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하는 도리

 

1987. 9. 13. 주일오전

 

본문: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영생하는 도리를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네가 성경을 어떻게 읽었느냐’ 그럴 때에 이 율법사가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셨나이다’ 이렇게 대답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덧붙여서 하시는 말씀이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그 율법사가 영생에 대한 신앙 고백을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네 대답이 옳다’라고는 인정을 하셨고 그 다음에는 `네가 이렇게 대답을 바로 하니 네가 영생을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네 대답은 옳다. 그런데 문제는 네가 여게 대한 올바른 신앙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마는 이것만 가지고는 영생이 안 되니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고백한 대로 이대로 행해야 영생이 되지 행하지 아니하면 영생이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밝혀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강단에 내려오기 전까지 오늘 이 말씀을 증거할라고 내가 열심히 상고하고 기록해 가지고 내려왔었습니다. 여기 강단에 와서 엎드릴 때에 하나님이 이 말씀을 증거하라 해서 준비 해 놓은 모든 설교는 다 뒤로 밀렸습니다.

이래서 오늘은 영생이 이루어지는, 영생하는 도리를 증거하는 것이 옳다고 주님이 말씀하셔서 영생하는 도리를 이 시간에 증거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 영생하는 도리를 제가 증거할 때에 여러분들이나 내나 여게서 가질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겠고 또 하나는 이 지식대로 행하여야 구원이 되는 것을 주님이 덧붙여서 결론지웠습니다.

영생한다 말은 우리의 영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고 우리의 심신의 기능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현실에서 이대로 행하면 그 현실에 해당된 마음과 몸의 기능은 다 영생이 되고 또 거게 관련된 모든 만물들도 다 영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이 지식을 바로 구비하고 있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이 지식대로 행치 아니했으면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영원 멸망입니다. 한 번 멸망된 것은 다시 구원 얻는 길은 없고 또 한 번 영생한 기능은 영원히 죽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현실마다 거기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그 현실이 지나감에 따라서 그 기능은 지나가 버립니다. 그 기능은 현실이 지나가면 그 기능은 영생으로, 멸망으로 무엇이든지 그대로 불변적인 결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그 다음 현실을 살 때는 그 다음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계속할 심신의 기능이 우리에게 있어서 그 심신의 기능이 한 현실 한 현실 지나갈 때에 우리의 심신의 기능의 양은 점점 줄어져 갑니다. 이래서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기능도 다 소비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능이 멸망으로 없어지든지, 영생으로 없어지든지 자기에게는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하는 법칙은 사랑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생하는 법칙은 사랑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이렇게 여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의 진리가 가르친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하겠고 증거할 때에 이 증거를 지식으로 받을 것과 또 이 지식을 실지로 행할 그 행함으로 받을 것과, 이 두 가지를 여러분들이나 내나 이 시간에 받아 가지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게 사랑하기를 얼마나 사랑해야 하느냐 하는 그 정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해야 된다 그렇게, 사랑하는 정도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율법사가 말하는 것이나 이는 곧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었느냐’ 하는 것을 이렇게 고백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게 다하라는 데 대해서 좀 바로 깨닫기가 힘이 들겠습니다. 여기 ‘다하라’ 말은 간단한데 사람들이 자꾸만 에누리를 하는 데에서 복잡해지고 탈선돼서 바로 지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하라 말은 남김이 없이 하라 그말입니다.

다하라 말은 남김이 없이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랑하는 여기에 마음 다 들이고, 목숨 다 들이고, 힘 다 들이고, 뜻 다 들이고, 여기에 들이고 남은 것이 없도록 하라 그말입니다. 요것만 생각하면 거게 대한 뜻을 바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아직 우리 마음이 얼마든지 남아 있고 또 우리 생명이 남아 있고 힘이 남아 있고 또 우리의 뜻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데 다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여게서 혼돈이 돼 가지고 사람들이 바로 지식하지 못하고 마귀의 시험에 듭니다.

우리의 남은 여생이 길든지 짧든지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이것 저것을 하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아닌 그것이 뭐 돈벌이도 하고 또 가정도 생각하고 모든 세상 이것 저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다 하나님 사랑함에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외에는 우리 마음이 없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외에는 우리 마음이 활동하지 안해야 되고 쓰여지지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 사랑하는 그 외에는 마음을 쓰지 말라 그말입니다.

또 우리가 몇십 년을 산다 할지라도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숨으로만 있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목숨은 없습니다. 그러면 전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숨이기 때문에,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으로 세상에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으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 외에는 있으면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아닌 힘은 다 사망됩니다.

또 우리가 뜻이라면 모든 걸 계획해 가지고, 의지라면 벌써 어떤 일을 단행하고 계속하는 것을 가리켜서 뜻이라고 하는데 행동하는 그 행동에 앞잡이가 뜻이요 그 다음에는 힘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뜻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뜻뿐이라야 되지 그 외에 다른 뜻은 우리에게 있으면 다 사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요것을 확실히 이해를 해서 이성으로 이해해 가지고 깨닫고, 양심으로 ‘아! 그게 옳다. 과연 그러하다. 이 네 가지를 하나님에게 다하라 했기 때문에 이 네 가지는 하나님에게 다하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거는 다 사망 속에 있다.’ 하는 것이 확실히 양심으로, 이성으로 판정이 되서 자기 의지가 요대로 단행하는 요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말씀하시기를 “이를 행하라” “이를 행하라” 아는 것도 이 자리에서 시작되고, 행하는 것도 이 자리에서 시작되고, 또 이 자리에서 종자적으로 시작된 것이 자기가 명상 가운데서 자라고, 기도 가운데서 자라고, 자기 현실 생활 하는 데서 자라갈지라도 종자는 여게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은 구속과 부활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그 구속을 종자적으로, 근거적으로, 근본적으로, 기초적으로 주시는 날이 주일날이요 받는 날이 주일날이기 때문에 이 날을 가리켜서 주의 날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예수님이 주일날 첫 새벽까지는 죽음 속에 계셨고 첫 새벽 후에는 부활하셔서 이 주일날은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의 두 대속의 이 구속을 완성해 가지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학생들에게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은 주일날이요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시간이라, 은혜 받는 시간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니 그 마음이 ‘이것도 해야 되겠다 저것도 해야 되겠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이것 저것을 해야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생명이 이것 저것을 해야 되겠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힘이 이것 저것을 해야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의지가 이것 저것을 해야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본론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지금 증거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세 가지로 분류해서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구원 이 기초와 건설과 기업을 합해서 열여섯 가지, 이 열여섯 가지 구속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열여섯 가지 구속을 자기가 알고 아무리 알아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고 아는 것으로 자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열여섯 가지의 이 구원을 점점 연구해서 깨닫고, 그 가치를 점점 깨닫고, 또 그 효력을 깨달아서 열여섯 가지의 구원을 지극히 귀중히 여겨 이 구원을 자기가 모시고, 이 구원을, 순간이라도 이 구원을, 자기가 어떤 경우에 이를지라도 이 구원을 배척하지 안하고, 이 구원을 버리지 안하고 이 구원을 모시고 이 구원에 속하여 사는 그것이 제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첫째되는 하나입니다.

만일 자기가 평소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이 구원 때문에 물질 관계가 있다든지, 자기 활동에 관계가 있다든지, 자기의 몸에 관계가 있다든지, 자기 생명에 관계가 있다든지, 자기의 사업이나 가정이나 이런 데에 관계가 있을 때에 그때에 그런 것이 어떻게 될지라도 이 열여섯 가지 구속은 내가 찰나라도 잊을 수 없고 배반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모시면 그 사람은 가정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요, 또 이 세상의 물질이나 자기 몸뚱이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셋으로 종류를 나눠서 말하면 첫째가 주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신 구속의 이 열여섯 가지를 사랑하고 소중히 모셔 언제든지 섬겨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에게 열두 가지로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인간과의 공통성 있는 속성이 여덟 가지고 우리가 아직까지 가지지 못하고 조금씩 가져 나가는, 회고적으로서는 가진 공통성 없는 네 가지 속성과 합해서 열두 가지 속성입니다.

그 속성에ㅡ이건 여러분들이 다 알 터인데ㅡ그 속성의 첫째는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당신이 당신 중심으로 사는, 당신이 당신 중심으로 사는 그 중심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성, 하나님의 사랑성, 사랑의 속성,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내가 사랑함으로, ‘이는 원수다. 원수인데 이 원수를 사랑치 안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내가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성을, 사랑의 속성을, 하나님의 진실의 속성을, 거룩의 속성을, 하나님의 의의 속성을, 하나님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내가 사랑하는 거, 하나님의 자존성을 사랑하고, 완전성을 사랑하고, 영원 불변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단일성을 사랑하는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실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거룩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의는 뭐가 의인가? 세상 사람들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옳다 인정하는 것을 가리켜서 의라 말합니다. 전지의 지혜로 입법하신 하나님의 입법에서 완전타 인정하는 그 의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완전을 사랑하는 것, 언제든지, 만일 나와 완전과 둘이 있을 때에 완전을 내가 사랑할라 하면은 나를 버려야 되고, 나를 아끼고 세울라 하면은 완전을 버려야 될 때에 자기가 죽든지 살든지 완전을 버릴 수 없고 완전을 사랑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열두 속성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한다” 이랬습니다.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 이 계명을 지키지 안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거짓말 하는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은 뭐인가? 하나님의 계명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의 전부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은 딴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 하는 그것이 내 계명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은 곧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속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속성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인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 셋으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다음으로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했으니 이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가? 이웃 사랑하기를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거와같이 사랑하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거와같이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가? 첫째가 내가 나를 사랑함으로 영원한 멸망에서 나를 헤어나고 구출할라고, 예수님의 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멸망을 다 벗겨 줬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으로 멸망을 벗겨 줬습니다. 이 멸망에서 벗어나는, 멸망에서 벗어나는 예수님의 죽음의 이 대속 다섯 가지를 형제에게 전해 가지고 이 다섯 가지 구속을 그 형제로 하여금 믿어서 이 멸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책망하는 것도 사랑이요, 이것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말로 가르치는 것도 사랑이요, 이 멸망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에게 그를 위해서 간구 기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이요, 이를 위해서 내가 그들에게 본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죽으심으로써 멸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 사실을 내가 믿는 것을 보여 주고, 이대로 사는 것을 보여 주고, 이 멸망에서 벗어난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줘서 어쨌든지 여러 방편으로써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들을 멸망에서 구출하는 이 구속을 형제에게 입혀서 그 형제가 이 구속을 믿어 자기 것을 삼도록 만드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여섯 가지 구원을 줬습니다. 세 가지는 생명과 영생이요 세 가지는 곧 영원한 기업, 만물의 중보가 되는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이 여섯 가지를,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 여섯 가지를 그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전하고 알려서 그들이 저의 것을 삼도록 만드는 것이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을 이 멸망에서 건지는 다섯 가지,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이 해방의 자유와, 하나님의 공심판, 대심판을 면제받는 이 의의 구원과, 원수된 하나님으로 더불어 그 사람이 화친돼서 이제는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인 것을 깨닫고 아버지로 모셔 아버지의 온갖 이 친교와 교제와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그것을 그에게 주는 것이 곧 사랑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또 한 가지는 자기가 하나님을 세 가지 면으로 사랑하는 거, 자기가 하나님을 세 가지 면으로 사랑하는 거, 이 세 가지 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을, 원수 그 사람도 이 세 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라면 그 형제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랑의 능력에 피동되어서 자기가 원수를 사랑하여 이 세 가지로 구원한 거와같이 그 사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거게서 깨닫고 피동되어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이 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이 이것이 마지막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라 말은 이웃을 자기 사랑하는 거와같이 사랑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제 몸같이라 말은, 제 몸같이라 말은 우리가 지금 기본구원, 영의 구원 얻은 것은 얻어 있고 우리 심신의 기능이 구원 받을라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심신의 구원을 받을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육이라 몸이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건설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 건설구원을 그에게 줘 가지고 그도 이 건설구원을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이것이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오늘 오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 가지 종류와 이웃을 사랑하는 세 가지 종류, 이웃을 사랑하는 세 가지 종류는 주님의 죽으심으로써 다섯 가지 구원을 그의 것을 만들어 주는 것,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주신 구원 여섯 가지를 그의 것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두 가지. 두 가지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요 한 가지는 자기가 하나님을 이 세 가지로 사랑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하나님을 이 셋 종류로 사랑하는 자 만들어 사랑하는 자 되면 그 사랑에 피동되어서 자기도 이제 이웃에게 대한,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이것이 자기로서의 완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목사 노릇도 하고, 장로 노릇도 하고, 전도사 노릇도 하고, 집사, 권찰, 권사, 주일학교 반사, 보조반사, 또 오늘 복음을 들어도 복음 들은 그 사람이 그 모르는 사람에게 이 도를, 저 사람도 나와같이, 원수도 나와같이 믿어서 구원 얻게 하려는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듣고, 복잡한 걸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지식으로 기억하고 자꾸 새기면 거게서 믿어지고 요대로 실행해서 요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하는 요것이 겸해 되는 데에서만 영생은 이루어지지 이게 없으면 영생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 이랬습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자 속에는 제가 어떻게 뭐 순교해도 영생은 없습니다. 그 행위에 장하다고는 할지라도 영생은 안 됩니다. 요거 기억하십시오.

이웃을 미워하는 거,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는 그런 거 다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는 요것이 살인인데 이웃을 미워하는 요것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에는 영생은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도리를 깨닫는 사람은 이웃을 미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미워하는 일이 없는 것은 그 미워하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것을 고쳐 줄라고 요 사랑의 발동으로 그렇게 할 수 있지 미워하는 것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가 며칠 전에 다시 회개를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그 행위의 나쁜 행위는 미워해야 된다 내치 제가 그렇게 깨닫고 나왔는데 이제는 제가 고쳤습니다. 내가 나이가 많아지고 하니까, 이웃을 사람을 사랑하고 그 나쁜 행위도 나쁘면 나쁘다 하는 것으로 끝나버리지 미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미워하는 그런 위험스러운 일을 할 수가 없다.

만일 미워하는 것이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악한 행위를 미워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뒤에 잘못 되면은 오히려 심판거리가 될란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 있는, 모험성이 되는 그런 반석같지 못하는, 든든치 못하는 그런 교리는 이제 버리겠다 하는 것을 제가 얼마 전에 작정하고 선포한 일도 있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영생도 평강의 기쁨도 영영한 영광의 부강도 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기에만 내재해 있도록 하신 주의 뜻을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두 사랑 밖에는 다 사망이요 평강과 기쁨이 없고 형통이 없음을 확신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도 목숨도 힘도 뜻도 다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기에 솔빡 다 바쳐지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부터 주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하셔서 저희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평안이 있게 하시고, 모든 걸 가지신 주님에게 의논하여 해결짓기를 이제는 힘쓰고, 주님 한 분으로 저희의 전부를 삼아서 어떻게 악하고 메마르고 사나웁고 어두운 세상이라도 염려없이 평강과 행복과 형통 가운데서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영생을 위해서 노력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많은 기도와, 많은 마음과, 많은 염려와 고통을 가졌던 사랑하는 종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심정으로 더욱 불붙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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