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론

 

1984. 7. 16. 월새벽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5절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삼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선지자선교회  우리가 바로 아는 것은 생명이 되고 잘못 아는 것은 사망이 됩니다. 천국을  가는 사람들이나 지옥 가는 사람들이 앎이 잘못되어 있는 거기에서  갈라졌습니다. 행동의 근본은 택함과 불택에서 갈라졌지만 행동에서는 바로 아는  사람들은 바로 아는 그대로 노력을 해서 힘써 가지고 하늘나라를 가게 되고 또  잘못 안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성공이요 복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살다가  지옥을 가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이것이 중요합니다. 알고 그 다음에  행동이 따르고 알고 행동한 대로 차차 그 사람이 되어져 가기 때문에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건설구원에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궁극적 면에서 하는 말은  아니고 다만 우리가 자아에서, 자기에서 하는 말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고' 말씀하신 자기를 우리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일 아는 데에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둘째로는 자기를 바로 아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자기를 바로 아는 것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은 둘이나 실상은 하나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바로 아는 것만치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만치 자기를 바로 알게 됩니다.

 이 자기에 대해서 성경에 옛사람이니 새사람이니 그렇게 나타내신 말씀이 있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니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니 그렇게 또 분별해서  나타낸 데도 있고, 육체의 사람이라 영의 사람이라 그렇게 또 구별해서 나타낸  데도 있는데 다 같은 말이나 이런 각도를 들어서 말 할 때는 이렇게 말하고 저런  각도를 들어서 말할 때는 저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제도 증거한 거와 같이 모든 창조를 하실 때에 제일  마지막으로 창조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창조하실 때에 일반 창조와 같이  그렇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세 분이란 말이 아니고 한 분뿐이신데, 한분이 이런 역사를 하실  때에는 이런 하나님으로 이름을 나타냈고 저런 일 하실 때에는 저런 하나님으로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당신이 나타냈지 누가 다른 이가 지은 거는 아니고,  그래서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요 위가 세 분이라 위가 셋이라 그렇게 성경에  표시했습니다. 그 위라는 말은 지위를 말하는 것이요 지위라는 것은 자기의  의무와 책임과 모든 본분이 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삼위라, 위가 셋이요  본체는 하나라 그래서 삼위일체라 이렇게 말하는데, 세 가지 종류의 직책을  가지신 한 분 하나님이라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요거 단순히 사람 말로 이렇게 하는 것으로 다는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세상에 있는 것을 예를 들고 또  비유를 해서 가장 가깝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말이지, 삼위일체는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증거해 봤자 기껏 우리가 아는 대로의 이 지구상에 있는  이런 것 가지고 증거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다 맞지는 않습니다만 삼위일체라는  것은 그러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다른 만물은 '우리 형상대로 짓자' 하는  그런 의논이 없었고 또 '우리가 창조한 모든 것을 정복하는 자로 짓자' 그런  의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정복이라 말은 모든 것을 다 점령한 다는 말이요  모든 것을 다 능가한다는 말이요 모든 것을 다 그것을, 비유컨대 지금 좀 있으면  이제 국회의원을 선거하게 될 터인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서로 경쟁을 해서 이긴 사람들은 정복을 한 사람이요  거기서 당선되지 못한 사람은 승리자에게 패전해서 정복을 당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모든 것을 정복하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능가하고 모든 것을 다  점령해서 모든 것에게. 피조물 중에 모든 많은 것들이 있는데 피조물 중에서는  제일 주도권을 잡고 그 머리가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정복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다스리게 하자.' 그 모든 것을 다 통치하게 하자 이렇게 해서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이 의논해 가지고 지으신 것이 사람입니다.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짓자 하나님의 모형으로 짓자" 하나님이면 성경에 나타난 대로도  그분은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영원하시며 완전하신 분이신데. 그분의 형상대로  짓자 그렇게 의논하셔 가지고 사람을 지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이 물질계에 있으면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물질계 있으면서 영을 가졌고 또 영을 가졌으면서 물질을 입고 있어서 사람을  분석한다고 하면 둘로 분석할 수 있는데. 영과 육 둘로 분석 할 수 있는데, 영은  주인이요 육은 영의 소유물입니다. 성경에는 육을 뭘로 비유했느냐 하면 육을  집으로 비유했습니다. 육을 집으로 비유해서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을 덧입기를 힘쓴다' 그렇게  고린도후서 5장에 말씀하신 그 장막집을 말하는 것은 우리의 심신으로 된 육을  가리켜서 장막집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하늘에서 오는 집을 말하는 것은 이  장막집 이것이 하늘에서. 오는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공로로 인해서 다시  새로워지는, 새것이 되어지는 변화를 입는 것을 가리켜서 하늘에서 오는 집을  지금 덧입기를 힘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심신은 사람의 집인데, 사람의 집인데. 이 심신 이것이  하늘에서 오는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되는 이것을 입습니다. 이것을 입는다 말은  마치 배 쪼가리가 검정물이 되어 있어 검은 것이 그 배 쪼가리를 주관하고  있다가 그 배 쪼가리의 검은 물을 탈색을 시키고, 탈색을 시키고 거기에다가  무슨 다른 붉은 물을 들이든지 어쩌든지 이렇게 하면 아주 처음에 있는 그  색깔은 없어져 버리고, 속의 근본 원단은 그대로 있지만 변색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이 심신이라는 것은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새카매져서, 다시 말하면 죄악화 되어졌었는데 다 자기 중심화,  자기위주화, 마귀화되어졌는데, 이것이 하늘에서 오는 것을 차차 덧입는다 그  말은 이제는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자꾸 이래 변화가 돼서 그 색깔이 변해져서  속의 원단은 같은 원단이나 완전히 색은 달라졌다 하는 그런 비유와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차 창조의 것을 변화시켜서 탈색을 시킨 것처럼 완전히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서 변화를 시키는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이요  변화시켜 가지고 그것을 많은 옳은 것을 연습시켜 가지고 숙달 시켜서 그의  기능을 완전히 성장시키고 또 그 기능의 모든 모자라는 들은 다 보충도 하시고  변화도 시키시고 양육도 하시고 연단도 연성도 하시고 이래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룹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육이라 하는 것은 거기에는 집으로 고린도후서 5장에는  집으로 비유했고, 또 우리의 육을 가리켜서 연장흐토 비유한데도 있습니다. 너희  몸을 죄에 드려서 죄의 병기가 되지 말고 죄의 도구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서 의의 도구가 되라고도 그렇게 또 말씀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이라 하는 것은 집으로 이렇게 나타내셨고 또 도구로  나타내셨고, 그러면. 내라는 그 존재의 이 심신은 집이요 도구와 같은 것이라면  거기에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뭐이 주인인고 하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인격성으로 지음 받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은 하나님의 모형이 영입니다.

하나님의 모형대로 지은 것이 영입니다. 그래서 이 영은 사람의 주인이요,  주인이란 말도 그저 항상 우리 말로 이래 하기 때문에, 주인이란 말하니까 또  주인이라면 사람 인(人)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사람의 주격이라  말입니다. 사람의 주격. 영은 사람의 주격이요 또 심신은 그 영의 소유격이라.

영이 소유물로, 영이 영의 집으로 가지고 있고 영의 도구로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심신으로 된 육이라, 사람의 주격인 주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  주인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기를 육을 지으시고, 육을 지으시고 또 영을  지으시고 그러면 영을 지으시고 육을 지으셨는데 육을 지은 것은 짐승처럼 다  이렇게 먹고 마실 줄도 알고, 이래 걸어 다닐 줄도 알고 활동할 줄 알지만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지었는데, 영은 아무 움직이지를 못하는 활동이나 그 기능  작용이 전척 없이 영이라는 그 영체로 되어 있는 영의 존재만 되어 있지 영은  아무 활동적 기능이라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생명이 없으면 그  기능 작용은 전혀 없고 그저 이목구비 수족이 있지만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은 있기는 있었지만 영이 아무런 기능을 작용할 만한 그만한 힘이  없었는데,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으니까 산 영이 되었다 그렇게,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었다 그렇게 성경에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 가지고 악령들은 유혹시켜서 이단들이 거기서  많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코에다가 생기 불어 넣었다 말은 육체로, 고기덩어리로 만든 심신으로  되어 있는 그 육체의 코에다 이렇게 숨을 불어 넣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 표시하는 방법으로 그런 것이지. 거기에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엌다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숨을 내쉬면서,  숨을 이렇게 후우 이래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이래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도들은 그때에 성령을 받았고, 오순절 성령은 역사적인 성령이요 교회를  건설할 수 있는 성령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아라' 하시면서 숨을  이렇게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그렇게 거기 표시 했는데 내나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니' 하는 그런 표현과 같은 그런 표현으로 했으나 그때에  제자들은 내재적 영감이 역사해서 그들을 중생시킨, 영감으로 중생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중생됐고. 중생이 됐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들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그때는 아주 죽음 속인데 죽음 속에서 그 자리를 피하지  안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지켜서 성령이 임하시기까지 기도하게 된  그것은 그들이 벌써 중생됐고 속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떠나지 안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그 성령은 이제는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 할 때 그들이 성령을 받았고 또  오순절에 이제는 역사 성령을 받아 가지고, 그들이 교회 세울 수 있는 활동  역사적인 그런 성령을 받아 가지고 그들이 다니면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다 중생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중생한  그 영과 사도들이 전해서 전함을 받아서 중생된 영이 내나 한 영이요 같은  성령은 성령이지만 임하신, 그 성령이 임하실 때의 그 과정이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들이 받은 성령은 기초적인 성령이요 그 다음에 오순절  성령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중생시키는 그런 성령입니다. 그래서 선지 사도들은  터가 됐다고 요한계시록에 말씀을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이 영이 있고 엿새 동안에 지은  가운데에 사람만 영이 있지 딴것은 영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 짐승도  다 영이 없고 사람만 영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은 다 또 영만 있지 육이  없습니다. 천군 천사는 육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군 천사가 이 세상에  나타나서 역사해 때는 하나님의 특별 은혜를 입어 가지고 이 육체 같은 것을  가지고 나타날 때 그때 신비적으로 이렇게 나타나서 작용하는 것이지 사람처럼  그렇게 육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자유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영계의 그 영체와 이 물질계의 물체 이 양체를 가지고 된  것이 사람인데, 영체를 가진 그 영은 영계에 있는 모든 영체들과 같지 아니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영체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영체인데. 이 영체에게 생기를 불어 넣은 그것은 내나 성령이 그 영에게  접선됐습니다. 성령이 접선된 거는 그때부터 벌써 사람과 하나님과의 이렇게  정선시키는 역사는 성령이 접선시키는 역사를 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미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온전함을 갖추어  가질 수 있는 그 작용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라 제사장 선지 왕의 영이라  그렇게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 영이 생기를 얻어 가지고 산 영이 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영을 한번 시험했습니다. 그러면. 영이 어느 정도 영이 되었느냐 하시고  시험했습니다. 시험한 것이 모든 그 창조물들을 그 앞에 갖다 놓고 '네가 이름을  지어라.' 아담에게 이름을 지어라 이랬습니다. 이름을 지어라 했는데 그 이름  지은 것은 주님이 뒤에 보시고 잘 됐다고 잘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이름 지은 것이 그것이 아담의 독단으로 이렇게 저렇게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이것은 이런 이름을 가지고 대개 이름과 그  성질과 생활과 행동과 또 그의 모든 처소 또 식물 이런 것들이 다 이름을 작정할  때 그것들이 다 작정됐다 그거요. 그저 단순한 이름만 말한 게 아니라 이름이  작정될 때에 그때에 벌써 그 이름이 각각 다른 것처럼 그의 처소도 다르고,  본질과 본성도 다르고. 그의 식물도 다르고, 활동도, 다르고, 그의 세계도  다르고 각각 달라서 범의 세계도 있고 새의 세계도 있고, 물고기의 세계도  있는데, 그런 것을 이름을 지을 때부터 벌써. 그 이름 지은 것은 그의, 흙으로  지어서 물질로 지은 그것이 이렇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그때부터 그들의 활동 개시와 그의 식물 출발과 그의 처소의 결정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아담에게 하라 하니까 아담이 그것을 지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 잘 됐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담의 그 영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처음 한 행사인데 그 행사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그대로 꼭 고  모형적으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고 하고자 하심이 그들의 하고자 함이 돼  가지고 활동적으로 하나님의 모형이 처음에 이루어졌습니다. 모는 속성이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의 모형 속성을 가진 것이 이제 활동이 모형  활동을 했으니 그것이 다 생명의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지은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 영이 뭘로 살았던가? 영이 성령으로 인해서 비로소 살았습니다.

성령이 오기 전에는 그 영이 죽었던 영인가? 죽지 안하고 생명이 없는, 생기가  없는 영이었습니다. 죽은 영이 아니라. 죽은 영은 살았다가 죽었을 때에  죽었다고 하는 것이지, 그는 살아나지를 안했고 생명이 없는 생기가 없는  영이었다가 그 영이 성령으로 인해서 생기가 있어서 성령으로 인하여 그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 첫 활동을 하나님이 시험하실 때에 이름 짓는 그런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만물이 다 아담에게 복종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모든 만물을 다 넉넉히 통치하고 또 만물은 아담에게 다 통치를  당하고 이래서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는 그 일이 성립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그 아담이 모든 만물을 통치할 때에 그 통치하는 것이 아담 독단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의 모형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그를  통해서 나타났고, 하나님은 원형 통치라면 그는 모형 통치요, 하나님이 원형  정복이라면 그는 모형 정복으로 이렇게 하나님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통치했기  때문에 그 통치는 하나님이 통치하심이요 그는 조그만치도 잘못됨이 없었기  때문에 만물도 복종할 수 있었고 또 복종하는 것이 생명이고 이랬는데, 뱀이  들어와 가지고 유혹을 시켜서 아담이 하와가 처음에는 유혹받아 가지고 하와로  말미암아 들어왔을 때에 아담이 하나님에게만 되동되어서 하나님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사람인데, 영이 하나님 모형대로 되어 있고 또 이 심신은 영의  모형대로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좀 원근만 달라서 영은 하나님의 더  모형이요, 마음은 그 다음으로 모형이요 몸은 그 다음으로 모형으로서 이렇게 참  고귀 하게 지음을 받은 것인데,

 이래서 안 믿는 철학가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특수 동물이라 그들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특수 동물이 사람인데 사람을 '사람은  이 허리띠를 띤. 허리띠 위로는 다 선하고 허리띠 아래로는 악하다. 이래서  사람이 죽을 때는 그 허리띠 위로는 살아 있고 아래로는 죽어 있다. 그래 아주  위인이나 대인늘은 허리띠 위로 것은 백 년도 살고 혹은 천 년도 살고 그렇게  산다' 하는 그것이 모두 이방 철학들이 저거 생각대로 해서 꾸며낸 인생관인데,  그런 말을 자꾸 이렇게 꾸미고 저렇게 꾸며 가지고 복잡하게 해 놓으니까  어리석은 인간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성신의 감화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꼬여 가지고 그것 따라가서 일생 동안은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고,  신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데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신학이나, 예수 믿는  것이나 철학이나 이것은 비슷한 사촌간이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해야 된다는 그  사람들이 가르치는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만일 철학을 가지고 목회할 수 있다  하는 것은 벌써 가르치는 그 선생들이 잘못된 것이고, 철학을 배우는 것은  철학이 기독교와 같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사람 속에 타락  후부터는 그 속에 작용하는 악령과 악성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서 이  피조물이 악령으로 말미암아 작용하는 그 작용이 있으니 그 작용이 조직적으로  그 작용이 형체를 가지고 나타난 그것이 뭐이냐 하면 사람들의 그 철학이라 제  생각으로 자꾸 공상하고. 아무것도 백지 소용없는 걸 또 생각하고 공상하고  공상하고 공상하고 공상하고 명상하고 명상하고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만들어서  통계를 맞춰 놓은 것이 철학이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제가 그것을 다  생각하려 하면 많은 시간 걸치고. 허탄한 걸음으로서 그만 인간 일생이 다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궁구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철학을 말한다  하는 것은 '이것이 네 속에도 있다.' 철학 공부할 때 '이것이 내 속에도 있다.

내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다 부정해야 된다' 하는, 철학을 자기 속에서  뽑아 버리기 위해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지 철학 그것이 이용 가치가 있어서  철학 공부하는 것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몰라서 무슨 이상한 말만 하면 그만 철학인 줄 이렇게 아는데, 제가  설교하는 것은 그 설교는 철학적이라 하는 그 사람 철학이 뭐인지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철학이라 하는 것은 인간 밖의 거는 없이 인간 그 자체 속에서만  요렇게 꾸미고 저렇게 꾸미고 자꾸 생각해 가지고 낸 것이 철학이기 때문에  철학은 순전히 인간 주관, 인간 주관,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인간 주관,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이런 것들이 뭉쳐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작용하고 활동해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 철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은  주관주의라 그렇게 하면 한 말로써 완전히 꿰뚫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주관주의 아니고 계시 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다' 보여 줄 때에 거기  따라서 따라가는 그것이, 계시주의가 기독교요 주관주의가 철학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의 영이라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모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이 영이라는 것은 이것은 권위가 심히 크고  높으면서도 아주 솔직해 가지고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지 딴 데는  피동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지  다른 데는 피동이 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사람이 타락 후에는 그 영을  악령이 붙들고 이렇게 이용을 하고 그 영은 악령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그렇게  말해 놓은 교리와 신조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런 신학들도 있다 말이오. 그건  전부 이단이요 잘못입니다. 사람의 영이 죽기는 왜 죽었느냐?  사람의 영이 죽은 것은 사람의 영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 아니고, 사람의 영이  뱀으로 더불어 의논한 것이 아니고 이 육이 영의 말을 듣지 안하고 육이 이것이  제 단독으로, 제 자유 할 수 있는, 극히 소범위지만 자유 범위가 있기 때문에,  이 심신이 영에게만 피동돼야 그거는 사는 건데 영의 지도를 받지 안하고 이  심신 이것이 뱀이 와 가지고 말할 때에 자기 영에게 지도 받는. 이것이 그 지도  줄을 이렇게 옮겨 가지고 뱀에게 지도 받은 그때부터 죽기 시작한 것입니다.

뱀하고 벌써 말한 것이 벌써 죽기 시작한 것이요, 또 다스리고 통치하라 했는데  영이 그래할 때에 이 심신이 듣지 안한 그것이 이때부터 벌써 죽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래서, 육이, 이 심신이 뱀하고 합작해 가지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도 하다 지혜롭기도 탐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선악과를  볼 때에 평가한 그 평가가 영의 평가는 아닙니다. 영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지  다른 데 피동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육이 선악과 먹음으로써, 선악과 먹은  그것은 하나님이 금한 것을 범한 것이 됐는데, 범한 그것 때문에 영이 죽은 것은  영이 선악과를 먹어 죽은 게 아니라 영은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의 주격이기  때문에, 육의 주인이기 때문에 제 소유인 육이 하나님의 법을 범했기 때문에  육의 주인인 영이 그 주격 위치의 주격 책임에서 그 죄를 담당해야 되기 때문에  그 정죄를 받아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으니까 이 영은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까 산영이 됐었는데, 그 영감을  불어 넣어서 산 영이 됐는데 하나님이 영감을 거둬 버리고 나니까, 영감을  거두니까, 이 영은 연결될 때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연결될 수 있는 것인데,  연결되는 것은 성령으로만 연결될 수가 있고 진리로만 연결될 수 있는 것인데,  이 영이 하나님과 연결줄이 끊어져 버렸으니까 이 영은 이거 무소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소속이 되고 말았으니까,  이 영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모형으로 지어서 하나님으로만  움직이고, 또 하나님만 나타내고,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역사를 나타내고, 또  하나님의 그 원형인, 본형인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나타내고. 작용은 그것밖에  못 합니다. 우리 영이라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에게만 피동될 수 있도록 딱  제한돼 가지고 있어서 요것을 선을 넘지를 못합니다. 요 범위를 넘지를  못합니다.

 우리 영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하나님만 나타내는 그것만 직책이 되는데,  하나님만 나타낼 때 하나님을 어디다 나타내느냐? 여기에도 저게도 넓은  범위에서 나타내지를 못합니다. 자기의 심신에게만 나타냅니다. 자기 심신에게만  나타내서 심신만 그 영의 자유로 이렇게 이용할 수가 있고 또 명령할 수가 있고  지도할 수가 있고, 그 심신은 영에게 지도를 받고, 영은 하나님께 지도 받아서,  하나님은 영에게 지도하고 영은 심신에게 지도해 가지고 심신이 이제는 모든  만물들을 그대로 지도해서 하나님의 그 지도가 영에게 영의 지도가 마음에게  마음의 지도가 몸에게, 몸의 지도가 모든 사물에게 이래 가지고 이 사물의 이  전체가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움직여지는 그것이 되도록 한 것이 하나님이 근본  하신 것입니다.

 만들어진 모든 그것들도, 피조물도 그것이 아무나 따나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나지 안했으나 만물을 보아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게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나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 만물은 뭘  원하느냐? 이 만물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이  만물의 본질과 본성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다 저 닮으면  좋아하고 저와 맞으면 좋아합니다. 그래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이 속성이 제  비위에 맞고 저와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원한다' 그 말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그 피동으로 만물을 지도하면 만물은 그들에게 지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지도 받는 게 되기 때문에 전부 생명이 되는고로 만물 이 하나님의 뭇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탄식하면서 고대한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그 영이 살아 있을 때에는 만물이 다 거기에 통치를 받고 지도를  받았지만 영이 딱 죽어서, 영이 딱, '죽었다' 영의 죽은 거는 왜 죽었느냐?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다 말이오. 연결이 끊어지고 난 다음에는 영의 작용은  이제 없습니다. 영은 우리가 중생되기 전에는 영은 있기는 있지만 영은  기능적으로는 없는 거와 같이 털끝만치도, 조그만한 그 기능 작용도 없는 완전히  영의 시체입니다. 영의 시체. 영의 기능 작용을 할 수 없는 그런 영으로. 죽은  영, 죽은 영과 이 심신 육과 이래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요, 이랬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그 공로를 입어서 이 죽은 영이 진리와 성령과 재연결이 된  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다시 살았났다, 이제 중생해 가지고 재연결이 되고 난  다음에, 이제 영은 재연결이 하나님이 연결시켜 연결이 돼 버렸지만 이제는 이  영과 이 심신이 재연결이 돼야 되는데 재연결이 안 돼서 지금 심신과 영이  재연결하는 그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인 것입니다.

 이래서, 그 영이 하나님과 연결됐을 때에는 모든 걸 통치할 수가 있었지만  연결이 끊어져서 죽은 영이 되었을 때에는 이제는 심신 제대로 날뛰고, 심신  제대로 날뛰는 것인데, 제대로 날뛰니까 만물은 그에게 복종 하지를 안했고 땅이  그들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줬다, 그들로 말미암아 저주받게 됐기 때문에  엉겅퀴를 줬다, 이제 그때부터 만물이 인간에게 불복종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다  불복종이 아니고 어느 정도 한계를 해서 만물들을 사람에게 복종케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어느 기간 동안 복종해라' 복종케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뭐  범을 잡아서 이용을 할 수가 있고 소를 잡아서 먹을 수가 있고 이 쌀을 우리가  꼭꼭 씹어서 먹을 수가 있지. 이것이 하나님이 복종케 하기 때문에 그렇지,  그렇지 잃으면 이 쌀 한 개를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못 먹습니다. 이것이 '왜  나를 먹느냐?' 시비를 한다 그 말이오. 지금은 이렇지만.

 이거 먹으면서 뭐하라고? 먹으면서 이제 원상 복구. 본 지위를 회복해 가지고  하나님과 그 연결이 바로 되어서 하늘과 땅의 것이 통치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영이 하나 되고 이래 가지고 교회가 되고, 이 교회가 돼 가지고 만물을 연결이  돼서 하나되는 이 작용 하라고 한 것인데, 이다음에는 그 모든 게 다 그리된  자에게는 복종을 하지만 그리 되지 안한 자에게는 털끝만한 복종도 복종 안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다음에 복종 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자들은  만물이 감사하고 하지만 어겨서 뜻을 이루지 못한 그거는 영원한 사망이기  때문에, 예를 들면 쌀 한 내끼가, 개미 한 마리가 우리에게 송사를 할 수  있습니다. 송사할 수 있습니다. '이건 네가 날 이만치 침해를 하고 했으니까 이  배상을 해라' 이러니까, 그 배상을 무는 것이 다 지옥의 형벌이요, 배상을 무는  것이 예수님께서 대신 배상을 물어 가지고 우리는 그때 거기에 대해서 미안은  하기는 하지만, 그거는 못 하지만 만물이 다 자유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거  어디 보고 하느냐?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못 아들의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하는 것이라, 원치 안하는 것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복종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지금 복종하지 저거들이 자원해서 복종되는 게 아니라 그 말이오. 이  물건을 우리가 자유로 얼마든지 이용을 하는 것은, 만물을 우리가 이용하는 그  이용권을 가지는 것은 뭐이냐? 우리가 하나님에게 이용당하는 그 일을 하도록,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그 일을 하는 일에 쓰이기 위해서, 그 일을 하면  만물은 우리로 통해서 동하고 정하고 만물은 우리에게 속하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해서 이렇게 되어지는 데, 우리가 이 작용이 되지 안하는 것은 모두 이  만물에게 대해서, 누를 끼치는 거고 만물을 다 침해하는 일이 되어지고, 이렇게  내가 그걸 먹음으로써 하나님에게 피동되면 그걸 먹어 그거는 내게 피동돼서 나  됐고 나는 하나님께 피동돼서 하나님의 것 됐고, 이것이 생명이요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이라는 것은, 요걸 단단히 아십시오. 이거 지금, 이것이  세계의 조직 신학에 무슨 나왔거나 그런 것 아닙니다. 그런 것 아닌 데, 이게 또  나가면 많은 말이 있겠지만 지금은 뭐 그런 시비를 안 하고 그렇거나 저렇거나  천주교도 다 용납하고 뭐이든지, 다 그라니까 그들이 무관심해서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교리와는 좀 다릅니다.

 우리의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지 다른 데 피동되지 안합니다. 타락하고 난 다음에 마귀에게 피동돼서  마귀가 우리 영을 사용할 수가 있느냐? 절대 사용 못 합니다. 우리 영은 마귀는  사용하지 못하고, 마귀는 우리 영에게 대해서 대항하거나 우리 영을 어떻게 할  수 없는데, 그 마귀가 교묘해 가지고 육을 유혹시켜 가지고 육이 범죄했기  때문에 주격 책임에서 그 영이 하나님 앞에 끊겨져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영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될 수 있는 것이 영이라, 영은 또 하나님의  것만 가지고. 하나님의 것만 가지고 그는 작용할 수 있고, 하나님의 것만 모든  피조물들에게 주는 것이 영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심신에게  주고 심신이 받은 것을 만물에게 줘서 만물에게 충만케 되는 것인데, 영은  하나님에게만 피동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것만 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만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요것을 똑똑히 기억하시고 이거 기억하면 모든  성경이 풀려지고 되지만 이제까지는 이런 교리에 깊숙이 들어가지 안했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면 자꾸 모순되고 모순되니까 모순된 거는 그만 성경에  '난해절이라 그만 성경에 그랬으니까 모르지만 그래 둬 둬라' 자꾸 이래 놓고  말았습니다.

 영은 요런 거 그러면, 영은 그러면 하나님에게 피동돼 가지고 피동된 그 활동을  어디다가 할 수 있느냐? 어디다가 할 수 없습니다. 꼭 자기의 심신에게만 하지  딴 데는 못 합니다. 자기 심신에게만 하지 딴 데는 하지를 못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심신에게 가지 못해. 똑 자기 마음에게 하고 자기 마음에게 한 그것을  마음이 또 몸에게만 하고 자기 마음은 자기 몸만 할 수 있고 딴 데는 하지  못합니다. 이래서 몸은 이제 자기 몸 밖에 사람에게도 이렇게 작용할 수 있고  만물에게도 작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심신에게만 하고 딴 데는 하지  못한다 꼭 그렇게 한계돼 가지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하나님만 나타내고.

하나님의 소유를, 기능을, 모두 속성을 나타내고, 하나님만 나타내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또 나타내고 피동되되 꼭 자기 마음, 자기 소유인  마음에게만 나타내고 또 마음은 그 몸에게만 이렇게 나타내지 딴 데 나타 내지  못한다, 예를 들면 사람 이 그게 비유가 딱 들어맞지는 안하지만 사람이 자기  마음에 '저 사람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그럴 때에 그 말 하는 것을.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자기 혀로만 말할 수 있지 혀가 아니면 전달을 못 합니다. 혀가  아니면 전달을 못 하니까 혀가 아니면, 그 자기 속에 마음에 있는 것을 혀가  아니면 전달 못 하고 벙어리가 됐다면 그 자기 속에 마음에 있는 것을 다른 건  전달 못 하니까 안 되면 손으로 이렇게 움직여서 이렇게 모양으로 이래 해  가지고도 전달하고 자기 육체를 가지고라야 자기 마음에 있는 걸 전달하지 자기  육체를 통하지 않고는 마음에 있는 것을 전달 못 하는 것처럼 육체를 통해서만  전달하는 것처럼 영은 자기의 심신을 통해서만 전하지 다른 걸 통해서는  전달하지를 못하고. 하나님은 사람의 이 모형인 영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제일  사람들에게 정확한 전달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의  영을 지은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 지금 증거하려 하는 것은 어디까지를 목적을 했는고 하니  '다시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시는, 자기라는 그 자기가  뭐인지 자기를 똑똑히 알아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지금 말하려고 영을 지금  설명했습니다.

 자꾸 나와서 배워야 되지 모르면 모릅니다. 그러니까, 모르면 못 행한다  그거요. 사람들이 진리 운동이라고 하고 있는데, 진리 운동도 있지만 진리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거는 순전히 마귀 운동을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바로 몰라서, 인간들이 다 바로 몰라서 삐뚤어지게  알아서. 다 죽은 것은 삐뚤어지게 알아 가지고 죽었습니다. 사는 것은 바로 아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저 이 세상 아무리 악하고 험해도 기도 힘쓴 사람은 승리합니다. 우리는 뭐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기도의 그 특약을 받아 있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시행해 줘야 됩니다. 또 기도하는 자마다 그대로 다 들어  주시기로 하나님이 약속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큰 권능을 우리는 받은 것이  기도입니다. 이런데 기도를 지금 사용하지 안하는 것은 참 우리가 전부를 다  뺏겼다 하는 말과 같은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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