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8:32
제 8 장. 목화 이삭 줍는 사모님
1.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 목사가 검속되어 거창을 떠난 후, 그의 가정은 말이 아니다. 생계는 막연하였다. 교회에서는 관계가 끊기고 교인들마저 당국의 눈이 무서워 찾아오지 않았다.
1939년 1월부터 거창읍 교회에는 이X형 목사가 부임하여 왔다. 그는 시국을 인식하는 목사로서 경찰의 감시를 받지 않고 시키는 데로 자유로이 목사 일을 하여 나갔다. 그는 전임 교역자의 가정에 대하여도 냉정하였다.
교인들에게도 일절 주 목사 가정과는 상종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노회와 총회 위원들이 교인들의 시국인식을 위하여 종종 다녀갔다.
특히 김X창 목사와 김X일 목사는 세도가 당당하였다. 김X창 목사는 1923년에서 1926년 7월 까지 약 4개년 동안 거창읍 교회를 시무한 일이 있었다. 허기에 그는 거창읍 교회에 대하여는 유독 관심이 많았다.
교인들에게 주 목사의 가족을 돌보는 것은 비애국적인 일이니 결코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주 목사의 가족들은 참으로 비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경순은 동래 일신 중학교 다니다가 오빠 경도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일본에서 간호학교에 들어가서 산파학을 겸하여 수업하였다.
일본에 들어가서도 그녀의 마음은 아버지 생각에 가득하였고,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생각에 마음은 항상 무거웠다. 거창에 남은 주 목사의 가족은 모두 넷이었다.
부인과 세 자녀들이었다. 경효가 열두 살, 경세가 여덟 살, 경은이가 겨우 세 살이었다. 모두 한참 먹고 싶어 할 때이고 자라나는 시기였다.
경은이는 젖도 제도로 먹지 목하고 자랐기에, 노리끼한 얼굴에 눈만 동그랗다. 경효와 경세는 아버지 주 목사가 수집해 둔 엽전을 가지고 나가서 엿하고 바꾸어 먹었다. 주 목사는 평소에 엽전에 수집에 취미가 있었다. 많은 엽전을 수집하여서는 쌀자루에 여러 자루 넣어 두었다. 엽전을 연대별로 가려 창호지로 묶어 두었다.
형호와 경세는 그 엽전 때문에 심심찮은 나날을 보내었다. 그러나 그 많은 엽전도 바닥이 났다. 몽땅 엿을 바꾸어 먹은 셈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배가 고팠다. 간혹 숨은 성도들의 얼마의 곡식을 몰래 갖다주어 끼니를 잇기도 하였다. 몇 차례 한상동 목사 부인 김 차숙 여사가 찾아와 돈을 전하고 갔다.
김차숙 여사는 천국을 순회하며 뜻 있는 성도들의 현금을 받아 평양 형무소에서 복역중인 성도들에게 식사를 넣어 주기도 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기까지 하였다.
백영희 전도사가 종종 찾아왔다. 그는 상복을 입고 삿갓을 쓰고 다니며 지방 교회 성도들의 현금을 얻어 식량을 구입하여 가져오곤 하였다.
백 전도사는 주 목사를 존경하는 후배로서 주 목사의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보살펴 주었다.
백영희 전도사는 1910년 7월 29일,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신식학문을 배웠다.
16세시 일본에 들어가 공부를 하다가 4년 후 귀국하여 가창군 고전면 개명리에서 양조장을 시작했다. 양조장을 하면서 진한 누룩 냄새를 맡으며 인생을 고민하였다.
마침 운봉기 전도사가 길가는 것을 보고 집에 들어오게 하여 복음을 들었다. 윤봉기 전도사는 친절하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 주었다.
백영희는 입신하던 날부터 열심이었다. 믿게된 지 삼일이 되던 날, 양조장을 처리하였다. 그리고 십 칠일 후에 누룩 장사도 그만 두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구호기관과 복음기관에 기중 하고, 논 얼마만 남겨두어 농사를 하여 생활하기로 하였다. 일년 후 세례를 받고 전도 일에 나섰다. 무보수 전도사였다.
봉산 교회와 봉개 교회와 개명교회를 맡아 복음을 전하였다. 그가 무보수 전도인이 되기까지 그의 신앙의 길잡이는 주 목사였다. 주 목사의 신앙인격에 많은 감화를 받았고 특별 지도를 바았다.
백 전도사는 주 목사댁을 자기 집 드나 들 듯이 쫒아 다녔고 지극히 작은 일 하나까지 주 목사의 지시를 받았다. 신사참배 문제가 일어나자 주 목사는 지방 각 교회를 심방하여 신사참배를 못하도록 가르쳤는데, 백 전도사에게도 여러 번 이 문제에 대하여 당부하였다
.
?신사참배는 제2계명과 제 1계명까지 번하는 것이니 결코 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날, 주 목사는 백 전도사를 만나 조용히 강변으로 나갔다. 강가에 앉은 주 목사는 백 전도사에게 신사참배 문제와 일제의 탄압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이날 받았던 주 목사의 교훈을 백 전도사는 가슴에 잘 새겼고, 그가 신사참배하지 않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주 목사 투옥 후, 백 전도사에게도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번질나게 찾아왔다. 그러나 끝까지 백 전도사는 반대하였다. 그가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은 주 목사의 교훈 대문이었다고 훗날에 말했다..
그는 약 5년 갂운 세월을 한결같이 주 목사 가족을 돌봐 주었다. 자기 가족의 생계도 막연한 시대에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곤 할 수 없는 일이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에 되어질 일들을 말씀하신 일이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의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었다.
그 때, 모든 민족을 두 종류로 구분 지어 모으고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너희는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대에 너희는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말씀하실 것이다. 그 때 오른쪽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하였느냐고 반문을 한다.
주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신다.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1-46)
여기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누구인가? 그는 예수님 이름 때문에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감옥에 갇힌 자가 아니겠는가?
지극히 작은 자의 가족이 굶주리고 있었다. 그러나 역적으로 몰아 외면해 버리는 저 사람들???
하지만 이들을 돌보아 주는 또 한 쪽의 사람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셨다.
2. 역적의 가족이라니
주 목사의 가족들은 결국 당국에 의하여 역적의 가족이란 죄명으로 동네에서 좇겨 나고 말았다. 당국에서는 신사참배 문제 보다 전일 독립운동한 일도 있고 하여 사상범으로 주 목사를 취급하였다. 하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에겐 더욱 많은 수난을 가하였다.
동네에서 쫓겨난 그들은 갈 곳이 없었다. 찬바람이 귀뿌리를 따 가는 듯 세게 불어왔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이 날, 주 목사의 가족들은 간단한 짐을 걸머메고 찬바람 부는 벌판으로 나와 동네에서 얼마간 떨이진 외진 곳에 발을 멈추었다. 그 곳에 한 채의 흉가가 있었다 이 집은 전날, 박성희씨 (강주선 목사 부인)의 친정 집이었다.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은 집이어서 흙담이 헐고, 한 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사람이 거처하기엔 꺼림직한 그런 집이었다. 그러나 쫓겨나 갈 곳 없는 주남고 목사 가족들에겐 밤 서리를 피할 수 있어 여간 다행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집을 쓸고 청소를 하였다. 짐을 옮겨 정리하였다.
솥을 걸고 물을 끓였다.
굴뚝에 연기가 나니 아이들이 좋아서 환성을 질렀다. 그들은 집을 빌려 준 박성희씨 친정 부모들에게 마음으로 감사하였다.
박성희씨 친정 부모들은 그 집에 예속된 200평 남짓한 땅도 같이 부치라고 허락하여 생계에 도움을 주었다.
일제 당국은 주 목사 식구들에게 우물도 주지 말라고 당부를 했고 어떤 어려움에 있어도 도우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같은 민족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불신자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주 목사 가족들을 염려하였고 도우려 애썼다. 마을 사람들은 간혹 밤이면 집단 속에 수수, 조 같은 잡곡을 넣어 담 너머로 넘겨주었다.
잡곡을 준 것은 자신들도 쌀은 공출로 내고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국자 가족에 대한 대접을 이런 식으로 표하였다.
당국에서 우물물을 금하였기에 도랑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끓여 마시게 되었다.
밤이 되었다. 산에서 늑대랑 여우 등의 짐승들이 집 가까이 와서 울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차마 자락을 붙잡고 오들오들 떨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옥중에 계신 목사님과 일본에서 공부하는 아들 달을 위하여 밤이 깊도록 기도하였다. 그것은 눈물의 기도였다.
엷은 몇 개의 이불은 아이들 차지였다. 여사는 그 긴 추운 밤을 이불 없이 밝혔다. 옥중에 계신 남편을 생각해서이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경효가 이불 없이 땅바닥에 그냥 누어 잠든 엄마를 보았다 자기가 덮던 이불을 엄마 몸에 덮어드리니 번쩍 눈을 뜨신 엄마가
?너나 덮고 자거라.?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추운데 덮으셔야지요.?
?아빠는 옥중에서 이불 덮고 주무시겠니??
????????
?평양은 경상도 보다 더 추운 곳이라는데???????
여사의 눈에 맑은 액체가 고인다. 달빛이 봉창 문을 밝게 비춘다.
여사의 얼굴이 선명하게 경효 어린이의 동공 속에 들어왔다.
?엄마 그래도, 이불 덮고 같이 자!?
?나는 괜찮다. 너희 아빠가 이불을 덮는 그 날 까지 나도 이불을 덮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으니?????? 내 염려는 하지말고, 너나 덮고 자거라.?경효 어린이의 가슴속에 이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깊이 아로새겨졌다.
날이 밝으면 여사는 행상으로 나간다. 비누 등속을 광주리에 담아 이고 낯선 마을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들어가 비누를 권하였다. 비누를 주고 보리를 얻고 밀을 얻는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면서 심히 힘겨운 일이었다. 행상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노는 아이들은 배가 고팠다. 집이 공동묘지가 보이는 냇가에 있었다.
공동묘지로 가는 길이 이 집 옆으로 뻗어 있었다. 종종 시체를 지게에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관에다 시체를 넣을 형편도 못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마니에다 시체를 싸 가지고 지게에 지고 지나간다.
이렇게 가난한 장례식에는 아이들도 쓸쓸하다. 그러나 상여가 나가는 날이었다.
민가를 구성지게 뽑으며, 지나가는 장례 행렬에는 주 목사 아이들도 한 묷 끼이는 것이었다. 떡이 있기 때문이다.
마른 아주까리 잎사귀 국물만 먹던 멀건 뱃속에 떡이 들어간다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공동묘지 길가의 아이들의 노래가 만가이다. 양지쪽에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른다.
?어흥 어흥 어라넘자 어흥
북망산천 어디메뇨, 눈감으면 그 곳이지.
어흥 어흥 어라넘자 어흥.?
주 목사의 아이들은 찬송가와 만가로서 어린 꿈을 익혀갔다.
춥고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얼었던 땅이 녹고 도랑가 언덕이 연두 빛을 띠고 푸르러 왔다. 남술남 여사는 산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다.
경효와 경세는 학교에 가고 경은이는 여사의 등에 매달렸다. 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뜯고 나무도 한다. 낫으로 송피를 벗긴다.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나면 나무와 두꺼운 껍질 사이에 엷은 속껍질이 있다. 그것을 벗기는 것이다. 그것은 액체와 함께 말랑말랑 하다. 입에 넣으면 달고 텁업하다. 이것은 송피라고 한다.
이것을 말려 가루를 만들어 죽도 끓여 먹고 떡도 만들어 먹는다.
이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최후의 양식이다.
여사는 종다리 소리를 들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으로 송피를 벗기는 것이다.
따뜻한 봄날의 긴 햇살이 서산으로 사라지면 머리에 나무를 이고 겨드랑이에 송피와 산나물이 담긴 소쿠리를 끼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것이다. 집에 오면 학교에서 돌아와 먹을 것이 없어 울고 지내던 아이들이 어마를 기다리며 지쳐있다.
산나물을 삶고 국을 끓인다. 쑥에 보리겨를 묻혀 떡을 찐다.
이것이 저녁식사이다. 그들은 이것을 먹으며 얼굴에 미소를 날린다.
누가 이들에게 역적의 누명을 주었는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비참한 고아로 만들었으며 과부로 만들었는가?
하나님만이 이들을 돌보시며 지켜 주셨다. 어느 장로가 산간을 일구어 개간한 밭을 소작으로 이들에게 주어 그 밭을 경작하게 하였다.
장다리에 강씨 성을 가진 교인이 비밀리 200평 남짓 되는 밭을 빌려 주어 농사할 수 있었다.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달이 밝은 밤이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했다. 입산 금지로 낫에는 산에 갈 수 없다.
밤만이 나무할 수 있는 기회인데 너무 어두우면 나무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달밤을 기다리는 것이다.
손등은 소나무 잎사귀에 찔려 피가 나고, 손바닥은 괭이질로 물집이 생겼다. 물집은 터지고 다시 다져지고 하여 손바닥은 돌처럼 단단해 갔다.
여자의 손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내는 것은 힘에 겨운 일이었다. 여사의 검붉게 탄 이마엔 구슬땀이 맺고, 무명 저고리 등이 흠뻑 땀에 젖었다.
이런 고된 일을 계속하면서도 여사의 얼굴엔 짜증이나 불평의 표가 일렁이지 않았고 평화로운 미소 만이 꽃피고 있었다. 여사의 입에는 한숨 대신 찬송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기쁜 찬송이 울려나네
하늘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나의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 찬송은 여사 자신을 위해 지어진 찬송처럼 자나깨나 애창하였다. 고달픈 육신의 일들이 무거움으로 깔고 눌러도 여사의 마음에는 신앙의 샘이 솟고, 하늘의 위로가 가슴에 가득했다.
?내 맘 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 자
어디 있으랴 안심일세?
왕복 사십 리가 좋이 되는 먼 거리의 밭을 여자의 나약한 힘으로 경작한다는 것이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앙의 불길로 살아가는 여사의 나날은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생활일 뿐이다. 오줌 동이를 이고 그 먼길을 오가면서도 가슴에는 기쁨이 꽃방석을 깔았다. 경효는 열 한 살에 오줌 장군을 지고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의 고생이 어린 경효의 가슴을 쓰리게 하였다. 지게에 거름을 담아내고 오줌을 퍼 나를 때, 육체의 고통이 견딜 수 없었지만 어머니를 도운다는 의미에서 소년의 얼굴엔 미소가 풍겼다.
여름은 그렇게 가 버렸다.
가을이 되어 풋콩을 따고, 고구마를 파낼 때 마냥 즐겁기만 했다. 배추포기를 뽑고 호박을 따낼 때, 일의 보람을 느꼈다.
송피죽과 도톨이 묵만 먹다가 고구마를 먹게 되는 식구들은 마냥 기뻐 춤이라도 추듯이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나 평양 형무소의 아버지 생각에 온 가족이 또 한 번 눈물을 삼켰다.
일제의 간악한 수탈정책에 백성들이 호응하기 위하여 산간이며 둑길에 아주까리를 심었다. 아주까리 기름을 상납하기 위해서다. 가난한 서민들은 부드러운 아주까리 잎을 따서 국을 끓여 먹는다.
경효와 경세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지런히 아주까리 잎을 따 모았다. 이것을 볕에 말려 두었다가 겨울을 사는 것이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다. 이런 비 온 후엔 여사와 아이들은 산으로 들어가 송이버섯을 딴다. 송이버섯은 좋은 영양 식품이였다.
쌀 한 톨 구하기 어려운 이들은 쑥과 아주까리 잎과 송피와 버섯으로 그 지루한 세월을 연명해 간 것이다.
3. 여사의 가정교육
여사는 밤이면 자녀들과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끝나고 여사는 아이들에게 입을 연다.
?경효야, 경세야, 내 말을 똑똑히 들어라. 너희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역적이 아니다. 애국자야. 참 목사다. 그래서 감옥에 계시는 거야.?
경효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 왜 착한 사람이고 애국자인데 감옥에 가두어 두는 거야??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자기나라처럼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단다. 독립이 되면 우리도 잘 살 수 있어.?
?독립이 언제 되는데??
?알 수가 없지...?
?아버지 미워!?
경효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 나왔다.
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
?다른 사람들은 가지 않고 다 잘 있는데, 왜 하필 아버지만 감옥에 가는 거야? 왜 아버지만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는 거야? 아버지가 바보지 뭐.?
?너는 잘 모른다. 내가 이야기를 해도 너는 잘 모를 거야.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를거야. 그러나 먼 훗날 너의 아버지가 참으로 훌륭한 분이란 걸 너는 알게 된다. 반드시 알게 된다.?
?신사참배가 그렇게 나쁘나??
?그렇단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신사참배 같은 우상숭배다. 이것을 하면 자기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
여사는 경효와 경세의 손을 거칠은 그의 손속에 꼭 쥐었다.
?학교에 가서 신사참배 하라면 절대하지 말아야 한다. 신사참배 하러 줄을 지어 갈 때 어쨌든 빠져라.?
경효가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어떻게 빠질 것고??
?뒤가 마렵다고 하고 빠져라. 신사참배 하는 것은 죽는 것과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효는 여사의 말을 마음 깊이 받아 들였다.
학교에 갔다.
신사참배 하러 가는 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중도에서 빠져 버렸다. 신사참배가 아버지를 앗아갔고, 신사참배가 그의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신사를 당장 부수어 버리고 싶었다.
원수! 하나님의 원수요, 아버지의 원수요, 자기들의 원수였다.
그때는 신발이 귀했다. 고무신이나 운동화 등속은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대개 농촌 사람들은 짚신을 삼아 신었다.
경효는 고사리 손으로 짚을 물에 적셔 새끼를 꼬고 짚신을 만들어 신었다. 그러나 맨발로 다니는 때도 많았다.
4. 형무소로 보낸 솜옷
가을이 되면 목화를 딴다. 그러나 여사의 밭에는 목화가 없다. 겨울이 오는데 옥중에 계신 주 목사에게 솜옷을 만들어 보내야 하겠는데 막연하였다.
여사는 아이들과 함께 목화 이삭을 줍기로 하였다. 경효와 경세는 여사를 따라 목화 이삭 줍기에 나섰다. 목화 단을 다 거두어 간 밭에는 뛰엄 뛰엄 목화송이가 떨어져 있다.
다래도 떨어져 있다. 그것을 열심으로 줍는다.
밤이면 목화 꼬투리를 따고, 씨가 박힌 솜을 활로서 탄다. 활 줄에 목화송이를 접촉시켜 튀기면 씨는 씨대로 솜은 솜대로 갈라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솜을 장만한다. 다래는 볕에 말려 목화송이를 피게 하고 그것을 타서 솜을 만드는 것이다.
여사는 이 솜으로 남편의 솜옷을 만들었다. 정성과 사랑을 솜에 담아 옷을 누볐다. 그리고 솜을 담아 만든 회색 무명바지 저고리를 포장지에 싸서 평양 형무소로 우송하였다. 남들처럼 자주 면회를 갈 수 있는 형편도 못되었다.
사식을 넣어 드릴 수는 더욱 없었다.
추위가 오는데 싸늘한 바람이 바늘 끝처럼 살갗을 찌르는 평양 형무소에서 겨울을 지낼 남편을 위해 솜옷 한 벌 마련해 보내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생각지도 않았던 소포가 배달되었을 때 남편은 아내의 정성어린 선물에 얼마나 흐뭇해 하실까?
여사는 북쪽 하늘 아래 있는 평양 형무소 감방 속의 남편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으로 건강을 기도 드리는 것이었다.
여사는 날이면 날마다 아이들을 위하여 잠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여사는 그 후 몇 차례 평양 형무소에 면회를 갔다. 당시 여자들은 몸빼를 입어야 출입을 할 수 있었다.
허나 여사는 몸빼를 만들 형편이 못되어 큰아들 경중씨의 바지를 손질하여 몸빼 처럼 모양만 흉내내어 입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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