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1987. 11. 11. 밤 (수)

 

본문:에베소서 1장 3절∼14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음 주일 공과로 가르칠 것입니다. 제목은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요절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브리 2장 3절.

여게 구원의 지극히 큰 것 열 가지를 기록했는데 이 구원을 우리가 그저 입으로만 읽고 스스로 속는 자 되지 말고 깊이 깊이 새겨서 확신하는 데 거해야 됩니다. 믿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8장 13절 이하에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이 중풍병이 들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백부장에게 말하기를 “네가 어떻게 믿든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네가 어떻게 믿었든지 믿은 그 표가 곧 믿은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는 그 즉시로 백부장이 믿을 때에 그 중풍병자가 즉시 나았습니다.

또 요한복음 11장에도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데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 하니까 ‘죽은 지가 나흘이라 벌써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놔 봤자 뭐 소용이 있습니까?’ 할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말이 네가 믿으라 하지 않느냐?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을 네가 볼 수 있으리라.” 할 때에 마르다가 믿으니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또 마가복음 9장 23절에도 보면 ‘어떻게 주님이 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할 때에 “네가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8장 8절 이하에는 보면 이렇게 하나님은 신실한 약속을 하셨지마는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면서 탄식을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이하에는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누구든지 믿으면 그대로 다 구원되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약은 누구든지 믿으면 믿은 그대로 됩니다. 암만 자기가 알고 인정한다고 해도 그 믿음에 하나가 빠지면 헛일입니다.

이 기록된 대로 자기가 알고 요대로 하면 된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할 때에 온전한 믿음이 되어서 모든 계약대로 하나님은 이루어 주실 수가 있고 우리는 계약대로 이루어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예수교는 참 능치 못함이 없는 지극히 크신 능력이 내재해 있고 또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 이렇게 계약을 해 놓은 것인데 악령의 유혹으로 인해서 말로는 아는 척하고 지식하고 또 그리 된다고 인정은 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나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주 희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외모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외모대로 그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여 대우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평가하고 대우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말은 외모는 무엇을 가리킨 건고 하니 이 세상 그 사람의 형편 사정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외모라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무슨, 재벌이 많다든지, 권세가 많다든지, 지위가 높다든지, 또 모든 세상 지식으로 유식하다든지, 모든 기능이 다 어떻게 되든지, 또 그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서 비참하고 가련하든지 이 세상 형편대로 무궁세계에서는 하나님이 대우하고 가치를 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놓으셨는데 이 말씀을 그 사람이 어떻게 인정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그것 가지고서 다 인정합니다.

이러니까 참 놀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사람 중에 제일 천한 사람으로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틀림 없이 이대로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자기는 행동이 이루어지는 사람,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자기는 요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하니까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어리석다 미련타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무궁세계에서 제일 존대함을 받게 됩니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믿음을 빼 놓으면 전부는 거짓말 됩니다. 왜? 안 믿으면 하나도 안 이루어지니까 다 사람들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정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과연 하나님의 선포한 계약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점점 믿게 됩니다.

기독자는 누구든지 성경을 암만 읽고 암만 듣고 배워도 자기가 이대로 실행을 해 보지 안한 사람은 항상 의문 중에 있고 의심합니다. 그러기에 참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지만 이 구원이 사실인 것을 그 사람이 믿을 때에 그 사람은 온 천하를 준다 해도 그런 것을 자기가 가치로 삼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평강과 행복을 아무도 조금도 침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계약의 말씀을 믿지 않는 기독자는 항상 고통입니다. 왜 고통이 되는고 하니 저도 모르게 속에, 영을 죽음에서 살려냈기 때문에 영이 중생됐습니다. 영이 중생됐으니까 중생된 영은 하나님과 이 진리로 인해서만 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또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의 말씀을 다 믿습니다.

중생된 영은 다 믿으니까 이 말씀에 가치를 두고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이 말씀대로 소욕하고 소원하고 있는데 이 심신의 고기덩어리 이것 육덩이,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육이 들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니까 속에 주인 주격이 되는 영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준비를 잘해 가지고 무궁세계를 맞이해야 되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무궁을 준비하고 싶은 그 간절함이 속에 불붙어 있지 겉사람 이 심신 이 육덩이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안하고 마귀가 죽이려고 꼬와서 이렇게 가르치는 마귀의 이 거짓말과 모두 다 속여서 죽이려고 하는 이 말만 자꾸 옳게 듣고 가니까 이 육과 영이 둘이 합작이 안 되기 때문에 고통입니다.

누구든지 중생된 사람이라면, 중생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켜 살 때에는 영과 육이 하나가 돼 가지고 살기 때문에 단합이 돼서 하나가 돼 사니까 아무 서로 자기 속에 대립됨이 없으니까 아무런 그 마찰이 없습니다. 자기 속에 자기와 자기와의 마찰이 없고 하나되니까 한없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영과 육이 하나가 되는 때는 하나님의 지식인 이 말씀대로 소원하고,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고 살 때에 영과 이 육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한없는 소망과 기쁨과 배경에 든든한 용기를 가지고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고기덩어리 이 심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안하고 마귀 지식, 이 세상 마귀가 주는 배암의 지식 이 거짓말, 전부 죽이는 말이요 속이는 말이요 다 망하게 하는 이 말인데 이 말을 이 심신이 듣고, 심신이라면 육입니다. 육을 가리켜서 심신이라 하는데 이것도 이 밖에 나가면 영은 마음이고 고기덩어리는 육이고, 영육을 마음과 고기덩어리로 이렇게 둘로 봐 가지고 영은 완전히 알지도 못하고 파묻어 죽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은 뭐, 여기서 배워도 지금 내가 죽든지 만일 이 세상에 나가면은 ‘마음이 영이지 영이 마음이지 영이 어데 따로 있느냐?’ 이래 가지고서 여러분들의 구원을 내흔들 때 그때 흔들리지 안해야 여러분들이 승리를 하고 영광의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이래서, 육은 육대로 마귀 지식을 따라서, 마귀 지식을 인정하면 하나님의 지식은 부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면 마귀의 지식은 부인되는 것이 많습니다. 마귀 지식은 반거짓말이기 때문에 맞은 것도 있고 또 틀린 것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마귀 지식을 따라서 살면 영과 대립이 되기 때문에 영이 죽을 지경이고 또 영을 따라서 살 때에는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이 그래 사니까 제 취미가 없거든. 원죄가 취미 없고 본죄가 취미 없으니까 성화되지 아니한 옛사람으로 되어 있는 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완전히 변질된 그 심신은 죽을 지경입니다.

영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 하니까 이 심신은 죽을 지경이라.

왜? 심신이 전부 자기 중심 자기 중심의 행위, 원죄와 본죄로 이렇게 사는 것이 이 심신의 타락한 것이요 부패한 것인데 이 심신을 중생된 영이 영감과 주님의 피공로대로 살려고 하니까 이 심신은 죽을 지경입니다. 왜? 그래 살면, 그렇게 살면, 심신을 주관하는 원죄가 죽어버리고 본죄가 죽어버리고 악령이 쫓겨나가고 이러기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이러다가 어째 죽고 나서 이 심신이 살아나고 나면 한없이 기쁜 것입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여러가지 시험을 만날 때에 근심하지 안할 수 없었으나 오히려 뒤에는 크게 기뻐하도다” 그렇게 말씀한 것은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영 주장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여러가지 애로가 옵니다.

여러가지 애로가 오는데, 애로는 무슨 애로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애로가 옵니다.

방해하는 애로가 오니까  방해하는 애로가 올 때에 아직까지 성화되지 못한 이 심신은 세상대로 살려고 하고 또 중생된 영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둘이 들어 시비를 합니다.

시비를 하는데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잠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했는데 그 근심하는 것은 누가 근심합니까? 그 근심하는 것은 중생된 영이 근심을 합니까 근심하는 것은 아직까지 성화되지 못한 이 심신이 근심을 합니까 누가 근심을 합니까? 성화되지 못한 심신이 근심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다 못 드네요. 다 들어. 심신 그놈이 근심해요. 제 소원대로 살지 못하니까. 제 소원대로 살면 죽어.

그럴 때에 중생된 영은 그 어려움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중생된 영은 기뻐하고 애타 합니다.

왜? 기뻐하는 것은 저와 꼭 같은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오니, 어려움이 오니 어려움이 와 봤자 중생된 영은 그까짓 거 문제 없기 때문에 기쁘고 즐거운데 왜 심히 근심하느냐? 고기덩어리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덩이 이것이 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싹 밀고 나가 버리면, 밀고 나가면 어두움 그놈이 확 무너져 버리고, 악령 그놈이 쫓겨나가 버리고, 원죄와 본죄가 바싹 깨져버리면 그만 이 심신이 거룩한 영생하는 심신으로 성화되니까 그리고 난 다음에 이 심신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밀고 나갈 때까지는 죽을 지경입니다. 알겠습니까?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어려움이 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어려움이 옵니다. 어려움은 누가 주는고 하니 악령과 세상이 줍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줍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요 도리를 밝히 깨달아서,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오는 요것은 왜 어려움이 오느냐? 마귀 이놈이 이렇게 살지 못하도록 어려움이 오니까, 어려움이 오는데 마귀가 살지 못하도록 어렵게 하는 요대로 따라서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때에 심신은 영원한 멸망을 받고, 심신의 기능은 영원히 멸망을 받고, 그럴 때에 말씀대로 그대로 실행해서 나가게 되면 중생된 영은 잃어버렸던 자기 심신을 도로 찾게 되니까 기쁘고 즐겁고, 찾다니? 어데서 찾습니까? 악령 악성 악습 옛사람 그놈에게서 도로 탈환합니다. 도로 뺏아서 도로 찾습니다. 이러니까 기쁘고 즐겁고, 그러면 그때에 말씀대로 살고 난 다음에 이 심신은 어찌 됩니까? 심신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고통을 합니까? 심신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고통을 합니까? 저 ○선생? 모르겠어? 그러면 그때에 말씀대로 살아서 현실을 통과하고 나면 중생된 영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옛사람 악령 악성에게 뺏겼던 자기 심신을 다시 도로 뺏어서 차지했으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또 그렇게 승리하고 난 다음에 심신은 어떻습니까? 심신은 슬퍼합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어짭니까? 심신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마귀, 악령 악성 악습에게 끌려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게 저인 줄 알고 자기인 줄 알고 이랬는데 그놈이 쫓겨나가고 보니까 정말로 중생된 영이 자기의 주격이요 자기 심신은 살아났기 때문에, 멸망에서 구출해 살아났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니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항상 기쁘고 즐겁고,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담대하고 세상을 발 아래 밟을 만한 용기가 속에 불이 붙고, 이럴 때가 예수 믿는 정상의 사람입니다.

이럴 때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된 때입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된 때입니까? 영과 육이 하나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영육이 하나된 때입니다. 영육이 하나된 때요.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요럴 때만 기쁘고 즐겁습니다. 아무 근심 걱정도 없고 염려도 없고 태산같은 일이 있어도 그까짓 것 문제도 없고, 마구 공산주의자들이 너는 죽인다고 사형 선고를 암만 외쳐도 그까짓 것 상관 없고 기쁘고 즐겁고, 일본 나라가 그러면 죽인다고 가족이고 뭐고 다 전멸시킨다고 해도 기쁘고 즐겁고.

그 사람의 기쁨과 즐거움과 담력과 평강을 어떤 피조물도 해할 수 없는 그런 때는 어떤 때냐? 그때는 중생된 영과 심신으로 된 육과 둘이 합작돼서 하나가 된 때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가 된 때. 요때가 제일 행복입니다. 하나가 된 때입니다.

기독자가 자기가 오늘은 지금 내가 뭐 무슨 사업에서, 무슨 계획에서, 무슨 목적에서, 소원에서, 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또 가정적으로 뭐 경제적으로 사업적으로 모든 면에 모든 일이 형통해졌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됐습니다. 아주 생각에 넘치게 모든 일이 형통하고 잘 됐습니다. 아주 모든 게 잘 됐습니다. 잘 됐으니까 그 사람이 기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잘 됐으니까 기쁩니다.

기쁜데, 기쁜데 그 깊은 속에는 뭣인가 기쁘지 안하고 께꾸름하게 이래 가지고서 무엇인가 도무지 쾌함이 없고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고통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신앙 어린 사람은 모릅니다. 모르고 ‘왜 내가 오늘 이것도 잘되고 저것도 잘되고 오늘 뭐 춤을 추고 기뻐하고 즐거울 건데 즐거울 수밖에 없는데 암만 웃어봐도 껍데기 웃음이지 속에는 기쁘지 안하고 속에는 평안치 안하고 속에는 만족이 되지 안하고 왜 이럴까? 왜 이럴까?’ 그걸 못 찾는 어린 신앙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왜 그러냐? 참 자기인 중생된 영과 고기덩어리와 둘이 분리돼 가지고서 중생된 영을 밟아 처넣고 심신으로 된 육덩이 이놈이 제 소원대로 소욕대로 이와같이 행동하고 나니까 영이 속에서 기가 막힙니다. 이 심신이 저 좋은 대로 했지만 그 현실에서 산 심신은 완전히 영원히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기능은 멸망받았기 때문에 영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고통스러워서.

그러나 심신 이놈은 그 모르니까 기쁘지만 속에 주인공인 영이 지금 기뻐하지 안하고서 자꾸 속에서 근심하고 있으니까 영이 탄식하고 영이 근심하고 영이 지금 너는 죽었다고 지금 이렇게 영이 울고 있는 것을 이 심신 육덩이가 모르니까 기쁘고 즐겁지만 속에 영이 불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이 기뻐질 수 없으니 자기도 모르게 ‘왜 이리 근심이 되고 걱정이 되고 이것 불쾌한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모든 게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 됐는데 속에는 불쾌해 못 견디는 것은 영과 육이 둘이 합작되지 안하고 서로 대립이 되어서 영이 탄식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럴 때에 신앙에 경험 있는 사람은 ‘내가 이것을 암만 이 일을 해도 내가 이것이 마귀 시키는 대로 하나님을 거역해서 이렇게 했으니까 속사람 중생된 영이 고통하는 것이니까 내가 안 됐다, 이걸 게워 내놔야 되겠다, 게워 내놔야 되겠다.’ 왝! 게워 냅니다. 왝! 게워 버립니다. ‘어라, 내 취직한 것 치워버린다. 취직 그것 취직을 나는 그것 취직 안 하겠습니다.’ 게워 내 버립니다.

또 실컷 죄 지어 가지고서  뭐 합작을 해 가지고서 모든 사업 경영을 해 놓은 것도 그만 가 가지고서 ‘아이구, 나는 안 되겠습니다. 안 되겠습니다. 이것 못 하겠습니다. 할 수 없어 포기합니다.’ ‘너 그러면 계약금 걸었지?' 아이구 계약금 물겠습니다.’ 계약금 물어도 포기합니다.

이래 가지고서 삼켰던 독약을, 죄를 지어 하나님 말씀을 어겨 삼켰던 지위 권세 명예 취직 성공 재물 사업 확 게워내고 나면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때 이제 영육이 합하니까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자기가 기도하고 이렇게 하면 ‘주님이 나에게 큰 구속 줬으니까 이것 없어도 좋고 주셔도 좋고, 주님이 주시려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고 얼마든지 높이려면 높일 수 있으니까 주님이 주시는 것이면 돈도 좋고 지위도 좋고 권세도 좋고 가난도 좋고 죽음도 좋다. 주님밖에 나 사랑하는 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전지자인데 그분이 내게 주시는 것만이 좋지 다른 것들이 하나님 말씀 어겨서 나를 주는 것은 다 나 망치는 일이다.’ 요걸 깨달으니까 기쁘고 즐겁습니다, 또. 그리고 난 다음에 믿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 배 백 배를 또 줍니다.

주니까 받고 난 다음에 ‘기이하다. 참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구나.’ 자꾸 경험하고 체험하고 해 가지고서 신앙 생활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걸 다 말하지 못하지마는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기독자가 영육이 일치 될 때에는 가장 행복스러운 사람이요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스럽고 능력 있는 사람이요 기쁜 사람이요 담대한 사람이요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엇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겠느냐?” 그런 것들이 아주 보잘 것 없이 보입니다. 보잘 것 없이 보여. 여러분들 뭐 그것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

저도 위천 있을 때에 날마다 제가 인민 재판에 사형으로써 둘째로 사형, 이번이 돼 가지고 있었어. 하거나 말거나 그것 상관없어. 예배 보는 데 와 가지고서 총을 가지고 와 가지고 저 출입구 세 군데 막 쾅 총을 놓고 뚜드려 대면서 고함을 질렀지만 기쁘고 즐거워, 하나됐을 때니까.

와서 고함 질러. 고함을 질러서 ‘거게 앉아 예배 봐!’ 고함을 지르니까 `예, 우리도 예배 봅니다.’ 주저앉아. 고함을 지르니까 ‘예, 우리도 예배 보러 왔습니다.’ 하고 주저앉아. 예배 보러 왔대요, 또. 금방. 어쩔 줄을 몰라. 마귀 그놈이 붙들고 있으니까. 내가 그 얘기 했지만, 나중에 그러니까 나는 자꾸 설교를 하니까, 그때 6  5 때 거기서는 항상 하루 세 번 집회 했어. 사형 선고는 내려 가지고 있고, 집회는 하고.

이만기 목사가 하도 뒤에서, 가 데리고 오라고. 데리고 나오라고. 안 데리고 나오면 막 죽인다고 이러니까 겁이 나니까 그냥 할 수 없이 떡 들어와. 저게 들어와. 나 소리하러 오는 상바르거든. 고함을 내가 질렀어. ‘안 나가나!’ 어데 지금 예배 보는 데 들어오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할 수 없어 기어 나가요. 그래 가지고 그 예배 다 보고, 그래도 하나님이 안 죽이니까 안 죽었어요.

여러분들, 우리 기독자는 영과 육이 일치됐을 때에 그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세상을 발 아래 밟아. 다니엘 그런 사람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런 사람들, 사도 바울 그런 사람들, 손양원 목사님 그런 사람들, 주기철 목사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뭐 간이 큰 사람 아니오.

예수 믿는 사람은 간이 작은 사람이 승리하지 간 큰 사람은 승리 못 합니다. 제 간 큰 것을 믿어 가지고 승리 못 해요. 간이 적으니까 볼볼 떨면서, 이제 언제냐? 영과 육이 일치될 때에는 세상을 이깁니다. 이게 믿음이라. 영과 육이 하나되어서 믿을 때에는 그때는 세상을 이겨. 세상을 발 아래 밟아. 평안하고 즐겁고 담대하고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게 되고, 영육이 갈라져 있을 때에는 육 소원대로 하고 나면 영이 고통하니까 육 이놈도 제가 고통이 안 될 수가 없어. 영이 고통하니까 저는 뭐인지도 모르게 아, 기쁘고 즐거운데 고통스러워.

기독자들이 세상일을 성공해 놓고도 기쁘고 즐거움을 누리지 못합니다.

기독자들은 아무리 세상일이 잘 되고 해도 절대로 그 속에 편하지 않습니다.

평안치 않습니다. 고통이오. 항상 께꾸름해서 뭐인가 불안해서 자기는 웃어도 겉웃음으로 웃지 속속들이 기쁘고 즐거운 웃음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영육이 갈라져 그렇습니다. 영육이 일치가 되면 기쁘고 즐겁고 담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은 어짜든지 영육이 합해 가지고 믿음을 가졌을 때는 능치 못함이 없어.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 그말은 영육이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 때에는 능치 못할 게 없어. 믿는 사람이 다 기적을 본 것은 이것입니다.

이런데 뭐 지금 시간 다 가서 해석은 못 하겠는데 자세히 들어 봐요.

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우리는 하나님이 유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 얼마나 큽니까? 이 정권 때에 이 정권 양아들이라고 경주에 와 가지고 거짓부리 양아들이라고 이래 해도 양아들이라 하니까 막 경주 시내가 버글버글 끓고 막 뒤비졌는데? 하나님 아들이 우리가 된, 우리가 하나님 아들인데 하나님의 아들된 이것을 세상이 알면 막 세상이 바짝 깨져 버릴 것이오. 녹아져 버릴 것이요. 몰라 그렇지.

모르고 있지. 이다음에 주님 구름타고 오시면 하나님의 아들이 그때 실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사람은 남한테는 말 못 해도 속으로는 배짱이 있어. 땅위에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어. 하나님의 아들, 아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아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은 아들’ 하나님의 소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우리 것 만들었거든. 상속받았거든. 믿으면 돼요. 못 믿기 때문에 다 거지가 돼. 안 믿는데 주시지는 안해요. 고린도전서 3장 20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이것도 믿으면 그대로 되는데. 믿는 자에게는 한없는 담대와 평강이 돼.

이걸 믿는 자에게 이보다 더 부자가 어데 있소? 뭐 부러워해?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계대받은 아들’ 하나님이 지금은  모든 걸 통치하시고 이렇게 섭리하시고 하지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통치하시는 그것을 우리에게 뒤에 위임 통치를 줘요, 위임 통치.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통치를 아담에게 위임시켰는데 아담이 그만 져 버려서 마귀에게 뺏겼어. 마귀가 지금은 이걸 위임 통치하고 있어. 이러다가 예수님께서 승리하셔서 제가 이제는 위임 통치 못 하고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위임 통치받았고 마귀는 주님이 부리시는 종이 되고 말았어요.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된 아들’ 우리를 얼마나 잘 만들든지 우리를 보고서 모두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광의 찬미가 된 자로 만든 아들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하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생하는 아들’ 영생 이것도, 그러면 영생이 거짓말입니까? 영생하는 아들, 우리는 영생을 가졌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생도 이것 좀 가치를 느껴봐야 될 터인데 뭐 ‘영생’ 해도 헌신짝같이 여겨. 그 안 믿거든. 믿어야, “믿는 대로 되리라” “믿은 대로 되리라, 믿은 대로.” “믿는 대로” 안 믿으면 소용 없어.

‘우리는 만물의 고대 소망된 하나님의 아들’ 만물이 뭐 고대합니까?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뭇아들이 나타나기를 지금 고대하고 있어요. 이것도 자꾸 새겨서 깨달으면 죽을 지경이라, 얼마나 좋은지.

일곱째,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 선지 왕이 된 아들.’ 우리는 제사장 선지 왕이 된 아들. 이것 다 여러분들이 뜻은 알지요? 또 여덟째는,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와 믿음과 회개의 특권을 가진 아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특권을 가졌어. 우리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요.

우리가 또 하나님을 믿는 대로 다 돼. 믿는 대로 다 돼.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는 이것 특권이라. 우리는 또 죄 지은 걸 잘못했으면 회개하면 돼.

죄라 하는 것이 회개한다고 됩니까? 회개한다고 안 돼. 벌을 받아야 되지. 죄의 값은 벌이니까 벌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는 회개만 하면 돼요, 회개만 하면 돼.

왜? 예수님이 대형했기 때문에 회개만 하면 돼요.

아홉째,  ‘하나님은 목적, 예정, 창조, 보존, 섭리를 다 우리 위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러니까 예정도 우리 위해서 했고, 창조도 우리 위해서 했고, 보존도 우리 위해서 했고, 지금도 섭리도 우리 위해서 하시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열째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로 더불어 동거 동행하고 서로ㅡ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이것 뭐 말로 다 할 수 없어.ㅡ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이러니까 이 열 가지가 굉장하지만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가 안 됩니다.

믿는 데서 변화됩니다. 믿으면, 믿으면 말씀대로 안 행할 자가 없어. 믿으면 무서워서 못 할 것 없어. 믿으면 두려워 못 할 것 없어. 믿으면 무엇이 부러워서 못 할 것 없어. 믿는 이게 제일 좋은데?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데 있어야지?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능력이라.

이러기에 이 사실을 자꾸 가서 또 새김질 하면서 믿고, 이 세상 것을 또 비추어 봐, 세상 것을 비추어서. 뭐 우리 한국에 제일 재벌이라 하는 재벌 어떤 사람의 그 아들만 된다 해도 우쭐해질 건데? 이승만씨 양아들만 됐다 해도 우쭐해졌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세계에 있는 강대국의 그 대통령만 못합니까? 그분이 얼마나 크신 것을 알고 그분의 아들된 이걸 믿을 때에는 이것 뭐 굉장해요. 이것은 참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이라. 이 믿는 데에서 우리는 능력도 오고, 믿는 대로 돼요, 믿은 대로. 믿은 대로 돼.

이건 다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아는 자에게는 아무 효력 없어. 주먹덩이만치 믿으면 주먹덩이만치 효력이 나와. 우주만치 믿으면 우주만치 효력이 나와. 그 실상만치 믿으면 실상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요.

그러기에 기독자는 믿음으로 능력되고, 믿음으로 부요하고, 믿음으로 행복을 가지고, 믿음으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열 가지를 다 외우도록 합시다.

믿지 않으면 안 돼요.

광고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요걸 다 외우고 명상을 많이 하십시오. 지하철 위해서 기도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를 빼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앞으로 큰 환난 오는데 이 삼십 분 기도한 사람들은 환난이 와도 그 아무 염려없이 잘 지내갑니다. 기도 안 한 사람들은 못 견뎌요. 왜정 말년에도 이 기도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죽을 지경인데 아무 고통이 없어. 평안하고 즐거웠어.

또 주일학교 광고합니다.

이제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 출석 보고를 할 때에 반사수를 포함해서 보고해 나왔는데 이번 주일부터는 반사수를 포함해서 보고하지 않습니다. 단, 자기가 인도하는 중간반 학생이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했을 때에는 그것을 다 계수합니다.

자기가 인도한 보조반사 이런 사람들은, 원반사 자기는 기록하지 안하고 보조반사와 학생들 수는 다 기록을 합니다.

또 그러고 둘째로는, 분반시킨 그 반에 대해서는 기본수를 남겨 뒀는데 기본수를 보고할 때마다 포함해서 보고했으나 지금부터는 기본수를 포함하지 않고 현재 수만 계산해서 보고합니다. 그러면 기본수는 월말에 한 번씩 주일학교 주체에서 ‘아무것이는 기본수가 얼마라’ 하는 것을 한번씩을 여러분들에게 다 기록해서 나눠 줄 것입니다.

나눠 주고, 주일학교 기본수까지 포함해 가지고서 앞으로는 기본수까지 학생수까지 얼마 이상된 사람에게는 거게 대해서 주일학교에서 활동비로, 활동비로 그 얼마씩을 지불해서 자기 활동하는 데에 너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도록 활동비를 얼마씩 지불하도록 그렇게 할 것입니다.

중간반 반사들이나 또 무보수 반사들이나 주일학교 반사들도 자기가 많은 학생을 구원해 가지고서 분반을 했다 할지라도 자기의 그 분반시킨 기본수 그 수까지를 다 합해 가지고 자기가 다 인도해서 기른 양이기 때문에 그 숫자가 합해 가지고 그 숫자가 얼마 이상이 될 때에는 다 그분에게 대해서 너무 활동을 많이 하는데 경비가 많이 드니까 그 활동비로서 그 지불을 할 것입니다.

지금 무보수 반사들도 그렇게 해서 무보수 반사들이 활동비를 받고 있는 반사가 한 팔십여 명 됐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한 팔 십 이 한 천여 명이 되면 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것이고 또 우리가 구원할 자를 다 구원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래서 기본수는 이번에는 매보고에 보고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본수를 위에 주일학교 사무실에서 ‘어느 반사는 기본수가 얼마라’ 하는 그것을 다시 기록해 가지고서 월말에 한번씩만 그 본인에게 알려 주고 그 숫자가 차서 어느 숫자까지 찼을 때에는 그 반사에게 대해서는 활동비가 지불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 요새 새벽기도 나오는 수가 한 팔백 되는데 아직까지 그전에는 천이 넘었었는데 그래 안 나옵니다. 이러니까 내일 새벽에는 또 아침만 자꾸 굶고 할 게 아니라 내일 새벽에는 결심하고 또 새벽기도 나오도록 합시다.

자,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 저 나가지 말고.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결심을 해 봐요. 새로 한번 듭시다, 자.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 주먹을 거머쥐고, 이래 할 게 아니라 막 이래 한번 들어 봐요, 막. 힘있게. ‘마귀 요놈을 내가 이기고 내 육체 요놈을 쳐서 복종시켜서 내일 새벽에는 나오겠다’ 이래 가지고.

자, 내일 새벽기도 자기 육을 쳐서 복종을 시켜 가지고서 새벽기도 나올 분들 용기있게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이래야 돼. 너는 왜 안 드노? 너는 왜 안 들어? 못 나와? 뭐라 하노? 집이 어데고? 뭐라 해? 충무동? 괜찮아. 새벽기도 나오면 아무놈도 안 잡아가. 새벽기도 나올 때 기도하고 나와. 기도하고 깨끗한 마음 가지고 나오면 아무놈도 못 잡아.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잡는가? 여기 저 영주동에 있는, 지금 ○○○조사님 부인. 영주동에 여기 그때는 턴넬이 있어도 깜깜하게 불도 없이 깜깜한데 그 턴넬로 통과해서 하루 새벽도 안 뺐습니다. 아무놈도 붙들지 못해. 그때는 한창 깡패가 심해 가지고 야단이지마는 와도 아무놈도 손 못 댔어. 또 여게 ○○○씨 집에 내나 가정부로 있던 처녀 그 이름이 뭐꼬? ○선생 부인됐지? 혼자, 또 얼마나 예쁘기는 예쁘노? ○○○ 처녀도 예쁘고 그 처녀도 아주 모두 미인이라. 참 예뻤어, 다 예뻤어. 이랬는데 뭐 새벽기도 나와도 아무놈도 근방에 가지 못해, 손도 못 대. 하나님이 딱 지키는데.

당신 보고 가는데 어떤 게 뭘 할 거라? 이러니까 새벽기도 나오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여 나를 지켜 주옵소서. 나를 깨끗하게 성결하게 지켜 주옵소서.’ 이러며 오고  괜찮은데 만일 어데 가면서 ‘어데 남자가 없나?’ 요런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하면 당장 달라들어.

어떤 내가 반사들 말 들었어. 그 조금 마음을 좀 거석하게 가지면 그게 오는데 깨끗한 마음 가졌을 때는 하나도 안 오고. 그래 올 때는 그만 얼른 회개하면서 ‘주여, 나를 지켜 주옵소서.’ 이러면 그만 그놈이 오다가 뭐 엎어지든지, 한번은 올 때는 그랬대요. 오는데, 달라드는, 저기서 그리고 달라드는데 ‘내가 이 마음을 회개하겠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주여, 지켜 주옵소서.’ 하니까 멀거니 따라오던 자가 한 길반 되는 언덕에 그만 툭 떨어져 버렸는데 그래 가지고서 다리가 뿔라졌는지 그만 꽝 그러는데 아이고 하는데 그만 그리고 난 뒤에 그만 자기는 뛰어 왔대요.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하나님이 알지 못하심이 없어. 다 보고 딱 보고 계셔. 이러니까 새벽기도 겁내지 말고 멀어도 다 나와요.

자,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됐어. 내일 아침에 이제 여기 거뜩 차도록 한번 모아봐요.

참 예수 잘 믿으면 재미 있습니다. 전부가 기적이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11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17.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110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5장-33절/ 1985. 2. 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09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5.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108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6.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107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7절-33절/ 1985. 2. 5.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28
106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1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05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13.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104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103 지극히 큰 사명/ 베드로전서 5장 1절/ 1982. 6. 6.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102 지극히 큰 소망/ 에베소서 3장 14절-21절/ 1987. 2.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01 지극히 큰 소망을 달성하는 법/ 고린도전서 1장 28절-31절/ 1988. 7. 14.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7. 11. 11.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99 재림의 긴박/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1982. 4. 18.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98 지방정실 혈육정실/ 창세기 12장 1절/ 1987. 10. 19.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97 지방정실 혈육정실을 하나님의 선물로/ 창세기 13장 5절-15절/ 1987. 10. 22.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96 지사충성/ 요한계시록 17장 9절-14절/ 1988. 10. 3. 교역자회 선지자 2015.12.28
95 지성적 연보/ 마태복음 6장 19절-20절/ 1986. 1. 1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8
94 지식 거룩/ 베드로후서 3장 11절-14절/ 1983. 6. 14.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93 지식 탐심/ 에베소서 1장 1 7절-20절/ 1983. 6. 4.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92 지식믿음,사람의 성공/ 시편 1장 2절/ 1983. 5. 4. 수후집회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