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9 02:07
31. 학살자의 급사
그러니까 도지사들이 돌아와서 매월 8일 아침 8시에 신궁에 가면 모든 백성은 모두 서 있다가 사이렌이 날 때 모두 일제히 그 있는 자리에서 절을 하여야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전 회의에서 통과되었던 것이니만큼 이들은 몹시 중대시했다. 히가시 간수가 그 신문을 내게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그 신문을 보는 동안 그녀는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을 보았을 때 즉각적으로
‘이제는 일본이 망하는구나.’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간수장이 내게 원수를 갚을 때가 왔구나.’
했다. 간수들은 아침마다 긴 훈시로 인해 늦어지고 이 어전 회의에서 이들은 왕을 신으로 보았던 만큼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히가시 간수가 얼굴이 새파래져서 달려왔다.
“큰일났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듣기 전에 그녀의 얼굴 표정으로 먼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을 알아챘다. “무언데 그렇게 흥분을 했어요?”
그는 말이 빨리 나오지 않아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오늘 길고 무서운 훈시가 있었어요.”
“무서운 훈시인데요?”
“돌아오는 8일에는 어전 회의건을 실행하는데 수인들도 신궁에서 분향할 때 사이렌이 나면 모두 경배를 하여야 한 대요. 만일 감방에 있는 이 중에 경배를 안 하는 죄인이 있으면 쇠고랑을 채우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구타해도 된대요. 왜냐하면 그것은 나라와 신을 거역하는 반역자니까요. 그런데 더욱이 크리스천들이 제일 고집스러울 것이라고 하면서 적당히 고문을 해서 기어이 항복을 받을 때까지 죽여도 무관하다고 해요.”
“히스기야 왕의 편지를 읽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 당신은 이 신문을 읽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소장이 훈시한 모든 말을 주님은 듣지 아니하셨습니까? 그는 어전 회의의 건으로 우리를 고문하고 넘어뜨려서 그의 귀신의 종을 만들려 달려들어 해합니다.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된다고 하시지 아니하셨습니까? 이 일본인들이 그 헛된 우상 귀신들로 인해서 모두 광태가 되어 우리 살을 먹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쇠고랑을 채우고 때려 항복을 시켜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들은 아무리 불러도 그 신이 응답치 못하는 것은 일본 왕은 신이 아니고 그 귀신들도 참 신이 아니라 귀신의 무리인고로 아무 힘도 없고 마치 바알과 아세라 목상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 여호와여! 당신은 살아 계시고, 주관하시고, 역사하시고, 일어나 도우시는 아버지시니이다. 당신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옳으시고 진실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오니 제가 거룩지 못하고 나약하고 죄가 많고 가치가 없어도 이미 저를 붙드사 세우셨사오니 이때에 일어나 나를 도와 주시고 이 악령들이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살아 계시고 능력이신 아버지여, 주는 약속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시요, 결단코 의지하고 청종하는 자를 물리치지 아니하시는 아버지시나이다. 저는 힘도 없고 믿음도 약하고 겁이 많고 심히 두려워하는 여종이니이다. 저는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편지와 도전을 받은 것에 비할 수 없이 너무도 큰일인 것을 주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너무도 너무도 무섭고 무서워서 주여 내게서 힘은 다 빠지고 혀끝은 말라드나이다. 저를 구원하소서, 주여! 저를 이제 구원해 주셔야겠나이다.”
“아버지여! 저는 죄인이고 저는 사랑이 부족하고 믿음이 얕고 심령이 요동하옵니다. 당신의 기적을 바라고 누리기에 너무도 합당치 않고 마땅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종이 상전의 손을 바라고 바라는 것같이 또 피곤하고 졸리는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같이 배고픈 자가 음식을 사모하는 것같이 조건과 정도를 논할 수 없어서 당신의 구원만을 간구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무서운 고문을 안 받아도 모진 욕설만 한마디만 들어도 쓰러질 것이니이다. 8일이 오기 전에 주여, 나를 속히 이 육체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이 육체를 아주 버리고 주님 계신 곳으로 데려가 주시옵소서. 8일은 나에게 영원히 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내게 8일이 오는 것을 보기 전에 죽어 이 땅에 속한 이 육체를 이 감방 속에 던지고 내 영혼은 훌홀 날아가 주님 계신 그곳에 올라가게 하여 주소서.”
“나는 요즘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이렇게 새벽에 왔어요.”
나는 고개만 끄덕해 보이고 다시 눈을 감고 주님을 향해 결사적인 의논을 하는 셈이었다. 이날은 모든 간수가 다 소집되어 아침 9시에 도지사가 신당에 올라가서 분향하고 경배할 때 모두 그 신당 있는 곳을 향해서 절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 죄인들도 모두 그 간수들의 감독 하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신당을 향해 절을 하게 되어 있었다. 절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서운 고문을 하기 위하여 고문 도구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고문하여 일본 귀신에게 항복시키는 자는 마귀와 일본인의 계획이었다.
“글세 그것을 모르겠어요. 간수들이 모두 훈시장에 기립하고 모여 섰는데 소장이 훈시를 시작하자 전화 소리가 나더니 과장이 먼저 전화를 받고 소장이 불려들어가더니 과장들과 소장은 다시 훈시장에 나오지 않고 우리 간수들은 기다리다 못 해서 9시도 넘고 10시가 되어서 겨우 해산하라고 해서 해산했거든요”
“아니 그런데 여보 눈치로 보아도 무슨 일이 났는지 모르시겠단 말이오?”
“눈치는 무슨 눈치? 과장이 전화를 받고 소장을 데려가고 얼마 있다가 과장들은 다 들어가고 우리는 밖에 있어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소식 없더니 10시가 거의 다 되니까 해산하라고 해서 해산했을 뿐인데 무슨 눈치로 무엇을 알아내어요?”
“이사까 도지사가 어전 회의를 마치고 동경서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사까 도지사와 다른 고관 몇 사람이 타고 오는 비행기가 행방 불명이 되어서 이 시간까지 소식이 없대요. 사실은 벌써 수일 전에 도착이 되었어야 했대요.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기다리노라고 도청에서 어디나 통지하지 않고 결국 오늘 아침 9시까지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그때서야 사방에 전화로 통지를 했다고 하는군요.”
아! 하고 나는 가슴을 쓸며 큰 숨을 쉬고
“하나님 아버지! 경배합니다.”
하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절하면서
“아버지! 이 경배는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민족과 족속과 인민과 왕과 방백과 경관과 판사와 검사와 온갖 인류들을 다 대표해서 드리는 경배입니다. 이 경배는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 있는 자들을 모두 대표할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합심해서 드리는 경배입니다. 이 경배는 모든 우상들이 그리고 이 지구 위에와 아래와 공간에까지 있는 기체까지도 합해서 여호와 높으시고 참되시고 거룩하신 그 이름 아래 엎드려 드리는 경배입니다. 나는 대표로서 주님 살아 계신 그 앞에 경배와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감방문은 늘 활짝 열려 있었다. 청소부들은 깨끗한 걸레를 가지고 와서 마루를 닦아주고 이불도 햇솜을 넣어서 새 것으로 바꾸어주었다. 이 햇솜은 밖에서 이불 주문을 해오는 곳에서 솜을 도둑질해 넣어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이 사실을 안 후로는 그렇게도 햇솜 이불이 그립던 내게 식은땀이 나게 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 이불을 덮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청소부들이 제발 그대로써 달라고 애걸하며 야단을 해서 여하간 내 방에 놓아두게 했지만 그 이불에서 귀신이 나오지 않는가 했다. 얼마 후에 히가시 간수는 다시 뉴스를 가져왔다.
이사까와 다른 두 도지사들은 어전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국 전투기의 공격에 의해 비행기가 추락하여 일본 해에 장사되었다는 비밀 보도가 있었다고 했다. 바로의 군대가 홍해 깊은 바닷속에 장사된 것같이 내 영혼을 삼키려던 일본인 도지사는 깊은 일본 해에 장사되고 말았던 것이다.
전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이제는 미국 비행기가 한국 상공에도 날아온다. 동경과 일본의 50개 이상의 도시는 B29의 폭격을 맞아서 불타 버렸다고 히가시 간수는 내게 일러주었다.
“유황불이 내려 이 도회지들을 소멸한다”
는 주님의 말씀을 받고 나는 이 20세기 문명 시대에 어디서 유황불이 떨어질까 하고 의심했던 죄를 이제 톡톡히 자복하고 회개했다. 일본국회 제74의회에서 잡혀서 경시청에 갇혀 문초를 받을 때 나는 분명히 일본이 회개하지 않으면 유황불이 떨어져서 모두 소멸한다고 말을 전하고 증거하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유황불이 정말 떨어질까?’ 했던 것이 기억났다.
오늘도 내일도 B29는 몇백 대씩 떼를 지어 하늘이 덮이도록 날아와서 유황불인 폭탄을 던지고 돌아간다고 한다.
동경, 대판, 신호 등 큰 도시를 비롯해서 군사기지 등 사정없이 매일 정확하게 떨어졌다. 가옥이니 거리니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시체가 김장때에 마당에 김장하고 남은 배추 쓰레기가 가득 버려진 것같이 거리마다 늘어진 시체들의 사진을 히가시 간수는 내게 보여 주었다. 나는 신문에 박힌 사진들을 보면서
‘미친개같이 말도 뜻도 모르고 빈소리만 지르던 일본인의 신세가 이처럼 비참하구나!’
“제1 폭탄이 여기 떨어지면 나는 예수님 기다리시는 천국에 한걸음에 쑥 들어설 텐데 당신네들은 그때엔 어찌될까요? 나는 다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무서운 것이 없고 도리어 나는 저 비행기가 폭탄을 여기 떨어뜨려 주어야 단번에 수가 난다고 기다리는데요”
하였더니 그 중에 청소부 하나가
“하나님을 안 믿는 이가 어디 있어요? 다 믿지요.”
어느날 종전같이 히가시 간수는 먹을 것을 잔뜩 보자기에 싸서 내 방에 가져왔다. 나는 감방 사람들과 나눠 먹고 히가시 간수는 교대를 해서 가고 김이라는 간수가 와서 있었기 때문에 마저 먹고 치우지를 못하고 모두 감추어야겠지만 감출 데도 없고 해서 음식 위에 또 음식을 깔고 앉아서 히가시 간수가 교대할 때까지 숨겨 둘 수밖에 없었다. 음식이 들어만 오면 냄새가 나서 내 감방 가까이 오면 으레 누구나 다 알겠는고로 사정없이 음식 위에 막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에 갑자기 남자 부장이 남자 간수를 데리고 오더니 각방을 조사한다고 한다. 나는 숨이 단번에 멎어 버리는 것같이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기도할 시간도 없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벌써 부장과 간수가 내 방문 앞에 오더니 문을 덜컥 하고 열었는데 그때에 또 다른 남자 간수가 여간수장과 함께 뛰어와서 내 방을 조사하는 간수를 지키려고 섰는 부장에
“1등 성적 죄수 5인이 도망했습니다. 속히 오셔야겠습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어질지라도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 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다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음으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고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를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니라.”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얼마나 그가 나를 위해 그 눈동자를 내게서 옮기지 않으시고 지키시고 계신가를 보고 나는 참 놀라고 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여 너무 주셨습니다. 너무 높이 붙들어 주셨습니다. 높고 높은 주님의 팔에 안긴 저를 해칠 피조물이 없습니다. 사탄이 우주에 잠복하고 마귀가 온 세상을 덮고 그 사신들이 이 감옥 속에 가득했을지라도 악마의 세력이 저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저를 높이 올려 붙잡으신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진리가 나를 이같이 높이고 붙잡고 놓지 아니하셨나이다.
“히가시상, 당신은 아직 나를 전혀 모르는 양반이에요. 나는 이제는 폐인이에요. 보세요, 눈은 당신의 친절로 지금 제법 잘 보게 되고 귀도 좀 잘 듣게 되었지만, 이도 없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꽉 자리를 잡고 머리는 대머리요, 허리뼈는 꼬부라져서 내 음성은 거의 다 죽어 말라 버렸고 기운이 없어 숨쉬는 것조차 힘들고 이제는 청춘도 거의 다 갔으니 보기 싫고 흥하지 않아요? 나는 내 목적한 대로 여기서 죽어야만 가장 가치 있는 내 생애가 되어요.”
그는 내가 8월 18일 오전에 사형 집행이 된다고 나를 이처럼 건져보겠다고 온갖 애를 다 쓰는 사람이건만, 그러나 그는 내가 순교를 지향하고 그 영예를 얻으려고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가 우리 성도들은 모두 18일 오전에 사형당하게 되었다고 전해준 이후로 나를 탈옥케 할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 온 것을 알고 어이가 없었으나 그 성의는 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44 | 43. 미국행 | 선지자 | 2016.01.09 |
| 43 | 42. 어촌과 왕지네 | 선지자 | 2016.01.09 |
| 42 | 41. 소련군과 주영하 | 선지자 | 2016.01.09 |
| 41 | 40. 대자연의 탄식 | 선지자 | 2016.01.09 |
| 40 | 39. 유황불 | 선지자 | 2016.01.09 |
| 39 | 38. 일본인들 | 선지자 | 2016.01.09 |
| 38 | 37. 최봉석 목사 | 선지자 | 2016.01.09 |
| 37 | 36. 주기철 목사와 손가락 회화 | 선지자 | 2016.01.09 |
| 36 | 35. 높은 자보다 더 높으신 이 | 선지자 | 2016.01.09 |
| 35 | 34. 회개하는 간수 | 선지자 | 2016.01.09 |
| 34 | 33. 밤길 같은 앞길 | 선지자 | 2016.01.09 |
| 33 | 32. 큰 바위와 물결 | 선지자 | 2016.01.09 |
| » | 31. 학살자의 급사 | 선지자 | 2016.01.09 |
| 31 | 30. 진짜 죄수 | 선지자 | 2016.01.09 |
| 30 | 29. 부친의 회개 | 선지자 | 2016.01.09 |
| 29 | 28. 파송객 | 선지자 | 2016.01.09 |
| 28 | 27. 히가시 긴수 | 선지자 | 2016.01.09 |
| 27 | 26. 큰밥과 고깃국 | 선지자 | 2016.01.09 |
| 26 | 25. 귀가 | 선지자 | 2016.01.09 |
| 25 | 24. 소녀 사형수 | 선지자 | 2016.0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