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비밀

 

1982. 4. 11. 주후

 

본문 : 행 1:4-11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인류 시조 아담 하와로 인하여 일반적 생육법으로 난 사람들은 다 사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아담의 일반적 부정모혈로 날 인류의 총 대표로 하나님과  계약한 그 계약을 어겨서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 죄는 원죄와 본죄  두 가지 죄인데, 원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주가  되시고 주권을 가지신 것인데 사람이 자기에게 대한 주권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가 자기에게 주가 되어서 주권하는 이것이 원죄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주인을  바꾼 것이 원죄요 주인을 바꾸어 가지고 행동한 모든 죄가 다 본죄입니다.

 기독자의 기본회개는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주인을 바꾸는 것이  기본회개입니다. 자기를 자기가 주장하지 않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주장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회개요, 또 일반적 회개는 자기의 모든 언행심사의  행위가 하나님 법칙을 어겨 행했던 것을 하나님 법칙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일반적 회개입니다.

 사람이 죽게 된 것은 원죄와 본죄 이 두 가지로 죽게 된 것인데,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그것이 죽음입니다. 또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진 그것이 피조물의 생명입니다.

 첫째 아담이 배암의 미혹을 받아 자기가 자기의 주가 되는, 자주장하는 원죄와  자주장함으로 행하는 모든 본죄를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짐으로 사망하게  된 것을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신인양성일위이신 하나님의  본체이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가지시고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낮아져 죽기까지 복종하는 이것으로써 첫째 아담으로 죽은  것을 둘째 아담이 대속해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신 것은 우리의 세 가지 죄,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자기가 주장해서 행한 불의의 죄, 하나님을 대립해서 행동한 이 세 가지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형벌 받으심으로 죄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 해방은 하나님의  공심판 해방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영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우리 대신 행하셔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습니다.

 또 사죄와 칭의는 하나님의 법에 속한 것이요 하나님과의 원수된 것은 이것은  해결이 안됐는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원수 된 원수를 대신 부담하시고 하나님에게  각양의 원수 된 그 원수의 취급과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를 대신해서 다  받으셨습니다. 원수 된 이 원수의 형을 대신해서 받으시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이 일을 위하여 제물이 되실 때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원수로 끝까지  취급을 해서 원수에 대한 저주와 진노와 복수의 일을 하셨으나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케 하는 이 소원과 이 노력과 또 화평한 이것으로서 끝을  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대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우리 마음대로 한 불의의 값,  하나님을 배반하고 독립자로 행동한 이 모든 배신의 원수성이 형벌로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율법대로 다 순종하는 이 율법에 만족을 이루신, 왜. 세포 하나까지도 다 율법의  요구에 응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루시는 죽음으로 또 하나님에게 화친을  끝까지 가지시고 화친으로 죽으신 죽음을 하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는 당신은 이런 것을 할 이유가 없지마는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형벌, 순종, 화친 이 세 가지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은 당신에게 털끝만치라도 흠이 있으면 이 일을 하실 수 없고  흠 그것으로 인해서 당신은 영원한 사망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당신을 거룩케 하셨다 했습니다. 우리를 대속하실 수 있도록 당신이 먼저 무죄한  완전자가 되셔 가지고 우리를 대신 하셨습니다.

 이런고로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대속을 완성하는 절정의 최후요, 하늘에서  모든 부요를 내어 놓으시고 사람 되어 땅 위에 오셔서 사생활 공생활 모두 다  우리를 대속해서 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속하시는 일은 형벌을 완전히 받아야  되고, 완전히 순종해야 되고, 하나님과 완전히 화친을 해야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것이 다 해결되고 다시 하나님과 완전한 관계가 맺어지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일면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면이요, 일면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가진 면이요, 일면 은 첫째 아담을 정복해서  첫째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을 점령 탈취 한 사탄으로 더불어 관계를 가진 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이 삼각관계를  가지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대해서는 세포 하나도 남김이 없이 예수님의 자유성을  가지고 우리를 대신하고저 원하시는, 우리를 대신하고저 하시는 이것으로 전부가  되어야 되지 세포 하나라도 대신하고저 하지 않는 요소가 끼어 있다면 하나님의  지공법에는 걸립니다. 세포 하나라도 원치 아니하는데 강제로 대신 시킬 수는  없습니다. 대신 하는 것도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자유성 가지고 대신하려고  하니까 대신을 거절할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포 하나라도, 대속하기를 원함이 아닌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지공법에는 걸리고 송사자 마귀는 대속의 부분적 대속을 원했지 전체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가 원하지 않은 이것을 대신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지공법에  위반되는 강제가 아니냐 하는 송사로서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하신 그 고민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죽음을 두려워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인들도 육의 생명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크게 여기지 아니하고 사선을 넘고 있습니다. 다만  고문과 고형으로 십자가상에 우리의 전체의 형을 다 받으실 때에, 대신 행하실  때에, 대신 화친하려 할 때에 용욕함이 짝이 없고 이런데 혹 한 마디라도, 찰나의  생각이라도, 세포 하나도 원치 아니함이 있어 그 순서가 통과됐다면 이것이  실패되기 때문에 이 어려움을 가지시고 기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대해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지공 지성법을  가지고 상대해도 우리를 대신함에 대하여 흠이 없어야 하고,  또 하나는 악령으로 더불어, 첫째 아담을 삼킨 배암 악령으로 더불어 관계점이니  악령이 저희의 가진 지혜와 수단과 방법과 세력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한 대형이나 대행이나 대화친이나 또 순종이나  우리를 대신하고저 하는 이 자유성의 소원이나 이것에 대해서 털끝만치라도  흠점이 있게 하려고 악령은 발악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을 대표로 세운 인류에게 사탄은 여기에 도전을 해서 사탄은 이기고  첫째 아담은 패전했습니다. 첫째 아담이 패전함으로 순전히 마귀의 것이 된  이것을 둘째 아담이 첫째 아담을 정복한 사탄에게 다시 싸움을 청한 도전을  하셨고 또 하나님에게 다시 한번 재시험을 간청해서 이 일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탄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해도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않는 이 일과  우리를 대신하는 이 소원과 하나님을 향한 이 일에 털끝만치라도 흠이 없어  마귀에게 패전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이 일이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싸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히 대신하셨고, 마귀의 모든 싸움을  이기셨고, 하나님의 율법의 형을 완전히 받으셨고, 하나님의 율법의 형을 완전히  받으셨고, 하나님의 지성법의 요구에 만족한 순종을 이루어,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한편으로 사탄을 이겼고 한편으로 하나님과는 그의 법칙을 완수했고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가져 이 세 가지 성공을 하신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성공이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죽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과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두  가지로만 죽지 그 두 가지 외에는 죽이는 세력은 없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 네가 어쩐다고 사람을 죽일 수가  있느냐.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말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사망은 힘을  못씁니다.

 이렇게 첫째 아담이 이로 죽은 것을 둘째 아담이 이 일을 완전히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과 완전 결합, 완전 순종, 사탄의 완전한 승리 이 세 가지 끝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진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이를 보수하고 생명이 남아 있으면  아직까지 미결입니다. 그 다음은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서, 세상살이 생명살이가 이 세 가지로 끝을 마쳐 죽으셨기  때문에 다시는 미비점이나 미진점이나 미완성 점은 하나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죽은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죽는 것이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아는 자로 해석을 할 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죽이는  세력을 완전히 이겼고, 사망을 완전히 이겼고, 마귀를 완전히 이겼고, 생명을  완전히 점령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망을 이긴 완성이요, 영생하는  생명을 취함에 완성이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은혜에 연결의 완성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하신 당신과 당신이 책임진 우리에게 대한 모든  것이 완전 승리하신 승리의 이 죽으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시는 것은 삼일 만에 부활의 생명이 시작된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죽으심은 사망이 생명으로 완전 전환됐고, 악령이 왕이라 그에  속한 것이 악령을 완전히 자기의 부하로 부리는 신으로 정복하신 일이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하나님과 완전 연결됐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성된 것이 사람들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난 것이 삼일 만의 부활입니다.

 그런고로 왜 이 말씀을 하는고 하니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며 삶의 원인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죽이는 자를 똑똑히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살리는 자를  똑똑히 알아, 사는 길을 가는 것이 죽을 수 있는 위험의 길이 끝나는 것이  변동없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전환되는 것인데, 사망에 있는 것이 사망에서  없어짐으로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이 사실을 이해를 못하고 사망에서 없어지는  것만 보고 죽는다 탄식하는 이런 어리석음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또 오후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한없는 영광의 죽으심이요, 승리의  죽으심이요, 성공의 죽으심이요, 영원한 삶이요, 영원한 정복이요, 영원한 영광을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절대 비참한 것 아닙니다.

눈물 흘릴 것이 아닙니다. 비참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삶이라는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동안 종노릇 하는 어두움의 마귀의 거꾸로 가르치는 법칙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대속으로 살려 놓은 이 삶이 어떻게 함으로 완성이 되고 뒤에  변동 없는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느냐. 없어짐을 통하여 영원히 있어지고,  죽어짐을 통하여 영원히 살고, 순종을 통하여 영원한 주권을 가지게 되는 이  사실을 굳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법적으로는 살아  있지마는 실상은 쬐 아래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 현실을 통하여, 법적으로  구속받은 그 심신이 현실에서, 법적으로 구속하여 사죄자로 칭의자로 화친자로 된  자기의 심신이 이 대속을 벗어 놓지 아니하고 그 현실에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그 현실을 통과할 때에 영원한 승리로 죽은 것이  다시 죽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악령은 우리의 현실에서 죽이는 법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고 딴데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에  잘못됨으로 죽지 여기에 잘못됨이 없이는 죽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가진 자에게는 마귀가 와 가지고, 너 죽인다, 어떻게 한다 해도, 너는 죽일 권리가  없어. 하나님과 하나님 법을 배반할 때에 주님이 나를 사죄와 칭의를 입혀  주셨는데 사죄와 칭의를 이 현실에 벗어 놓을 때에, 벗어 놓고 죄를 지을 때에,  벗어 놓고 불의를 행할 때에, 내 주장대로 살 때에 이것으로 죽지 네가 죽인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죽인다고 온갖 협박을 할 때에 내게 협박을 해도,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않고 주님의 구속을 벗어 놓지 아니하면 네가 나를  협박함으로 나는 너에게 지지 않고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그것을 그대로  고수하고 너에게 설복이나 미혹이나 정복이나 굴복을 당하지 않으면 너는 내  종이 되고 나는 승리했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되고 영생을 가졌어, 하는 이  도리를 알고 마귀를 상대하는 자는 마귀라는 놈이 벌벌 떨고 그에게 대해서 입을  벌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네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데 네가 이 법을, 하나님을 어기지 않고 이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지 않으면  네 사업을 내가 뺏는다, 네 생명을 내가 뺏는다 온갖 협박을 할 때에 그는 세상  왕이기 때문에 뺏을 수가 있습니다. 뺏으나 그가 뺏고 안 뺏는 데에 뺏기고 안  빼앗기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코웃음을 웃으면서, 얘 사탄아, 너는 뺏을 권리도 없고 줄 권리도 없어.

주고 뺏는 것은 오직 주님과 그 법칙에 있어. 네가 만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내가 배반치 않는다고 위협을 하고 나를 때리다가 맞아서, 맞아서, 맞아도 위법을  않고, 맞아도 위법 않고, 맞아도 하나님 배반하지 않고, 맞아도 배반하지 않고  그러다가 딱 숨이 끊어지면 나는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되어 끝마쳤고 너는  하나님과 진리와 나를 서로 이탈시켜서, 서로 그 사이를 벌어지게 배반하게  하려고 내게 대해서 있는 대로 다해서 내 숨이 끊어지기까지 해도 너는 네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나를 정복하지 못했으니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너는  나한테 졌기 때문에 영원히 내 종이 돼. 사탄은 내 종이요 하나님과 진리는 내  하나님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게 있는 소유를 네가 가져갔든지 생명을 가져갔을지라도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네게 뺏겼고 그러기 때문에 뺏긴 것은 하나님과 진리  때문의 것, 죽어도 하나님과 진리 때문의 것,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된 것은 죽는  데 이르지 않는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썩는 데 이르지 않는다. 사탄아, 그런  미혹의 위협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이것이 성도가 알고 사탄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슬픔으로 송축하는 사람은 앞으로  마귀들과 더불어 싸우는 최종적인 결정인 죽음의 위협을 가지고 미혹시킬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이 협박을 당할 것이요 그때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할렐루야 승리입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만족이요 주님의 만족이요 택한 자의 만족이요  사탄은 영원한 사망을 당했습니다. 정복을 당했습니다. 할렐루야요.

 예수님의 부활은 이렇게 대속해 놓은 자기를 이 대속을 영원히 입고 누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이 대속하심을 영원히 누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유일의 시작이 부활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잘 기억해야 합니다.

 또 오전 것을 한번 읽습니다. 다시 들으십시오.

 예수님의 죽으신 원인.

 첫째, 하나님의 목적을 위함이니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은혜로  주어 하나님 같은 자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사탄이 죽인 것 아니고 로마 병정들이 죽인 것 아닙니다.

그들에게 죽을 분이 아니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원 전 하나님이 예정 하신 그대로  죽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 그대로 주권적 능력,  당신의 섭리로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죽은 자들을 대속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 죽으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택자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들어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죽은 것입니다. 사랑 자체가 죽음을 자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자체가 죽음을 자취했지 로마 병정들이 죽이지  못합니다. 로마 병정들이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죽였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자원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섯째, 택함을 입은 우리를 대속하시는 제물로 하나님의 부요, 하나님의 영광,  양성일위의 몸과 마음과 생명을 다하여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행하시고 대신  화친케 하는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시는  죽음을 죽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죽음을 죽어 주신 이 죽음을 인해서 우리는  살았습니다.

 둘째. 이 구속을 성공하는 데에 거기에 사용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예수님의  대속의 성공을 하시는 데에 사용되었던가. 대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용한 것인데  껍데기로 보면 사용된 그것을, 사용된 그 세력이 강해서 사용된 세력에게 못  이겨서 예수님이 죽은 것 같이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용된 것들이  무엇인가.

 첫째, 타락한 천사 마귀가 이용이 됐습니다. 타락한 천사 마귀는 이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용하신 것이지 마귀 제 단독 주권으로서 해서 그  주권의 행사로 침노 받은 것 아닙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예정의 순서 안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조브라우면 안됩니다. 전체 면을 알고  안심하고 유유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용된 것, 타락된 교권들이 사용됐습니다. 예수님의 대속하시는 일에  정통들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예수님과 보조를 같이 하는 생명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시는 데에 거기에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교회, 제사장, 선지자, 서기관, 바리새교인, 타락한 교인들의  교권이 예수님의 대속에 이용만 당하고 비참했습니다. 가룟 유다도 이용당한 것은  그는 타락한 교인이기 때문에 이용당했습니다. 타락한 교권이 이용당했습니다.

 셋째 이용된 것은, 본 지위에서 타락한 인류, 하나님 잊어버리고 인간이  제일이라고, 인본의 모든 인간들의 지걸거리는 언론들이 이용당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모아 가지고 정죄한 것은 그는 인간 중심의 언론들입니다.

여론들입니다. 공론들입니다. 중론들입니다. 이것들이 이용당했습니다.

 넷째로 이용당한 것은, 하나님과 진리를 잊어버린, 마귀에게 소속한 세상  정권들이 이용을 당했습니다. 병정도 빌라도도 헤롯도 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대속하시는 그 일을  성사하시는 데 이용당한 것이지 그들의 힘이 강해서 예수님이 거기에 못 이겨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 아닙니다.

 다섯째로 이용당한 것은, 로마의 형법과 십자가 형틀이 이용을 당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완성이 됐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완성을 못합니다. 가룟 유다가  없었다면 안됩니다. 가룟 유다는 신약교회의 타락한 자의 모형으로서 그는 예수님  죽이는 데에 이용당했으나 저는 나지 않은 것이 좋은 만침 불행스럽고 그가  예수님을 팔므로 예수님의 대속은 성공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공은 다 이런  비밀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예수를 믿어도 껍데기로  예수를 믿습니다.

 셋째로. 구속의 역사에 가담된 그 권력들과 힘은 어떤 힘들이 예수님의 구속에  가담이 되어 가지고 협동을 했던가. 이는 대적 같으나 대적이 아니요 해하는 것  같으나 도움이 되는 신비한, 모순 같으나 일치의 일을 했습니다.

 첫째, 인류를 범죄케 한 사탄이 첫째 아담을 이김으로 자기 백성을 삼은 이 자기  백성을 빼앗기지 아니하려고 예수님에게 최종 최고의 악을 가지고 발악하면서  예수님에게 달려들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고 했습니다.

 그는 제 백성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넘어뜨리기만 하면 다 제 백성은 예수님에게  빼앗기지 않고 예수님도 저희 것이 되기 때문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패전하여서 이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졌기  때문에 이긴 자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둘째, 사탄의 것이 된 인본의 모든 인간 발언권, 인간들의 다수권, 인간들의  여론권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성공하시는 데에 거기에 함께 가담된 힘들입니다.

빌라도 앞에 송사한 그들은 예수님을 해하는 것 같으나 예수님을 위했습니다.

예수님을 해하는 것 같으나 예수님의 하실 일을 도와서 성공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해하려고 했지마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아니하는 이 두 가지 함으로 인해서, 이 두 가지를 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하는  모든 발악은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어서 좋은 결과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비밀인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천하가 다 달려들어서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내가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않고,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라고 천하가 다 달려들어 가지고 나를  항거할 때에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셋이 하나만  된 것으로 끝을 마치면 나를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게 하려고 대항했던 모든  우주의 충만한 것은 나의 종이 되고 내 발등상이 되고 영원히 나를 찬양하는  것이 되고야 마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셋째, 사탄의 것이 된 진리 모르는 정권의 그 힘들이, 그 권력들이 여기에 다  동원됐습니다. 이 권력이 동원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승리해  가려고 하는 데도 그때와 꼭 마찬가지 이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사탄이  일어납니다. 타락한 교권세력들이 일어납니다. 무책임한, 알지도 못하고 눈먼  망아지 원앙소리 따라가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대중심리들의 모든 언론은 우리를  대적합니다. 또 악에게 속한 모든 정권들은 우리를 대적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나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안심하라. 이것이 우리의 가는 길입니다.

 넷째로. 전법은 하나님과 진리를 어기게 하여 사탄의 것을 삼으려는, 세상의  것을 삼으려는 이 강한 세력에게 지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에 복종하는  것으로 운명하셨습니다. 이 운명은 다시 재시합이 없는, 재투쟁이 없는 완전 영원  숭리가 되어 사탄은 정복당했고, 사망도 정복당했고, 하나님의 저주는 축복으로  변했고, 하나님의 정죄는 의로 변했고, 하나님이 원수로 삼고 미움을 삼는 것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고 완전히 바꾸어져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예수님에게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생명과  평강으로 이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이 죽음도 우리의 죽음이니 이 죽음에 연결돼서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의 부활이니 이 부활에 연결돼서 부활해야  됩니다. 살아나야 됩니다. 이 죽고 살아나는 것이 기본회개입니다. 이것이  기본회개입니다.

 기본회개 없이 기독교의 도덕면, 윤리면, 사회면 이런 것이나 거떡 거떡 행하면  예수 믿는 사람인 줄 알지마는 근본이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해서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해 새사람으로 살아난 이 사람이 되어 가지고 하나 둘 한  그것이 의지, 기본회개로 돌아서고 방향을 전환하고, 마귀를 향하여 세상에 소망  가지고 이것 있으면서 아무리 행해 봤자 그것은 내나 옛것 그것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영생으로 살았고, 죽을 생명으로 살 우리들이 아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을 생명은 하나님과 진리로 없어질 것은 세상에 있는 것,  없어질 것은 하나님과 진리로 인하여 없어짐으로 살고 없어지지 아니할 생명은  하나님과 진리로 삶으로 점점 자라고 충만해지고 영원히 가고 하는 이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왜 사도행전 1장 6절 이하를 읽었느냐. 읽은 이유는 이것은 오전  설교를 되풀이 했는데, 읽은 이유는 예수님을 3년이나, 3 년 4개월이나  따라다니고 예수님이 죽으심에도 참관했고 부활 후에 40일 동안이나 자주 만나서  교훈을 받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 승천하시는 직전에 승천하실 그 자리에서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이 기다리라" 이러니까  엉뚱이 같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우리 독립이 지금입니까  순전히 땅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는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는데 언제든지  너희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너희들은 땅의 소망은 너거 소망이 아니다. 땅의  소망은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이거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땅의 소망은 완전히  포기하라.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마라 위엣 것을 찾고 땅엣 것을 찾지 마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런고로 너희들은 땅에 있는 것을 버리고, 너희 생명이 죽었고  너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으니까 너는 죽은 생명으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야 할 생명으로 살지 마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라.

죽이는 법으로 살지 말아라 살리는 법으로 살아라. 죽이는 법이 뭐인데. 하나님의  법을 어겨 인본의 법대로 살고 안 빼앗기게 하는 그것이 죽는 법이지 하나님의  법만이 사는 법이지.

 이러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몇날이 못되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들이 권능 얻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노릇 하리라" 어디든지 이르는 곳곳마다 내  증인이 되리라 내 모형이 되리라. "아버지를 본 자 없으나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 날 봤으면 아버지는 나와  꼭 같다.

 "하나님을 근본 본 사람이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님이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냈느니라"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입게 하기 위함이라"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과 같은 인격성, 예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 예수님의 소원 같은 소원, 그는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이라. 예수님의  소원이 내 소훤 되고, 예수님의 기쁨이 내 기쁨 되고, 예수님의 능력이 내 능력  되고, 예수님의 지능이 내 지능 되고, 예수님의 신격이 내 인격 되고, 예수님의 그  모든 희로애락이 내것 되고, 예수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 되고 나는 예수님의  지체 되고, 예수님은 내 안에 주가 되시고, 나는 예수님의 집이 되고, 성전이  되고, 이리하여 어디 가든지 예수를 보여 줄 수 있는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시는 이 두 가지 말씀. 이 세상의 소망을 버려라. 하늘의 소망을 가지라.

이것이 기본회개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힘을 쓰고, 하늘의 소망을  이루는 데에는 하나님과 진리를 지켜서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사는 것이  하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니까,  하늘의 소망을 이루니 어떨 때에는 일도 하라 하고, 그분에게 순종 하게 되니  일도 하라 하고, 밥도 먹으라 하고 먹지 말라 하고, 자라 하고 자지 말라 하고,  사업을 하라 하고 하지 말라 하고, 이러니까 너도 뭐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  하더니마는 너도 돈벌이 하네. 돈벌이 안 한다. 주님이 이거 하라 하기 때문에  그분에게 순종으로 한다. 오늘이라도 이 시간 하지 말라 하면 안 한다 한 자리에  하되 하나는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자는 데려  가고, 꼭 같이, 외모 보기에는 같이 하지마는 이것은 땅의 소망을 가지고 제가  주장해 하는 자는 이자는 버려둠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땅의 소망을 버리고, 또 하나는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성령 영접을 받아라. 성령 영접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네가  성령의 것이 되어라 하는 말이오. 성령은 우리의 소지품 모양으로 가지는 것  아닙니다.

 두 가지 어려운 것. 땅에 있는 소망은 버리는 것, 하늘의 소망으로 바꾸는 것,  기쁨도 바꾸고 쾌락도 바꾸고 욕망도 바꾸고 가치도 바꾸고 비판도 바꾸고 전부  바꿔. 인간의 비판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비판,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 땅의 쾌락이 아니라 하늘의 쾌락, 땅의 인간들의 사회의  국제 사업 이 내 사업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주의 사업이 내 사업. 바꾸고,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부활했다 하니까,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교인들도 로마 정권들도 병정들도 모든 유대인 전체가 관민을 막론하고  예수님 죽이는 데 가담해 가지고 다 함께 단합해 가지고 죽였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하는데 여기에서 봤다, 저기에서 봤다, 드문 드문 하니 기가 찬다  말이오. 만일 부활하면 그 죽인 대적은 우리는 다 전멸을 당할 터이니까 어쨌든지  예수교를 전멸해야 된다 하기 때문에 그때는 죽음 구덩이 속입니다.

 거기에서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그럴 때에 120명은 거기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다 생명보다 성령의 것이 되기를, 생명보다 성령의 능력이 와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그리스도의 모형을, 꼭 그리스도와 같은 자,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 만들어 주시는 이 소망만 가지고 이것을 소유보다도  귀하게, 몸보다 귀하게, 생명보다 높이 평가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에 열흘 동안에  성령이 오셔 가지고 오순절에 신약교회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버리는 것,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성령 영접하기  위해서 내어놓고 성령은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해서 있는 것 다 성령 영접하고  성령의 것이 되기 위해서, 돈도 내 놓고 모든 것 내놨지마는 이것만은 내놓지  못하겠다 하면 그것은 성령보다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이요 그것이  그에게 주요. 하나님은 그런 제 2의 취급을 당하지 아니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안돼. 이것을 다 내놔. 모든 것보다 주님과 주의 것 되는 것이 좋은 것을 아는,  이것을 알고 이 작정을 하고 하다가 넘어져도 또 작정하고 또 작정해서 넘어질  때에는 옛사람으로 돌아갔고,  이 기본구원에 이 두 가지가 작정돼서, 주여 이제는 땅의 소망을 내가 가지지  않습니다. 순전히 하늘에 있는 주와 주의 것의 소망을 내가 가집니다. 이제는 내  소유와 몸과 생명보다 성령의 능력을 내가 더 원합니다. 원합니다. 아멘.

 기본회개를 돌아섰을 때에 성령이, 그 순간이나 하루나 한 시간이나 성령이 오셔  가지고 그를 붙들고 그리스도의 증인을 만들고 이러다가 또 반복해서, 아이구,  땅의 것이 생각나고 이 생명이 아까운데 할 때에는 다시 돌아가서 헛일입니다. 또  헛일이오. 이랬다가 또 일어서서 다시 일어서면 또 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도 하루 여러 수십 번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의  자식으로 여러 수십 번 될 수 있는 것을 요한일서에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 이 구원은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어. 어떤 자로 인함이 없어. 자존하신 그분의 주권으로  생겨졌어. 이 구원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모든 순서대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오. 이 구원 위해서 모든 존재도, 김일성이도 이 구원 위해서 있어, 이 구원  위해서. 브레즈네프라는 그 사람도 이 구원 위해서 있어. 세계가 이 구원 위해서  있어,  내가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이제 것도 장래 것도,  우주도 영계도 다 나의 것이 된다고 하나님이 계약으로 선포해 놨어. 큰  운동이야. 이 운동보다 큰 운동이 땅 위에 없고 하늘에도 없어. 이런고로 이  광대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 모든 존재가 이거 위해서 기다리고 있어. 동서양에  이루어지는 모든 순서는 이 구원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어. 나는  비록 약하지마는 내 구원을 보증하신 분이 성령이 보증자라. 진리가 보증자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보증자라.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우리에게 이것을 보증했다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광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의 태 속에 있는 우리들에게 염려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날 안 자요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고 나를 책임진 자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날 어떻게 하겠소.

안심하고 뿍뿍 걸어갈 것뿐입니다. 기쁨으로 걸어갈 것뿐이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을 때에 능력 옵니다. 바꿀 때에 능력 옵니다. 모든 것을 내놓고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를 기다릴 때에 옵니다. 이것 가지고 하나님에게 암만 꾀워도  안됩니다. 달래도 안됩니다. 사정을 해도 안됩니다. 모든 것보다 성령의 은사를  크게 여겨야 됩니다. 내어놓고 죽든지 살든지 산 제물로 드려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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