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수집 주남선 목사님

2016.01.16 03:17

선지자 조회 수:

김반석 2007-06-18 00:17:46 , 추천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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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선 목사님

거창교회 한 교회에서 반사, 집사, 장로, 전도사, 목사로 세움 받은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출옥 성자 주남선 목사일 것이다.

주남선 목사는 1888년 9월 14일, 경남 거창군 읍내면 동동 28번지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2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거창 군수의 비서관 일을 보기도하였다. 1908년 5월에 복음을 받았고, 1911년 9월에는 잠업 실습소를 수료하였다.

1912년 6월에 맹호은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1914년 서리 집사 임명을 받았다. 진주 경남 성경 학원에 입학하여 1919년 2월에 졸업하고, 1928년에는 거창읍 교회의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성서공회 권서일을 하며 전도에 힘을 썼다.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여 1930년 3월 졸업하고, 9월에 경남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31년 2월 22일, 거창읍 교회 위임 목사로 임직을 맡았다. 삼국(거창, 합천, 함양) 시찰장에서 당회장을 겸하여 청지기 사명을 다하였다.

1935년 11월,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하자 앞장서서 반대 운동을 펴 나갔다. 서부 경남의 각 교회를 순방하며 반대 운동을 시작하였다.

1940년 7월 17일, 신사 참배 반대운동자로 구금되어, 다음 해 7월 11일, 평양 형무소로 압송되었다.

평양형무소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거목들이 모인 감방이 되었다. 주기철, 한상동, 주남선 목사 등이 생명을 주 앞에 내어 놓고 일제 앞에 항거하였다.

194년 8월 15일 조국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당시 어지러웠던 경남 노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사랑과 온유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

진리 보수의 신학 정립을 위하여 죽어버린 평양 신학교의 그 정신과 사상을 계승할 신학교 설립을 위하여 옥중에서부터 기도하여 오던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으니, 1946년 9월 20일, 부산에서 개교하게 된 고려신학교 설립이었다. 한상동 목사와 함께 박윤선, 박형용 박사 등을 세워 고려신학교를 육성시켰다.

1950년 6월 25일, 동족 상잔의 흑운이 이 땅을 덮었을 때 적지가 된 거창을 떠나지 않고 남은 성도들을 돌보며 오직 순교 일념으로 교회를 사수하였다.

인민군들이 그를 잡아다 처형하려 하였으나 그가 지닌 신앙과 인품 앞에 겨누지 못하고 돌려 보냈다. 그는 일생 소원이 순교였지만, 순교를 하지 못하였다.

1951년 3월 23일, 과로에 지쳐 쓰러져 간경화로 별세할 무렵 「내가 순교를 아무리 원하였지만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시니 되지 않더라」고 하면서 눈을 감았다.

주경 신학자 박윤선 박사가 존경한다는 성경학자 오종덕 목사는 "주남선 목사님을 대면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