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4 02:24
■ 위대한 순교자 이기선 목사
이기선 목사는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순교자였다. 1937년 일본 총독부가 한국교회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할 무렵 그는 평북 의주군 북하동교회에서 목회할 때였다. 의주경찰서의 일본인 서장의 외아들이 병들어 죽어가자, 의주 서장은 이기선 목사를 초청하여 안수기도를 받게 하여 하나님의 크신 역사로 경찰서장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된 데서 살아나게 되었다.
일본인 서장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그는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 마치 그 무렵 이기선 목사는 평북 지방교회를 순회하면서 부흥회를 인도하였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일본 총독부가 강요하는 신사에게 참배하여 우상숭배의 범죄를 자행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외쳤던 것이다.
일본당국이 교회를 무섭게 감시하고 일을 때였는데도 이기선 목사는 부흥회 설교에서 신사참배를 하면 멸망한다고 설교하여 결국 그는 경찰에게 연행되고 구속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의주 경찰서 서장은 자기 친구 경찰서장에게 간청하기를 이기선 목사는 내 은인이니 석방시켜 달라고 간청하여 예기치 않게 석방되곤 하였다. 의주 서장은 이기선 목사에게 당부하기를 이 비상시국 하에 부흥회를 다니다가 체포되지 말고 우리 경찰서 관내에서만 목회와 부흥회를 한다면 이기선 목사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기선 목사는 경찰서장의 요청을 완강하게 거절하면서여보시오 경찰서장, 내가 예수의 이름과 천당지옥을 팔아서 밥벌이하는 직업종교인인 줄 아십니까?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구속을 전파하는 목사로서 한국교회 교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다가 지옥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침묵을 지킨단 말이요!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외치지 않을 수가 없소하며 부흥회를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평안남도 모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평양경찰서에 체포되어 많은 고문을 받고 7년간의 오랜 감옥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젊은 목사 한상동 목사(고신측 창시자)를 지도한 바 있었고 해방 후 교회재건문제에 같은 노선을 걸었다.
이기선 목사는 해방 후 공산당이 요구하는 주일(1946. 11.3)에 인민 총선거를 하는 것과 기독교도 연맹 가입과 교회 마당에 인민공화국기 계양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항거하였다. 그는 신의주 제6교회에서 수년 동안 계속 부흥회를 인도하였는데 북한 각 지방에서 1,000명 가까운 신도들이 모여서 165일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의산노회(신의주시 의주군 노회)에서 그를 강당에 세우지 말고 설교를 시키지 말라는 금단령이 노회에서 가결되었다. 신사참배하여 우상숭배를 한 자들은 목회를 하고 부흥회를 하는데, 오히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7년간 옥고를 겪은 이기선 목사는 강단에 세우지 못하게 결의했던 것이다.
그는 또 여러 목사에게 월남하지 말고 북한교회를 사수하고 양떼를 지키자고 호소했던 것이다. 이기선 목사의 생활은 사도 바울처럼 산 순교자의 생활이였고 그는 6․25때 체포당하여 공산당에 의하여 순교자가 되어서 하늘나라로 가시었다. 그는 순교를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이한 분이었다.
○
이기선 목사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고생했다. 한번은 경찰국장이 자기 방으로 불렀다. 경찰국장이 일어나서 이 목사를 맞았다. 이 목사님, 연세도 많으신 분을 이렇게 고생을 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좋은 의자에 앉혀드리고 차도 한 잔 대접했다. 그리고 경찰국장이 편지하나를 내 놓았다.
그 편지는 미국서 공부하여 공학박사가 된 큰 아들 정근이 보낸 편지였다. 이 목사는 편지를 뜯어보고 아무 표정도 없이 다시 책상 위에 척 놓았다. 내용은 다른 목사들은 다 신사참배를 하고 편안히 사는데 아버님만은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고생하실 것이 무엇이냐면서 겉으로는 신사참배를 하고 속마음으로만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드님 편지를 받으니 생각이 어떠하십니까? 경찰국장이 물었다. 이 목사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 지식으로 말하면 나는 지식이 많지 않지만 아들은 세계가 알아주는 공학박사이니 지식적으로 보면 내 선생격 입니다. 그러므로 사제의 관계로만 본다면 그 청을 들어주는 것이 옳을 것이고, 또 혈육의 관계인 부자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대도 그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 말하면 이 사람은 평신도이고 나는 이 사람을 지도하는 목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사참배 문제는 신앙에 관한 문제이므로 평교인인 아들이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이 하도 딱해 보여서 철없이 한 말이니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경찰국장은 이 목사님은 과연 위대한 분입니다. 목사가 되려면 저런 목사가 되어야 해! 하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일본 경찰국장은 그 분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비록 믿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아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일신의 평안을 위하여 타협하지 않을 때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신자들은 속사람을 아름답게 단장하여 불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165 |
최상림 목사 순교비
| 선지자 | 2016.01.07 |
| 164 |
순교자 최상림 목사님
[2] | 선지자 | 2016.01.07 |
| 163 |
옥중성도 환영회(1945년) 남산 신궁 터
| 김반석 | 2016.01.04 |
| 162 | 한상동 목사와 고려신학교 | 김반석 | 2016.01.04 |
| 161 | 60년 전에 쓴 한상동 목사 편지 공개 | 김반석 | 2016.01.04 |
| 160 | 교회쇄신 운동가 한상동목사 | 김반석 | 2016.01.04 |
| 159 | 한상동 일제에 항거하며 고려신학교를 세웠다 | 김반석 | 2016.01.04 |
| 158 |
한상동 목사님 생애 요약
| 김반석 | 2016.01.04 |
| 157 | 한상동 목사님 獄中記 | 김반석 | 2016.01.04 |
| 156 | 한국의 진리 수호청교도 목사 이기선 목사님 | 김반석 | 2016.01.04 |
| » |
위대한 순교자 이기선 목사님
| 김반석 | 2016.01.04 |
| 154 |
순교자 변판원 선생님 묘지
| 김반석 | 2016.01.04 |
| 153 | 순교자 변판원 선생님 | 김반석 | 2016.01.04 |
| 152 |
순교자 배추달 선생님-백영희목사님 설교에서
| 김반석 | 2016.01.04 |
| 151 |
순교자 배추달 선생님
| 김반석 | 2016.01.04 |
| 150 |
주남선 목사님의 성경책
| 김반석 | 2016.01.03 |
| 149 |
신학교 졸업 사진
| 김반석 | 2016.01.03 |
| 148 | 18. 그의 인격과 생활 | 김반석 | 2016.01.03 |
| 147 | 17. 참된 애국심 | 김반석 | 2016.01.03 |
| 146 | 16. 우상 타파 사상 | 김반석 | 2016.01.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