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도

2007.06.18 01:25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이용도 목사님
선지자선교회
◎ 최덕지 선생님 전기(최종규 목사 저) 중에서 발췌

이용도 목사는 감리교 출신이다. 협성신학교(현 감리교 신학대학)를 졸업했다. 젊은 시절(25세 때) 폐병으로 고난을 겪었다. 그리하여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체험을 지녔다.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킨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킨바 되는 이 합일의 원리여. 오 나의 눈아, 주를 바라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라’고 그는 고백했다.(변종호씨 ‘이용도 목사전’에 의함)

그는 '시무언'이라는 호를 가지고 전국을 석권한 대부흥사다. 당시 교회는 형식화되어 가고 사랑이 메말라 있었다.
이용도 목사는 교권에 대해 무서운 비판과 공격을 했다.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했다. 최덕지 선생도 이 부흥회 때 크게 은혜를 받았다.

그는 항상 검은 무명 두루마기와 검은 동정을 달아 입었다. 거리에 헐벗고 굶주린 아이를 보면 자기 숙소에 함께 데려와 먹이고 재워주었다. 최덕지 선생이 이용도 목사님댁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된장국과 비지장으로 잡수셨다. 저명한 부흥사의 식탁이 그렇게도 초라함에 놀랐다. 그의 청빈에 목이 메었다. 그뿐 아니다. 이 목사의 부인은 감기로 아파 누워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약도 사주지 않았다.

찬물 한 대접을 떠 와서는 눈물로 기도하였다. ‘오 주님이시여. 사랑의 주님이시여. 능력의 손길로 나의 처를 어루만져 주소서. 이 찬물을 마시고는 일어나게 하소서. 오 긍휼의 주님을 믿고 구합니다.’ 이 기도로 사모님이 일어나심을 보았다.

하나님의 종이요, 주님의 사자임을 믿었다. 또한 겸손한 목사였다. 그가 지나간 곳마다 은혜가 폭포같이 쏟아졌다.

회개의 눈물은 강물 같았다. 기도소리는 하늘에 사무쳤다. 산을 찾는 기도꾼이 늘어났다. 다른 목사는 욕심쟁이로 보였다. 싸움꾼으로 보였다.
  
이용도 목사 집회에 참석하고부터 탕아는 성자가 되고 탕녀는 성녀가 되었다. 그 반대로 목사, 장로 당회, 노회, 총회 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드디어 한국교회가 돌을 들어쳤다. 감리교회나 장로교회에서 금족령을 내렸다. 집회를 금했다.

드디어 1933년 9월 22일 총회 때에 이단으로 단정하고 말았다. 이 바람이 평양여자신학교에 닥쳐왔다. 모든 학생이 이용도 목사를 의심하고 이단을 단죄할 때 최덕지 회장은 싸웠다.

한국교회가 그의 주님을 향한 절대적 사랑과 실천을 이해 못하고 시기하여 이단으로 몰았다고 변호했다.

그의 신비주의를 단죄했다. 설움 당한 민족을 위해 함께 울어준 자가 누구인가. 한국의 양떼들이 어디에서 이 좋은 풀을 먹을 수 있겠는가. 누구의 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이는 이용도 목사의 사랑과 실천에서만 얻어진 것임을 최덕지 학우회장은 역설했다. (물론 뒤에 여러 사람으로 인해 잘못된 점이 있었으나) 옳은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일에 자신이 믿는 사람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

대중에 따르지 않았다. 세력과 다수의 편에 치우치지 아니했다.

오직 공의만을 따랐다. 이런 일들의 경험과 싸움이 한국교회가 모두 일본에 가담할 때 오로지 혼자의 몸이나마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싸울 수 있었다.


■ 이용도 목사님

1998년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인천숭의교회(담임목사 이호문감독)에서 개최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제23회 총회에서 김종순회원외 13명이 `이용도목사 휴직에 대한 명예복직을 위한 청원`을 제출하여 총회에서 이용도목사에 대한 명예복직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당 서울연회 과정자격위원회로 회부해 처리키로 하였고, 1999년 2월 23일 서울연회(감독 박춘화) 과정고시위원회(위원장 김동설)에서 이용도목사에 대한 정회원자격(복권)과 명예회복 문제를 심사하여 만장일치로 연회에 상정하기로 가결하였다.

1999년 3월 9일 정동제일교회(담임목사 조영준)에서 개최된 서울연회에서 김종순회원(우이감리교회담임목사)의 복권청원에 대한 설명과 박봉배회원(전 목원대학교총장)의 복권당위성의 설명이 있은 후 김진호회원의 동의와 김석순회원의 재청으로 만장일치로 복권과 명예회복을 결의하였다. `

이용도목사 휴직에 대한 명예복직을 위한 청원`건의안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1933년 3월 15일부터 20일까지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모였던 제 3회 중부연회에서 당시 경성지방회 소속 정회원 이용도목사에 대한 휴직처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명예회복을 위한 복직청원을 드립니다.......이용도목사는 1933년 10월 페결핵으로 33세를 일기로 소천하였는데 이후 감리교회에서는 오랜동안잊혀진 회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이용도목사의 영적 감화력과 헌신적인 신앙열정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증가되어서 1930년대 부흥운동을 재평가하고 연구하는 많은 감리교교역자들과 성도들은 이용도목사에 대한 교회적인 평가를 다시 내려야 할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용도목사의 휴직을 거두어 주시고 그분의 감리교 교역자로서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신다면 이는 마치도 주기철목사의 명예를 장로교회에서 회복시켜 준 것 같은 큰 의의를 가지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예수주의(主義)

예수다. 우리 신앙의 초점은 예수다.

소망도 예수요, 인내도 예수요, 기도도 예수요, 찬송에도 예수다.

떠들어도 예수요, 잠잠해도 그저 예수뿐이다.

생시(生時)에도 예수, 꿈에도 예수, 그리고 잠꼬대에도 예수다.

먹어도 예수요 입어도 예수요, 자도 예수요 일하여도 예수다.

그저 우리의 생명의 초점은 예수뿐이다.

오! 예수는 곧 우리의 모든 것의 모든 것이요, 또 우리의 생명이다.
만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이 생명을 잃어버리면 아무 이익도 없게 되는 것이다.

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어 우리는 살지 못하옵니다.

오! 우리의 진리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 우리의 길이신 예수여, 당신이 없어 우리는 행할 수 없습니다.

오!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여, 영원히 우리와 같이 하여 주옵소서.


(이용도 목사)


● 나의 위치(존재)는 피조물입니다


나는 다시 나를 주께 드립니다. 맡깁니다. 주께서 마음대로 주무르시옵소서.

나는 주무르시는 대로 주물림을 받은 점토(粘土)와도 같습니다.

무엇을 만들든지 주의 뜻대로 만드시옵소서.

무엇이 되든지 내가 관계할 바가 아닙니다.

주여, 나는 온전히 주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주는 나의 창조주시며 나는 주의 작품입니다.

나의 존재는 주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그리고 주의 능력과 그 사랑과 큰 뜻을 증거하는 조각품입니다.

(이용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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