠면서

 

내가 그래 무어라 기도하던가?”

 

하고 물으니 화춘이는 서슴지 않고

 

아버지라고 하셨어요.”

 

예수님 !”

 

하니 눈물이 또 쏟아졌다.

 

화춘이의 잘못을 보시지 마시고 그 죄를 당신의 피로써 씻으시고 이 기도가 허공을 치는 부르짖음이 되게 하지 마옵소서.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면 그 어느 사람이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죄가 많으면 많을수록 주님의 긍휼이 더욱더 필요하옵니다. 악마에게 쫓기고 쪼들린 이 딸에게 잠을 주소서. 자고 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쉼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하고 나는 아멘 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아직 머리를 들지 않고 있는 화춘이를 불러서 눕게 하고 그의 옆에 바싹 누웠다. 그는 나를 의지하고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얼마 동안 애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발을 내 가슴에 넣어 온기를 주기 위해서 거꾸로 누워서 그의 얼음같이 찬 발을 내 맥이 뛰고 있는 따뜻한 가슴속에 넣었다. 나는 한없이 기뻤다. 그가 잠이 들어서 발을 내 품에 넣어도 모르도록 깊이 자고 있다는 것도 나를 기쁘게 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는 무언지 예수 믿는 사람같이 되는 나를 볼 때 기뻐서 만족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두 나를 그렇게 부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죽고 싶었던 유혹을 언제나 받았었다. 그래도 자살하면 지옥에 갈 것이 무서워서 감히 행하지는 못했다.

나는 내가 만일에 이러한 옥고의 연단 없이 내 인생을 좋은 옷 입고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자고 시원하게 살면서 불만과 짜증에 일생을 마쳐 버렸다면. ! 그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한 일생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나는 이 감옥이 내게 다시없는 은혜의 연단소가 되어서 예수님의 진리를 내 몸과 심령에 채워지게 하는 장소가 된 것에 감사했다.

 

우리 친구가 요릿집을 하는데 저녁에는 목사라는 이도 장사하는 사람들과 섞여 오는데 기생 계집애들이 목사님! 한 잔 더 하세요하며 달려들던데요. 선생님. 그런 사람들이 정말 목사님일까요?”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맞는 것 같았다.

 

세상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두렵다는 것보다 죽어 버려서 이 세상을 아주 잊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일본인들이 신사에 올라가 절한 목사들을 대동강으로 데리고 가서 일본 신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주었다고 한 내 어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저주 같았다.

 

이기선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고무신이 낡아 떨어져서 구멍이 났을 때 물을 밟으면 물이 들어오고 진탕을 짚으면 뚫어진 구멍으로 진탕이 들어오고 똥을 밟으면 똥이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귀신에게 굴복을 당해서 믿음에 구멍이 나면 그 구멍으로, 가는 대로 밟는 대로 모든 세상의 죄악은 다 들어와서 그 영혼이 멸망하고야 만다.”

 

화춘이는 그가 어렸을 때 놀고 장난하던 날을 기억하고 역시 설움이 복받쳐 같이 실컷 울었다. 그 후에 이 두 소년 소녀는 늘 강냉이밭에 숨어서 만나 옛날같이 앉아서 화춘이의 불우한 신세를 탄식하며 우는 수밖에 다른 길은 몰랐다. 그들은 어느 동안에 서로 만나지 아니하면 못 견디는 사이가 되었고, 따라서 어떻게 해야 화춘이가 이 포악한 남편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될까 하고 갖은 지혜를 다해서 생각해 보았다. 소년은 들짐승을 잡으러 산에 가는 일이 늘 있었다. 그날도 비상을 가지고 가서 노루를 잡아온 이야기를 했는데 화춘이는 그 말을 듣자 눈에서 빛이 나면서 노루 잡은 비상을 자기에게 조금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화춘이는

 

집에 쥐가 많아서 쥐를 죽이겠다.”

 

하고 말했다. 소년 천수는 아무 말 없이 비상을 조그마한 종이에 싸서 화춘이 손에 주었다. 화춘이는 그것을 조금씩조금씩 음식에 타서 남편에게 먹였으나 남편에게 아무 징조가 없고 때마다 음식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배가 고픈 그는 맛있게 음식을 다 먹고도 늠름했다. 그러는 동안에 화춘이는 조급해졌다.

 

하루는 무르익은 호박을 추수해서 모두 방 속에 들여다 놓고 그중에 제일 잘 익은 호박을 한 개 썰어서 호박죽을 맛있게 쑤고 그 속에 남은 비상을 다 넣어서 시장해 들어온 남편에게 먹였다. 남편은 늘 나는 고약스런 냄새가 오늘은 더 고약하다고 하면서 배가 고팠으므로 한 그릇 되는 호박죽을 맛있게 다 먹어 버렸다.

 

얼마 아니 되어서 남편은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곤두박질을 하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다가 새벽녘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 남편이 고함을 지르며 죽는소리를 쳐도 먼 동리 사람들은 으레 들었겠지만 그 못된 사람이 또 아내를 때리며 욕을 하는가 보다 해서 아무도 무어라고 하는 일 없이 그 남편은 죽어 버린 것이다.

 

그는 젊으니까 사실 우리보다 더 배가 고팠었지만 기어코 먹지 않는 나를 쳐다보면서 울먹울먹하며 먹어야 하는지 안 먹어야 하는지 결을 짓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그는 내게 복종하고 내 밥을 3일간 울면서 먹었다. 그는 다 먹고서 하는 말이

 

나 내 남편을 죽였을 때보다도 더 죄를 지은 것같이 마음이 답답해요.”

 

했다. 나는 놀라서

 

! 무엇 때문에?”

 

선생님은 밥을 자시고도 배가 고프셨는데 사흘이나 안 잡수셨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실까요. 그래서 마음이 참 답답해요.”

 

하며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나는 그가 사랑에 운다하고 느껴질 때 참 마음이 기뻤다. 그리고 16년간이나 받았어야 할 사랑은 네가 사형받기 직전에 받아볼 것이다 하니 큰 사업을 경영하는 상인같이 내게는 소망이 컸다. 그는 내 밥을 먹은 이후로 저녁 성경 이야기 때에 유달리 조심해 듣는 것 같았다.

 

화춘이는 어느 날 금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금식은 3일이 지나도 그대로 계속되었다. 나흘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그 나흘 동안의 음식을 모조리 내게 먹게 했다. 나는 놀랍고 이상해서

 

웬일이야! 나는 3일간 금식을 했는데 왜 넌 나흘이나 하는 거냐?”

 

저는 죄가 많아서 하루 더 했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더 잡수시지요.”

 

당돌하게 앉아 금식을 계속했다. 금식 중에 그는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를 완전히 따로 외웠다. 그리고 찬송가도 몇 장 따로 외웠다. 특히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네하고 부를 때엔 울었다. 나는 그가 우는 것을 볼 때 나 역시 눈물이 나왔다.

 

진리는 역사하시는구나!’

 

이렇게 속으로 외쳤다. 음정도 똑똑하지 않은 그의 찬송 소리는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고 들을 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울음 섞인 그의 찬송 부르는 태도는 무언지 거룩한 것을 느끼게 했다. 나도 가슴이 뜨거워져서 그의 부르는 찬송에 합쳐 그 음정이 틀리지 않도록 받들면서 같이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네를 불렀다. 화춘이는 금식 후에 믿음이 생겼다.

 

그는 내게 자기가 주범이고 천수가 전적으로 무죄하다는 것을 실토하면서 원통하게 회개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사연을 터놓고 내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때까지 천수에게 덮어씌운 모든 죄과를 자기에게 돌이켜야겠는데 사형을 받기 전에 그러한 기회가 있을까에 대해서 몹시 초조해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올 때에는 양심대로 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그것이 너무 괴로워서 자주 금식하고 울었다. 금식하면 할수록 울면 울수록 그는 참 사랑스러워졌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수들도 화춘이를 미워하던 언사를 고쳤다. 그리고 화춘이는 그런 나쁜 짓인 살인을 안 했으리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생겼다. 간수들도 화춘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루는 화춘이가 재판소에 불려갔다. 재판소에서 돌아온 그의 얼굴은 꽃이 핀 것같이 환하고 아름다웠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흠집이 보이지 않고 그의 조용하고 사랑스런 눈과 매끈하고 흰 얼굴이 언제나 예쁘게 보이게 된 것이 이상했다. 더욱이 그가 웃으면 유달리 사랑스러워 어떤 죄수는

 

고것이 저렇게 귀엽게 웃으니까 천수가 반했지 뭐야!”

 

하고 화춘이의 예쁜 것을 증명하는 이도 있었다.

 

화춘이는 신이 나서 오늘 재판소에서 일어난 광경을 설명했다. 이때까지 천수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던 화춘이는 판사 앞에서 담대히

 

판사님! 지금까지 말해 온 제 말은 모조리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라고 하니 모든 재판소 안은 조용해졌다고 한다. 화춘이는 다시

 

판사님! 천수는 제가 제 남편을 죽인 일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천수에게 저는 쥐를 죽인다고 속여서 비상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남편이 너무도 싫고 무서워서 몇 해 동안 그를 죽여 버리려고 늘 생각해 왔어요. 천수는 그것도 모릅니다. 제가 혼자서 다한 것이고 천수는 저를 불쌍히 여겨서 위로해 준 것뿐입니다. 이것이 정말입니다. 이때까지 말한 것은 다 헛소리였습니다. 판사님! 저를 곧 죽여주십시오! 저는 속히 죽어야지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저를 하루 바삐 죽여주십시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고 똑똑히 말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그는 다시 무엇을 결심하고. 또 금식을 시작했다. 3일간이면 끝이 났어야 하는데 나흘이 되고, 한 주일이 되어도 먹지 않았다. 열흘이 되고, 두 주일이 되어도 그의 금식은 계속되었다.

 

나는 너무도 애처롭고, 속이 타고 상하고, 아팠다. 더욱이 그가 금식하는 동안에 그의 음식은 꼭 내게만 먹게 하고, 다른 사람은 절대로 먹지 못하게 했다. 나는 피를 먹는 것 같고, 그의 살을 먹는 것이 괴로우면서도 그의 강권에 이길 힘이 없어서 15일간을 먹고 말았다.

 

나는 내가 10일 금식을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기억했다. 그것은 내가 죽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거의 다 죽었어도 신앙으로 견디어 냈지만. 그는 기도도 못 하는고로 내가 옆에서 기도해 주고 하여 결국은 어렵고 무서운 15일이 지나갔던 것이다.

 

죽을 마시고, 밥이라고 하는 대두박 덩어리를 부들부들 떨며 입에 넣었다. 그렇지만 그 얼굴에는 신앙의 광채가 났다. 나는 놀랐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나만이 그런가 해서 죄수들에게도 묻고 간수들에게도 물어보았다. 누구의 의견이나 다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