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에 관하여

2012.08.26 16:14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 찬송가에 관하여
선지자선교회
본문: (요한계시를 2장 23절)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서론)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찬송가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찬송함이 우리 성도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찬송가입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는 그 진리는 꼭 돈 재물과 하나님 거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면에 다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안팎을 가지고 있고 또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지 안한 것이 없습니다. 양면 가진 것은 이 면을 사랑하나 저 면을 사랑하나 어느 면인가 한 면을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게 되는 그것을 성경에서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한다했고, 덜 사랑하는 것은 바로 미워한다 그렇게 주님이 판정을 해서 말씀해 놨습니다.

찬송가도 하나님을 찬양 찬송하는 것이지 인간을 찬양 찬송하는 것 아니고,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그것이 우리가 기뻐하는 기쁨이지 인간 제 기쁨이 앞서고 하나님 찬양함은 다음이 되면 그것은 하나님 미워하는 것입니다. 전부 하나님 미워하는 노래입니다.

(본론)

1. 금정산의 불파들

제가 지금은 금정산에 아주 안 갑니다. 그전에는 많이 갔었는데 거기 가면 불파들, 또 방언파들, 지시파들 그런 사람들 오면 그만 한번 왔다 하면 한 스무나뭇이나 한 삼십 명이나 둘러앉습니다. 앉으면 함부래 딱 자리 깔고 앉아서 믿는 사람들이 춤추는 데에 갈 수는 없고, 또 무슨 오락장에는 가지 못하고 이러니까 처음에는 찬송하다가 뚝딱 뚝딱 뚝딱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막 뚝딱뚝딱뚝딱뚝딱 이래서 굉장히 하며 바람을 쑥 한번 뺍니다.

찬송을 할 때에 보면 무슨 찬송이나 그래요.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 되시며'  하는 그것도 하나님은 그만 생각하지 않고 저거 신명풀이 기쁨풀이 이것을 하는 데에 그게 아마 많이는 몰라도 대개 백의 한 칠팔십 프로는 저희 취미요 저희 흥미입니다. 하나님 잊어버렸어. 하나님 잊어버리고 백 프로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잊어버리고 그저 저거끼리. 그러기 때문에 찬송에 대해서 가사의 뜻보다도 곡조입니다. 곡조는 저거 신명풀이요.

2. 김현봉 목사님의 찬송

김현봉 목사님이라 하는 그 목사님은 찬송을 소리를 크게 내서 하는 것을 반대를 했습니다. 왜? 그 말은 그분이 하지 안했지마는 '찬송은 마음에 정성들여 하지 안하고 아무 성의 없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없이' 이런 말은 내가 붙인 말이지마는 그렇게 아무 정성들이지 않고 그렇게 찬송하는 것을 틀렸다 이래서 그저 소리를 크게 내지 안하고 마음을 간절히 해서 찬송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 집회하는 데는 찬송가가 그렇게 지딱지딱 하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요새는 전부 찬송가도 인도 하는 사람들도 가사에 뜻이 은혜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참 찬양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찬양함이 된다 하는 그것보다도 저희 신명풀이 하도록 곡을 만들어 놓은 그 곡만 전부 촐촐 추려서 자꾸 부르게 됩니다.

3. 찬송가의 유래

그러니까 찬송가를 제가 예수 믿기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신편 찬송이 한번 고쳐 나와서 처음에 있던 찬송가 외에 신편 찬송 나왔고, 신편 찬송 그다음에 합동 찬송 나왔고, 또 새찬송 나왔습니다. 또 찬송 그 이름은 내가 다 모르는데 이래 나오고, 00교 이런 불파, 지시파 사람들이 하는 찬송은 전부 신명 있는 그런 찬송입니다.

그래서 부흥성가라 하는 그 부흥성가는 전부 마구 참 굉장한 신명풀이가 속에 나와서 하나님보다도 저거 신명풀이 하는 것, 하나 흥미 찬송 이런 것을 많이 합니다.

4. 201곡 찬송

그래서 우리가 왜 201곡으로 찬송을 그만 추렸느냐 하면 첫째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그 숫자 내에서만 해도 하나님을 각양으로 찬송 다 할 수 있습니다. 빠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같은 뜻으로 찬송하는 것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숫자를 적게 해서 가지 수를 적게 해서 늘 찬송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 찬송이 되기 쉽고, 사람들이 꼭 같은 것은 성부의 은혜 찬송이라면 찬송 수가 적을수록 하나님만 찬송하는 것이 되어지고, 자꾸 그 수가 많아서 요래조래 하는 것은 저거 취미가 되고 말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빠진 것은 다 우리가 다 넣어야 되지마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면 그저 한두 가지만 해도 우리가 자꾸 그것 가지고 하나님을 얼마든지 찬송하는 것이기 때문에. 찬송 얼마든지 할 수가 있고 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또 할수록 우리가 다 외워지고 이러면 얼마든지 간절하고, 이래서 할 수가 있는 그것이기 때문에 축소를 한 것입니다.

또 성신의 감동받아서 찬송 지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이 성령의 감동받아서 찬송을 지은 그 사람의 지은 작가한 그 찬송을 우리가 좋다고 다 배워서 우리가 찬송을 한다고 하면 그 가사 대로 그 곡대로 하는 것이 좋지, 그 가사와 그 곡이 틀렸으면 가사도 고칠 수 있고 곡도 고칠 수 있지마는, 틀리지 안하고 지금 고친 것이나 그거나 꼭 같을 때는 지은 사람 옛날 것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새 것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같은 뜻이고 그 가치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옳은 면으로도 같은 가치, 곡으로도 같은 가치를 가졌으면 그 지은 사람 그 사람의 찬송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 우리가 찬송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새로 이래저래 자꾸 고쳐서 그래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고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거는 잡년이라. 잡놈이고 잡년이라. 잡것이라,

5. 변동의 종류 두 가지

그게 왜? 그것 꼭 같은 가치요, 같은 뜻이요, 같은 하나님의 찬양이 되어지는 것인데 뭣 때문에 자꾸 변동을 해야 좋은고? 그 변동이라 하는 것은 사람이 두 가지 종류 있습니다. 자기가 자꾸 개량되는 것은 좋아요. 자꾸 앞으로 보다 더 좋게 더 좋게 개량되는 것 좋고, 개정되는 것 좋지마는, 저거 속의 마음에 꼭 같은 것이라도 요래 안 됐으니까 또 조래하고, 조래 안 됐으니까 요래하고, 자꾸 그래 하는 그거는 못쓸 마음이오.

그러면 누가 붙이기를 '음식도 요거 먹다 조거 먹다' 그거는, 음식을 요거 먹다 조거 먹다 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 취미가 아니고 자기 몸에 영양에 몰라 그렇지, 요게 필요한데 자기는 요것만 가지고 안 되니까 또 조것도 먹고 자꾸 하는 그것이 개정이요 개량이오. 자꾸 자기 취미에서 변동이 아니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무가치하게 변동된 것은 못씁니다. 또 아무 가치가 없이 자꾸 유행으로 이와 같이 돼 나가는 거는 못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라는 이 뜻 때문에 그런 것이고, 또 할 수 있으면 보수를 하는 것이 좋고 보수성, 그런데 이것이 옳기는 옳지마는 좀 못해도 한번 고쳐 했으면 좋겠다하는 그것은 잡성이요, 음란성이요, 순진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가 지은 사람 그 사람 그 곡을 또 그 사람의 가사를 찾아서 그대로 했는데 이 통일 찬송은 전부 고쳐 놨습니다. 그것만 못하세 고쳐놓았습니다. 그러고 자꾸 이거만 계속하면 재미없으니까 자꾸 고치고자 하는 것, 그런 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6. 백 목사님의 5장 찬송가

이러니까 찬송 부르는 것도 나는 거의 5장 찬송 많이 합니다. 이 찬송을 여러분들이 뜻을 몰라 그렇지 뜻을 알면 이 찬송가가 얼마나 온전하고 구비한 찬송인지, 하나님을 얼마나 찬양하는 것인지, 저거 좋다고 하는 신명풀이 하는 찬송에는 하나님 찬송 받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찬송 받을 것이 없고 저거만 좋지. 저거만 좋으면 그냥 노래를 부르지 뭐 하나님을 들먹여 가지고 꼭 신명풀이를 해야 될 건가?  

그래서 우리는 자꾸 앞으로 개정은 좋고 개량은 좋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개정 개량을 할려고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무한히 좋기 때문에 무한히 좋은 것 그것을 자기가 깨달아가고 난 다음에는 보니까 '아이고 하나님은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주셨는데' 자꾸 그래 가지고 새로운 깨달음, 자꾸 새로워지는 것, 새로운 깨달음 자꾸 이래 가지고 나아가야 되지, 이거 저거 주관에서 자꾸 새것을, 저거 취미 맞춰서 이래 하는 그 버르장이를 꼭 고쳐 버려야 되지 그것이 마귀가 준 버르장이입니다. 그래서 찬송가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1) 복의 근원 강림 하사

자, 찬송 한 번 더 합시다. 이것 생각해 보십시오. 복이라면 이거 영육의 복이요, 금생 내세 다 복인데, '복의 근원 강림하사' 이것도 다른 찬송에 이런 것이 없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복의 근원이 뭐인가? 복의 근원을 인간들은 과학을 삼습니다. 과학이 복의 근원인 줄 알기 때문에 과학자 만들려고, 전부 학교서 공부하는 것이 이 복의 근원이 과학인 줄 알고, 복의 근원이 마귀의 지식 거기에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부 '예수를 팔아서라도 공부는 해야 된다' '주일을 범하고라도 공부는 해야 된다' 이러니까 우리 영육의 복의 근본이 하나님이시다 그 말은 복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복에 대해서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다. 복을 주시고 화를 주시는 것은 주님에게 주권 되어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쩌든지 주님에게 좀 더 가까이, 주님 좀 많이 차지하고, 주님을 좀 더 기쁘시게, 그분의 비위를 맞출라고 이러는 것인데, 이거 주님이야 배반하거나 말거나 과학에 비위 맞출라고, 학교 비위 맞추는 것이 과학 비위 맞추는 것이요, 복이 모두 다 거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복의 근원 강림하사' 이것만 해도 다른 것 뭐 다른 것 다 냅두고 그만 이 말만 해도 좋소. '복의 근원 강림하사' '복의 근원 강컴하사' '우리 영육에 복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오소서' 하는 이것이 얼마나 큰 찬송입니까? 그런데 그 뭐 얼렁뚱땅뚱땅뚱땅 하는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가봐야 의미가 어떻게 얕은지.

2) 찬송하게 합소서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 우리가 복의 근원, 그분을 찬송하는 것이 참 어려울 것인데, 과학 찬양해, 또 세상에 인간 찬양해, 모든 이 세상 물질 찬양해, 전부 하나님의 찬양이냐? 하나님 찬양 아니고 피조물 찬양이냐? 이것도 둘입니다. 하나님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고,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피조물을 돌아보지 안하는 사람이고, 피조물 찬양하는 사람은 피조물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따져 들어가 보면 1장 찬송, 2장 찬송, 3장 찬송, 4장 찬송, 5장 찬송, 찬송가가 1장에서부터 가치가 그렇게 평가적 순서라 할 수가 있습니다.

'찬송하게 합소서' 인간이 엉뚱한 것 찬송하는데 하나님 찬송하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귀중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우리가 깨닫고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우리가 인정하고, 섬기고, 따르고, 높이고, 바라보고, 이런 자 되게 하라 하는 말씀이라 말이오.  

'찬송하게 합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이거 얼마나 찬송이요. 하나님의 그 한량없는 자비 측량할 수가 없어, 다른 찬송에는 신명풀이 하는 찬송에 이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곡에만 따라하지 이런 뜻이 하나도 없어.

3)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천사들은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는 찬송하지 안했습니까? 이 천사들 찬송은 이는 참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제일 존귀한 찬송이라. 인간들이 암만 찬송해도 아직까지는 천사들만치 찬송을 못 해요.

이러니까 천사들이 하나도 잡것 없이 하나님만 순전히 찬양하는 것, 하나님만 순전히 찬양하는 것, 저거 신명풀이가 아니라 하나님만 순전히 찬양하는 것 '찬송가로 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러면 천사들이 하나님 찬송하는 것은 잡것이 하나도 없어. 저거 신명풀이 한 내끼도 없어. 하나님만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런 찬송을 하게 해 주옵소서.  

4) 구속하신 인애함

'구속하신 인애함을 항상 찬송합니다'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것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하신 것을 항상 찬송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입술로만 이렇지 찬양하는 마음이 없는데, '주님이 나를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친의 새생명을 주셨다' 하는 이것을 자기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이보다 더 큰 찬송이 어데 있습니까? 뚝딱거리는 그 찬송에 이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자꾸 이래서 찬송가가 이래 자꾸 유행돼 나가기 때문에 이거 마음에 안 되어서 이것을 '이래 안됐다. 이것 따라 나가다 보면 나중에 어데 까지 같지 모르겠고 그 뭐 익혀 놓으면 또 딴 것 고쳐 하지, 익혀 놓으면.' 마귀란 놈이 그래. 익혀 놓으면 같은 뜻이면 익힌 그거 입에 익은 게 좋고, 정신이 여러 번 그것을 가다듬어서 정성을 바쳐 본 그게 좋은데 뭣 때문에 또 딴 말로 아무 가치도 없는 말인데 가치가 없어도 딴 말로 해야 저거 신명풀이가 되고 재미가 있다 그 말이오.

7. 하나님의 은혜에 찬양

이래서 자꾸 하기 때문에 이것을 따라가면 안 되니까 우리가 하나님 찬양하는 데는 이백 곡만 해도 이만해도 하나님 찬양이 여기에 다 들었다. 빠진 것이 있으면 하지만 이만해도 하나님 찬양에 빠진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이 면을 찬양하고, 저 면을 찬양하고, 하나님 찬양하는 것 뭐 찬양해? 은혜 찬양을 해, 은혜 찬양.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은혜 주셨다. 이거 참 감사하다. 감사하다' 그 찬송이라 말이오.

'이 은혜 주셨다 감사하다' 이백 곡이면 그 안에 다 들었지 빠진 것이 하나도 없어요. 이래서 100곡을 하자 하다가 이와 같이 201곡으로 우리가 한 것입니다. 했는데 또 인제 보십시오. 좀 있으면 또 찬송 딴 찬송 또 나옵니다. 통일 찬송 나오면 그만 그만인 줄 압니까? 또 통일 찬송 그 뭐 이거 돈 벌어 먹었다. 돈 벌어 먹었으니까 또 다른 사람이 딴 걸로 해서 돈벌이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8. 통일 찬송

통일 찬송을 내가 말 들으니까 통일파라 하면은 문선명이가, 우리는 성경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 통일인데, 거기서 말을 따다 문선명씨는 그게 아니고 딴 통일이라 말이오. 딴 통일인데 뭐 그분이 나는 뭐 저 아래 무슨 신문이 하나 나왔는데 이 신문 내가 000신문이고, 뭐 방송도 그분의 방송, 미국에 제일 언론계 제일 큰 것도 돈 주고 샀고 뭐 굉장하다 하는데, 우리 저기 거창에 우리 기도원 앞에도 그 사람이 벌써 큰 터를 하나 사 놨어요 통일교회 세울라고.

이러니까 이게 그 사람이 지금 이 통일 찬송을 쓰고 있대요, 그 사람이. 통일 찬송을 지금 그 사람이 저거 찬송이라고 쓰고 있으니까 통일 찬송 하는데 그 사람한테 돈을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그것도 몰라요. 그 사람 아주 눈치가 빨라요.

이러니까 여기 뭐 정권 운동하는 사람들도 다 그 사람한데 돈 안 받아먹은 사람이 없어. 그 사람이 돈 줬다고 폭로를 안 시켜. 왜? 그래야 뒤에 또 그 사람들이 저거 사람들이 되지. 이러니까 나한테 편지가 왔어. '000씨도 어떻고 000씨도 어떻고 누구도 어떻고 어떻고 얼마를 받아먹었습니다. 나 모르는 사람이 나한테 편지를 했어, 나 모르는 사람이. 그거 내가 자꾸 그런 말 잘한다고 아마 소문이 났는지.

그래 가지고 이제 '자, 이거는 통일교회 찬송이다' 이 통일교회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기 위해서 모두 다 모인 회가 있다고 나한테 오라고 통지가 왔는데 나는 답도 안하고 안 갔어요. 뭐 그래 봐야 그거 가지고 되지 안 해요.

이랬는데 이제 통일 찬송 하니까 모두 이제 문선명 통일파 에서 통일 찬송하니까 나중에 보니까 우리 전부 통일파에서 통일 찬송 하는데 '통일교회 찬송을 우리가 쓰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것 찬송가 또 따로 만들어야 된다. 이래 곧 만들 것이요, 이제 마귀는 이래야 돈을 빼먹고 저래야 돈을 빼먹고 자꾸 그렇게 해야 돈벌이가 된다 그거요. 이거 참 우스운 연극입니다.

9. 하나님을 깊이 찬송

찬송가 '주의 도와주심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얼마나 이것이 하나님 찬송이요? 내가 이때까지 영육이 살아온 것, 예수 믿게 된 것 이게 전부 주님의 도와주심으로 왔어. '주의 도와주심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앞으로 미래도 주님의 도와주심으로 천국 가는 이것이 얼마나 깊은 찬송입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진 우리를'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것도 하나님 배반한 것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 하시려고 보혈 홀려 주셨네' 이것 뭐 하나님이 이 찬송하면 얼마나 기뻐하고, 찬송의 뭉텅이라. 참 하나님 찬양만 순전히 뭉쳐 있는 덩어리라. 이런데 이런 거는 재미가 없어. 뭐 지뜩재뜩 자꾸 이래야 돼져야 되지.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이것도 주님의 이 귀한 대속의 은혜를 받았으니 일생 동안 주님에게 이 대속의 은혜의 빚에 팔린 주의 종입니다. 하는 것이니까 이것이 얼마나 깊은 찬송이요?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맵소서' 주의 은혜가 뭐입니까? 은혜가 진리, 영감, 피가 주의 은혜 아닙니까? '진리로 나를 묶어 주옵소서. 영감으로 나를 묶어 주옵소서. 사죄 칭의 화친으로 나를 볼끈 묶어서 꼼짝 못 하게 거기에 매여서 꼼짝 못 하게 해 주옵소서.'

'우리 마음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우리 마음은 연약해서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 인을 도장을 꼭 찍어서 '이거 하나님의 것이라 도장을 꼭 찍어서 마귀란 놈이 손대지 못하도록 이렇게 해 주옵소서' 하는 이 찬송이 얼마나 하나님을 깊이 찬송하는 것인지 참 측량 못할 그런 찬송입니다.

10. 하나님을 미워하는 찬송

이런데 이런 찬송도 이래 하면 뭐 재미가 없으니까 그 신명을 좀 둬야 되겠다 말이오. 그러니까 마귀란 놈이 어찌 됐던 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제 좋게 하느냐? 하는 것으로써 전부 신명풀이로 다 그만 옮겨 버리고 하나님 찬송한다 하는 것이 전부 하나님 미워하는 것이라. 자기 기분을 앞세우느냐? 하나님을 찬양을 앞세우느냐? 자기 기분을 앞세우면 뭐입니까? 자기 기분 앞세웠으면 하나님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어떻게 하는 것이요? 미워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렇기 때문에 기가 차는 것이라. 한번만 찬송 더 합시다.

‘찬송가 5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인애함을 항상 찬송합니다.

주의 도와 주심 받아 이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맵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11.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이번에 가르칠 공과가 이제 이것으로서 오늘로써 끝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를 뭘 보시는고 하니 마음과 그 뜻을 그것을 행위로 봅니다. 사람들은 마음은 어데 가 있든지. 자기 그저 이 수족의 행동만 하면 되는 줄 알지마는 행동보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마음을 더 가치로 봅니다. 뜻과 생각을 가치로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하나님 대접, 하나님은 더러워서 받지 않습니다. 물리칩니다. 이러니까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라 이랬으니까 얼마나 좋소?

지금은 안 그렇지마는 옛날에 시어머니는 자기 며느리는 아무리 잘 행해도 미워하고, 딸은 아무리 나쁘게 해도 예뻐하는 것이 그게 인간들 아니냐 말이요? 예를 들면 말이지. 여자들은 다 그렇고 남자들도 다 그래요.

하나님은 전부 다 가진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시요, 대주재신데 이렇게 능하신 분이 모든 것을 다 가지신 분이 '너 행동하는 데로 내가 꼭 그대로 갚아 주겠다' 행동 어찌 하면 좋게 할 것인고? 딱 성경에 딱 발표를 해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 '이래 살아라' 이래 살면 복 받는 것을 다 이래 했으니까 얼마나 우리에게 자유의 법이요, 그대로만 살면 뭐 얼마든지 복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천인 만인이 방해를 해도 이대로만 살면 복 받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방해하는 것은, 나 복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거기다 힘을 기울여서 그대로 살았으면 그만치 가치 있는 뭉텅이 무거운 복을 준다 말이오. 무거운 복. 큰 복을 주시오.

이런데 우리가 여러 주간을 가르쳤는데 아담 하와는 뭣 때문에 망했느냐? 자기 망했지 자기 대대손손이 다 망하지 안했소? 아담 하와의 멸망을 나도 받았소. 여러분들 우리가 다 안 받았습니까? 전 인류가 다 안 받았소? 이렇게 그 선조 된 사람, 우리가 다 선조 될 사람들 아니요? 나는 남의 선조가 됐고, 여기 지금 학생들 시집 장가 안 간 사람들도 곧 선조 될 사람들이라 그 말이오.

자식 낳으면 벌써 선조 아닙니까? 이러니까 자기 하나 잘못해서 자손 대대가 멸망을 받고 또 자기 하나 잘해서 자손 대대가 다 복을 받는다. 이래서 하나님에게 죄로 연결하면 대대손손이 망하고, 의에 연결하면 대대손손이 복을 받습니다.

12. 자손에게 죄와 죄의 삯을 물려주지 말자

이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못해도 자손에게 죄 삯은 물려주지 말자. 또 어쩌든지 힘을 써 죄를 물려주지 말자. 죄 물려주는 것과 죄 삯 물려주는 것이 달라. 죄 물려주는 것은 제가 죄 지은 것 가지고 그 자손도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라. 그것 본받거든. 원숭이 새끼는 누가 가르친 게 아니라 원숭이 닮고 꼭 원숭이노릇 합니다. 왜? 애미 애비에게 배운 것이 그뿐이고 뱃속에서부터 배워 나왔거든. 그게 죄 물려주는 것입니다.

또 죄의 댓가, 죄의 삯을 물려주는 것. 이거 하지 말자. 돈을 못 물려주고 공부를 못 시켜도, 이거 둘만 가지면 자손들이 잘 살 수 있습니까? 이놈 물려 줘서 자손들이 다 망한다 그 말이오. 우리가 의를 물려주고 내가 의를 행해서 그 뱃속에서부터 의를 행해서 의를 물려주고 이러니까 어떤 부인들은 아이 배기 전에는 자기가 벌로 이래 했지마는 아이 배고 난 다음에는 이것 지금 뱃속 교훈이 있다 하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조심해서 아이 밸 때부터 의를 그 자녀들에게 배어서 물려줄려고 애를 쓰고, 또 의의 삯은 축복이라 하는 그 의의 삯 축복을 물려줄려고 이렇게 애를 쓰지 않습니까?  

13. 복과 화에 대한 공부

그러니까 이것 간추려서 여섯을 말했다 말이오. 아담 해와가 어떻게 해서 망했나? 가인은 어떻게 해서 망했나? 아벨은 어떻게 해서 복을 받았나? 에녹은 어떻게 해서 복을 받았나? 다른 사람들은 아이 많이 낳고 오랫동안 살고, 그까짓 살아봤자 마지막에 죽는 것인데, 결말에 결산해서 볼 때는 다 실패했지 좋은 것이 뭐 있겠어?

노아시대도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째서 망해 버렸나? 어째 망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떻게 해서 망했습니까? 노아는 어떻게 해서 성공했고? 이것 간추려서 노아의 성공은 딴 것 없어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한 그것이 전부 복이 다 돼 버렸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들은 무엇이 멸망됐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멸망이 뭐이 멸망됐습니까? 자기 욕심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멸망 받았습니다.

이것 뭐 이런 것을 딱 가르쳐서 학생들 속에 박아 넣어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멸망 받는다.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행복 받는다.' 그것 아들네들 가운데도 겸손한 ‘셈’ ‘야벳’은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 오계명을 지켜서 부모에게 효성을 하고 이렇게 하니까 다 복 받았지마는 ‘함’ 이거는 불량하고 강퍅합니다.

애굽 사람은 어떤 민족입니까? 애굽 민족이라 하는 것은 애굽 민족이 따로 있습니다. 그 민족은 딴 민족인데 그 민족은 처음부터 강퍅한 민족이오. 불량만 지기고 돌아다니고 이렇게 죄만 전부 지었습니다, 죄는 애굽에서 거의 나왔다고 볼 수 있어요. 강퍅하고 악독하고. 자기 욕심 강하고 배짱 세고, 그게 들어서 자기 다 망쳐버렸다 그 말이오.

이것을 알기 때문에 그 뭐 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하던 그런 배짱자도 그런 것 다 꺾어 버리고 산다 그거요. 배짱을 꺾고 하나님 앞에 절절 매고, 하나님 외에는 나라를 두려워합니까? 공산주의를 두려워합니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안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까짓 것 두려워 안 하지마는 하나님 앞에는 뻘뻘 떤다 말이오. 그분이 주권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다음에 마지막에는 뭐입니까?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복을 받아 그렇게 큰 복을 받았는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 큰 복을 받았는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우리가 많이 배웠습니다. 롯은 어쩌다가 망했는가? 이런 것을 자꾸 가르쳐 똑똑 이것을 가르쳐 놓으면 심방하고 또 그 사람이 이래 넘어졌을 때에 다른 말 할 것 없습니다. 가서 '너 보자, 아브라함은 어떻게 배웠지? 롯은 어떻게 배웠지? 너 지금 생각하는 것과 걸어가는 걸음이 누구의 걸음이야?' 이러면 다 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뭐 다른 말 할 것 없습니다. 내가 권면하면 그것이 감정으로 한다고 이럴 터이니까 놔두고 아브라함과 롯 말을 해 주면 롯은 어떻게 살았고 아브라함은 어떻게 살았고 그 결과가 어찌 됐나? 하면은 성경이 말해 주는 것이니까 미워해 봤자 성경 미워하지 나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을 품어도 성경에 품지 나에게 품을 필요는 없어.

14. 성경을 평소에 가르치자

이러니까 성경을 지금 평소에 가르쳐 놔야 되지 사건이 그 말씀이 필요할 그때야 말하면 그 궤변이라고 공연히 끌어다 대어 사람을 지금 대적하느라고 그래 한다 이럽니다. 미리부터 성경 말씀을 가르쳐서 그 가르쳐 놓은 것이 필요한 때 그때 그 사람을 구원해야 되지 그때 가서 말하면 안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다른 교훈도 많이 할 교훈이 있으니까 이 교훈만 자꾸 또 해서는 안 될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오늘로 끝이니까 내게 소속했던 이 제자는 이 여섯 가지 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망한다 어떻게 하면 복 받는다 하는 이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이대로 살아서 자기 모든 생활에 이 말씀이 들어서 그 사람 생활을 지배하고 지도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할 의무와 책임이 내게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주일 안 가르치면 안 되겠다 이것이 속에 불이 붙어서 이것 안 배우면 안 되겠고, 이것 안 가르치면 안 되겠다. 이것 이래서 다 모아 놓고 가르쳐야 되겠다 하는 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돌아다니면 그들이 쭉쭉 따라오고 마귀란 놈이 꼼짝을 못한다 말이오. 그런데 그런 생각 없이 오늘은 이거 뭘 가르칠까 이렇게 아무 줄 것도 없는데 자꾸 오라 하면 되겠습니까? 이것이 필요하다. 네게 필요한 것 천천 금은보다 필요한 중요한 이런 보배 줄 것이 있다.

줄 것을 단단히 준비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서 그 사람에게 오라고 호통을 칠 수가 있다 말이오. 네가 이게 안 되면 뒈진다. 네가 텔레비젼 가지고 살 줄 아느냐? 부모 네들이 뭐 아무데 간다 하면 부모하고 딱 달라붙어서 그만 변론을 한다 말이오.

15. 성경이 흥하고 망하는 것을 이렇게 말씀했다

아담 해와가 이렇고, 가인이 이 짓해 이렇게 됐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래 됐고, 일반인들이 이래 됐고, 또 함이 이렇게 됐고, 롯이 이렇게 됐고, 이러니까 이거 다 망하고, 망하는 것을 쭉 말하고, 이래 망하고 행복 되는 것, '당신의 아들딸 망하고 행복 되는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는 것인데 이것은 안 하고 어데 돌아다니며 친척 집에 간다고 될 줄 압니까?' 이것을 파고든다 말이오.

'자, 성경이 이래 놨다. 망치고 싶으냐? 흥하고 싶으냐?' 이러면 그 사람이 부아가 나서 이렇게 막 이래 대항을 해도 하나님이 그러고 난 다음에 툭 무슨 일이 생긴다 말이오. '아이쿠 그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이 와서 그러더니마는 그 보응이 내게 닥쳤구나' 이 깨달을 수가 있다 그 말이오.

또 그러고 반감적으로 감정적으로 안 하고 '이렇고 이렇고 당신의 아들을 이렇게 이렇게 이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거 아들 잘되게 한다 하는데 어떤 사람이 싫다 하겠소?

뭐 삐뚤어지고 얄궂은 '햐, 그거야 이 면이 잘 생겼네. 그것 참 어떠냐? 그거 희망 있네. 그 말 그 놈 말하는 것 봐라. 그것 말 참 묘하게 대답하고 아주 지혜가 있게도' 저거 아들 좋다고 저거 딸 좋고 잘나고 희망 있다 해서 듣기 싫어하는 그런 인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 앞으로 잘되게 할려고 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속에 있어야 뭐가 되지. 그것 몇 달 동안 그 학생을 맡았는데 가서 말하니까 '나는 데리고 갈라요' 하면은 그거는 뭐이냐? 선생에게 그거는 흠점 있어 그렇지 흠점이 없으면 그렇지를 안 해요.

16. 김현봉 목사님의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님이 아현교희를 시무할 때에 그 교인들은 김현봉 목사님이 말하라 하면 '예' 하면 '예'하고, '가'하면 '가'하고 뭐 따라서 전부 백 프로 순종입니다. 이러니까 모두 말하기를 아현교희는 다 무식한 사람이 있었다고서, 무식한 사람.

'야 이 자식아' 내가 그랬어, 속으로. '야 이 자식아. 어리석은 놈아. 그분은 가르치는 권위가 있고 모든 지도자들이 거기 따를 수 있는 권위가 있기 때문에 많은 경험 가운데 그런 것이다. 네까짓 것은 아현교인들에게 가서 말해 봐라, 잘 듣는가?' 그 속에는 국희의원도 있고 그 속에는 사장들 많이 나왔어. 거의 사장들이라. 그 사람들 등신이라 그런 줄 압니까? 보니까 옳은 것이니 안 들으면 제가 화를 받았고 몇 번 화를 받았고 또 들어 보니까 복을 받았고 이러니까 그런 것이거든. 이러니까 가르치는 권리가 있어야 됩니다. 반사 선생님이 학생들 얼마 동안 가르쳐도 가르치는 권리가 없고 그 권세가 없으면 벌써 선생을 무시한 것이라.

선생이 저거 보기에 뭣인가 가치 없이 보여 지는 것이 있었고, 또 깔보이는 것이 있었고, 멸시할 만한 그런 것이 있어 그렇지 절대로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그대로 자기가 행했으면 그 학생들에게 권위가 너무 커서, 너무 커 올라가서 너무 지나치게 우상 될까 싶어서 겁이 나지 그렇게 멸시받지는 안합니다.

(결론)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

이래 해서 여섯 가지 이것을 오늘로 끝마칠 터이니까 뭣 때문에 망한다. 누구는 요래 망했고, 누구는 조래 망쳤고, 누구는 요래 성공했고, 누구는 조래 성공했고 하는 것 그것을 학생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속에 박아놔요. 각(刻)해 놔 버려요.

하나님 말씀은 뭐라 했소? 하나님 말씀은 뭐입니까? 하나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라면 이리도 능히 벨 수 있는 칼이라 그 말입니다. 이것 이 말씀이 속에 찔려서 박혀 버렸어 안 빠져나와요. 이러니까 그 뒤에 세상 학문을 암만 집어넣어도 이 말씀 안 빠져나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지막 죽을 때는 모든 세상 학박사 다 치워 버리고 이 말씀 앞으로 다 속에 박아 놓은 그 말씀이 그 사람을 지배해서 결국은 택한 자는 다 구원을 얻게 되고, 불택자들은 아예 이 말씀을 그들이 받지를 못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9. 2. 5. 주일 새벽)
정리: 김반석 목사(201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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