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 일곱 가지

2008.02.17 17:17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주일성수 일곱 가지
선지자선교회 본문: 출34:27-34

<서론>

기독교는 지극히 크시고 모든 것에 근본이 되신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원의 길입니다. 그 이상이 없는 제일 큰 권위의 도요, 또 지혜의 도요, 능력의 도요, 또 영원 무궁한 소망의 도입니다. 또 어디서나 언제나 영생하는 생명의 도입니다.

수많은 이종교들이 있지마는 그 이종교에는 기독교의 것은 하나도 거기에 섞여있지를 않습니다. 또 그들이 알지도 못합니다. 기독교는 제일 큰 도요, 또 생명의 도요, 권능의 도요, 영원한 평강의 도입니다.

성경에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보배로워' 하는 말씀을 하신 것은, 마치 금을 연단하면 잡것은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것처럼, 기독자의 건설하는 자기 인물 건설이나 행위 건설이나 기타의 모든 활동 소유의 건설들을 처음에 할 때에는 이런 것 저런 것 잡것을 섞어서 하게 됩니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도 지은 것이 있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도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에서, 또 영원한 시간에서 정죄 받지도 쇠해지지도 더러워지지도 낡아지지도 아니하는 그것만 남고 모든 인간이나 피조물적으로 된 것은 다 소멸시키고, 순전히 하나님과 진리로만 이루어진 영원한 것, 완전한 것, 불변한 것, 산 것, 이런 것만 남기기 위해서 우리를 시험도 하시고, 시련도 하시고, 연성도 하십니다. 시험에서 남아 있는 것 연단에서 재선별하고, 선별한 데에 또 온전한 것으로 성장케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고로 요한일서 3장에 보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분도 세상이 모르고 우리의 구원도 세상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실은 세상이 보고 빛이라 영광을 돌리는 그것은 외부에 세상 빛은 될지라도 무궁한 하늘나라의 존재라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구원이기 때문에 지식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또 그 사람의 주관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순전히 객관인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초에는 이런 것 저런 것이 있었을지라도 결말은 하나님으로 이루어지는 그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로 말하면 온전한 행위가 되어져야 하고, 또 하나님과 관계로 말하면 자기의 전부 곧 자기라는 사람을 다해서 하나님을 상대 할 때에 하나님과 교제가 되고 친밀히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은 다 공력이 불타서 구원을 얻으나 부끄러운 구원 얻는다' 하는 그 말씀은 사람들이 처음에 믿을 때와 갈이, 또 탈선되고 속화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자기의 주관 곧 자기가 신앙의 주인공이 되고, 자기가 자기의 주인공이 되고, 자기가 자기의 모든 생활에 주권자가 되어서 신앙생활 하는, 이것 가지고 객관적인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오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모든 악령의 미혹에서 다 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홀이 여김을 받으시지 아니합니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무궁세계에 그대로 대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이 알려 주실 때에 아는 데에 힘을 써야 하고, 다음에는 행하게 하실 때에 행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하고, 이것은 다 준비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깨달아 자기를 비어 주를 모시고 자기는 완전히 주님에게 속하고 주님의 것이 되고 자기는 주님과 주님의 도에 대해서 털끝만치라도 자유하지 못하고 주님은 자기에게 모든 일에 전권을 가지시고 자유 하게 되는 거기에서부터 구원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르는 사람이 구원을 이룰 수 없고, 또 행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없고, 변화되지 아니한 사람이 하나님과 결합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모든 것을 다 종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기독교는 실상의 도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우리가 믿는 믿음의 목적이 무엇인가? 모든 소망하는 것을 실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듣고만 버리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본론>

주일을 지키는데 대해서 일곱 가지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쓴 사람은 지키려면 지킬 수 있는 일인데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되었을 것이고, 어려워도 계속 주일을 바로 지키려고 할 때에 자기의 허무한 것을 알게 됐을 것이고, 또 계속 지키려고 애를 쓰는 자에게는 자기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수없이 주위 환경에 둘러싸 있는 것도 자기가 알게 되었을 것이고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너에게 친밀이 곧 너를 망치는 원수니라 하는 그 말씀도 이해를 하게 될 것입니다.

듣고 버리는 자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듣고 지키려고 하는 데에서 자기도 알게되고, 또 듣고 지키려고 하는 데에서 자기 환경의 이웃도 알게 되고, 또 계속 지키려고 할 때에 과연 주님이 나를 이 세상에 두신 것은 양을 이리떼 가운데에 두셨다고 말씀하신 그대로라 하는 것도 자기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자기의 무지와 연약을 알아 주께 구하게 되고, 모든 위험성을 알아 주님에게 구하게 되고, 또 주님 외에는 피난처가 없고 주님 외에는 믿을 만한 실력가도 의지할 만한 진실한 자도 없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실행하는 그 실행으로 한 자욱 떼 놓고 나면 자기가 변화되는 변화로 한 자욱을 옮겨놓고 변화되면 다시 그 진리를 다시 더 깨닫게 되고 이렇게 한 자욱 한 자욱 걸어서 주님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일 지키는데 대해서 그저 간단하게 외부적인 것을 가르쳤습니다. 내용은 또 거기서 더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나 외부가 변화되지 않을 때에, 外化가 없을 때에 내적 변화는 없는 것입니다.

주일에 대해서 일곱 가지를 여러분들이 지키고 나오고 있는지, 지키려고 애를 쓰는지? 애를 쓰면 제가 증거 하는 이 말이 다 같은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 첫째로는 매매하지 말 것

매매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사고 파는 일을 주일날은 안해야 된다 하는 것을 단정 지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악령은 그것을 에누리하기 위해서 큰 죄를 작은 죄로 바꾸게 하다가 나중에는 작은 죄를 큰 죄로 바꾸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에는 에누리로 지키려고 하는 자들은 다 스스로 속습니다. 즉시 순종해서 즉시 실행해야 되지 거기서 에누리해서 차차 어떻게 하겠다고, 서서히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그것은 다 인본의 주장이지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안심하고 주일날 장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도 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증하시기를 주일날 일하지 아니한 그 수입을 다른 날에 보충해주시겠다고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했습니다.

또 안식년에 대해서는 삼 년 쓸 것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해도 살고 그 이듬해 농사지을 때도 살고 농사 다 짓기까지 산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이렇게 보증을 해주셨으니까 안심하고 주일날은 장사하는 것 딱 단절하고, 매일 품 들어 사는 사람도 단절할 수 있고, 또 그보다도 하나님이 나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서 대속해서 주신 구원이니까 우리가 죽어봤자 주님이 나 위해 죽으신 것 만치 합니까? 이러니까 안 줘서 주일을 지키다가 죽어도 우리는 지키는 것이 당연한 체면이요 당연한 예의입니다.

그런고로 아예 주일날 매매하는 것이나 일하는 것이나 그런 것을 단절해야 됩니다.

열 가지 일하던 것 아홉 가지 하고, 아홉 가지가 여덟 가지 되고 차차 줄여 뜨려서 가려고 하는 그 사람은 스스로 속는 자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는 자입니다.

오늘에는 다라도 금할 수 있어도 다라도 금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내일에는 하나도 금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 가는 약자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되고, 악령의 유혹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다 금한 사람들은 단번에 금했습니다. 길게 끌면서 금하지 않았습니다. 뭐 죽고 살고 '죽어도 마땅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나를 구출해 주셨는데 내가 주님이 주신 이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서 감당하기 위해서 죽는 것도 마땅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나 위해서 이랬는데 내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아 감당키 위해서 죽어지는 것이 무엇이 크냐?' 에누리하지 않고 양심을 써서 지당하다고 생각하고 단번에 끊은 그런 사람들은 죄를 다 끊어서 자유의 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첫째가 매매하는 것을 단절할 것,


● 둘 째로는 일하지 말 것

일하던 그 일을 다 중지해 둘 것, 뭐 큰 일 작은 일 무슨 일이든지 그 일로써 어떤 큰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나와의 원수 되는 것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유익이 있어도 하나님이 내게 축복해 주는 것보다 더 크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체면에 중요한 것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대속해 주신 그 체면보다 더 큰 체면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절해야 됩니다.


● 셋 째로는 몸과 의복은 깨끗이 할 것

천한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도 계시고 우리 가정에도 계시지마는, 그래도 하나님의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모임에 내가 나아가는 것이니까, 내 대로는 힘껏 의복을 정결케 하고, 몸을 정결케 하고, 자기 마음을 정결케 해서 자기의 인격이 외부에서부터 깨끗이 정리 정돈해 가지고 '지극히 크시고 나를 구속하신 이 하나님이신 주님이 모으시는 이 회에 나는 참여하러 간다.' 영광된 것도 권위 있는 것도 느낄 뿐 아니라 자기로서는 있는 대로는 깨끗이 자기를 단속해서 준비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뭐 사회에 나갈 때에는 제 대로는 제일 깨끗한 의복을 입고 제 대로는 다 차리고 다듬고 이래 나가지마는 하나님의 교회 갈 때는 뭐 교회쯤이야 이렇게 하나님과 그 회를 만홀이 여겨서 그렇게 오는 자 들도 있고, 또 의복을 가지되 이 장사꾼한테 갈 때에 입는 의복, 점잖은 분에게 갈 때 입는 의복, 어떤 예식에 갈 때 입는 예복이 다 있어서 '교회에는 가난하고 무지러기들만 있기 때문에 내가 다듬어 가지고 가면 그들이 다 기절하고 너무 부러워할 터이니까 좀 검소하게 해 가지고 가야 된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기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다 버려야 됩니다.

우리나라는 의복에 대해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다 넉넉한 의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화려한 의복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사람 보기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크신 분께 나아가니까 내가 오늘은 목욕해야지. 또 의복도 씻어서 갈아입어야지.' 하나님을 향해도 그러하고 교인들 보기에도 '아무 것이는 저렇게 깨끗이 해 가지고 오는데 나도 깨끗이 해야 되겠다.''아무 것이는 저렇게 좋은 옷 입고 오는데 나는 떨어진 더러운 옷 입고 가기 어렵다.' 가기 어려우면 왜 너는 좋은 옷을 왜 마련 안 하느냐! 우리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방종하고 방탕해서 허비 낭비해서 그렇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가는 그 의복은 그래도 엄숙하고 정숙하고 품위 있는 그런 의복을 해서 마련해 가지고 예배보러 갈 때에는 그런 복장을 해 가지고 가야 되겠다하는 그런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게을배기 나쁜 자들이 말하기를 '좋은 옷 입고 가니까 나 같은 헌옷 입은 사람은 못 가겠다' 하는 그런 자들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 그 자가 회개를 해야됩니다. 역부러 찾아가 가지고 '야, 나는 다 같은 사람으로 이래 가지고 이 옷 입고 다니는데 너는 왜 그러냐? 네가 돈 안 쓸 돈을 쓰고, 네가 방종하고 일할 것 일하지 않고 네가 그래서 그렇지 않느냐?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네가 남에게 빚지지 말고 네 밥 네 먹고살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다니고, 교회 좋은 옷 입고 올 수 있는 그런 사람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지저분한 핑계 대지말고 의복과 몸과 마음과 그 모든 인품을 깨끗하게 해 가지고 주일날 와야 되겠습니다.


● 넷째로는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서 예배드릴 것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의 예배시작 전에 자리잡고 앉을 것입니다. 정해 놓은 시간 있으니까 정한 시간 정한 장소가 어디든지 그 자리에 예배가 시작하기 전에 가서 자리잡고 앉아야 하겠습니다.  


● 다섯째로는 예배에서 말씀과 성화를 받을 것

다섯째로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여호와의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그 얼굴꺼풀이 광채가 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서 사십일 사십야를 굶는 것도 느끼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기울어졌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자기의 용모가 변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드릴 때에 오늘은 나의 생명이신 주께서 나에게 생명의 모든 역사가 나에게 올 터인데 어떤 은혜가 나에게 오는가를 기다리는 그 마음에서 벌써 매매하는 것, 일하는 것, 자기의 심신을 깨끗케 하여, 모든 것 다 제하고 정한 장소에 정한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이렇게 준비 갖춘 여기에서 주님이 이 시간 나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은 곧 내게 멸망치 않는 영생을 이루는, 막 바로 영생이오. 막 바로 전지한 지혜요, 막바로 전능한 능력이요, 막 바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실상의 축복이라.

이래서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닫는 것도 확고하게 더 깨달아 확신을 가지게 하고, 또 나에게 믿어지는 견고한 확신을 가지게 하고, 또 그 안에 내포되어있는 직접 나에게 당면된 그 현실에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지도하시는 지도의 그 깨달음을 나에게 가지게 해 주시는, 이것을 받을 때에 근심에 눌렸던 자가 이 은혜를 받을 때에 근심이 없어지니 당장에 모세 같이는 되지 않을지라도 이 피부에 근심을 느끼는 것이 피부에서 사라지고, 이 세상 방종에 방탕에 헛된 욕심에 지금 분발해 가지고 정신 없이 날뛰는 자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그런 것이 다 사라지니까 포근하고 평온하고, 마치 경기 앓은 아이가 그 경기 병이 끝나고 나니까 포근해서 잠자는 것처럼 그 피부에 평강이 나타나고, 또 절망 가운데 있던 자가 소망의 안면이 나타나고, 그 피부에 제삼자들이 볼 때에 환하게 볼 수 있을 만치 용모가 변화되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 주일날인 것입니다.


● 여섯째로는 받은 은혜를 온 가족이 모여 새김질 할 것

오전예배 오후예배 시간에 받은 이 말씀을 가지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서 새김질하여야 합니다. '네가 들은 것이 바로 들었느냐 내가 들은 것이 바로 들었나?' 다른 연구, 다른 시비, 다른 장기 자랑하지 말고 '이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런 뜻이 안에 내포돼 있는 줄 안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나는 이런 깨달음의 다시 전환을 가졌다. 이렇다.' 이렇게 외우고 서로 대조하고 서로 깨달은 것을 칭찬하고 협조하고 또 안 된 것은 다시 그에게 타일러 알려 주고, 이래야 합니다.


● 일곱째로는 남은 시간이 있으면 심방 전도할 것

주일날 남은 시간이 있으면 '우리는 다 이렇게 모두 다해서 은혜를 입었으니까 우리가 또 가자. 야, 너도 제법이다. 너는 열 살 먹는 학생이니까 열 살 먹는 동무에게로 가라. 너는 고등학생이니까 고등학생 동무에게 가라. 여보 자기는 여인이니까 여인의 친구에게로 가고, 나는 또 남반에게 가겠다. 또 나는 어데 가겠다.'

이웃에 가서 여기 대한 얘기를 하며 오늘 설교는 뭐이지요? 몰라서 묻는 듯이도 하고 또 가르쳐 주기도 하고,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에게 묻고 가르치는 방식을 가지신 것과 같이 이렇게 하면서, 오후에 사람을 구원하는 그 일을 하다가 저녁 먹고 곤하니까 자고,

그것 못하면 오전 오후에 예배보고 그만 죽은 듯이 가만히 드러누워 있는 것이 낫습니다. 가만히 드러누워 자는 게 낫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오락을 금하라 했는데 이런 재미 저런 재미로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다 쏟아버리고 마귀란 놈이 '요놈이 오늘 주일날 거기서 조금 변화한 생각이 나 가지고 가졌으니까 그 대신 그만치 기합을 줘야 되고 그만치 강한 죄악을 속에 쐐기로 박아야 된다.' 해 가지고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되어 예수 믿은 지가 점점 오래 갈수록 변화는 없고 점점 속화돼서 이것은 다시 면역성이 있어서 아무 데 갖다 놔도 꼼짝도 안하는 그런 자 돼 가지고,' 저 풋 믿음이라서 저렇게 하지 우리는 다 노성한, 노숙한, 노장한 믿음이라.' 말하면서 늙은이 믿음으로 죽어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냐? 절대로 생명 있는 도는 육체는 쇠잔하나 그 마음은 더 뜨거워지고, 육체의 활동은 범위가 좁아지나 그 심령의 활동은 범위가 얼마든지 넓어지고 점점 그 심령은 속 사람으로서는 새로워진다고 말씀했습니다.


<결론>

이것 주일 하나라도 좀 지켜보자 그 말이오. 이러면 사람이 변화가 될 것이고 변화가 되면 '성전 기초를 쌓을 때부터 그 날 전후를 네가 생각해라. 성전 기초를 쌓는 그 날 이전 날을 생각해 봐라.

네게 대해서 모든 일이 어떻게 돼졌는가 그것을 심히 살펴보고 성전 기초를 네가 참 회개하여 살기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구원을 이루려고 하나님의 성전 되려고,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하나님의 꺼풀갈이 되어서 하나님이 내 안에 역사하고 나는 그 역사 받아 가지고서 세상 모든 만물과 접촉하는 이 생활을 신앙 생활을 해 보려고 작정하고 시작한
그 날부터 그 후를 봐라.

그 전날과 그 후가 네 자신이 같으냐?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네 자신의 언행심사가 같으냐? 또 사람을 대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대하는 것이 같으냐? 다르냐? 만물의 모든 것이 누가 도와주고 도와주는 그런 것이 있고 없는 것이 보여지느냐? 그 전후를 네가 추억해서 살펴 보라. 대조해 보라.'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때가 가까웠습니다. 주님의 재림도 가까웠고 또 환난도 가깝습니다. 그 환난은 모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그까짓 환난은 다 물러갈 것이오. 우리가 회개를 깨끗이 하면 무신론 유물주의는 우리 손에 다 붙임을 받을 것이오. 그저 오거나 가거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 앞에 지금 일하는 이 지금에 바로 서야 되지 바로 안 서면 안 됩니다. 명예를 가지면 뭐이며, 지위를 가지면 뭣하며, 무슨 훌륭한 무대를 가지면 뭐할 것이며 뭐입니까? 당신이 나를 인정해야 되지. 당신이 인정해야 돼지. 당신의 인정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년 4월 17일 주일오후)/ 김반석목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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