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8:26
제2장. 장터에서 얻은 복음
1. 복음을 받고
거창은 군수가 정사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 무렵 군수는 부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사는 종 삼품관으로 지방행정 전체를 도맡아 사법 행정까지 손을 댔다.
이 부사 제도는 1895년까지 있다가 없어졌지만 그 후 얼마동안 군수가 부사의 세력으로 행정을 시행하고 있었다.
주남고는 한학자의 집안에서 자랐고 어려서부터 한학에 능하였기 때문에 19세에 벌써 등용되어 군수 밑에서 일을 보게 되었다.
거창 군수가 나들이를 할 때 주남고는 군수를 모시고 다니며 안내역을 하였고, 관청 안에서는 특별 비서역할을 하였다.
주남고 청년은 진실하고 얌전하며 성실하였기 때문에 군수의 총애를 받았다.
관청 안에서 주남고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거창 사람들은 주남고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주남고에게 특별히 친한 사람 두 분이 있었다. 그들은 오 형선과 조재룡이었다. 그들은 연령적으로는 차가 있었지만 우연히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우연이란 것이 묘한 우연으로 복음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1866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로부터 44년 후인 1908년에 거창에도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것이었다.
어느 거창 장날의 일이었다.
지방을 다니며 전도하는 분이 있어 장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기회로 전도강연을 하였다. 전도인은 사과궤짝을 엎어놓고 그 위에 서서 무성영화 변사식을 전도강연을 하는 것이었다.
이 전도강연을 유독 흥미 있게 듣는 분이 셋 있었는데 바로 주남고, 오형선, 조재룡 등이었다.
오 형선은 황해도 사람으로 한학을 많이 하였지만 서울에서 신학문도 익힌 사람으로 서울서 기독청년 회관에 출입을 하면서 기독교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는 금광을 하기 위하여 거창에 내려왔고 거창군 남하면 양향리에 금광을 개업하였다.
또한 조재룡은 지방의 장터를 찾아다니며 담뱃대를 파는 사람이었다. 그는 안의에 가서 조정섭씨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거창 장날이 되면 꼭꼭 찾아와 전도강연을 하는 전도인에게 세 사람은 모두 호감을 가졌다.
어느 장날, 주남고가 오형선과 조재룡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저 전도인을 한 번 만나서 좀 물어 봅시다.'
그랬더니 두 사람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셋은 조용한 장소에서 그 전도인을 만났다
주남고가 말했다.
'선생님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를 믿으면 죄 없이함이 되고,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죽으면 천당가게 되지요??
조재룡이 입을 열었다.
'예수를 잘 믿을려고 하면 어떻게 하여 됩니까?'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찬송을 배워야 합니다.'
이 때, 조재룡의 얼굴에 어둠이 지나갔다.
그는 담뱃대 장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배를 안 끊고는 안됩니까?'
조재룡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은 힘이 들겠지만 점차적으로 끊어야 되지요.'
'찬송을 좀 가르쳐 주시오.'
주남고는 전도인에게 매달렸다.
찬송가를 몇 개 배우게 되었다. 오형선과 조재룡은 제법 잘 불렀는데 주남고는 찬송가가 잘 되지 않았다.
주남고는 예수를 잘 믿어보고 싶었다. 시간만 나면 오형선과 조재룡을 찾아갔다.
오형선은 금광 직원들에게 복음은 전하였는데 직원 중 박창호가 받게 되었다.
1909년 5월.
금광 사무실에서 주남고, 오형선, 조재룡, 박창호 등이 모여 찬송을 불렀다.
찬송을 부르다가 조재룡이
?담배 한 대 피우고 부르자.?
하고 말했다.
모두들 담뱃대를 허리춤에서 뽑아내어 담배를 쟀다.
불을 붙이고 담뱃대를 빨면서 서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오형선은 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 말을 지고는 못 가지만 마시고는 끄덕 없이 다니는 위인이었다.
'목이 컬컬한데 한 잔 마시자.'
그들은 찬송을 부르다가 술을 마셨다.
그런 식으로 얼마를 지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래도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면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주남고가 먼저 제의를 하였다.
?예수를 믿을려고 하면 잘 믿어야지, 이런 식으로 해서 되겠습니까? 담배와 술을 끊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돈을 모아 집을 하나 사서 주일마다 모이도록 합시다.?
모두 그게 좋겠다고 응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금광 사무실에서 주일마다 보여 예배하고 뒤에 돈이 마련되면 집을 사서 별도로 모이도록 의견을 모았다.
어느 주일의 일이었다. 웅양교회 안덕보란 분이 금광 사무소로 찾아왔다. 그는 웅양교회의 집사였다.
거창 금광 사무실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안 덕보는 오형선과 전부터 안면이 있는 처지였다. 안덕보 집사는 예배를 인도하고 생각이 나서 건축연보를 하자고 제의하였다. 모두 찬성하고 연보 하는 일에 힘을 합하였더니 25원의 연보가 거두어졌다.
2. 거창읍 교회의 시작
25원의 돈으로 죽전에 있는 초가삼간을 한 채 살 수 있었다.
이 집에서 주일이면 모여 예배를 드리게 도니 것인데 이것이 거창읍 교회의 모체가 된 것이다.
그 후 호주 선교사 맹호은, 길아각 목사 등이 거창에 와서 교회를 지도하며 전도를 하였다.
안개 속처럼 흐릿했던 신앙의 세계가 서서히 선명하게 되어졌다. 주남고는 선명한 신앙세계가 보여지자 열심을 내었고 드디어 가창 군수의 비서관직을 그만 두었다. 그는 자유업으로 신앙생활에 주력하고 싶었던 것이다. 낮에는 잠업 실습소에 나갔고 밤이면 교회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가정을 도우는 일도 중요하고 농촌을 부강하게 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교회를 부흥케 하는 일은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주남고 청년의 가슴에는 복음에 대한 불씨가 솟고 있었다.
새로 개척된 거창교회를 더욱 발전시키고 큰 교회로 확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주남고 청년의 가슴을 눌렀다.
주일이면 거리에 나가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가림 없이 교회당으로 인도하였다.
열심히 찬송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쳤다.
그러나 찬송만은 여전히 잘 되지 않고 힘이 들었다. 하도 힘들게 찬송을 가르치며 땀을 흘리고 있기에 뒤에서 이 모습을 본 어떤 노인이,
'그만하고 와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하게!'
측은한 듯 말을 던졌다.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는 이미 주남고 청년은 담배도 술도 깨끗이 끊은 다음이었던 것이었다.
거창읍 교회는 이렇게 발전되어 갔고 믿는 사람의 수가 날로 더하여 갔다.
3. 첫 기도 응답의 체험
1911년 9월. 주남고는 잠업 실습소를 수료하게 되었다. 수료식 날, 주 남고는 전 학생 중 모범생으로 상을 받게 되었다. 매사에 적극성을 지닌 그는 변함없는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그해 12월에는 맹호은 선교사에게서 학습을 받았고, 다음 해인 1912년 6월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세례를 받고 진주로 내려가 잡업 강습소에 들려 다시 잠업 강습을 받았다.
가난한 농촌과 교회를 부강하게 하는 길이 이 특수기술 노동으로만 가능한 줄 안 까닭에 이 일에 힘쓴 것이다.
그 해 9월, 만 3개월의 강습을 받고 거창으로 돌아온 주남고는 본격적인 양잠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누에를 기르면서 동민들에게도 사육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그는 어엿한 누에사육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누에의 품종은 그 수가 많았으나 그 특성은 비슷하였다. 누에는 습기에 약하며,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했다.
남고 청년은 많은 누에를 사육하였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토실토실 살이 올라 한 방 가득히 자라고 있었다. 앉을 자리마저 빼앗긴 그는 그래도 누에가 자라고 있는 것에만 마음이 흥겨웠고 대견스러웠다.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종일을 비가 내렸다.
비는 며칠을 계속 내리기 때문에 마른 뽕잎을 줄 수 없게 되었다. 누에는 배가 고파 야단이었다. 뽕잎 줄기까지 누에는 파먹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축축한 뽕잎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물뽕잎을 먹은 우에는 머리를 축 내리며 그만 시들어갔다. 푸른 똥을 싸며 맥을 잃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전멸 될 수 밖에 없다.
친구들이 와서 보고는 조롱의 말을 던지고 갔다.
'기술자도 별 수 없군.'
그는 가슴이 답답하였다. 일손을 멈추고 멍이 시들어진 누에들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 앞이 캄캄해지며 어지러웠다.
그는 다른 방으로 갔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외쳤다.
'사랑하는 주님,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살려 주옵소서!.....'
그의 기도는 애절하였다.
구슬땀이 이마에 송알송알 맺혔다. 땀방울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흐른다. 뜨거운 물도 땀방울과 함께 어울려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그는 주 예수를 믿은 이후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린 것이다. 몇 시간이고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부르짖었다.
그가 누에 때문에 골방에 앉아 기도한다는 소문은 마을에 번졌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비웃고 있었다.
'어리석은 일이야, 누에가 다 죽어 가는데 기도를 하다니......'
'글세 말이야, 기도를 하면 죽은 누에가 살아날까? 참 내.....'
그러나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주께서는 구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가슴이 밝아 오는 듯 하여싸.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불안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기쁨이 찾아왔다. 그는 기도를 마치고 누에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렇게 머리를 떨어뜨리고만 있던 누에들이 머리를 힘있게 들고 열심으로 뽕잎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기적이었다. 그는 주 예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을 확실히 믿었다.
누에가 다시 생기를 얻어 살아났다는 그 자체보다 자신의 미미한 존재를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자신의 존재성을 인정해 주셨다는 그 사실 앞에 감격의 눈물을 쏟은 것이다.
누에가 좋은 성적으로 결실을 얻었다. 계속된 비 때문에 모든 누에가 다 전멸되었으나 유독 남고 청년만이 좋은 결실을 얻었으므로 그 성적은 상부에까지 보고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해 총독의 상장까지 받게 된 것이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특별 기도를 올렸고 응답을 받아온 것이었다. 이 누에 사육은 훗날 그의 목회 생활에도 산 체험을 준 사건이 되어졌다.
4. 신앙의 오름 길에서
1914년 주 남고는 집사가 되었다.
거창읍 교회에서 집사 임명은 이해에 처음으로 했다.
이때 같이 집사 임명을 받은 사람은 황보기, 최봉성, 이평군 등이었다.
그 해 4월 16일, 죽전 맹호은 선교사 댁에서 제1회 제직회를 모이게 되었다.
교회가 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교인들도 많아졌다. 주남고 집사는 가사를 돌보면서 밤이면 성경 읽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고 교회 봉사에 더욱 열을 내었다.
그 해 5월 10일. 주남고 집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신부는 합천 가야사람, 남병현씨의 둘째 딸 남술남 규수였다. 남병현씨는 일찍이 복음을 받아 예수님을 잘 믿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딸을 믿는 총각 외엔 결코 결혼시키지 않겠다는 주장을 해 왔다. 그런 중 거창읍 교회에 좋은 총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중매를 넣은 것이다.
총각의 나이가 열 살이나 위였다. 허나 예수 잘 믿는 총각이란 이유에서 남병현씨는 주저하지 않고 딸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당시 남병현씨는 한학자였고 살림도 넉넉하였다. 결혼식은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신식으로 교회당에서 거행하였다. 흰빛 사과 꽃이 활짝 핀 고갯마루를 꽃가마가 넘어올 때 온 거창읍 교회 성도들과 마을 사람들은 신랑 신부에게 축복을 빌었다.
신혼 생활이 계속되면서도 주 집사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다.
그 해 3월. 주 집사는 진주로 갔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하여 경남 성경학원을 찾아간 것이다. 그의 가슴에 주 예수님으로 열이 올라 있었다.
29세 청년의 가슴은 복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불타고 있었다.
성경은 배우면 배울수록 확신을 주었다.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아야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주남고 집사는 열심으로 성경을 공부하였다. 드디어 1919년 경남 성경학원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 해 2월 28일. 본 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다. 장립을 받은 주 장로는 더욱 부지런히 교회 일에 전념하였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25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6장 일본제 고문과 한국제 신앙의 대결 | 선지자 | 2015.12.30 |
| 24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 5장. 맹물 솥에 불때는 사택 | 선지자 | 2015.12.30 |
| 23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4장. 10년 걸린 졸업 | 선지자 | 2015.12.30 |
| 22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3장. 선동자 삼형제 | 선지자 | 2015.12.30 |
| »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2장. 장터에서 얻은 복음 | 선지자 | 2015.12.30 |
| 20 | 해와 같이 빛나리 - 제1장. 손가락 자르는 소년 | 선지자 | 2015.12.30 |
| 19 |
해와 같이 빛나리 - 저자 서문
| 선지자 | 2015.12.30 |
| 18 | 박관준 장로의 '여호와의 사명이다' | 선지자 | 2015.12.30 |
| 17 | 암흑시대의 선지자 박관준 장로 | 선지자 | 2015.12.30 |
| 16 |
일본 국회의사당에 신사참배 반대성명서 투척
| 선지자 | 2015.12.30 |
| 15 |
순교자 박관준 장로님
| 선지자 | 2015.12.30 |
| 14 | 순교자 박관준 장로 일대기- 박영창 목사 | 선지자 | 2015.12.30 |
| 13 | 최권능 목사님의 전도 | 선지자 | 2015.12.30 |
| 12 |
최봉석 목사님 생애 -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 선지자 | 2015.12.30 |
| 11 |
예수 천당, 최권능 목사
| 선지자 | 2015.12.30 |
| 10 |
주기철 목사님과 오정오 사모님
| 선지자 | 2015.12.30 |
| 9 |
거세지는 신사참배 도전앞에 선 주기철목사 - 박용규 교수
| 선지자 | 2015.12.30 |
| 8 | 주기철 목사 생애 요약 | 선지자 | 2015.12.30 |
| 7 | 주기철 목사님의 一死각오 | 선지자 | 2015.12.30 |
| 6 | 주기철 목사님 마지막 설교 | 선지자 | 2015.12.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