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일곱가지 거룩

2013.08.18 15:25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제목: 신앙생활에서 일곱가지 거룩
선지자선교회                 (오전설교)

본문: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서론)

1. 우리의 구원준비는 거룩과 경건

우리가 힘쓰는 것은 천국 가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고, 천국 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살 그때의 형편을 생각하고 수치스러운 구원, 벌거벗은 구원,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 이런 구원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물이 찬양하고 영광스러운 떳떳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가고 사람의 공로는 털끝만치도 가하면 더러워 가지 못합니다. 다만 이 구원을 얻은 중생된 성도들이 받은 구원을 힘입어서 이 열여섯 가지 구원을 자기가 잘 보수해서 살면 영원한 나라에 가서 하나님은 기뻐 영접하고 만물들은 존대하고 소망하고 자신에게는 떳떳한 온유와 평강의 영생이 되기 때문에 지금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구원 준비는 거룩과 경건 이 두 가지로 준비가 됩니다. 주일학교도 여러 주간을 이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2. 신앙이 잠자는 사람과 깨어 있는 사람

사람들이 세상을 자기 살 곳인 줄 알고 살 준비하는 사람도 신앙에 잠을 자는 사람들이요 또 세상에 접하는 모든 것을 취하여 자기 것 삼는 것이나 자기가 소비하는 것이 되는 세상인 줄로 알고 사는 것도 신앙에 잠자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혹은 몇 십 년 뒤인지 그 날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지를 안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 예배 보다가 떠날는지도 모릅니다. 또 주님의 재림도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떠날 사람인 것과 우리는 이 세상에서 떠날 세상이라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떠날 자로 떠날 준비하는 것이 그것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3. 접촉하는 수많은 종류의 그 모든 것들

접촉하는 수많은 종류의 그 모든 것들은 그것을 내 것 삼으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니고, 또 내가 그것을 내 욕심대로 취하여 소비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니고, 그런 것을 접하면서 거기에서 거룩과 경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접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기에 대해서 너는 마음을 어떻게 가지며 몸을 어떻게 가져서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된다 하는 것을 영감의 도리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그 현실에서 실행해 보는 것입니다. 실행하면 처음에는 서투르기 때문에 혹은 십분지 일이 맞고 십분지 구가 틀릴 때도 있고, 점점 그런 현실에서 노력하면 차차 십분지 오는 맞고 오가 틀리고, 다음에는 십분지 구가 맞고 십분지 일이 틀리고, 어떤 사람은 십의 십이 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이 성별하는, 깨끗게 깨끗게 구별하는 이 구별하는 진리의 도리에 딱 들어맞게 되는 그 생활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4. 거룩을 연단

이래서 거기서 자기는 거룩을 연습하고 연성하고 연단 받아서, 연단 받는다 말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려고 하니까 장애물들이 많습니다. 어떨 때는 강한 권세가 협박으로 사형으로 장애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사는 이 거룩을 양보치 않고 그런 것들과 서로 흥정해서 요새 말로 빳다제로 그렇게 에누리하지 않고 정확히 주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그 거룩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입니다.

이렇게 노력하면서도 혹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자기 위해서나, 혹 어떤 사람을 위해서나, 자기를 좋아하는 부모가 좋아하니 부모 위해서, 남편이나 처자가 좋아하니 그를 좋게 하기 위해서, 모처럼 거룩의 행위를 할지라도 그 목적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는 경건이 되지 안하고 잡것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접촉되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것 저런 것 바꾸어 가지도록 현실을 주시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은 오직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주님 혼자 우리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지 현실이 만들어질 때는 수많은 피조물들이 다 거기에 등용이 되지마는 그것들은 아무 권리 없습니다. 이런데 우리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 거기에 등용된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나 그런 것에게 감사하는 것도 정신없는 자요, 미워하는 것도 정신없는 자요, 두려워하는 것도 정신없는 자라.

그것은 주님이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거기서 나는 거룩한 행실을 해보려고 거룩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을 하다가 기회가 지나버리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 그런 기회를 한 번 더 주시면 내가 그렇게 살아 보겠습니다’ 이래서 두 번 세 번 몇 번이든지 중복시켜 주시는 것은 그런 종류의 그 현실에서 만들 거룩을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재시의 기간을 주시는 것인 줄 알고 노력하고, 방해해도 연단해서 정금같이 깨끗이 연단한 그 연성의 거룩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5. 자는 사람, 육체의 사람, 짐승 같은 사람

이것을 모르고 그저 많이 주어 끌어 모아 가지고서 ‘나는 지금 몇 억 재산이다. 나는 어떤 지위와 권세를 가졌다. 나는 명예가 몇 나라에 지금 번져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 것들만 보고 사는 사람은 다 성경에서는 “자는 사람들이요” “육체의 사람이요” 다 “짐승 같은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 데서 자기는 거룩과 경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본론)

1. 일곱 가지 거룩

이래서 오늘은 제가 설교를 하려고 해도 이 설교 할 것이 아니다 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많이 했으나 결국은 내가 이것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는 제가 오늘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가지고 여기에 대해서 생각하던 내 생각을 여러분들에게 그저 전하는 것뿐입니다.

일곱 가지인데,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거룩을 가져야 되겠다. 일곱 가지에 대한 거룩이라는 것은 구별인데 구별을 가져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이 돼서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간증입니다.

2. 거룩이라는 것은 두 가지 하는 것

거룩이라는 것은 수많은 가운데에서 내가 두 가지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운데에서 거기서 두 가지를 내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수많은 가운데서 내가 가지지 안할 것 내게 필요 없는 것을 다 제거하는 일을 우리가 하나 해야 됩니다.

거기서 ‘이것은 좋기는 좋다마는 내게는 상관없다. 이것은 참 못 쓸 것이고 하찮기는 하찮지마는 이것은 내가 가져야 되지 버릴 수는 없다.’ 자기가 버릴 것 자기가 취할 것 이 두 가지를 잘 구별해서 버릴 것을 버리게 되면 거룩이 된 것이고 자기가 취해 가질 것을 가지게 되면 거룩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가 좀 우스꽝스러운 것 같지마는 제가 새벽부터 생각하던 것을 여러분들 앞에서 간증을 합니다.

1) 첫째는 자는 것

제일 첫째는 자는 것입니다, 자는 것. 제가 생각하니까 제일 제게는 중요한 것이 자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원하기는, 김현봉 목사님은 언제든지 여섯시면 잡니다. 여섯시면 뭐 여름이나 겨울이나 여섯시면 그만 불 끄고 잡니다. 저는 그 일을 못 합니다. 이래서 아홉시는 자야 되겠다, 아홉시는 자자하고서 해도 그것이 며칠 안 가서 또 해이해지고 안 됩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제가 이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여덟시로 이제 작정을 하고 무조건 여덟 시 되면 불을 꺼 버려야 되겠다. 여덟 시 되면 그만 소등을 해서 불을 탁 끄고 난 다음에 그리고 난 다음에 불 끄고 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뭘 하든지 하려고 하면 그때는 모든 어지러운 것이나 또 미혹되는 것이나 그런 일은 단절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져서 저는 자는 것은 여덟시에 자고 여덟시부터 자서 네 시에 일어나면 여덟 시간 됩니다. 아홉시 열시 열한시 열두시 한시 두시 세시 네 시, 그러면 여덟 시간 됩니다.

여덟 시간 되는데, 네 시에 일어나면 그때에 제가 하는 운동이 있으니까 운동하면 사십 한 오 분 걸릴 것이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제 새벽기도 나오고 그리하면 제가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일주간 동안에 열한 번 예배 인도를 할 수 있겠다 하는 것을 그렇게 확실히 계산상으로 따져서 확실하면서도 늘 실행을 못 합니다.

그래서 늦게 자는 거기서 그 이튿날 아침에는 나올지라도 거기 밀려서 그 다음에 못 나오게 되고, 또 나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고 방해가 돼서, 저로서는 제 신앙생활에 전 실패가 자는 데 있다, 잘못 자는 데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판정을 했기 때문에 제일 첫째 문제를 자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이래서 자는 데에 구별해서 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여덟시에 등을 끈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나 혼자 깜깜한 데 빈 방에 있으니까 그때는 내가 좀 명상할 것을 명상하겠고, 또 여러 가지로 돌이켜 회개할 것도 하고, 계획할 것도 계획하고, 그렇게 하다가 이래 피곤해서 잠들면 그것은 몇 시에 잠이 들는지 모르지마는 어쨌든지 여덟시에 나는 등불을 꺼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생각했었습니다.

이래서 제 실패는 잠을 잘못 자는 데에서 모두 원인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여덟시만 자면 내가 일 년 열두 달 동안 일주간에 열한 번 설교하는 일은 족족히 하겠다 하는 그것이 확실히 결산이 나서 경험도 있고 체험도 있는데도 그 일을 하지 못해 실패해서 제가 오늘 새벽부터는 너무 참 한심스러워서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잠자는 데 대해서 제일 먼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거룩생활에는 양면

그런데 우리가 거룩 생활 하는 데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해야 되는데 양면이 있다 말은 일면 뭐인고 하니 안 할 것입니다. 안 할 것. 이것은 내게 해당치 안하니까 이것은 나와 상관없으니 버려야 되겠다, 한 면은 버리는 것이고 한 면은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거룩을 가지려고 할 때에는 어쩌든지 자기가 무슨 것에든지 이상점인 점, 아주 좋은 점, 아주 이상점으로 결정을 하지 마십시오. 아주 결정할 때에 말단으로 결정을 하십시오. 이것은 안 하면 안 된다 하는 그 정도에서 결정해야 되지 ‘이렇게 하면 참 좋겠다. 이것은 참 좋겠다.’ 자기가 이상점을 결정했다가는 판판이 실패하고 맙니다.

결정할 때에 가장 말단의 점에서 결정을 해서 ‘이것은 안 하면 죄 된다’ 하는 거기서 결정을 해 가지고서 그 일을 그대로 한번 실행을 해 보면 그대로 실행이 된다면 대성공입니다.

거기서도 실패가 됩니다. 실패가 돼도 실패가 적고 성공이 많으면 성장될 수가 있지마는 잘못 계산해서 실패가 많고 성공이 적으면 낙망되고 절망돼서 그만 실패되고 맙니다. 이래서 최소한으로 이 거룩을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자는 것도 ‘나는 이 시간에 자기 시작하고 불 끄고 자는 것으로 결정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결정을 할 때에 자기가 ‘이러면 이상적으로 좋겠다’ 해서 자기 정도에 그 이상적인 아주 ‘그러면 참 잘 됐다' 할 만치 그런 점에 하지 말고 ‘것은 내가 이 시간부터 자기로 한 이것은 이 시간에 안 자면 그 전부는 다 죄다. 그건 전부가 다 죄로 나타나고 전부가 다 실패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시간에는 안 자면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시간을 자기의 자는 시간으로 구별해서 자는 데 대해서 그것을 구별해 가지고서 작정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 하나님을 위하는 경건

자기 가정에서는 그럴 것이고, 또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도 그럴 것이고, 또 여기 저기 활동하는 사람들도 ‘나는 자는 것은 꼭 한 군데만 작정하겠다. 나는 한 군데서만 자겠다. 나는 아무래도 한 군데서만 자지 못하고 나는 두 군데서 자겠다.’ 또 ‘나는 두 군데만 아니라 세 군데서 자야 되겠다' 예를 들면 ‘집에서 자야 되겠다. 혹 교회 와서 철야 기도도 할 때가 있겠다. 또 산에 가서 산기도 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는 또 산에서 자야 되겠다.’ 그런 것을 미리부터 다 구별해서 확정을 지워 놓고 그 범위를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그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기지 안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그 일이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것이 주를 위함입니다.

그것을 주를 위해서 그렇게 해서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감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요 그렇게 하는 그것은 경건이라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것을 지키지 안하면 하나님을 내가 위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내가 배반하는 사람이 되고 그것을 지키면 하나님을 위하는 그 경건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 잠자는데 대해서 구별

이렇게 해서 꼭 잠자는데 대해서 우리들이 구별을 해서 확정을 지우고 단정을 하고, 하되 최소한으로 단정을 해 놓고 아주 그것은 안 하면 죄가 되고 ‘그거야 하기 쉽다. 그거야 할 수 있다.’ 그 안 하면 죄 된다는, 죄 되는 거기서 끊어서 죄가 겨우 안 되는 그 정도에, 죄는 안 되는 그 정도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이행해 나가면 잘 감당도 할 수 있고 성장돼 갈 수 있습니다.

이래서 자는 것을 우리가 거룩으로 확정합시다. 그저 뭐 형편 되는 대로 다섯 시도 자다가, 열시도 자다가, 열한 시도 자다가, 열두 시도 자다가, 테레비나 보고 이러면 그만 새로 한시도 자다가 자꾸 이리 되면 자는 것이 이게 거룩이 되지 못하면 모든 생활은 다 실패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자는 데 대해서 장소도 ‘나는 거기 가서 자니까 내가 더러워진다. 내가 거기는 발을 끊고 안 가야 되겠다. 거기 가는 것은 곧 내가 함정을 찾아 들어가는 사자와 같다.’ 아무리 사자가 용기 있지마는 함정에 빠져 놓으면 저는 죽지 뭐 별수 없이 가죽 껍데기 벗겨지고 저는 죽습니다. 암만 맹수고 용수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함정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나는 이것이 함정이다. 나는 이 자리서는 안 자야 되겠다.’ 이것도 확정돼야 될 그런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는 장소, 또 자는 시간, 그런 것을 우리가 평소에 구별하면서 정해 놓으면 그때는 정상의 정신 가지고 정하기 때문에 정할 수 있지마는 마귀에게 끌리기 시작하면 자면 죽는 곳에도 자게 됩니다. 또 자지 못하면 신앙생활이 다 파괴되는 그 시간에도 또 자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평소에 정해 놓지 안한 장소에 기도하러 간다고 이래 가면 그것도 거룩은 깨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예 평소부터 잘 깊이 생각해서 자는 곳과 또 자는 시간 이 두 가지를 꼭 확정짓도록 합시다.

2) 둘째는 먹는 것

둘째는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은 경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먹는 그것은 곧 경제와 관련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니 나는 하나님 앞에 일곱 가지 도적질하는 그 도적질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소유권 도적질 두 가지 용도 도적질 다섯 가지. 일곱 가지 도적질을 회개하고 난 그것이 자기의 가진 그 생활비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 구별해서 ‘나는 보자. 일곱 가지 도적질을 이것을 다 벗어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바로 이것이 내가 도적질한, 도적한 저주 뭉텅이가?’ 이것을 잘 구별해 가지고 자기의 생활 경제에 대한 확정을 지워야 되겠습니다.

‘나는 이것 가지고 살아야 된다. 이것이 나 살 것이다.’ 하는 것을 확정을 지워서 가족이면 가족끼리 모여서 확정을 짓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나는 이 경제를 가졌는데 내가 부모를 모셨다. 내가 처자를 거느렸다. 내가 또 이 교회 사회, 사회 사회, 내가 여기에 내 위신이 어떤 위치에 있다. 내 가족 외에 모든데 대한 내 의무와 책임과 본분이 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할당하려고 할 때에 여기는 얼마 저게는 얼마, ‘그러면 나는 중등 생활해야 되겠다’ `고등생활 할 수 있다’ ‘아주 하등생활 할 수 있다' 아무리 하등생활이라도 영양실조가 되면 그것은 범죄 하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렇게 될 때에는 자기는 다른 일곱 가지 도적질 하는 그것을 죄를 범한 자이기 때문에 도적질 안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건 정당한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다 저주와 멸망을 받았다” 하는 것과 같은 그런 멸망 받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저는 서서히 도적질을 회개해서 정리돼야 되지 그것을 서서히 하지 안하고서 그래 하면 저는 굶어 죽기 때문에 안 됩니다. 이래 이런 것도 잘 구별해서 성경 말씀을 상고해서 잘 구별해서 경제에 대해서도 경제생활 먹는 것은 경제생활이니까. 공부하는 것보다도 먹는 것이 중요하고, 의식주라 하지마는 입는 것보다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식하는 사람들은 ‘한 때 굶는 것은 몰라도 벗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안다. 이러기 때문에 굶어도 입어야 된다.’ 하는 그것은 잘못된 오산의 그 착각입니다. 입는 것보다는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못 입어도 먹어야 됩니다. 그래야 삽니다.

이러니까 일곱 가지 경제 도적질한 이것을 자기가 잘 살펴서 회개를 하고 남은 것, 씨와 양식으로 줬다고 하는 그 양식 그것이 자기가 생활비니까 그렇게만 쓰면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안하고 어떤 자는 아이도 안 낳아 놓고 ‘이제 아이 낳으면 다 교육비가 있어야 되니까 지금부터 교육비 저축하자’ 이렇게 자기 생활비를 그래 해도 죄 짓는 것, 또 아닌 것을 그래 해도 죄 짓는 것. 그때그때 꼭 성경대로만 살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일곱 가지 도적질 회개해서 자기에게 해당된 것은 “먹을 양식을 준다” 자기 양식 자기가 먹는 것이 자기 생활비입니다.

이렇게 구별해서 하면 하나님이 담당하기 때문에 얼마가 들어도 될 때는 또 하나님이 얼마든지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그분이 우리로 더불어 서약했기 때문에 이 계약을 지키는 자에게는 결단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나는 전 생활비가 얼마다. 이런데 나는 나 혼자가 아니고 부모가 있다. 또 부모만이 아니고 또 처자가 있다.’ 그러면 그것을 생각해서 계산하고, ‘또 나는 이 교회에 대한 의무가 있고, 사회에 대한 의무가 있고,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다 똑똑히 계산해서 ‘나는 중등생활, 하등생활, 상등생활 이것이 나의 생활이다.’ 그렇게 그것을 구별해서 먹는 것 이것을 잘 구별해서 거룩이 돼야 신앙생활이 되지 이것이 거룩이 안 되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은 지탱해 나간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그 사람이 실패가 되는 그 실패는 실패라고 알고 난 다음에는 방비가 안 됩니다. 거기서 다시 그것을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그만 거기서 망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신앙 실패는 경제 실패요 경제 실패는 신앙 실패라. 신앙 성공이 경제 성공이요 경제 성공이 신앙 성공이라. 신앙과 경제는 하나이라.’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똑똑히 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둘째로 먹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잘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저는 이 먹는 데 대해서 내가 수십 년을 연구해도 아직까지 여기에 대해서 내가 성공을 못 하고 있습니다. 성공을 못 하고 있는데 요새도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전에는 허욕을 가졌고, 왜 허욕을 가졌는가? 이것 귀찮아서 그만 저 논두렁에 가 가지고서 소 모양으로 그만 풀이나 한 주먹 이래 자꾸 그만 뜯어먹어서 먹어버리고 나면 그만 그 다음에 그만 문제가 없게 되면 되겠는데 이거 뭐 어떻게 까다로운지. 또 하필 하나님이 장을 거석해 놔서 다른 사람하고 이래 먹으면 나는 모르고 먹으나 그만 당장 알고 그만 설사 나고 그만 배가 끓고 야단이 납니다. 이러면 내가 할 수 없어 그것을 안 먹습니다.

이래서 요새 내가 지금 연구하는 것은 송 목사님에게 ‘송 목사야, 너 지금 자취를 잘 한다 하는데 너 자취법을 좀 나한테 가르쳐 달라. 내가 너한테 배워야 되겠다.’ 그래 저 먼저께 쭉 써 가지고 왔습디다. 써 가지고 왔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것을 미국 가서 잘 알고 하니까 했는데 나는 그걸 익히지를 못하겠습니다. 그거 익히지를 못해서 이제 요새는 지금 공부합니다. 그 외우려고 말이지. 떡 쓴 걸 외웁니다. 외워서 요새 나는 그것 하나 샀어요. 전자렌지인가 뭐 있다 하는데 그전에는 아이들이 사다 준 것을 필요 없다고 사 년인가 오 년인가 묵혀 둬 버렸습니다. ‘이거 못쓴다.’ 이것 거추장스러워 내던져 버렸다 말이오. 내던졌더니마는 또 이제 ‘내버릴려면 그것 뭐 쓰기 때문에 그렇지요.’ ○○○집사님이 가져갔습니다.

그래 또 사택에서 그거 누가 사 준 사람이 있다가서 ‘그것 어데 오층에 있으면 좀 가져가 쓰면 좋겠다.’ ‘야, 그거 내버렸다. 그러면 그거 딴데 가 있다.' 이러니까 ○○○집사님이 그 소리 듣고 ‘우리 집에 와 있는데 고쳐 쓰니까 되니까 갖다 쓰라’고. 거기 갔는데. 그래 그것 나는 뭐인지 몰랐습니다. 요새 내가 인제 송 목사님한테 그것을 배웠습니다. 전자렌지 이것이 있으면 되겠다.’ 그 전자렌지를 사다 놨습니다. 사다 놓고 이제 또 ‘냉장고가 있어야 된다’ 냉장고도 이제 커다란 것 하나 사다 놨습니다. 하나 사다 놓고 이래서 이제 그래 놓고, 하는 것 자꾸 배워서 이제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일하고 내가 할 것은 내가 해야 돼지지 이래 놓으니까 안 됐어서 인제 우리 밥해 주는 분들은 수고해서 그것만 하고 나는 내대로 자유로이 좀 이래 해야 되지 이거 자꾸, 내 손으로 해야 좋을 것인데 남의 손을 내 손을 만들라 하니까 까다롭기는 까다롭지 이래 놓으니까 영 불편합니다. 이래서 나는 이 먹는 문제가 내게 대해서는 참 제일 고통입니다. 이래서 지금 수십 년 연구해도 이것을 잘 못 합니다. 이랬는데 이번에 또 이제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그

○ 혈육과 신령

이제 셋째는 뭐이냐? 처음에는 왜? 목사님이 자는 것 먹는 것 그런 것을 말하는가? 그것이 성경적이라요. ‘첫째는 혈육이요 다음에는 신령이라’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육체의 것이 되고 그 다음에 신령한 것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육체의 것부터 이것 구별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신령한 것을 구별해야 되겠다 이래서 먹는 것 자는 것 이것 단단히 기억하고 여기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가지고서 먹는 것과 자는 것 이것이 똑 바로 된다고 하면 남은 생활을 바로 한다는 것은 그것 뭐 놀기요. 제가 이 말을 한 지는 벌써 한 근 삼십 년 이 말 하기는 했지마는 지금 아직까지 정확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셋째는 영감 도리를 먹는 것

셋째는 영감 도리를 먹는 것을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영감 도리라면 성경 말씀이요 영감입니다. 영감 도리를 먹는 것을 이것을 구별해야 되는데 영감 도리는 내가 어떻게 먹을까? 성경을 먹어야 살겠고 영감을 먹어야 사는데 성경 먹는 것은 어떻게 먹으며 영감 먹는 것은 어떻게 먹을까?

저는 내게 힘 있는 전부는 삼분을 해 가지고, 세 동가리를 내서 제일 먼저 한 동가리는 성경 읽고, 재독을 듣든지 성경 읽고 듣고 명상하는 여기에다가 삼분지 일은 힘을 기울이고, 성경 읽고 먹고 명상하고 이래서 깨달아지면 내 양식이 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기울이고, 나머지기 둘은 하나는 하나님과 나와 모든 형제들 관계점에 대한 이 문제가 있으니까 이 기도에 기울이고, 또 삼분지 일은 말씀 증거에 기울이고, 그래서 세 동가리로 내서 그 삼분해서 쓸려고 하는데도 자꾸 도적을 맞습니다.

성경 이 먹는 데에 그만 먹지 못하고 뺏겨버리고, 기도하는 데 뺏겨버리고, 말씀 증거하는 데는 잘 뺏기지 안합니다. 그것은 증거하면 오히려 시간을 너무 많이 차지해 탈이지. 이런데 다른 데는 이것 뺏기는 것이 어떻게 많은지? 이래서 성경 먹는 일에서 방해물이 많습니다. 방해물이 많은 것, 하려고 하면 이런 방해 저런 방해 모두 다 성경을 먹을라 하면 전화가 다를 때보다 삼배나 사배나 더 옵니다. 전화기 딱 놓으면 놓자 또 따르륵거립니다. 놓고 손도 안 떼요, 놓으려고 딱 이라면 따르륵거려. 이래서 이제 그만 성경을 보다가 지쳐서 ‘아이 그만, 그만 하자.’ 하면 전화 안 옵니다. 마귀 그놈이 잘 알아요. 그러기에 저희 딴에는 할 일 하러 뭐 전화한다 하지마는 나로서는 이것 ‘내게 성경 보는 것 방해하는 이거 마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래 놓으니까 하도 그래 쌓으니까 내 옆에 가까이 오는 사람들은 전화를 잘 못 해요. 전화하면 그 소리 들을까 싶어서 전화를 잘 못 하고 주저하는데 그래 전화해도 그만 끊어 놔 버립니다, 제가 못 하도록.

이래서 성경은 나는 어떻게 볼 것인가? 그 성경 보는데 대해서 시간도 장소도 형편을 잘 연구해야 될 것입니다. ‘나는 일 다 하고 와서 성경 볼라 하면 안 되니까 나는 일하면서 부엌에 일하면서 성경 놓고 또 이래 한번 보고서 또 그것 이래 일하면서 외우면서 또 그것 외우고 난 다음에 또 외우다 못 외우면 또 한 번 보고 또 외우고,’ 또 일하는 사람도 일하는 옆에 성경 펴 놓고 일을 하면서 또 보고 또 외우고 보고 또 외우고, ‘나는 일하는 데서 성경 봐야 되겠다. 나는 그 시간도 못 낸다. 자꾸 다른 사람하고 대화하고 이러니까 안 된다. 나는 그러면 버스 타는 시간을 나는 성경 보는 시간으로 삼아야 되겠다. 나는 밥 먹는 시간을 성경 보는 시간으로 삼아야 되겠다.’ 아무래도 잠자는 시간은 성경 보는 시간 하면 안 됩니다. 잠자는 것이 더 중하기 때문에, 앞섰기 때문에 안 됩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해서 성경 보는 시간을 혹은 길을 가면서, 일을 하면서, 혹은 버스를 타고서, 또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니까 성경을 읽지는 못하고 이 시간밖에는 ‘나는 하루 종일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기 때문에 이 얘기하는 시간밖에는 성경 볼 시간이 없으니까’ 얘기하면서 속으로는 성경 외웁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소리 내면 그 사람에게 실례이기 때문에 소리 안 내고 속으로는 지금 읽으면서 얘기를 합니다. 얘기하다가 그러다가 그만 얘기하든지 말든지 그러다가 잠 오면 그만 자 버리고, 그러면 얘기하는데 누워 자니까 싱거우니까 그 사람 가 버리고, 싱거워 가 버리면 가 버리지 딴 것 못 할 게 뭐입니까? 이래서 자기로서는 성경을 먹을 수 있는, 영감 도리를 먹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언제며 장소가 언제인가? 이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되겠는데 시간과 장소를 잘 구별해서 성경 먹는 데에 거룩을 가져야 되겠고, ‘나는 이제 그 장소와 시간에서 성경책을 봐서는 안 되겠다. 나는 그럴 때 그걸 외우는 것으로 자꾸 외우고, 나는 외우는 것으로 성경 봐야 되겠고, 외운 것을 또 다를 때는 속으로 얘기하면서 속으로 외우고 이래서 어찌 됐든 간에 나는 성경 보는 시간이 자유가 없지, 또 장소가 자유가 없지 이러면 나는 이중 삼중으로 일을 하면서 대화를 하면서 성경을 외우는 것으로써 나는 성경을 먹어야 되겠다.’ 그것이 성경 먹는데 대해서 자기로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그것을 최소한으로 그것도 정합니다. 최소한으로. ‘이렇게 하면 이것만큼은 되겠다’ 정해 놓고 그 일을 양보하지 말고 그 일을 하되 내가 이것 성경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경건이라는 것을 알면 힘이 나옵니다.

‘내가 이렇게 작정한 이것이 나를 구속하신 만유주의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데 내가 이것을 안 하는 것은 하나님 위한다는 것이 다 거짓부리니까 이것 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 위하는 것이다. 내가 성경 먹는 이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이다.’ 하나님 위하는 경건이라는 것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거기서 지켜지는 힘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4) 넷째는 기도하는 것

그 다음에 하나만 더 하고 그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입니다. 기도도 ‘나는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야 되겠다. 나는 저녁 먹고 나서 얼마 동안 기도할 수 있다. 또 아침 먹고 나서 기도할 수가 있겠다. 점심 먹고 나서 기도할 수가 있겠다.’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자유의 시간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살면 차차차 그런 시간이 없어집니다. 없어져서 마지막에 기도는 ‘나는 앉아서 기도하고 또 이렇게 하는 기도 시간 이것 가지고서는 내 기도는 어림도 없다. 다 못 하겠다. 이러니까 내 기도는 일하면서 기도, 또 피곤할 때는 누워서 기도, 또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면서 기도, 길 가면서 기도, 내 기도는 그런 모든 시간을 사용하지 안하면 내게 부담된 기도를 내가 다 하지 못하겠다.’ 사무엘이 말하기를 “내가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는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이것도 하나님이 책임지우니까 책임지운 그 일과에 기도가 만일 그날 다 했다고 하면 몸이 거뿟하게 참 아주 무거운 짐 졌다가서 벗은 것과 같이 아주 가벼워집니다.

이러니까 그것 못 하는 날은 그 앉아서도 짐이요 누워도 짐이요 장 피곤한데, 이제 그러니까 이 기도는 ‘나는 아무래도 어느 시간을 이용해야 되겠다’ 이 시간을 자꾸 짜다가서 ‘아무리 시간을 짜도 이 기도할 시간은 없다. 나는 이 기도를 다 할라 하면 길을 가면서 해야 되겠고, 밥을 먹으면서 해야 되겠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하면서 해야 되겠고, 하나만 해서 안 되겠고 나는 이중이나 삼중이나 이것을 하면서 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한 몸뚱이 가지고 하나로 가지고는 안 되겠고 몸은 한 몸뚱이지마는 나는 두 갈래로 갈라야 되겠다, 세 갈래로 갈라야 내가 이 사명은 내가 감당하고 본분을 하겠다.’ 이렇게 해서 기도는 최후적으로서는 제일 시간 없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외부에 다른 사람과 접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쩌든지 모든 것 하면서 자기의 전 깨어 있는 시간이 다 기도 시간이 다 되어지지 안하면 감당 못 하는 그것이니까 그 시간만 하면 감당할 수 있고, 그러면 또 잘 때도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그만 부탁하고 자면 그 잘 때도 역연 기도하는 잠이 되고 맙니다.

(결론)

1. 가까운데서 부터 거룩을 마련

이래서 우리가 거룩을 자꾸 이래 챙기려고 하는 데에 거룩과 경건을 마련해야 되겠는데 이 거룩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실지의 이 가까운데서 부터 이것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해서 제가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뭐 간단하게 그저 하나만 예를 들어 말했기 때문에, 하나만 예를 들어 말했으니까 천인 만인이면 천인 만인의 형편과 사정이 각각 다르니까 자는데 대해서도 천인 만인의 방편이 다를 것입니다.

2. 4가지 거룩

자는데 대해서, 먹는데 대해서, 성경 양식 먹는데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오전에는 이 네 가지하고, 오후에는 또 세 가지를 계속해 증거 하겠습니다.

이 네 가지 배웠으니까 이제 앞으로 이 네 가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는 이 거룩, 하나님의 날에 우리가 다 구원이 되어지는 이 준비는 거룩과 경건인데 이 거룩이 되고 경건이 되는 것을 자는 데에서, 먹는 데에서, 성경 먹는 데에서, 기도하는 데에서 이 네 가지에서 거룩과 경건을 마련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그저 딱지만 떼서 여러분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잘 연구해서 물샐틈없이 잘 조성을 해서 아주 보기도 아름다운 예술품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줘도 아주 예술품이 돼서 다른 사람이 보고 야 그것 좋다, 아름답다 하는 예술품이 되고, 자기에게도 굉장히 편리한 아주 보배가 되어지고,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잘 이루는 그런 아주 비결이 되어지도록 그렇게 연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감사합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들이 자칫하면 큰 것을 생각하고, 남의 것을 생각하고, 자기와 상관없는 데에서 마귀에 유혹받아 헤매다가 우리 자신에게 봉착된 이 실상에서는 다 기회를 놓치고 얼지기 쉬운 것을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전 생활에서 이 거룩을 마련하고 마련한 대로 거룩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여러 가지 어려움 있으나 이것이 곧 경건으로 주님을 위함인 것을 확실히 깨달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능히 다 이루고 남음이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자는 것, 먹는 것, 또 영의 양식, 또 기도하는 것 여기 대해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 앞에 간단하게 작정한 것도 있겠고, 또 집에 돌아가서 심심히 생각하여 정확하게 모든 것을 다 판단해서 과거를 궁구하여 미래를 확실히 단정하고 확정지우고 이 일을 기어코 라도 이루는 가운데서 주님도 만나고 자신도 만나고 세상이 무엇이라는 것도 깨닫고 우리에게 선포해 주신 세세토록 있도다 하신 주의 말씀의 이 능력과 약속의 신실함도 체험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산 신앙을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구출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이제는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만유의 주를 아버지로 삼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이 염려 말고 모든 것을 주님에게 다 고하여 의논하여 바른 지도도 받고, 또 부족한 것을 도움도 받고, 모든 어려운 것을 다 방어하여 대신 방어하여 주심도 받아서 평강 가운데서 염려 없는 세상 남은 생활을 하여 구원을 잘 이루어가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남녀종들에게도 형제를 구원하고자 하는 이 사랑의 불이 점점 뜨거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 바쳐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의 사랑의 그 뜨거움의 능력이 저희들 속에도 점점 불붙어 뜨거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 설교: 백영희 목사(1987. 9. 27. 주일오전)
- 편집: 김반석     (2013. 8. 18)


* 오전 설교에서 거룩 일곱 가지 중 네 가지를 설교하셨고 세 가지는 오후 설교에서 하셨기 때문에 아래에 오후 설교를 첨부합니다.


■ 제목: 신앙생활에서 일곱가지 거룩
                 (오후설교)

본문:(벧후3:11-13)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서론)

1. 우리 신앙생활에서 일곱 가지

오전에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일곱 가지를 들어서 말씀했습니다. 어찌 들으면 우스운 소리같이 들리지마는 실상은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일곱 가지에서 성공했고, 또 모든 사람이 이 일곱 가지에서 실패했습니다. 이 일곱 가지를 중요한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까지 그 사람은 철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경험 없는 사람이요 벌판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무심히 생각하고 마지막 죽을 때야 비로소 약간 깨닫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도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아무런 마음 깊이 느낌이 없이 세상을 끝마치는 그런 사람들이 대개 많습니다.

일곱 가지 중에 첫째는 자는 것, 둘째는 먹는 것, 셋째는 영감의 도리를 먹는 것, 넷째는 기도하는 것, 또 다섯째는 일하는 것, 또 여섯째는 사람과 사물을 접촉하는 것, 또 일곱째는 노는 것,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오전에 네 가지는 약간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지식과 또 활동과 경험과 모든 경영에 따라서 그 범위는 넓어지고 좁아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고 또 넓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깊게 생각할 것입니다.

2. 자는데 대해서

이 자는데 대해서 자기의 일생 생활이 여기에 성패의 원인이 달렸다 하는 그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무절제의 사람이요 아직까지 자기를 완전히 연구해서 확정짓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깊이 연구해서 확정이 됐다면 이제까지에 모든 실패는 잘못 자는 데서 일어났고, 또 자기가 원하는 그 성공은 바로 자는 데에 거게서 발생되는 것인데 그것을 무시해서 실패했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경험하면 알기 쉽고 경험하지 못하면 말만 듣고는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이렇게 다 건너다보고 그 사람의 아는 대로의 남을 정죄하기 위해서 논평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모든 사람과 사람의 생애를 연구해서 바로 알아 자기가 바로 살기 위해서 연구하는 그런 것이 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 연구하는 사람은 해 보면 저 사람은 그래도 제대로 안 믿는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천물이 되지 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안하고 제 자리를 잘 자기가 감당해 나간다 하는 그런 사람들 중에 보면 이 잠을 잘 자는 그것으로써 그런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또 저 사람은 아무리 봐도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모든 일이 탁월한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이고 활동도 탁월하다. 그런 귀한 사람이 잠을 잘 줄을 몰라서 일생을 망치는 것을 또 얼마든지 봅니다.

이 자는 것이 사소한 일 같아도 사람의 생활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은 자는 것이요 반은 깬 것입니다. 반반입니다. 자는 것이 반이요 깬 것이 반인데, 바로 잠으로 바로 깬 일 할 수 있고, 또 바로 깬 일을 함으로써 바로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 깨서 살고 잘 잘 수 없고, 또 잘 자고 깬 일을 잘 하지 못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는 것을 굳히면 눈 뜨고 깨서 하는 일 다 굳히고, 또 눈 떠서 깬 일을 바로 하면 자는 일 다 바로 하게 됩니다. 이 둘은 성패가 하나입니다. 자는 것 잘되면 깨어 사는 것 잘되고 깨어 사는 것 잘되면 자는 것 잘되고, 자는 것 잘못되면 깨어 사는 것 잘못되고 또 깨어 사는 것 잘못되면 자는 것도 잘못됩니다.

이래서 넓고 깊은 그 범위는 심히 많으니까 그것은 다 각각 정할 것이로되 아주 외부적으로 간단하게 각자들이 ‘나는 그만 자는 장소와 자는 시간부터 나는 정해 봐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자는 장소와 시간을 정해 놓고, 평소에 정하려면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정해 놓고 그대로 실행을 해 볼라 하면 여기에 방해물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뭐 지장이 여간이 아닙니다. 방해가 여간 아닙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자기 눈이 뜨여서 ‘내가 작정한 이 잠자는 장소와 잠자는 이 시간에 대해서 방해물이 이렇게 많구나’ 그 방해물을 발견할 때에 그 사람의 인격은 깨고 인간의 지능은 새로워지고 그 사람이 비로소, 그러면 경험 있는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은 철학이 있는 사람이요, 모든 것에 다 외식자가 아니고 깊이 사색하는 사람이라 심사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해 나가면 알 것이기 때문에 내용을 말해야 해당치 안하니까 잘 이해 못 할 터이니 그만 자는 시간을 한번 작정해 보고 자는 장소를 작정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면 거게서 모든 지혜가 일어납니다.

3. 일곱 가지에 대해 계산

우리는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이미 행해 온 것을 정확히 계산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 일곱 가지에 대한 구별을 하지, 일곱 가지에 대한 거룩. 이 구별을 이미 자기가 행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계산을 해야 되지 이 계산이 틀려 놓으면 자기는 여기에 대한 구별은 안 됩니다. 구별이 첫째 여기 대해서 이미 내가 행하고 있는 것, 과거 현재 이것을 정확히 계산해야 됩니다. 정확히 계산을 하고, 또 그 다음에는 과거에 대해서는 그 결말을 잘 계산하고, 또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그 결과를 예산해야 됩니다. ‘이러면 어떻게 이 계산이 되겠다’ 그러면 이 일곱 가지에 대해서 이미 한 것과 지나간 일은 정확히 결산을 해야 되고, 계산 결산을 해야 되고 또 현재로부터 미래에 대해서는 거기에 대해서 예산적인 계산을 해 봐야 됩니다. 이러면 앞으로 어떤 그 결산이 나오겠느냐 하는 것을 예산적으로 계산을 해 봐야 됩니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또 거기에 하나 더 있는 것 셋째로는 이러면 여기에 대해서 내가 다시 이런 것들을 다 종합해서 자기의 이 일곱 가지에 대한 조정이 생겨집니다. 조정이 생겨져서 거기에 대해서 새로운 계획이 생겨질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과거는 이리 이리 했고 또 현재 이리 이리 했는데 그 과거와 현재를 가지고 계산하니까 현재와 미래에 대한 모든 예산이 바로 잡혀집니다.

그러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것을 자기가 하나의 자기 지식을 삼아서, 자기의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 자기 지식을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다가 붙여서 하나님 말씀에게 그를 붙여서 그렇게 한번 심사숙고하고, 또 모든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그 통계, 통계 이것을 가지고서 한번 다시 참고적으로 삼고, 이렇게 하면 여기에 대한 정확한 구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래서 이 일곱 가지에 대한 정확한 거룩을 가지게 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모든 일에 복잡하지 아니하고, 주저하지 아니하고, 방황하지 아니하고, 자기 걸어갈 길을 아는 길 찾아가듯이 똑똑히 알고 가기 때문에 방황 주저하는 일이 없고 또 이렇게 나아가려고 할 때에 그때에 이제 비로소 경건이 자기에게 큰 능력이 되는 것을 알 것입니다.

4. 거룩과 경건

만일 사람이 이런 계산을 대고 가는 사람, 이런 계산을 대고 간다 할지라도 경건이 없고 경건 대신에 돈이라든지 혹은 권세라든지 무슨 공명이라든지 이런 것이 그 구별한 구별의 목적이 될 때에는 거기에 인간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초월하지 못하고 다 그런 것들에게 삼키워지고 맙니다. 왜? 그것들이 세상이요 이것도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세상은 자기보다 강한, 객관은 주관보다 강하기 때문에 객관인 그 세상에게 삼켜지고 맙니다. 그러나 경건, 하나님을 위함이 되는 때에는 모든 피조물이 거기는 간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어떤 것도 거기에 대해서 방해하지를 못하는고로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거룩 생활을 할 때에 경건이 큰 원동력이 된다 하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참 위하는 경건을 하려고 할 때에는 거룩이 없이는 경건을 할 수가 없다 하는 이 둘이 곧 말은 딴 말이지마는 이로 인해서 저가 있고 저로 인해서 이가 있고 둘이 하나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첫째는 자는 것

자는데 대해서, 자기가 공간이라고 말하면 뭐 이곳 저곳을 말합니다. ‘오늘은 산에 가 자겠다, 오늘은 예배당에 자겠다, 오늘은 우리 안방에 자겠다, 오늘은 또 어데 가서 여관에 자겠다.’ 자기는 평소에 이것을 정해 놓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나는 자기는 몇몇 곳에 가서 자겠다. 내가 자는 곳은 어데 어데 몇 군데를 내 숙소로 정하겠다. 또 나는 시간은 언제로부터 언제까지로 시간을 정하겠다.’ 평소에 이렇게 정할 때는 그래도 자기에게 이성이 들어서 이것을 다 정하기 때문에, 판정하기 때문에 거기가 다 올바른 판정이 되어집니다. 평소에 이것을 딱 정해 놓으면, 악마의 마귀가 우리를 다급하게 그 비상시를 틈탑니다. 또 과도기를 틈탑니다.

○ 자는 것에 시간과 장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현실을 주는데 비상의 현실도 주시고, 과도기의 현실도 주시고, 복잡한 현실도 주시고 이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 주시는 것은 그 현실이 이 거룩 보다 귀한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서 거룩 만들려고 주는 것인데 그런 현실이 오면 그만 자기는 미리부터 이런 것을 아주 확정지어 놓고 거기 대해서 기도하고 또 많이 생각하고 느끼고 참 이 중요성, 그 탈선되면 절단난다는 것을 자기가 느껴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럴 때에 자기도 모르게 악령이 유혹하는 모든 미혹에 자기는 쏠려서, 자기가 그것을 정해 놨으면 그런 장소를 정하지 안할 터인데 이제 평소에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에 되는 대로 이렇게 가서 자고 또 시간도 되는 대로 살고, 이런 데에서 그것이 곧 사망 행위입니다. 그것이 생명 없는 행위입니다.

미리부터 이것을 판단할 때에는 그래도 자기가 성경을 알고 또 이성이 판단하고 또 자기 양심이 판단하고 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소욕이 다 판단을 하고 이러지마는 이것을 미리부터 정해 놓지 안하면 그 다급한 때에 악령의 온갖 유혹이 와서 침투할 때 자기는 꼼짝 못 하고 거기에 피동 돼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장소 잘못 정해서 일생을 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남녀 이성 문제 그런 것만이 아니고, 그런 것 문제가 아니고 인인 관계에 온갖 면에서 그렇게 됩니다. 그 사람은 하루 밤 어떤 사람하고 잘못 잔, 어떤 남자와 남자끼리도 잘못 잔 그것이 일생을 망치는 원인이 되는 그런 일 많습니다. 여자도 그런 일도 많습니다. 남녀 이성면에는 더욱 그런 일 많습니다.

언제 신문에 나기를 여기 제주도에 부산 사람이던가 서울 사람이라던가 그 모두 부자들 또 모든 고관대작들 마누라들이 저 제주도 관광 가서 그래 가지고 가정이 뭐 아홉 가정이 파괴를 당해서 아홉 가정은 이혼을 당하고 뭐 파괴를 당하고 지금 몇은 시비 중에 있고 한다 하는데 그런 것 다 하나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것 다 잠자는 그것을 잘못 계획해서 그런 것입니다.

만일 자기는 어찌 해서 하다가 그것을 계획해 놨는데 의외에 ‘아무래도 우리가 관광을 가야 되는데 같이 일행이 가자’ 이럴 때에 그 사람이 자기가 평소에 양심을 써서, 이성을 써서, 자기는 또 성경을 또 인용을 해서 자기 성령의 소욕 육체의 소욕을 모두 다 거기에 참가시켜서 비판 평가해서 결정된 그 정한 숙소에 장소에 벗어난 것이라면 그것 자기는 쭉 따라갈 수 없고 ‘이 문제가 문제다’ 하고서 그 문제를 생각해서 ‘내가 이것 하나님 앞에서 이것 작정해 놓은 이것을 아무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데에 변개하는 것은 이것이 경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을 배반함이 된다.’ 이런 것으로서 그런 것을 얼마든지 극복해 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평소에 이것을 따져 놓은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것 뭐 천 가지 만 가지도 넘는데 그것을 종별할 수는 없고, 어쨌든지 자는 것에 대한 그 장소와 시간 이것을 그 둘만 가지고 자기가 비판해서 잠을 잘 자는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한번 미리 계획을 세워 놓고 세운 그 계획대로 그 일을 성취해 보려고 노력을 해서 성취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경건입니다. 이 지금 계획한 것이 이것이 거룩이라, 이제 성취 달성하는 것이 경건이라 이렇게 알고 한번 해 보면 신앙생활 하는 것이 맛이 있을 것입니다.

○ 인격적 하나님으로 상대

제가 오늘도 어떤 사람이 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래 내가 그 얘기를 듣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본인도 아마 알아듣기는 알아들을 것인데 말하기를 ‘오, 그래 참 좋은 신앙 경험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것을 당신이 원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목석같이 생각지 안하고 당신에게 지정의 감각이 있고, 또 비판이 있고, 또 감정이 있고, 서로 교제하는 맛이 있고, 그분을 무시함을 그분이 알고, 그분을 존대함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살아 있는 어떤 이 세상의 인격 가진 인간같이 생각하여, 그분은 인간을 무한이 초월한 분인데 ‘그는 인격을 가지신 분이라’ 이것을 깨닫고 인격적으로 그분을 대우해서 사귀는 것을 그분이 좋아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 믿어도 예수 믿는 맛을 모릅니다.

그분을 아주 인격 대 인격 교제로 상대해서 이렇게 하면 그분같이 세밀한 분이 없고 그분같이 감정이 빠른 분이 없습니다. 그분같이 다정다감한 분이 없습니다. 다정하고 다감하고 이렇게 그분을 이렇게 대우하는 것을 당신이 기뻐하시고 이렇게 대우한 자마다 그 맛을 본 사람은 그분과 사귀는 것이 좋지 다른, 그분과 사귀어서 조금 이래 본 사람들은 사람은 그저 살리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이지 사람하고 말하는 것을 아무리 다정다감한 사람을 데리고 얘기를 해도 그것은 똑 토막나무 같아서, 말하자면 여기 피아노 저런 것은 옥타아브를 뚜드리면 땡그랑 땡땡 땡땡 이래 쌓고 뭐 여러 가지 소리가 나는데 이것 커다란 토막나무 하나 갖다 놓고 이렇게 손으로 암만 때려 봤자 그뭐 털퍽털퍽하지 아무 맛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아무리 세밀하고 다정다감해도 사귀어 봐야 그렇게 다정다감한 분이 없습니다.

그렇게 세밀히 알아주는 분도 없고, 그렇게 또 세밀히 깊이 섭섭함을 느끼는 분도 없고, 또 내 하는 일에 세밀한 감정으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를 해서 그저 조금 뭣하면 상이 달라지고 조금 뭣하면 상이 좋아지고, 조금만 하면 삐꾸고 조금만 하면 홱 돌아서고, 조금만 하면 좋아하고 뭐 그분을 사귀어 보면 그분은 참으로 아가서에 말씀하기를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나의 사랑하는 자가 창틈으로 나를 지금 내다보고 있다’ 창 안에서 바늘구멍으로 똑 뚫어놓고 이 안에 보면 밖에서야 보입니까? 안 보이지만 안에서는 보면 다 보인다 말이오. 다 보이요. 저 행동이 어떤가 다 보면 다 보입니다.

이 모양으로 주님이 지금, 자기 혼자 하면서도 ‘저 창틈으로 지금 나를 엿보고 계신다’ 하는, 엿보고 계시는데 아무 감각이 없으면 하지마는 ‘내가 이렇게 민첩하게 하는 것이야 그분이 알고 섭섭해 하겠나?’ 했는데 그분이 알고 섭섭하셔서 참 뭐 말할 수 없이 섭섭해 하시고 있다 말이오. 또 ‘이렇게 내가 숨어서 한 것이야 그분이 알 리가 있나?’ 아니, 알고 좋아서 벌써 예물과 선물을 사서 벌써 준비한다 그 말입니다. 그분을 사귀어 보고 난 다음에는 그분보다 참 사귈 만한 분이 없고 또 그분 앞에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그저 믿고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많이는 못 해도 그만 자는 것, 자는데 대해서 장소, 또 시간 그것을 정해 놓고 그렇게 실행을 하려고 할 때에 우리가 세상에 방해물이 어떤 게 있다는 것도 알고, 나를 사랑하는 자도 알고, 나를 미워하는 자도 알고, 내가 실패하는 것도 알고, 또 하나님이 축복해 줄 것도 알고, 하나님이 징계할 것도 알고, 거기서 뭐 그만 말로 할 수 없는 많은 그 수십 가지라도 깨달을 수 있고 수백 가지라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실행을 해 봐야 되지 지금 앉아서 뭐 논리로 가지고 암만 해 봐야 그 이해가 안 됩니다. 이러니까 한번 자는 시간 이것을 한번 딱 정해 보십시오. 저는 여덟시로 정했는데 여덟시 정한 여덟시에 그만 등불 끄고 나면, 등불 끄고 나면 다른 사람이 뭐 불 끄고 자는데 뭐 어찌 오겠습니까? 전화는 딱 꺼 버려 놓고 이래 있으면, 그동안에는 자기 신앙 정도대로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주님 앞에 의논도 하고, 또 문의도 하고, 또 주님에게 이제 간구도 하고, 또 감사도 하고 그렇게 이 주님하고 속삭거리다가 이제 잠들면 잠드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아홉시로 정한 사람도 있겠고, 열시로 정한 사람도 있는데 자기 형편에 따라서 아무래도 그저 ‘이래 됐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정하지 말고 ‘이래는 안 자면 안 된다’ 최소한으로 정해서 암만 늦게 잔다 해도 `이 시간까지는 자야 되지 이 시간까지 안 자면 안 된다’ 그것을 정해 놓으십시오.

○ 계산과 결산

정해서 그걸 정할 때에는 이미 자기의 과거 현재를 정확하게 계산을 하고, 그래 살았더니마는 그 결과가 어떤가 하는 그 결산을 정확하게 하고, 그러면 그 둘만 하면 그 다음에는 ‘내가 앞으로는 어떻게 계획을 가지고 출발해야 되겠다’ 하는 출발이 거기서 나섭니다. 어떻게 지금 계획을 짜야 되겠다 하는 것이 나선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각각 다르니 그것을 한번 생각해서 작정을 하시고, 그렇게 작정한 그것이 거룩이요 그렇게 해서 이루는 데에 다른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지마는다른 것을 생각하고 해서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못 합니다. 환경에서 몰아쳐서 못 하게도 할 뿐 아니라 나중에 가 얼마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그 가치감을 가지지 못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참 가치 있다’ 하는 가치감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할 때에는 바꾸게 됩니다.

○ 경건

그러나 그것이 경건이라. 그것이 주님을 위함이라, 그것이 경건이라. 우리 준비 중에 거룩과 경건인데 그게 경건이라 하는 것을 잡고 해 보면 ‘이것이 경건이라. 이것이 주님을 위함이라.’ 그게 주님을 위함이요 그것 버릴 때에 주님이 섭섭해 하시고 물러가시는 것과 그렇게 할 때 주님이 기뻐하셔서 자기에게 환영해 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는 것을 그것을 자꾸 해서 그것이 경건이 된다는 것을 안 사람은 경건을 인하여 그것을 이행을 하려고 할 때에 아무리 땅위에 중요한 가치 있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경건에다 비하니까 가치가 경건만 못합니다. 이러니까 모든 가치보다 능가되니까 이제 그 거룩을 잘 이행할 수 있습니다.

2. 둘째는 먹는 것

또 먹는 것 이것도 오전에 말했는데 먹는 것 이것도 나는 어떤 종류를 먹어야 되며 이제 나는 어떤 시간을 이용해야 되겠느냐? 자기 정도에서 아주 자기로서는 있는 지능을 다 가져서 과거를 살펴보고 현재를 살펴보고 과거와 현재에 대한 결과가 나타났으니까, 결과가 나타났으니까 그 결과에 계산을 보고, 이미 과거 현재 이것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것들의 결산이 어찌 됐나 하는 그 결산을 계산하면 먹는 데에도 ‘새로 나는 이렇게 먹고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 계획이 확실히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계획이 틀리면 그만 실패요 그 계획이 맞으면 맞습니다.

제가 다른 데서 예수 믿다 온 사람들을 이래 더러 접촉해 보면, 이 서부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안하고 못된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 서부교회 여기 있는 사람 가운데도 못된 교인들이 많아. 그거 나는 그 교인을 못된 교인이라 해, 못된 교인. 염소 같은 교인, 염생이 새끼같은 염소 같은 교인이라. 염소는 자꾸 못되게 날뛰는 것이 염소라. 그래서 아가서에 보면 ‘네가 장막 곁에서 염소 새끼를 먹이면 주님이 기뻐하신다’ 하셨습니다. 그 염소 새끼라 밉상이지마는 그것을 그래도 거머쥐고 잘 먹이면 주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주님 보고 염소 새끼 기르는 사람은 기르지마는 염소 새끼 그것 행세 보고는 기를 사람 없습니다. 다 치워버리고 이렇지. 염소 새끼 있는 것은 시키는 대로 안 해서 어쩌든지 제 분수대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서 일곱 가지 도적질 다 했습니다.

소유권 도적질도, 제 것이다, 남의 것이다, 뭐 사람의 것이다, 뭐이다. 다 주님의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소유권 도적질 두 가지 다 했지. 또 거기서 머리 떼서 하나님 섬기는 것도 그것도 다 도적질 했지, 또 감사함으로 그것을 사용해야 되는데 감사 도적질 다 했지, 또 십일조 도적질 다 했지, 또 씨는 심으라 했는데 씨까지 다 볶아먹고 씨는 때가 있어서 심을 때 심어야 되지 심을 때 심지 안하고 그 씨앗을 똘똘 뭉쳐서 천장에 달아 놓으면 묵은 씨가 돼서 안 나든지 또 묵은 씨는 심으면 못 씁니다. 안 돼요. 무우도 묵은 씨 심으면 전부 장아리 다 올라오고 안 돼요. 이것 모양으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안하고 심을 것은 심어야 되는데 심을 걸 제가 다 먹어버리는 자, 또 심을 것을 심지 안하고 꽁꽁 묶어서 당글아 매 놓고 ‘아직 아이도 낳지도 안했는데 아들 낳으면 대학 공부 하려면 뭐 하겠다.’ 그런 준비 하고 이러니까 그때 그때 이 영원한 내세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의롭게 쓸 것은 다 쓰지 안하고 똘똘 뭉쳐 놓는다 그 말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 씨를 뭉쳐 놓지,

또 양식은 저 먹을 양식인데 저 먹을 양식도 어떤 것은 아껴서 영양실조가 돼도 저 먹지 않는 그것도 틀렸습니다.. 또 너무 많이 먹는 것도 탈이고. 또 양식 준다 하는 것은 그것은 저 먹을 양식인데 저 먹을 양식을 먹지 안하고 저 다른 사람 또 불쌍한 사람 도와 구제해 준다고 이래서 다른 사람 몇 가지 구제하고 난 다음에 저는 영양실조가 돼서 병이 들어 나중에 가서 복음을 막고 ‘예수 믿는 게 왜 마르기는 저렇게 말랐노? 병이 들었노?’ 이것도 또 도적질 하는 거라 말입니다. 이런 것 잘 하기 어려워요.

그런 것 다 바로 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나는 현재 부모처자가 있으니’ ‘나는 아무도 없고 나 혼자뿐이니' 자기 혼자뿐이면 양식이 좀 적을 것이라 그 말이오. 또 있으면 또 양식이 좀 식구가 많으면 많을 것이라 말이오. 나는 또 이 국가의 의무, 사회 의무, 교회 의무 또 이런 것을 다 계산을 잘해서, ‘그러면 나는 지금 먹는 것은 나는 십 원짜리 빵을 먹어야 되겠다, 백 원짜리 빵을 먹어야 되겠다, 나는 천 원짜리 빵을 먹어야 되겠다.’ 그 모든 종류 계산이 나온다 그 말이오. 그게 잘 먹는 것이라.

그러고 또 시간도 조절하고. 이것 연구하는 것이 ‘먹는 것 그것 추접하다’ 하지만 아니오. 이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시험을 받을 때에 제일 뭣이냐 하면 먹는 것 가지고 제일 먼저 시험했습니다.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는 주인 하나는 하나님이고 주인 하나는 재물이라 말이오. 먹는 재물이라. 그것 그렇게 중요해요. 이래서 ‘경제 실패는 신앙 실패요 또 신앙 실패는 경제 실패 된다’ 그 성패가 한가지라. 이러기 때문에 경제 성공을 바로 했다면 신앙 성공도 바로 됐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잘 연구해서 사람이 그 뭐 천태만상의 그 모든 형편과 사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정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생활 정도도 형편도 종류도 각각 달라요. 그러니까, 꼭 밥을 잘 먹는 것은 하나님이 네가 그것 먹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이 옳다 인정한 그 밥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이지 고기밥 먹는 것이 잘 먹는 것 아니라 꼭 자기 먹을 것 먹는 그것이 잘 먹는 것이라 말이오.

이것을 연구해서 ‘나는 이것 먹는다’ 그것을 잘 먹으면 거기에 대해서 그만 그 사람이 이 세상 생활에 그저 한 반은, 아마 반 정도는 해방될 겁니다. 자기 전 생활에 백분지 오십, 천분지 오백, 만분지 오천, 어찌 됐든 간에 반은 안정이 됩니다. 이것을 바로 딱 정해서 했다고 하면 그것이 자기 전 생활에 반은 안정이 된다 그 말이오. 이만치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그 계산하기가 복잡해요. 그 계산하는 것은 이미 행하고 있는 기행의 계산을 정확하게 해. 또 그것에 대한 결과에 대한 것을 또 확실히 정확하게 해. 그러면 그 두 가지 계산을 정확하게 하면 ‘앞으로 어떻게 출발해야 되겠다’ 하는 출발이라는 그 계획이 정확히 나옵니다.

이것 뭐 ‘오늘은 교회 가니까 뭐 자는 것 밥 먹는 것 그런 것 말하는 것 보니까, 그 무슨 엘리야를 말하고 뭐 다니엘 말하고 이래야 설교 같지 밥 먹는 것 자는 것 그거 말한다. 이러니까 재미없다.’ 하는 그 사람은 아직까지 예수 믿는 사람 아니고 또 세상에도 찌끄러기로 살 사람이지 머리로 살 사람 아니라. 이것을 잘 알면 그 먹는 것만 바로 먹으면, 그 말은 무슨 말이냐? 돈만 바로 쓰면 그만 다 됐습니다. 잠만 잘 자면 자기 처소만 잘해서, 처소 처세. 처소 처세만 잘하면 됐습니다. 그만하면 다 성공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아직까지 초보니까 그래 한 번 이 먹는 것은 일곱 가지 도적질 회개하고 자기 분수 하면 일곱 가지 도적질까지 다 들어갔습니다. 다 들어갔으니까 자기 분수 그것을 지나치지도 말고 미달하지도 말고 그 정확한 계산을 해서 그 다음에는 시간 따라서 그렇게만 하면 그만 다 됩니다. 이것 아주 재미있는 생활입니다. 한번 그래 봐요.

3. 셋째는 영감 도리 먹는 것

그 다음에 셋째는 육의 양식을 먹었으니까, 육의 잠을 잤으니까 영의 면을 해야 될 터이니까 이제는 성경 먹는 것입니다. 영감과 성경 먹는 것이라. 성경 먹는 데에 이것도 먹는 것이 각각 달라요. 그저 ‘나는 하루 한 장씩만 정했으니까 한 장씩 먹겠다.’ 한 장씩 정해서 그것 먹는 사람도 있고, 다섯 장 정한 사람도 있고, 열 장 정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또 암만 줄줄 다 읽어도 그것은 양식이 안 돼. 꼭 성경은 읽고 기도하고 모든 것 생각해서 거기서 참된 진리를 깨달아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발견하면 그만 살이 퉁퉁 찌고 심령이 그만 건강해지고 기뻐지고 즐거워지고 평안해지고, 하지만 그것을 찾기 전에는 성경을 암만 읽어 봤자 읽어도 안 되고 외워도 안 됩니다. 또 그런 사람은 양식 먹는 것이 각각 달다릅니다. 젖 먹는 사람 뭐 아이들 키우면 다 그래 안 있습니까? ‘나는 성경을 어떻게 먹으며 어떤 때에 먹겠느냐?’ 자기로서 갈 수 있는 길을 걸어요. 남의 길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천태만상으로 이 사람들을 만들었는데 그 만든 것 뭐 백 명 두면 꼭 같습니까? 백 명 봐도 다 각각 다릅니다.

만일 기차 역에 가서 만 명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맞으러 갔습니다. 만 명이 나오니까 만 명 가운데 자기 아버지가 섞여 나오는데 우리 아버지인가? ‘아버지’ 또 저게 보고 `아버지' 이럴 수 있겠습니까? 오니까 `저것도 아니다 아니다’ 그 하나 나오는 저거 아버지를 딱 보고서 ‘아버지' 이래 한다 말이오. 그것 그렇게 만 명 가운데도 같은 모양이 아니고 꼭 각각 달리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의 천국 인격도 그렇습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각각 다 거기에 대한 모든 형편과 사정과 또 요소와 순서와 또 기를 것과 갖출 것 구비할 것 그런 것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의 입장을 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 것이는 성경을 얼마든지 보려면 볼 수 있고 재독을 얼마든지 들으려면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남의 입장을 부러워하는 그것은 마귀의 유혹이기 때문에 부러워하지 말고, ‘나로서는 이 영감의 도리를 먹는 데에 어떻게 먹어야 되느냐?’ 자기로서 먹을 수 있는 그것을 바로 찾았다면 그것만 하면 그만 그것도 큰 보배라. 그것이 거룩이라 그 말이오. 그게 거룩입니다.

그것을 잘 구별해서 찾아야 그것이 주님 구름타고 오실 때 맞이할 수 있고 세상 떠날 때에 행복스러운 사람 돼지지 뭐 거룩이라 하니까 뭐 구별한다고 입술만 하지 실상을 모른다 그 말이오. 그래서 이런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 입장과 자기 입장을 다르다고 해서 남의 입장을 부러워하는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너는 너대로, 하나님이 이것 만들고 저것 만들고, 이 건축이 되어 지는데 등도 있고, 문도 있고, 창도 있고, 또 집게도 있고, 오만 것 다 있으니까 그게 다 제대로 돼야 이 집이 건축이 되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건축 가운데 나는 이런 분자라 저런 분자라, 이런 소속이라 저런 소속이라, 이런 지체라 저런 지체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생각지를 말고 자기는 자기대로에 만들도록 하나님이 그 현실은 주신 것이니까 현실을 만족하면서 ‘나는 성경 양식은 어떻게 먹어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각각 다 거기서 연구해 보면 맛이 있습니다.

연구해서 그것을 바로 딱 맞췄다고 하면 반드시 바로 맞추고 난 다음에는 주님이 응답할 겁니다. 바로 맞추고 나면 ‘야, 네가 잘 찾았다. 잘 찾았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 주님이 섭섭해 하시는 것, 또 주님이 그만 삐꾸고 돌아가는 것. 주님같이 잘 삐꾸는 이가 없습니다. 이것 좀 여러분들이 알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마는 잘못 하면 망언이라 하지만 여러분들 알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만치 잘 삐꾸는 이가 없습니다. 조금만 거석하면 삐꾸고 돌아가면, 돌아오기는 힘 드는데 삐꾸고 돌아가 놓으면 돌릴려고 애를 쓰면 참 힘이 듭니다. 뭐 어떨 때는 밥도 좀 굶어야 되고 산에 가 봤자 그게 됩니까? 안 돼요. 그래서 뭣 때문에 주님이 삐꾸고 돌아가셨다는 그것을 찾아서 해야지 그것 찾지 안하고 주여 주여 암만 해 봤자 껍데기지 그것은 소용없습니다. 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오. 그것을 찾으면 주님이 싹 돌아오시면서 우리 심령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때 주님이 오시면 환하게 기쁘고 즐겁고 그만 모든 것이 환해지거든 광명해지거든요. 담대해지고 평안해지고. 그래서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거룩을 잘 사용합시다. 사용해서 거룩의 결과를 맺도록합시다.

4. 넷째는 기도하는 것

넷째로는 기도, 기도에 대해서도 각각 다릅니다. 처음 믿는 사람은 ‘너 밥 먹을 때 하루 세 번 기도해라’ 또 어떤 사람은 `잘 때 깰 때 두 번 그러면 다섯 번 기도해라’ 자꾸 이래 차차 차차 가르쳐서 이제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은 산에 가서 기도, 또 들에 가서 기도, 또 예배당에 와서 기도, 몇 번 기도, 이렇지마는 또 어떤 사람은 그 기도 가지고 안 됩니다.

안 되니까 자기로서 할 수 있는 기도, 나는 이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구별해야 되느냐? 이 기도는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느냐? ‘다른 사람 산기도 가니까 산기도 따라가야 되겠다. 다른 사람 철야기도 하니까 나도 철야 기도 해야 되겠다.’ 남 따라가지 말고 자기로서의 기도해야 되는 그 기도를 잘 구별해서 기도해야 될 기도의 종목도, 기도의 제목도, 자기가 잘 구별해서 가려야 될 것이고 기도할 장소도, 기도할 시간도 길게 해도 안 되고 짧게 해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또 공중 기도 하면 그만 처음부터 저 창세기서부터 쭈욱 내리 훑어서 요한계시록까지 쭈욱 그만 강령을 외워서 쭉 늘어댑니다. 이러니까, 기도하는 것 이제 중지 됐는가 다 됐는가? 한참 자다보니까 또 기도하고, 아이고 아직 멀었다 또 자다 보니까 또 기도합니다. 그것은 거룩한 기도가 아닙니다.

거룩한 기도 하나님이 정해 주시기 때문에 정확합니다. 짧을 때는 짧고 길 때는 길고, 또 이런 종류 할 때는 이런 종류 또 저런 제목으로 할 때는 저런 제목으로 해서 어쨌든지 기도에 대해서 내가 거룩을 가져야 되겠다. 기도에 대해서 정확한 그 구별하여, 거룩이라 하는 것은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만 되는 것, 참에게 딱 명중해야 그것이 거룩이기 때문에 이 기도에 대한 이 거룩을 내가 가져야 되겠다. 이래서 기도에 대한 거룩을 가집니다.

가지는데 그것을 얼마든지 이상 하게 하면 좋다, 좋게 하면 좋다, 많이 하면 좋다. 잘하면 좋다. 그것은 제 정도 이상의 것을 계획하면 그것은 허욕입니다. 기도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또 성경 보는 것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또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연보하는 것도 허욕과 허영이 있고, 이 허욕과 허영은 다 그것이 바로 맞히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죄라 이럽니다.

죄는 뭣이 죄이냐 하면 죄라 하는 근원이 나오기를 활 쏘는 사람들이 저기다 표를 해 놓고 그 안에 점을 딱 찍어 놓고서 여기서 활을 쏘는데 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갔으면 낙제는 아니고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도 한 가운데 점찍어 놓은 데 거기에 콕 꽂히지 안하면 그것은 일등이 아니고 그것이 콕 꽂혀야 되는데 이 의는 거기에 콕 꽂혔다 그 말입니다. 죄는 거기에 삐뚤어진 것 탈선된 것, 동그라미를 벗어난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까 기도에 대해서도 각각 자기 형편 사정, 자기 분수, 자기 건강, 자기 시간, 자기 또 입장과 처지, 모든 자기 사회, 이런 것이 있으니까 그 전체에 따져서 ‘나는 내 기도는 시간은 이래 잡아야 되겠고, 장소는 이래 잡아야 되겠고, 나는 또 기도의 제목은 이래 잡아야 되겠고’ 이런 것을 다 각각 구별하고 구별해서 옳은 데에 딱 명중한 그것이 이제 거룩이라 그 말입니다. 그것이 거룩이라.

5. 다섯째는 일하는 것

그리고 또 다섯째로 자기 일하는 것 ‘나는 무슨 일을 할까?’ 그러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러면 무슨 일 할까? 구별을 세 가지로 하라 했지요. 하나는 ‘내가 과거에는 이런 일 이런 일을 했다. 또 현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되나?’ 이러는 데는 물론 사람이 과거 현재가 다 짜여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가 짜여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데 과거의 일은 벌써 지내갔기 때문에 그것은 결산이 나왔다 말이오. 추수가 됐다 말이오. ‘과거에 이런 일을 했는데 그 결과에 결산이 수입이 있었나? 손해가 갔나?’ 이제 과거 것을 다 따져보면 계산이 결산이 나왔다 그 말입니다.

내가 이래서는 이 일 하다가는 내가 물질에 손해봤다, 이 일 하다가는 인격에 손해봤다, 이 일 해서는 권위에 손해 봤다, 신임에 손해 봤다, 이 일 하다가는 신앙에 손해 봤다, 가정에 손해봤다, 이래서는 어떤 사람을 사귀었다. 그만 과거 자기 과거 한 일, 사람과의 한 일 또 모든 사물과의 관계된 일, 모든 과거에 일을 낱낱이 조사를 해야 그것 구별할 것 아닙니까? 조사 조사 하는 이것이 구별 구별 조사하고 조사해서 ‘그런 일 하니까 이 일에는 결산이 손해다. 이 일에는 어떤 면은 결산에 유익이 됐는데 이것이 다른 또 손해 가는 그 길이 하나 있었다.’ 그러면 과거를 따져보고, ‘현재는 내가 이와 같이 지금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살면 앞으로 나올 계산은 어떻게 나오느냐? 이래 살면 이 앞으로 나올 그 계산 그 결산은 앞으로 나올 결산은 뭐이냐? 이미 나온 결산은 이런데 과거 생활에서 나온 결산은 이런데 앞으로 이래 살면, 이렇게 일을 하고 있으면 나올 그 결산은 어떤 것이냐?’ 그것을 자꾸 따져서 그래 보면 거기서 ‘이것은 안 해야 되겠다’ 그것이 거룩에서 이것은 못 쓸 것이다 버려야 된다는 그것입니다.                                                        

거룩을 하는 데는 몇 가지로 해야 된다 했습니까, 두 가지면 됩니다. 우둥지도 끊어내 버리고 꼬랭이도 끊어내 버리고 끊어내 버리면 됩니다. 한 토막만 하면 돼, 한 토막만. 이제 너무 위에 초월해 가지고서, 못 올라갈 나무에는 쳐다도 보지 말라 하는 말 있는데 제게 너무 과대평가해서 과장해서 과대평가한 그런 계산하고 나면 실패가 됩니다. 꼭 자기 실력에 딱 맞도록 해야 되는데 자기 실력보다 조금 가벼운 것을 하면 별로 실패가 없습니다. 이래서 일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앞으로 ‘이 일은 안 해야 되겠다. 이 일은 안 해야 되겠다.’ 따져보면 안 해야 되겠다 아는데 그만 현실을 닥치면 모릅니다.

사람들이 앉아서 비판할 때는 거의 정확한 모든 계산을 하게 되고, 자기 일이 아니고 남의 일로 볼 때에는 뭐 계산은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계산한 것만치 정확해요. 남의 일을 볼 때는 계산이 정확한데 그만 제 일로 돼면 그 계산이 흐려집니다. 왜 그런가? 인간은 더러워서 저를 사랑하는 악이 있거든. 저 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것이면 그것 틀렸다 이러는데 제게 와서 붙여 놓으면 ‘그렇지마는 혹 그래 동정할 수가 있지 않겠나, 혹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자꾸 이래 틀려진다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 자기가 정확히 비판을 해, 그러면 이 일은 안 해야 되겠다 이 일은 해야 되겠다. 해야 되는데도 ‘나는 이 일을 하기는 해야 되지마는 힘써 하면 다섯 개는 하겠다. 내가 암만 수월하게 해도 하나는 하겠다. 하나는 하나도 안 하면 죄가 되겠다. 놀면서도 하나는 해야 되겠다.’ 그렇게 아주 수월하게 할 그것을 계산 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워요. 어려운 것을 계산대지 말고. 그러기 때문에 계산할 때는 위로 하지 말고 아래로 말단으로 그렇게 계산 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할 일이 정확히 나옵니다. 그것이 뭣이냐? 일에 대한 거룩이라 그 말이요, 일에 대한 거룩.

그러면 이제 다 그러면 앉아서 ‘내가 이 일은 안 해야 될 일이다. 해야 될 일이다.’ 이거 뭐 심각하게 조사해서 그러면 안 해야 될 일, 해야 될 일, 그것을 또 기도한다 말이오. ‘주님이여 이것 안 해야 될 일인데 이것 앞으로 닥치면 어찌 됩니까?’ 이러면 안 해야 될 일이다 하고서 기도를 하고서 명상하면 하나님께서 ‘네가 그 일 할라 하면 누가 찾아오고 누가 찾아오고 누가 찾아오고 무슨 건이 있고 무슨 건이 있고’ 자꾸 주님이 대 주신다 말이오. 대 주시면 ‘주님 이거 어째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이래 치우고 저래 막고 저래 막고 다 막을 것을 주님이 또 가르쳐 주신다 말입니다.

그래서 단단히 따져 놓고도 턱 닥쳐 놓으면 그만 깜짝 잊어버렸습니다. 깜짝 잊어버리고 그만 푹 빠져버렸다 말이오. 그 일을 또 안 할 일을 또 해 놨다 말이오. 해 놓으면 또 원통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주여, 어쩌든지 이 일을 고치게 해 주옵소서.’ 이래 또 기도하고 이라면 다시 그런 때를 또 주십니다. 또 주시면 이제 처음에는 실패가 백 프로 실패지마는 두 번째 오면 한 오십 프로 성공 오십 프로 실패라. 세 번째 오면 그만 백 프로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같은 현실을 자꾸 거듭거듭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 연성해서 이래 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일에 대해서 우리가 거룩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저는 일에 대해서는 다른 일 안 하고 나는 다른 일을 안 해야 되는데 합니다, 다른 일은 이것 교회 행정이니 하는 것도 그것 내가 안 하고 그만 설교 말씀만 가르쳐 주고 저거끼리 뭐 싸우든지 어쩌든지 하든지 삐갱이 싸우듯이 싸우면 나중에 싸우다가 나중에 얼마 싸우고 나면 안 싸웁니다. 왜 안 싸웁니까? 화목이 돼 안 싸웁니까? 화목이 돼 안 싸우는 것이 아니라 좀 싸워 놓으면 이 엄지손가락 다음 손가락 또 이것이 다 나옵니다. 크고 작은 것이 다 나왔기 때문에 그만 거기는 다시 싸움이 안 나요. 좀 큰 것 작은 것 그만 이것이 다 그만 다 나타났기 때문에 싸움이 안 나와요.

이것 모양으로 ‘이래 두고 그만 그것은 내비두고 나 할 일은 꼭 주님 부를 때까지 내가 열한 가지 이것을 내가 해야 되겠는데.’ 그 열한 가지 일은 일곱 새벽기도회 때에 설교를 하든지 내가 나와서 재독을 하더라도 일곱 새벽 기도 나와서 강단에 서는 것과 또 일주간 동안에 주일 오전 오후, 삼일, 오일, 네 번 서는 것. 일곱하고 넷하고 열하나라. ‘열한 차례 이 예배 인도하는 것이 이것 나 할 일이라’ 이것은 확실히 결정이 됐는데 이 일을 실행을 못 합니다. 실행 못 하는 것은 어데서 실행 못 해지느냐 하면 이 안 할 일 하는 데서 그만 틀려지고, 잠을 잘 안 자는 데서 틀려지고, 또 밥을 잘 못 먹어서 틀려지고, 그만 또 영적 밥을 못 먹어서 틀려지고, 기도하고 성경 봐야 될 터인데 그 시간에 뭣이 와서 성경 못 보고 기도 못 하면 다 헛일이라. 이러니까 뭐 그런 데서 다 원인이 됩니다. 이러니까 나 할 일은 열한 가지로 이래 작정해. 열한 가지만 하면 실패가 없는데 열한 가지 이것을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일호가 제일 중요하다, 꼭 여덟시만 자면 내가 열한 가지는 틀림없이 계속하는데 이 계속 못 하는 것은 전부 일호에서 제일 사고가 많이 났다. 제가 그걸 느껴서 그랬습니다. 여러분들도 혹 여러분들 자기 생활에 같은 형편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6. 여섯째는 사람과 일과 물건을 접촉하는 것

여섯째는 사람과 일과 물건을 접촉하는 여기에 대해서 이제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사람, 일, 물건, 이 세 가지를 접촉하는 데. ‘어떤 사람은 내가 접촉하니까 이런 유익이 있고 이런 손해가 있더라. 어떤 사람은 접촉하니까 이런 미혹이 있고 이런 또 도움이 되더라.’ 사람이 보면 이상해요. 똑 장단점이 있어요. 도움이 있는 것만치 손해가 있습니다.

도움 되는 면 손해 되는 면 이것이 있고, 손해가 둘 있고 도움은 하나 되는 것도 있고, 이제 도움은 둘 있고 손해 하나 되는 것, 도움은 또 서이고 손해는 하나 되는 것, 그것 사람 접촉을 이미 많이 접촉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에 접촉한 그것을 자기가 잘 살펴봐서 그러면 그 결산이 어찌 나왔노? ‘그 사람 접촉하는 데에, 그 일 접촉하는 데에, 그 물건 접촉하는 데에서 내가 그 결산이 어찌 나왔노?’ 결산을 따져보면 환하게 다 압니다. ‘거기는 공연히 허영이 나왔다, 허욕이 나왔다, 또 거기는 공연히 시간과 모든 허비를 했다, 거기는 공연히 우쭐해서 유혹을 받았다.’ 뭐 별별 모양이 살펴보면 오만 것 환하게 다 나옵니다. 그만 그것 보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성경 연구고 그게 지혜고 능력이고 다 됩니다. 그것 보면 다 나오고 있으니까.

이래서 그 사람과 일과 물건에 대해서도 나는 접촉하고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에 대한 결산을 보고, 또 현재에 대한 앞으로 어떻게 되겠느냐 예산을 한번 따져보고, 또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한다하는 그것은 어찌 되겠느냐 그것도 예산 따져보면 ‘이것은 할 일이 아니다. 말아야 되겠다.’ 그래 생각하면 백 번 안 해야 될 일로 작대기 딱 그어버렸는데, 작대기 그었는데, 현실을 닥치면 그것을 해야 될 일인 줄 알고 떡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앉아서 이성과 양심과 하나님의 성경 말씀과 그 믿음의 도움을 받아서 이래 하는 것은 참 현실 닥쳐서 그때 그때 우리가 이성 판단해서 취사선택하는 데에 대해서는 뭐 백배나 더 정확하게 옳습니다.

우리는 그때 그 현실을 닥치면 이 욕심이라는 미혹 있지, 명예욕 있지, 허욕 있지, 자기를 또 남에게 지나치게 보이게 과시의 욕심이 있지, 명예 욕심이 있지, 또 돈 욕심이 있지, 또 안일 욕심이 있지,  예술 욕심이, 행락 욕심이 그뭐 굉장한 것이 거기 있기 때문에 막 이놈이 우-달라 들어서, 마치 조금 우스운 말이지마는, 뭐 지금은 그런 일 있는지 없는지 우스운 말이지만 저 산에 가서 아이들이 용변합니다. 용변하면 어데 파리가 오는지 파리가 어그르르 하며 막 전부 똥파리가 다 올라와서 막 달라붙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떡 우리에게 일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딱 새로 접촉할라 하면 거기에 보면 뭐 똥파리들이 마구 거기에 오만 그런 더러운 것들이 막 우- 달라붙어.

달라붙어서 와서 이 명예 욕심, 공명 욕심, 물질 욕심, 또 감정, 또 애정, 정욕, 또 뭐 공로, 또 자기 자존심 뭐 별별 것이 으그르르 오는데 그것이 전부 죄 덩어리인데, 그게 마귀인데, 이놈이 와서 쑤석거리니까 자기가 평소에 앉아서 거룩으로 구별해서 인인 접촉 사물 접촉에 이 구별한 거룩 이것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얼토당토 안한 일을 턱턱 해 재낀다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미리부터 계산 대놓고 살아도 그것이 잘못하면 실수하게 쉬운데 이런 계산대지 안하고 그저 닥쳐지는 대로 산다는 이것은 참 공중에다가 활을 쏴 놓고 잉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오. 도무지 이 거룩에 명중된다는 것은 될 수가 없는 일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미리 정해 놓고 따져보고 또 기도하고 또 재심사하고 자꾸 이래 해도 안 되는 것인데 그래 안 하면 안 됩니다.

7. 일곱째는 노는 것

또 일곱째는 노는 시간, 이 노는 시간을 제일 잘 노는 것은 어떤 것이 잘 노는 것이냐 하면 하나 예를 들면 지금 그 잉어 그놈이 말이지요, 잉어 그놈이 폭포수에 놀다가 폭포수에 훅 뛰어 올라가서 이만치 높은 데도 훅 뛰어 올라갔다가 또 훅 뛰어 내렸다가서 자꾸 이래 하는 것, 사람이 그것 보고 뛰어오를라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막 폭포수에, 이렇지만 그놈은 재미라.

자기 하는 그 자기 일, 자기 본분, 자기 본성, 우리로 말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이 세 가지가 우리 본질과 본성이요 본분이기 때문에 이제 이로 인하여서 자꾸 이 생활 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재미있고 수월하기도 합니다. 이 생활 하는 것이 어떨 때는 좀 강도가 좀 높고 또 거기에 좀 결과를 좋은 결과를 바라고 하면 됩니다. 그것이 굉장히 되요. 피의 생활도 되고, 영감의 생활도 되고, 진리 생활도 되고, 되지마는 자기 실력 정도에 이하된 것은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서로 이것 신앙생활 하고 이렇게 다른 사람 구원하고 하는 그런 것은 참 재미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기 반사 선생님들이 자기가 학생을 인도하든지 가르치든지 권찰님들이 그리 하든지 하는 데에 그 일이 하면 고된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고, 말하다 보면 어데서 힘이 나왔는지 그것 해 냈는데 그것은 노는 겁니다. 아주 노는 것이고 그것은 피곤이 풀립니다. 피곤이 풀리는데 그 이상 지나치면 그것이 일이 고돼서 심히 되요. 된데 그럴 때는 조금 쉬어서 해야 되지 그것을 절제하지 안하고 지나쳐 가다가는 그만 나중에 과로가 되면 일이 납니다. 일이 되니까 이제 그 노는 일을 잘 해야 되는데 제일 잘 노는 일은 어떤 것이 잘 노는 일이냐? 자기 본질과 본성과 본분에 맞은 일을, 다른 것 안 하고, 놀 때에 다른 것 할 때에 그것을 해서 취미를 붙이면 그것이 제일 잘 노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잘 노는 것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안 돼요? 제일 잘 노는 것입니다.

잠자리가 우리가 보면 되지마는 이놈이 푹 올라왔다가 내려왔다가 또 물에 꼬리를 질근 담궜다가 또 이리저리 숲속으로 돌아다니고 이게 그것 노는 거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놈은 그 재미로 노는 것이라. 그러니까 제 본분 본질 본성에 맞도록 그래 사는 것이라. 저 개울에 가면 물이 막 콸콸 흘러 내려가면 뭐 어떻게 살이 센지 사람은 거기 부딪히지도 못하는 데도 거기 이 고기들이 살며 훌딱 이래 쌓으면 그것 일하는 것이 아니고 재미로 노는 것이라.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본질 본성 본분에 맞은 일을 과로가 되지 않게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할 때는 그것이 제 노는 것인데 제일 재미있게 노는 것이요 그것 또 수월한 것이요 그것이 아주 잘 노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인데 그리 안 해도 어릴 때에는 노는 일을 말이지요. 노는 일을 이것을 아주 죽여야 됩니다. 노는 일을 차차 차차 죽이고 노는 일을 바꿔야 됩니다. 그저 사람이 자기하고 누구하고 그 이웃끼리 노는 것, 노는 이것 시간, 시간을 하루 종일 생각하면 노는 데 시간 다 뺏겨버렸습니다. 그 뭐 테레비하고 노는 것, 가족끼리 또 저녁 먹고 나면 테레비 보자 하고서 그래 또 노는 것, 얘기하고 노는 것. 노는 것은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그 시간에 제일 큰 손해를 봤고 그 시간에 할 일을 못 하고 시간은 다 뺏겼습니다.

이러니까 노는 것을 자꾸 계산해 보십시오. ‘저녁 먹고 뒷집에 가서 노는 것, 앞집에 가서 노는 것, 이래 만나서 노는데 이 시간에 나는 큰 손해를 봤다. 이 노는 이것은 제거를 해야 되겠다.’ 그것이 거룩이라. 노는데 거룩, 노는데 끊어버릴 것을 끊어버리는 것이 노는 데 거룩이라 그 말입니다. 또 노는 데에 또 취할 것을 취하는 것이 그것이 또 거룩이라.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이 노는데 거룩을 가지고서 ‘이 놀음은 우리 할 일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뭐 그것도 죄 짓는 그런 상식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필요하지마는 될 수 있는 대로는 그 테레비젼 거기 나오는 것보다 성경에서 배운 것은 더 낫기 때문에 혹 뉴스, 이 모든 세상 형편에 되어가는 소식 그런 것, 다른 것은 볼 것 없고 혹 뉴스 같은 것 또 뉴스 중에서도 무슨 위생이라 하는 것, 무슨 의료에 대한 것, 또 주부들이라면 또 요리 만드는 것 뭐 그런 것은 상식으로 문화 테레비나 또 소식 테레비나 그런 것은 보지마는 그 연속극이니 하는 그런 것은 봐야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보다 더 훨씬 능합니다.

그리고 요새 사람들은 이상한 것이 아무리 강단에서 말해도 그것은 안 믿어도 테레비, ‘아, 테레비서 말하더라.’ 테레비에 말한 것은 절대 정확 무오입니다. 그것 미친 인간이요 썩은 인간이라. 여기 그런 사람들 많아요. 아, 테레비에 그러더라고.

테레비에 그 사람들도 좋은 것도 있지마는 그 사람들도 다 그런 수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거기서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그 믿어야 되지 거기서 말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래 하기 때문에, 이제 무슨 곶감이 세월 날라 하면 그 사람들이 ‘곶감이 이렇다’ 하면 곶감 세월이 나고, 또 뭣이 어떻다 이러면 세월이 나고, 저 애굽 나라에서는 검은 소 똥이 제일이다 하니까 검은 소 똥이 막 세월이 나 있어. 그거 모양으로 그래 하면 안 돼요.

이제 그런 데에 시간을 뺏기지 말고 어쩌든지 노는 시간을 잘 구별해서 그 끊어내 버릴 그런 놀음은 다 끊어내 버리고 또 자기가 가질 놀음은 가지고, 가질 놀음 그것 가질 때에 그 재미가 있습니다.

자기 본질과 본성과 본분에 맞는 그 일을 일로 하지 안하고 노는 것, 자기에게 그것을 강제되지 안하게 순조롭게 자기는 그저 그 취미로 하는 것, 그것이 노는 것이기 때문에 그 노는 일을 우리가 잘 취해야 됩니다. 취미로 하는 것은 노는 일이오. 그러나따나 만일 그런 것을 억지로 강제로 하면 그것이 일이 됩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노는데 끊어버릴 것을 끊어버리고, 또 노는 데에 취할 것을 취하고 이렇게 해서, 노는 것도 그 장소와 시간과 종류와 그런 것을 잘 구별해서 이래 살면 그것이 거룩이 됩니다.

(결론)

1. 과거 현재의 결산과 미래의 예산

이래서 이 일곱 가지 면으로 거룩을 잘 따져서, 잘 따질 때에는 과거 현재에 결산을 보고, 현재에만 대한 그 미래의 예산을 보고, 또 앞으로 계획하는 그게 그 장래에 예산이 어찌 되느냐 그 예산을 봐서, 그런 가운데서 과거 현재 미래를 결산하고 계산하고 예산하는 데에서 우리는 새로운 그 새 계획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서 사는 그것이 거룩한 생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생활을 하려고 하면 여러분들이 많은 얼마 동안 제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오늘밤부터는 이 자는 것만 좀 잘 조절하면 내일 아침에 이 자리가 거뜩 차게 나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2. 새벽기도 못나오는 이유

이런데 그 모두 왜 여기서 나오겠다고 약속하고 그리 안 하면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못 나오면 내일 아침 굶겠다고 이렇게까지 약속을 하고서 왜 새벽기도 못 나오느냐? 대개는 자는 데 먹는데 두 군데 사고 났습니다. 자는데 먹는데 두 군데 사고 났습니다. 이 사고 날 줄 알고 아예 날 줄 알고 미리부터 기도하고 자꾸 이래 여간 단속 그것을 단속해 보면 압니다.

이것 단속해 보면 마귀 역사도 알 수가 있고, 성령의 역사도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안타까움도 알 수가 있고, 또 자기의 갈 길도 알 수가 있고, 거기서 또 모든 그 사리와 가치 평가가 바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아따 내일 아침에는 이 자리가 뻑뻑할새. 그런데 만일 못 나오면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못 나오면 내일 아침이라도 굶기로 그래 약속할 분들 손 한번 들어 봐. 내일 아침에 양식은 많이 남겠다.

3.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여러분들 이럴러면 잘 자야 됩니다. 잘 안 자면 안 됩니다. 자기로서는 어쩌든지 잘 자야 돼요. 그런데 이것 방해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귀신이라. 귀신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꾸 내가 알아야 귀신을 떼지요. 남편이 직장에는 일곱 시면 다 마치고 오는데 그래서 거짓말로 이러니저러니 말해서 ‘오늘 뭐 무슨 일 있고 무슨 일 있고’ 해서 실컷 친구들하고 돈 쓰고 술 먹고 돌아다니고 이래 노라리 하고 돌아다니다가서 떡 늦게 오면 그것 기다리고 앉았습니다. 이러다가 그러면 그것을 말은 안 해도 ‘우리 남편이 마귀에게 붙들려서 이것 신앙생활에 마귀 놀음 많이 한다’ 이렇게 알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어리석은 기도를 하나님이 듣지 안 해요. 이래서 그것을 없애 버리려고 기도하면 그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 설교: 백영희 목사(1987. 9. 27. 주일오후)
- 편집: 김반석     (2013. 8. 18)


● 일곱가지 거룩

첫째는 자는 것

둘째는 먹는 것

셋째는 영감의 도리를 먹는 것

넷째는 기도하는 것

다섯째는 일하는 것

여섯째는 사람과 사물을 접촉하는 것

일곱째는 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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