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1984. 4. 14. 새벽

 

본문: 누가복음 16장 1절∼9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 구원을 이루는 평신도도 있고 목회자도 있습니다.

평신도나 목회자나 자기 구원을 이루는 그 방편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증거를 하는 것은 그것이 말씀을 가지고 행하는  종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듣고 그대로 자기가 실행해 볼라고 애를  써서 실행하는, 그 실행도 말씀을 듣고 행함에 들어가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 행함에 있어서 한 서너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증거를 할 때에 그 듣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듣는 사람들이 깨달아, 감동 받고  깨달아 증거하는 자기에게 대해서 환영을 하며 또 아주 인기를 끌게 되는 그런  면에 대해서 자기는 설교하는 사람이 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  저것 있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설교하는 중심을 볼 때에 그 사람이 자기가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하고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설교를 해서 증거를 할  때에 다른 사람이 감화를 받고 또 깨닫고. 그리하여 설교한 자기에게 감사하고  자기의 인기가 올라가고, 모든 인기를 끌고 하는 그것이 그 설교자의 제일  으뜸되는 강한 중심이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성경 말씀을 듣든지 보든지 해서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때에 이 증거하는 것이 훗날에 이런 비판 저런 비판 많은 비판들이 있을  터인데 훗날에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도록 잘못 됐다는 비판을 받지  안하도록 아주 논리를 정연하게 조심 있게 그 논리를 조직적으로 해서 뒷날에  틀렸다는 그런 정죄나 비판이나 그런 것을, 받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서 증거하는  그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듣고 깨달은 바를 증거할 때에 자기가 그대로 실행 안 하니  아무 소용없는 것을 깨닫고, 또 자기가 다소나마 실행을 하면서 실행 못한 것이  마음에 참 도적맞은 거와같이 원통하고, 또 실행한 그 일에 대해서는 그실행에  미비점이 있어서 마음에 안타까움의 그 간증으로서 증거를 하면서 실행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그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듣는 자들로 하여금 아무리 감동  받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실행 없으면 헛일이다 하는 그 실행을 욕망하는 그  욕망에서 증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일 처음에 증거하고 모든 사람들이 감동 받고 인기가 있게 하려는,  물론 실행도 시킬라고 애를 쓰지마는 그 자기 설교하는 사람의 중심에 어느 점이  제일 주도점이 되느냐 그말입니다. 물론 다 실행케도 할라하고 또 다른 사람이  다 감동 받아서 자기에게 환영하고 뭐 인기가 있게 하려는 그런 것도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안하고 다소라도 좀 있을 수 있고, 그게 아주 없다는 것은 벌써  오랫동안 많이 속아서 죽을 때가 가까운 그런 사람들은 그런 것이 별로이  없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다 있지마는 그 설교하는 마음 가운데, 설교자 마음 가운데에, 또 자기가  설교자가 아니고 평신도로서 그대로 실행하는 그 실행자의 마음 가운데에 제일  처음에 말한 일호 설교자는 이 설교 해 놓고 듣는 사람들이 감동 받고 깨닫고 참  자기의 인기가 올라가고, 자기에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존대하고 자기에게  감사해서 그 사람들이 설교한 자기에게 그렇게 아주 호감을 가지고 은혜를  받아서 인기가 있게 되는 그런 중심이 돼 가지고 그런 중심이 돼 가지고  설교하는 사람이나, 또 자기가 실행할 때에 실행할 때에 그 실행하는 것이  첫째는 하나님이 보시는 그 하나님 보시는 면에, 하나님이 보시는 그 면을  생각하고, 또 하나님만 볼 뿐만 아니라 제삼자들이 보는 그 봄에서 그 영향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들이 보는 그 결과의 영향이 어찌  되느냐 하는 이 면을 생각해서 행동을 해야 될 것인데 그렇지 안하고 행동할  때에 뭐 하나님보다도, 또 그 사람이 구원을 내 행동하는 걸 보고 그 사람의  구원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구원이 도움이 많으냐 적으냐, 이 면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말씀을 듣고 행동할 때에 그 행동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서 자기에게 대해 '아, 저 사람은 저런 신앙 행위가 있는 사람이고  신앙생활 저렇게 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신앙 행위 하는  것을 칭찬하는 고 점도 다 있어야 되지마는 고 점이 제일 주가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은 내나 설교할 때 고 사람이나 꼭같은 일호라 정합시다. 일호입니다.

고거는 일호고,  또 두 번째는 자기가 설교를 할 때에 '이 설교 한 것이 지금만이 아니고 듣는  사람 가운데서도 이러니 저러니. 뒤에 가서 맞다 틀렸다 이렇다 저렇다 비판을  하게 되는 그런 때가 있고 이 자리에서 그런 사람도 있을 터이니까 그 비판에  잘못됐다고 그런 정죄함을 받지 아니하도록 해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논리도  바로 되고 깨달은 것을 바로 증거해야 되겠다' 이렇게, 그 뒤에 사람들의 논평의  심판적인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증거하는 것이 증거의 제일 중심이 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내나 그것이 설교자는 그럴 것이고, 또 개인 평신도는 증거할  때에 이 증거하는 이것을 다른 사람 이 혹 오해할라, 또 다른 사람이 여기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이렇게 오판을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뒤에 논평해서 도로  정죄하고 비웃는 그런 일이 될까 이래서 그게 중심이 돼 가지고서 행동하는  사람, 이것은 설교하는 사람이나 행동하는 사람이나 이런 것은 다 이호가  되겠습니다.

 또 삼호는 설교하는 사람이 이 설교를 하면서 이 설교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이  설교를 기뻐하셔서 받으셔 가지고 이 설교에 대해서 하나님이 책임을 인계 맡아  가지고 이 설교 한데 대해서 하나님이 당신이 하신 말씀과 같은. 당신이 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했기 때문에 당신이 말씀하신 것을 당신이 이루신 거와 같이 이  설교에 대해서 하나님이 인계를 맡아 책임을 지시고 이 일을 이루시나? 그렇게  그 중심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이 모든 교인들이 이 설교를  듣고 이 설교가 과연 그에게 실지의 구원을 이루는 그런 결과를 맺을 수 있나?  이 설교하면 그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듣는 그 구원에 좋은 결과를 맺는 그런  도움이 될 수 있나 하는 그 점을 생각해서 설교하는 그 설교. 그 중심에서  설교하는 설교 그것이 삼호인데 또 자기가 행동하는 그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내가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을 하시나 안 하시나, 이 행동하는  것을 제삼자들이 보면 그에게 양식이 되겠나 안 되겠나, 그에게 구원에 유익  되겠나 안 되겠나 이 면을 생각해서 하는 이것을 삼호라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일호, 이호. 삼호가 있겠습니다. 일호는 어떤 염려성이 있는고 하니  일호는 마지막에 외식자, 이단자가 될 그런 우려성이 있습니다. 이단자 외식자.

아주 극도로 나쁜 면을 생각하면 그 사람이 이단자 되기 쉽습니다. 이단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그 중심을 자기가 하다 보니까 사람들에게 인기  중심으로 이라니까, 옳고 그른 것보다도 어떻게 하면 사람에게 인기를 끌까 하는  그 면을 생각하니까 벌써 하나님과 진리에서는 이탈된 사람이 된다 이거요. 이런  것은 좀 알기가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면, 이단자가 되기 쉽고, 또 그보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외식자가 되기  쉽습니다. 외식자가 되기 쉽고, 아주 좋게 말하면 그 사람은 부흥사가 되기  쉽습니다. 부흥사. 부흥사가 좋은 줄 알아도 부흥사는 목회를 못 합니다.

부흥사는 지나가면서 한 소리씩 외쳐서 인기나 끌지 목회는 못 합니다. 설교  하는데 '저 사람은 저게 목회자가 되겠다.' 목회자 되는데는 아주 깡다구가  있어야 됩니다. 깡다구가 있어서, 예를 들면 찝게 그놈이, 개미도 찝게가  있는데, 개미 그놈이 찝게가 있어서 입으로, 찝게가 있는데 꽉 찝으면, 이놈을.

찝은 걸 놓도록 하려고. 찝은 것을 놓도록 하려고 이렇게 건드려서. 건드리면 더  찝습니다. 더 찝소. 발을 하나 떼면 이놈이 찝은 걸 더 찝습니다. 더 매 찝소.

찝은 걸 나중에 보면 이 무슨 허리 동아리를. 허리 동아리를 이래 가지고 허리를  끊어 버립니다. 허리를 끊으면 더 찝습니다. 나중에 그라다가서 머리만 딱 떼  버리면은 꼭 더 찝어 가지고 고만 전심을 그래 꼭 찝어 가지고 찝은 채로  모가지가 떨어집니다. 개미 찝는 것. 이와 같이 고 찝는 아주 깡다구가 있어서  뭐이든지 하나 잡으면 놓지 안하는 고거 있는 고 사람이 목회를 합니다.

 일호는, 일호는 부흥사 됩니다. 잘 돼 봐야 부흥사 돼요. 그러니까 그 걸 잘  요량해서 설교를 들으면 '저 사람은 저거 부흥사 소질이 있고 목회자 소질은  없다' 이래 되면 그 참 안 됐습니다. 그러면, 고걸 말해 줘 가지고 될 수 있는  대로 부흥사의 자리에서, 일호에서 옮겨야 됩니다. 옮겨서 삼호가 되어야  됩니다. 삼호는 목회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부흥사와 목회자는 영 다릅니다. 삼호는 목회자가 돼요. 목회자는  개미가 찝는, 개미가 꼭 끊으면 놓지 안하고 하는 고 깡다구 아주 속에 아주  강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게 있어야 목회자가 되지, 그러기에 목회자는 일 년  가면 더 그 교회에 더 강하게 서고, 이 년 가면 더 강하게 서고, 교인들이 삼 년  가면 더 그 목회자를 존경하고 속하고, 또 십 년가면 더하고. 또 갈수록이 더  존경할 바가 있고 더 배울 바가 있고 은혜 있고, 자꾸 세월이 갈수록이 더  강해지는 것이 목회자 되고, 한 달은 대인기지마는 두 달째는 풀어지고 석  달째는 풀어지고, 또 어떤 사람은 삼 년 되 면 풀어지고, 어떤 사람은 육칠 년  되면은 풀어지고. 육칠 년 돼 풀어지고 어떤 사람은 십 년 돼서 풀어지는데 십  년 돼도 풀어지지 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목회자로서 조매 요동치 않습니다.

 또 이호는 뭐이 되느냐? 이호는 그 사람이 아주 잘 되면 신학자 됩니다. 이호는  그 사람이 잘 되면 신학자 되고, 또 그보다 더 못 되면 말쟁이 됩니다. 그보다  못 되면 말쟁이 됩니다. 말쟁이. 아주 잘못 되면 다른 사람의 단점이나 찾고,  다른 사람 단점이나 찾고 비판하는, 이렇게 많이 변론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변론하는 사람, 또 신학자, 말쟁이 이 사람이 됩니다. 그것도 다  소용없는 것이오. 그것도 다 껍데기요, 다 헛일이오.

 삼호 이 사람은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 설교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보고. 하나님이 인정하나 안 하나 그 면을 가지고 하니까 일 년 되니까  그게 더하고 이 년 되니까 더 하고 십 년 되니까 더하고 자꾸 더하니까 하나님을  바라봄이 더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라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 면을 지금  두고서 자꾸 힘을 쓰지, 그 점에 역점을 두고 자꾸 힘을 쓰지 이거 들어 가지고  이 교인들이 이 구원을 실지로 이루나 안 이루나? 내가 나면서 앉은뱅이를 메다  놓고 구걸하면 갈라 먹기 위해서 나면서 앉은뱅이를 구걸하라고 메다 놓는 자와  같은 내가 그런 자가 아니가? 교인들을 출물군으로 출물이나 시키고 연보하면  이제 교회 유지나 하고 그 교인의 구원이 되나 안 되나? 참 천국의 수입을 보고  있나 안 보고 있나 그런데는 관심이 없고 이라면은 그 사람은 목회자가 안  됩니다. 얼마 동안은 사람이 속지마는 벌써 십 년 이십 년 지나가면은 속지  않습니다. 십 년 이십 년이 지나가면 안다 그말이오. 알게 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목회자가 안 됩니다.

 두가지. 하나님에게 대해서, 듣는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외식자가? 내가 정말로 행하고 하느냐? 행하고 하지 못 하기 때문에  자기가 행함이 없는 것은 '나도 이리 알고 힘을 쓸라고 합니다.' 그렇게  표시하고, 또 자기가 행함을 다는 행하지 못해도 행함의 경험이 있는 것은 '나도  이렇게 행했다' 말은 안해도, '나도 이렇게 행했다' 말은 안해도 나도 이렇게  행한 경험이 있고 나도 이렇게도 했다 하는 걸 가지고서 또 증거하는 것도 있고,  그러니까. 증거가 아주 껍데기는 같아도 속은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삼호는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호는 신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일호는  외식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알고 평신도도 그 사람이 신앙 행위를 하면서 그 신앙 행위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느냐? 내가 이 행위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나 안 하나?  모든 사람은 보이지 안하고 하나님이 내 행위를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느니라.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느니라' 시편 1편에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길은 멸망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인정하나 안 하나? 그분의 인정을 보면서  행동하는 사람. 또 이 행동 하는 것이 내 구원도 문제지마는서도 이 행동하는  것이 제삼자의 구원에서 어떻게 피해나 끼치지 않느냐? 어찌 되느냐? 그 점을  인해서 마음에 고통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기도하면서 하는 사람 그 사람은  삼호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 삼호는,  그러기에, 땅위에서는 목회자가 제일 존귀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자가  제사장이요, 목회자가 선지자요, 목회자가 왕이요, 그것이 사사 시대의  사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회자는 사사입니다. 이것을 하지 안하고 그저  교회의 행정만 위해서, 행정만 위하는 그런 사람 많아요. 장로들은 행정만  하는게 장로인 줄 알고 행정에만 주력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은 사사 시대를  지나서 왕 시대, 왕 시대의 왕입니다. 왕 시대가 되고 난 다음에는 왕과,  제사장이 따로 분리되고, 사사 시대는 제사장이 왕이요 왕이 사사요 또 선지자요  이렇게 했습니다.

 고 세 가지를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해서 신앙 행위를 하도록 합시다. 일호  이호 삼호인데, 일호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또 이호를 원하는  사람. 삼호를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이거 뭐 다 원은 다 알기  때문에, 그러니까, '핑계하지 못하리라. 네가 다 알기 때문에 핑계를 못 한다'  이랬습니다. 알기 때문에 핑계 못 해. 알기는 인제 다 알아. 이 참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도 있지마는서도 이제 배워서 알았기 때문에 아는  사람은 많이 받았는고로 많이 하나님이 요구하신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호 이호 삼호를 생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원한다 하니까 손이 올바로 들려졌는데. 그러면, 자기가 일호라고 생각 하는  사람, 이호라고 생각하는 사람. 삼호라고 생각하는 사람 할 때는 손이 많이  달라질 줄 압니다. 아마 일호가, 일호에 대해서 손들라 하면 다 모두 조금씩  들것이오. 그러나 일호는 멸망입니다. 이호도 남 좋게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만  됐지 자기 수입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일호는 멸망이요. 이호는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이용만 당했지 제 실속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삼호가  자기 구원에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배운 일호. 이호,  삼호를 잘 생각하면서 그게 하도록 합시다.

 제가 오늘 아침에 지금 설교하려고 나온 것은 다른 걸로 나왔는데 그만 거기에  시간이 돼서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방법이 있고, 또 자기의 행동이 값을 받는 행동이 되고 값 없고 책망  받는 그런 행동이 되는데 대해서 증거하려고 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너무 많이  하면 감당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요것만 여러분들이 들어서 일호, 이호, 삼호를  단단히 기억하고, 모든 행위에 항상 내가 일호냐 이호냐 삼호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그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훈과 영감에 맞나 안 맞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어찌 되나? 생각을  하면서 사는 그게 깨어 있는 사람이오. 그것 생각지 안하고 사람만 상대해서  사는 것이 외식입니다. 사람만 상대해서. 자기만 위하고 다른 사람 위하는 그거  다 외식이오. 자기 인정 다른 사람에게 인정 그것만 하는 것도 외식이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인정치 않는 그것도 가지고 고집 피우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오. 그거는 광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인정되는 그 일이 사람에게 인정되지 안할 때에는 '뭐  하나님만 인정했으면 됐지 사람들이 인정하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그 사람은 껍데기가 벗겨진 사람입니다. 꺼풀이 없기 때문에 아무 열매든지  꺼풀을 벗겨 놓으면 그 속에 알맹이가 차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도 인정을 받아야 될 뿐 아니라 인정받은 것이 사람에게까지  인정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그 노력이 늘 계속하고, 사람에게 인정이 안 되면  마음에 안타까움을 가진 그것이 속에 알맹이를 충실히 맺게 하는, 충실하게 하는  그 콩 껍데기와 같은 것입니다. 콩 껍데기 벗겨 놓으면 그 속에 알맹이 고만  병들어서 고만 안 자랍니다. 다 자라고 나면 필요가 없을 때에는  떨어지지마는서도 이 세상에서 자라서 새상을 뚝 떠나면 사람에게 덕 세우고 안  세운 그런 것은 상관 없고 하나님께 세운 것만 가 버립니다. 가 가지고 하늘나라  가서 인제 거기에 가서는 뭐 고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다 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일호, 이호, 삼호를 단단히 해서, 삼호가 제일 좋은 것이고, 삼호는  좋게 말하면 목회자 되고 또 평신도로 말하면 그 사람이 진실한 자가 됩니다.

진실한 자가 되고, 이호는 잘 되면 신학자 됩니다. 잘못 되면 변론을 좋아하는  말쟁이 됩니다. 일호는 그 사람은 잘 되면 외식자 되고, 아주 잘못 되면 이단자  됩니다.

 십 분 기도 후에 권찰회 있습니다.

 기도록에 등록된 사람은 오천 사백 십 구 명이 등록을 하고 지금 기도하고  있는데 등록하도록 권면한 구역장님들과 권찰님들과 반사 선생들은 뒤를 챙겨야  됩니다. 자꾸 챙기는 것이 비유컨댄 추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 놓고  챙기지 안하면 농사 지어 놓고 추수 안 하는 사람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등록을 하라고 해 놓고 자꾸 챙겨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를 해야 효력이  있지 뭐, 등록 안한 것 보다는 등록을 한 거는 한 것만 해도 좀 낫지마는 등록해  놓고 기도 안 하면 안 되니까 어짜든지 기도를 하도록 이렇게 챙깁시다.

 내가 어떤 중간반 반사 보니까 사흘 동안 금식하고, 월요일날 가 가지고  목요일날 아침에 내려왔는데, 금식하고 왔는데 평소보다 얼굴이 서기가 나고  좋아. 내가 하도 좋고 귀해서 그 볼을 내가 이래 만지며 '야, 너는 밥 굶고 금식  기도 하니까 얼굴이 아주 미남이 됐다. 영 얼굴에 광채가 난다' 내가 이라면서  내가 그 얼굴을 만져 줬다 그말이오. ○목사님은 저 오층에 있는데 왔기 때문에  아, 사흘 금식하고 이래 왔으니까 휘떡 거리고 힘도 없으니까 와야 소용없다고.

힘도 없으니까 가라고 이라니까 '아, 아닙니다. 힘 있습니다.' 이라며 또 오층에  와서 일하러 왔더라 그거요.

 어짜든지 금식도 하고 또 여반사들도 갔다 왔는데 보니까 팽팽하이 뭐 얼굴이  하나님을 만내서 서기가 납니다. 어짜든지 지금은 기도로써 앞으로 우리가  이기지 못할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고, 환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서 도와주실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되겠고 모든 대적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뻘뻘 떨면서 승리하는 것도 좋지마는서도 웃으면서 승리하는 것 더  좋고 또 아예 싸울 것도 없이 원수들이 근방에 오지도 못하고 고만 패전해서 다  달아나 버리는 그 승리가 더 좋다 그거요.

 그러니까 구들을 놓을 때애 '이 구들을 이래 굽게 놔라 그라면 집에 화재가 안  난다' 이라니까 그 소리를 시시하이 듣는다 그말이오. 시시하이 듣고 이래 바로  놔 가지고서 그래 놓으라 하니까 아, 그래 놓으면은 안된다고서. 바로 놔 가지고  불이 나서 집에 불이 났는데 불 끌라고 막 땀을 출출 흘리며 그래 쌓으니까 그  사람한테 '아이구 오늘 불 끄느라고 수고했습나다. 애 썼습니다.' 이렇게  칭찬하지마는서도 구들을 굽게 놓으라 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이 없는 그 사람은  그거 항상 집 태울 사람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래 가지고 앞으로 환난 올 때 죽도록 말이지. 이래  가지고서 맞고 고문하고 고행하면서 이렇게 하면서 승리하는 그것도  좋지마는서도 그것보다도, 뻘뻘 떨면서 두려워 떨면서 겁이 나면서 승리하는  것도 좋지마는서도 웃으면서 승리하는 사람 더 좋고, 왜정 말년에 승리한 자  중에, 감옥에 간 중에는 손 양원 목사님이 참 이겁니다. '주: 엄지 손가락을 펴  보이심' 요새 모두 이거라면 제일 인기를 끄는데 손양원목사님은 이거요. 그분은  있을 때 거기에서 '아, 어서 이거 면해 나갔으면 좋겠다. 어서 이 고난이  없었으면 좋겠다. 고난을 덜 받았으면 좋겠다.' 그거 없었습니다. 좋 더 고난을  더 받을라고, 참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간 거와 마찬가지로,  자리를 들고 걸어간 거와 같이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지 안하고 앞으로 더 더,  고문이 더 되기를 원하고 더 하기를 원하고, 주를 위해서 생명 바치기를 원하고  자꾸 그걸 더 더 원했으니까 그분에게는 두려움이 없고 기쁘고 즐거움이  됐습니다. 제일 깨끗한 승리를 했습니다.

 저 평양에 있는 오 장로님은 거기가 가지고서, 감옥에 들어가서 이라니까  '이놈은 들여놔도 소용도 없다. 이놈 내놔 버려라' 내놨다 말이오. 내 놓으니까  이제 돌아다니면서, 돌아다니면서 신사 참배 반대를 하면서도 가두지도 안하고  그대로 반대하는 대로 그대로 다니다가서 갔습니다. 그분이 참 멋지게 싸운  사람입니다. 멋지게. '이런 재앙들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하는  거기에까지 우리는 성결해야 되겠고,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자. 제일 못난 것, 패전 하는 것, 제일 못난 것. 그런게 오면  신앙생활 다 변동해서 신앙생활 다 내주고 변질 돼 가지고서 원수에게 다  패전하는 것. 그 다음에는 뻘뻘 떨면서 그저 겁이 나지마는 못 이겨서 죽자 살자  하고 힘써서 그렇게 하는 승리, 이호. 삼호는 웃으면서 더 주님을 위해서 고문을  더 고행을 더 당하려고, 고난을 더 당하기를 원하고 원하면서 승리한 이 삼호.

사호는 더 당하려고 하니까 고난이 근방에 오지도 안하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리라' 이것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악한 자가 마지지 못해 근방에 오지도  안해. 그런고로, 사호가 제일 좋고 삼호는 그 다음 좋고 또 이호도 좋고 일호는  못 쓸 겁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기도하고 회개하는 데에서 사호가 되느냐 삼호가 되느냐  이호가 되느냐 일호가 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  시기입니까? 요새 모두 산에도 모두 기도하러 가고 모두 이렇게 하는데. 산에도  모두 가고 그래 기도도 하고 그랍시다. 저는 이 정리가 덜 돼서. 어제부터  출발이 돼 놔서 고만 다 내비 두고서 내가 산에 갔다가 그래 왔었습니다. 인제  오늘도 산에 가고 매일 산에 갈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제 뭐 다른  준비는 인제, 기도 준비만 하면 인제 되겠으니, 물론 평소 기도는 다 했고. 집회  기도에 대해서는 인제 늘 평소에 했지마는 어제부터 산에 가서 기도하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것 시작하려고 여러 날 전부터 애를 썼는데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그 일이 빨리 이루어져서 생각한 대로 예상한 대로 시작이 됐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저 오늘 기도에 한 잎푼치 수고하면 이 다음에는 백 냥짜리 수고를 해야 될  것을 자기가 미리 막게 됩니다.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다 대충하게 되는 줄 알고  수고로운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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