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은혜-믿음의 신비성

 

1986. 10. 26. 주일오후

 

본문:창세기 2장 1절∼3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일을 다 하시고 끝나므로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고 쉬셨다 하는 요 말에서 잘못하면 미혹받기 쉽습니다. 쉬신 것은 그 일이 다 끝났고 마쳤고 완료가 됐기 때문에 그래 창조하는 일을 이제는 끝났고 마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 창조하시는 일은 엿새 동안에만 하시고 그 후에는 영원히 하지 않습니다. 이미 창조해 놓으신 것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재창조 곧 가공을 하시지 없는 가운데서 근본적으로 창조하시는 일은 엿새 동안에 다 끝냈습니다.

이단이 이 창세기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우리 한국에 여러 이단파들 그도 다 이 창세기에서 발원한 것입니다. 통일파니 전도관이니 하는 것도 다 이 창세기에서부터 그 이단이 발생됐습니다. 또 그 외에 여러가지 종류의 이단들은 대개는 요한계시록에서 다 발생을 했습니다. 그 두 성경에 사람들이 유혹받기 쉬운 그런 면들이 많아서 그렇게 이단이 많이 발생됐습니다.

엿새 동안에 이 천지 창조 하셨다는 데 대해서는 정통 학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유혹들을 많이 받아 가지고 한 일이 있습니다. 과거 ○○○선교사라 하는 선교사는 그는 정통파에 속한 대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때에 변증학을 저술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력하게 다 교본이 되었었고 또 그분이 이 창세기를 주석했는데 그 주석이 우리 그전 조선 교회에서도 표본 주석으로 그 주석을 가지게 됐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석을 제가 지금으로부터 한 삼십여 년 전에 신학교 다닐 때에 그분에게 배웠기 때문에, 그때 변증학을 배웠습니다. 배웠기 때문에 그분의 주석 창세기가 어떤가 해서 읽어 볼 때에 역연 엿새 동안 창조를 부인하는 그런 해석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거게 대한 걸 좀 조심하고 그분이 가르친 변증학은 완전히 포기를 해 버렸습니다. 포기를 해 버리고 이제, 그후에 박윤선 목사님이 변증학을 새로 저술했는데 그걸 약간 좀 참고로 하고 저는 성경 한 권을 변증학으로 그렇게 그만 삼고 끝냈습니다.

엿새 동안이라고 하는 이 엿새는 지금 스물네 시간의 엿새가 아니고 여섯 토막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간은 수억 년이 걸린 그런 긴 기간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그분들은 생각을 가집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근거하는 것은 모든, 저거가 아는 대로 지질학과 또 모든 각 종류들의 진화된 데 따라서 그렇게 연조를 계산해 가지고서 이억 몇천 년이 걸렸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짜를 제가 잊어버렸는데, 금년 팔월 이십일자로 ○○일보에 그게 나왔다고 합니다. ○○일보에 세계토픽이라고 하는 거기에 나와서 있는데 거게 나온 것을 어떤 사람이 편지로 저한테 했읍디다. 했었는데, 미국에서 노벨상 받은 칠십이 수상자와 이십사 과학 연구소에서 동맹해 가지고 미국에 있는 모든 연방 대법원에다가 소송하기를 ‘엿새 동안 천지 창조했다는 이 창조론은 다만 종교의 교리상으로 그렇게 할 것이지 그것을 과학이라고, 그걸 실상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것은 큰 오해를 가져오게 된다. 또 그러고, 지금 과학으로 서로 전쟁하고 경쟁하고 있는 이 과학 시대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라고 창조론과 이 진화론을 이렇게 함께 가르치는 이것은 대단히 모순된 일이요 이것을 이대로 방임해 두면 지금 과학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연구하는 과학의 이 청소년들의 머리가 흔들리고 과학에 열중하는 열심이 줄어질 터이니까 이는 과학이 뒤떨어지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들을 대법원에서 법적으로 이것을 엄단해야 된다.’ 하는 그런 것으로서 호소를 했다는 그런 기록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이 과학이 들어온 지 차차 차차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우리가 그 나라에서 선교를 받은 참 믿음으로 말하면 큰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지마는 이 과학을 너무 중요시하고 그것을 권위를 너무 인정하는 데에서 과학에 삐뚤어진 거는 다 부인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이런 세대가 와서 미국에 있는 청소년들은 머리가 커짐에 따라서 그들이 과학자가 되는 동시에 이 성경을 믿는 신앙에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이 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물론 독실한 신자들이 있지마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 천지 창조를 믿지 않습니다. 천지 창조를 믿지 안하니까, 이거 믿지 안하니 모든 기독교는 다 거게서 박살이 나고 맙니다.

이러니까 그 나라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이 가견적의 것, 눈으로 보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는 가견적의 것만 인정을 하지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 신령한 것들은 인정치 아니하는 그런 나라가 자꾸 돼 가니까 그러면 그 나라도 나중에 가서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금 여러분들이 여게서는 창세기 1장에 있는 말씀을 읽을 때에 다 이는 틀림없이 이렇다 인정하지마는 여게는 수많은 고등비평가들이, 고등비평가라고 하면은 지식을 가지고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고등비평가라 그렇게 말합니다. 고등비평가들이 한없이 단합하고 모든 것을 구비해 가지고 우리들에게 이제 습격해 와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그저 종교에서 하나의 이런 신화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이 사실이라고 믿는 이를 믿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는 미혹의 운동들이 뭐 바다에 물밀듯이 밀려올 터인데 여러분들이 오늘에 어떻게 이 진리를 굳게 잡으며 또 하나님 앞에 능력을 받지 안하면 안 됩니다.

능력받은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암만 와도 침노를 받지 안하고 천하의 과학자들이 다 달라들어도 그까짓 거 한 마디면 다 절단내 버리고 말지마는 능력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안하고 거게서 미혹을 받아 가지고 신앙이 흔들리게 되기 쉬운 것입니다.

첫날 둘째날 하는 날이 전부 낮과 밤으로 되어 있는 지금 이십사 시간과 조금도 틀림없는 그 시간입니다. 이십사 시간으로 된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이래서 그분들은 ‘엿새 동안에 그런 것이 어찌 창조될까?’ 이렇게 말을 하나 그들은 하나님의 전지성과 전능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 우리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의 완전자이신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어서 엿새 동안에 창조했지 엿새가 덜 걸리고는 창조를 못 해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창조되어 있는 이것을 엿새에도 창조할 수 있고 하루에도 창조할 수 있고 한 시간에도 창조하실 수 있고 십 분에도 창조하실 수 있고, 우리가 짧은 시간을 말한다면은 찰나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찰나에서도 그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걸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런 유혹을 받지 않도록 지금부터 깨어서 기도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안식일로 정하셨습니다. 제칠일을 안식일로 정한 것은 제일차로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정하신 것인데 안식일로 정하신 것은 보이는 이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인데 보이는 것은 없어질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인 영원 무궁한 세계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나왔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있고, 보이는 것은 차차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있다고 성경 말씀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존재 중에 하나를 말할라고 하면은 하나님,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은 보이지 안하나 보이지 않는 그분은 보이는 모든 것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고 또 보이는 그 모든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분은 더 크신 분이십니다.

이래서, 보이는 것만을 위주로 해서, 안 되면 현미경으로 봐도 보여야 하고 그리 안 하면 뭐 몇억억천 배가 되는 무슨 전자 현미경이라도 그렇게 봐서 보여야 인정하지 보이지 않는 것은 인정치 않는 자들은 그들은 보이는 것에 속한 사람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요한계시 17장, 또 그 안에도 다른 데도 보면은 그 모든 세상에 점점 사람들이 발달돼 나가는 이 지식을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음행의 포도주라 말은 이제 그 교훈에 도취가 돼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지음받은 이 모든 피조물들을 더 존귀히 여기고 더 믿고 의지하고 섬기기 때문에 멸망을 한다는 것을 로마인서 1장에 똑똑히 말씀을 해 놨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공부시킬 때에, 그전에도 제가 그런 말을 한동안 많이 했었는데, 공부를 시킬 때에 이 세상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보다 앞서지 않도록 해라. 자녀를 공부를 시킬 때에도 세상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식을 돕는 종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공부를 시키지마는 벌써 인간 지식이 앞서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무시하게 되는 그럴 때에는 공부를 시키지 안하고 중단시키는 것이 좋다, 중단시켰다가 하나님의 지식의 공부를 많이 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이 앞서면 그 다음에 땅에 있는 지식을 그 다음에 이 보충을 하고 또 언제든지 하나님의 지식이 머리가 되고 주격이 되고 주체가 되고 인간의 지식은 거기에 소유물이 되고 이용물이 되어져야만 한다 하는 것을 늘 말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말 하는 것도 지금 강단에서도 잘 들어 보지를 못합니다. 이런 말이 별로 이제 없이 다 파묻혀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제가 설교를 한 것이 기록해 나가는데 이 설교록이 아직까지는 하나님이 그런 모든 세력들을 다 막아서 얼마든지 이 진리를 증거하도록 하나님이 둬 두시고 이 진리가 증거돼서 어느 때가 되면은 이 말씀에 다 간추려져서 투쟁이 될 때에는 이 책들을 다 거둬서 불사르라 하는 그런 때가 올 것이고, 또 그럴 때에는 이제 땅위에 있는 모든 지식은 그 지식의 조상이 배암이라는 것과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것과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 인간의 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만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라는 것을, 지식의 이 정의, 세상에는 지식이 두 종류밖에 없다는 이것이 지금은 아직까지 이것이 종결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가운데서 빠지고 있고 하나님이 또 막으시기 때문에 그냥 있지마는 때가 되면은 이런 사람들은 용납지 안하고 다 없애 버릴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그렇게 과학자들이 말하는 그것이 얼마 가면 한국에도 들어옵니다.

그저 미국에 있는 문화와 우리 한국에 있는 그 진도를 보면은 한 육십 년, 일본과 우리 나라는 그라면 한 사십 년, 이런데 한 육십 년이 되면은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종교의 문화나 또 이 세상 문화가 다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그 때를 우리도 한 육칠십 년 지나가면 다 걷게 되고 그때 일어나는 것이 우리 나라도 다 일어날 것입니다. 육칠십 년만 되면은 우리 나라에서도 성경에 창조론을 말하는 것은 종교적 교리지 이거는 과학이 아니다 이거는 실상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일들이 앞으로 곧 다가올 것입니다.

여게 “하나님이 일곱째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복주어 거룩하게 하셨다 하는 말은 이 복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씀을 한 것인가? 이 복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다 그에게 주시는 것을 가리켜서 복 주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주 안에 물질계에 있는 것이나, 영계에 있는 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물질계에 있는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래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또 생육하고 번식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땅만 정복한 게 아니라 벌써 이 말씀을 한 지 한 육천 년이 지나간 오늘에는 벌써 사람이 공중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그때 언제 ○○○목사라고 하는 그 목사가 중국 목사인데 저 어데서인가 무슨 공원인가 거게서 강연하는 것을 제가 한 시간 가서 들어 봤습니다. 들어 봤는데 그분이 말하기를 지금 전쟁은 육상 전쟁이 아니라 공중 전쟁 하고 있는 공중 시대가 왔다 그렇게 그분이 지금으로 한 아마 십오 년 전인가 이십 년 전에 말했습니다. 지금은 뭐 공중 시대라 우주 시대라 하는 말은 많이 퍼쳐 나와 있지마는 그때는 그 ○○○목사가 그렇게 말할 때에 그때 말은 또 듣기가 좀 드문 그런 말들이었습니다.

이래서, 지금도 사람이 이 공중을, 타락한 사람이지마는 다소 점령하고 있는데 그때에 만일 사람이 타락하지 안했으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우주 안에 있는 것은 그들이 다 정복하고 다 다스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래서, 복 준다 말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물질계에 있는 피조물을 하나님이 그들에게 권리를 주셨다 하는 그런 말이요 또 거룩하게 하셨다 그말은 구별하고 구별해서 온전을 이루라는 뜻을 가리켜서 거룩이라고 말합니다. 이래서, 복 주신 것은 그것은 재료를 말하고 또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방편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그때에 모든 피조물을 현실 현실에서 관계를 가질 때에 구별하고 구별해서 온전한 구별을 가져서 온전을 이루라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때는 약간의 말씀이 있었고 또 지혜와 총명을 주어서, 양심 시대입니다. 양심이 밝았습니다. 아무 죄악이 없기 때문에 아주 밝은 때입니다.

밝은 때에 양심만 가지면 모든 피조물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하는 그 관계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거룩하게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에 제일 처음으로 안식 세계를 점령하는, 준비하는 날로 이 복과 거룩하게 하는 이 두 가지 은혜를 주셨는데 이것이 인류에게 첫번 준 안식일입니다.

이 안식일인데, 안식일이라는 말은 일 안 하고 편히 논다는 말이 아니고 이 안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 허락하신 모든 축복을 자기가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실력과 모든 관계들을 마련해 가지고서 모든 존재와 자기와의 올바른 관계, 창조주와 자기와의 올바른 관계를 만들어 가지고서 이렇게, 다시는 사고나 모든 투쟁이나 모든 타락이나 모든 범죄나 그런 것이 없는 그런, 진리와 사랑과 평강과 생명으로 살 수 있는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는 날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준비에 필요한 요소들은 다 은혜로 받는 날로 이렇게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때는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밖에 없었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이 안식에 대해서 별로이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은혜를 받는 데에 조건 계약은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은 먹고 먹지 말라는 것은 안 먹고 하는 것이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시하신 신인 계약인데 그 계약에 아담과 하와가 위약해 가지고서 이 일차 안식에는 한 사람도 구원 얻지 못하고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를 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이차적으로 안식을 주실 때에는 인간 단독으로는 이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 안식 세계에 가야 영원히 평안하게 참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살 수 있는 것인데 이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데는, 안식 세계라 말은 전투가 없는 세계요 실패가 없는 세계요 위험이 없는 세계요 미완성이 없는 세계요 모두가 다 정리하고 정돈돼서 평강이 있는 그 세계를 가리켜서 안식 세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도 안식을 하셨다 하는 그말은 이제는 아직 미완성이 하나도 없이 다 완료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안식일이 된 것입니다.

안식을 둘째로 안식을 주시면서는 대속이 없이는 안 된다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대속을 허락하셨습니다. 대속을 허락하신 것이 창세기 3장 15절에 인간 단독은 안 되기 때문에 가죽옷을 지어 입힌 것이 남의 힘을 입지 안하고는 안 된다는 가죽옷을 지어 입혀서, 다른 이가 죽음으로 네가 산다 하는 것을 표시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혔고, 또 여인의 후손과 배암의 후속이 싸워서 여인의 후손이 배암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고 배암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이렇게 상우다가 그는 패전하고 만다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대속을 허락하신 건데 이 대속이 무슨 대속인고 하니 예약 대속입니다.

앞으로 대속은 한번 있어야 되겠는데 그 대속이 있기 전에 미리 예고적 대속, 예약적 대속, 예표적 대속으로 하나님께서 짐승을, 사람이 그 죄지은 것과 또 사람이 하나님의 그 율법을 다 행하지 못한 것과 하나님과 불목된 그것을 대신 하기 위해서 이렇게 짐승의 피로 대신을 해 가지고서 예표요 모형이요 예약적으로 대속의 법칙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제사가 네 가지 제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속건제 속죄제가 있었고, 속건제라 말은 같은 말인데, 속건이라 말은 허물 건자, 죄가 되지 못하고 허물, 허물된 것과 또 죄와, 속건제 속죄제가 있었고, 속죄제와 속건제는 오늘 우리가 아는 대로는 사죄를 말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화목제가 있었으니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평된 것을 가리켜서, 화평해지는신인 결합의 화목의 이 대속을 가리켜서 그렇게 화목제라 그때 그렇게 했고 번제는 하나님께 다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다 이행할 수 있는 칭의를 그때 예약해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범죄했을 때에는 짐승을 갖다 놓고서 짐승의 머리에다가 안수하면은 사람의 잘못은 짐승이 다 책임을 짊어지고 짐승은 그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거게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자유를 얻게 되는 이런, 대속을 받는 제도를 하나님이 예약으로 선포하셨을 때에 그때에 사람들은 이는 참 것의 그림자라고도 했고 또 참 것의 하나의 모형이라고도 했고 예약이라 예표라고도 했는데 그래 가지고 짐승의 제사로 그때에 이 안식 준비를 잘 해 가지고 구원에 들어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지는 못했고, 일차 안식에서는 하나도 없이 실패했고 이차 안식에서 구원에 들어간 사람이 첫째로 구원에 들어간 사람이 아벨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가인이 쫓겨나갈 때에 그때에, 사람을 만나면 그가 나를 죽일 것이라 하는 거게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그때에 아담의 자손은 가인과 아벨뿐인데 그 밖에 무슨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을 더러 봤습니다. 녜, 그렇게 성경에 아담 하와 또 가인 아벨 이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족보입니다. 택한 자들의 족보고, 아담과 하와가 인류 시조인데 아담과 하와에서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많이 났습니다. 그때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이고 그 외에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아담 하와가 낳은 것은 두 사람뿐 아니고 그 다음에 또 셋을 낳아 대를 이은 것은 택한 자를 낳아 가지고서 아담의 자손이라고, 그 외에 많은 자손들은 아담의 자손이라고 하지 안했습니다. 택한 자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래서, 두번째 안식에 들어가는 이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그 두번째 들어가는 안식에 아벨 같은 사람은 들어갔는데 모든 사람들은 이 안식에 다대수가 들어가지 못하고 다 실패했다 그랬습니다. 왜 실패를 했느냐? 순종치 아니함으로 실패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순종치 아니함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자꾸 우리가 성경을 해석해 나오기를, 오늘까지 신학자들이 성경 해석해 나오기를 속에 알맹이는 그만 이거는 무시하고 자꾸 껍데기 하나의 자꾸 보이는 것만 치중해 가지고서 기독교에서도 보이는 데로만 치중해 가지고 일종 과학자와 같이 이렇게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중하게 여기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날 일하는 사람은 죽였다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는 그것은 일하지 않는 그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그 목적이 아니고, 안식일은 그 날에 자기가 어떤 죄와 허물이 있고 어떤 불목이 있고, 하나님과나 사람과나 불목이 있고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못한 것이 있을지라도 짐승의 피를 가지고서 자기는 완전히 속죄제 속건제로써 자기가 아는 대로의 죄가 하나도 없고 또 불목한 일이 하나도 없고 또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일이 하나도 없는, 자기가 볼 때에 자기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서 아무 흠점이 없는 그 사람으로 사는 그 일을 하는 그 지혜와 믿음과 능력을 받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날 그걸 받아 가지고 다 이렇게 깨끗하게 준비해 가지고서 가는 날인데 이 안식일을, 다시 말하면 죄의 문제, 의의 문제, 하나님과 이 화친되는 문제 이 세 가지 문제를 안식일날 은혜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 살면서 이 세 가지를 지키고 세 가지를 범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이 일 하기 위해서 여게 대한 은혜를 받는 날로 안식일을 정해 줬는데 사람들은 이 은혜 받기 위해서 세상에 이런 일 아무것도, 이 일 외에는, 이 안식에 들어가는 사죄, 칭의, 화친, “죄, 하나님 법을 지키는 의,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되는 이 세 가지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이 세 가지에만 전적 기울이라.” 하는데 이 세 가지에 전적 기울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어두워졌고 보이는 이 육체의 일을 하지 말라는 그것만 강조해 가지고서 사람들이 외식하는 일이 되어져서 힘을 쓰지 안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절단났습니다.

그러나, 구약에 있는 그 아벨도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고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제사를 믿고 의지하고 제사대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은 모세라든지 뭐 엘리야라든지 다니엘이라든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든지 아브라함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대로 털끝만한 죄도, 하나님의 법칙에 어기는 일도 그런 일도 안 하고 힘써 이 일을 해 가지고서 자기 안식에 다 들어갔었습니다.

이랬는데,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둘째로 준 안식일로써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씀했는데, 순종치 안했다는 요 말에 대해서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됩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안식일날은 밥도 하지 안하고 안식일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안합니다. 안식일날은 심지어 짐승의 사료도 주지 않습니다. 만일 닭 모이 줬다가 그 모이가 어데 빠져 가지고 싹이 나면은 이는 종자 뿌린 날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가 되니까 멸망한다고 그렇게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또 그들이 계명에 따른 것을 다 지켰고 사사로운 말 하나도 안 했고 또 자기 오락도 취하지 안했고,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 복된 날이라, 권능받는 날이라, 한없이 영광스러운 날이라 이렇게, 이 날에 이 받은 것은 이것을 만들어서 영광의 세계를 능히 통과할 수 있는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인 것을 알고 안식일을 지킨 사람들은 다 들어갔는데 외식으로서 일 안 하는 것만이 안식일 지키는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다 실패를 했습니다.

이랬는데, 세번째 이 안식일 주신 것이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세번째는, 예약적으로 했던 그 대속을 예수님이 실질적으로 와 가지고서 당신이 대속 제물이 되셨고, 또 당신이 대제사장이 되셨고, 당신이 친히 선지자가 되셨고, 당신이 또 만왕의 왕이 돼 가지고서 우리를 대속하시는 그 일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을 했습니다.

세 가지, 죄에 대한 것을 해결해 주시고 의에 대한 것을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친된 것을 해결해 주신 이 세 가지를 주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당해서 우리가 순종하는 일은, 일하지 않는 그것은, 일하지 않는 그것은 사람들에게, 너무 속화됐기 때문에그거 하지 말고 이거 해라 하기 위해서 그거 하지 말라는 것 한 것이지 이거 하는 사람은 그거 하지 말라 소리 안 해도 그거 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여게 주일날 이제 이 세 가지와 두 가지, 다섯 가지를 마련하는데 언제 거기 갈 여가가 어데 있습니까? 이 세 가지에, 사죄는 어떤 게 사죄냐? 예수님이 자기가 범죄함을 인해서 대신 형벌받아 죽으심으로, 죽으심은 나를 대신해 죽으셨기 때문에 죽으신 그 대형은 내 대형이 됐고 그 사죄는 내 사죄가 됐고 주님이 죽으심은 내가 범죄하는 이 범죄자를 대신 죽었기 때문에 범죄자는 죽은 것입니다. 범죄자가, 주님이 죽으셨는데 범죄자가 죽었으니 범죄자가 죽은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내 심신을 범죄케 하던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일날 노력하는 것은 뭐이냐? 예수님이 내 죄 대신해 형벌받아서 이제 죄 없이 됐으니 예수님이 형벌받은 것은 내 대신 형벌받아 죄 없이 하셨으니, 예수님이 대신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심은 나 대신 죽으심이요 예수님이 죄 없이 하신 것은 내 대신 하셨기 때문에 그 사죄는 내것이라.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나를 범죄케 하던 악령과 악성과 악습은 죽은 것으로서 우리가 간주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내 속에 악령 악성 악습은 내게 죽었으니 다시는 그것이 내게 용납되지 못하도록,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을 우리가 받는 것이요 예수님의 사죄는 내것인 것을 믿는 능력을 받는 것이요, 이러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형으로 사죄는 내것 됐으니까 내게 있는 범죄케 하는 옛사람은 죽어졌고 남아 있는 내 영육은, 영육은 죽는 거 아닙니다. 내 영육은, 살아 있는 영육은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샀기 때문에 이거는 주님의 것이라.

그러면, 내게 옛사람은 죽어지고 내 영육은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님의 것이라. 그러면 주님의 대속의 사죄는 내것이라. 사죄는 내것이기 때문에, 사죄는 내것이요 또 나를 범죄케 하던 것은 죽었고 또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대속했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것이 됐고, 그러면 그 결론으로 말하면, 내게 있는 옛사람은 죽었고, 예수님의 대형으로 사죄는 내것 됐고, 사죄는 내것 됐는데 이 사죄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 이 사죄는 영과 육으로 된 내가 이 사죄를 가져 이 사죄는 영육인 나의 것이 되어졌고, 이 사죄를 가진 나는 사죄를 내가 가졌기 때문에 영육으로 사죄가 된 나는 주님의 것이 된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는 요것이 이제 주일날 우리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네 가지입니다.

그러고 또, 주님이 내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완수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율법을 이행함으로 끝마쳤습니다. 끝마쳤기 때문에 예수님이 율법 완전 이행은 내 대신 했기 때문에 그 완전 이행은 내것이 되었고, 내것이 되었고, 나 대신 주님이 완전 이행으로 끝을 마쳤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대행으로 의를 가진 영육인 나는, 영육인 나는 대신 순종해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것이 된 이것을 내가 알고 확실히 믿는 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요것이 주일날 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내인데 예수님께서 원수된 나를 대신해서 원수된 자가 죽었기 때문에, 내가 원수된 내 대신해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주님의 죽으심은 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 됐습니다. 내 가 죽었다 말은 내가 내 영육이 죽었다는 말 아니오. 내게 있는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 그놈이 죽었습니다. 내게는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 악령 악성 악습으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 그 옛사람이 죽은 요 사실을 확실히 믿고 인정하고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나는, 하나님과 원수된 나는 죽었고, 예수님이 화친을 이룬 그 화친은 내것 됐고, 그 화친을 가진 영육인 나는, 요거 잘 모르면 안 됩니다. 화친을 가진 영육인 나는, 화친을 가진 영육인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된 요것을 우리가 믿고 확정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을 입은 것은 우리에게 옛사람은 세 번에서 죽고, 사죄에서 죽고 칭의에서 죽고 화친에서 죽어 버렸고 우리의 그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에 우리의 영육이 죽습니까? 영육은 죽지 않습니다. 영육은 죽지 안했습니다. 영육은 죽지 안하고 영육은 예수님의 값으로 산 주님의 것이 됩니다.

이제는 주님의 것으로 살아 있지 죽는 것 아닙니다. 죽는 거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이 교리가 지금 아주 흐미하고 밝혀져 있지를 안하는 통에 마귀란 놈은 많은 장난을 하고 사람들을 해치는 그런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 주일날 하는 것은 ‘나는 사죄를 나는 가진 자다. 나는 죄에 대해서,’ 사죄라 말은 누가 사죄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는 죄가 없다 인정받은 것을 가리켜서 사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인정받은 사죄,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했기 때문에 이는 완전 의라, 공심판에서 인정받은 것을 가리켜서 칭의라 이렇게 하고, 이는 하나님과 완전 화친이다, 더 결합이 없는 완전 화친이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인정하는, 하나님의 전지의 심판에서 완전이라, 세 가지 인정하는 이 인정을 공심판에 인정받은 것을 가리켜서 사죄라 칭의라 화친이라 이 세 가지 공심판에 인정받은 것을 가리켜서 사죄라 칭의라 화친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 이것은 예수님이 대신 했기 때문에, 나를 대신했기 때문에 내것이 되어졌습니다. 내것이 되어지는 동시에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것이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가 ‘나는 죄의 형 다 받았기 때문에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나는 하나님 법을 완전히 이행한 사람이라. 나는 하나님과 완전한 친밀을 가진 사람이라.’ 이 세 가지 대속을 가지고 있는 자기인 것을 믿을 때에 이 세 가지 대속은 자기에게 와 가지고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이걸 잊어버릴 때에 이 믿음은 깨져 버리기 때문에 역사할 수가 없고 이 사실을 인정치 안하고 의심할 때에 이 능력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과학으로는 절대 안 되는 것이, 과학과 기독교는 적입니다. 알겠습니까? 왜 적이냐? 과학은 보이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걸 위주로 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확고한, 보이지 안하나 보이는 거 모든 것보다도 크신 하나님을 위주로 상대로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하는데 이런 것들은 피조물 중에 보이는 걸 상대하니까 보이는 것만 인정하지 보이지 않는 건 다 부인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이는 모든 걸 엿새 동안에 지었고 그보다 더 크신 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과학은 거리가 멉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자가 기독자로서의 과학자가 되면 그는 참 독실한 신앙과 더우기 그 신앙이 정확한 그런 신앙을 가지지마는 과학자가 과학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과학을 믿으나 과학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과학만 믿으면 그는 껍데기요 죽은 자입니다.

과학을 믿을 때에, 그가 어떤 무슨 세균 학자로서 바이러스 세균을 믿을 때에 ‘이 바이러스 세균 이것이 하나님이 지으셨고 일 초 동안에 이렇게 많은 번식이 돼 가는 것이 이분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이 이 모든 걸 지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이것을 확 펴쳐 버리면 인류를 이거 바이러스균 가지고도 일시에 다 죽일 수가 있는 그분이 계신다. 그분이 모든 걸 조절하시고 그분이 창조하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거는 운영되고 있다.’ 하는 이 사실을 믿는 과학자라면 그 과학자가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마는 그걸 부인하고 보이는 것만 위주한다면 그 사람 과학자는 신앙 생활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건 신비한 것입니다. 믿음의 신비성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보십시오. 나면서 눈먼 자에게 ‘나를 눈을 띄워 주옵소서’ 할 때에 ‘네가 믿으면 네 눈을 뜨리라' 이렇게 할 때에 그가,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믿으면 눈을 뜨리라' 믿으면 눈을 뜨리라 할 때에 ‘믿습니다’ 하니까 눈이 뻐뜩 뜨여 버렸습니다. 그렇지 안했습니까? 또 ‘나를 물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할 때에 `걸어오라' 하니까 주님의 말씀과 주님을 믿고, 주님과 주님 말씀을 믿고 걸어가니까 물위에 떠뻑떠뻑 걸어갔는데 가다가 풍랑 보고 의심하니까 푹 빠져 버렸습니다.

뭐 아무 다른 과학적 작용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기 과학의 작용이 있습니까? 과학의 뭐 전자현미경 아니라 전자현미경의 천 배 되는 전자현미경으로도 아무 보이는 거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 다만 그거 믿고 안 믿은 것뿐입니다.

믿으니까 갔는데 안 믿으니까 빠졌는데 빠지고 난 다음에 왜 빠진 그 이유를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왜 의심하느냐?’ 이랬습니다. `왜 믿지 안 했느냐? 네 믿음이 적으냐?’ 고게서 요만치 걸어올 때는 믿었지마는 여게 와서 믿음이 끊어졌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가지를 못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주일날, ‘주님이 나에게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친으로써 결합의 생명 이 세 가지를 주셨으니 나는 영생으로 살았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모든 하나님의 입법을 완전 이행했다, 나는 죄가 털끝만큼도 없다,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됐다.’ 요것을 믿을 때에, 믿을 때 요 세 가지 능력은 그의 것이 되고 그를 변호합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 가도 그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공심판에 가도 변호할 것이고 어데 가든지 죄에 대해서 이 사죄가 보증하고, 하나님의 입법에 대해서 이 칭의가 보증하고, 하나님과 관계에 이 화친이 보증을 합니다. 믿을 때에 보증하니 이 보증하는 것을 어떤 피조물도 다 모두, 가감하거나 침해하지 못하지마는, 아무것도 없는데 믿을 때에 되어지고 의심할 때에 아무 상관없게 됩니다. 의심할 때 아무 상관없게 돼. 이것을 우리가 이 주일날 받는 것입니다. 믿어지는 믿음을 받는 것이오. 믿어지는 믿음을 받는 것이오.

이래 가지고서, 나는 세 가지 대속을 받은 자기라는 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받고, 세 가지 대속을 가진 자기라는 것을 확고히 자기가 믿고 인정하는 이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정하면 인정하는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무한한 능력은 자기에게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대속을 입었습니다. 안 입은 게 아니고 이 대속을 입었는데 우리들이 벗습니다. 입었는데 뭘로 벗느냐? 의심으로 벗습니다. 입었는데 우리가 왜 이 대속을 버리고 곤고하게 가련하게 죄에 대한 벌을 받느냐? 왜 죄에 대해서 저주나 멸망이나 이런 걸 받게 되느냐? 죄에 대한 그 죄의 값을 우리가 받게 되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가 정죄를 받게 되고 하나님과 불목해서 마귀란 놈이 우리를 침노하는 일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 믿음이 끊어진 소행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갈라다아서에 보면, 믿지 아니할 때에 그와같이 된다는 것을 갈라디아서에 전부로, 갈라디아서가 믿음에 대해서 설명을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는 일을 해서, 자기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기인 것을 믿어야 됩니다. 대속을 입은 자기인 것을 믿고, 자기는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이기 때문에 마귀고 뭐이고 어떤 죄악이라도 내게는 상관하지 못합니다. 내게 대해서 해를 주지 못합니다. 나를 붙들지 못합니다. 또 어떤 율법이라도 나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나와 화친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를 끊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 사실을 내가 믿지 안할 때에 끊겨집니다. 알겠습니까? 믿지 안할 때에 끊겨지는 거 하나 있고, 예수님이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 새생명 줬다 말은 새 능력 줬다 말인데 새 능력 줘서 영생하게 됐는데 새 능력은 무슨 능력이냐? 그것은 영감과 진리의 능력입니다. 영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 뜻은 전능 전지의 뜻인데 영감은 전지 전능이요 영감의 능력을 우리가 가졌습니다. 우리가 중생됐기 때문에 영감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내주하고 있습니다. 또 진리의 능력이 내주해 있습니다.

이러나, 우리가 믿지 아니할 때에 마귀는 와서 우리를 장난치고 우리는 약해집니다. 믿지 안할 때에 능력은 떠나 버립니다. 믿지 안할 때에, 세 가지 대속을 믿지 안할 때에 떠나 버리고 또 세 가지 대속을 믿고 있는 자가 이 두 가지 능력을 믿지 안할 때에 또 떠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능력을 믿지 안할 때 떠납니다.

그러면, 세 가지 믿으나 두 가지 안 믿을 때에 이 능력이 떠나고 다섯 가지를 다 믿을 때에 이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능력이 와 있습니다. 다섯 가지 능력이 와 있는데 능력이 와 있는 이대로 만일 승리해서 이대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그는 하늘나라에 완전 승리자로 가게 됩니다. 완전 승리자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능력을 제가 믿고 있는 자가 현실에 있어서 두 가지, 두 가지 능력을 부인하든지, 영감과 진리의 능력을 부인하든지, 배반하든지, 영감과 진리의 능력을 배반하든지 그리 안 하면 세 가지 이 대속의 능력을 부인하든지, 세 가지 대속의 능력을 부인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두 가지 영감과 진리의 능력을 배반하게 되고 세 가지를 자기가 확실히 믿을 때에 두 가지 이 영감과 진리의 이 능력은 자기가 가지고 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일날은 이 다섯 가지 예수님의 사활로 이루어진 이 주일입니다. 주일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만 가지고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부활하심으로만 가지고 이루지 안하고 죽으시고 살으신 이 사활의 대속으로 이차 안식 준비일이 됐습니다.

이차 안식 준비일이 됐는데, 다시 안식일이라고 할 건데 안식일이라고 하지 안하고 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은 안식에 들어가는 그 방편을 말한 것이고 주일이라 하는 것은 사활의 실상을 주일날 우리에게 주시는 이것을 말했기 때문에 주일날로 표현했습니다.

주일날은 이 다섯 가지 대속의 실상을 우리가 받는 날이니 이 날에 우리가 받는 것은 다른 돈도 들지 안하고 믿으면 받습니다, 믿으면. 이 대속이 내것이라고 믿는 것은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또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주님의 것으로 믿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인 것을 믿고, 주님의 대속이 내것된 내 생활은 영감과 진리대로의 생활인 것을 알고 진리와 영감대로의 살 때에 이는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주일날 힘쓰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라는 것은 믿으면 무한한 능력이 오는데 의심하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릴라고 하실 때에 마르다가, 마르다가 그 책임자 아닙니까? 마르다가 책임자인데 ‘돌을 옮겨 놓으라’ 하는 것이 마르다가 할 일인데 ‘선생님, 죽은 지가 나흘이니까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 옮겨 놓으면 뭐합니까?’ 마르다가 옮겨 놓지 안하면은 예수님은 나사로 못 살립니다. 살릴 권리가 없어. 못 살립니다. 왜? 마르다의 믿음을 가지고 이제, 마르다가 그 당사자이기 때문에 마르다의 믿음을 가지고서 살려야 되는데 마르다가 믿지 안하니까 일을 못 한다 말이오.

못 하니까 주님이 마르다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안할 것을 내가 믿느냐?’ ‘녜, 믿습니다. 믿는데, 그것은 주님의 재림하실 때 그렇게 될 것인 것을 믿습니다.’ 또 삐뚤어졌다 말이오. 삐뚤어지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또 말씀했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지 안했느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네가 왜 믿지 않느냐?’ 할 때에 마르다가 회개를 하고 ‘주여 믿사옵나이다.’ 하고서 돌을 옮겨놨습니다.

돌을 옮겨 놨을 때에 주님이 나사로를 불러서 살렸습니다. 그거는 당사자인 마르다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살릴 것을 이제 회개하고 믿을 때에 그 생명이 와 가지고 나사로를 살렸지 마르다가 믿지 안하면 예수님은 그 일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다, 하나님의 영원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대주재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며 모든 전지 전능자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크고 작은 모든 것에 개별 개별 개미 한 마리의 수염 흔드는 것도 다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주권 섭리 통치의 주님이신 것을 믿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믿는 능력이 역사하게 됩니다.

이런데, 이 모든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의 이 주권을 믿는 것이 정통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구원에 대해서만 주권을 가졌다’ 이 제한적 주권으로 믿습니다. 또, ‘구원 중에도 원줄기만 그렇지 자잔한 그런 것은 주권에 매이지 안했다’ 이렇게 또 믿습니다. 저는 개미 한 마리 수염을 요래 돌리고 요래 돌리는 것까지 하나님이 다 주권적으로 섭리하신다, 이 개미 수염을 주권하시지 안한다면 하나님의 주권은 반쪼가리 주권이지 완전 주권이 아니다 하는 것을 저는 믿어서, 믿는 대로 됩니다. 왜? 성경에 없는 것은 믿으면 안 되지만 성경에 있는 것은 믿으면 자기 것 되고 믿지 않으면 다 헛일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믿으면 무한한 능력이 오요. 믿으면 물위로 육지같이 걸어갔는데 안 믿으니까 안 됩니다. 믿으니까 홍해 바다는 갈라졌어. 히브리 11장을 보십시오. “믿으니까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 믿으니까 요단강이 갈라졌다, 믿으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 믿으니까 백 세에 할망탕구 영감탕구 이제 늙어서 쪼글어진 거게서, 평생 생산하지 못했는데 거게서 이삭이 나왔다, 이제, 믿으니까 됐다.” 히브리 11장에 보면 전부 믿음이다. 믿으니까, 믿으니까 전쟁에 능력도 돼서 승리도 하고, 믿으니까 죽은 자의 부활도 됐고, 믿으니까 사자의 입을 막고, 믿으니까 불기세도 멸하고, 믿으니 그리 됐습니다.

그래, 우리가 지금 오늘 주일날,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두 가지 부활로써 이루어진 사활의 대속 이 다섯 가지를 믿을 때에 우리는 능력이 있고 믿을 때에 이 믿음을 버리고 의심하면 다 헛일해.

믿을 때에 믿고 난 다음에 나는 살았어. 믿었으면 믿고 난 다음에 버리지만 마십시오. 믿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할 일은 계속 믿고 있을 것과 자기 현실에서 영감과 진리대로 살면 됩니다. 딴거 없습니다. 하루 몇 번이라도 다시 일어서고 일어서서 여게 입각해 사는 것이 요것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유일한 방편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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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 주일학교/ 야고보서 5장 16절-18절/ 1987. 11. 1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469 주일-참 자기를 찾을 것/ 이사야 58장 13절-14절/ 1979. 12. 16.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468 주일준비와 받을 은혜/ 사도행전 2장 1절-4절/ 1987. 6. 14.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467 주일의 은혜/ 요한계시록 1장 9절-20절/ 1983. 11. 6.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466 주일의 은혜/ 요한계시록 1장 9절-12절/ 1983. 11. 6.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465 주일의 유래,은혜,준비/ 히브리서 4장 4절-11절/ 1983. 11. 9.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464 주일의 법칙/ 시편 23장 1절-6절/ 1984. 6. 4.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463 주일에 부활받아/ 베드로전서 1장 3절-12절/ 1981. 10. 11.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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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주일심방/ 요한복음 14장 12절-15절/ 1984. 2. 12.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460 주일성수 7가지, 4계명/ 출애굽기 34장 27절-34절/ 1983. 4.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459 주일성수/ 요한일서 5장 8절-9절/ 1985. 5. 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458 주일날의 은혜/ 요한계시록 1장 10절-16절/ 1985. 5. 12.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457 주일날의 유래와 법칙/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1986. 10. 1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456 주일날/ 마태복음 28장 1절-7절/ 1988. 08. 21.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455 주일날 은혜와 축복/ 히브리서 4장 4절-11절 상반절 / 1982. 6. 13.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 주일날 은혜-믿음의 신비성/ 창세기 2장 1절-3절/ 1986. 10. 26.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453 주일날 은혜/ 히브리서 4장 1절-13절/ 1986. 10. 26.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452 주일날 은혜/ 마태복음 7장 24절-27절/ 1986. 5. 2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