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생과 사의 길목

선지자선교회

1. 이동 교회

교역자 수양회가 끝나는 727일 새벽이었다.

이성옥 전도사는 초조했다. 교회와 집안 일이 염려되었다. 시간만 연장하며 앉아 있는 것은 별 유익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다. 추국원, 정우덕, 하종숙 전도사들도 나와 있었다. 새벽기도회를 끝내고 갔으면 좋겠지만 그런 여유가 생기지를 않아 모두들 길을 떠났다.

이성옥 전도사는 그의 시무 교회 합천읍 교회를 향하여 길을 재촉하였다. 거창에서 합천까지는 백리길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솟기 전에 길을 줄여야 하겠기에 그의 걸음은 뛰는 듯 빨랐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새벽기도를 끝내고 올 것인데, 너무 급히 서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일기도 하였다.

주 목사의 말씀이 생각났다.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피난을 간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요. 난 중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죽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일해야 합니다.?

뜨거운 말씀입니다.

?우리 서로 어디 있든지 연락을 합시다. 그래야 피차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서로 기도로서 도웁시다. 기도는 최상의 도우는 방법입니다.?

주 목사의 무거운 그 말씀이 이 전도사의 가슴에 뿌듯이 안겨왔다.

나올 때,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살며시 나온 것이 썰물 뒤의 갯벌처럼 허전해 왔다.

이 전도사는 복잡한 마음을 정돈하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권변재를 오를 때엔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시장기를 느꼈다. 권변재를 넘어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움찔하였다.

강 기슭에 진녹색 복장의 괴뢰군들이 쫙 깔려 있는 것이었다.

?늦었구나?

어떻게 해 볼 묘안이 나오지를 않았다.

?주님! 저를 보호하여 주소서!?

기도 밖에 딴 길이 없었다.

그는 기도를 올리면서 줄곧 아래로 치달렸다. 교량을 통과하는데도 그들은 부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전신에 흥건히 땀이 배어왔다. 주께서 그를 지켜 주신 것이다.

그는 무사히 한 고비를 넘기고 줄곧 신작로 길을 걸었다. 허리를 펴고 활발하게 걸었다. 합천으로 무사히 들어섰다. 교회에 들어가니 가족들과 교인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교인들은 이 전도사의 모습을 보자 반가워 소리쳤다.

?아이구 조사님, 살아오셨군요!?

?그래 어떻게 지냈습니까???우리 조사님 돌아 가셨는 줄 알았어예!?

여집사 한 분이 눈믈을 글썽이며 말을 씹었다.

?교인들은 다 무사합니까??

?피난 많이 갔습니다.?

그날 밤이었다. 여집사 두 분과 남집사 한 분이 찾아와서,

?남은 제직들은 우리 뿐입니다. 우리도 피난 가입시더!?

이 전도사의 머리에 문득 주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피난을 간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고 난 중에 있다고 반드시 죽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전도사는 순간,

?나는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하고 힘을 주어 말했다.

?교인이 없는 교회를 지키면 무엇합니꺼? 교인들이 다 피난간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 아닙니까? 내일 모두 피난가라고 순경이 통고해 왔심더. 조사님도 같이 가입시더.?

?그래도 남을 사람은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지키고 있다가 인민군 오면 순교를 하지요.?

?참 조사님도 어리석은 소리를 하시네. 인민군이 와서 죽이면 순교가 되지만, 미군이 폭격해서 죽어도 순교가 됩니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억지로 죽음을 택할 필요는 없다.

?날이 밝으면 인민군이 쳐들어옵니다. 난 오다가 인민군을 보았습니다.?

이 전도사는 집사들에게 오면서 목격한 인민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 시간을 한 시간 당겨 가졌다. 교인들은 피난 준비를 하여 교회당으로 나왔다.

교회당은 군청 옆에 있다. 군청을 순경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아침이 되자 순경이 뛰어다니며 피난 가라고 성화를 부렸다.

이 전도사는 하루 사이지만 주 목사님 생각이 간절하였다. 거창이 합천보다 먼저 당할 것만 같았다. 주 목사님의 신변이 염려스러웠다.

그때, 거창에서 부산으로 파난 가는 거창읍 교회 신자가 들어왔다. 이 전도사도 주 목사님 소식을 알게됨이 무엇보다 반가워서,

?주 목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다급히 물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전도사는 교인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교인은 어린아이까지 합쳐서 모두 열 아홉명이었다. 피난민들의 행렬이 길을 메웠다. 교인들을 거느리고 떠나는 이 전도사의 일행은 이동교회였다.

초계까지 갔다. 합천과 창령의 경계선을 알리는 적포철교를 건너야 했다. 부지런히 걸었다. 사람 홍수에 밀려 길이 잘 전진되지 않았다.

적포 철교까지 무사히 왔는데, 철교를 건널 수가 없었다. 순경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건너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왔다. 729일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밤을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 인가 가까이에서 지새우게 되었다.

이성옥 전도사는 꿈을 꾸었다. 꿈에 주 목사님이 나타났다. 흰 두루막을 입고 평상시처럼 살며시 웃으신다. 무엇인가 말씀을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을 깬 이 전도사는 허전한 자신을 느꼈다.

?주 목사님은 이미 순교하셨구나, 나를 뒤따르라고 일러 주시나보다.?

이렇게 생각한 이 전도사는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를 올렸다.

날이 밝고 있었다. 교인들을 불러모아 새벽기도회를 가졌다.

해가 돋기 전에 아침밥을 지어먹고, 모두들 길을 떠났다. 철교를 건널 수 있었다. 강둑을 지나 얼마를 걸어갔다. 부산으로 가야 산다고 생각하고 부산 쪽으로 계속 걸었다. 조그만한 교회당이 보였다. 이 전도사는 교인들을 데리고 교회로 들어갔다.

텅 빈 교회당이었다. 건평 10평 정도의 작은 교회당이었다. 여기서 밤을 지나기로 하였다. 모기가 말이 아니었다. 피난민에겐 모기가 문제 될 수 없었다.

730일 날이 밝았다. 주일이었다. 주일 예배를 교회당에서 드렸다. 광야 교회 같았다. 광야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였다.

나그네 길의 인생, 그러나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이 시간은 참으로 흐뭇하고 위로를 받는 시간이었다.

예배 때마다 쏟아지는 은혜, 심령들은 만족과 평안을 누렸다. 이 전도사는 그 밤에 기도하며, 내일의 행진을 위해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길을 떠났다. 대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가다가 많은 위험을 겪었다.

82일에는 청도 뒷산 기슭까지 왔다. 거기서 3일 밤을 민가에 방을 얻어 비교적 편하게 지냈다.

84일 토요일이었다.

?내일 주일 예배만 보고서 떠나도록 합시다.?

이 전도사는 이 곳을 떠날 것을 교인들에게 말했다. 이 전도사는 밤늦게까지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이었다. 주 목사님이 또 흰 두루막을 입고 나타나셨다.

???????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꿈을 깬 이 전도사는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한참 생각하였다.

?주 목사님이 먼저 천당 가셔서 나를 오라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뜻인가??

이 전도사는 엎드려 기도하였다. 힘이 솟아올랐다.

85, 주일 새벽이었다. 기도회를 마치고 자유롭게 기도하는데 한 여신자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조사님, 큰일났습니다! 저 아래 새까맣게 올라옵니다.?

이 전도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방에 들어가 기도하시오. 내가 나가서 살피고 오겠오.?

?지금 방 주인이 예수쟁이에게 방 빌려준 걸 후회하고 있어요.?

밖에 나가 보니 인민군이었다. 간밤에 주 목사님 나타나 말씀하신 것은 용기 잃지 말고 잘 싸워 승리하라는 것인 줄로 생각하였다.

그때, 인민군 네 명이 밀어닥쳤다.

?무엇 하는 사람이오??

?교회 전도사입니다.?

?모두 데리고 이리 나오시오??

교인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괴뢰군들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죽는구나.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고 죽으리라.?

이 전도사는 마음에 각오를 다지며 따라갔다. 그들은 일행을 산기슭 소나무 아래에 머물게 하였다.

그때 동리 쪽에서

?국군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전도사는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주님, 나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시든지, 아니면 담대히 순교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아래쪽에서 인민군들이 위로 올라왔다.

?전원 전투 준비!?

?골짜기를 이용하여 엎드려!?인민군들은 골짜기로 뛰었다. 이 전도사 일행에게 총질을 할 여유가 없었다. 이 전도사 일행은 삶의 긴 숨을 내쉬었다.

죽음이 눈앞까지 왔다가 사라졌다. 죽음이 목숨의 줄을 끊을려고 가위를 들었다가 그냥 도망친 것이다.

?살았다!?

이 전도사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피난이 필요 없음을 그때야 느꼈다.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46:1-3)

이 전도사는 교인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돌아섰다.

?갑시다! 피난이 필요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피난처는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합천으로 돌아갑시다. 교회로 돌아갑시다.?

이 전도사의 말에는 힘이 솟았다. 모두들 아래로 내려왔다.

찬송이 영혼 손에서 쏟아진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게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2.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마산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주경효는 6?25동란이 터지자 거창이 위험할 듯하여 아버지 주 목사님을 모시러 거창에 갔다.

?아버지, 누님 계신 마산으로 가십시다. 거창은 위험합니다. 괴뢰군들은 기독신자들을 미워하고 목사님들을 잘 죽인답니다.?

경효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괜찮다. 너나 그냥 있지, 뭘할려고 여기까지 왔냐??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서요.?

경효는 힐끗 아버지를 치켜보곤 시선을 내리 깔았다.

?녀석. 그래, 내가 교회를 버리고 어디로 갈상 싶더냐??

주 목사님은 효성이 어린 아들의 얼굴은 잠시 더듬다가,

?온 길이니 동생들이나 데리고 가거라.?

속삭이듯 말했다. 경효는 아무리 아버지와 함께 가기를 졸랐지만 허사였다.

다음 날 경효는 경세, 경은이 조카 정신이를 데리고 거창을 떠났다.

삼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길에서 전투원들에게 붙들렸다.

전투대장이,

?웬 아이들이냐??

하고 노기 띤 어조로 물었다.

?마산으로 피난 갑니다.?

경효가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지금이 어느 땐데 피난을 가??

?나는 마산에 있는데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동생들만 데리고 갑니다.?

?지금, 인민군이 곧 이리로 올 것인데 피난을 가다니??

?보내 주십시오.?

?안 돼!?

큰일이었다. 이 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떤 변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머리가 찡해지면서 아득함을 느꼈다.

?대장님, 난 목사 아들입니다. 인민군을 만나면 안됩니다.?

?목사 아들이라니, 주남선 목사가 우리 아버지입니다.?

?거창읍 교회에서 계시는 주 남선 목사가 우리 아버지입니다.?

?? 주남선 목사님 아들이라고??

?!?

경효는 전투대장이 아버지를 아는 듯한 기미를 보이는 것 같아 반가웠다.

?주 목사님은 내가 잘 알지. 그 분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야!?

전투대장은 그가 주 목사님을 알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였다.

지리산 공비 토벌 때의 일이었다. 그는 총상을 입고 거창으로 후송되어 임시병원에 입원되었다. 그때의 임시병원은 거창 유치원이었다.

침대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는데, 주 목사님이 아침저녁 찾아와 위로해 주시며 성경 말씀을 들려 주셨고 위하여 기도해 주셨다. 그는 퇴원되어 다시 전투부대로 배속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주 목사님의 따뜻한 사랑과 친절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나면 꼭 찾아가 인사라도 드리려 생각했는데, 동란이 터지고 전쟁을 하게 되니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오늘 주 목사님의 아들을 만나게 되니 감개무량하여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주 목사님의 아들이라니 내가 도와 주어야 하겠군.?

전투대장은 마음으로 결정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빨리 뛰어가 저쪽 재를 넘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직접 인도할 수는 없고, 사람을 한 사람 같이 보낼 터이니 지시를 받고 지름길을 통하여 마산으로 가거라.?

대장은 장정을 한 사람 안내자로 세워 주었다. 경효는 동생들과 조카를 데리고 장정의 지시대로 산을 넘어 지름길을 타고 무사히 전쟁터를 벗어나게 되었다.

경효는 아버지의 힘이 이렇게 널리 뻗어 있는 일에 대하여 또 한번 가슴에 흐뭇함을 느꼈다.

3. 뱃길에서

하종숙 전도사는 26일 새벽, 초조한 마음으로 교회로 돌아갔다. 그는 온양 교회를 시무하고 있었다.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괴뢰군이 곧 쳐들어 올 것인데 그냥 있으면 죽는다. 빨리 서둘러 가족들과 함께 위천 쪽으로 향하였다.

위천 교량이 파괴되어 있었다. 낙동강 물줄기가 검푸르게 뻗어 흘렸다. 마음은 뛰고 싶지만 강물이 길을 막았다. 나룻배가 왔다. 피난민들이 배에 올랐다. 밀물처럼 사람들은 먼저 오르려고 떠밀었다.

하 전도사는 딸을 태우고 배에 올랐다. 아직 가족이 다 타지 못하였다. 그러나 배는 강기슭을 떠났다. 배가 강 중간에 이르렀을 때, 비행기 소리가 났다.

미 전투기가 강물 쪽으로 낮게 오더니 기관총을 난발 하는 것이었다. 수면에 떨어지는 총탄이 빗방울 떨어지듯 했다.

당시 인민군들이 주로 민간인복을 입고 거동을 하였다. 미 전투기가 날아와서도 민간인들은 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늦게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미 조종사들은 민간인을 인민군으로 오인하고 폭격을 가하는 일들이 많았다.

비행기에서 폭격이 가해지자 배를 타고 있던 피난민들은 요동하기 시작하였다. 배가 좌우로 끼우뚱하다가 그만 뒤엎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물 속으로 쏟아졌다. 하종숙 전도사도 물에 빠졌다. 하 전도사는 헤엄을 쳤다. 사람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그때 하 전도사 귀에

?아부지, 살려 주세요!?

비명이 들려왔다. 하 전도사는 헤엄을 쳐서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딸이었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딸이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하 전도사는 돌아섰다. 딸을 구하기 위하여 딸 가까이로 헤엄을 갔다. 딸의 몸을 떠밀면서 돌아서 강둑을 향해 손발을 놀렸다. 그러나 그에겐 힘이 없었다.

둘이 동시에 거센 물을 헤치고 나오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강둑으로 나오지 못하고 하 전도사는 기진 하여 물 속으로 잠겨 들었다. 있는 힘을 다 모아 헤어 나오려고 했지만 물 속에 잠긴 채 영영 떠오르지 못했다.

하 전도사의 생명은 그것으로 다한 것이다.

4. 순교자 박기천 전도사

726, 수양회를 은혜롭게 마친 박기천 전도사는 신앙의 확신을 얻고 교회로 돌아왔다.

그가 시무하는 교회는 개천교회였다. 그는 전일 위천면 면사무소 직원으로 있었다.

마태가 세관에서 부름을 받았듯이, 그는 면사무소에서 부름을 받았다.

전도를 받은 그 날부터 열심이었다. 위천 교회를 출석하면서 교회 봉사를 잘 하였다. 더욱 은혜를 받자 견딜 수 없었다.

면사무소에 안장 사무를 보고 월급을 받는 평범하고 뜻 없는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없었다. 뜨거운 그의 가슴은 복음 전파의 길을 재촉하였다.

그는 별로 많은 성경 지식을 갖지 못했지만 열심히 독학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했으며, 노회 전도사 시취를 갖지 못했지만 전도사의 길을 나선 것이었다.

어렵고 힘겨운 좁은 길을 뜨거운 가슴으로 걷고 있었다. 백씨가 몹시 언짢게 생각하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기천이 자식은 예수를 믿더니 영 정신이 돌았어! 돌지 않아야 그렇게 좋은 면서기 자리를 마다하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조사 짓을 해??

백씨는 괜찮게 살았지만 동생을 동와 주지 않았다. 농촌 교회 목회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기쁨으로 그 어려움의 길을 걸어갔다.

6.25 사변이 일어나기 직전에 개천교회로 옮겨 목회를 하였다. 가족은 아내와 아들 하나, 단 세 식구였다.

거창 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온 박 전도사는 피난 갈 것을 아예 생각도 내지 않고 열심히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며 교회에서 기도하였다.

8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인민군은 거창에 본부를 두고 마을 마을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산주의 정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827일 지방 행정위원을 뽑는 선거가 있다고 공고가 붙었다.

827일은 주일이었다. 박 전도사는 820일 낮 설교시간에,

?????? 주일은 거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기독신자들은 투표에 참석해서는 안됩니다. 주일에는 세상 선거 투표에 신자들이 참가할 수 없습니다. 해서는 안됩니다.?

하고 외쳤다. 설교를 듣던 한 청년이 이 사실을 내무서에 고발하였다. 다음 날, 무장한 인민군이 나타나 박 전도사를 내무서로 연행하여 갔다.

내무서는 거창읍에 있었다. 명덕학교를 그들이 내무서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무서에서 인민군은 점잖게 타일렀다.

?투표하는 일에 협조하여 주시오.?

?못합니다.?

?왜 못한단 말이오??

?주일이기 때문에 못합니다.?

?투표만 하면 되지 않겠소??

?그래도 안됩니다. 그 날은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만 합니다.?

박 전도사는 내무서에 갇혀 한 주일을 보냈다.

?이제 선거는 끝났오! 그러니 잘못했다는 말만 한마디하면 내보내 주겠소!?

인민군이 다시 도전하여 왔다.

?안됩니다. 나는 결코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기독신자면 누구나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자들도 다 투표에 가담했단 말이오.?

?그러나 약해서 그렇지 그들이 잘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할 것입니다.?

?할 수 없군!?

인민군은 박 전도사를 끌고 다니며 내무서 밖의 일을 시켰다.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 쬐이는 뜰에서 박 전도사는 일을 하였다.

그 곳에서 200여명의 사람들이 같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인민군들의 비위를 거스린 군민들이었다. 신자는 박 전도사 혼자였다.

9월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인민군들은 200여명의 사람을 인솔하여 진주로 가게 되었다. 재판을 받으러 간다는 것이었다. 박 전도사도 끼어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행은 인민군들의 총 끝에 움직이고 있었다. 함양을 지나서 생초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진주 쪽에서 한 때의 인민군들이 이쪽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를 하고 있는 패잔병들이었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이쪽 인민군들은 200여명의 일행을 돌아서게 하였다. 다시 거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행렬은 어수선하였다.

인민군들의 당황하는 품이 심상치 않았다. 끌려오는 양민들은 기회를 보고 있었다. 재판이고 무엇이고 없다. 이제는 총살형이 기다리고 있을 뿐임을 양민들은 알고 있었다.

?뛰자!?

그들은 소근거렸다. 그들은 요행이 묶여있지 않았다. 함양읍으로 들어섰다. 함양읍에서 인민군들은 삽을 거두었다. 수십 자루의 삽을 양민들에게 들렸다.

합양읍에서 나와 목현 쪽으로 집어 들었다. 이미 양민들의 가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내리고 있었다.

길을 멈추게 하였다. 바로 신작로 아래 모를 심지 않는 논이 있었다. 인민군들은 양민들에게 삽을 주면서 구덩이를 파게 하였다.

이때, 총성이 귀를 멍멍하게 했다. 장정들이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필살의 탈주였다. 그러나 이 때 박 전도사는 끝까지 침착하게 행동하더라고 뒤에 사라온 사람이 증거해 주었다.

살아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박 전도사는 조금도 그 몸이 흐트러지지 않고 인격적으로 최후를 기다리는 있는 자세였다고 한다.

928일 수복 후, 남영환 전도사는 황보여한 전도사(지금은 함양교회 장로로 고아원 원장)와 함께 박 전도사의 시체를 찾기 위해 현장으로 갔다.

현장은 비참하였다. 여러 곳에 구덩이가 있었는데 시체가 가득가득했다. 시체는 부패해 있었다.

물이 고인 구덩이에는 시체가 물에 불어 제재소 안에 갔다둔 나무둥지처럼 보였다. 까마귀들이 벌써 눈을 다 뽑아 먹어버려 구멍만 두 개나 있었다. 냄새가 지독하였고 벌레와 파리가 득실거렸다.

시체를 한 구 한 구 치우며, 박 전도사의 시체를 찾기 시작했다.

숨이 훅훅 막혔다.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땀이 전신에 흥건히 젖어 들었다. 그 많은 시체를 다 뒤졌지만 박 전도사의 시체는 없었다. 결국 시체를 찾지 못하고 두 전도사는 그냥 돌아왔다.

12월 어느 날이었다. 박 전도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남영환 전도사는 시체가 있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목현 뒤 산이었다.

골짜기를 올라가 능선의 한 소나무 밑에 반반히 누운 시체가 있었다. 시체는 상한 곳이 없이 그대로 있었다. 산까마귀도 그의 눈에 접근하지 않은 채 살포시 그의 눈은 감겨 있었다.

남 전도사는 박 전도사의 시체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동역자의 승리적 모습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하나님은 순교자의 시체마저도 보호해 주셨구나!?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구별된 죽음을 죽게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더기로 죽어 같은 구덩이 속에서 썩지 않고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 시체가 있는 것이 어인 일인지, 그것은 지금까지 아무도 아는 자가 없다.

며칠 후, 순교자 박기천 전도사의 장례는 거창 시찰장으로 성대하게 치루게 되었다. 이날 주례는 산 순교자 주남선 목사가 집례하였다.

순교자 박기천 전도사가 인민군에게 끌려가던 날, 네 살 난 아들 래영은 발가벗고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마지막 길인 줄 모르고 멍하니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린 래영이,

26년의 세월이 흘렀다. 순교자 박기천 전도사의 외아들 래영이 자라 30.

고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연구과에 입학하여 2학년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도사가 된 것이었다. 그는 지금 부산 반여동 장산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을 보고 있다.

5. 순교자 배 추달 집사

배추달 집사는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친이 별세하고 그는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일찍 복음을 받아 예수를 믿었기에 추달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생활을 하였다.

당시 화양리에는 교회가 없었다. 그곳에서 이십리 밖, 관기리에 교회가 있었다. 관기교회였다. 추달은 어머니와 관기교회를 출석하였다.

추달은 학교를 하지 못했고 집에서 한글을 좀 익혔다. 집이 가난하여 먹는 문제가 항상 염려였다.

추달이 뼈가 굵어지자 남의 집일을 도와 주었다. 머슴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그의 가슴에도 배움에 대한 염원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추달은 남의 집 머슴으로 있었지만 교회생활을 부지런히 잘 하므로써 교회에서 일찍 집사로 임명이 되었다. 관기교회 집사로서 그는 열심으로 신앙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19503월이었다. 거창에서 주남선 목사가 성경학교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관기교회에도 날아왔다. 소식을 들은 추달집사의 가슴이 뛰었다. 배우고 싶었다. 성경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돈이 별로 들지 않아 좋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 문제에 대하여는 어느 부모보다 열정적이었다.

?가서 공부를 하도록 해라.?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추달 집사는 거창으로 가서 성경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학생이 된 추달 집사는 너무나 기뻤다. 처음으로 노트에 글을 썼다. 성경을 체계 있게 배우는 일은 그의 가슴을 흐뭇하게 하였다.

날이 갈수록 그의 가슴은 주님께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는 기도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감격할 뿐이었다.

머슴살이로 천대받으며 지내야 했던 그가 성경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찬 일이었다. 남영환 전도사가 주로 학과를 가르쳤다.

성경학교의 수업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6?25동란이 터졌다. 성경학교는 조기방학에 들어갔다. 방학식 날, 주 목사님의 설교에 추달 집사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졌다.

신앙으로 살되 바로 살아야 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졌다. 주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 싶었다. 산 순교자 주 목사님의 행동 하나 하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가슴을 울렸다.

신앙의 길은 참 좋은 것이고, 사람의 품위를 한결 높혀 준다고 생각하였다.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추달 집사는 계속 성경을 읽었고 노트를 훑었다. 기도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인민군들이 묘산으로 몰려온다는 소문이 들렸다.

순경들이 피난을 가라고 호령을 했다.

화양리 사람들은 봇짐을 꾸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추달 집사도 어머니와 함께 피난에 나섰다.

피난민들은 낙동강 철교가 있는 합천과 창녕의 경계선까지 갔다. 적포철교가 파손되어 끊어져 통행이 중지된 것이었다. 건너 갈 수가 없었다. 화양리 사람들은 그만 되돌아오고 말았다.

화양으로 돌아온 날은 금요일 오후였다. 그날 밤, 가정에서 추달 집사와 교인들은 구역 기도회를 가졌다. 예배는 정운택 선생이 인도하였다.

정운택 선생(현재 부산시 이사벨여고 교사)은 당시 묘산국민학교 교사였다. 정 선생은 하동 사람으로 사범학교 졸업 후, 묘산국민학교에 첫 발령이 나서 와 있었다.

기도회를 마치자 인민군이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 선생은 배추달 집사와 함께 뒷산으로 도망갔다. 배 추달은 24살이었는데, 다섯 살은 아래로 볼 정도로 몸이 가늘고 뼈대가 가늘었다.

얼굴이 검고, 죽은 깨가 조금 깔아져 있었다. 그는 관기교회 청년 집사였다.

정 선생과 배추달 집사는 뒷산 깊숙이 들어갔다. 계곡에 숯을 굽던 굴이 있었다. 숯굴에 자리를 정했다.

다음 날, 종일을 숯 굴에 있다가 밤이 되어 내려와 먹을 것을 얻어서 올라갔다.

며칠을 지내니 배 집사 어머니가 걱정을 하여 아들을 타일렀다.

?내려와서 집에 있거라. 뒤는 어찌되든 그냥 지내보는 거지.?

?안되요. 정 선생이 그러는데 잡히면 큰일난데요. 괴뢰군은 지독하답니더.?

줄곧 배 집사는 정 선생과 함께 숯 굴에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주일의 일이었다. 정 선생과 배 집사는 마을로 내려와서 정 선생 사촌 누나집에 들렸다. 이 곳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정 선생이 예배를 인도하였다. 부인들이 몇이 참석하였다.

예배가 끝나고 나자 인민군을 앞세우고 지방 치안대원들이 들이 닥쳤다. 그들은 인부동원을 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예배를 끝낸 이 집 마루에는 청년이라곤 두 사람뿐이었다. 정 선생과 배추달 집사였다. 치안대원 중에 정 선생을 잘 아는 분이 있었다. 해서 정 선생은 차마 가자하지 못하고 배추달 집사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따라갑시다. 일을 해야 하겠는데???????

?안됩니다.?

?안되다니???오늘은 주일이빈다. 주일은 일을 못합니다.?

?예배는 끝났지만, 주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주일이 다 뭐냐? 지금은 전시야! 나라를 구해야지!?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음은 죄가 만항서 그렇습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들여야 합니다.?

?이 새끼 아주 악질이구나!?

그들에게 명령 불복종은 곧 죽음의 길이다.

?가자!?

배 추달 집사는 그들에게 끌려 내무서까지 갔다.

?저 벼 한 가마를 방앗간까지 져다 주고 가!?

?못합니다.?

?그렇게 해! 그러면 내일 부역을 면해 준다.?

부역이란 탄약을 지고 영산까지 가는 일이였다. 화양에서 영산까지는 백리길이었다. 백리 길을 탄약을 지고 가는 일이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일 부역을 하겠습니다.?

배추달 집사는 주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 탄약을 지고 전쟁터를 나갈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인민군은,

?그럼 벼 지고 가는 일은 그만 두고, 저 돼지를 몰고 따라가자.?

내무서 앞 미루나무에 매어 둔 돼지를 가리켰다.

?그럴 바엔 벼를 지고 가지요. 돼지를 몰고 가자 함은 나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그러자 다시 인민군은 비를 가지고 왔다.

비를 추다 집사에게 주면서

?, 그럼 이 마당이나 좀 쓸고 가라!?

?안됩니다. 주일에 마당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쓸라고 명령하심은 나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좋아! 그럼 이 비를 받아 들기만 해! 그럼 용서한다.?

?그것도 못합니다. 내가 비를 받으면 마당을 쓸라 할 것이고, 마당을 쓸면 돼지를 몰라 할 것이고, 돼지를 몰면 벼 지고 가자 할 것이고, 그러면 잡일을 다하게 될 것이니 나는 주일을 범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비를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이 간나새끼!?

인민군의 부릅뜬 눈알이 금시 뚝 삐져 나올 것만 같다.

인민군은 추달 집사를 내무서 안으로 끌고 가 유치했다.

다음 날, 인민군은 추달 집사를 묘산국민학교 뒷산으로 끌고 가서 총을 쏘았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스물 네 살의 젊은 청년 집사 배추달은 순교를 당한 것이었다.

관기교회 이대형 집사가 배추달 집사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시체는 두개골과 가슴에 총을 맞은 흔적이 있었다. 두개골에 총을 맞았지만 그의 시체는 험하지 않았다.

타박상의 상처처럼 보였고 얼굴은 평화롭게 미소가 어려 있었다.

마치 찬란한 무엇을 바라보듯 황홀경에 빠진 듯,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이대영 집사는 교회에 알리고 배 집사 어머니에게 통지하여 배 집사 시체를 그곳에 가매장 하였다.

새 옷을 갈아 입히고 창호지로 곱게 덮어 관도 없이 가마니에 싸서 묻어두었다. 인민군들의 눈이 두려워 정식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가매장을 해 둔 것이었다. 그 날, 배추달 집사가 끌려가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정 선생은 치안대원들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윤용환이란 사람의 헛간에 숨어 십오일을 지냈다. 그러나 치안대원들에게 발견되어 끌려가는 몸이 되었다.

저녁 무렵, 허술한 틈을 타서 담을 뛰어 넘었다. 뒷산을 향하여 뛰었다. 무사히 숲 속에 숨을 수 있었다. 그 날부터 나무 뿌리를 파먹고, 송피를 벗겨 먹으면서 야생동물 같은 생활을 계속했다.

20일이 지났다. 얼굴을 숲 밖으로 내밀고 마을 쪽을 살피니 인민군들의 행렬이 삼거리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후퇴하는 듯 보였다.

일직이 해가 저물 무렵, 고령 쪽에서 유엔군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살았구나!?

정운택 선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정 선생은 수복 후 고향인 하동으로 돌아가 금융조합 서기 일을 봤다.

그 해 12월 중순. 남영환 전도사는 관기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그 주간에 순교자 배추달 집사의 이야기가 나와 장례를 하도록 주선을 하였다.

관을 준비하여 묘산국민학교 뒷산으로 올라갔다. 무덤을 팠다. 교인들이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가마니가 그대로 나왔다. 가마니에 응겨붙은 흙을 털고 가마니를 풀었다. 시체가 창호지에 싸인 채 나왔다.

수분이 빠지고 곱게 말라 있었다. 창호지도 그대로 있었다. 창호지를 풀었다. 시체가 하나도 부패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창호지에 총 맞은 가슴과 등 쪽에 노란물이 번져있을 뿐 시체는 깨끗했다. 관에다 그대로 넣었다. 흰 꽃상여에 관을 실어 청년들이 메었다.

순교자 배추달 집사의 장례는 시골에서 보기 드물게 성대히 진행되었다. 남영환 전도사가 모든 장례를 집례하였다. 배추달 집사의 관은 그의 집이 있는 화양리 뒷산에 고이 안장되었다.

배추달 집사는 전일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간절한 소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소원은 황양에 교회당을 세우는 일이었다.

배추달 집사는 머슴사경 받은 것 가운데서 푼푼이 떼어 주인집에 맡겨 둔 것이 있었다. 순교 후 주인집에서 내어놓은 것이 벼 한 섬 반과 돈 15만환이었다. 주인은 배추달 집사 모친에게,

?이것은 추달이 머슴사경 중에 화양에 교회 짓는다고 별도로 맡겨 둔 것입니다.?

벼와 돈을 내밀었다.

이 사실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부산 남교회 한명동 목사는 이 소식을 듣고 화양에 교회를 세우기 위한 위원회를 조직하여 교회당 건축을 서둘렀다.

다음 해, 화양에는 교회당이 서게 되었다. 아담한 교회당이 화양리 마을 중아에 찬란한 십자가 종각을 우뚝 내밀고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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