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8 00:33
■ 손명복조사님 옥중체험기
...입술에 난 종기가 낫고 나서야 입맛이 돌아왔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었다. 배는 고파 견딜 수 없는데 감옥의 식사는 너무 형편이 없었다.
평양형무소에는 1등에서부터 8등까지 등급이 매겨진 밥이 배식되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성도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가장 못한 8등 밥으로 양이 적어서 먹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식사문제로 당하는 고통이 가장 컸다. 빈대와 이가 득실거려 괴로웠지만 배고픈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1944년에 들어서면서 콩깻묵 밥에다 참깨나무 혹은 들깨나무를 통째로 끓여 만든 국이 나왔지만 그것마저 양이 적어 사람이 먹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어떤 때는 손가락만한 벌레가 들어있기도 했다. 그런 걸 먹고 나서 피똥을 싸기도 하고 설사 때문에 모진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영양실조와 이질로 감옥 안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몸은 극도로 쇠약해 있었다. 몸의 살점은 다 빠져나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감옥안의 성도들 모두가 그러하였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실정이었다.
출처: 고신역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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