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길

 

1989. 2. 22. 수밤

 

본문: 창세기 13장 6절∼18절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내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 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와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우리가 지난 주일에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친 공과입니다. 공과는 반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꼭 공과대로 외워서 그 속에 잘 주입이 돼서  강직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 다른 주일학교서는 가르칠 때에 성경 말씀을 그대로 가르치면 어려우니까  이 말씀을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고 동화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동화로 가르치는데  우리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장년반과 같이 설교를 해서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가르치다가 얼마 전에 또 깨달아 가지고 가르치는 방편을 좀 수정했습니다. 좀 더  고쳐서 잘했습니다. 고친 방편은 뭐인고 하니 여게 대해서 해석을 해서 가르쳐  주는 것보다 약간 해석은 들기는 들지마는 공과를 만들어 가지고 그 공과를 한  주일 두 주일 세 주일 네 주일 어떨 때는 다섯 주일도 가르칩니다. 가르치면서  그대로 외우고 그것을 기억하도록 그렇게 하는 방편을 취했습니다. 이 방편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또 전화를 받았는데 거게서는 아예 요 성경대로 꼭 그렇게만  읽어 줘서 암기를 시킨다고 그렇게 합디다. 그랬는데 얼마 전에는 주일학생이 몇  명 안 됐는데 지난 주일에는 육십팔 명이 모였다 그렇게 저한테 소식이 왔읍디다.

그래 가르치니까 학생들이 잘 외우고 아이들이 변화가 돼져서 아주 고렇게  난폭한 아이들인데도 아주 경건하게 그렇게 진실되이 돼진다 이라면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외우고 이 말씀이 그 속에 들어 있으니까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그 보여집니다' 그렇게 저한테 소식이 전해 왔습디다.

 이래서 반사 선생님들은 꼭 요 공과대로 요대로 외워서 가르쳐 줘서 학생들이  다 외우도록 그렇게 꼭 요것을 달성하도록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그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또 아주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이 말씀이  그 아이들을 잘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말과 같은 게 아니고 이 말씀은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진  말씀입니다.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이 말씀에게  명령했고 이 말씀이 실지로 창조의 시공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능치 뭇하심이  없으신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잘 외워서 기억하도록 그렇게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장년반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이제 아브라함과 롯 이 두 사람은  같은 신앙 출발을 한 사람들인데, 같이 신앙 출발을 해서 같이 복을 받고 또  하나님의 온갖 은혜를 충만히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니까,  처음에는 그 두 사람이 있을 때에 너무 허전해서 참 견디기 어려울 만한 그만치  쓸쓸하고 허전한 그런 곳이었는데 얼마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자리가 비좁아서 있을 수 없을 만치 그렇게 큰 부자가 됐었습니다.

 부자가 되고 나니꺄 이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여러분도 뭐 잘 아는데.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자리가 비좁으니까 점점 그 짐승떼는 약대나  양이나 말이나 소나 뭐 이런 것은 자꾸 늘어서 많아지지 면적은 제한돼 있지  이래 놓으니까 자연히 서로 만나다 보면은 서로 시비가 있고 이렇게 해서 차차  그 시비가 짙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가지고 말했습니다. 나나 너나 다 우리는 한 골육이니까  서로 내 목자나 네 목자가 다투지 말고 지금 온 땅이 네 앞에 있으니까 네가  어느 걸 택하든지 좋은 걸 택해서 네 하고 싶은 대로 택해 가고 나면 나는  나머지기를 내가 가질 터이니까 서로 다투지 말고 그렇게 의논해서 하자  이랬는데 거게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그러면 가나안 사람이나 브리스 사람이 그 땅에 같이 거한 그것을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 기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 이것을 필요 없는데  기록하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벌써 거게 자기 숙질간 그 두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방인들도 거게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 보기에 더우기  덕이 안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되는 그런 처지라 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하는 이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둘이 다투니까 처음에는 뭐 두 사람이 이렇게 시작한 것이 두 사람이 네  사람되고 또 스무 사람되고 또 뭐 백 명 되고 이래 양편이 두 편으로 갈라져  가지고 자꾸 이렇게 다른 사람들 그 이방인들 보기에 수치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그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렇게 다투지 말자. 이라면 하나님에게 욕이 돌아가고 또  이방인들에게도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 섬기는 우리로서는  합당치 아니한 일이니까 네 맘대로 좋은 것을 택해서 가고 하면 나는 남은 것을  내가 차지하겠다' 그렇게 인제 말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때에 뭐 그 가족들이 있으니까 아브라함에게도 가족들이 이러니 저러니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겠고, 또 롯의 가족들에게도 가족들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 기록돼 있지 않지마는 양편이 그 시비가 매우 좀 분분하지  아니했나 그런 것을 우리가 여게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랬는데 아브라함이 그때에 취한 심신의 행동과 또 롯이 취한 행동이  달랐습니다. 달랐는데, 달라 가지고 서로 갈라쳐서 롯은 소돔 들 좋은 그 옥토  아주 초원도 좋고 물도 좋고 또 거게는 아주 그때에 큰 그 문화 도시가 옆에  끼어 있어서 자녀 교육하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모든 면이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리 거석하고 나면 남은 땅은 여기 가나안이기 때문에 가나안은 비도 잘 오지도  안하는 곳이고 풀도 없는 아주 발간 자산입니다. 그래서 아주 박토입니다.

그랬는데 두 사람이 갈라질 때 그때 롯은 어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취했으며  아브라함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했던가? 그 아브라함과 롯이 취한  그 마음과 행동은 아주 달랐습니다. 우리도 이 현실을 만날 때마다 아브라함과  롯과 같은 그런 내용이 우리가 만나는 그 현실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일을 예사롭게 알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롯이 취한 행동도  우리가 환하게 알 수 있고 아브라함이 취한 행동도 환하게 알 수가 있는데 롯이  취한 그 행동의 그 결과는 어찌 됐는가?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망했읍니다. 하나는  전쟁으로 먼저 망했습니다. 분쟁으로 망했습니다. 전쟁으로 망했고 또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재앙으로 망했습니다. 이러니까 롯이 취한 그 행동과 태도를 취하는 그  결과는 전쟁으로 멸망하는 것과 하나님의 재앙으로 멸망하는 그 멸망을 받는 그  길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잡고 있어야 됩니다.

 또 아브라함이 취한 그 길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무슨 축복을 했는고 하니  첫째로 자기 성공을 하게 했습니다. 자기 성공. 자기 성공을 했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때에 그 아브라함과 거게 소속한 사람들은 그 뒤에 쪽 내리  읽어보면은 전부 성자 성녀가 다 됐습니다. 전부 성자 성녀가 다 돼 버렸어  아브라함의 아내도 성녀요 또 며느리도 성녀요 아들도 성자요 손자도 성자요 또  그 종업자 모든 목자들, 그 목자들도 전부 성자였습니다.

 그러고 또 그 아브라함은 참 천하의 인간들이 의인과 악인이 있는데, 의인과  악인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천하에 의인들은 전부 아브라함에게 다 복종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천하의 의인은 전부 아브라함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다 돼  버렸습니다. 또 천하의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위하는 사람들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축복을 받아서 물질적으로나 이런 것도 아주 부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길과 롯의 길이 두 길이 달랐는데 아브라함의 길은 그렇게  축복을 받았고 롯의 길은 그렇게 실패를 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여게서 보고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리 됐나 하는 것을 우리가 그 이치를 따져서 고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아브라함은 그라니까 축복받았다 이래만 알 게 아니고  아브라함이 그래 한 길은 축복받을 수밖에 없는 길이고, 롯이 한 길은 망할  수밖에 없는 길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비판해서 확실히 판정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롯은 어떻게 했는고 하니 그 현실에서, 가족들도 말하고 모든 목자들도 말을  하고 또 자기 생각에도 그렇고 이러니까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할라 하면은 자기를 위하지 못하겠고 자기 좋도록 자기를  위하고 자기 좋도록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섭섭해 여기겠고 이런  줄 알지마는 롯은 그만 하나님 원하시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하나님을 위하는  그 길을 못 걸었습니다. 그 길을 못 걷고 자기 위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 우리들이 대개 현실을 당하면 우리가 환하게 압니다. 여게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 되며 또 이렇게 하면 나 좋게 하는 길이 되느냐  요것을 뭐 생각해 보면 누구든지 다 알지마는 그게 참 어렵습니다. 자기 현실 딱  당할 때에 하나님 좋게, 하나님이 좋게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대로, 하나님 위하는 그 걸음을 걸을라고 하면은 자기 위하는 걸음을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자기 원하는 것을 꺾는 것, 자기가 원하는 걸  꺾는 것 자기 욕심을 꺾는 것, 자기 좋은 대로 하는 것 꺾는 것,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롯은 그 현실에서 하나님 좋아하시는 일 번연히 알기는 알지마는 자기 좋아하는  거 자기 가족들이 좋아하는 거 모든 자기 종업자들이 좋아하는 거 또 자기의 그  목축업과 자기의 소유에 대해서 유리한 거 뭐 그 환하게 보여지는데 자기 좋도록  하면 하나님 섭섭하게 하게 되고, 또 하나님을 좋게 위하면 자기에게는 손해가  가지는 이거는 뭐 필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랬는데 롯은 그만 그때에 자기를 꺾지 못하고 자기를 누르지 못하고 자기를  부인해서 버리지 못하고 그만 자기 위주로 살았습니다. 자기 위주로 자기 위주로  살고, 또 자기 가족들 의사 따라 살았고, 또 자기 목자들 또 소원하는 대로  살았고, 또 자기 사업 잘될 대로 따라 살았고, 그러면 하나님보다 자기 사업을  앞세웠고, 하나님보다 자기 그 모든 따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앞세웠고, 또  하나님보다 자기 가족들 좋아하는 것을 앞세웠고, 또 하나님보다 저 좋은 것을  앞세워서 그러면 하나님보다 제게 좋은 것 네 가지를 앞세웠습니다. 네 가지  앞세웠어. 우리 앞에도 반드시 현실마다 요 네 가지 없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다  네 가지가 다 놓여 있습니다. 이랬는데 아브라함은 그와 정반대로 자기의  현실에서 자기 좋은 것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하나님 위하는 것, 하나님을  위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이 좋아하시도록 하나님 위하는 걸,  자기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했고, 하나님을 위했고, 또 자기 가족들 위하는  것보다도 하나님 위했고, 또 자기 모든 종업자들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 위했고,  자기 사업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 위했고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그 현실에서  자기를 위하느냐,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것들을 위하느냐 하나님을 위하느냐 하는  요 두 가지가 고 현실에 놓여 있을 때에, 아브라함은 자기 위하는 그걸 꺾고  하나님 위하는 것, 또 자기 가족들 그 소원하는 그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 또  자기 목자들이 모두 다 원하고 있는 그것보다도 롯의 그 모든 목자들 원하는 것,  이래서 이 산 것이 롯의 생활과 아브라함의 생활이 정반대로 돼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결과가, 하나는 행복이요 하나는 실패로 그렇게 둘로 나눠졌습니다.

나눠졌으니까 뭐 이거는 여러번 말했기 때문에 거기 대해 세밀히 알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말한 그것도 하나로만 말해서 우리가  자기 현실에서 자기보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뭐 내야 어찌 됐든지 나 좋은 것보다  하나님이 좋아야 되지, 나를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야 되지, 또 가족이  좋아하고 가족 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야 되지, 또 내 편에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그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을 위해야 되지,  내 모든 사업이나 내 재산이나 그런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야지, 모든 것보다  하나님 위하는 것을 앞세우는 요것이 아브라함의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는 내가 여러가지, 네 가지로 가르쳤었는데 네 가지 한 거  따져보면 이 네 가지로 말하고 고것보다도 알기 쉽게 간추려서 그만, 자기 가족  위하는 것도 자기 위하는 것이거든. 그만 자기보다 하나님 위하고 자기 가족보다  하나님 위하고 자기 모든 종업자들보다 하나님 위하고 자기 사업보다 하나님  위하고 자기 모든 재물보다 하나님 위하고 뭣보다도 하나님을 위하는 요 걸음을  걷는 사람은 그 뒤가 모든 것이 형통해서 축복이 돼집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가족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편에 있는 모든 종업자들 사람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사업이나 물질 생각하고 그런 것들을 하나님보다 앞세우면 그거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보다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그 사람에게는 사람 성공을 줬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하나님을 낫게 생각하니까 자기는 부인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왕으로 오셔 가지고 계시게 되니까 자연히 그  사람은 성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거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해야 되지 말로 말하면 한정 없기 때문에, 자기보다  하나님을 낫게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람은 의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의인되지, 자기가 그라니까 가족들도 그리 되지, 그라니까 아브라함이 의인되니까  전부 사람들이 다 의인 다 돼 버렸어.

 롯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낫게 여기니까 그것은 하나님보다 낫게 여기니 자기가  중심이 되니까 자기 닮을 것이고 자기 위주고 자기 본위고 자기 주장으로 살 것  아닙니까? 자기는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이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라니까 그 따르는 자녀들과 식구들도 다 그 본 떠 가지고 다 그래  하니까 망할 수밖에 없어.

 이래서 오늘 저녁에는 학습 세례 문답이 있는데 요 하나로만 기억 합시다.

언제든지 우리가 현실에서, 현실에 대두되는 것은 자기도 현실에 관련이 있고  가족도 관련이 있고, 자기와 모든 종업하는, 동역자 동지자 동업자 이거 모두  관련된 자기 편에 있는 사람들도 거게 대두돼 가지고 있고, 자기 사업이나  물질이나 그런 것도 다 대두돼 있는데, 그러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앞서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면은 그만 더들어 가도 그 길은  행복이요 뭐 사람은 의인돼서 사람 성공하고, 또 권위도 성공하고, 또 자기를  섬기는, 자기를 모든 사람이 존귀히 여기는 그 섬김의 영광도 성공하고 모든  사업도 소유도 전부 성공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현실을 당할 때에 하나님은 뒤로 두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낫게  여기든지 하나님보다 가정을 낫게 여기든지 하나님보다 자기편 사람들을 낫게  여기든지 하나님보다 사업을 낫게 여기든지 하나님보다 모든 소유를 낫게  여기든지 하나님보다 낫게만 여기면 멸망이요 절단입니다.

 멸망이요 절단인데 뭘로 멸망했어? 몇 가지로 멸망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가지로 멸망받았습니까? 언제 이래(손가락 넷으로 표시) 말했어? 두 가지  말했지. 전쟁과 재앙으로 멸망받았어요. 전쟁과 재앙으로 멸망받았어요.

 여러분들 가정에 사소한 거라도 한번 가서 가만히 지켜봐요. 가정에서 아주 단짝  같은 참 아주 결혼의 첫사랑이면 얼마나 좋겠소? 이렇게 좋은 그 부부의  사이라도 그들이 그만 한 이삼 일이오. 이삼 일 동안 하나님보다 저거 부부의  서로 사랑하고 재미 있는 것이 나아서 그만 하나님보다 자기의 부부 사랑을  앞세워서 하나님 잊어버리고 자기 부부 사랑으로 사랑하면은 그란 지 한 삼사 일  가지면은 반드시 부부간에 싸웁니다. 반드시 내외간에 싸웁니다. 분쟁이 일어나요.

분쟁이 일어나. 그거 잘 경험해 보면 알아. 나도 많이 경험을 많이 했어.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거라.

 또 뭣이든지 그런 거야, 뭐 전부 세상은 분쟁뿐이오. 세상은 분쟁 없는, 그저  깨끗이 살아서 분쟁 없는 생활하는, 사업에도 분쟁이 없는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자기가 그 며칠 동안 사업이나 사람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앞세운 게  있으면 그다음에는 그만 그 사업이 분요해집니다. 그만 사고가 생깁니다. 분쟁이  자꾸 나와요. 인제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은 자기가 그 현실 처리할 때에  하나님보다 무엇을 앞세운 일을 했으면은 반드시 자기 단독 개인이면 이삼 일  내에 분요가 일어나고 만일 사업적이면은 이삼 개월 내에 큰 분쟁이 일어나  가지고서 사고가 납니다. 요거 경험을 해 봐요, 요거.

 그러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앞세워 그라면은 앞세워서 하면 그거는 뭐 부부간도,  만일 하나님을 꼭 앞세우고 자기 부부를 앞세우지 안하고 그대로 나가면 평생  나가도 한번 서로 분요라 하는 거, 분쟁이라 하는 전쟁이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요걸 꼭 여러분들이 지금 그래 가지고 딱 기억을 하고 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분쟁, 서로 뭐 다투는 것도 분쟁이요 속이는 것도 분쟁이요 그거 돈 떼이는 것도  분쟁이요 떼먹는 것도 분쟁이요 전부 그런 게 분쟁 아닙니까? 분쟁.

 또 하나는 하나님의 재앙은, 재앙이라 하는 것은 사람이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로 자연법으로 우연법으로 이래 가지고 자기가 망해지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재앙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전쟁과 재앙으로 다 망하는 것인데  믿는 사람들이 전쟁과 재앙으로 망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보다 뭣을 앞세우는  그것 때문에 제가 망해 가지고 만날 밤낮 고통을 하고 견디지 못하는 건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학습 세례 문답이 많을 것이라서 이제 이것으로 그칩니다.

그러고 구역장들은 자기 구역에서 학습 세례 문답할 분이 있으면 옆에서 보고  쓰는 것을 잘 보면서 바로 쓰는가 옳게 쓰는가 보고 혹 잘못 쓸 때는 그걸  가르쳐 줘서 '이래 쓰면 안 된다 요거 좀 달리 한번 써 봐라' 그렇게 해서 요런  기회에 학습 세례 문답지 그것을 다 외우고 환하게 알면, 그게 목사 시취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게 뭐 저 우리 진영 목사 시취는 말할 것도 없고, 더 쉽게  냅니다. 그런데 다른 데 아주 어려운 그런 진영에도 목사 시취보다 그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분들이 그거 하라 하면 잘 못 하요.

 이러니까 그걸 공부를 시켜서 이런 기회에 그런 교리와 신조를 세밀히 다  알도록 그렇게 만드는 기회를 삼도록 하시면 좋습니다. 그라고 목사님들  장로님들은 다 남아 있어 가지고 옆에서 쓰는 것을 봐서 아주 틀리게 쓰면  그것을 또 가르쳐도 주고, 또 나중에 시험 쳐 놓고 나거들랑 채점도 하고 그래  가지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빨리 그것을 마치도록 그렇게 합시다.

 반사 선생님들 공과를 외우고 실천할 것,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것, 새벽기도  다 나와요. 새벽기도가 조금 날이 춥다 해도 그만 달라져. 그렇츰 약해 가지고  어짤란지? 부장 선생님들 권찰님들 반사 선생님들 보조반사 선생님들은 자기  제자, 자기 후배, 자기 믿음의 자녀 요것은 꼭 마음에 강직해 놓고 잘 기르도록.

 이번 주에 기도하러 간 분들은 이백육십이 명입니다. 또 예배 후에 학습 세례  문답을 하겠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전도사님들께서는 문답과 채점을 해 주시기  바람니다. 그러면 목사님 장로님 또 권사님들 전도사님들 다 있으면서 그렇게 이  문답에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현실마다 신앙의 두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사실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현실에서 한 현실 한 현실에서 잘 구별하여 롯의 길을 피하고  아브라함의 길을 택하여 걸어가는 저희들이 됨으로 갈수록 형통하고 평안하고  모든 것이 다 주의 은혜와 축복으로 다 성사되고 성공되고 형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다음 시간에 학습 세례 문답을 하는 데도 주님이 함께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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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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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두 갈래길과 그 결과/ 창세기 13장 8절-13절/ 830424주후 선지자 2015.10.28
110 두 가치관/ 창세기 13장 1절-18절/ 881221수야 선지자 2015.10.28
109 두 가지가 결정되는 현실/ 마태복음 5장 13절/ 800211월새 선지자 2015.10.28
108 두 가지 회개하여 네 가지 축복/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60629주전 선지자 2015.10.28
107 두 가지 회개하여 네 가지 축복/ 누가복음 5장 4절-11절/ 860629주후 선지자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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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두 가지 지식/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830602목새 선지자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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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두 가지 종류의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26절/ 820709금새 선지자 2015.10.28
101 두 가지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3절-15절/ 881026수야 선지자 2015.10.28
100 두 가지 순종 일곱 가지 축복/ 창세기 12장 1절-9절/ 881106주새 선지자 2015.10.28
99 두 가지 순종 일곱 가지 축복/ 창세기 12장 1절-9절/ 881030주새 선지자 2015.10.28
98 두 가지 생각/ 로마서 8장 5절-6절/ 820714수새 선지자 2015.10.28
97 두 가지 명령/ 골로새서 3장 1절-4절/ 820414수새 선지자 2015.10.28
96 두 가지 능력/ 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860213목새 선지자 2015.10.28
» 두 가지 길/ 창세기 13장 6절-18절/ 890222수밤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