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9 02:08
35. 높은 자보다 더 높으신 이
이튿날 아침 새벽녘에 잠이 들자,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 앞에 보니 일본인 씨름장사들이 살이 쪄서 남산같이 뚱뚱한 배와 가슴을 흔들흔들하며 줄을 서서 씨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날선 검을 바른손에 들고 쏜살같이 달려들어서 그 긴 줄로 서 있는 뚱뚱보씨름꾼의 배와 가슴을 찔러서 하나씩 모두 죽여 버렸다. 그렇게 뚱뚱하고 힘센 씨름꾼들이 내 칼에 배와 가슴을 찔려서 하나 둘씩 모두 거꾸러지는 것을 보며 ‘할렐루야’를 부르다가 내 소리에 깨어났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니 어찌나 마음이 상쾌하고 기쁘던지 주님 앞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이 내 사정을 벌써 다 아신 것으로 믿고 씨름꾼 같은 일본인 세력을 하나님의 말씀인 날선 검으로 모두 쳐버리게 될 것을 믿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도 안 먹고 일이 어찌되는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수장이 의기 양양해서 감방에 오더니 나를 나오라고 한 후 나를 앞장서 걸어가라고 하며 나를 데리고 여자 감옥에서 나왔다. 가서 보니 그곳은 소장실이었다. 어마어마하게 꾸며 놓은 소장실은 무슨 대신의 집같이 해 놓았고 그 안에 있는 큰 책상에 무엇을 먹고 살이 그렇게 쪘는지 뚱뚱한 소장이 잡아 제키고 앉았고 그 좌우에 과장 한사람과 부장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여간수장은 소장실에 들어와서 그야말로 죄수같이 깊은 경례를 소장에게 하고 내 뒤에 물러 나와 섰다
.
나는 참 나 자신에게 크게 놀랐다. 그렇게 무서워 떨고 허덕이며 부르짖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할 앞이 아득하고 캄캄했던 나는 기이하게도 늠름해지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나는 잊어버리고 소장에게 경례도 못하고 여간수장이 그같이 벌벌 떨며 경례를 하는 것을 보며 구경만 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소장은 나를 보더니 저기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고 앉은 후에 위엄 있는 말소리로
“그래 자네는 소위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자가 규칙을 무시하고 협력을 안 하겠다고 했다니 사실인가?”
이 말을 들으면서 내 마음은 대양같이 넓어지고 내 신념은 바위같이 든든해졌다. 나는 극히 침착하고 유창한 일본어로
“소장께서는 제가 왜 여기 와서 갇혀 있으며 무슨 이유로 죄없이 죄인 노릇을 하는가 아마 모르시는 모양이시죠?”
소장은 급한 음성으로
“자네가 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죄인들이 들어와 있는 이 감옥에 와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일단 감옥에 들어왔으면 규칙을 지켜야 하고 더욱이 일본인의 교육을 최고 학부까지 받았으니 그만한 상식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나는 더욱 침착하고 냉정해지면서
“내 신앙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이 감옥 속에서 하려면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 있어야 할 것인가요? 감옥에 갇혀 있어서 내 신앙 신념에 거역되는 일을 하려면 구태여 여기 갇혀 이러한 모욕과 멸시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당당히 사회에 나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면서 자행 자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소장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두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면서
“여하튼 나는 대일본 제국 천황 폐하의 충실한 사신으로서 자네에게 매일매일 일을 해서 국가에 으레 봉사하라고 명령한다.”
라고 고함을 쳤다. 나는 이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장이 쾅! 하고 치던 그 책상을 주먹으로 나도 쾅! 하고 치면서 눈을 똑바로 뜨고
“천지와 만물을 그 말씀으로 지으시고 이제도 이 천지와 거기 있는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종된 나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사람이 굴복시키려는 명령에 복종할 수 없소.”
하고 소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내 눈에서 불이 나오는 것같이 눈이 화끈하고 가슴이 북받쳐 왔다.
소장은 놀라서 입을 딱 벌리더니 말문이 막히고 어이가 없든지
“어! 어!”
하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이나 나를 보더니 기가 막혀서 자리에 말 없이 앉으면서 씩씩하고 있었다.
“나는 관리가 되어 30여 년을 이런 일을 해왔어도 오늘 지금 같은 일을 당해 본 일이 없었다. 소장을 무엇으로 알고 주먹으로 상을 치며 내게 항거한단 말인가?”
하고 얼마 동안 있더니
“자네가 그렇게 신앙하는 자네의 신이 자네를 오늘 도왔네.”
나는 그 말을 받아
“나라는 것은 벌써 오래 전에 다 죽어 없어졌고 지금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신앙심뿐입니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죽었고 또 앞으로 이 일 때문에 사형이 되겠지요.”
했다.
“음!”
그는 감탄인지 버릇인지 소리를 치고 아주 부드러운 얼굴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보는 눈빛이 더 따뜻해지고 언사와 태도가 친구같이 되었다. 한참이나 멍청히 있다가 내 뒤에서 떨고 섰던 여간수장에게
“자네 이 아가씨를 너무 학대하려고 달려들지 말게. 모든 지시는 재판소에서 할 테니까, 응?”
일본의 큰 도심지는 거의 다 폭탄을 안 맞은 곳이 없다고 하는 데도 이 미국 비행기는 한국 땅에 한 개도 떨어뜨리지 않고 보고만 가는 모양이다. 일본인들은 여자와 아이들까지 참대와 몽둥이와 식도를 써서 만일 미국 군인이 상륙할 때는 모두 찔러 죽이는 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이 기막히고 생각이 없는 일본인들은 미국인을 허수아비로 아는 것인가? 미국 군인들이 일본 아이들의 창대기와 대나무 가지를 갖고 와서 찔러 죽이라고 손을 들고 옆구리를 내밀고 서 있어 주는 것으로 믿는 모양이다. 전쟁을 장난만치 알고 시작한 셈인가?
웃어 버릴 수 없는 희롱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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