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1988. 4. 26. 화새벽

 

본문 : 야고보서 1장 2절-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경을 배우고 난 다음에는 그만 내 버리지 말고 재독을 수십 번 듣는 게  좋습니다.

 수십 번 듣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한 뜻을 알기 위함만 아니요. 알기 위함인  그것만이 아니고 자꾸 거기에서 그 속에 있는 성신의 감화의 역사가 와서 우리를  감동시켜서 느끼고 깨닫게 하기 위함이요, 또 그 안에 감화의 성령만 아니고  역사의 성령의 능력이 있으니까 역사의 성령의 능력이 오셔 가지고서 내 안에  계셔서 ‘나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역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또 그렇게  재독하는 것입니다. 그라는 가운데에 어쨌든지 중단하지 말고 자기가 그 생활을  해야 된다는 그 중요성을 느끼고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언제든지 그 말씀은 어느 현실에서라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면, 자기 보기에는 현실이 같은 현실 같지마는 서도 이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현실 저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현실 그 현실을 자꾸 바꾸어서 이렇게  만들어 주는데 그 집에 살고 그 공장에서 일하고 그 직장에서 일하고 그  사람들끼리 모여 가지고 살아도 자꾸 변합니다.

 거기에서, 주위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기가 실행을  ‘고 자리에서 실행해야 되겠다. 요 시간에 요 말씀 실행할 수 있겠구나.’ 또  고 현실에서 ‘나는 이 현실에서 이 말씀대로 이번에는 실행을 못 했다. 이  실패를 했다. 또 다음에는 하자.’  자꾸 이래 가지고 자기가 아는 것도 달라지고 느껴지는 것도 달라지고 그대로  실행하고 싶은 소원도 달라지고 또 실지로 실행을 지금 시작하는 것도 달라지고  또 실행을 하고 난 다음에 뒤에 심사하는 것도 달라지고, 예수교는 이제는 됐다  만족하다 그것은 벌써 오만한 죄에 걸린 사람입니다.

 실행을 했는데 또 생각해 보니까 좀 미달이다. 또 해 가지고 조금 낫게  했으니까 이제는 됐다가 아니라 또 보니까 미달입니다. 자꾸 평생 해도  미달입니다.

 미달은 해 놓은 그것이 없어서 미달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이 믿음과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끝이 없는 무한한 은혜이기  때문에 하고 나도 또 모자라고 하고 나도 모자라고 자꾸 그렇게 되는 것은 해  놓은 그것도 자꾸 자라가지마는 서도 자기가 하지 못한 미달점, 미비점 또 틀린  점 그것도 보고 깨닫는 그 지혜가 자꾸 자라가니까 갈수록 이 자꾸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나중에  마지막에는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아이와 같다’ 그러면 그거 자기 신앙행위가  점점 나빠져 그러냐? 점점 성자는 돼 가는데 성자가 돼 갈수록 자기에게 미비점  미달점 또 삐뚤어진 점 연약점 그 점을 자꾸 보는 눈이 더 밝아지기 때문에 그  면이 자꾸 더 커진다 그말이오.

 성령이 떠나고 사망이 들어오면 자꾸 자기에게는 만족이 옵니다. 됐다 됐다  자꾸 만족이 돼서 자기는 뭐 더할 것 없이 이제 그 한 것 자랑 할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해 놓은 것 자랑할 것밖에 없으니까 전부 자기에게 잘된 점 만점 그것만 자구  보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실상의 생활은 점점 타락해 가는데 자기 딴에는  점점 자랑해서 광고 선전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자기가 볼수록 점점 이미 이루어져 놓은 장점도  보지마는 단점과 장점을 같이 보기 때문에 할 일이 장 항상 남아 있습니다.

 또, 악령의 유혹에 들어 가지고서 타락하게 되면은 자기의 단점은 안 보여지고  장점 그것만 보여지기 때문에 할라고 애쓰고 못 해서 안타까운 것은 없어지고  항상 자기에게는 만족하고 자랑할 것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 마음이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눌린다  그렇게 말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사람은 벌써  오만한 자리에 앉은 사람이오.

 성경을 자기가 읽을 때에 벌써 간추려서 설교가 돼져야 됩니다. ‘내  형제들아’ 이래 읽으면 ‘내 형제들아’ ‘내’ 하는 것은 이 야고보가 이  성경을 기록했기 때문에 야고보 자기를 가리켜서 ‘내 형제들아’ 그러면  형제들이라 하는 것은 동등이라 말이오.

 ‘화평함과’ 하는 그 ‘평(平)’을 말하기를 평등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꼭  가치로나 하나님과의 관계로나 소망으로서나 실은 지능으로서나 모든 것이 다 타  동등이다, 평등이다, 이러기 때문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긴다. 이 세상사람  오두 제가 좋고 다른 사람 나쁜 사람인데 성경은 그렇다 그거요.

 ‘내 형제들아’ 그러면 야고보가 기록했는데 야고보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라 그것을 가리켜서 ‘형제들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읽으면서 ‘시험이라’ 그 시험은 뭣뭣이 시험이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다 시험이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거는 내 자체의 요소  중에 전부가 다 기쁘게 여겨야 된다. 내 자체만이 아니고 시험이 이런 시험이나  저런 시험이나 만나거든 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자기가 시험을 쳐서, 합격될 시험은 기쁘게 여기지마는 서도 낙제될 시험은  사람이 기쁘지 안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쁘게 여겨? 낙제될  시험 문제 그걸 기뻐해요? 저 OO이? 학교에서 일등으로 졸업했다면서? 몰라?  시험칠 때 몰라?   낙제될 문제가 합격될 문제나 기쁘게 여기는, 기쁘게 여기는 것이 시험 문제를  해 가지고 낙제되고 합격된다는 거기에가 근거가 되지 안하고 나를 사랑하셔서  전부를 다 희생하신 주님이 나를 온전케 만들기 위해서 시험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이 닥쳤으면 그 시험에 합격이 됐든지 떨어졌든지 결과적으로는  내게는 성공이요 유익이요 성장이라 그말이오.

 온전이, 온전 못 한 걸 깨달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든지 온전을 다문  쪼매라도 만든 사람이 되든지 어쨌든지 유익뿐이지 손해가 없다 그거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믿음의 시련이라. 쇳덩어리 시련이 아니고 믿음 시련이라. 또 이  세상에 과학을 시험하는 시험이 아니고 믿음 시험이라.

 그 시험 중에도 여기에는 기술 시험이라. 여기에는 그 사람의 아이큐가 어찌  되는지 아이큐 시험이라. 여기에는 시력이 어떤가 시력 시험이라. 시험도 여러  가지 있지 않습니까? 이런데 여기에는 믿음 시험이라, 믿음 시험.

 우리의 현실은 다 믿음 시험인데 믿음은 뭐이 믿음인가? 그 믿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장 들어 놓으니까 이걸 예사로 보는데 믿음이라는 그 믿음이 뭐인가  하는 것을 바로 믿음의 정의를 해 놓은 것이 별로 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두 다 ‘믿사옵나이다. 믿어 두었사옵나이다.’ 이 의심 없는 믿음만 가지면  된다 하는 그것만 가지고 자꾸 이렇게 말을 해서 낭패를 지운다 말이오.

 그 믿는, 것은 주님 믿는 것이요, 주님 믿는 것. 주님에게 순종하는 게 믿는  거고, 믿는 거는 그를 따라가는 게 믿는 거라.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는  것이요 또 주님을 따라가는 게 믿는 것이요 또 뭐입니까, 또 뭐이요? 저  안경쟁이, 뭐야? 옳지, 주님을 알아가는 것도 믿음입니다. 점점 알아가는 거.

아는 것이 자라가야 돼. 알아가는 것도 믿음. 또? 또 뭐이야? 인정해 가는 거.

인정해 가는 그것도, 인정이 자꾸 인정이 믿는 거라 말이오. 인정하는 거.

그것도 자라가야 됩니다. 또? 주님을 또 닮아가는 것도 또 그것도 믿음이라.

닮아가는 그게 자꾸 자라가야 됩니다. 또?  그래, 그뭐 그런 거라. 본받아가는 것. 주님의 형상을 내가 완전히 입어서  주님의 모형이 되는 것. 생화가 있고 조화 있는 것처럼 주님으로 말하면 생화요  우리는 조화라. 조화나 생화나 보기가 같지 않소?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원형이라면 우리는 그와 꼭 같은 모양으로 모형이라말이오. 이것이 믿음이라.

 그러면, 그게 돼 가지고 있나 안 돼 가지고 있나! 얼마나 돼 가지고 있나? 네가  주님의 따라가는 거 닮아가는 거 본받아가는 거 뭐 형상이 되어져 가는 것 그게  얼마나 됐나?  네가 실은 되고 있으면서 된 그것을 네가 의심하니까 뺏기기 쉬운 자도 있고 안  돼 가지고 있으면서 된 줄 아는 자는 다 허송세월하기 쉽고 또 돼도 되다 만  것도 있고 좀 모자라는 것도 있고 삐뚤어진 것도 뭐 별게 있으니까 그런 것을  알리기 위해서 현실을 주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 걸 알리기 위해서 현실 주는  것.

 믿음의 시련이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자꾸 시험치니? ‘실력을 만들어 낸다 그말이오. 자꾸 시험을. 그 시험을 치니까  실력을 만들어 내. 시험을 치는데 실력을 만들어 낸다 그 말입니다.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자꾸 시련이 타지 안하고 없어지지  안하고 온전한 그 실력을 만들어 낸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자꾸 시련을 받는데 시련이 실력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시련이 실력을  절단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아이를 자꾸 이래 시험을 쳤는데 그만 시험 쳐 가지고 아이 베려  버렸습니다. 시험 쳐 가지고 그만 완전히 베려 버렸어, 그만. 시험을 쳐서  ‘아이구 나는 안 된다’ 그만 이래 가지고 그만 아이 그만 병신도 되고 등신도  되고 그만 또 그만 낙망도 돼 버리고 그 아이가 그만 자살도 하고, 시험 치다가  자살하는 아이들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시련은, 시련은 내나 시험하교 연단한다는 그말인데 시련은 실력을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그거는 인내는 실력인데 불에도 안타고 유혹에도 안  빠지고 또 올라가지도 안하고 내려가지도 안하고 교만하지도 안하고 낙망되지도  안하고 점점 자라가는 그게 인내라. 바벨론 나라에서 느부갓네살 그 우상 만들어  놓고서 우상 시험이 왔는데 우상 시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넘어가 버렸어,  거의 다. 다 넘어가 버렸어. 남아 있는 게 없어. 인내한 자가 없어. 남아 있는  자가 누가 남아 있었습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이 남아 있어  그걸 말해서 인내라 하는 거라, 인내  점점 온전해 갈 수도 있고, 시험을 아이를 자꾸 거석해 놓고 시험을 칠수록  온전해 갈 수도 있고 시험을 칠수록 이 그만 아이를 못 쓰게 만들 수도 있다  그거요.

 그 시험은 다 같이 치르는데 못써지기도 하고 또 좋아지기도 하는 그이유가  어데 있습니까? 좋아지는 거는 어떻게 하면 좋아지겠습니까? 그 아이가 시험을  치고 틀렸으면 자꾸 ‘해 보자. 해 보자, 자꾸 실력을 마련해 보자.’ 고 욕망만  가지고 노력만 하면 점점 온전해집니다.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만 그 마음만  없으면 ‘아이구 또 요번에 떨어질 거 그만’ 하면서 낙망하고 실망하고 안  할라고만 하면 안 돼, 그만. 안할라고.

 ‘에이 내 하기 싫다’ 안 할라고만 하면은 점점 시험 칠수록 이 못 쓸 사람  돼지고 시험을 쳐서 자꾸 돼 불라고 해 볼라고 하면은 점점 온전한 사람 된다  그말이오,  꼭 같애요. 오늘 우리가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이 현실에서 어짜든지 해보자.

이라면은 점점 좋아져 가눈데 그렇지 안하고 고만 낙망하든지 게을을 부리든지  하면 안 되고 낙망과 게을 부리지 안하고 해 보자 하고 달라 들어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잘못 됐거든 또 달라 들어라 했어. 자꾸 낙망하지 말고 하면  돼져요. 그라면 성공이 됩니다.

 사람은 무슨 일 할라 하다가 뭣이 하나,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않는데 제  생각대로 안 되면 그만 낙망하고 실망하면은 그 사람은 그만 고것으로서 그만  가라앉아 버리고 그만 헛일입니다.

 자꾸 욕망을 가져요. 용기를 가지고 ‘해 보자. 또 해 보자.’ 하루 일흔 번  넘어져도 또 시작해. 그자는 성공합니다.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고로, 우리 현실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혼자 만드신 현실인데 이 현실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 만드실라고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는 현실이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우리가 힘만 써서, 넘어졌으면 일어서고 그 다음에 또  이번에는 백분지 일만 성공했으면 요다음에는 힘을 쓰면 백분지 이 성공될  것이고 삼 성공될 것이고 자꾸, 토끼 모양으로 훌쩍훌쩍 뛰어는 못가도 거북  모양으로 살살 이래 걸어간다고 해도 자꾸 힘만 쓰고 낙망하지 안하고 계속만  힘쓰면 온전한 사람이 이제 되는 것은 왜 그러나?  우리는 힘만 쓰면 되는 거, 우리 속에 예수님의 피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우리를 벌써 영을 중생시켜 놨기 때문에 이는 완전한 능력이라. 이러니까 자꾸  내가 힘만 쓰면 그 능력이 자꾸 나온다 말이오.

 그 능력이 어데서 나옵니까? 그 능력이 어데서 나오요? 그 능력이 지금 어데  있으면서 어데로 나와요? 그 능력이 어데 있습니까, 지금? 어데가 있지? OOO. 내  안에 있는데 어데? 눈에? 영 안에 있어. 눈에 있는 거 아니고 코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안에 계시기는 계시는데 내 안에 중생된 영 안에 계신다 그말이오.

 영 안에 계시는데 이 세 가지,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은 하나인데 이 셋이 내  마음에 건너오면 이 셋은 내 마음에 건너오면 내 마음이 이 셋 능력이 돼.

진리의 능력이 되고 성령의 능력이 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능력이 돼.

 이러니까, 들어오면 되는데 내 마음과 몸이 예수님의 대속도, 던지고 돈  좋다고서 돈 쳐다보고 예수님의 대속 잊어버리고 뭐 직장 생각하다가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리고 성령의 감화도 소멸하고 진리도  잊어버리고 그라면 내가 이 세 가지를 쫓아 낸 것입니까 영접한 것입니까? 쫓아  낸 것이라 말이오.

 쫓아내면 당신이 뭐 능력 없어 쫓겨나가는가? 쫓아내지마는 꾹 밀고 있으면  되지마는 우리가 죄를 범할 때에 우리에게 그 세 가지 능력이 나가지 안하고 내  안에 계시면 어찌 돼요? 내가 죄를 범하는데 그 세 가지 능력이 나가지 안하고  계시면 내가 구원이 돼요 소멸이 돼요? 소멸돼 버린다 말이오. 소멸되니까 이  새? 자유를 줘 놨거든. 그러니까 뭐 자유가 깨진다 말이오. 강제로 있으면.

 소멸되니까 살짝 나갔다가서 또 들어오려고 애를 쓰다가서 그만 어째하다가도  또 ‘아, 나 대속을 받았지.’ 대속을 생각하고 ‘성령이 나를 살렸고 진리가  살리셨기 때문에 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야 되겠고 진리를 깨달아야 되겠다.’ 이  마음만 가지면 얼른 들어온다 말이오. 들어오면 마귀  그놈을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이 불을 켜면 어두움이 거기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못 있어요. 그만 도망쳐 버려요. 이와 마찬가지라, 꼭. 이러기 때문에,  그저 자꾸 외워요. 우리 현실은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만들어 준  현실인데 이 현실은 나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만들어 주신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나를 온전하고 구비하게 만드시느냐? 이 현실은 나를 시험하고  연단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에 시험받아 떨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연단 받아서  떨어지면 새로 갖추고 이래 가지고서 거기에서 자꾸 떨어짐으로 좋은 거,  낙제됨으로 새로 합격될 거, 불에 탔음으로써 불타지 아니할 것,  자꾸 이것을 마련하게 되면 한 현실을 지나면 불타지 안할 것이 없어지지 안할  것이 영생된 것이 조끄매 마련되고 또 한 현실 지나면 또 마련되고, 마련되고 일  년을 지나고 나니까 진합태산으로 티끌 모아 태산으로 상당히 마련이 됐다  그거요. 또 십 년이 되면 많이 마련됐어 어떤 사람은 일 년 되니까 또 마련 못  하고 이 년 돼도 마련 못 하고, 마련을 못 하면은 뭣 됩니까? 마련 못 하면 자꾸  불타 버리고 많았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현실은 성공 실패가 두 종류가 있어서 성공 아니면 실패 실패  아니면 성공, 그러면 실패인데, 실패인데 거기에서 낙망하지 안하고 ‘구원의  투구라’ 낙망하지만 안하고 구원을 이 소망의 투구니까 소망을 가지고 힘만  쓰면 자꾸 좋아져.

 이라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뭐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수입입니까? 우리  현실에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수입이지? 인내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수입이라. 인내 만들어 내는 게 우리 수입이라 말은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수입이다 그말이오.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수입이다. 남아 있다니? 뭣 남아 있는 거? 믿음 남아  있는 거. 믿음이 그러면 현실에서 없어지는 거 있고 또 남아 있는 거 있다  말이오. 자꾸 없어지게 하는 것이 현실인데 거기에서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게 있어.

 뭐이 남아 있는 것이 있어? 순종이 남아 있고 주님 본받는 게 남아있고 주님  닮아가는 게 남아 있고 하나님의 형상 이루어져 가는 것이 남아 있어. 그게 우리  수입이라. 우리 소망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이 서부교회에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 우리 서부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썩어질 것만 말하면 막 좋아 죽소. 제까짓 것들이 뭐  뚤뚤 뭉쳐 암만 있어도 썩어질 것 수입이나 하지 딴 거 수입 못 해. 썩어질 것은  교회에서 가르치지 안해. 썩어진 것은 그거 마련해 가지고 썩어질 것으로 썩지  안할 것을 바꾸라고 하고 있고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바꾸라고 하지, 저거끼리  수근 수근해 봤자 소용없어. 죽이는 것뿐이라.

 여러분들, 이것을 주의해야 됩니다. ‘너희들은 서로 돌아보아’ ‘돌아보아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은혜에 지장될라? 그 사람이 은혜에 방해가 될라?’ 이거 생각지 안하고  어쩌든가 제 사람 만들기 위해서 이거 아닌 줄 알면서도 제 사람 만들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훼방하는 노릇 한다 말이오. 훼방.

 인간을 멸망시키는 데 제일 첫째 죄의 이름이 뭐입니까? 이간은 이호라. 일호는  훼방이라. ‘참으로!’ ‘참으로’ 하나님보다 이 아담 해와에게는 더 귀하고  보배 있고 필요한 이가 없는데 이 하나님을 떼놔야 되겠다 말이오. 하나님을  떼놔야 이게 제 사람이 되지, 이러니까 ‘참으로!’ 그게 뭐이요, 그게? 그게  뭐하는 거지? 그게 훼방이라. 왜? 이떼놔야 되거든.

 ‘참으로, 이 모든 동산 모든 과실을 다 먹지 말라 하더냐?’ 이게 뭐이냐  하면은 이제 거짓말로 이간 붙이는 거라. ‘너거들이 먹으면 하나님같이 되기  때문에 시기해서 지금 그런 거 아니가? 하나님같이 된다. 먹으라.’ 하는 것이  ‘아이구, 하나님한테 속았다. 이거 내가 하나님 될 터이니 하나님이 하나님 못  되구로 허구나. 야 네가 배암 내가 참 나를 사랑한다.’ 이간을 딱 불이니까  그만 딱 떨어져서 저하고 한 덩어리랬다 말이오.

 우리 이 총공회에서, 여러분들이 눈이 밝으면 환하게 보면 알아. 벌써 그  사람이 백 목사를, 백 목사 제가 뭐 아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시대에게 뭐  가지고 당신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공부 한 사람 아니라. 내가 뭐 조직  신학이나 신학 고려신학교 삼 년 했지마는 나는 할여가가 없었어. 나는 거의 삼  년 동안 장 집회 나갔어. 그저 자꾸 집회 다녔었어. 그러니까, 신학교 개학  시작하면 와 가지고는 본 교회는 한 번도 돌아가지를 안했어. 못 돌아갔어. 그만  방학하고야 그래 돌아가지.

 이랬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줘서, 알려 줬다 말이오. 알려줘서 저 산골에  있으면서 설교를 하고, 집사 때부터 내가 설교를 했는데 믿은 지 벌써 한 한  주일도 안 돼서부터 설교 했어. 그 집사 때 돌아다니면서 내가 저 부흥회하고  사경회하고 돌아 다녔었어.

 이랬는데, 나는 깨달아져 가지고서 이와 같이 지금 깨달은 거 말하니까 그때  고려신학교가 있었는데, 고려신학교 제일 처음에 창설할 때 와서 제가 보니까  들으니까 아무 들을 것도 없고 배울 것도 없어서 ‘내가 여기에만 바라고 앉아서  안 되겠다’ 그거 마음에 속에 마음에 불이 타서 못 견뎌서 그만 나는 그만 뒤에  공부하겠다고서 안 하고 가 가지고 만날 돌아다니며 지금 집회했었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때 그래 가지고서 깨달아진 것을 말하니까 깨달아진 거어데 가서  저 산골에 가서 말하면 교인들이 솔빡 잘 듣는데 거기 그만 신학생만 하나 와  있으면 그만 일이야. 신학생만 하나 와 있으면 ‘틀렸다’ 고만 이단 하나  잡아낸다 말이오. 이단이 뭐 수백 개가 잡아나갔어. 이단을 수백 개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이단이라고 하지 않고 지금은 저희들이 지금 다 옳다고  인정하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OOO 목사님은 그래서 내가 교리학을 공부를 시켰는데 ‘다른  사람의 교리와 틀린 게 뭐 있나?’틀린 거 있는데 틀린 거는 연구해 보면 이게  맞아.

 이래서, 어떤 사람이 욕을 하기를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한 사람의 획일적  교훈에 다 끌려 가지고 그렇다.’ 다른 데 둘도 없는 하나만 있는 교훈 그라면  이 일반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그 사회성이 없다. 역사성도 없다. 과거에도 없던  걸 지금 말한다. 또 다른 사람과 다른 걸 말한다.’  그런데, 그게 틀렸으면 문제지마는 성경대로 맞았으면 깜짝 놀라서 달라 들어야  될 터인데 그 복 없는 자는 어제 아래까지도 ‘이런 교훈이 세상에 어데 있노?  천하에 이 교훈이 제일이다.’ 제 입으로 그래 놓고 사람이 척 변해지고 난  다음에는 그만 그렇게 욕을 하니까 그렇게 변해져 버려.

 이러기 때문에, 네가 뉘한테 배운 것을 알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배운 사람도  알고, 배운 사람하고 떨어지면 그 교훈은 멀어집니다. 안됩니다.

 또, 사람에게 배운 거면 하지마는 ‘누구에게 배운 것을 알라’ ‘누구에게’  ‘누구에게 배운 것을 알라’ 그 누구는 누구지요? 누구는 사람이요 하나님이요?  사람인데 하나님이오. 사람인데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가르쳤기  때문에 실은 그게 사람이 말하지마는 실은 또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말한  것이라 말이오.

 그런 거 알기 쉬워요. 꼭 원수는 자기입니다. ‘네가 봐라. 지금 당한 이  현실을,  지금 당한 현실을 만일 아무것이가 너거 형님이 아니고 너와 상관없는  보통 이 같은 진영에 있는 교역자라고 하면은 네가’ 그렇게 됐겠느냐? ‘내가  그렇게 됐겠느냐? 그분이 우리 형님이 아니신 나와 그저 한 동역자가 됐다고  하면 동역자가 그짓 했다면 내가 이 사람이 됐겠느냐? 형제가 아니면 안 됐지.

형제기 때문에 됐지.’ 그만하면 혈육주의라 하는 그걸 알 수 있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막 더듬어 알라고 애를 쓰는 자라야지 그리 안 하면 모릅니다. 그걸 수백  명이라도 그걸 모르고 줄줄 따라가는 거라.

 어짜든지 우리가, 진리의 말씀이 발에 뭐이라 했어? 발에 등불. 이 성경 말씀이  아니면 자기가 한 사건도 바로 진행은 못 합니다. 한 행동도 바로 하지는 못  합니다. 하나도 바로 발견하지는 못합니다. 진리 이 말씀과 그 안에 있는 성령  이 예수님의 피 이 세 가지 능력이라야 우리가 한 현실이라도 고 현실을 바로  깨달을 수가 있지 이 세 가지 아니면 바로 자기 현실을 깨닫지 못해, 그만  현실에 그만 끌려 들어가 버리고 말아.

 그 등신 같은 것들이 말이오. 딱 이래 가지고서 ‘보자. 우리 목사가 왜 이리  이 공회를 그만 막 욕을 하고 반대하고 이 교훈을 욕을 하고 반대하는가? 그분이  형제기 때문에 그렇다. 형제가 아니고 만일 타타인 남 같으면 이렇게 됐겠나?’  그만 알 건데.

 ‘자. 이라는데 그분이 그라는데 이 총공회 목사들이 많이 있는데 그 목사  교역자들이 전부 다 그리 됐느냐? 안 그렇고 다 이런데 왜 이분만 유달리  그러냐? 유달스레 그런 건 뭣 때문에냐? 그거 뭣 때문에 그럴까? 형제간 때문에  그렇지 않는가?’  떡 말하기를 ‘여보시오, 목사님, 지금 그분과의 관계가 형제가 아니고 다 타인  남 같으면 어찌 됐겠소?’ 이거 다른 사람이 말해 줘도 좀 가서 말을 해 줄 건데  다 죽었으니까 말해 주는 사람 없지. 또 마귀가 들어가 놓으면 못 깨닫습니다.

깨닫지를 못해. 이러니까 뭐 별 사람 없어요.

 우리에게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이 말씀이 우리에게 등불입니다. 발에  등불이라. 이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 뭐이 어찌 돼요? 뭐이 어찌돼? ‘날이  새어’ 우리 속에 마음이 밝아져야 돼. ‘날이 새어’ 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라면 되는데다 냅두고 전부  혈육주의로 자기감정으로 자기 주관으로 됐으니까 무슨 소용 있어? 인간 가치  없어. 하나님께서 버리고 떨어지기 시작하면 붜 어데로든지 가 버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많지마는, 자, 예수 믿는 교회의 종류가, 몇 가지라고  요한계시 11장에 말했어요, 종류 몇 가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  가지로? 요한계시 11장에 교회 종류가 몇 가지라고 가르쳤지? 둘? 둘? 서이?  그래. 너이야. 성전 밖마당, 또? 성전, 제단, 경배하는 자. 그라면 몇이요? 넷  이지 이 세상에 교회의 종류가 넷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하나는 측량하지  말라 했어. 마흔 두 달 동안 세상에게 짓밟히도록 그거는 세상에게 이용만 돼  요번에 선거하는데 뭐한다고 예배당 내 줘? 저게 서울에서 어떤 목사님이  전화가 왔어. ‘내가 이거 투표를 지금 해야 되는데 투표 장소를 교회로 해  놨으니 이거 내가 가서 투표를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그래 울어. ‘그 안  하면 뭐 벌 받을라고, 주목당할라고? 그래 뭐 어떻게 할라요? ‘그러면 거기 그  투표 장소를 교회를 빌려 줘서 그래 하는 것이 옳습니까? 안 옳습니까?’ 그래  말해. 내가 있다가서 ‘교회 건물이라도 부속 건물로서 예배당 담장 밖에 있거든  내비 두십시오. 아무리 별관이라도 예배당 담장 안에 있으면 못 합니다.’  이라니까 ‘그라면 이거 어째야 됩니까? 아, 그만 살며시 그만 기권하지.’  이라니까 ‘그뭐 기권하는 거는 상관없는데 만일 그리 됐으면 그거 그냥 있어  됩니까?’ ‘그 마음대로 지’ ‘안 됩니다. 내가 아닌 줄만 알면 내가 갑니다.

가가지고서 이거 안 된다. 이거 이럴 수가 어데 있느냐? 내가 가서  말하겠습니다.’ ‘뭐 자유로 하지’자유로 하지. ‘꼭 가 말해야 됩니다.’  내가 그래 말 안 해. 내게 닥쳤으면 내가 말하지만 그거야 자기가 자기  거석이지.

 현재 군에 가 있는데 자, 와 가지고서 ‘목사님 지금 내가 저 사람을 내가  죽이랍니까? 죽이지 말랍니까?’ 내가 뭐라 하겠어? ‘죽이지 안해야 됩니까?  죽여야 됩니까?’ 뭐라 해? 죽여야 된다 해야 되겠어 죽이지 말라 해야 되겠어?  뭐라 해야 되겠어? 뭐라 하지? 내가 평소에 교훈은 죽이지 말라 했는데.

 죽일까 죽이지 말까? 이래 물으면 내가 죽이지 말라 할까 죽이라 할까? ‘나는  너한테 평소에 죽이지 말라는 그 교훈했기 때문에 내 교훈을 네가 받고 지키고  안 지키는 거는 네게 책임 있어. 네가 죽이든지 말든지 네 자유 판단으로 해라’  그래야 그 사람에게 그 계명을 제가자유로 제 능력으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지  그러면 죽여야 된다 하면 그 사람이 신앙 자유로 그와 같이 한 것이야 나한테  끌려서 한 것이라? 끌려서 한 것이기 때문에 저는 소용없어. 그거 죽이고 안  죽이는 건내가 책임져야 돼, 이것도 몰라, 이제까지 배워도.

 이번에 긴급 소집에 대해서 이호가 그건데 ‘예배당에 대해서 소송은 너거가  하든지 말든지 자유로 해라. 할 수 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자유로 해라.’  시비는 하면은 진다 하지 않고 ‘시비는 하면은 반드시 이긴다.’ 판례법이  그거는 이기니까 다 못 이기면 반 이겨도 이겨. 반을 찾아도 이겨. ‘이긴다.

그러나 하고 안 하는 건 너거 자유다.

 이랬는데, 거기에 그거 시험에 들어 가지고서 하, 이 목사님이, 이제 목사님이  예배당 소송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해 놓고서 지금 와 가지고 ‘하든지 말든지  자유로 해라. 예배당 소송은 하면은 이길 가능성은 있다’  이래 놨으니 처음에는 예배당 소송 하지 말라 해 놓고 지금은 예배당 소송 하라  말이 아니냐, 어데 이 교훈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느냐? 그래 가지고서 뭐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말만 하고 행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  있느냐?’ 이래 가지고 욕을 얼마나 해 재꼈는지 뭐.

 그러면, ‘말만 하고 행하지 안하면 무슨 소용 있느냐?’ 그러면 말하고는 이  사람 모가치도 내가 저 사람 모가치도 내가 행하고 모든 사람 모가치를 내가 다  행해야 되겠소 제 모가치는 저에게 행하든지 말든지 그한테 맡겨야 되겠소?   ‘네가 소송을 이제 교훈 받았으니까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네 자유로  해라. 네가 하든지 말든지 자유로 해라.’ 또 지기 때문에 안하면 질상발라 안  하기 때문에 그거 아니라 말이오. ‘이기기는 이긴다. 이기기는 이기는데 네가  할라면 하고 말라면 많아라.’ 이라는 것을 이걸 배웠으니까 깨달을 건데 그것도  깨닫지 못하는 목사가 그거 뭐할 거야?  이거야, 살인하지 마라 도적질하지 마라 하는 그걸 도적질하지 말라하는 그거는  하고 안 하는 것은 교훈은 그래 했으니까 교훈 받은 사람이 도적질 하고 안 하는  거는 그걸 제 자유로 하는 것이지 교훈한 사람이 도둑질하고 있는데 볼끈  거머쥐고 ‘도둑질 못 한다 그라면 그 사람이 계명 지킨 것이야?  그러면, 못 하구로 강제로 붙들어 매야 되겠어? 도둑질하는 거, ‘도둑질하고  안 하는 거는 네게 있으니까 네가 교훈 받은 대로 네가 도둑질을 안 하든지  하든지 네 자유로 해라’ 이래야 그 사람이 교훈을 받아 가지고 제가 그  교훈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까 못 하구로 강제로 붙들어서 가둬 놔 가지고 못  하도록 하는 그것이 교훈대로 살도록 맡기는 것입니까? 뭐이야? 그 교훈이  어째야 돼요? 강제로 붙들어 매야 돼요 자유로 하도록 해야 돼요? 이것도 못  깨닫는 게 그게 무슨 목사야! 그래 놓으니까 심령이 어두워지면 그렇게 어두워져  버려.

 그 보니까 죄짓는 데는 잘 깨달았어. 어제 내가 그 무슨 편지 쓴 걸보니까 하,  민첩하게 깨달았는데 이놈은 옳은 거는 깨닫지 못한다 그말이오.

 어떤 전도사 하나 그래 가지고서 막 분해서, 이거 어데 이런 뭐 백목사 내가  이제까지 존경했더니마는 이런 목사가 어데 있을까 보냐고서. 그래 가지고서 뭐  내가 가서 한 번 따진다고서. 그래 내려왔어.

 그래서, 양성원 학생 전부 총공회 위원들이 그때 뭐 그것 때문에 모였는데 전부  한 방에 앉혀 놓고서 내가 그걸 얘기를 했어. 이호를 얘기를 ‘자, 그러니까  교훈을 해 놓고 난 다음에 그 교훈 받은 사람을 교훈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구로  강제를 해서 그라면 그게 믿음이냐? 교훈하고 난 다음에는 교훈대로 하고 안  하는 것은 제 본인에게 맡겨서 하는 것이 그게 믿음이냐? 하나님은 어떻게  하느냐? 교훈하시소 난 다음에 강제로 못 하도록 하느냐 하고 안 하는 걸 제  자유에 맡기느냐?’ 하나님은 어떻게 해요? 본인에게 자유로 맡겨요 강제로  죄지을래야  지을 수 없도록 만들어요 어떻게 해요? 자유로 줘. 하나님이 하는  대로하면 되는 것이지 뭐 어떻게 저 하는 대로 하라고?   이래 떡 말하니까 ‘아이구, 내가 참 아주 그만 뭐, -그만 교역자 안할라 해,  그만. -내가 못 배우고 지금 깨닫지 못 해 큰 오해를 했습니다. 이제 내가,’  교역자 암만 가라 해도 안 갈라 해. 안 갈라 해서 억지로 막 권해 보냈는데 가서  할란지 안 할란지 ‘나는 아무래도 배워 가지고가야 되겠습니다.

안되겠습니다.’ 이래. ‘그래 내가 오해했습니다. 오해했습니다.’ 그 말을  자꾸, ‘내가 오해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거, 내가 다섯 가지 말해 놓은 것은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했기  때문에 천년만년 가도 취소도 없어요. 변동도 없어요. 고대로야. 되나 안 되나  자꾸 뭐 글만 주 써내면 되는 줄 알고, 글씨 내는 저 말하는 다 말하는 거 한  마디도 심판 없는 거 없습니다. 다 심판 있습니다. 또 감춘 게 드러나지 안하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드러나, 그런고로, 어짜든지 성경을 읽어서 성경을 깨달아야  되지. 성경을 바로 깨달은 것만치 바로 행동하고 바로 행동한 것만치 구원이  바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좁은 길로 못 가. 나는 넓은 길로 가지 나는 좁게는 못 살아.’ 좁은  길이 뭐이냐? 그 좁은 길 말도 모르는, 좁은 길이 뭐인지 그것도 모르는 거라.

좁은 길이 어떤 게 좁은 길인지. 길이야 뭐 좁은 길보다 널찍한 길이 종지.

 그런데, 좁은 거는 어떤 게 좁은 것이요? 자, 공과 공 사이에 이제 제일 가까운  곳이 제일 가까운 고 실로 졸졸 쳐서 재면 제일 가까운 곳이 한 군데입니까 두  군데입니까 세 군데입니까? 한 군데뿐이라, 고게 좁은 것이라. 고게 좁은 것.

가까운 게 서이라 하면 그거야 그거는 넓은 것인데 몇 개가 없어야 돼요? 두  개가 없어야 돼요.

 이러니까, 거룩이라 하는 것은 잡탱이 속에서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더  구별할래야 구별할 것이 없고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은 고거라야 믿음이 된다  말이오. 좁은 길에 믿음이 있지 좁은 길 아닌 거는 믿음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 그 넓은 길은.

 이것도 지금 말을 몰라서 지금 모르는데 이 말이 전달돼 갈 거라. 가면은 하,  얼른 채 가지고서 다른 말로 변명을 떡 해 가지고 할 거라. OOO목사 그때, 학교  아이들 못 가구로 해요.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이라니까  선악을 아는 것이 선악과 먹고 나서는 하나님 같이 되기 때문에 이 공부하면 안  된다 해 가지고 학교 못 다니게 했어요. 그래 가지고 제천 교회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얼마 동안 못갔어요. 그때 주일학교 부장으로 있으며 그래 놔서.

 그러니까, 그래 놓으니까 이 아무래도 좀 말하니까 틀리기는 틀렸고 하니까  내가 삼각산 집회할 때에 그날 밤에 소나기가 되게 왔어. 소나기가 되게 온 그날  밤을 기다린 모양이라. 소나기 오니까 사람들 다 그만 딱 들어가고 돌아다니는  사람 없거든. 고매 밤에 밤중 돼서 왔어. 나는 그때 굴에 돌로 된 그 굴속에서  내가 있었거든. 밤중 돼서 왔어요.

 와 가지고서 문을 두드려. 그래 내가 있다가 뭐 비가 오니까 문 열기도 힘들기  때문에 ‘뭐 하러 왔노?’이라니 ‘조금 내가 꼭 거석해’ ‘그만 뭐 말만하고  가 그만’ 이라니 하도 들어온다고 쌓아서 열어 줬다 말이오.

 들어오니까 그거 그 문제를 가지고 말해. 그 문제를 말하면서 ‘내가 이거  모순이 돼서 목사님한테 물으러 왔습니다. 선악 아는 거, 우리 중 하나 같다  하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네가 말하면 또 둔갑할라고?’ ‘아닙니다.

어찌 됐든 간에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 내가 말하기를 ‘선악 그것을 정의하기를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까우면 선  멀면 악, 당신 따르면 선 당신 배반하면 악 이렇게 당신을 중심으로 삼아  가지고서 당신을 표준해서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완전이기 때문에 그래  되지마는 이 아담 해와가 저를 중심해서 제게 가까우면 선 멀면 악 저를 따르면  선 저를 배척하면 악이렇게,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당신 중심으로 모든  평가를 하는데 아담 해와가 제 중심으로 평가하니까 그게 죽겠나 살겠나?’  이라니까 알고서 ‘이제 알았습니다.’  그라더니마는 그때 집회 마치고 저 제천 가 가지고 ‘내가 이렇게 뭐 선악을  하는 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 말은 다른 게 아니라 이렇게 이렇게 해석해  가지고서 그 결과로 그렇게 되는 그것을 말했다’ 고거 해석을 붙이더라고서.

그래 전화는 없는데 누가 편지했어. OOO목사님이 지금 와 가지고 또 이렇게 지금  그만 뒤비트려서 이제는 목사님이 해석한 것과 꼭 같이 그래 하고 있습니다.

이래. 그라더니, 만 지금 미국 가서 이제 찬송 독창 뭐 음악가로 거기서 뭘 많이  하고 이래 잘하고 있어요.

 사람이 여러분들 꼭 자기 욕심이 들어, 자기를 사랑하면 그만 하나님 사랑할 수  없습니다. 둘뿐이지. 자기 사랑하든지 하나님 사랑하든지. 그래 부자는 뭐 돼?  자기 부자, 자기가 하나님 부자 될라 하면 어떻게 돼요? 자기가 온전한 사람  될라 하면 어찌 돼요? 온전한 사람 될라하면? 자꾸 자기를 애끼고 돋우고 자꾸  보호하고 자꾸 이렇게 키워야 돼요? 어떻게 돼요?  아브라함이 그거 된 거. 어떻게 해 됐지? O 집사. 하나님보다 자기 부인하고  자기보다 하나님을 높였어. 보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낮추고 자기보다 하나님을  높였어. 거기에 되는 거라.

 그런데 인간들이 어쨌든가 하나님이야 어째했든지 진리야 어찌됐든지 저를  애껴서 높일라고 자꾸 이와 같이 하면 망하고 만다 그거요. 간단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혹 내가 내일 아침부터는 여기에서 설교를 못하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거는  내가 저 기도원에 가 가지고 나도 좀 뭐 좀 기도도 해야 되고 이래서 그러니까,  요래도 꼭 나와야 돼. 다 꼭 나와서 재독 들을 터이니까 꼭 나와서 재독 듣고  기도하고 준비를 잘해서 자, 우리가 요번에는 뭐 준비하자 했지요? 옥토. 옥토  준비해 가지고 가 가지고서 이제 씨를 받아야 돼.

 광고 있습니다. 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길러 놓은 중간반 학생을 한  명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빠짐없이 계속 기도하고 심방하고 잘 관리하고  자기 마음에 항상 품어서 길러야 됩니다.

 이렇게 길러 놓은 거 이 하나가 보배요. 하늘나라 가면은 한 사람 구원했으면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면류관에 뭣 된다고? 면류관에 뭣 돼요? 면류관에 뭣  되지? OOO 집사님. 이거 참. OOO, 구슬? 별 돼, 별. 이 별 말이오. 별 하나 있고  둘 있고 있지 안해요? 이 저이 호자에도 표하고 이런데 별 하나고 둘이고 그런데  하나가 별 하나라. 하나가 별 하나. 그 한 사람이 별 한 개라,   별 한 개짜리와 두 개짜리는 참 차이가 굉장합니다. 한 개짜리는 두개짜리한테  막 굽신거려야 돼. 그 명령에 순종해야 돼. 그거 못 들었어요, 모두? 한 사람  구원하면 그것이 하늘나라 가서 별 하나라. ‘별과 같이 빛나리라’ ‘사람을  어두운 데서 돌아오게 한 것은 영원토록’ 뭐라 했어? ‘별과 같이 빛나리라’  하나 구원하면 별 하나 떡 올라붙어 가지고 영원히 뻔쩍뻔쩍해. 하나 있는  사람은 둘 있는 사람한테 꼼짝 못 해. 별 없는 사람은 별 있는 사람한테 꼼짝 못  해. 이렇게 차이가 있어요.

 이러니까, 면류관에 별 하나 붙고 둘 붙고, 그 면류관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면류관 받은 건데 거기 별 없는 인간도 있고 별 있는 인간도 있어. 별 하나도  없고 막 별이 주렁주렁해   이러니까, 자기 맡은 양떼 하나도 일어 버리지 말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문제로 잠을 안 자지, 뭐 OOO교회니 저런 데 이 뭐 말한 거 무슨 그까짓 거,  어떤 사람은 그거 가지고 자꾸 이 말한다 이래 하지마는 말 안 할 수가 없어.

제딴에는 뭐 사업 회사 그까짓 거억억만 배도 더 돼. 이렇게 가치를 이렇게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안할 수가 없다 말이오, 그거 하나 길러 놓은 거 뺏겨 놓으면  이거 면류관에 별 뺏기기 때문에 그걸 안 할 수 없어. 그러니까 한 양떼를  위해서 생명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그네 세상이야. 그까짓 거 암만 뭐 뭐 있고 친척 있고 환경이고 주위  있지마는 오늘이 끝날지 몰라. 무슨 가치 있어! 영원히 가 살 그분을 배척하고  그뭐 취할 게 어데 있어! 그분을 멀리하고 사귈 게 어데 있어, 있기를! 우리가  어리석지 말고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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