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구원

 

1987. 6. 17. 밤 <수>

 

본문: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광고 먼저 합니다.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지난 공과를 다 외우도록 공부하시고 많이 명상해서 자신이 은혜를 받고 또 학생들을 요 공과대로의 사람을 만들고, 공과대로의 지식과 공과대로의 행위와 공과대로의 사람을 만들도록 그렇게 노력합시다. 그라면 주님 앞에 설 때에 큰 상이 있을 것입니다.

또 기도록에 등록 안 한 분은 등록을 하도록 하고 기도록에 등록한 분들은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어짜든지 빼지 말고 계속하도록 합시다. 앞으로 큰 환난, 우리가 이길 수 없고 우리가 견딜 수 없고 또 우리가 피난할 수 없고 우리가 평안을 가질 수 없는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로, “천인 만인이 네 곁에 엎드러지나 네게는 이 재앙이 오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모든 사람은 죽고 상하고 우는데 미리부터 기도한 사람들은 아무 염려없이 기쁨과 평강으로 그 모든 시대를 다 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들이 믿음 없었으면 불미 속에 잡아넣을 때까지는 녹았을 것입니다. 뒤에 살아나왔다 할지라도 녹았을 것이고 또 불에 들어갔을 때도 녹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 능력의 보호 아니면 타 죽지 뭐 별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혹독한 속에서라도, 어떤 잔인 악독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구원은 아무것도 해할 수 없다 하는 것을 보이는데 그것은 구하는 자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한목은 우리가 암만 뭐 금식 철야를 며칠 한다 해도 그 기도의 양은 적지마는 벌써 우리가 이 기도 시작한 지가 여러 해 됐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를 계속했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자타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한 사람들은 이 기도가 굉장히 지금 저축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기도를 하도록 합시다.

또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다 나오도록 그렇게 해서, 뭐 설교도 들으러 나와야 되지마는 하나님 앞에 평생 처음 만나는 첫날 첫시간이 되는 이 새벽을 하나님 앞에 바쳐서 은혜를 감사하는 것과 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과 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여 입어서 하루 동안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평안하게 잘 승리 생활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들은 좀 몰라 그런 사람이요 또 담대한 사람이요 강퍅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간 그까짓 거 몇닢푼치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도, 과거 그 캄보디아나 뭐 월남에 일어난 그것을 우리가 그저 먼 데서 소문 잘 듣고 있는데 그럴 때에 거게서도 참 그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있고 또 절단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아 홍수가 그 큰 환난입니다. 홍수같은 큰 환난은 지구상에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는 불로 가지고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큰 환난입니다. 홍수 환난이 그렇게 왔지마는 노아의 여덟 식구에게는 무상한 하나님의 축복이요 기업입니다. 그걸 우리가 잘 생각하면서, 벌로 날뛰면 안 됩니다.

지금 뭐 이 데모가 어떻게 심한지 오늘 아침에 저도 여섯시 못 돼서 가니까 저 영선고개 오는 차를 막아 놓고 마구 야단입디다. 그래서 이리 둘러 가지고 가 가지고 또 올 때도 또 막혀서 막아서 함부래 저리 둘러 가지고 그래 아무 지장 없이 오기는 왔습니다.

그런데 거게 대해서 우리 할 일이 뭐인가? 우리 할 일이 이 사람 저 사람 말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 그 말이 믿을 수 없는 말 또 부인할 수 없는 말, 이러기 때문에 사람 말 듣지 말고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나와 내게 속한 사람들이 잘 피난되도록 그렇게 하는 길이 제일 중하기 때문에 좀 기도를 이제 열심히 합시다. 기도 열심히 할 때가 왔습니다.

저런 것 다 하나님께서 ‘기도 열심히 해라. 지금 너희들이 열심히 안 하면 큰일 난다.’ 이것을 지금 보이고 있는 것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구할 때가 있으니까 얼마나 복입니까? 기도해요. 기도하고 또 거리끼는 것 있으면 회개하고.

뭐 교만이니 명예니 허영이니 허욕이니 권세니 인기니 다 그거, 그것 탐하는 사람들은 정신 없는 이상자입니다. 정신 이상자요. 다 미친 사람들이오. 그런 것 할 때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은 난리와 난리 나는 소문을 들어도 움직이지 말고 또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6.25 같은 그런 게 날 때도 참 성도들은 그럴 때에 뭐 요동치 안하고 벌써 그럴 걸 다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기도 많이 준비했기 때문에 그때에 아무 어려움 없이 다 잘, 실수하고 그리 실족하지 않게 잘 지내갔던 것입니다.

이럴 때에 공연히 거게 피동돼 가지고 마음이 울렁울렁하면 안 됩니다. 그저 우리 할 일만 딱딱 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솜씨만 이렇게 구경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다시 봉독하게 된 것은 30절에 “둘 다 추수 때까지” “둘 다 추수 때까지” 이거는 곡식과 가라지 이 둘 다 말입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함께 자라게 두어라” “함께 자라도록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에 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데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하려고 합니다.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36절 이하에 보면은 이 곡식과 가라지에 대해서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이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또 그 가라지를 심은 자는 마귀요” 이랬습니다. “가라지를 심은 자는 마귀요 그는 악한 자들이다” 악한 자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자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 수 없고 이제는 주님 중심 주님 위주로 살아야 되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로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대속 입은 새사람으로 사는 게 아니고 대속 입지 안한 옛사람으로 사는 그 사람입니다.

“악한 자의 아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나라에서” “나라에서” 이 세상 교회에서, 나라에서 말은 세상 교회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넘어지게 하는 것, 다른 사람을 굳게 세우지 안하고 어짜든지 믿음이 더 강하게, 또 확신이 되게, 흔들리지 않게, 이 하늘 소망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간절하게 이렇게 하지 안하고 사람을 흔들어서 믿음이 없게, 하늘의 소망이 또 빈약하게, 예수 믿는 일에 자기의 참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믿고 싶은 이런 마음을 다 흔들어 깨뜨려서 그만 허리끈 풀어놓고 그렇게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 아주 낙관시하도록 그렇게 하는 그런 것이 다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는 뭣을 불법이라 하는가? “죄는 불법이라” 그말 있습니다. 이 불법 행한다 말은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법에 준해서 살지 안하고 이 세상 이치대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불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합법은 뭣이 합법인고 하니 예수님의 열한 가지 구속이 합법입니다. 그 외에는 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도 예수님의 구속, 로마서 12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이것이 영적 예배니라” “산 제사로 드리는 게 영적 예배니라” 이제 자기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이 대속하신 그 공로 그거는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요래 하는 것이 그 영적의 이치에 합당한 것인데 그렇지 안하고 사는 것을 가리켜서 다 불법 행하는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여게 대해서 여러분들이 아직까지도 확실한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면 앞으로, 지금 확실히 깨달아서 확정지워야 되지 지금 확정지우지 안하면은 앞으로 차차 갈수록 흔들리지 확정을 지우기 어렵게 됩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는 것은 ‘이 가라지는 다 지옥 간다. 곡식은 천국 간다.’ 이랬는데 이 뭐 천국 갈 사람들이야 들으면 무슨 소용 있으며 안 들으면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들으나 안 들으나 다 천국 가는 사람들인데.

천국 가는 사람은 다 천국 가고 가라지는 지옥 가고 요렇게 갈라지면 문제가 없겠는데 이 가라지가, 가라지가, 다 가라지 행위 하는 자는 다 지옥 가는 것이 아니고 가라지 행위 하는 자의 그 행위는 지옥을 가지마는 가라지 행위를 한 그자도 택한 자면 영과 그 심신의 형체는 하늘나라 간다 이라는 데서 이거 크게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진영에서 이런 데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논쟁이 있지 일반 온 세계 교회에서는 논쟁이 없습니다. 다 ‘그 가라지 노릇 한 사람들은 다 지옥 간다. 이러기 때문에 이 곡식은 천국 가고 가라지는 지옥 간다.’ 요렇게만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시비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게서는 ‘이 가라지와 곡식은 다 택한 중생된 성도들의 행위를 가리켜 말한다.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성도들 중에도 가라지 행위 하는 사람도 있고 곡식 행위 하는 사람도 있다. 가라지는 어떤 행위를 하는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의 그런 행위를 한다. 또 곡식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어떻게 하는가? 그는 의로 산다. 의로 산다.’ 의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산다는 말이요 또 불법으로 산다 말은 대속받은 자가 대속법대로 살지 안하고 대속법을 다 벗어버리고 대속법에 합당치 아니한 그 법으로 사는 것이 다 불법으로 사는 것이요 그렇게 하는 자가 다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라, 다른 사람에게 좋은 본을 보여서 믿음을 격발케 하지 안하고 도로 믿음을 흔들리게 한다.

그래서 그들이 다 “풀무불에 던져 넣으니까 거게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며 있으리라” 이 문제가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돼요. 이거, 이거 모르면 안 돼. 졸지 마. 졸지 말라고요. 졸면 안 돼. 이거 모르면 큰일나, 이거. 잘 알아야 돼.

가라지들이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데, 이를 갈고 있는데 이를 갈고 있는 그것이 누가 이를 갈고 있느냐? 그거는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들, 중생되지 안한 그 모든 불택자 불신자들이 다 지옥 간다 이라면은 문제가 없는데 여게는 그런 것이 아니고 택자들의 이 심신의 기능이 지옥 간다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러니까 심신의 기능이 어찌 지옥 가느냐? 그러면 심신의 기능이 예수 믿는 한 사람에게, 한 사람에게 한쪽은 천국 가 있고 한쪽은 지옥 가 있느냐? 그러면 천국 가 있으면은 천국 가 있는 사람은 누구며 그러면 지옥 가 있는 사람은 누구냐? 천국 가 있는 사람은 중생된 사람이다.

그러면 천국에 그 심신과 인격이 거게 가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 또 지옥에 간 사람은 뭐 어데 지옥에 그 인격이 갔겠나? 그러면 한 인격이 둘로 갈라진다 말이냐? 이래 가지고 많은 논쟁이 있는데 여러분들 내가 간단하게만 지금 말하고 말 터이니까 요걸 잘 기억해서 해야 됩니다.

여게 보면 주인이 곡식을 먼저 심었습니다. 가라지는 뒤에 모르게 와 가지고 마귀가 와서 덧뿌렸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안 믿는 사람이라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 본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이 믿는 사람을, 믿는 사람들이 먼저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먼저입니까? 우리는 누굽니까? 나는 안 믿는 사람이 먼저였고 그라고 난 다음에 예수 믿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태중에서 믿은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태중에 믿지 안한 사람들은 다 안 믿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믿는 사람이 뒤에고.

이런데 여게는 곡식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심어 놨는데 이 곡식은 하나님의 아들 또 가라지는 마귀의 아들 이래 놨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먼저 심어 놓고 마귀 아들을 다음에 심었다 이랬는데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대로는 안 믿는 사람들이 먼저고 믿는 사람이 뒤에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저○조사님 어때요? 안 믿는 사람이 먼저고 믿는 사람이 뒤지요? 이랬는데 여게는 믿는 사람이 먼저거든. 하나님의 아들을 주인이, 예수님이 먼저 심었다 이랬다 말이오.

심었다 이랬는데, 요런 것 하나 하나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우리가 중생했지요.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서 중생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혀 중생된 우리에게, 우리에게는 이 마귀가 심어놓은 악한 자 마귀의 자식 이 마귀의 자식이 중생된 자에게는 중생이 먼저입니까 마귀의 자식이 먼저입니까? 뭐이지요? 저 ○○○교회 저 조그만한 조사님? 뭐이야? 중생이 먼저입니까 마귀가 와 가지고 우리에게 마귀의 자식을 심어 준 게 먼저입니까, 어떻습니까? 뭐이 먼저입니까? 중생이 먼저고 마귀의 자식을 심어 준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거는 맞지요? 그것을 가리켜서 “밤에 마귀가 와 가지고 자는 데 와서 심었다” 요것은 중생되고 난 다음에 마귀란 놈이 중생된 자에게 와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그 속에 집어넣어 가지고 옛사람 행위를 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 현재 교회들입니다.

그러면 그전 것은? 그전 것은 예수님이 다 대속했기 때문에 다 일단 완전히 완료가 돼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대속됐기 때문에 그전 것은 다 정리돼 버리고 다 완전히 해결돼 버렸습니다. 해결되고 나서 우리가 중생했습니다.

요것을 지금 구별을 못해 가지고, 요거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 요거 확실히 가져야 능력이 오지 그리 안 하면 안 옵니다. 뭐 시간 없어 다 그거 내가 말 못 하겠는데.

또 추수할 때는, 추수할 때는 가라지를 먼저 추수했습니까 곡식을 먼저 추수했습니까? 가라지를 먼저 추수했지요? 그랬는데 요한계시 14장에는 어떻습니까? 곡식을 먼저 추수했습니까 포도를 먼저 추수했습니까? 어떻게 했소? 거게는 어떻게 했어요? 곡식을 먼저 추수했습니까 포도를 먼저 추수했습니까? 포도는 안 믿는 사람이라고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먼저 추수했어요? 거게는 곡식을 먼저 했습니다. 알겠습니까? 곡식을 먼저 했습니다.

이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를 말하는 것인데 재림 때는 믿는 사람의 종말이 먼저 됩니다. 믿는 사람의 종말 다 돼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다 구원 얻어서 공중에 끌려 올라가고 난 다음에 땅에는 안 믿는 사람들만 있는데 그 안 믿는 사람들이 이제 그 전쟁으로서 포도를 포도즙 짜는 틀에다 넣고 밟으니까, 성 밖에서 밟으니까 일천육백 스다디온이 흐르더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게는, 이거 머리가 좀 좋지 않으면 안 돼요. 거게는 이 세상 끝에는 믿는 사람들 추수를 먼저 하고 안 믿는 사람 추수를 뒤에 한다고 했는데, 요한계시 14장에는 뒤에 한다고 했는데 여게는 곡식 추수를 먼저 합니까 가라지 추수를 먼저 합니까? 여게는 가라지 추수를 먼저 합니다.

그것은 개인으로나 또 시대적으로나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는 무엇이 먼저 정리되느냐 하면 그 사람이 자기에게 있는, 아무리 잘못 산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있는 이 가라지, 가라지 그것과 곡식과 둘이 갈라집니다. 갈라지고 난 다음에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거 이해가 됩니까? 기억이 돼요? 이거 딱딱 들어맞아. 안 맞으면 안 돼요.

아무리 그 사람이 신앙 생활을 더럽게 해도 세상 딱 떠나게 되면은 먼저 회개부터 완전히 합니다. 이제 자기는 죄지었던 걸 다시 그, 회개는 할 수, 개는 못 하지마는 후회는 다 해 가지고 자복을 하고 ‘내가 이렇게 살았다’ 해서 자기의 잘못된 생활은 다 잘못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다 포기하고 난 다음에 이제 완전히 아닌 거는 다 끊어 제해버리고 나머지기 그것이 나중에 주님 부르면서 운명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요것 다 누가 경험한 사람 있습니까? 요거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혹 말하기를 ‘비유라 하는 것은, 비유라 하는 것은 그거 대충 하나나 둘이나 하는 것이지 낱낱이 비유로 다 해석하면은 삐뚤어져 나가기 쉽다.’ 그랍니다. 그런 미혹 오기도 쉽습니다. 이 비유는 한 가지만 말할 것 있고 두 가지만 말할 것 있고 열 가지 말할 것 있고 거게 있는 스무 가지 말할 것 있고 낱낱이 말할 것이 각각 다릅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갔는데 뽕나무 올라갔으면 뽕나무는 ‘키가 작으니까 좀 돋움할라고 올라갔다’ 그것으로 족하지 ‘뽕나무에는 누에를 기른다, 누에를 길러서 명주 옷을 입으면 어떻다.’ 자꾸 그래 뻗어 나가면은 그거는 틀립니다.

요거는 거기 딱 들어맞아요. “요거 주인이 먼저 심으고 원수가 주인 모르게 와서 덧뿌렸다. 뿌려 놓은 위에 덧뿌렸다.” 그러면 중생시킨 자에게 마귀가 와 가지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다시 집어넣어 줍니다.

또 세상을 떠날 때에는 어떻게 해서 가라지가 먼저고 곡식이 뒤냐? 세상을 떠날 때에는 가라지 된 그 요소부터 먼저 다 잡아 떼서 제거해 버리고 나머지기 곡식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나라 간다 그 순서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게 “뽑으리이까” 하니까 말씀하시기를 30절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함께 자라게 두어라” 그러면 자라게 두어라 이랬으니까 우리 교회는 가라지와 곡식이 둘 다 자라고 있는 교회인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요게서 눈을 떠야지 참 이 중요한 것인데 이런 데서 안 배우면 못 배웁니다. 이런 데서 안 배웠다 말은 요 성경에서 안 배우면 요 이치를 배울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가라지와 곡식 둘이 우리 서부교회 내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또 이 한국 교회에 가라지와 곡식이 둘이 같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저거는 이단인데 왜 저거 자꾸 자라가?’ 그것도 자꾸 자라갑니다. 또 정통도 자라갑니다. 또 세계 교회도, 온 세계 교회에도 곡식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갑니다. 또 한 사람에게도 한 개인에게도, 한 개인에게도 곡식과 가라지가 다 같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한 개인에게도 곡식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요거 알아야 돼요.

그러면 자기에게 마귀의 자식도 자기에게 자라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 천국 백성도 자라가고 있습니다. 천국의 아들들도 자라가고 있고 마귀의 자식도 자라가고 있고 한 사람 속에서 마귀의 자식도 자라가고 하나님의 아들도 자라간다. 또 한 교회에도 마귀의 자식도 자라가고 하나님의 아들들도 자라고 있다. 온 세계 교회에도 세계의 그 기독교 안에도 하나님의 아들과 마귀의 자식이 같이 자라가고 있다. 그러면 같이 자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라간다.

자라가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으로 자라가는가? 하나님의 아들은, 다 현실에서 자라가는데, 하나님의 아들도 마귀 자식도 현실에서 자라가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성령,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의 대속은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아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신 그 영과, 하나님의 영과 또 그 사람의 심신의 기능이 같이 자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자라가? 하나님의 영은 자기에게 자꾸 충만해지고 충만해지고 충만해지고 그 심신의 기능은 현실 현실에서 자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이 마귀의 아들은 어떻게 자라가는가? 마귀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 반대인 악령이 그 속에 들어 가지고, 들어 가지고, 영감과 진리로 자라가는 게 아니라 그것은 악성과 악습으로 자라갑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자라갑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자라가고 하나님의 아들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자라가고, 그러면 현실 현실마다 자꾸 자라가고 있습니다.

자라가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하루 살지 않습니까? 하루 살면 하루 사는 데에는 하루 사는 정력이 소비됩니다. 하루 사는 정력. 하루 사는 정력이 소비되는데 하루 사는 그 정력이 그것이 어떤 사람은 어학이라는 기능으로 화해져 버리고, 어떤 사람은 또 과학이라는 기능으로 화해져 버리고, 어떤 사람은 또 예술이라는 기능으로 화해져 버리고, 어떤 사람은 진리라는 기능으로 화해지고, 영감이라는 기능으로 화해지고, 어떤 사람은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만 그 기능이 하루 밥 먹고 이렇게 뭐 놀고 자고 하다가서 그만 그것으로써 소비되고 마는 사람도 있고, 이래서 어떤 사람은 십 년을 자기가 매일 매일의 그 정력을 어학 하는 데다 기울이면 그 십 년 공부에서 그 사람은 벌써 늙어서 쭈글쭈글 힘이 없지마는 십 년 그 정력이 어학이라는 기능으로 다 화해지고 말았습니다. 또 그 사람은 어떤 예술의 기능으로 또 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한 시간 한 시간 살아갈 때에 거게는 반드시 자기의 전 자본인 그 정력이 다 거게서, 거게서 다 소비되고 만다. 그러면 그 정력 다 소비하면 죽습니다.

소비되고 마는데 그 정력을 소비하는 데에 그 정력을 그냥 아무 무용지물로 다 소비해 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정력을 무슨 어떤 뭐 춤 추는 기능으로 그렇게 바꿔서 그 정력이 춤 추는 기능화된, 춤추는 기능이 되는 사람도 있고, 그 정력이 글씨 쓰는 글씨 쓰는 기능으로 기능이 된 사람도 있고, 그 정력이 어학 기능이 되는 사람도 있고, 그 정력이 과학 기능이 되는 사람도 있고 여러가지, 또 그 정력이 점점 자꾸 도둑질을 해서 도둑질하는 기능으로 화해지는 사람도 있고, 악독의 기능으로 화해지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지 그날 그 정력 가지고 무슨 일을 했든지, 아무것도 안 했으면 그 정력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고 거게서 무엇을 했든지 했으면은 그것은 한 그대로의 그 기능화된다. 기능화된다. 그러면 이거 이해가 됩니까? 어째요? 이해가 돼요? 지금 양성원 학생들은 요번 일주간 동안은 성경을 지금 읽으라고 했는데 일주간 동안 성경을 읽으면 그 읽을 때 여러분들이 참 힘을 기울여서 읽으니까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일주일 동안 읽은 그 정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까 그 정력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까? 정력이 남아 있습니까 없어졌습니까?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는데 그러면 일주일 내 성경 공부하면서 읽으면서 그 정력이 없어졌으니까 그 정력이 아주 없어졌습니까 그 정력이 성경 깨달음에, 성경 지식의 기능화됐습니까? 기능화됐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지 인생이 이 세상에서 한 시간을 살 든지 하루 살든지 살 때에는 반드시 그 사는 데는 정력 소모가 안 되면 살아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그만치 사는 것만치 정력을 댓가를 내야 되는 것입니다.

내야 되는데 정력이 그만치 소비하게 되는데 그 정력 소비가 어떤 기능 마련으로 투자돼서 기능으로 이래 바꿔져 가지고 기능화돼 버리고 정력은 없어졌으나 기능화되는 것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쁜 기능화되는 사람도 있고 좋은 기능화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기능화되지 안하고 그 정력만 그만 없어져 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고,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 그래 가지고 일생을 살았는데, 일생을 살았으니까 그 사람은 자기 산 대로 어떤 사람은 땅에 속한 그 기능을 온갖 기능을 마련해, 그 정력 가지고 마련해서 땅에 속한 기능이 온갖 기능이 마련돼 가지고 나이는 늙어서 벌써 팔십이 됐지마는 일생 동안 그 정력을 기울여 가지고 만든 그 기능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아는 것도 높으고 세상 노릇은 세상 기술이나 지식이나 그게 높다 말이지.

벌벌벌벌 떨어서 걸음을 잘 못 걸어도 기계 같은 거를, 기계에 대한 기술을 내 그 정력을 기울여 가지고 일생 동안 했기 때문에 늙어서 힘은 없지마는 청년이 천 명이 달라들어도 그것을 고치지 못하고 그 고장이 어데 났는지 모르는데 이거는 그 벌벌 떠는, 건드리면 손가락으로 탱구면 톡 쓰러질 수 있는 그런 영감탕구지마는 이제 평생에 정력을 기울여서 기능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사람 그 기능이 있는 사람이라 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그 기능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일생 동안 무슨 기능을 마련했느냐 하면은 ‘나는 하나님의 택한 자다’ 택함을 자기에게 더 확고히 가져 택함을 확신하는, 택함을 확신하는, 택함을 받은 자의 택한 자로의 사는 생활, 또 하나님의 이 공심판을 통과해서 의로 사는 생활, 하나님의 구비한 율법을 어기지 안하고 그 율법을 범하지 안하고 살라는 하나님 법을 범하지 안하고 사는 그 기능, 또 하나님과 화친한 기능, 또 죄의 종이 되지 안하고 죄를 이기는 기능, 사망을 이기는 기능, 마귀를 이기는 기능, 하나님을 향해 사는 기능, 진리대로 사는 기능, 영감대로 사는 기능, 또 제사장노릇 하는 기능, 선지노릇, 왕노릇 이 기능, 그러면 이거 몇 가지입니까? 이거 전부 몇 가지요? 손가락으로? 몇 가지입니까? 이 열한 가지로 살았기 때문에 열한 가지 이 기능이 장성해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늙었지마는 늙어서 갈 때가 됐지마는 그 사람은 열한 가지 기능으로서 그 일생 동안 산 것이 열한 가지 기능화됐습니다. 정력은 없어지고 그 정력이 열한 가지 기능화됐습니다.

이 사람은 일생 동안 살았는데 그 산 것이 전부 땅에 있는 그 기능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 정력이 없어지고 다 정력이 땅에 속한 것의 기능화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한 사람은 땅의 기능 한 사람은 하늘의 기능 이래 가지고 두 사람이 따로 다르겠고, 또 한 사람으로서라도 요 사람은 반은 이 열한 가지 기능 생활을 해서 열한 가지 기능이 마련돼 가지고 있고, 반은 돼 가지고 있고 반은 이 세상 것을 해서 세상 기능을 마련해 가지고 세상 기능으로 마련돼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이 사람이 한 사람이지마는 한 사람 속에 땅의 기능과 열한 가지 대속의 기능과 그 두 기능이 이 한 사람 속에 들었습니다. 이 한 사람 속에 들었습니다.

한 사람 속에 들었는데, 그러면 들었을 때에, 그러면 이 열한 가지 구속의 기능을 마련한, 구속의 기능을 마련한 거기에 영은 뭐입니까? 열한 가지 구속을 마련한 그것의 영은 뭐입니까? 열한 가지 구속을 마련한 그 영은, 둘뿐입니다. 영은 악령과 성령 둘뿐인데, 악령과 성령 둘뿐인데 그러면 열한 가지 구속의 기능을 마련한 그 기능 마련한 거게는 어느 영이, 어느 영이 지금 그것을 주관하고 있겠습니까? 어느 영이 주관하고 있습니까? 그 영은 성령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은 반은 그 정력을 들여 가지고 땅의 기능을 마련했습니다. 땅의 기능을 마련했으니까 땅의 기능을 마련한 그 기능에는 누가 주관, 어떤 영이 주관해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영이 주관해 가지고 있습니까? 악령이 주관해 가지고 있습니다. 악령이 주관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령의 것을 성령이 뺏들지 못하고 성령의 것을 악령이 뺏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 주관해 가지고 있습니다.

이라다가 그러면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 그 속에 들어 있지마는, 한 사람 가죽 속에 들어 있지마는 그 속에는 기능이 몇 가지가 들어 가지고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녜, 두 가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속한 기능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의 구속 열한 가지 기능입니다. 두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들어 있으면, 두 기능이 들어 있는데 두 기능을 만들 때에 영은 몇 영이 만들었습니까? 몇 영이 만들었습니까? 손가락으로? 두 영이 만들었습니다. 두 영이 만들었습니다.

두 영이 만들어서, 그러면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택자면 하늘나라 가야 될 터인데 하늘나라 갈 때에 그러면 열한 가지 구속의 기능 가진 그 기능은 으례히 하늘나라 갈 수 있겠고, 그러면 땅에 것을 마련한 그 기능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걸 데리고 가야 되겠습니까 두고 가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것을 하늘나라 데리고 갈 수 있습니까? 하늘나라 데리고 갈 수 있습니까? 데리고 갈 수 있어요? 이거 똑똑히 알아야 돼. 데리고 갈 수 있어요? 못 데려가. 못 데려가.

못 데려가면, 못 데려가면 그걸 어떻게, 완전히 없애버리겠습니까 그것은 그대로 존재합니까? 없애버리지 못해.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대로 존재하는 건 뭣뭣이 존재합니까, 자? 뭣뭣이 뭉쳐 가지고 존재가 돼 가지고 있습니까? 악령, 악령. 악령 그게 악성이지요? 악령 악성입니다. 악성이라 하는 것은 자기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구속을 벗었기 때문에 자기 중심입니다.

악성이라 하는 건 자기 중심의 본성이라 그말이오. 악성. 또 악습은 내나 그것의 연습하고 자꾸 해서 모둔 것이지요? 그러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 기능은, 그러면 땅에 속한 그 기능하고, 기능하고, 영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능하고 뭐하고 있습니까? 땅에 속한 기능하고, 또? 영은? 성령? 땅에 속한 기능하고 악령하고, 악령하고, 그러면 악령하고, 자기의 심신의 그게 기능이 됐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악령이 지도해 가지고 지도자가 돼 가지고 악령을 따라서 살아서 땅의 기능이 됐으니까, 땅의 기능이 됐으니까 그 기능, 그러면 그 기능은 이것은 땅에 속한 기능이니까 그 기능은 그것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그 기능이 존재합니까? 땅에 속한 기능도 존재하고 하늘에 속한 기능도 존재합니다.

요것을 잘 알아야 돼요. 기능이 그것이 없어지지 안해요. 그 기능이 땅에 속한 기능 하늘에 속한 기능 그 두 기능이 따로 있습니다.

따로 있는데, 그러면 그럴 때에 현실에서 요 악령의 지도를 받아서 악령을 따라, 악령을 좇아 살면, 악령의 생각, “육체의 생각” “육신을 좇아 살면 썩어진 것을 거두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그건데, 이제 악령으로 말미암아 그 현실의 정력을 땅에 있는 땅에 속한 기능화 요렇게 시켜서 요래 할 때에 그때에 그 이용된 모든 만물, 그때에 물질도 이용됐겠고 또 짐승들도 이용될 수 있고 사람도 이용될 수 있고 거기에 땅에 속한 기능을 마련할 때에 그때에 관련된 만물은 어데로 갔겠습니까? 관련된 만물은 어찌됐습니까? 만물은 없어졌습니까 그 만물이 그 기능, 기능을 만들 때에 만물이 거기 이용됐으니까 만물의, 그 만물은 그 기능화돼 가지고 기능 속에, 그 만물의 힘이 기능 속에 들어 있겠습니까? 그 만물의 그 모든 기능은 그 땅에 속한 기능화됐겠습니까 그 기능이 만물의 기능은 없어졌습니까? 만물은 뭐 어데 갔습니까? 한 시간 살면 한 시간 살 때에 이용된 모든 만물이 있었는데 그 만물은 뭐이 됐겠습니까? 그 만물은 뭐이 됐겠지요? 한 시간 악령을 따라서, 믿음 생활 하지 않고 악령을 따라서 한 시간 정력을 허비해서 살았으면 그 정력은 한 시간 산 정력은 지금 뭐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세상 기능 됐지요? 그렇지 안해요? 세상 기능화됐지요? 기능화됐는데 그것은 자기 정력 혼자 만들었습니까 그때에 관련된 모든 만물과 같이 만들었습니까? 만물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만물은 지금, 만물이 지금 뭣 돼 가지고 있습니까? 땅에 속한 기능화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에 속한 기능화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 정력과 또 그 땅에 속한 기능과 또 만물이 또 거게 투자돼서 만물이 기능화된, 만물이 기능화된 것과 악령과 이것이 한 사람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한 사람 속에 들어 있어서 이것이 하늘나라 갈 때에는 먼저, “먼저 가라지를 거둔다” 하는 것은 먼저 이 악령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이것부터 제거해야 되지 이거 제거하지 안하고는 하늘나라 못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떠날 때는 어떤 사람이든지 택한 사람들은 잘 믿었든지 못 믿었든지 이것을 제거해서 완전히 그와 분리돼 버립니다. 그러기에 땅에 속한 사람의 그 기능과 하늘에 속한 사람의 기능은 완전히 분리돼 가지고 마지막은 하늘에 속한 사람의 기능만 뚜렷이 이래 가지고 하늘나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이 기능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데, 이를 갈고 있는데, 그 땅에 속한 오만 말이지, 과학을 다, 과학 기능도 가졌어, 세상 도덕 기능도 가졌어, 세상 정치 기능도 가졌어, 세상 예술 기능도 가졌어, 세상 모든 행락 기능도 가졌어, 세상 도덕 뭐 윤리 기능도 다 가졌는데, 땅에 속한 기능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이것이 땅에 속한 기능을 다 가지고 있는 이것이 세상을 떠날 때에 이것이 아주 그만 하늘나라 못 가니까, 그게 아주 하늘나라 못 가니까 그 기능 자체나, 그 기능에 투자된 만물이나, 또 기능에 자기 투자된 정력이나 이것이 다, 이것이 아주 그만 무로 돌아가겠습니까 이것이 존재한다고 생각이 됩니까 이것이 아주 없어질 거라고 생각합니까? 없어지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러기 때문에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 아들들의 자유하는 것을 고대하는 것은 만물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이 열한 가지 구속의 기능을 마련하게 되면은 그때 동참한 만물들은 다 구원이 됩니다.

구원이 되고 그때에 이 악령에 미혹받아 가지고 열한 가지 구속을 벗고 이렇게 불법으로 살 게 될 때에는 이거는 그것도 그 사람의 정력도 세상 기능화된 것이나 또 기능이 될 때 만물이 거게 함께 동참해 가지고 세상 기능화된 것이나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멸망을 받기 때문에 만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찌 한 사람 인격이 없이, 인격이 없이 어떻게 슬퍼할 수가 있으며 고통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이 땅에 속한 기능이라면은 이거는 희로애락을 말할 만한, 희로애락을 말할 만한 그런, 희로애락을 주장할 만한 그런 그 기능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땅에 속한 기능, 일생 동안 정력 기울여 가지고 땅에 속한 기능을 마련했는데 세상에서는 일등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땅에 속한 기능을 가졌는데 그러면 그 기능이 희로애락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알 수 있습니다.

또 만물이 그걸 희로애락을 다 알아 가지고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이라는데 그러면 만물보다 고귀한 사람의 그 정력, 사람의 정력이 또 들여 가지고 이와같이 세상 기능을 만들은 그것이 그렇게 아무 무로 돌아가고 아무 희로애락이나 자기 의사나 모든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느끼겠습니까? 어떻게 생각이 됩니까? 느끼지 못하겠다 싶어요? 어떤 사람 말하기를 ‘거게는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거 그렇다. 거게는 인격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면 거게는 인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거게 인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사님? 무슨 인격이 있어, 그래? 그 인격 존재가, ‘사람은 한 인격 존재인데 하늘나라 갔으면 그 사람의 인격 존재는 하늘나라 갔는데 또 거기 뭐 지옥 갈 인격 존재가 어데 있느냐?’ 이렇게 말하면 그 인격 존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기 양성원 학생들 한번 대답해 봐.

있어요? 저 ○○○교회 저 집사님인가 조사님인가? 마음과 몸으로 했기 때문에 인격이 있을 수 있고 그보다도 그 속에 악령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악령의 인격이 그 주격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악령의 인격이.

그러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 가는 자는 악령이라는 그 절대 인격 존재와, 또 그 마음이라는 하나님의 모형인 그 인격 존재, 또 육체는 마음의 모형인 그 인격 존재, 또 그것으로 만든 기능도, 모든 기능도 이 땅에 속한 물질의 기능이지마는 다 실력 있는 기능, 이것이 뭉쳐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슬피 우는 것은 그때에 인격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하는 그 말에 대해서 그러면 거게 인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격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악령이 있기 때문에 인격이 있고 악령이 없어도 우리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우리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된 존재고, 하나님의 신격의 모형인 그 인격의 존재고, 영은. 또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영의 모형의 인격의 존재입니다. 이 마음은 영의 모형의 인격의 존재입니다. 몸은 뭐이냐? 몸은 이 마음의 모형입니다.

몸은 마음의 모형이요 마음은 영의 모형이요 영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그 몸의 모형은 뭐입니까? 몸의 모형은 행동입니다. 몸의 모형은 행동.

꼭 몸과 꼭 같이 된 것은 행동이오. 또 행동의 모형은 뭐입니까? 그 사람의 해 놓은 일입니다.

이렇게, 이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가면 자기의 그 심신이 이 악령을 따라서 살아서 자기 심신, 자기는 하늘나라 가 있지마는 자기의 심신의 기능 이 그것이,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기능, 땅에 속한 것, 자기 심신이라는 그 정력이 땅에 속한 기능이 됐어.

그러면 정력이 귀합니까 기능이 귀합니까? 정력이 기능화된 것은 승격화된 것입니다. 이해가 돼요? 이 심신의 정력이 그러면 과학의 기능이 됐든지 어떤 예술의 기능이 됐든지 됐으면은 그 정력이 가치 있습니까 그 기능이 가치 있습니까? 정력이 기능화된 건 기능은 더 승격돼 가지고 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것이, 기능화된 그것이 자기가 세상을 뜰 때에는 성령을 따른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그 심신의 기능은 하늘나라로 가고, 땅에 속한 기능은 하늘나라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따로 제거해 가지고 유황불 구렁텅이로 갑니다.

이래서, 요한계시 20장 12절 이하에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둘째 사망이라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중생돼서 심신의, 심신은 영생을 얻었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벗어버리니까 다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의 그 심신의 기능이 저 음부에 가 가지고 음부에 가 가지고 고통하는 것을 그것을 들을 수 있나 보나 하는 그것은 성경에 또렷이 판명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듣나 보나 이렇게 말하지는 못해도,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홍포 입은 부자가,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 가운데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그 고통당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듣고, 또 거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그러면 홍포 입은 부자는 그 사람이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말했고 또 자기 동생을 지옥에 오지 않도록 말했고 이렇게 자기를 불쌍히 여겨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도 이렇게도 말하고, 하늘나라 가 가지고도 낙원과 음부가 구렁이 있어서 가지는 못하지마는, 갈 수 없지마는 거게 서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그런 관계에 있다 하는 그것도 우리가 무심히 지내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이 비유는 전부 이것이 택한 자들에게 한해서지, 이 성경은 택자들에게 한한 말씀이지 불택자에게 준 말씀 아닙니다. 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것은 택자들에게 필요가 있어서 들으라 하지 불택자에게 들으라 소리 아닙니다.

이거 암만 봐도 13장에 악한 행위 한 사람도 있고 의로운 행위 한 사람도 있는데 그 행위만 불타지, 행위만 불타지 악한 행위 했다 한 사람이라고 전부 영도 지옥 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에 말하기를 “자기 공력이 불타면 저는 해를 보리니 구원을 얻으나” 공력이 다 불타도 구원을 얻는다 했어. “공력이 불타면 해를 보리니 자기는 구원을 얻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것 같다” 이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공력이 다 타도, 행위는 전부 불타버리고 하나도 없어도 택한 자면 하늘나라 간다는 것을 또 거게다가 보증을 해서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불 가운데서 구원 얻는다” 하니까 그 말하기를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게 아니고 불에서 나와 구원 얻었다’ 그래 말하는데 그게 아니오.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 말은 불 가운데 있다 말이 아니오. 구원을 얻었는데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마음에 불안하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지 불 가운데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말로 해석하는 것 아니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 해석을 지금 홍포 입은 부자나, 또 열 처녀의 슬기 없는 다섯 처녀나, 또 13장에 여기 다 이 불의를 행한 모든 사람들이나 ‘이것은 다 지옥 갈 사람들이라. 우리에게는 상관없고 지옥 갈 사람들이라. 우리는 하늘나라 갈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은 다 지옥 갈 사람들이라.’ 그러면 지옥 갈 사람들을 우리에게 뭐할라고 이렇게 기록해 줄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 지옥 갈 사람들이면 그게 우리에게 무슨 상관 있습니까? 만일 그 사람들을 다 지옥 갈 사람들이라 하면은 우리는 아무 이 성구를 봐도 우리에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예 우리와는 관계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다 하늘나라 갈 사람들인데 행위를 이렇게 한 자는 행위는 다 지옥 간다’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 갈 사람이나 ‘내가 행위를 이 행위 하면 행위가 다 지옥 간다.’ 이러니까 열 처녀 비유에서 ‘내가 기름 준비를 미리 안 하면 다 내 이 행위구원 건설구원은 다 멸망받고 만다.’ 이러니까 기름 준비할 필요가 있고 또 이 가라지는 택한 자들이 잘못 행동하면 가라지 되니까 전부 심신의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고 저만 구원 얻어 가게 된다. 그러면 제가 갔으면, 제가 하늘나라 갔으면은 지옥 간 거는 뭐이냐? 지옥 간 거는 저를 꼬왔던 마귀 그놈이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 자기 아닌, 옛사람이라고도 하고 또 말하자면, 성경이 옛사람이라고도 하고 또 껍데기 사람이라고도 하고 불의의 사람이라고도 했는데 그것이 당도 짓고, 이단도 하고, 시기도 하고, 또 오만 궤휼도 하는데, 그러면 안 믿는 사람, 옛사람 말입니다. 옛사람 속에, 옛사람이 인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들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옛사람이 인격이 있소 없소? 옛사람이 인격 있으면 그 인격은 중생된 영이 그 인격입니까 뭐이 인격입니까? 악령이 인격 아닙니까? 이렇게 마음들이 어두워 가지고 막 전부 꼬여 가지고 이렇게 자기 구원을 막 멸망시키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 그물 비유에도 바다에서 다 훌쳤는데 거게서 보면은 악한 자는 다 풀무불에 던져 넣어버리고 악한 거는 풀무에 던져 버리고 , 그 악한 거는 바다에서 훌쳤는데 그러면 악한 것은 뭐 바다에 던져버리지 뭐할라고 풀무불에 던지겠소? 풀무불에 던져버리고 깨끗한 것만 그릇에 담아 가지고 곳간에 넣는다 그렇게 말했어.

거게도, 이걸 우리가 이거 참 중대한 문제인데 이 믿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우리가 고칠 것이 많고 힘쓸 것이 있고 이렇지 이걸 지옥 갈 사람들이라 딱 요렇게 해 놓으니까 우리는 아무 힘쓸 것도 없고 아무 고칠 것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여게 보니까 그물 비유에도 의인과 악인, 의인, 의인은 뭐이 의인입니까? 의인은,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니리 거기서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 이게 누구냐? 이거 지금 문제입니다. 의인과 악인, 의인과 악인을 갈라 가지고 의인은 구원 얻고 악인은 다 멸망받습니다.

그러면 의인은 어떤 사람이 의인입니까? 의인은 누가 의인이요? 한번 말해 보십시오. 의인이 누가 의인입니까? 의인이 옳은 사람입니까 깨끗한 사람이고 선한 사람입니까 의인이 뭐입니까? 의인은 하나님의 의 열한 가지, 열한 가지 이 구속을 입은 자를 가리켜서 의인이라 합니다. 이거 열한 가지 구속을 입고 산 사람은 다 하루 하루에 한 시간 한 시간의 생활이 하늘나라 가고 이 열한 가지 구속을 벗고 산 것은 제가 암만 몇십 년 예수 믿고 목사 아니라 뭐 어떤 게 돼도, 이 악인은 뭐이요? 악인은 자기 중심으로 산 자 아닙니까?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았느냐 네 중심으로 살았느냐? 네가 너를 주관했느냐 예수님의 대속이 주관했느냐? 예수님의 대속이 주관한 것은 하늘나라 가고 예수님의 대속이 주관하지 안하고 제가 저를 주관한 건 다 지옥 간다 요걸 성경에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 지옥은 뭐이 가? 영이 지옥 갑니까 그 지금 심신의 행위가 지옥 갑니까? 심신의 행위는 다 지옥 갑니다. 요거는 변동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유혹을 안 받아야 되지 이것을 유혹을 받아버리면 성경 다 풀어져 버려요.

예수 믿어 힘들 것 없고 아무것도 없어.

이제 이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그 심신이 지옥 갔고 그 영은 하늘나라 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 하늘나라 갈 수도 있고 지옥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어쨌든지 미리 준비할라고 애를 쓰는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줬지 우리에게는 상관 없는 것을 기름 준비, 하늘나라 간 처녀는 기름 준비 다 했는데 우리에게는 뭐 기름 준비 다 한 사람 돼 가지고 있는데 뭐 우리가 필요 있어서 이걸 슬기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를 가르쳐 줬겠느냐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여기 비유에서 기본구원 건설구원, 또건설구원을 얻고 못 얻는 것, 건설구원 얻지 못한 자들이 어떤 형벌을 받는다는 것, 요것을 바로 보지 못하면 기독교는 완전히 건설구원은 박멸되고 만다는 이 중대한 문제기 때문에 자꾸 지금 이걸 내가 말하는 것이라.

이번에 대구 가서도 그거 왜 또 말해 놓고 또 말하고 또 풀어 가지고 또 새로 말해 주고 자꾸 이래 말하는데 들을 사람은 듣는데 못 듣는 사람 못 듣기 때문에 시비가 많아. 시비가 많아. 인제 차차 차차 이라면 저희들이 깨닫고 알게 될 것이라. 이거 잘못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이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영은 하늘나라 가고 이 심신의 형체는 다 하늘나라 가지마는 그 속에 기능은 둘로 갈라져 가지고 자기 현실 현실에 그 정력이 기능을 만드는데 땅의 기능 만든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고 하늘의 기능 만든 것은 하늘나라 가는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땅에, 유황불 구렁텅이에 갈 그 기능은 “사망과 음부와 그 모든 악령들도 유황불 구렁텅이에 같이 간다” 이렇게 말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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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긍휼이 제일/ 빌립보서 3장 4절-14절/ 820731토새 선지자 2015.10.26
730 긍휼이 제일/ 야고보서 2장 1절-13절/ 821114주전 선지자 2015.10.26
729 금년에는 멸망의 원인인 죄를/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101금새 선지자 2015.10.26
728 금년에 기억할 것 5가지/ 히브리서 12장 1절-6절/ 880101금야 선지자 2015.10.26
727 금맡은 자의 칭찬과 진노/ 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870816주전 선지자 2015.10.26
726 근심하지 말라/ 요한복음 14장 1절-11절/ 850630주전 선지자 2015.10.26
725 근본 교리 신조/ 창세기 26장 1절-5절/ 860517토새 선지자 2015.10.26
724 극열한 풀무의 날/ 말라기 4장 1절-6절/ 820507금야 선지자 2015.10.26
723 그리스도직의 나라 천국/ 빌립보 3장 10절-12절/ 800406주전 선지자 2015.10.26
722 그리스도-제사장/ 골로새서 3장 1절-4절/ 830915목새 선지자 2015.10.26
721 그리스도인이 준비하는 것/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1976년 42 공과 선지자 2015.10.26
720 그리스도인이 되는 3가지 방편/ 골로새서 3장 12절-17절/ 880501주전 선지자 2015.10.26
719 그리스도인의 현실/ 베드로전서 1장 21절-25절/ 1977년 18 공과 선지자 2015.10.26
718 그리스도인의 행복/ 요한복음 5장 5절-10절/ 1976년 29공과 선지자 2015.10.26
717 그리스도인의 준비/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1983년 42 공과 선지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