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지식

 

1984. 8. 31. 금야

 

본문: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8절로 9절까지의 말씀은 일반적인 이 세상의 정반대 되는 세계와 법칙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에 목적을 정하신 것은 하나님과 같은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고 항상 은혜를 베푸는 꼭 하나님과 같은 자를 만들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진행 과정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순서와 방법들도 끼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그 천사 가운데에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그 천사의 타락을 하나님이 예정하셨습니다.

천사를 타락케 예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천사는 타락했습니다. 천사의 타락도  하나님이 예정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님이 하시지 안하면 그 타락 행위를 천사는  못합니다. 그때에 천사는 그것이 변하여서 사탄이 됐는데 이 사탄은 우주 밖에  영계에 있었습니다. 영계에서 흑암에 가두었다는 것은 영계에서 빛을 받지 못하고  어두움에 머물게 됐다 말입니다.

 그래 있다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타락한 천사를 우주 안에 침입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하나님이 섭리하셔서 사탄은 우주 밖에  있다가 우주 안에 들어 와서 배암을 입고 하와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럴 때에 하와는 배암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이 타락한 천사와 꼭 같은 그런  하와가 됐고, 또 하와가 아담을 이 타락한 걸 가지고서 유혹을 시켜서 아담도 이  유혹에 빠져 가지고 타락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타락한 천사와 꼭 같이 다시 말하면 사탄과 마귀와 꼭 같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서 모든 것을 자기에게 귀속시켜서 자기를 위해서 있도록  그렇게 하려는 아담 해와가 됐고. 이것으로 인해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원죄. 원죄는 하나님 중심 위주의 것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타락한 그 타락성을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하고, 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라는 이 원죄를 가지고 이 원죄로 인해서 온갖 범죄하는  것을 가리켜서 본죄라 그렇게 구별해서 말씀합니다.

 그때에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자연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연인이라 일반인이라, 자연인이라 일반인이라 특수인은 부정 모혈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만 특수 인물이요 모든 부정 모혈로 된 사람들은 다  자연 인물들입니다.

 이 자연 인물은 아담이 전 자연 인물의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계약한 그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보통 생육법으로 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아담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그 계약에 동참한 자가 되어졌고 아담이 계약을 어긴  그 어김에 동참한 자가 되어져서 꼭같은 정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은 자기 중심의 세상이 됐고 자기 위주의 세상이 됐습니다. 고  자의식을 가지고 고 하나님의 신성의 형상대로 인격성을 가진 그런 존재들은  전부 다 아담 해와의 이 타락성을 다 입게 됐습니다.

 그런고로, 온 세상은 다 배암의 세상 곧 사탄의 세상이 되었으니 전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원죄와 본죄를 가진 정죄와 저주와 사망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다 됐습니다. 한 사람도 없이 다 그렇게 됐습니다.

 이런 것을 여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서  대형의 대속과 대행의 대속과 대화친의 대속을 예수님이 설정하심으로 비로소 이  생명의 문이 열렸습니다  히브리서에 지성소에 휘장 가운데로 였려 있는 생명의 길이 열렸다 하는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생을 가로 막고 있는 죄악이 대속으로  인해서 갈라져서 하나님과 사람이 통할 수 있는 그런 생명의 길이 열려졌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다 원죄와 본죄가 주관하고 있는 세상이 됐고, 다른 만물들은 다  여기에 동참하지 안했습니다. 뭐 이런 식물 저런 채소 그런 것들은 다 이 범죄에  동참해서 범죄하지는 안하지마는 그것들도 다 이 정죄와 저주는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전부 저주로 가득 찼고 정죄로 가득 찼고 사망으로 가득 찼고  이렇게 되어 있는 온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여기에서 벗어나게 됐고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이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택자들은 여게서 벗어날 수 있고 불택자들은  벗어나지 못하는데, 택자들은 자신이 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공평된 그  공심판에서는 다 이 정죄 저주 사망에서 벗어난 자 됐습니다. 예수님이 대속할  때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가 됐습니다. 나기 전에 대속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면 입고 있는 대속이 언제 효력을 내는고 하니 그 사람이 잉태돼서 그  출생해 가지고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해서 중생되는 그때부터 이 실상으로  대속의 공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피조물이 어떤 피조물이든지 하나님에게 속하고  복종하면 다 생명과 평강을 얻게 되고 어떤 피조물이든지 하나님을 배반하면 다  저주와 사망을 받는 이 피조물이 되어지는데 이 지식을 이 지식을 택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면 영영히 멸망한다 하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이 큰 지식인데 지식은 두 가지가 피조물에게 필요한  지식인데 한 가지 지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면 모든 면이 다 행복되고  완전해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멸망받는다 하는 이 두 가지 지식이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지식만 가지면 다 됩니다. 거게는 하나님이 어떤분이시기  때문에 어떻다는 것도 다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지식을 택자들에게 넣어  주는데는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러면 영원한 밀망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자신은 영원한 멸망에서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헤어날  길이 없으니까 영원한 멸망받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까?  영원히 멸망받는데, 그 지식은 가지고 멸망을 하지 아니하도록 이래 하는데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되셔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베풀지 안하면 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이 이런 고난을 친히 당하시기를 작정하고 우리 사람들에게 타락의  결과가 어떠하다 하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다른 말로 하면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배반하면 어찌 된다는  이 지식은 온 지식의 반쪼가리인데, 이 반쪼가리 그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큰 학비를 투자했습니다. 당신의 이 사람되심과 대속의 죽으심과  또 영원히 사람되신 이 큰 사랑의 희생으로서 이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이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왜 인류를 타락하게 하셨느냐 그 이유는 택자들에게 타락이  얼마나 무섭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다 하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이 지식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 이 타락을  예정하시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은 하나님이 큰 희생을 각오하시고 우리에게 이 지식을  주실려고 타락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입니다. 택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게 대해서 그 결과가 어떠하다 하는 그 지식을 알리기 위해서 하셨고  또 불택자에게 대해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 생활과 영원무궁  유황불 구렁텅이에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 결과를 받는 그런 것을 만드셔 가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영원히 거울 되고 영원히 그 시금석이 돼서 영원토록  알리기 위해 가지고 그와 같이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하후 하박할 수 있느냐? 당신이 없는 가운데에서 당신  쓰시기 위해서 이래 지었든지 저래 지었든지 지어 가지고 당신이 쓰시는  것이니까 지음을 받은 것은 짓는 분의 자유대로 지으시는 대로 지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요 거기서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토기장이가 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서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토기장이 마음대로 만드는데 토기가 있다가 그릇이 있다가 나는 왜  천하게 만들어 줬습니까 이렇게 할 수 없느니라 함과 같다고 그래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 전부 사망 죄 저주 모든 삐뚤어진-죄라 말은 삐뚤어친 거라  말입니다.-모든 죄가 관영한 이 세상으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만드신 것은 뭣  때문에 만드셨느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첫째는 하나님을 떠나는 그 결과는 어떠하다 하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 가지고 타락 세상을 만드셨고. 또 둘째는, 이 타락한 것이  하늘까지 관영하도록. 삐뚤어진 것이 관영 삐뚤어진 것이 가득 차서 참 꼭 그거  같은데 아닌 거. 사이비한 것으로 가득 찼고, 그것으로 가득 찼고, 뭐 남을 해하는  걸로 가득 찼고 또 훼방하는 거, 삣는 거, 깎는 거. 간사 부리는 거, 남과 사이를  벌어트리는 거 별별 말이지요 그 죄악의 종류는 참 헤지 못할 만치 많습니다.

그런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든 것이 첫째는 택자들에게 이 고상한 지식을  알려 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 첫째 만든 이유요,  둘째로는 이러한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 속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이 껍데기에서  연결되는 거 아니고 영으로 연결되고 영에서 마음으로 연결되고 마음에서 그  몸으로 연결되고 몸에서 그 모든 사물 행사에게 연결이 되어지는 그 순서인데,  하나님과 연결되어 이 관영한 죄악의 사망의 세상에서 이 하나님과 연결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된 이 연결로 인해서 이 사망이  가득 찬 세상에서 사망에 걸리지 안하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충만할 수 있고.

이렇게 자기 중심이 가득 찬 세상에서 자기 중심 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자기 위주로 관영한 세상에서 자기 위주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 위주로 사는.

이렇게 해서 이제는 옳고 바른 빛의 생활을 할 때에 영원 무궁토록 있을  어두움은 세상에 다 만들어 놨습니다.

 이렇게 어두움을 다 만들고 삐뚤어진 걸 다 만들고 이제 옳은 것을 대적하는  것을 다 만들어서 이걸 만들어 놓고 만들어 놓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이 주님과 연결된 이 연결의 힘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에게 지극히 크신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신 이 능력에 연결되면  이렇게 삐뚤어진 데서 삐뚤어지지 안하고 거게서 바를 수 있고, 이렇게 악한  가운데서 하나님 중심일 수 있고, 이렇게 전체는 자기 위주 피조물 위주인데 그  속에서 하나님 위주를 일으킬 수 있고, 이래서 하나님의 그 목적인 택한 자들을  연단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죄악을 만들었다. 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다 거게서 연습해 가지고 연습을 해서 점점 익숙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  이래서, 이 세상은 영원무궁의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인 것입니다. 이외에는  없습니다. 무궁세계의 마귀들은 전부 이 세상에 다 출동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사망과 저주와 악이 관영한 이 세상 이 세상을 이기면  영원히 그 사람은 이길 수 있고 이 세상에 미혹받지 안하면 그는 영원히 미혹 안  받을 수가 있고. 이 세상에서 사이비한 것은 다 정평 정가 할 수 있다면 영원  무궁토록 영원 무궁세계의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에서  뭣이든지 다 정평 정가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이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타락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거는 아니지마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이  죄악을 많이 이겼든지-죄악이라 말하면 삐뚤어진 거라 말이오. 죄라 말하는 것은  삐뚤어진 것이라 말이요 악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이나 뭐 피조물 중심이나 그런  것들 다 피조물 중심 그거 다 악입니다.-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악을 자기가 어느  정도 싸워서 이겼느냐 하는 고 실력, 어느 정도 사이비한 데서 정평 정가를  했느냐 하는 고 실력, 어느 정도에서 수많은 유혹에 들지 안하고 그 유혹을 다  이기고 참고 견뎌서 남았느냐? 또 어느 정도 그 어려움의 어려움을 그것을  인내로 다 극복했느냐 하는 그것은 영원 무궁 세계에 가 가지고 그런 것을 이긴  자로서 하나님께서 등용하셔 가지고 그런 것을 영원히 통치할 수 있는 그런  권세를 맡겨서 하나님 대리 노릇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 무궁토록 천군 천사를 우리가 재판합니다. 천군  천사들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재판을 받게 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에게 다  재판을 받습니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는 그들은 우리에게 재판을 받을란지 안 받을란지 거게  대해서는 지금 단정은 못 하겠습니다. 성구가 명문되어 없기 때문에 단정은 못  하지마는 보면 세상을 너희들이 다 판단할 너희들이라 한 걸 보면 이 세상은  무궁이 내나 무궁이 내나 이 세상에 뿌리 박아 가지고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도 우리가 다 모든 것을 시비 곡직을 다  판단해 가지고서 다 재판할 그 재판장이나 또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시비를  가려서 재판할 재판장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심판장이요 우리는 거게 속한 심판장으로서.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한다' 그말은 이모든 행정은 행정은 시비  곡직을 판단해서 건설과 파괴하는 것이 모든 행정입니다. 행정이라하는 그 정의는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시비곡직을 바로 가리고 그래서 파괴와 건설을 책임지고  하는 것이 행정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세상에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간의 타락과 죄를 만들어 냈는가?  낸 이유는, 택자들에게 택자들에게 완전한 지식을 넣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타락을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경험해 보고 체험해 보고 모든 그 구름같은  인류들이 다 하나님을 이렇게 배반한 것은 이런 결과가 맺었고 저렇게 배반한  것은 저런 결과를 맺어서 맺은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당신이 친히 이 지식을 알릴려고 하면은 우리는 영원히 멸망받는데  멸망받을 때에 당신이 영원히 멸망받는 그 대신 멸망을 받는 이 큰 희생을  해서라도 우리에게 이, 지식을 넣어 주지 안하면 하나님의 계대자가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 없고 만물을 심판하는 그런 심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이 타락을 하늘에서부터 예정하셔서 이루어 나왔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 타락을 이 때문에 하나님이 내셨다 하는 그것 첫째로 알아야 되고 둘째로는  이 타락으로 관영한 세상에 모두 다 타락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 타락의 사람이  돼 가지고서 사는데 다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이 많이  됐든지 적게 됐든지 연결된 것만치는 이 모든 타락을 다 능가하고 헤치고 이  타락을 능가하고 헤치고 타락을 능히 통치하고 호령치고 타락을 심판할 수 있는  이런 실력으로 우리를 배양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타락의 이용 가치를 이  둘을 인해서 타락이라는 이것을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까지만 나가고, 그러면 오늘 저녁에 두 가지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타락을 뭣 때문에 냈는가? 택자들을 위해서 냈습니다.

 또, 이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이 정리하지 안하시고 왜 이렇게 이 타락의 죄악이  관영한 이 아주 황토수와 같이 똥 구덩이와 같이 똥 구덩이와 같은 똥 구덩이와  같은 이 세상 또 소산수 탱크와 같은 이 세상. 독약 탱크와 같은 이 세상. 악어의  소굴과 같은 이 세상 이 세상으로 하나님이 왜 이렇게, 지속이 되도록 이렇게  보존을 시키시는가 보존을 시키는가 하는 고 이유 그것은 성도를 이런 것을 능히  이기고 이런 것들을 이런 거 속에서도 이런 것들에게 감염되지 안하고 유혹받지  안하고 여기에 점령당하지 아니하고 이런 것들을 능히 이기고 모든 것을 정평  정가해서 이런 것들을 다 사로잡아 통치할 수 있는 이 실력가,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천군 천사와 지옥의 음부에 있는  모든 것들과 모든 만물을 다 이것을 통치할 수 있는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 내가 이제 이 권세 가지고 너희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동행할 터이니까 너희들이 내가 이긴 거와같이 이기면 내가 이  보좌에서 하늘과 땅의 것의 권세를 다 내가 받아서 가진 내 위치에 너도 이  위치에 보좌에 앉아 가지고서 모든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타락한 이 관영한 세상은 성도를 이런 것을 능히 이기기  위해서 성도를 연습시키고 또 연단시키고 연성시켜서 능히 하나님의 대리 노릇을  후사 노릇을 능히 할 수 있는 이런 실력가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드셨는데, 이것이 언제까지 이와 같이 있을 것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일단 끝이 나서 이 세상은 없어집니다. 없어지고 이제는 이렇게 이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이루는 세상도 끝나 버리고 이 악을 극복해서  심판할 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자가 될 수 있는 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통치할 수 있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대제사장 노릇하고 선지자 노릇 할 수 있는  이 실력을 배양할 거 배양하고 또 멸망할 거 멸망하고 이 일이 다 예수님 재림  때는 끝이 나니까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다 불로 사뤼서 모든 체질이 다 녹아져  가지고 원소로 돌아간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재림되면은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 타락이 없고 무궁세계의  타락한 이 세상에서, 타락한 이 세상에서 이런 죄 저런 죄의 그 결과가 어떠하냐  하는 것을 그것을 설비해 놓은 것이 유황불 구렁텅이의 무궁한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함이 어떠냐 하는 것을 구경할라 하면은, 지옥에  가면은 그것을 상세하게 다 알 수 있고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당신을 믿음으로  당신을 믿음으로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당신을 믿음으로서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을 믿음으로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을 믿음으로 당신에게 복종하는  이 천태만상의 복종이 있으니까 어떤 복종이 어떤 그 결과의 생명과 영광을  마련했느냐 하는 것을 하늘나라 가서 보면은 다 알도록 이제 그것은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그와 같이 설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럴 때 이거 참 문제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지체 가운데에 우리 기능이  우리 기능이 참 내 혀와같이 내 수족같이 내 기능이니까 그 얼마나 필요합니까?  내 기능이니까 내 힘이니까 얼마나 내게 필요하고 보배입니까? 이런데 내  보배로운 내 힘이요 눈으로 보는 시력이요 말하는 그 언변력이요 또 자기의  판단하는 모든 능력이요 모든 그 제작하는 모든 능력이요 창작력이요 오만 거 내  오만 필요의 이 능력을 능력을 이것을 이 주체가 되는 주체가 되는 이 자기라는  것이 자기라는 것이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서 자기 아닌 이거 원수 자기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서 그만 현실에서 마귀 노릇을 하고 배암 노릇을 해 가지고 그  현실에 해당한 그 모든 자기의 기능은 다 죽여 놨다 말이오. 죽여 놔서 다 죽여  놨으니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아서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 가 가지고 우리가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구경하러 갈 수  있을까. 갈 수 있을까? 그걸 생각할 때에 나는 못 가겠다 이래 생각이 됩니다.

왜? 가면은 내 팔이 내 팔이 끊겨져 가지고 팔이 죽어서 쭉 뻐드러져 가지고  있는 팔도 있을 것이고 다리도 있을 것이고 내게 있는 정신도 있을 것이고  죽어서 내가 내가 내게 있는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이 죽어 가지고 있는 죽은  시체가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그 심판받고 있는 그 꼴을 볼 때에 그 꼴을  볼 때에 내가 불안해서 참 내 지체에게 지체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황송해서  그때에 어떻게 될까, 그 문제가 어떻게 될까 하는 그것이 늘 그저 아마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안하고서 늘 생각이 저에게는 됩디다.

 만물도 그래요. 만물이 띵 하이 해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까 띵 하고 있는데. 내가 가니까 띵 하이 해 가지고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돈이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양식이 헝벌받고  있습니다. 무슨 물질이 의복이 형벌받고 있습니다. 그 띵 한데 한 군데는 가니까  방긋방긋 웃으면서 오느냐고 아주 환영을 하고 하, 오시느나고 이라면서 환영을  하고 좋아하는데, 그 유황불 구렁텅이는 가니까 그만 그렇게 삐꿔 가지고 있다  말이오.

 '와 저래 그 여기는 전부 날보고 불평하는 것만 있네' 이랬는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성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 생활을  하지 안하고, 자유 생활은 영감과 진리대로 생활하는 것이 자유 생활한 자유  생활했으면 그때에 수종들던 만물이 다 살아서 다 하늘나라 가 있을 터인데 내가  범죄했기 때문에 그게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내 팔도 떨어져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지, 손가락도 떨어졌지 눈도 빠져 가지고 그래 있지.

 이러니까, 눈의 뭐 눈의 기능이 예를 들면 만일 눈의 기능이 백 점쯤 됐다고  하면 백 점쯤 됐다고 하면은 오십 점은 다 죽어서 벌써 빠져 가지고 거게 가  죽어 가지고서 지금 벌거벗어 있고 오십 점은 하늘나라 가서 있고 어떤 사람은  백 점이 다 하늘나라 가서 있으니까 눈이 얼마나 밝겠소? 시력이 백 점이 다  하늘나라 가 있는 사람, 시력이 한 점만 하늘나라 가 있고 구십 구점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그 명문되어  있으니까 절대라고 이렇게 주장은 하지 못하지마는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덧없는  소경이 있지 않겠느냐? 제 시력은 전부 다 죽여 놨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 그  지옥에 가보니까 제 시력이 눈이 빠져 가지고 전부 형벌받고 있으면서 가니까  삐쭉삐쭉하면서 원망 불평이 뭐 굉장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받았기 때문에 나를  잡아서 끌어 들여서 죽이지는 못하지마는 불평이 한도 없다 말이오.

 그러나, 하늘나라 가 보니까 여게 가보니까 자기의 기능과 기능이 살아 가지고  있고 자기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만물들이 다 하늘나라에 있어. 하늘나라 곡간에  쌓여 가지고 있어. 이러니 가 보니까 모두 환영하며 인사를 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뭘 감사하다고 내가 뭘 잘 했는데?' '아 당신이 호주머니에 있는 돈  있는 거 이거 그 전에는 담배 피우고 술 먹고 이래 하던 그 돈인데 나는 술 먹고  담배 피우지 안하고 그거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데에 썼기 때문에  당신이 주를 위해 썼기 때문에 내가 돈 내가 지금 하늘나라 와 있습니다. 연보를  했기 때문에 하늘나라 와 있습니다. 전도비로 썼기 때문에 하늘나라 와 있습니다.

모든 불쌍하고 가련한 자를 주의 이름으로 다 구제하고 도와줬기 때문에 와  있습니다. 당신을 잘 만나서 돈 내가 지옥에 가지 안하고 지금 하늘나라 와  있습니다. 물질 내가 지옥에 가지 안하고 하늘나라 와 있습니다.'  이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도 동록이 없고 도적도 구멍을 뚫지  못하느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은 뭣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못 쓸 세상을 만들어 놨는가?  이유가 있어.

 몹쓸 세상을 만들어 놓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뭐이냐? 우리에게 사망,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대한 그 지식을. 배반이 어떻다 하는 그 지식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그러면 당신이 장난삼아 만드셨습니까? 이걸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이 지식을 주는데는 당신이 친히 사람돼야 되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기까지 이렇게 큰 희생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큰 지식을  넣어 줬다 말이오.

 이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타락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큰 희생  하셨다' 하는, 이 하나님의 그 지식을 넣어 주고자 하는 우리에게 지식이 있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지식이 있기를 원하는 욕심, 그 욕심. 사랑의 욕심이 당신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이 학비를 들여 가지고 알려 주셨다. 이것을 처음에  깨닫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운 사람이 있습니다. 운 사람도 있어. '이렇게  하나님이 날 사랑하셔서 이렇게 타락을 주셨다'  저도 이 하나님께서 큰 학비로 이랬다는 것이 부산 오기 전에 거창 있을 때에  집회할 때에도 그 여러 번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둘째로는 둘째로는 왜 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이와 같이 없애 버리고  정리하지 안하고 다 이와 같이 지금 둬 두는가? 요렇게 거짓말쟁이 간교  거짓말에서 거짓말 거짓말에서 거짓말 또 거짓말, 거짓말 그 뭐 이렇게 거짓말만  가득찬 이 마귀를 둬 가지고서 성도를 요렇게 꼬우고 저렇게 꼬와 가지고서  넘어지게 만들고 이렇게 하는가? 이렇게 하는데 잘못 생각하면은 마귀를  미워하지마는 마귀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귀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것은 여전 하나님의 승리를 넓게 궁극적으로 생각하면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사장 미가엘은 모세의 시체에 대해서 마귀로 더불어 다툴 때에  너 하는 일은 그거는 잘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말했지 거게 대해서 그렇게  미워하거나 정죄하거나 그런 일을 하지 못했다 하는 것을 유다서에 기록해  놨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을 보존하여 두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렇게 더러운 데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이렇게 사이비에서 꾀우고 꾀우고 속이고 속이고 요렇게  유혹시키는 데에서도 유혹을 받지 안하고, 요렇게 사이비한 기묘한 복잡 가운데서  옳고 그른 것을 똑 정평 정가해서 가려내고. 이런 위협 협박 속에서도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해서 이겨 나가고, 이렇게 억울하고 해서 도무지 그 사랑을 유지할 수  없는 데에서 사랑을 유지하고 진실을 유지 할 수 없는 데에서 진실을 유지하고.

정직을 유지할 수 없는 데에서 정직을 유지하고, 의를 유지할 수 없는 데에서  의를 유지하고 용서를 유지할 수 없는 데에 용서를 유지하고, 이 관용 관대를  유지할 수 없는데서 관대를 유지하고, 이해할 수 없는데서 넉넉히 이해하고. 참고  견딜 수 없는데서 참고 견디고 이래서 그것을 가리켜서 이 어려움이 어려움의  도수가 올 때에 그걸 가리켜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고,  밤중에 등불을 들고 신랑 맞이했다 말은 참을 수 없는 거게서 참는 그 자라야  주님 맞이할 수 있다. 이거는 미워하지 안할 수 없는 이거야 안 미워할 수 있나?  미워하지 안 할 수 없는 거기에서 미워하지 안하고 사랑하는 자가 그게 등불 든  것이라 주님을 맞이한다 그 말입니다.

 이래서, 우리 성도들을 연습시키고 연단시켜서 연성시켜 가지고서 능히 하나님의  이 목적의 사명을 감당해서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이 세상을 이렇게 해 두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두 가지 오늘 배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고 따라서 내가 악하게 살 우리가 아니라 왜 이  세상에 악한 것이 내 주변에 가득 차게 했느냐? 나도 따라서 악하게 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을 자꾸 많이 숭상해서 가득 차지 안 한 것은 세상 전체가  악으로 관영해도 나는 그 악을 이기고 악에게 물들지 안 하고 악에 피동되지  안하고 악에서 정반대의 선으로서 천하가 다 자기 중심, 민족 중심 뭐 인류 중심  이래 간다고 해도 자기는 자기 혼자만이라도 하나님 중심이라는 그 중심을  빼앗기지 안하고 요동치 않는 이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두는  것이지 내가 그거 본뜨고 그게 닮아 가고 괴롭다고 그만 따라가고 괴롭다고 해  가지고서 이제 주님이 우리에게 그 맡기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 본질과 본성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거 두신 거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의례히 세상이 이렇게 삐뚤어지는 것이 삐뚤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삐뚤어지게 했기 때문에 그 삐뚤어짐에 삐뚤어짐에 따라서 피동되는  삐뚤어짐을 안 할 자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그 삐뚤어짐에 따라가지  안할 자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록에 녹명되지 안한 자로서는 다 거게 진다  했습니다. 삐뚤어진 것도. 하나님과 연결된 것만치 연결이 한 점 연결됐으면 한  점은 삐뚤어진 걸 이겼고 열 점 연결됐으면 열 점 그것만 삐뚤어진 걸 이겼지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요 하나님에게 따라가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받은 것인데 하나님에게 능력 받은 것만치 세상을 이기고  인간에게로서는 다 이기지 못하고 지도록 해서. 믿음을 연단한다 말은 그  어려움을 줘 가지고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 신적 요소를 받아 가지고서  신적 요소로 준비돼 가지고 있는 그것만 세상을 이기지 다른 거는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신적으로 받아 가지고 신적 요소로 된 그것만 남고 나머지기는 바싹 불로  태우기 위해서 이 청강수를 붓고 불의 도수를 높이니까 이제 금만 남고  나머지기는 바짝 타는 거와같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신적 권능으로 신적  요소로 이래된 것 그것만 남지 나머지기 인간의 각오나 결심이나 뭐 수단이나  무슨 지식이나 인간 요소로 된 거는 다 그것이 부패성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로 된 거는 다 불 태워서 없애기 위해서 모든 시련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걸 모르면 안 돼요.

 왜 세상은 이렇게 죄악으로 하늘까지 관영하게 만들었는가?  첫째 이유가 뭐입니까? 첫째 이유가 뭐이요? 첫째? 우리에게 하나님 배반하면  어찌 된다는 그 큰 지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것을 하나님께서 타락을 예정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시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생 많이  하니까 우리가 고생을 많이 하니까 하나님께서 놀면서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셔서. 요걸 알아야 돼요.

 그런데, 그랬으면 됐지 이제 알았는데 이걸 다 없애 버리지 와 또 이래 두는가?  지금도 계속해요. 자기 주장대로 하면 망한다는 것을 지금도 경험하고 체험해서  이제 뭐 목사도 날마다 경험하고 체험합니다. '아, 내가 잘못했다. 요래서 요  결과로서 실패했다. 다시 또 고치자.' 이러니까 죽는 날까지 날마다 이거 있기  때문에 실패를 하고 실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고치고 이래  가지고 자꾸 개량이 됩니다. 개량, 개조 회개 자꾸 돼 나간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세상을 악하게 한 것은 악한 세상에 우리는 연단 받아서  거게 물들지 안하고 그와 같이 따라가지 안하고 악한 세상에서 선한 자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악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 거게 따라 가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그거 뭐 그러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고생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거 아니고 고생 가운데서 우리가 돼진다 말이오. 정금이 돼져. 그것  때문에 만들어 놓은 건 줄 알고. 그러니까 우리 생활을 우리가 똑똑히 구별해야  되겠고 세상 생활을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 생활은 삐뚤어진 것이 세상 생활이요, 자기 중심의 생활이 세상 생활이요,  자기 위주의 생활이 세상 생활이요, 타락이 세상 생활이요 다 저희들의  것이지마는 우리는 그대로 살 거 아니라 거게서 연단받아서 그게 아무리 그래도  거기에 물들지 안하고 그 천하 것이 다 달라들어도 그로 인해서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요 정금 같은 요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요것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했기 때문에 우리 생활은  세상을 이기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세상에 물들지 안 하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세상에서 바로 세상을 정평 정가해서 아는 것이 우리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세상에 감염되지 안 하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세상과 정반대 되는 하나님을 따라서 사는 그것이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세상은 체휼하지 안해. 체휼이라 말은 자기 몸 같이 사랑한다  말이지. '세상은 체휼하지 않는데 너는 체휼하며 세상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데  너는 형제를 사랑하며 세상은 불쌍히 여기지 않는데 너는 불쌍히 여기며 또  세상은 교만한데 너는 겸손하며 세상은 악을 악으로 갚는데 너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그러면, 여기 악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이라는 그게 근본이 그건데,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산다고 해서 너도 그래 살 것이 아니라, 천하  사람이 다 저만 알고 다른 사람을 해하는 자기 위주로 다른 사람을 해하는  사람이 온 천하 사람이 다 그렇다 해도 너는 그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 거게서  하나님 중심으로 인해서 그 사람을 위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내 생활이라  그말이오. 천인이 다 절 위해서 나를 이용하고 해한다고 해 가지고서 나도 해할  사람이라. 그 속에서 나는 감염되지 안하고 그 사람을 위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복을 빌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것 때문에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다. 세상을 죄악으로 관영한데 관영한 죄악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를 예수  믿도록 만든 거 아니라 관영된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에 우리는 의로 관영한 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부르셨다 그말입니다  그것은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저 구역에는 '복을 대 잇게  하려 함이라' 이랬는데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대 잇게 하려 함이라'  하는 그 말에 이게 다 넓은 범위에서는 다 들어 있지마는 재미있는 말입니다.

 고 복은 예수님이 예수님이 인간 성공했습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로서는 완전 성공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로서는 완전 성공했어.

완전 성공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로서는 완전 성공을 했는데, 저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는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모든 만물들이 예수님에게 대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예? 뭐라고 말했지요? 주라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 신성에만 그랬습니까 신인 양성 일위에게 그랬습니까? 양성  일위에게 그랬습니다. 피조물 인성에게, 신성은 의례히 그렇지마는 피조물 그  인성에게 그와 같이 그 존대를 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 내가 무슨 말 하다가 그리 나갔지? 어? 아. 복을 대 잇게 해.)  이래서 예수님이 요렇게 상관해서 예수님이 인간으로서는 제일 성공했고 참  피조물로서는 제일 성공 완전 성공했습니다. 완전 성공했고 완전한 행복된 길을  걸었고 제일 쾌락의 길을 걸었고 제일 참 영광의 길을 걸었고 행복의 길을  걸었습니다. 걸었는데, 얼마나 걸었느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물 속의  것이 다 예수님 앞에 다 무릎을 꿇고 이제 다 주라 시인하는 이 영광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복을 대 잇게 함이라' 복은 예수님의 생애가 복이요 고 예수님이 복이요  예수님의 고 생애가 복이요 예수님의 생활 방편이 복인데 '복을 대 잇게 함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요렇게 승리하신 요 승리대로 너희들도 승리해서 저 유황불  구렁텅이에 있는 그 모든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너를 찬송하고 찬양하도록  이렇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너는 세상같이  살지 말아라. 그들은 그들은 저만 알아도 '너는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 '복을 대 잇게 하려 함이라' 구역에는 그렇게 번역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또 구역책을 한번 보고 그 일본말 성경은 내가 보지 못했습니다  이랬는데 복을 대 잇게 했다. 우리를 예수님 대 잇기 위해서 예수님 대잇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새끼 새끼 예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알아 듣기 쉽게  새끼 예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따라서 살 것이 우리 아닙니다. 세상이 내게 어떻게 한다고 해서 내가 일대 일로  세상이 내게 이렇게 하니 나도 그래야지 주먹을 대니까 나도 주먹을 대지 세상이  날 욕하니 나도 욕해야 되지 세상이 날 속이니까 나도 속여야 되지, 그러니까  세상은 이렇게 사는데 주님은 세상과 같이 살지 아니하고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 관영한 죄악에게 조그만한 피해도 보지 안하고 조그만한 회동도 하지 안하고  그 모든 것을 다 능가해서 이 죄악이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구출하신  예수님의 이 생애를 계대해서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너희들을  불렀으니 이것을 깨달아라는 것입니다.

 녜, 시간이 많이 지나가서 고 다음은 내일 아침에 계속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오늘밤에 배운 거 요거 두 가지 지식을 단단히 배우고, 한 가지 더  예수님의 계대자, 예수님의 계대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불렀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계대자이니까 만물이 예수님을 주라 찬양했으니까 우리도 바로 되면  만물이 우리를 찬양하지, 지옥에 있는 모든 것도 우리를 찬양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현실 현실에서 믿음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빌립보 2장 5절에는 말씀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이 이렇게 이렇게 살았는데 너희들도  이렇게 이렇게 살면 예수님이 승리해서 만물들이 다 주라 시인한 거같이 너도  만물들이 너를 주라 시인할 것이고 지옥의 모든 것들도 다 너를 주라고 시인할  수 있는 이런 성공을 오늘에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니' 그  마음 품고 그 생애 본받아서 그대로 걸어가고. 그래서 예수님이 승리함같이 너도  승리해서 아버지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음같이 승리하신 예수님의 보좌에 너도  승리하고 같이 앉도록 해라.

 이것이 우리 생애요 우리 목적이요 우리 희망이요 우리 소망인데 우리가 썩어질  이 세상 가지고 시비할 것 뭐입니까? 예? 좀 마음을 크게 먹어 가지고서  관대하게 해 가지고서 넉넉하게 살아야 됩니다. 넉넉하게.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또, 새벽기도회에 좀 빠짐없이 와요. 새벽으로 참 진리를 가르쳐 주는데  새벽으로나 진리를 가르쳐 주지 이 많이 모았을 때는 대중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그 진리를 가르칠 수가 없소. 그저 일반적인 말씀 밖에는 가르칠 수가 없고  새벽에는 잘 믿는 사람들만 오니까 좀 깊은 진리를 가르칠 수가 있다 말이오.

 새벽에 안 나오는 사람은 진리를 모르요. 모르면 모르면 무슨 구원을 이룹니까?  알면 죄를 지을 리가 없습니다. 알면 자기가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실수는 할  수 있고 허물은 있을 수 있지마는 죄는, 지을 수 없어. 고범죄는 지을 수가 없어.

그 아니까 그거는 지을 수가 없어. 지어도 뒤에 가서 즉시 회개하지 그 일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로 믿을려면 새벽으로 꼭 나오십시오. 새벽에 나와서,  아, 예수님은 새벽 기도 꼭 갔는데 우리가 뭐이 잘나서 새벽기도 안 나옵니까?  새벽 기도 못 나오도록 사업이 그러면 사업을 좀 축소를 시켜서라도 새벽 기도  안 빠져야 됩니다. 언제 떠날지 압니까? 주님이 언제 구름타고 오실지 모르는데  뭐 그까짓 거 적게 벌어 봤자 좀 곤란스럽게 살면 되고 많이 벌어서 고기 밥에  잘 먹어봤자 썩을 때는 같이 썩고 그것 때문에 구원 이루지 못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러니까 사업에 제재 받지 말고 어짜든지 새벽기도 다 나오도록 해요. 이  사람이 다 새벽 기도 나와요. 이 많은 사람이 새벽 기도 다 나오면 또 하나님께서  굉장히 기뻐서 은혜도 많이 줍니다. 은혜 많이 주면 또 백목사도 은혜 많이 받고  여러분도 은혜 많이 받고, 사람의 수가 많은데 따라서 하나님 은혜를 더 많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새벽 기도 꼭 나오도록 결심해요. 새벽 기도를 못 나오게 하는 그런  것은 다 고쳐 버려요. 뭣을 새벽 기도하고 바꿀 게 뭐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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