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1984. 6. 20. 수새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성경에서 구원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듣고 연구하고 해야 합니다. 성경을 소극적으로 상식이나, 성경을  상식이나 하나의 자기의 지식이나 이런 욕망을 가지고 성경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오히려 거리끼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저  얘기처럼 듣고 또 우리가 상식으로 듣고 우리가 그렇다는 그런 하나의 지식으로  이렇게 가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하신 말씀이요 절대적 인 능력을 가지신 말씀인데 이 말씀 앞에  그와 같이 우리가 상대하고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보든지 한다는 것은 이것은  범성죄를 범하는 범성죄가 됩니다. 지극히 거룩함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이는 지극히 크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말씀이요 명령이요  계약이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할 때에  그말씀을 그들이 그저 하나의 상식으로 통계로만 들었지 이 말씀의 권위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그들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예사롭게 그 말씀을 범했는데,  저들은 예사롭게 범했지마는서도 이 말씀에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대로 해서  인류가 오늘까지 제일 싫어하는 죽음을 죽는 것은 그때 말씀하신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을 때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내가 얻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이루는 것은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돼야 되고 현재에 대한 것도 바로 돼야 되고 미래에 대한 것도 바로  돼야 되는 것이니까, 우리의 과거에 잘못되고 잘된 것 그것을 누가 구별해  주겠느냐? 아무도 구별해 줄 자 없습니다. 뭐 유교에 딱 맞추어서 구별해도  그까짓 거 아무 소용없습니다. 불교의 불경에 맞추어 가지고 '이라면 됐다' 그지  소용없습니다. 또 천하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다 하는 그것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 힘 없습니다. 절대자이신 당신이 이렇게 선포해 놓으신  여기에 맞추어서 삐뚤어진 것이면 삐뚤어졌고 옳은 것이면 옳은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추어야 되니까,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가 바로 돼야 됩니다.

 그러면, 과거에 대해서도 우리가 심사하는데는 이 말씀 가지고 심사해야, 내가  과거에 대해서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잘됐다 잘못됐다, 내가  사람에게 대해서 이렇게 한 것은 잘됐다 잘못됐다, 내가 내 자신에게 대해서  이렇게 한 것은 잘됐다 잘못됐다, 내가 이 가정에 대해서 이렇게 한 것은 잘됐다  잘못됐다. 내가 무슨 사건을 만날 때나 물건을 만날 때나 그럴 때에 과거에  이렇게 했는데 그거는 잘됐다 그거는 잘못 됐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에 그 모든  내 행동한 것을 이 말씀 가지고서 나벼서 잘되고 잘못된 것을 그것을 바로  알아서 잘못된 거는 예수님의 피 공로에 고해서 사유함을 얻으면 되는데 모르면  우리가 사유함을 얻지 못합니다. 못 하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으면  그게 천국을 따라가지는 안 하지마는 그게 남아 있으면 그것이 곧 악의 세력이요  죄악의 세력이요 불의의 세력이요 우리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모든 무기들이요 일군들이기 때문에 그게 있으면 있는 것만침 내게 의의 힘이 안  납니다. 생명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영이 힘을 못 씁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온갖 병이 들어붙어  보십시오. 병이 들어붙으면 그만 젊은 사람이지만 골케 골케 해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병에 죽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과거의 모든 생활에  잘못된 그것이 우리 몸에 병균같이 이런 죄 저런 죄 잘못된 것이 들어붙어 있어  가지고 그것 때문에 힘을 못 씁니다. 또 뭣을 자기가 해 볼라고 해도 과거에  이렇게 저렇게 잘못 저질러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게 원인이 돼서 그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그것 때문에, 그게 걸려서 그게 아니면  그게 낭파되겠다. 그게 무슨 이의가 있겠다. 문제가 있겠다. 해 가지고서 못  한다 고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의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서 뭐 잘못된  것이면 우리가 그것을 회개를 하고 또 현재도 잘못된 것이면 회개하고 또  미래에도 잘못된 것이면 계획을 미래에 대해서는 아직 하지 안했지마는 내가  요렇게 욕망을 가지고 요렇게 계획한 거,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꼭 같습니다.

사람들이 미래는 닥치지 안한 것 같지마는 미래가 들어서 현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래가 들어서 내 현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뭐하러 저  일 하는가?' 그 미래를 위해서. 그 사람이 자꾸 땅을 파고 있습니다. 뭐 하려고  파고 있는가? '아, 그 사람이 앞으로 집지으려고 땅 파고 있다. 그러 면 미래를  위해서 땅 파고 있지 않습니까? 미래를 위해,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움직이고 있고 또 과거는 지나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니오. 과거  지나간 그것의 결과로써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은  과거가 현재에 하고 있는 것의 원인이 됐기 때문에 그걸 피하지 못합니다. 또  현재라는 그거는 벌써 과거와 미래를 양쪽으로 한테 합해 가지고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과거를 청산치 안하고 미래를 청산치 안하면 현재의 생활이라 하는  것은 바로 될 리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뭘 가지고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알겠습니까? 이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시고 어떤 목적을 가지시고 어떻게 이루신다. 하신다 하는 그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또 성경은 사람들은 이런 이런 것이  사람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무슨 죄를 범하느뇨?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인간이  모릅니다. 성경을 봐야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는 것은 찍해야 겉으머리 나타나는 것. 제 눈에 띄는 거,  제 귀에 들리는 거, 제 견해에 이해되는 거 그것만 아는데 그거 아는 그것도  바로 알지도 못하고 또 삐뚤어지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아, 사람이 이렇게 흉측한 죄가 있구나.' 성경을 보고서 '사람에게  이렇게 흉측한 죄가 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사람을 그 뒤에 자세히 보면 그런  죄가 있습니다. 또 '사람은 이렇게 잔인하고 거짓되고 이중 삼중 십중도 더  되는구나. 기이하고 참 만물 가운데에 제일 더러운 것이 사람이요, 제일 못된  것이 사람이요, 제일 악한 것이 사람이요, 제일 아주 굉장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사람이요, 만물은 보면 다 깨끗합니다. 이런 것이 사람이라. 다른  사람은 쳔면은 그런데 자기는 또 그래 안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여지거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봐서 그렇게 나쁘다 보여지는 그것을 가지고 네게  그런 게 있는 줄 알고 살피면 다른 사람에게 대한 것이 티만침 발견됐으면 네게  대해서는 들 보만침 배견이 될 수 있는 그것이 속에 잠재되어 있다'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모든 뜻과 또 인간과 그  마음의 그 모든 구조, 인간의 마음이 요렇게 저렇게 간교하고 더럽고 이중 되고  뭐 꾀이고 참 깜찍스러워.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열 길 물속은  알지마는서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겪어 봐야 안다. 살아 보면 그게서 뭐이  나온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모르는 인간의 마음을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이요, 또 인간의 행위의, 인간의 이중에 대해서, 인간의 거짓에  대해서, 인간의 간교에 대해서, 인간의 교만에 대해서. 인간의 잔인에 대해서.

인간의 악독에 대해서. 인간의 무례에 대해서, 인간의 미련에 대해서,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인간의 불법에 대해서. 인간의 변동성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지만  이 성경에 다 나타나 있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이 지혜를 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바로 수정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자기에 대해서도, 모든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이 시간에 대해서도, 금생에 대해서도  내세에 대해서도, 내세에도 어떻게 소망해야 될 건가 이런 것을 바로 아는 것이  성경에서 지혜를 얻어 가지고서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바로 알지 그래  안 하면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이 가르침을 받도록, '성경은 '능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해결을 받았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우리가  되게, 그리스도가 되게, 그리스도의 모형을 입게, 우리가 그리스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가 될 수 있는 이게 우리가 소망인데, 이 소망이  뭘로 되느냐? 믿음으로 됩니다.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진리를 내가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이요 인정하는 대로 내가 실천하는 것이  고것이 믿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실천하면 되어지는데 어떻게 인정하고 어떻게  실천할까 하는 그 지혜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다른 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고로,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른다 말은, 구원이 뭐인데,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갖추어 가지는 것이 그것이 구원이요, 또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추어 가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만물의 중보자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모든  하나님께 만족하고 피조물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모두가 다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렇게 참 영광스러운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줬는데. 이 성경을. 이  지극히 큼이 이 안에 들어 가지고 있는데 이 성경을 좔좔좔 읽어서 뭐 장수나  채운다는 것,그것도 안 읽는 것보다는 낫지마는 혹 그라다가 걸릴 까 싶어서.

바로 시동이 걸릴까 싶어서, 바로 시동이 될까 싶어서 필요하다 하는 것이지  성경 장수나 읽자 절수나 읽자 이래 한다는 것, 몇 독이나 회수나 읽자 하는 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뿐이라면 자기는 죄만 지었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범성죄만 지었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라다가 이제 깨달아서 뭐이 될까 해서  성경을 이래라도 저래라도 봐라 하는 것이지 성경을 장수 보기 위해서, 많이  보기 위해서, 성경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해 가지고서. 상식을 얻기  위해서 보는 것 아무 소용없습니다.

 여기서 구원 얻는 지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한 마디 한 마디  볼 때에 '아, 요게서 요렇게 하면 구원에 이른다. 요것 때문에 구원에 지장이  있다' 요것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보는  것이라야 그 사람이 성경을 진실되게 보는 것이고 그럴 때라야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셔 가지고 우리가 변화도 되고 변질도 되고, 이렇게 약한 자가 강하게도  되고, 아주 제가 천하제일 의인으로 아는 자가 죄인 중에 죄인도 되고 이래  됩니다. 예수 믿어서, 예수 믿어서 높으던 자가 높은 자가 예수 믿어 가지고 '나  같은 천인이 없구나.' 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그 사람 성경을 잘못 봤습니다. 또  자기는 '나 같은 천인은 희망 없는 이런 천인이다' 하는 그 자가 성경 보고 난  다음에 '아, 나도 최고의 희망을 가졌다, 할 수 있는 것이, 그 사람 되는 것이  그게 성경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부한 자는 가난한 것으로  자랑하고 낮은 자는 높아진 걸로 자랑한다, 왜? 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풀과  같이 그 아름다움이 다 쇠잔해지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데 계약이 있는데  계약으로 인해서 자기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데 이 걸랑 생각지 안하고서  인간적으로 생각해 가지고서 '나는 희망 없는 천인이다, 나는 참 구비하고  존귀한 자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평안한 것이 다 헛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서  아주 낮은 자가 자기의 높은 것을 발견했고 아주 높은 자가 자기의 낮은 것을  발견해서 사람이 이렇게 완전히 변화되어지는 이것이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지.

성경을 이 지식으로 상식으로 우리가 양성원에서도 성경 백 독 하자 하는 그말은  그런 가운데에서 혹 거기에 서 시동이 걸릴까 해서. 거기에서 어떻게 참에, 옳은  데 걸려 가지고 될까 해서 그런 것이지 그냥 줄줄 읽는 그거 백 독 아니라 천 독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 백 독으로서 이렇게 통과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 현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상관이 없이 현저히 사람들이 보기에도  틀린 그런 거을 뿍뿍 하고서 미련을 대고 교만을 대고 억지를 대고 하는 그것이  성경을 알면 그럴 리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믿음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말은 예수님과 같은 제사장이 되고 예수님과 같은 선지자가 되고  예수님과 같은 왕이 되는 이와 같이 되어지는 이 구원을 내가 얻는 지혜를 얻는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내가 또 하나님이 사람 되셔 가지고서 우리 위해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제물이 되어진 예수님과 같은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그런 지혜를 얻는 것이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에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성경 보는 사람이 되어  집시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산에 기도하러 가면서 중간에 가면서 애기하는 것, 얘기하면은 뭘로  되느냐 하면은 얘기하면은 산에 이렇게 관광하러 가는 사람. 산보하러 가는  사람과 같이 돼 버리고 맙니다. 산에 산보하러 가고 또 등산객들, 많은 그  사람과 같은 사람 되고 말아요, 그 사람들은 다 세상에 속해 가지고서 마귀가  시키는 그 일을 지금 흥미있게 하기 위해서 등산하고 관광하고 또 산보하고 이래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꼭 사람이오. 그러나 다만 우리가 출발할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출발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길가 가면서도 말이지요, 이래 가니까. '갈 때 시간 걸리고 올 때 시간 걸리고  하니까 기도할 시간 없다.' 아니오. 가는 것이 전부 시간이오. 가는 것이 다  기도고 오는 것이 다 기도입니다. 가면서 기도하면서 우리는 가고 기도하면서  걸어오고 그라고. 어떤 사람은 그러다가 눈 감고 뭐 전봇대에 받힌 사람. 그  사람은 기도 못 하는 사람이오. 그 사람은 예수 잘못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하면은 여러분들도 그래 봤지마는서도, 물론 체험했을 거라. 기도를  하면은 눈 감고 기도하는데 그 주변에 자기의 심령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몇  미터밖에. 어떤 사람은 몇 십리 밖에, 어떤 사람은 몇 천리 몇 억억만리 밖의  것이 알아집니다. 몇 억만리 밖의 것이 알아져서 '아. 지금은' 기도할 때. 생전  생각지 못하던 것이 '아. 미국서는 누가 나에게 지금 사모하고 있구나. 원망을  하고 있구나 아, 무슨 사건이 언제 몇해전에 있었는데 그 사건을 그걸 해야  되겠구나.' 자꾸 기도할 제목이 자꾸 생겨지고 알아 진다 그말이오. 이렇게  심령이 밝아지는데 전봇대에 턱 부딪히기까지 그렇게 자기가 지척을 분별 못해  가지고야 그것이 정신 이상에 걸린 것이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와  가지고 비추어서 나를 밝게 이렇게 반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내가  명철해지는 것이 그것이 기도하고 빛을 받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갈제가 다 기도요 올제가 다 기도요. 그러기에 기도는,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은 왜? 다른 것 이래 보이기 때문에 그것 안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이지 눈 감고 기도하나 눈 뜨고 기도하나 한가지입니다.

이러니까 눈을 뜨고도. 당달이 모양으로 눈은 뜨고 있었지 눈 뜨는 동공에서  모든 비추는 그거는 하나도 들어오지 못하고 눈을 떴는데 하나님이 보게 하는  것만 보고 보지 못하게 하는 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눈을 뜨고  기도하나 눈을 감고 기도하나 한가지라. 어짜든지 주님과 진리 놓지 말고  기도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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