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30 18:34
제10장. 위로하는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
1. 형무소의 철문이 열리던 날
1945년 8월 15일 정오.
산 신이라고 자처하던 일본 천황 히로히또의 울음 섞인 육성이 라디오를 통하여 들려왔다. 그 음성은 신의 음성도 영웅의 음성도 아니었다.
너무나 처량한 음성이 전파를 타고 흘러 나왔다.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대하여 비상한 조치로서 시국을 수습하고자 이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이른다. 짐은 대 일본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 국가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히로히또 천황은 울고 있었다. 그렇게 서슬이 푸르던 일본인들이 이 방송을 듣는 순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반면 잠잠하던 조선 천지에는 노도 같은 태풍이 일고 있었다.
?해방이다!?
?대한 독립 만세!?
이 광풍은 평양 형무소 내에도 몰아쳐 왔다.
?전쟁이 끝났다!?
?일본이 패전했다!?
?해방이다. 자유다!?
주 목사의 얼굴에 감격의 눈물이 번졌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쓸모 없는 죄인을 어찌하여 살려 주십니까??
누가 시작했는지 찬송이 흘러나온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던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 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찬송은 합창이 되어 온 감옥 안을 메운다.
주 목사도 일어나 창살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소리 높여 찬송을 불렀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오래 전 선지자 꿈꾸던 복을
만민이 다 같이 누리겠네.?
이 감방에 들어 온지 어언 6년.
함께 들어왔던 동지들 가운데 세상을 떠난 분이 있음이 기억났다. 주기철 목사, 최상림 목사, 이현속 장로, 박광순 장로, 최권능 목사, 쟁쟁한 신앙의 용사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주 목사의 안막을 스쳐 지나간다.
?보아라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 흘러오네
이 산과 저 산이 마주쳐 울려
주 예수 은총을 찬송하네.?
주 목사는 창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순교자들의 못 다한 이들을 나가서 힘껏 하고, 기회가 오면 자신도 순교 할 것을 굳게 마음먹었다.
?땅들아 바다야 많은 섬들아
찬양을 주님께 드리어라
싸움과 죄악의 참혹한 땅을
찬송이 하늘에 사무치네.?
이제 푸른 하늘을 보게 된다.
태양이 작열하는 거리를 힘차게 걸어보고 싶다. 땀이 흘러도 좋다. 묶이지 아니한 자유로운 몸으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대한 독립 만세!?
이곳 저곳에서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날 밤은 감방 안에 쌀과 보리쌀로 만들어진 주먹밥이 고기 국과 함께 배달되었다. 큰 주먹밥을 받아 쥔 수인들의 얼굴은 흥분되어 있었다. 다른 감방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빨리 내보내지 않고 뭐 하는 거야!?
?감방 문을 열어라.?
풀이 죽은 간수들이 나와,
?조용히 하십시오. 상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참아 주십시오.?
하고 변명하였다.
?뭐야! 해방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상부의 지시야??
?질서를 지켜 주십시오.?간수들은 심히 떨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수인들이 몰려나와 보복을 할까봐 겁을 내는 것이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렇게 도도하던 간수들의 태도가 서리맞은 상치처럼 시들어져 있었다. 하루 순간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이렇게 오묘하였다.
8월 16일, 조선건국 준비위원회 안재홍씨는 경성 중앙방송을 통하여 건국준비와 지방조직을 호소하였다.
전국 형무소의 정치법?사상범, 경제범을 일제히 석방시키도록 지시가 내렸으며, 곳곳의 옥문이 열렸다. 그러나 평양 형무소의 문은 열려지지 않았다.
8월 17일. 평남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위원 약 20명 중 좌익계는 2명뿐이었다.
위원장은 조만식 장로였다.
일본 당국은 조만식 장로에게 임시 행정권을 인수하였다. 그리하여 북한 각지에서는 건국 준비위원회가 조직되고 자치대, 치안유지위원회 등 각종 명칭의 자발적 조직이 발족되기 시작하였다.
조선공산당 평남지구 위원회가 조직되고, 따라서 북한지방 각지에 공산조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날 밤 11시경. 평양 형무소의 감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밤에 감방 문이 열려진 것은 형무소 담당자들의 공포심 때문이었다.
수인들이 형무소장이나 과장, 부장, 간수들에게 혹 행패를 부릴까봐 겁을 내어 이렇게 밤을 이용한 것이다.
밤11시는 조용하였다. 이미 형무소 책임 간부들은 다 귀가하고 간수 몇 만 남아서 이 일을 시행하였다.
간수들 중에도 지독히 굴던 일본 간수나 한국인 간수들은 다 숨어버렸다. 좀 후하게 대하던 한국인 간수 몇 사람이 이 일을 맡았는데, 그들도 떨리는 손으로 감방문을 열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자, 질서 있게 따라 나오십시오. 형무소 철문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공손한 말투였다. 수인들은 어두침침한 복도를 걸어 나왔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손에는 수갑이 없었다.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누가 감히 그들의 손에 수갑을 채운단 말인가?
수인들은 각각 자기의 손목을 한 번 더 어루만져 보는 것이었다. 뼈만 앙상한 손목, 까실 까실한 촉감이 전신을 짜릿하게 흐른다.
간수를 따라 밖으로 나오는 성도들의 발걸음은 비틀 비틀 하였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희미한 전등불에 비친 여위어 뼈만 앙상한 얼굴들이지만 그 얼굴들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꽃구름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긴 것이었다. 믿음이 이긴 것이었다. 승리자의 가슴에는 기쁨이 치솟기 마련이다.
?목사님!?
?주 목사는 소리나는 쪽을 보았다. 이기선 목사였다.
?살아 계셨군요.?
손을 잡았다. 뜨거운 피가 손바닥에 모여들었다.
그때, 걸어나오는 한상동 목사를 보았다.
?한 목사님!?
주 목사와 이기선 목사도 동시에 한 목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안경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듯 여윈 얼굴에 무거운 미소를 보이는 한 목사, 감격의 눈물이 이들의 앙상한 양 볼을 주르르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천국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천국이 아닌 지상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다시 만나 손과 손을 마주 잡다니 꿈만 같았다.
모두들 철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곳 저곳에서 아는 얼굴들이 나타났다.
철문은 닫겨 있었다. 철문 밖에는 이미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옥중 성도들의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옥문 밖 성도들은 옥중 성도들의 모습이 나타나자,
?대한 독립 만세!?
하고 소리를 외쳤다. 옥문 밖 성도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그들은 흥분되어 있었다. 애국가를 부르는 성도들의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다.
다시 찬송이 울려 퍼졌다.
?예수의 이름 권세요 엎디세 천사들,
금 면류관으로 드리고 만유의 주 삼세
금 면류관을 드리고 만유의 주 삼세.
찬송을 부르는 순간 옥문이 열렸다. 밖에는 여러 대의 인력거가 준비되어 있었다. 옥중 성도들은 인력거에 올라탔다.
시가행진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주께서 당한 고생을 못잊을 죄인아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삼세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삼세.?
인력거 앞뒤에 줄을 서서 걸어가는 성도들의 행렬.
개선장군을 앞세운 시민들의 행렬 같았다. 심야의 개선장군들을 환영하는 하늘 시민들의 거대한 행렬이다.
?이 지구상에 있는 이 온지파 족속들
장하신 위엄높이어 만유의 주삼세
장하신 위엄높이어 만유의 주삼세.?
어두운 창공으로 찬송소리는 울려 퍼졌다.
일행은 안이숙 선생댁으로 갔다. 안이숙 선생댁은 모친이 거처하는 집이었다. 그 집은 남의 집인데, 안 선생 모친이 세 들어 있었다.
집 주인이 옥중 성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큰 집을 임시 사용하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옥중 성도들은 이 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루에 음식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옥중 성도들을 위하여 안이숙 선생 모친이 여러 성도들의 도움으로 이 상을 마련한 것이다.
처음, 감옥으로 들어간 성도들은 36명이었다. 그러나 7년 가까운 세월에 태반이 순교를 하고, 병보석으로 나간 분도 있고 하여 이 밤, 이곳에 온 옥중 성도는 모두 14명뿐이었다.
식사를 하였다. 오랫동안 굶고,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창자를 괴롭혀 왔는데 갑자기 고기국과 쌀밥이 들어가니 창자가 견디지 못하는지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들 몇 술을 입에 떠 넣다가 그만 두는 것이었다.
이때 어떤 여인의 빠른 목소리가 있었다.
?수도에서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모두들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물통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쏴쏴 들렸다.
평양시내 수돗물이 몇 달 동안 나오지 않아 먼 곳까지 물을 길러 다녔었다. 그렇게 귀한 물이 옥중 성도들의 출옥과 함께 이 밤에 물이 터진 것이다.
?기적이다!?
부인들의 떠드는 소리가 났다.
식사 상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서 예배가 시작되었다. 감격과 눈물의 기도가 흐르고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의 가슴이 뜨거움으로 은혜가 넘쳤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성도들은 헤어질 줄 모르고 옥중 성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옥중 성도들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들은 옥문 밖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감격을 불러 일으켜 주었으며, 이런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밤은 깊어갔다.
2. 평양 산정현 교회 집회
다음날, 옥중 성도들은 산정현 교회로 갔다. 교회당에는 이미 많은 성도들이 모여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기선 목사가 인도하였고, 밤엔 한상동 목사가 섰다.
부흥회가 시작 된 것이다. 다음 날은 주 목사가 인도하였다. 곳곳에서 모여온 성도들이 교회당을 메웠으며 은혜가 넘쳤다. 인도하는 목사들은 한결같이 건강이 좋지 못했다. 굶주렸던 뱃속에 쌀밥과 고기 국이 들어가 놓으니 위장이 말이 아니었다. 일주일을 그들은 변소
길에 다니느라고 분주하였다.
그러나 속 사람은 살아 있기에, 설 때마다 은혜의 단비가 쏟아졌으며, 주 목사는 ?신앙의 조상들?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이삭의 헌신과 야곱의 투쟁이었다. 경상도 사투리의 강한 액센트, 그의 음성은 철성이었다. 깐깐하게 흐른다.
사실 설교는 말만이 아니고 생활이 겹쳐서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말씀으로만 움직이는 주 목사의 설교는 그를 아는 사람일수록 더욱 은혜를 받는다.
같은 출옥성도인 손명복 목사는 당시의 주 목사 설교를 상기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요. 나는 그때 주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대로의 설교를 하나 작성하였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주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가장 힘있게 강조한 것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고 착하게 주님의 뜻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산정현 교회는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였다. 주기철 목사가 이 교회를 시무하다가 검속되어 형무소로 들어갔고, 해방 1년 4개월을 앞두고 주 목사는 순교하였다. 그동안 이 교회는 비어 있었다.
조국 해방과 함께 출옥 성도들이 이곳에 모여 집회를 계속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밤낮으로 집회는 계속되었다. 눈물의 바다요, 은혜의 강이 하늘로서 내렸다.
3. 거창읍 교회로의 이동
해방이 되자, 이X형 목사는 사면하고 밀양으로 시무 이동하였으며, 동사 목사로 일하던 전성도 목사만 남았다.
전성도 목사는 1942년 4월에 전도사로 거창읍 교회에 부임하였다. 전 목사는 1911년 1월 17일, 경북 안동군 서후면 명동 383번지에서 전기석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다.
목사의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자랐다. 그는 1935년 3월.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법정대학 고등사범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각기병으로 계속 수학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병을 치료받으면서 차도가 있어 마산 창신학교 교원으로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26세에 이덕선(22세) 여사와 결혼하여 신혼생활을 하던 중, 복음전파에 불타는 마음이 일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서 신호 중앙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에서 공부하던 중, 전쟁으로 신학교가 폐교되고 말았다.
그는 한국으로 다시 나오게 되지 이X형 목사의 주선으로 거창읍 교회 전도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전성도 전도사는 교육 전도사로 교회 일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서울 조선 신학교에 편입하여 1년간 교회보조로 공부하게 되었다. 1943년 12월에 조선신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 11월에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거창읍 교회를 위해 일하여 왔다.
이제 이X형 목사가 사면하고 나가니 전 목사 혼자 남았다. 원 목사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기엔 자신이 너무나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그때 교회는 다시 주남선 목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제직회를 모여 교역자 문제를 논의하였다.
?주 목사님을 모시도록 하십시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전일에 주 목사의 가족들을 돌봐 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고의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시대가 그랬고, 목회자가 바뀌었기에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는가??
간사한 것이 인간이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것을 후회하고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인간, 그것은 약한 것이다.
지난날들의 악몽을 씻고 새출발 하고 싶었다. 주 목사만 원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참으로 선한 청지기, 주 목사를 그들은 지도자로, 목자로 모시고 싶었다.
제직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주 목사를 모셔오기로 가결을 보았다. 주 목사를 모시는 데에는 공동의회를 모일 필요를 그들은 느끼지 않았다.
?시국이 그래서 우리 목사님 빼앗겼다가 다시 모시려고 하는데 다른 수속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냥 모시고 오면 됩니다.?
?목사님께서만 허락하시면 일은 간단합니다.?
모두 이런 말들을 했다. 그리하여 전성도 목사가 주 목사를 모시러 평양으로 가도록 결정을 보았다.
8월 17일 아침. 전 목사는 강진실 집사와 주 목사 큰 아들 주경중씨와 주경순과 함께 김천으로 나갔다. 김천에서 열차편으로 올라 갈 참으로 역에서 기차를 기다려 오후 늦게야 기차를 탔다. 복잡하였고 지저분한 기차였다. 때마침 김천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소년죄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년 죄수들이 기차에 꾸역꾸역 기어올랐다.
파리하여 여윈 소년들이 눈알만 초롱초롱하여 수선을 피웠다. 전 목사는 그의 앞에 앉은 소년 죄수에게 말을 걸었다.
?감옥살이 괴로웠지??
?말도 마시라우!?
되바라진 목소리를 던진다.
?그래, 제일 괴로웠던 일이 무엇이냐??
?그야 배고픈 일이지라우!?
?그렇겠지.....?
?나는 밖에 나돌아다니며 잡일을 거들었는데유, 그냥 아무 것이나 마구 먹었지유. 푸성귀며 호박줄거리, 벌레도 잡아 먹었어유.?
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소년이 뾰족한 턱을 한번 추켜 올리더니 입을 연다.
?얘! 넌 밖으로 나돌아 다녔으니까 푸성귀며, 호박줄거리라도 먹었지만 감방 안에서만 줄창 눌어붙어 있는 우리 주제야 그런 것인들 구경이나 할 수 있었을라구, 우린 말이야, 똥을 누어서 먹었다구유. 자기 똥을 먹는 사람새끼가 어디 있겠어유? 개지! 난 개 같은 생활을 했어유!?
이 소년의 말을 처음 들을 때 전 목사는 거짓말로 들었다.
?설마, 제가 눈 똥을 먹었을라구??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인 걸유!?
일제시대의 감옥은 그런 곳이었다. 이런 소년범들이 이렇게 배고파 고생하였다면 옥중 성도들이야 얼마나 고생이 심했을까? 전 목사의 가슴은 미안함과 괴로운 마음으로 찌릿하였다.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되었다. 소년범들은 다 내리고 빈자리에 일본 군인들이 들어와 앉았다. 남쪽으로 가지 않고 왜 북쪽으로 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 군인이 장총을 옷걸이에 거꾸로 걸어 두었다. 그는 장교였다.
전 목사는 자기가 쓰고 있던 중절모자를 일본군인이 걸어둔 장총 개머리판에 걸었다.
그때였다. 앞에 앉아 있던 이 일본 군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더니 일본말로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황송하게도 천황폐하에게서 받은 이 귀중한 총 개머리판에 모자를 걸다니, 무례한 녀석이군! 우리가 전쟁에 패전을 했지만 이런 무례한 대접을 받아서 되겠나......?
하면서 그 일본 장교는 옆구리에 찬 권총을 끄집어내더니 소재하는 척 하면서 실탄을 재는 것이었다. 전 목사는 아찔하였다. 이 때는 무법시대이다. 총을 발사하면 끝난다. 결국 죽는 사람만 원통하지 별 수 없다.
전 목사는 일어나 모자를 머리에 쓰고 살짝 자리를 떴다. 조금 걸어 나와서는 뛰어 다른 칸으로 가 숨듯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슴이 뛰었다. 가지고 가던 짐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냥 두고 나왔다. 짐이 문제가 아니었다.
주경중씨와 강진실 집사는 전 목사가 변소에 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사태가 급해서 피신을 한 것이다. 일본은 패전했지만 그들의 사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기차가 평양에 도착되어서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짐을 찾아 내렸다.
일행은 곧장 산정현 교회로 주 목사를 찾아갔다. 전 목사는 주 목사를 만나 인사를 하고, 교회의 되어진 일들을 이야기하였더니 대단히 반가워하였다.
주 목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회가 더 계속될 모양이니 먼저 내려가십시오. 저는 다른 동지들과 행동을 같이 하겠습니다.?
전 목사는 며칠 후에 다시 거창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때, 한상동 목사 부인 김차숙 여사가,
?전 목사님, 좀 더 계시다가 함께 가시지요.?
하고 만류를 한다.
?빨리 내려 가봐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내려가 이 곳 형편과 주 목사님의 태도를 말씀해 드려야지요.?
다음 날 떠나려고 하니 가방과 모자가 없다. 김차숙 여사가 숨긴 것이다. 전 목사는 간신히 가방과 모자를 찾아서 평양을 떠났다.
전 목사가 평양을 떠난 그 날 오후, 소련군이 밀어닥쳐 삼엄한 경계가 시작된 것이다. 8월 22일의 일이었다. 이북은 8월 20일에 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치쓰챠코프 대장이 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소련군을 협력케 하고, 22일에 소련군 선발대를 평양에 도착케 한 것이다.
이 날, 소련군 소부대는 평양을 거쳐 김교까지 가게 되었다.
9월 2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38선을 분계점으로 하여, 미?소 양군이 남북을 각각 분할 점령케 됨을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이것이 남북을 갈라 놓는 비극의 38선 경계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38선은 미?소 양군의 삼엄한 경비로 지켜지게 되었다.
이런 일은 꿈에도 모르고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는 은혜의 불길만 안고 있었다.
4. 거창에 돌아와서
산정현 교회 집회는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집회를 하는 동안 산정현 교회에서는 여러 차례 당회가 모여 후임 문제를 논의하였다. 산정현 교회 당회에서는 결국 한상동 목사를 주기철 목사 후임으로 결정하였다.
한 목사는 투옥 전, 담당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산정현 교회 시무를 허락하였다.
9월 18일. 한 목사만 산정현 교회에 그대로 남고 다른 분들은 고향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남한으로 내려가는 일행은 함께 출발을 하였다. 평양역에 들어서니 소련군들이 요소 요소에 서서 검문을 하였다.
열차를 탔다. 열차 안에도 소련군은 있었다. 사리원까지는 무사히 왔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몇 차례 소련군에게 제재를 당하였지만 남천까지는 가까스로 열차를 이용하였다.
남천에서 도보로 출발하였다. 주로 낮에는 숲에서 쉬고 밤을 이용하였다. 평양을 출발한 지 일주일 만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많은 고생들을 하였다. 여윈 얼굴들이 더욱 파리해 보였다.
주 목사는 거창을 돌아왔다. 7년 만에 걸어보는 고향 땅이었다. 감개가 무량하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줄로 알았는데 지금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든 길을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역시 고향은 좋은 곳이었다. 아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히뜩히뜩 지나간다.
주 목사는 죽전으로 들어섰다. 옛 교회 사택으로 들어간 것이다. 가족들이 교인들의 주선으로 다시 이사를 와 있었다.
주 목사를 맞는 가족들의 얼굴엔 기쁨과 슬픔이 엇갈려 있었다. 주 목사는 가족들을 위로하였다. 밥상을 받아 놓고 주 목사는 가족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감사가 치솟는다.
세상에 수다한 사람들이 별짓 다하면서 살고 있지만, 정말 주님만을 위해서 살수 있게 하여 주신데 대한 감사가 뜨겁게 쏟아졌다.
소문을 듣고 교인들이 모여 왔다.
?목사님!?
목이 메이는 사람,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껴??
말만의 인사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가 오갔다. 뜨거운 태양열을 받고 여름을 익혀온 뜰에서는 훅훅 더운 기가 치솟는다. 교인들이 몇 차례 지나가고 가족만 남았다.
밤이 조용히 밀려들고 있었다. 강물처럼 어두움이 더위를 덮고 흐르는 것이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나??
주 목사는 딸 경순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정다운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이 가여워요. 사람으로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살아 온 명들이어요.?
경순이의 눈에 물끼가 서린다.
?알아, 시대가 그런걸 누굴 탓하겠니??
?교인들이 야속해요. 아버지가 목회를 하실 때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그럴 수 밖에 더 있니? 새로운 목회자가 오면 그 목회자를 섬겨야 하니까 그렇지.?
?친일파 거짓 목자인 데두요??
?그런 소리하면 못써. 인간은 다 약한 거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별 수가 없지.....?
야위고 푸르죽죽한 주 목사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아버지, 무엇 때문에 거창에 또 계실려구 그래요. 가요! 아버지를 기다리는 교회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부산이고, 마산이고, 도시로 나가요.?
경중이도 아버지의 굳은 얼굴은 바라보면서 말을 건다.
?안 된다.?
?왜 안됩니까??
?목사는 환영을 받기 위해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야. 교회가 반대하여 쫓아내지 않는 한, 그곳에서 일을 해야 해 목사는 자기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야.?
?그렇지만, 얼마나 설움을 받았는 줄 아십니까??
?그건 시대가 그렇게 한 것이지 교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야.?
주 목사는 자녀들의 불평을 신앙으로 조용히 밀어 내렸다.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너희들은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경순이도 학교를 계속해야지.?
주 목사는 딸 경순이 얼굴에 눈을 준다. 핏기 없는 경순이의 얼굴에는 검은 눈동자만이 유독 빛을 풍겼다. 경순은 자신의 앞길보다 경효와 경세의 장래에 대하여 염려를 두었다.
두 남동생의 교육을 위해서 자신은 희생해도 좋다는 대담한 마음이 밀려온 것이다. 경순이의 영롱한 눈빛이 경효와 경세의 얼굴에 머물자, 찡하고 코허리가 시큰해 짐을 느끼는 것이었다.
5. 첫 주일 강단
주일이 왔다. 7년만에 처음으로 주 목사가 강단에서는 날이다. 일제 탄압의 모진 혹한이 사라지고 자유의 나라, 자유의 예배 시간이 왔다.
얼마나 기다리며 바라던 날인가? 시간 전에 교인들은 교회당으로 모여들었다. 교회당 마룻바닥에 엎드린 교인들은 흐느끼며 기도하였다.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못한 안타까움과 배반자의 쓰라린 가슴이 눈물을 부르는 것이다. 회개의 눈물이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을 범한 무서운 죄의식이 가슴을 친다. 죄를 범하면서 죄인줄 모르고 죄를 도리어 정당화하고 변명하여 온 지난날의 신앙이 아닌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었다.
주일이면 교회당에 모여 들어 맥빠진 찬송을 조울듯 부르고, 진실과는 거리가 먼 어색한 기도를 올리고, 지루한 시국강연의 설교를 들어왔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이미 무거운 죄와 함께 하나님을 쫓아낸 것이다.
하나님을 잃은 그들의 가슴 속, 그러면서도 주일이면 교회당을 찾아와야 했던 서글픈 사실, 무거운 피곤이 그들의 심신을 누르고 있었다. 이 어둡고 답답했던 과거가 허물어지고 꿈같은 새날이 찾아온 것이다.
진실 된 주의 종, 신앙을 목숨보다 귀하게 사수해 온 산 순교자 주남선 목사가 강단에 선다.
성도들의 가슴은 죄책과 새로운 흥분으로 야단이 나고 있었다. 교회당 안은 교인들로 가득 찼고, 흐느끼는 울음과 자복기도의 여음이 탁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종이 울렸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였다. 찬양대의 잔잔한 찬송과 함께 예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찬양이 끝나고 고요하게 목사님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교인들의 가슴은 처음으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예배를 체험하고 있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목회자의 기도가 시작된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먼 곳에 계신 예수님을 소리 높혀 외쳐 부름이 아니라, 옆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과 신뢰로 부르시는 것이다.
교인들의 귓전에,
?오냐!?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역력하고 산 기도가 올려지고 있었다.
?주여!?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죄인을 죄대로 갚지 않으시고 사랑과 은혜로 대하시니 너무나 감사하옵고, 황송하옵나이다. 부족하고 죄 많은 이것, 옥중에서 불러 가시지 않으시고 살려 주셔서 출옥하게 하시어 성도들과 함께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목자 잃은 양떼들이 갈 길을 못 찾아 유리방황 하였나이다. 연약하여 주의 뜻 어긴 것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양떼들이 어긋난 길을 가고 주님의 계명을 범한 죄 용서하여 주옵소서. 미리 미리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이 죄인의 죄가 많사옵나이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이 양떼들, 마지못해 지은 죄, 깨닫지 못하고 지은 죄, 주님이 아십니다. 이들의 죄의 값을 이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목사의 기도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겸손한 기도였다. 교인들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이마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머리에 숯불을 부은 듯 활활 타는 뜨거움을 느꼈다. 진리를 위해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못한 죄책감이 가슴을 친다.
교인들은 울고 또 울고, 가슴을 치고 마루바닥을 쳤다. 기도가 끝나고 성경봉독이 있었고 찬양대의 찬양이 드려졌다.
설교시간. 교인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주 목사의 얼굴을 차마 정면으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뼈만 앙상한 그 모습을 쳐다보기가 황송하였다.
육체를 위해 살아온 그들 자신들의 기름이 낀 모습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성스러움 앞에 자연 머리가 수그러졌다. 이제와서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신들 받아들이지 못할 말이 있겠는가?
책망, 또 책망, 소낙비처럼 책망을 퍼부어 주었으면 싶은 마음들이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은 그의 몸을 감싼 곱게 다듬어진 모시 두루막에 반사되어 진초록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마엔 깊이 새겨진 주름살은 지난날의 모진 상흔을 역력히 말해 주고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수고가 많았습니까? 나라 없는 슬픔이 그런 것입니다. 신앙의 길은 평탄하고 형통해지는 길만이 아닙니다. 모진 고난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의 책망 없이 시작된 주 목사의 설교는 교인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고 감동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
교인들의 실수를 자신의 실수로 아는 목사님, 교인들의 부족을 자신의 부족으로 알고 책임을 느끼는 목사님, 교인들은 그 목사님 앞에 머리를 수였다. 거창읍 교회성도들은 한결같이,
?우리 목사님을 다시는 잃지 않으리라.?
하고 결심을 지었다.
주남선 목사의 목회생활은 다시 거창읍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거창읍 지방의 모든 사람들이 비록 그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주 목사의 인간 됨과 그의 애국심과 종교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 목사를 우러러 보고 있었다.
교회는 날로 부흥하여 갔다.
6. 철저한 신앙인
주 목사는 항상 한복을 입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발을 맨 댓님을 푸는 법이 없다. 두루막만 벗고 그냥 눈을 부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느 교역자,
?목사님, 어째서 옷을 입은 채 댓님을 맨 채 주무십니까??
하고 질문을 했다.
목사님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데 잠잘 때 오시면 급히 일어나야지!?단순한 신앙이었다. 이는 그의 마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깨어있는 신앙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 아침 9시가 훨씬 넘어서야 사택으로 돌아간다. 성경찬송을 겨들랑이에 끼고 길을 갈 때면 보는 사람마다 감화를 받는다.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다가 모시두루막 고름을 밟았다. 툭 하고 고름이 떨어져 발 밑에 깔렸다. 고름을 손에 쥐고 집으로 왔다.
달수가 없는 것이었다. 주일이기에 고름을 달아 달라고 사모님께 내밀 수가 없었다. 그는 남은 옷고름에 떨어진 고름을 잡아매어 빙 둘러 묶었다.
그런 상태로 강단에 섰다. 교인들이 목사님의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사모님이 몰라서 저렇게 두었는가 보다?
마음으로 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예배 후, 여 집사 한 분이 목사님께 질문하였다.
?목사님, 두루막 옷고름을 왜 그렇게 하고 나왔습니까? 꼭 어린아이 갔네예... 호호.....?
그러나 주 목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것입니다.?
말을 하였다.
이렇게 계명에 대하여는 철두철미 엄수한 주 목사였다.
당회를 모이다가 혹 의견이 맞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 때 주 목사는 우기지 않았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지요.?
눈물어린 기도가 시작된다. 줄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마루에 떨어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기도였다. 장로들은 눈물어린 기도에 차마 자신의 어떤 고집을 주장하지 못했다.
문제는 해결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 맡깁시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사심이 없고,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는 주 목사의 신앙적 처사에 순종 못할 이유는 없었다.
주 목사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주일 아침만은 냉수로 목욕을 했다. 고행이 아니라 그의 정신이었다. 맑은 정신 깨끗한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다는 뜻에서 그렇게 하였다.
7. 약속은 틀림없이
그 무렵 이성옥 전도사는 한천읍 교회를 시무하고 있었다.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으면서 장로 장립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성옥 전도사는 사전에 주 목사를 만나 모든 순서에 대하여 의논하고 장립 날짜를 정하였다.
정립 날짜가 가까워 왔다. 헌데 주 목사는 급한 일로 서울에 상경하신 것이었다. 장립 날자는 내일로 박두하였는데 소식이 없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각 교회에 통지문을 내었으니 연기할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며칠째 눈이 내려 길이 막혔다.
거창이나 합천은 교통이 말이 아니었다. 김천에서 거창 까지 백 오십 리 길은 오전밖에 버스가 없었다.
장립 날이 밝아왔다. 이성옥 전도사는 초조한 마음으로 주 목사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자 어디서 어떻게 오셨는지 주 목사가 나타난 것이다. 반갑고 놀라워 이성옥 전도사는,
?목사님 어인 일입니까??
하고 말을 던졌다.
?어인 일이긴 어인 일이라, 장립 하러 왔지!?
주 목사의 이마에는 촉촉이 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차가 없어 못 오실 줄 알았습니다.?
?김천에서 거창까지 걸어 올 생각으로 어제 오후 길을 나섰지! 그런데 우두렁 고개 미처 못와서 트럭이 한 대 오드만, 도락구가 말이야. 태워 달라고 손을 들었더니 태워주지 않겠나, 그래서 쉽게 거창으로 왔지요. 오늘 새벽 거창을 출발했는데 차가 있어야지, 걸어 나섰지 뭐!?
주 목사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길게 내 쉬었다.
?묘산까지 와서는 초조해 지더군. 시간 전에 못들어 가겠다 싶어서????? 그만 길가에 앉아 기도를 했지! 기도를 끝내고 일어나 걸을려고 하니 차소리가 나지 않겠어? 돌아보니 쓰리코다가 한 대 오더군요. 가까이 오는데 보니 경관들 차야, 염치불문하고 손을 들었지! 세워 주더군. 좀 태워달라 했더니 시원스럽게 타라고 하지 않겠나? 그래서 타고왔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군요.?
?이 조사 기도 많이 한 모양이지? 장립 받는다고, 다 기도 덕이지??????
이성옥 전도사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서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는 자신의 몸이나 형편을 돌보시지 않는 주 목사. 그는 삼군지방 교역자와 성도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8. 대구 서문로 교회의 청빙
해방과 함께 도시 큰 교회에서는 교역자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었다. 대구 서문로 교회에서도 교역자가 비어 있었다.
당회가 모여 여러번 의논을 거듭하다가 결국 주 남선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의하였다. 허나 교섭하는 일이 문제였다. 김정오 장로가 윤봉기 전도사를 만났다. 김정오 장로(김주오 목사 형)는 당시 과수원도 갖고 있었고, 약국을 하고 있었다.
김정오 장로가 주 목사와 가까운 윤봉기 전도사를 찾아 경주까지 간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서문로 교회는 주남선 목사를 사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장로는 윤 전도사에게,
?거창으로 가셔서 꼭 주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 오시오. 지금 우리 서문로 교회에서는 거창읍 교회가 부담하는 삼 배를 부담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다짐을 주었다. 윤 전도사는 주 목사가 자기 가까이 오시게 되는데 마음이 움직였다. 윤 전도사는 남 궁억 선생에게서 민족 사상을 강하게 받았고, 주남선 목사를 통하여 산 신앙을 체험하였다.
그의 첫 목회지는 야로 교회였다. 1935년 9월, 성서공회 권서일을 보면서 교회를 이끌어 갔다. 권서일로 뛰면서 자주 주 목사를 만났고 신앙의 지도를 받았다. 경남노회에서 전도사 시취를 할 때, 주 목사에게서 문답을 받았다.
윤 전도사는 3년간 야로 교회를 시무 하다가 군북 교회로 갔으나 신사참배 문제가 생기자 군북 교회를 사면하고 안의 교회로 왔다. 여러 번 주 목사가 찾아와 윤봉기 전도사에게 신사참배 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윤 전도사는 주 목사의 권면을 바로 받아들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신사참배는 할 수 없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주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고, 이X영 목사가 거창읍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윤 전도사는 주 목사의 투옥이 자신의 투옥처럼 마음 아파했고, 자신의 투옥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윤 전도사는 어느 주일 낮에 신사참배는 죄가 때문에 결코 해서 안 된다고 설교하였다.
설교를 듣던 교인 중 한 분이 당회장 이X형 목사에게 보고를 해서 이 목사가 찾아왔다. 이 목사가 윤 전도사에게 말했다.
?윤 조사, 이 판에 신사참배 하고 안 하는 것을 강단에서 말할 것이 무엇이 있소? 나는 윤 조사 신앙이 뜨거운 줄 잘 알고 있소. 허지만 강단에서 신사참배 문제를 내 놓지 마시오. 그냥 구원에 대한 설교만 하시오.?
윤 전도사는 음성을 높혀서,
?목사님, 계명에 관한 문제인데 말하지 말라 하시니, 나는 목회 못하겠습니다. 나는 그만 교회를 사면하겠습니다.?
하고 강하게 말했다.
?그럼 누가 안의 교회에 오겠오.?
?그건 나도 모릅니다. 나는 계명을 범하면서 까지 목회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윤봉기 전도사는 교회를 사면하였으며, 경주에 있는 최성환씨 주선으로 회사에 취직하였다. 최씨는 안경과 자봉침 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경찰의 손이 뻗혔다. 경찰에 호출되어 갔다. 형사 주임이 물었다.
?당신이 윤봉기요??
?예, 그렇습니다. 어떻게 저의 이름을 아십니까??
?일본 경찰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그래 한상동씨를 아시오??
?예 알고 있습니다.?
?주남고씨를 아시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주남고 목사님의 사랑을 받고 있던 사람입니다.?
?묻는 대로만 답하시오.?
형사 주임은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부터 주인 최성환씨도 윤전도사를 외면하는 눈치였다. 마침 경주 경찰서에 읍민들을 소개하라 명령을 해서 윤 전도사는 충남 논산군 연산면 면소재지로 갔다.
그곳에서 신문지국을 하며 지내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이 되자 경주읍 교회에 가서 목회를 시작한 것이다.
윤봉기 전도사는 김정오 장로의 부탁을 받고 거창으로 주목사를 찾아가면서 지난날을 회상해 보았다. 믿음으로 바르게살기란 참 힘드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는가 보다.
거창 죽전에 들어간 윤 전도사는 주 목사를 마나 그가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윤 전도사는 계속해서 주 목사에게,
?목사님, 대구로 가십시다. 목사님께서 대구에 가시면 저도 자주 만나 뵙게 되어 좋을 것 같습니다.?
무게 있게 말을 던졌다. 주 목사는 그의 특유한 웃음을 두텁게 얼굴에 깔면서,
?내가 거창을 떠날 것 같이 생각이 되었오.??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대구에 가시면 여러 가지로 유익하실 터인데??????
윤 전도사가 말을 흐리자,
?어쨋던 잘 왔오. 윤 조사, 나하고 한 주간 심방을 합시다.?
?난 목사님을 모시러 왔는데요???????
?그런소리 하지말고 온 길이니 심방이나 합시다. 옥중에도 같이 동행할 처지인데 심방 좀 같이 못할까??윤 전도사는 당황하였다. 허나 주 목사의 간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같이 심방에 나섰다. 7년만에 지방 순회를 하시는 심방이었다.
교회마다 찾아가 세례 학습 문답을 하셨다. 주 목사의 세례문답은 어려웠다. 대답을 잘못하면,
?내년에 받도록 하지.?
하고 미루었다. 밤에는 집회를 가지는데, 윤 전도사에게 설교를 시키는 것이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셔야지요.?
윤 전도사가 사양을 했다.
?이럴 때 설교해야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나??
?그렇지만 목사님이 설교를 하셔야 은혜를 받을 수 있지요.?
그러나 주 목사는 가는 곳마다 윤 전도사에게 설교를 맡겼다. 윤 봉기 전도사는 주 목사와 함께 심방을 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 윤 전도사는 생각하였다.
?주 목사님 밑에서 교인 노릇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윤 전도사는 목회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만 주 목사 밑에서 장로가 되어 주 목사를 받들며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주 목사가 한 주간 더 있어달라는 걸 사정을 하여 대구로 떠났다. 주 목사 청빙을 위해 갔다가 주 목사 밑에 교인이 되고 싶은 마음만 안고 돌아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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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선지자 | 2015.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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