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9 02:04
26. 큰밥과 고깃국
나는 받아 놓은 이 괴상한 밥 덩어리를 먹을 만한 용기가 없어서 이리저리 굴리며 침만 삼키다가 내놓으니 다른 사람이 냉큼 집어서 삼켜 버리고 말았다. 섭섭하고 아까운 감이 있었으나 이미 없어졌으니 하는 수가 없었다.
이같은 무서운 밥 덩어리는 계속해서 하루에 세 끼씩 꼬박꼬박 왔다. 배가 고픈 죄수들은 이것이라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같았다. 나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어서 유황 냄새나고 악취가 나는 꺼멓고 흙빛 같은 소위 밥 덩어리를 조금씩 뜯어서 입에 넣고 마구 삼켰다. 어떤 이는 목구멍이 좁아 넘어가지 않아서 삼킬 수가 없어서 이로 씹으면서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 혹독한 밥은 그대로 계속해 왔다.
사람들의 얼굴은 붓고 회색빛같이 되었고 기운이 없어서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쓰러졌다. 어떤 이는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눈알이 빨갛게 되고 숨이 차서 죽기까지 했다. 비틀거리는 죄수들은 내게 달려들 듯이
“웬 큰 밥이니 고깃국이니 쓸데없는 기도를 하니 이 지경이 되고 말지 않아?”
이 방 저 방에서 사람은 죽었다. 악 소리를 치며 죽는 사람, 숨소리도 없이 죽는 사람들의 시체를 끌어내어 가는 것을 보면 모두 부을대로 부어서 뚱뚱하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날씨가 더워져서 시체를 빨리 끌어내 가지 못해서 파리 떼가 달려들어 번성해서 무서웠다. 어떤 시체는 겨우 끌어내서 앞마당에 버려둔 채로 있고 어떤 시체는 시멘트 바닥에 파리가 몰려들어 엎드러진 시체에서 피를 빼앗긴 채 썩어 가고 있었다. 남자 감방에서 너무 사람이 많이 죽기 때문에 여자 감방의 시체를 처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퉁퉁 부어 넘어져 있는 꺼먼 남색의 미결수와 벽돌색 옷에 쌓인 기결수의 시체를 보니 나는 ‘단테의 연옥’을 생각했다. 단테의 연옥에 그려진 그림이 실제로 내 눈앞에 벌어져 있는 것이다 아! 이곳은 지옥인가? 연옥을 믿지 않는 내게 이 광경은 과연 연옥인가? 나는 생각이 많았다. 가슴이 터지게 아프고 목이 칼로 찌르듯이 쑤시고 전신에는 힘이 다 빠져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결국 누워버리고 말았다.
나는 죽는 것을 기대했다. 죽음이 이제야 내게 가까웠구나 하며 나는 한결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나는 힘을 다해 일어난 엎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는지 모르는 기도를 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원하고 바라던 죽음이 이제 가까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주님 계신 그곳은 내게서 한 발자국 거리밖에 안되는 듯이 가깝고 친근합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까? 제가 주님 앞으로 간 후에라도 주님은 책임을 가지시고 이 살아 남아 있는 죄수들에게 제가 믿고 성경대로 선포한 그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서 큰 밥과 고깃국을 먹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당신의 말씀이 증명되고 높임을 얻으시고 영광을 받으소서. 내 영혼을 주님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 당신의 존귀하신 진실된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왔어요. 글쎄. 오늘에야 이제야 왔어요, 큰 밥이.”
나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그제야말로 일어서서 문에 기대었다. 주간수는 얼굴과 뺨이 눈물로 흠뻑 젖었다. 그리고 너무 감격된 통에 간수의 직책도 다 잊어버리고 뛰어와서 내게 먼저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무어라고 할 말을 몰라서 어리벙벙하고 있는데,
“어이사, 어이사.”
하면서 간부들이 무거운 밥과 국을 간신히 어깨에 메고 오면서 기쁨이 충만해 있었다. 두 간부는 밥을 소반에 메고 두 간부는 국통을 메고 전에 보다 몇 배나 무거운 저녁밥을 메어다 놓았다. 희미하고 구수하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한 가지로 구멍문으로 들어오는 밥 덩어리는 크고 좋은 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랗고 먹음직한 큰 밥 덩어리는 군데군데 흰쌀이 섞였다고들 야단이고 구수한 굵은 노란 콩이 섞인 조밥이었다.
너무 충격이 커서 그런지 온몸은 추운 겨울날처럼 떨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큰 밥을 떼어서 얼마를 입에 넣었다. 어찌된 셈인지 밥맛은 굉장하리라고 기대했건만 마치 모래를 입에 넣은 것같이 맛도 없고 먹어도 맛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럴 리가 없는데 하고 떨리는 손을 내밀어서 좀더 떠서 입에 넣었다. 역시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 이가 모두 움직이기 시작해서 깨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귀한 밥을 밭아 놓고 안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 이것이 꿈입니까? 무엇일까요? 감사합니다. 비록 꿈이라도 감사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언약을 기어이 증명하시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이 여종은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습니다. 저는 기쁜데도 먹어지지를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이름은 이같이 진실합니다. 아멘.”
나는 너무 애를 쓰며 진액이 마르도록 기다리며 지키느라고 입맛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나는 밥을 놓고 구경을 하며 감사하고 황홀했다. 이 20세기 문명시대에도 그 수천 년 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도 이같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이었다.
“아버지!”
나는 말할 힘만 있으면 큰 소리로 울고 싶도록 찬송과 영광을 드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누운 채 이 밥을 조금씩 입에 넣고 침을 섞어서 삼켜 넣었다. 어떻게나 쇠약해졌던지 이 밥을 받아 놓고 밤새도록 먹어도 다 먹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언젠지 다 먹어 버리고 가슴이 아프고 조여지게 되어 가슴을 움켜쥐고 아이구 하고 소리를 치는 이도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제법 큰 밥과 고깃국이 들어왔다. 아침을 다 먹지 못해서 점심이 또 들어왔다. 또한 점심도 다 못 먹어서 큰 밥 덩어리가 고깃국과 한가지로 들어왔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소부들은 남은 밥을 주걱으로 밀어서 떡이라고 하며 먹으라고 했으나 그것조차 먹어지지 않았다. 이 큰 밥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러나 썩은 대두미의 독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빨이 모두 상해 있었다. 잇몸이 까맣게 되고 이빨들이 길게 나와서 저마다 이가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한 입에 다 빠져서 한아름 손에 이빨을 받아 쥐고 우는 이도 생겼다. 이 사실이 보고되자 다 쇠고 흰 물이 나오는 상추를 한짐 여감방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리고 이빨이 상하는 이마다 상추를 먹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빨이 다 나오지 못한 사람, 또 이빨이 흔들거리는 죄수들에게 쇠고 쇤 상추를 나누어주었다. 나도 상추를 받아서 입에 넣었다. 이처럼 쇤 상추는 으레 그 맛이 쓴 것인데 그 쓴 상추는 입에 하나도 쓰지 않고 맛이 굉장히 좋았다. 이같이 상추를 먹은 후에 매일 계속해서 상추를 먹었더니 흔들리던 이빨은 튼튼해졌지만 빠진 이빨은 어찌할 수 없었다.
“여보, 큰 밥 먹었소?”
하고 물었다.
“네, 그러믄요. 하나님 은혜 감사하지요."
하고 다시 묻기 전에 다음 말까지 대답한다. 그러나 사고는 또 났다. 이같이 좋은 큰 밥을 먹고 고깃국을 먹은 죄수들이 배탈이 나고 또 위장이 상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버렸다. 죽음은 계속되었다. 남자감옥에서는 한꺼번에 시체를 실어다가 합동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기 때문에 하나씩 묻을 수 없어서 모두 싣고 나가서 한 구덩이에 묻어 버린다고 했다. 여자 감방에서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위장이 극히 상한데다가 큰 밥을 급하게 많이 먹은고로 위장이 찢어져 죽은 셈이었다.
살벌한 공기는 다시 이 감옥을 휩쓸었다. 나는 곰곰이 성경을 다시 상기했다. 고기 먹게 해 달라고 구하지 않고 고기가 그리워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추라기를 실컷 먹은 후에 재앙으로 인해 그 얼마나 무서운 숫자의 시체를 광야에 내었던가? 받지 못할 은혜를 받는 사람의 위험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 나가고 병자가 많아져서 의무과 과장이 들어와서 죄수들을 일일이 진찰했다. 그가 나를 진찰하면서 은근히
“주 목사님이 돌아가셨지요.”
나는 깜짝 놀라서.
“이 대두미 독에 그러셨나요?”
“아니오, 일본인 의무과 조수가 주사를 놓아 죽였지요.”
한다. 나는 급한 말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나를 해주에 출장 보내고 나 없는 동안에 주 목사에게 조수가 주사를 놓았는데 즉사했지요. 나는 주사 약병을 보고 그자에게 고함을 쳤지만 벌써 늦었어요.”
나는 가슴에 큰 충격을 받아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하나님은 보배를 땅 위에서 거두어 가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나는 이 땅에 갑자기 어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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