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관

 

1987. 4. 15. 새벽 <수>

 

본문:베드로후서 3장 10절∼14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여게 대해서 여러 시간 계속했고 우리가 어제 아침에도 하나님 앞에서 작정을 해 봤는데 그러면 오늘 아침에 또 한번 각자들을 한번 심사해 봅시다, 아마 잊어버린 사람들 많을 터인데.

어제 이 경고에 대해서, 이 경고하심에 대해서 열 번 이상 생각해 본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시이소. ○○○씨? 못 생각해 봤어요? 아주 재미있는 일 많이 있는 모양인데. 대개는 다 손 들었습니다.

또 이런 것 저런 것 바쁜 일 때문에 그만 열 번 이상 생각 못 하고 그만 잠든 사람, 어제라 하니까 잠들기 전에 생각하면 되겠는데, 그러면 자고 나서 깨 보니까 지금 그 생각이 나고 어제는 어쨌든지 열 번 이상 생각지 못한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정직하게 들어 봐요. 녜.

우리가 이 일을 우리 결심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결심한 것도 연습을 많이 거쳐서 그 일이 됩니다. 결심보다 연습이 더 힘있고 연습보다 연단이 힘있습니다.

연습보다 연단이 힘있다 말은 연단이라 하는 것은 그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장애물이 많이 있어서 하지 못하게 된 그런 애로를 거쳐도 그 신앙을 계속한 그게 힘이 있습니다. 애로를 거쳐서 애로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신앙이 계속된 그 신앙이 힘이 있습니다.

그 신앙보다도 힘있는 것은 연성입니다. 이제 그렇게 연습하다가 여러가지 시련을 통과한 그 행위, 시련을 통과하는 그 행위보다 이제는 완전히 그 일이 그만 숙달돼서 되어 있는 그 신앙이 힘이 있고 그것보다 더 힘이 있는 것은 자신이 그 지식을 가지고 또 그 비판과 평가를 가지고 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라는 사람이 그 사람이 되어지는 그것이 힘있습니다. 거게서 비로소 구원을 이루어지는 것이 자체 구원입니다. 행위 구원이 이루어지는 거게서 자체가 되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로서는 최종 구원입니다.

그러면 그 행위는 다 무슨 행위인가? 주님의 뜻에 맞춘 행위기 때문에 그 행위 자꾸 하면은 나중에 주님과 꼭 같은 주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이러기에 기독교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그 실상의 구원인데 행함이 없는 자에게는 이 기독교 구원은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요새 지금 다섯 가지를 생각하자고 했는데 첫째는 모든 존재들이 다 불타버린다.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것이 다 불탄다. 불타 가지고 어떻게 되는가? 모든 천태만상의 그 형상들이 다 풀어져 버린다. 산과 바다가 하나될 것입니다, 다 풀어져서.

지금은 산은 딴딴한 여문 고체요 또 바다는 액체지마는 이제 그 한테 타 놓으면 멍얼멍얼하게 “하나님이 물위에 운행하시다” 할 때와 같은 그런 원소로 돌아가 버립니다. 불탄다. 이것을 자꾸 연습해서 생각하면서 이것도 불탄다 저것도 불탄다 모든 것 불탄다는 것을 자꾸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그렇게 연습하는 가운데에서 자기라는 지식도 이성도 평가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거게다가 뜻밖에 갑자기 생각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언제 될지 모른다. 그는 뜻밖에 된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다른 데에 마음을 가지고 이 큰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가지지 안하고 있으니까 이 큰 일이 닥칠 때에는 아무 사람도 관심없이 있다가 뜻밖에 닥치게 된다.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를 않다고 했습니다.

저 지난 시간에도 그런 말 했는데 그러면 이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불타서 이거는 사람이라, 이것은 무슨 나라라, 이거는 지구라, 이거는 뭐 화성이라, 수성이라, 뭐 무슨 별이라 무슨 별이라 위성이라 유성이라 항성이라 이렇게 모두 다 사람들이 이름하고 있과 그런 모든 형태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형태가 하나도 없이 다 풀어져서 다 원소가 돼 버립니다. 체질이 또 녹아져서 원소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형상도 다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다 원소로 되어지는 이런 큰 일이 있을 터인데 이 일이 어떻습니까? 이 일이 지금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수많은 그 과학들이 있는데 그 과학과 이 일과 어느 것이 큽니까? 어느 것이 큽니까? 이 일이 과학보다 조금 큽니까 무한히 큽니까? 무한히 큽니다.

모든 사람들은 전심 전력 기울여 과학에다 다 기울이고 뭐 이곳 저곳 구석구석마다 과학에 대한 책이 가뜩가뜩 찼고 과학 만능이라고 모두 다 야단이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는 과학적으로 노벨상 타는 그런 사람들이 인재들이 나도록을 목표하고 있는데 세상에서는 최고가 노벨상입니다.

인제 그것도 하나 일종의 단체서 하는 건데, 그것이 제일 크다 하고서 과학 만능이라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과학에다 기울이고 과학을 다 숭배하고 이래 가지고 우상화시키고 있는데 그러면 그것이 암만 해도 지구 땅덩어리 요 한 개체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역사들입니다.

그러면 그것과 이 넓은 우주 가운데에 모든 존재들이 있는 그런 것이 다 풀어지고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다 드러나고, 풀어지고 체질이 녹아지고 모든 일이 다 환하게 드러나고 이 일이 참 큰 일입니다. 그뭐 세계 신문에 토픽이라고 하나만 나타나도 사람들이 모두 다 이상하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다 가득 차서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마는 이런 것으로 측량할 수 없는 “모든 것이 풀어진다” 아마 모든 존재가 풀어지면 그때 굉장할 것입니다. 금방 보니까 아무것이란 사람이 미인이 있었는데 어디로 간 곳이 없어. 확 풀려버렸습니다. 불에 녹아서 확 풀려버렸어. 어떤 미남이 확 풀려버렸습니다. 또 어떤 세계를 주름잡는 영웅이 금방 보니까 확 풀려버렸어. 녹아서 없어져 버렸어.

그뭐 모든 형체가 다 없어져. 금강산도 녹아졌고 또 히말라야 산도 녹아졌고 뭐 산이 모두 여게 다 녹아지고 영도 앞바다도 다 녹아져 버렸고 아무 형체가 없어지고 이런 것이 돼지면 그때 어찌 될 건가? 그걸 한번 생각해 보는가? 또 모든 인간들이 자기의 온갖 실력을 가지고 덮어 가루어 사람들이 보지 못하지마는 이런 것들이 다 환하게 드러나게 될 때에, 모든 질들이 녹아서 다 원소의 동질로서 일질로서 다 이렇게 모두 다 녹아져서 변화될 때에 그때 일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거 참 굉장히 큰 일인데 이 큰 일을 제일 큰 일, 둘째 큰 일, 셋째 큰 일, 넷째 큰 일 이렇게 큰 일의 순서를 잡는다면 과학이 꼬물거리는 그 일은 몇째나 가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몇째나 가겠소? 한 둘째 가겠소? 과학 만능이라고 하는 그런 것이 한 둘째 가겠소? 둘째 갈까? 크기로 말하면 그거 둘째쯤 갈까? 몇째 가요? ○○○선생, 몇째나 가겠소? 꼼뱅이 간다 말이요, 꼴찌? 녜, 뭐 수억억억억?만 순서 다음 갈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인간들은 다 말하고 했지마는 이 큰 것은 한번도 언급하지를 안했습니다. 왜?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추어 놨으니까.

그러면 이 일이 드러날 때에 그 지식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흐미한 지식이며 허무한 지식이며 우리 인간들에게 얼마나 미혹이 되는 지식이겠는가? 이 큰 일을 다 모르고 그런 것들을 막 크다 크다 해 가지고 사람들의 모든 정신과 모든 총명이 다 그리만 기울어지게 해 가지고 이런 것은 까마득하게 모르게 했는데 이 사실이 턱 나타날 때에 인간은 어떻게 될 건가! 이 사실을 감추어 놓고 말하지 않은 그자들의 언급하고 그들이 논술하고 그들이 모두 다 저작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가르친 이 모든 지식이 그때에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얼마나 욕을 당할 것이며, 얼마나 원망을 당할 것이며, 얼마나 대적을 당할 것이며 그게 어디로 갈 건가? 어디로 갈 건가? 유황불 구렁텅이밖에는 갈 곳이 없지.

어리석소.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데에서 인간은 다 미련해지고 악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데 이 말씀을 믿지 않는 데서 인간은 다 어두워지고 어리석어지고 자멸 행위 자살 행위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믿는 자는 세상 인간들이 말하는 마귀 배암의 이 지식을 마구 밟고 꿰뚫고 그까짓 거 확 불어서 다 날려보내 버리고 이런 것이 다 안전에 두지 안하고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하나님 말씀에만 준하여 삽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는 것이 생명이요, 믿는 것이 능력이요, 믿는 것이 지혜요, 믿는 것이 영원이요, 믿는 것이 완전입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신데 완전하신 그분이 완전한 것을 나타내신 것이 뭐인가? 완전한 것을 나타내신 것이 곧 신구약 계시요 계시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피조물로서 이 완전한 자를 닮아가고 본받아가고 그와같이 되어져 가는 방편이 뭐인가? 그분이 계시해 놓으신 이 모든 계약해 놓으신 것을 참되다 인정하고 자기 그저 실력 없는 것 말고 실력 있는 대로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면 이렇게 지극히 큰 일이 이루어진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 만능이라고 생각하고, “너희들이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영생하는 생명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요 말씀 한 마디만 믿어도 세상을 발 아래 둘 수 있는 것인데 안 믿는 데서 다 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지식은 다 믿음의 지식이 돼야 됩니다. 믿음의 지식이 돼야 되고 행동도 믿음의 행동이 돼야 되고 자체도 믿음의 자체가 돼야 됩니다.

믿음의 지식이 돼야 된다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이렇다’ 할 때에 그렇다 하신 거게 따라서 그렇다 한 그대로의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죽음이라’ 할 때에 따라서 그거 죽음인 줄 아는 이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것은 생명이라’ 할 때에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이 생명이라 하니 생명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가진 지식이라야 돼지지, 하나님은 생명이라 하는데 저는 죽음이라, 하나님은 죽음이라 하는데 저는 생명이라, 제까짓 게 하나님보다 큽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참되다 그분의 나타내신 모든 것은 완전하다 하는 그것이 피조물들에게 생명입니다. 행동도 믿음 행동, 하나님이 능동으로 움직이실 때 거게 피동되는 행동, 지식도 하나님이 원형으로 나타나실 때에 그 원형 지식의 모형 지식, 하나님의 능동에 거게 따라 피동되는 행동, 자체도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그대로의 그 모형적 형상, 하나님의 형상 이것이라야 존재가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열 번 이상을 생각해 보니까 무엇이 나옵디까? 여기에 주의 날이 밤사이에 도적같이 임하신다. 모든 것이 다 불타서 풀어지고 또 체질이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드러나고 한다는 이걸 자꾸 생각을 하면 어찌 됩니까? 생각을 하면 자연히 거게 대한 준비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것을 힘쓰지 안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힘쓰면 그 결과가 어찌 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힘쓰면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구별해서 들리는 말도 다 구별하고, 내가 하는 말도 구별하고, 보이는 것도 구별하고, 접하는 것도 구별하고, 주는 것도 구별하고, 받는 것도 구별하고, 권면하는 것도 구별하고, 그러니까 구별하니까 자꾸 구별하니 세상하고 어찌 됩니까? 세상하고 어찌 됩디까? 세상하고 어찌 돼요? 세상하고 어찌 돼, ○? 지식으로는 잘 알고 있지마는 실지로 안 해 봤지, 그러니까? “내가 온 것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 분쟁을 주러 왔다” 이러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어머니와 딸과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아내와 남편과 친구와 친구 그 모든 것이 뭣 됩니까? 다 분쟁이 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서 요대로 살라볼라고 모든 걸 하면은 세상은 자연히 나와 이렇게 이질이기 때문에, 그 질이 동질이 아니고 이질이기 때문에 법칙이 다르기 때문에 목적과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신격 존재, 완전한 신격 존재와 우리는 마귀화된 그 타락한 마귀 형상을 입은 마귀 속성을 가진 이 존재기 때문에 자연히 이거 마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찰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거룩한 행실을 할라 하면은 자연히 행실이 일치되지 않습니다. 일치되지 안해요. 나는 상대방을 아무리 사랑해서 내 소유와 몸과 다 바쳐서 그를 사랑함으로 희생할라고 해도 그들은 마다 합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경건을 할라 하면 어찌 됩니까? 경건은 진리대로 살되 구속하신 자존자이신 창조주이신 주재자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생활할라 하면은 모든 피조물은 타락하고 난 다음에는 전부 크나 작으나 저 위해 달라 합니다.

저 위해 달라 하는데 하나님 위할라고 하면, 서로 부부간도 너 아니면 나 죽는다고 하는 그렇게 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라니? 완전을 위해서, 완전을 위해서 참을 위해서, 참을 위해서 완전을 위해서 하면 이해를 하지마는 하나님이라 하면 또 모릅니다. 하나님 위해서 할라 하면은 그만 야단이 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그 남편을 같이 하나님 위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아내가 녹아지는 소금같이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위할라고 위하는 생활할라 하니 마찰되나 또 남편 위해야 되고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애를 쓰고 쓰고 해 가지고 마침내 아내나 남편 자기도 하나님 위하는 사람 되고 남편도 아내도 하나님 위하는 사람이 돼서 부부가 둘 다 하나님을 위하는 그 사람이 만들어졌어야 그 부부가 영원합니다. 그게 참 사랑이오.

이러니까 그의 모든 생활은 다 고독한 생활입니다. 고대가에 내가 그거 봤는데 ‘밤이나 낮이나 눈물 머금고’ 뭣 때문에 눈물 머금어, 밤이나 낮이나?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이루려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이루려고 하면 전체는 고독하고 쓸쓸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지금 밤낮 사모하고 바라는 건 누굽니까? 주님이십니다. 거룩한 행실이 있기 전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 나타난다는 말 듣기만 해도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듣기만 해도 징그럽게 생각해요.

자,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오시면 모든 형체가 다 풀어지고 모든 체질이 다 녹아지고 모든 비밀이 드러날 터인데 이 날이 오면 좋겠다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정직하게? 좋겠다 싶은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이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날이 오면 아, 무섭다. 이 날이 할 수 있는 대로 좀 더디 오고 안 왔으면 좋겠다. 더디 오면 좋겠다.’ 정직하게 이 날이 더디 오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다 이래! 뭐 손 안 들어, 안 들기를! 거짓말쟁이들, 다.

주님의 날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람은 세상에서 고적해서, 쓸쓸하고 빈들판이라는 건 이 세상을 말한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은 “자기 곳 곧 광야로 보냈다” 이랬어. 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을 할라고 하면은 전부는 적이요 대립이요 마찰이요 하나도 동지가 없어. 이러니까 저는 암만 붙을라 해도 사람들이 붙여 주지 안해.

공산주의에 민주주의가 붙을라 하면 공산주의가 붙여 줍니까? 민주주의에 공산주의가 사상 전환하지 안하고 민주주의에 와서 붙을라 하면 붙여 줍니까? 안 붙여 주지. 그와 꼭 같애. 하나님과 마귀와는 정 이질이라. 마귀에게 속해서 모두 다 맞추어서 마귀화됐던 것이 완전자 하나님화될라 하니까 거기서는 자연히 이질이기 때문에 마찰밖에 없어.

6  5 때에는 저 산에 가 있는 것이, 뭐 산도 물론 산에 가서 재미 있지마는 저 첩첩 산중에 가 있는 것이 그것이 뭐 그렇게 좋지는 안합니다. 기도하러 가서 혹 있는 동안에 얼마 동안 있는 건 좋지마는 거기 있는 것이 자기 마을과 집에 와서 사는 것만치 좋지는 안하다 말이오.

이렇지마는 6  5가 되니까 제가, 저는 위천 있었는데 그때 위천 예배당을 제가 떠나지 안했습니다. 6  5 인민군들은 와 가지고 매일 백영희 저놈 사형시켜야 된다고 제이호로 매겨놓고 있는데 날마다 수근거리고 저희들이 이래도 예배당에 있고 산을 가지 안했습니다. 왜? 그때 그래 가면 피해 갔다고 그들이 오히려 오해하고 지금 ‘피해 갔으니까 됐다’ 할 터이니까 피해 가지 안하고 그 자리에서 꼭 새벽기도 대예배 한번도 안 빼고 계속해서 예배를 보고 그래 지냈습니다.

지냈는데 한번은 저 농산교회서, 그때는 뭐 소, 개, 돼지 전부 그 사람들이 다 잡아 먹어버리고 하니까 그게 없었어. 씨종이 없었는데 어째 그래도 지금 또 그래 종자가 남아 가지고 그거 종자가 퍼져. 그때 그 사람들이 다 잡아먹었어요, 뭐.

무조건 가서 그만 와서 잡아먹으면 되니까.

이랬는데 그 도야지 한 마리를 숨기고 숨겨서 어쨌든간에 숨겨 놨다가 아무래도 숨길 수가 없으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이제 하나님의 종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숨겨놨다가 이제는 더 숨기지 못하겠으니까 한번 오라고 하도 자꾸 기별해 쌓아서 그래 갔습니다.

가니까 이제 지금 저만 가면은 잡겠다 한다 해서 그래 갔어요. 가니까 저 첩첩 산중에 가 가지고 거기서 인제 그걸 잡아 가지고 거기서 먹고 잔치를 하는데 모두 그 교인들이 그곳을 어찌 좋아하는지 내려가기를 싫어해. 내려가면 인민군들이 항상 잡을라고 이래 쌓고 지금 만날 죽이니 살리니 이래 쌓아니까 원수가 그 밑에 모두 다 동리 그 모두 거기 있으니까 원수 없는 곳을 피해서 산중이 좋더라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는 것이 이것이 필연적으로 되는 것이지 그게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까? 그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할 건데.

여기 뭐 내가 어떤 사람들 모두 이래 물어보면 ‘아이구, 불타면 어짤꼬?’ 모두 다 걱정이 돼서 뭐 주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라 하면 거기 마음이 다 기울어지고 정이 다 거기 붙고 거기밖에 좋지 않기 때문에 사모하게 되는 것인데 그게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사모하고 간절하고 이런 사람들이 적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도 그저 껍데기로 “사모하고, 간절히 사모해라, 그날을 바라보라.” 하는 이런 것을 이렇게 지식적으로만 하면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하나씩 또박또박, 모든 것이 참 불탈 것을 믿으면, 뜻밖에 불탈 것을 믿으면, 그 준비가 되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힘쓰지 안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힘쓰면 세상과 어찌 됩니까? 가까와집니까 멀어집니까? 누구하고 가까와집니까? 주님과 가까와집니다. 되게 그래 자꾸 그래 되면은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모든 게 다 불탈 것인데 멸해질 걸 생각하면은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것을 원하는 양심은 없어. 원하지는 못해.

왜? 원하지는 못해? 원하면 이거 다 불타버릴 것이기 때문에. 전부 불탈 것이니까 원하지는 못하지마는 속으로 진정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어서 주여 오시옵소서’ 하는 사람 됩니다, 아무데도 정 붙일 데가 없으니까. 그날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게 돼. 이것은 다 필연적으로. 이 순서적으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는 이 사실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거룩과 경건 생활이 자기에게는 힘쓰지 안할 수 없게 되고, 거룩과 경건 생활을 힘쓰게 되면 자연히 자기는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는 거기에 소망이 되어지고 전부 그것만 준비해서 거게 다 전부가 집중되어 있으니까, 집중되어 있으니까 여게는 전부 대립이요 거게는 준비해 놓은 것이 그래도 환영이 되어지면은 자연히 그리 갑니다.

오늘도 우리가 여기 예배 보다가 지금 헤어져도 뭐 어디로 가는가? 자기 그래도 정붙인 곳, 자기 좋아하는 곳, 자기와 인연이 있는 곳 그곳에 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는 것이 이것이 그냥 초절적으로 되는 게 아니고 이 순서가 올라가면 자연히 자기는 그날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날을 사모할 수밖에 없고, 또 그날에 있는 소망을 보고 자꾸 노력했으니까 그날이 나타나는 것을 기뻐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어.

모든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험치는 것도 아이들이 시험 준비를 잘해서 자기가 참 거게서 톱이 될 수 있는 그런 시험 준비를 다 했으면 시험 치는 날이 으례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왜? 소망이 그날에 있고 그날에 자기의 실력이 드러나고 그날에 가치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날을 기다리고 있고 준비 안 하는 사람은 그날이 오면은 땀이 바짝바짝 날 것입니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이 다섯 가지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것이 자꾸 생각하는 가운데서 우리 사람이 변화되기 때문에 이것을 자꾸 생각하고 이래 가지고 준비해서 참으로 이제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는 이 사람되는 것은 땅위에 하나도 바라볼 것이 없고 그 바라보는 소망이 거기밖에 없게 되고 그럴 때에 거게 있는 그 소망이 차차 커질수록이 자기는 자꾸 그날이 기달펴집니다.

그날에 내 소망이 든든히 완전히 이루어져 가지고 있고 내 전부 내 소망과 내 영광이 다 거기 있으면 자연히 그날을 바라보고 소망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본다 하는 이것을 예사롭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바라보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내가 자꾸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돼야 되고, 그거 뭐이라고? 그것만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 되지. 왜? 어데서 나옵니까, 그것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서 나옵니다.

거룩한 행실은 어데서 나옵니까? 거룩한 행실은 어데서 나오요? 모든 것이 갑자기 불탄다는 이 사실에서 이것을 믿는 믿음이 있는 것만치 거룩한 행실이 자꾸 힘쓰게 자기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게 왜 기도록에 등록된 보고하는 거, ○○○선생 손 들어 봐요. ○○○? 양산동 갔습니까? 아파? 아파서 이거 안 내놨구만. 이걸 내 놓으면 나는 말이지, 이거 내도 광고를 세밀히 안 하니까 제가 보고한 것 세밀히 광고 안 하니까 필요 없는가 싶어서 그러는데 이거 광고할 때 이거 내놓으면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계속합시다’ 그만 하면 그 광고가 족해. 그거 안 하면 그것도 안 하거든.

보자 너 오늘 아침에 보이네. 네가 ○양이지? ○양 너 오늘 아침에 보이네. 너 이 불탈 것 생각했어? 오늘 오면 너거 꿈꾼 것 다 불타버리고 다 풀어져 버려. 이거 준비하지 이거 준비 안 하고 뭐 땅에 것 준비, 공부 준비 그것만 하면 되는 줄 알아? 공부 준비 좋은 결혼 준비 그거 좋지마는 그런 것 다 그 몇백째라. 일호 이호 삼호, 제일 중요한 것 둘째 중요한 것 셋째 중요한 것, 그런 거는 몇백 순서에 갑니다. 전부 몇백 중요한 순서는 다 성경 가운데 있어. 성경 가운데 이 순서가 제일 중요해. 이제 새벽기도 꼭 나오너라. 꼭 나와.

너거 어머니는 그렇게 열심인데 너는 왜 그렇게 그래? 너거 집에는 너거 어머니가 제일이야. 너거 어머니 따라서 믿음 지켜야 되지 다른 것 소용 없어.

그까짓 거 무슨 소용 있어? 오늘이라도 불타면 다 헛일인데. 뭐 세계가 다 불타면 대한민국은 그냥 있을 줄 아는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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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인간/ 창세기 3장 1절-6절/ 800104금새 선지자 2015.10.29
350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로마서 11장 36절/ 880218목새 선지자 2015.10.29
349 만인구원설-제한적구원설/ 출애굽기 20장 6절/ 850707주새 선지자 2015.10.29
348 말 할 때와 들을 때/ 야고보서 3장 1절/ 860917수새 선지자 2015.10.29
347 말세 구원 준비/ 베드로후서 3장 6절-14절/ 830612주후 선지자 2015.10.29
346 말세 시험 준비/ 요한계시록 17장 12절-14절/ 840808수새집회 선지자 2015.10.29
345 말세관/ 베드로후서 3장 6절-8절/ 850813화새 선지자 2015.10.29
» 말세관/ 베드로후서 3장 10절-14절/ 870415수새 선지자 2015.10.29
343 말세관-재림후의 사건/ 베드로후서 3장 10절-13절/ 850811주후 선지자 2015.10.29
342 말세론/ 베드로후서 3장 11절-14절/ 850816금야 선지자 2015.10.29
341 말세에 양식 주는 자/ 마태복음 24장 42절-51절/ 850827화새 선지자 2015.10.30
340 말세의 사람들/ 디모데후서 4장 1절-5절/ 791111주후 선지자 2015.10.30
339 말세의 사람들/ 디모데후서 4장 1절-5절/ 791111주전 선지자 2015.10.30
338 말세의 세상/ 요한계시록 17장 1절-14절/ 840807화후집회 선지자 2015.10.30
337 말세의 재앙 환난과 구원얻는 방편/ 시편 91장 1절-16절/ 880520금야 선지자 2015.10.30
336 말세의 환난/ 다니엘 12장 1절-4절/ 890709주후 선지자 2015.10.30
335 말세준비/ 베드로후서 3장 11절-13절/ 870418토새 선지자 2015.10.30
334 말씀/ 디모데후서 3장 12절-17절/ 1960. 4. 27. 수전집회 선지자 2015.10.30
333 말씀 묵상을 통해 4가지를 바꿀 것/ 베드로전서 1장 3절-7절/ 830624금야 선지자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