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9 01:54
13. 평양 경찰서 유치장
나는 용기를 내서 여기 들어왔다는 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큰 소리로 간수에게
“나는 안이숙입니다. 순천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묻지도 않는 것을 당치도 않게 똑똑하고 크게 말했다. 유치장이 울리도록 말한 보람이 있어 여러 감방에서 뭐라고들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수는 조용한 감방을 소동시켜 놓은 내게 고함을 지르려고 하다가 나를 데리고 온 고등계 차석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는 내게 고함 지르려던 것을 죄수들을 향해서
“조용히 햇!”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잠잠해지는 것 같더니 또다시 수군거리고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만했으면 나의 동지들인 성도들이 내가 왔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생각하고 내 소지품을 간수에게 준 후 간수가 일러주는 중앙쯤 있는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감방 쇠를 잠그고 간수는 내게
“조용히 해요.”
감방 전면에 가로막힌 굵고 큰 나무로 인해서 건넛방을 쳐다보기는 힘들었지만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니 건넛방에서도 다시 주 목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고 또 절을 했다. 우리는 한참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자기 오른손을 번쩍 들어 손가락으로 글을 크게 쓰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유심히 정신을 가다듬어 글쓰는 것을 쳐다보았다.
“나는 주기철 목사요.”
라고 먼저 썼다. 나는 감격이 되어서 엉! 하고 울 뻔했다. 이 큰 성자를 내가 이곳으로 들어오자마자 만날 수 있도록 나를 그의 건넛방으로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다시 나는 엎드려 절을 했다. 그는 다시 손을 들어서
“안이숙 선생에게 주님의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라고 손으로 글을 썼다. 나도 공중에 내 손을 높이 들고 크게 천천히 그림을 그리듯이 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답하기를
“주 목사님 참 반갑습니다. 주님이 목사님을 도우라고 저를 여기 보내신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무엇이나 말씀해 주세요. 제 힘 닿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라고 손신호를 보냈다. 주 목사의 길어진 수염과 머리털 사이에 희고 부드럽게 보이는 얼굴은 바로 성자상과 같았다. 경찰의 그 악착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시달린 그의 형상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얼굴을 상상케 하였다.
‘현대의 다니엘! 오 믿음의 용사요, 20세기 현대의 살아 있는 주의 증인 주기철 목사!’
나는 이런 말을 속으로 부르짖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른 감방에서도 일어나 앉는 기척이 들려왔다. 주 목사는 누가 몇 호에 있는가를 모두 손신호로 알려 주었다. 간수 발소리가 나면 우리는 눕는 척했다가 지나가면 다시 일어나 앉아 손가락 신호로 여러가지 소식을 주고받았다. 1호에는 이광록 집사가 있었고, 2호에는 최권능(최봉석) 목사가 계시고, 3호에는 이인재 씨가 있고, 4호는 자기 방이고, 5호에는 방계성 장로가, 6호에는 채정민 목사가, 7호에는 오윤선 장로가 있다는 것이었다. 방은 양쪽이 모두 12개씩 있었는데 방마다 성도들이 한두 사람씩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들어 있는 방도 맞은편 4호였다.
나는 이제야 올 데로 바로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비록 이 유치장은 35년이나 된 유치장이라서 더럽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사람은 많아 밤에는 누워 잘 자리도 없고 또 전과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이곳으로 온 것을 크게 성공한 일로 알고 기뻐하였다. 주 목사가 자리에 다시 눕는 것을 보고 나도 누웠다.
그 후 차석은 내게 용지와 연필을 내주면서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나는 참 좋은 기회가 온 것을 기뻐하고 내 소감을 썼다. 나는 유치장의 그 비위생적인 면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사람을 가둬 두는 유치장이 아니고 소나 돼지를 가둬 두는 우리라고 하고 일본의 다른 자랑할 만한 것 대신에 이 비위생적인 유치장을 세계에 공개하면 세계 인류들이 일본인을 근본적으로 의심할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형사와 간수와 경관들의 그 부도덕하고 천하고 음탕스러운 말버릇과 태도는 너무도 야비하고 더러워서 과연 이것이 세계에 자랑하는 일본 제국의 경찰관일까 하고 환멸을 느끼며, 소위 경찰관은 민중의 인도자요 보호자인데 실제로 그네들의 언행을 보면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경관일까 의심스럽고 한심스러우며, 일본 제국의 경찰관으로서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 이들의 현재와 같은 무지몽매하고 잔인 포악하고 음탕 야비한 언동이 시정되어야 할 것이고 또 유치장은 짐승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가둬 놓는 유치장임을 재인식해야 한다고 썼다.
또한 위생 시설 여하에 따라서 문명 여하를 판단하는 20세기의 일본인의 시설인 유치장을 볼 때 그 정신, 주의 여하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식사와 배설을 한자리에서 그것도 수십 명이 집단으로 하고 인간으로 기동한다는 일은 너무도 언어 도단이라는 내용의 뜻을 약 20장에다 역시 논문체로 된 작문을 써서 주임에게 주었다.
내가 쓴 글을 내 자신이 읽어도 명문인 것을 알 수 있어, 나는 이 감상문을 쓰는 데도 주님이 같이하신 것을 알고 만족히 생각했다. 감상문은 순사를 시켜 도청으로 보내졌다.
“나는 중대한 죄수인데 나를 놓쳐 버리면 당신은 사형수가 된다는 것을 모르나요?”
“당신이 도망을 치면 나는 훈장을 받을지도 알 수 없지요. 히비끼 중장으로부터 말입니다.”
하기에 나는 깜짝 놀라서
“히비끼 중장이오? 당신 어떻게 해서 히비끼 중장을 알고 있지요?”
그는 무슨 장한 것이라도 아는 것같이
“히비끼 중장과 마쯔야마 대의사가 이곳에 오셨던걸요 전번에는 경찰서가 발끈 뒤집혀 버렸어요. 대단했지요. 서장을 비롯해서 평소에 그렇게도 건방지게 위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모두 쩔쩔매고 혼들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으니까요 도청 경무과에서도 전부 출동을 해서 오고, 참 그거야말로 대단했던걸요.”
하는 말에 나는 더 크게 놀라서
“어떻게 해서 히비끼 중장과 마쯔야마 대의사가 이곳에 오게 되었나요?”
“당신을 만나러 오신 것 아닙니까?”
“나를 만나러요?”
“그럼요. 당신을 찾아서 오신 줄로 아는데요. 중장과 대의사는 남경에서 열리는 일화협회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도중에서 갑자기 들렀기 때문에 모두 놀라고 정신들을 못 차리더군요. 그런데 당신이 순천 경찰서에 특별히 보호되고 있다고 하니 당신을 데려올 시간도 없고 그들이 순천까지 갈 수도 없어 여하튼 당신에 대한 일을 말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 놀라기만 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열렸다.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주님께서 이렇게 너그럽게 나를 위해 역사해 주심에 나는 내 마음속에 가득 찬 감사를 어떻게 표해야 될지를 몰랐다.
‘순종,’ 그래 ‘순종’ 뿐이다. 일본으로 가서 경고를 한 것도 순전히 순종이었다.
지난 9월 4일, 모든 기독교인들을 일제히 연행하여 각 경찰서에 배치해 구속한 후 무조건 두들겨 팼다고 한다. 장작개비를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수십 명의 형사들이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을 때리기를 마치 장작을 패듯이 때렸는데 그 산더미같이 쌓아 놓은 장작개비가 다 부러져 나가니 다음에는 코에다 고춧가루 탄 뜨거운 물을 거꾸로 매달고 코에 부어서 배가 불러 터질 지경이면 시멘트 바닥에 내려놓고 몇 명의 형사가 배 위에 올라가서 구듯발로 배를 밟아 물이 두 눈과 코와 입과 아래로 나오면 또 달아매고 고춧가루 물을 코로 붓고 또 밟고 하기를 밤이나 낮이나 했다고 한다. 그리고 팔을 비틀어 꺾고 다리를 꺾고 갖은 고문과 야만적인 폭행을 다해서 기절하는 기독교인이 대부분이었으며 어떤 이는 거의 다 죽게 되어서 가족을 불러 내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참으로 뜻밖의 사태가 돌발했다. 그것은 만주 독감이라는 아주 악성 유행 감기가 삽시간에 퍼져 고등계 주임을 비롯해서 모든 경관과 형사들이 이 감기에 걸려 모두 집에서 누워 앓기 때문에 얼마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도 선교리 경찰서에 구속되어 있을 때 얼마 동안 주임과 형사들이 유치장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했다. 그래서 경찰서 안은 마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장마당 모양 쓸쓸하고 이상했다고 한다.
이 독감에 걸린 서원 중에서도 몇 명의 형사가 죽었는데 죽은 형사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포학하고 잔인하게 고문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장 악하게 우리 기독교인들을 학대하던 형사들이 하나씩 죽어 가는 것을 본 온 경찰서원은 치를 떨며 이번에는 누가 죽을 차례가 될 것인가 하고, 기독교인을 포학하게 때린 형사나 경관들은 사상이 되어 전전긍긍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누구나 기독교인들을 고문하는 것을 겁을 내고 어느 누구도 고문을 하려고 하지 않더라고 했다. 다까끼 순사는 단지 지나간 일을 내게 알려 주는 말이었지만 나는 이 사실을 들을 때 얼마나 놀라운 이적과 기사였는가 했다. 주님이 살아 계셔서 자기를 좇는 자들을 어떻게 보호했는가를 알게 하는 것으로 깨닫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기독교인을 고문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들은 말도 서슴지 않고 했는데 그는 나에 대한 말을 여러 번 들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나를 취조할 경관은 고등교육을 받은 말투도 고상하고 태도도 신사적인 경관이 아니면 내가 절대로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는고로 아무나 취조할 수가 없다고 한다고들 했다. 내가 큰 힘을 가진 배경이 있어서 함부로 못 하고 또 내가 만성 폐결핵 환자여서 무지하게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떤 여자인가 보기를 원했어요.”
“그럼 막상 장본인인 나를 보고 실망했겠군요?”
“무슨 굉장한 억센 정치가형의 여걸을 상상했었는데 무언지 따뜻한 감을 주는 아가씨인걸요. 그러나 훅 불면 날아가게 약해 보이시네요.”
다음날도 나는 일찍이 고등계로 불려 나갔다. 매일같이 고등계는 분주했고 나를 차석실로 데려다 두고는 형사와 직원들은 모두 자기들 직무만 바삐 보고 있었다. 고등계에는 새로 잡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의 독립 운동을 하는 것을 극히 금지하고 있는 일본 경찰은 조금만 행동이 수상해도 잡아오고, 말 한마디 잘못해도 잡아오고 또는 허가 없이 만주나 중국에 오고가는 사람들도 많이 잡아다가두고 조사했다.
간첩 혐의로 잡아오고, 치안유지법 위반이라고 잡아오고, 불온사상을 가진 자라고 잡아오고, 헌법 위반이라고 잡아오고, 공산주의사상을 가진 자라고 잡아오고, 무정부주의 사상을 가진 위험 분자라 잡아오고, 일본인식으로 창씨 개명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잡아오고, 대동아 전쟁에 불평한다고 잡아오고, 무엇이다 무슨 위반이다 무슨 죄다 무슨 혐의가 있다 해서 잡아다가 족치고 고문을 해서는 재판소로 넘기고 형무소로 보내고 하려니 자연히 경찰의 일이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기에 모두 망할 징조뿐이다.
그날 불려 나간 나는 차석실에서 다까끼 순사의 감시를 받으면서 한국말로 출판된 《농촌운동》이라는 책자를 일본말로 번역하라고 해서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손에 일감이 생긴 것을 다행으로 알면서 일을 시작했다.
차석도 바쁘게 자기 일을 했고 다까끼 순사도 바쁘고, 나는 나대로 일을 하고 있으니 마치 나도 이곳 고등계 직원이나 된 것 같기도 했다. 때때로 차석은 다까끼 순사에게 농담을 했다.
저녁에 감방으로 돌아갈 때는 그날의 소식을 전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주 목사와 모든 성도들 때문에 내게는 기쁨이 되고 내 생활의 가치를 느꼈다. 감방으로 돌아오기가 바쁘게 나는 주 목사에게 손가락 글씨로 소식을 보냈다. 나는 오늘 고등계에서 차석에게 부탁한 내용과 다까끼의 의견이 그럴 듯해서 그 의견대로 다음 기회에 도청 경무과 사람이 올 때 사식 문제를 청원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유치장의 성도들 모두가 이 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도록 전하기로 했다. 어느 날 아침, 밥을 먹기가 바쁘게 일찍 나를 불러내었다. 고등계사무실에 올라가 보니 그날은 평상시와 달리 깨끗이 청소를 하고 모든 서원들도 단정하게 차리고 있었다. 차석 방으로 들어간 나는 거기에 구가 경시가 벌써 와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어떻소? 안양!”
하는 그의 말소리도 학교 교장과 같은 태도와 인상을 주었다. 구가 경시가 언제나 데리고 다니는 도청 경무과 부장은 언제나 구가를 보좌하여 동행했었다. 구가는 농담 같은 말을 내게 했다.
“안양을 구속은 했지만 참으로 큰일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아무나 취조할 수 없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격자라야만 한다니 늙은 경관 가운데는 별로 없고 젊은 경관 중에는 더러 있지만 젊은 경관은 당신을 취조하다가 당신에게 반해 버리면 큰일이 날 것이 아니오? 젊은 사람은 안 되고 그렇다고 학대도 할 수 없고 잡아다 두기는 했으나 큰 두통거리란 말이야. 젊은 경관 중에는 자기가 취조를 담당해 보겠다고 자원하는 자도 있으나 결국은 내가 늙은 탓으로 취조하도록 됐으니 덕을 보는지 해를 보는지 여하간 나도 쩔쩔매는 판이오.”
나는 그에게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 면회를 허가해 주고 사식을 먹게 해주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다시 나에게 오늘 청원한 문제에 대한 가부간의 결과를 3일 안으로 알려 주겠다고 확약한 후 떠나 버렸다.
나는 고등계 사무실에 남게 되었는데 다까끼 순사가 나를 감시하면서 또 내게 새로운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구가 경시는 아내와 지극히 사랑하는 외딸과 단 세 식구가 살았는데 구가 경시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명령을 받고 총지휘자가 되어 이곳의 모든 기독교인을 잡아 가두고 고문을 하고 포학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외딸이 만주독감에 걸려서 몇 주일을 신열로 전신에 불이 붙는 것같이 앓다가 전신의 모든 뼈가 마치 살같이 연해져서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전신에 회땜을 해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누워있고, 그의 사위는 자기 딸과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서 소집장이 나와 중국 전쟁터로 나갔는데 그는 머리에 총알을 맞아 뇌수술을 할 수도 없고 꺼낼 수도 없어 어찌나 머리가 아픈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밤이나 낮이나 미칠 듯이 껑충껑충 뛰며 ‘아이구’ 소리를 지르는 참으로 볼 수 없는 참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구가 경시는 풀이 죽어 기독교인을 무서워하고 태도가 단번에 달라져서 딴 사람같이 되어 버렸다고 하면서 오늘 청원하는 것도 꼭 들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받은 그 무서운 고문들, 더욱이 연로한 목사들이 그 무시무시한 고문에 시달려 기절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을 주님은 아셨다.
나는 비로소 구가 경시의 태도나 언사 등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가 경시가 간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아침 3,4명의 고등계 형사가 유치장으로 내려와서 주기철 목사와 방 장로와 이인재 씨 세 사람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또 나도 불려나갔다. 고등계 차석실에 들어서니 굉장히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안에는 세 성도와 그의 가족들이 있었는데 주 목사와 방 장로와 이인재 씨는 유치장에서 더러워졌던 옷들을 전부 흰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족들이 가지고 온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알고보니 경찰서에서 가족들에게 통지해서 옷과 음식을 가지고 면회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성도들과 가족들의 기쁨은 말할 수도 없었다. 너무도 좋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가족들의 모습과 흰 새 옷을 갈아입고 오래간만에 맛있는 음식을 정신 없이 먹고 있는 양과 같은 세 성도들의 거룩한 모습이, 일체 말을 서로 못 하게 해서 벙어리가 되어 조심스럽게 음식만 먹고 있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또 그들이 많이 가져온 음식을 얻어먹으면서 나 역시 경관들의 신경을 자극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용히 앉아서 음식만 먹고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이곳 본서 유치장으로 옮겨 온 보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면회가 허가되고 나서부터는 중병에 걸린 노인 채정민 목사와 김 장로는 집으로 돌려보내서 병 치료를 받게 해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가족들이 옷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면회를 해주기로 되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 생겼어요? 왜 그렇게 오늘은 무척 상심해 보이지요?”
“모든 경관들이, 특히 벼슬이 높은 사람들이 너를 연애해서 네게 자유를 주고 너를 위하고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성도들 가족 중에서 수군거리니 조심하지 않으면 주님의 이름을 더럽힌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울분도 나고 또 웃음이 터져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아브라함이 사라를 데리고 흉년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애굽 왕 바로가 사라에게 반한 것이 사라에게 잘못이 있어 그랬으며 또 이삭이 게랄에 흉년으로 내려갔을 때 게랄 왕 아비멜렉이 리브가에게 반한 것은 리브가의 허물이었던가요? 여기 있는 경관들이 모두 내게 반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러 대신과 장군들까지도 다 내게 반하면 어때요? 그 모든 권력자들이 모두 내게 반해서 내 말을 듣고 회개하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나는 좋겠어요. 또 그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고 진정으로 그들이 모두 나한테 반해서 내 마음대로 증거하게 되고 온 천하가 나한테 반하기를 원하는데요”
어머니는 나의 말을 거북하게 생각하고
“얘, 그런 말을 왜 하니? 거룩한 사람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야!”
어느 날 저녁 늦게 고등계 형사가 유치장으로 오더니 나를 불러나갔다. 나는 지금까지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쉬는 것이 예사였는데 무슨 일인가 하면서 형사를 따라 고등계 사무실로 올라갔다. 주임실에 구가 경시가 그의 부하인 부장을 데리고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가 경시는 자기가 앉은 큰 책상 건너 의자에 나를 정면으로 앉혔다. 앞의 큰 책상에는 조서를 꾸미려고 용지와 잉크와 펜이 있었고 또 무슨 서류 뭉치들도 놓여 있었다. 구가 경시는 서류 뭉치를 뒤적거리면서
“이 분주한 촌 순사 늙은이를 기어코 불러내도록 하니 참으로 큰일이지!”
결국 이 말은 내가 무식한 경관이나 포악한 경관에게는 절대로 대답도 안 하고 또 나를 취조하더라도 결국 거짓 조서가 될 것이라고 쓴 나의 감상문으로 인해서 도청에서 자기에게 나의 취조를 담당시켰다는 뜻이었다.
심문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구가 경시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지하 교회 회원들의 이름, 집회 시간, 집회 목적, 교환한 대화 내용, 그리고 또 무엇을 하였는가를 날카롭게 질문했다.
나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회원들의 이름, 집회 시간, 목적, 대화 내용과 예배를 본 일을 기억나는 대로 답변했다. 이만치 심문하고 답변하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하는데 굉장한 시간이 걸렸다. 부장이 숨도 못 쉴 정도로 바삐 기록했다. 그는 또 지하 교회 회원들에 대해 한 사람씩 설명하라고 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솔직히 모두 말했다. 밤이 너무 깊어 가니 이 늙은 경시는 피곤해져서 다음날 다시 계속한다고 말하고 부장을 데리고 돌아가면서 손수 나를 유치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는 이 유치장을 참으로 오랜간만에 들어와 본다고 했다.
사흘째 되는 날 밤부터 취조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구가 경시는 나를 주시하면서
“당신은 이 모든 노인 목사들과 직업 없는 청년 크리스천들을 다 모아 정신적으로 훈련시켜 가지고 결국은 이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제국에 반항하게 하고 적대 의식을 가지게 하고, 그렇게 해서 어떤 조직체를 만들어 한국의 독립 운동을 계획하는 데 인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구가 경시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경시께서도 무지한 형사들의 질문 같은 것을 하시는데 도대체 독립이니 반역이니 지도자 운운이 제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저는 복음에 잡힌 사람이고 복음을 위해서 살고 복음 때문에 죽으려고 길을 나선 사람입니다. 복음은 독립이니 반역이니 지도자니 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만일에 그런 것이 내게 조금이라도 있다고 하면 그것은 내가 믿은 것이 헛믿음이 되는 것이고 죽더라도 내게 있어서는 개죽음이 될 것입니다. 나는 복음에만 충실해야 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되니까요. 복음은 죄와 구원을 가르치는 것이요, 지옥과 천국을 알게 하는 일인데 거기 무슨 민족이니 국가니 지도자니 하는 것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그는 다시
“그런 말을 해서 저런 목사들과 청년들을 모아 가지고 결국은 한국인을 위해서 일어서 보자고 지도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오?”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어서 그것을 고집하신다면 내가 아무리 내 진실한 것을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경시께서 믿고 싶은 대로 그렇게 믿으세요. 나는 그렇지 않은 것을 증명할 방도를 모르니까요 경시께서는 당신의 비위와 취미에 맞도록 조서를 꾸미시죠.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거짓이고 거짓 조서인 것이 언젠가는 증명이 될 테니까요.”
지하 기도회 집회에 대해서 조서를 꾸밀 때는 우리를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려고 캐묻는 그의 눈이 얼마나 날카롭고 내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다그쳐 질문을 하여 나도 여러 번 분통이 터지기도 했으나 나는 그가 취조의 초점을 어디다 두고 취조하는 지를 알았기 때문에 공손히 정직하게 기억나는 대로 인내해 가면서 대답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직업 의식이 기어이 나를 사상가로 몰아서 책잡아 보려고 하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취조하여 된 조서 작성이 일단 끝나자 그는 나에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당신에게 오고가고 한 많은 사람들만 없었더라면 벌써부터 이 유치장에 있을 필요가 없었을 터인데 그 목사들과 장로들 전도사들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는 복잡하고 시일은 한정 없이 길어지는 거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들이 얼마나 나를 믿음으로 힘을 돋우어 주었고 믿음의 표본이 되어 주었는지 몰라요. 나는 그들이 가는 곳에 언제나 앞에 서야 하고 그들과 같이 순교를 해야만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성결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고, 신앙으로만 익어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학대를 받고 고문을 당하고 이제 앞으로 죽임을 당할 터인데 자기가 믿는 주님에게 배역 안 하고 순종하는 것을 볼 때 어찌나 더 존경이 되고 사랑하게 되는지 몰라요. 그 노인들은 일생을 주님 앞에 충성했을 뿐인데 왜 그들을 사상가로 몰려고 당신은 그렇게도 요술을 피웁니까?”
“뭐, 요술?”
그는 나를 주시했다. 나는 다부지게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럼 요술이 아니고 뭐예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만들고 있는 것은 없는 것같이 하는 게 요술이지 뭡니까? 제가 보기에는 경관들은 모두 서툰 요술쟁이같이 보이는데요. 서툰 요술쟁이는 결국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겠어요? 여기 잡혀 온 기독교인들은 이 땅의 진주들입니다. 이들이 모두 충성하고 기도하며 살아 있으니까 이 땅에 복이 되었지, 이 진주들을 다 거두어 없애고 요사스러운 거짓 목사와 직업 기독교인들만 당신네가 좋아해서 길러 놓아 보세요. 이 땅엔 저주와 혼란과 질병과 기근과 온갖 흉악한 일만이 가득해질 테니까요.”
구가 경시는 기록할 생각도 잊어버린 채 내 말을 듣고만 있던 부장에게 기록하라고 했다.
“주영하올시다.”
“안양! 이자는 공산당 두목이오. 그러니 이를테면 안양은 뜨거운 적도이고 이 사람은 찬 북극인 셈이지요.”
고등계 주임의 말에 나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데 놀랐다. 나는 내 일생에 공산주의자를 내 눈앞에 이렇게 정면으로 대해 보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춤주춤하면서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는 나의 눈길을 그도 느꼈는지 그도 나를 유심히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거기 주임이 없었다면 나를 쳐다보는 남자죄수, 게다가 공산주의자라는 젊은이를 대담하게 살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본 동경 유치장에서 나의 건넛방에 갇혀 있던 젊은 외국어 대학출신의 일본인 공산주의자와 멀리서 보면서 손가락으로 대화를 해본 일이 있고 또 대학 시절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몇 밤씩 남몰래 읽어 본 경험은 있었지만 이렇게 공산주의자의 두목이라는 자를 내 눈앞에서 똑똑히 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공산주의자가 하나님을 미워하고 기독교인을 멸시하고 성경을 모독하며 나쁜 사상을 가진 자라는 것은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겠다고 하는 결심을 보였다. 그의 읽는 동기가 어디 있든지 간에 그가 성경을 읽는다는 그 사실에 나는 희망을 가졌다. 나는 점심을 주문할 때 주의 것도 주문해 달라고 주임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주임은 한참 망설이더니
“좋아, 먹여 주지!”
주임은 주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어 보았다. 나는 주임이 점심을 시켜 준다고 하는 데 안심하고 주에게
“기왕이면 드시고 싶은 대로 무엇이나 말씀해서 잔뜩 잡수시죠”
주씨는 염치도 없이 자기 몫으로 거의 4인분이나 되는 것을 이것저것 막 주문했다. 그런데 주임은 전에도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 또한 죄수는 누구나 다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별로 놀라지 않고 순순히 주문하는 대로 시켜 주었다. 음식값을 내가 지불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많이 주문하는 것을 보고 염치도 다 없어져 버린 그의 태도에 놀라기도 했다. 또 그가 자기 입으로 음식 이름을 부르면서 벌써 침을 삼키는 것을 보고 가엾고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어이 주군! 자네가 먼저 말해 봐.”
그 역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안 선생님은 굉장한 인물이시군요?”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가요?”
“모든 죄수들은 고양이 앞에 쥐 같은데 안 선생은 여왕 같으시니 말입니다.”
그의 유창한 일본말은 듣기 좋았지만 나는 그리 마음이 좋지 않은 기분으로,
“여왕이오? 여왕 같으면 왜 이런 데 와서 고생을 할까요?”
“고생? 어디 무슨 고생을 하세요? 모든 경관들은 선생님의 친구 같고 또 마치 하인같이 수종들어 주는데 무엇이 고생입니까?”
이 말이 떨어지자 차석은
“그렇구말구! 주군의 말이 꼭 알맞는 말이야. 우리는 모두 당신의 하인같이 되어 버렸소. 나는 어떤 형사가 경관 옷을 벗어버리고 안양과 같은 죄수가 되었으면 한이 없겠다고 해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는걸요.”
나는 그 말소리에 문득 성경 구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스룹바벨아! 네 앞에서는 높은 산과 웅덩이도 평지가 되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는 크게 숨을 쉬고 나서
“1년 만에 처음으로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만족해했다. 나는 그의 만족해하는 얼굴을 보고 이렇게 젊은 장정이 반은 돌로 채워지다시피 된 조밥을 1년 간이나 먹고 살아왔으니 그 얼마나 주렸겠나 하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얼마나 긴 감옥 생활이 예비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확실히 그는 현 지상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돌연히 그는
“저는 주기철 목사님과 한 감방에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예? 주기철 목사님과요? 그러면 바로 제 건넛방이 아니에요?”
“그럼요. 그래서 저는 안 선생님의 모든 일을 다 보고 있었죠.”
그 말의 뜻은 나와 주 목사가 서로 손가락으로 항상 대화를 교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어딘가 주씨에게 약점을 잡힌 것 같아서 무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태연하게
“감방 안에서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군요.”
이때 옆에 있던 차석은
“주기철이란 유명한 두목 목사와 공산당의 두목으로 유명한 주군이 한 감방에 있어서 서로 좀 풀리고 녹고 못 하나? 자네는 주 목사와 때때로 말을 해보지 않는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모든 하나님의 원수들이 외치고 아우성치던 바로 그 소리다.
“십자가에 올라가지 마라.”
이것도 사탄의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보다는 너무 엄하시고 또 벌하시니 어려워서 못 섬기겠다.”
이것도 태초부터 사탄의 소리였다. 옛날의 그 사탄은 지금도 사탄을 만들고 사탄의 친구를 조성하는구나. 사탄의 조성은 이 공산당들 속에서도 또 일본 경관들의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을 짓고 활동하고 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악마들의 원대로 되었더라면 내 생애도 달라졌을 것이다. 여기 주목사님과 최 목사님과 이 목사님과 그 외의 감방 속의 성도들과 여려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된 성도들이 저 같은 고생을 할 리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이 세상은 사탄의 세상으로 그 사탄이 만들어 내는 죄악과 불행으로 혼란해지고 더 무서워졌을 것이다. 이 사탄이 쉬지 않고 빚어내는 거역과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래도 진실한 크리스천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그 부활하신 힘으로 순종하고 바로 살려고 하니 이만큼 세상은 빛이 비쳐졌고 복되어진 것이 아닌가.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우리들 예수인의 책임은 크고 무겁다.
“그러면 그대는 일본이 망한다는 것인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일본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의 어떠한 나라나 또 어느 개개인도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서야합니다.”
“일본이 회개 안 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면 그대의 생각에는 일본이 벌을 받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본신이 그대의 하나님보다 더 높고 더 좋고 더 능력이 있어서 이 신을 잘 섬겨야만 지금같이 일본이 흥왕하고 강대하고 찬란해진다고 믿는데 그대가 그대의 멋대로 믿는 것같이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의해서 믿는 것이니까 일단 국가에서 정해진 법칙이면 반드시 준행해야 하는 것이고 준행하지 않는 자는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나? 그래서 이 법도를 지키는 자는 우리가 보호하는 의무가 있고 거역하는 자에게는 벌을 줄 책임이 있어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민족 사상이 강한 몇 사람이 맹목적으로 광신해서 문제를 일으킴으로 우리가 수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가 경시와 나의 문답은 계속되었다.
“자네 말에 의하면 국가도 개인도 다 예수를 믿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해야 한다니 그럼 천황 폐하는 살아 계신 신인데 그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신이라 하면 그것은 벌써 우상이니까요!”
“예수의 신은 죽은 신이지만 우리의 천황 폐하는 살아 계신 신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이라고 만들어 부르는 것뿐이죠.”
“그러면 천황 폐하도 예수를 안 믿으면 다른 인간들 같다는 말인가?”
“네. 천황 폐하도 우리 같은 인간이시니까 예수님에게 구원을 받지 않으시면 인간과 똑같이 돌아가신 후엔 지옥으로 가신단 말입니다.”
“뭐? 지옥?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모독죄다.”
고함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나대로 한편으로는 떨리면서도 마음속은 시원해졌다. 사실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담대하게 말할 줄 몰랐는데 나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나의 대답이요 증거였다. 그는 한참 분을 못 이겨내고 그렇다고 내게 분풀이할 수도 없고 의자에서 일어나서 왔다갔다하면서 자기도 감정을 조정하고 나더니
“그러면 자네는 천황 폐하께도 절을 하지 않겠단 말인가?”
“천황 폐하에게 신민인 제가 어떻게 절을 하지 않겠어요?”
“그래? 천황 폐하께는 절을 한단 말이지?”
“물론 나의 천황 폐하로 으레 절하고 순복해야죠. 그러나 그 절은 어디까지나 인간인 천황 폐하에게 하는 것이지 살아 있는 신으로서 할 수는 없죠.”
“그게 무슨 뜻이야?”
“그 뜻은 천황 폐하께서 내 앞에 계시든지 내 앞을 지나가시든지 멀리 가는 것이 보이면 그는 우리 왕이니까 으레 코가 땅에 닿도록 경례하며 절대로 기뻐 복종합니다. 그러나 그는 동경 궁성 속에 앉아 계시지 누워 계신지 변소에 계신지 얘기를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는데 여기 한국 평양에 있는 나더러 천황 폐하는 살아 계시는 신이니 절하라고 하면 그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니까 절대로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성도 내고 화도 내면서 왔다갔다하며 자기 흥분을 억제하느라고 애를 쓰고 옆에 있는 부장은 문답을 받아쓰기에만 급급했다.
나는 사실 어떤 때는 몹시 불안해지기도 했다. 부장이 나의 답변을 받아 기록하는 모든 것이 나를 정죄하는 데 증거가 되는 조서가 되는 줄 아는 나는 나대로 그것이 모두 기록되는 것이 주님 앞에 내 증거가 더 확실하고 더 분명한 것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몹시도 힘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세계 모든 나라와 달라서 가미구니라고 하는 것을 자네도 물론 알 텐데. 우리 신국민족은 아마데라스오미가미로부터 나서 자란 민족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초월한 민족이요 독특한 우수 민족이라고 자인해서 자랑하고 있는데 자네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소학교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아마데라스오미가미이니 진무덴노니 기겐세쯔니 하는 것을 늘 들어왔지만 오늘과 같이 경관의 입에서 나를 정죄하기 위해 이런 문제를 끄집어 가지고 내 믿음을 판단하려고 달려드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도 증거해야 될 의무를 느껴 답변했다.
“이 온 세계의 사람들은 지구 위에 어느 땅에서 살든지 어떤 생활을 하든지 간에 성경 말씀에 의해서 누구나 다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나온 ‘노아’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으로 세상을 채운 인간들은 그때에 지면에 쏟아진 하나님의 심판의 홍수로 인해서 다 죽어 없어지고 한 가족 즉 하나님의 법도를 지킨 ‘노아’의 식구만 살려서 그 자손들이 다시 번식해서 이 세계는 인간들로 다시 채워진 것입니다. 초월한 우수 민족이나 그렇지 못한 열등 민족이나 다 ‘노아’의 자손이며 또 세상은 다시 홍수 때와 같이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오랫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더니 어느 날 아침에는 우리들 기독교인을 모두 유치장에서 동시에 불러냈다. 우리는 함께 고등계로 올라갔다.
주기철 목사를 가까이 보니 참으로 그의 모양은 거룩해 보였다.
최권능 목사를 보니 그는 베드로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감을 주었다. 방계성 장로의 그 충성스러운 모습! 이인재 전도사와 이광록 집사의 어린양같이 순하고 애처롭게 보이는 모습! 오윤선 장로의 늙고 뼈만이 남은 그러나 순결하고 성인 같은 그 모습!
나는 이 훌륭하고도 참다운 주의 종들을 보았다. 쇠사슬을 매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져서 이 몇 알 되지 않는 밀알인 성도들이 땅에서 썩어서 우리 강산에 많은 열매를 맺어 교회를 말살하는 일본인들은 다 물러가고 주님의 교회는 다시 서게 될 것이 분명한 것 같은 믿음이 솟았다.
우리 성도들의 모든 가족들도 고등계에서 불렀는지 모두 모여와서 고등계는 웅성웅성하였다. 옷들도 가져와서 모두 갈아입고 음식들도 준비해 가지고 와서 모두 먹도록 되었다.
내 어머니도 물론 음식과 옷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척 긴장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흰 이마에 경련이 나는 것을 보고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염려 마세요!”
“너 이번에는 정말 매일 죽어야 한다. 이젠 정말로 이 세상에서 아주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은 다 잊어버리고 천성문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천성문 외에 아무것도 보지말고 생각도 안 해야해!”
어머니의 말은 큰 힘을 가지고 내 심령을 울리게 했다.
참으로 나의 믿음이 그 어떠한 가치를 발휘하며 또 나는 어떠한 태도로 이 풀무 속으로 들어가 녹아지는가를 보고 싶었다. 또한 나는 참으로 마음의 역사와 결과를 보려는 큰 기대와 모험심이 내 마음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것이 기뻤다.
옛날 큰 핍박시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사자밥이 되고 기름 가마에 들어가고, 십자가에 죽고, 굶어 죽고, 맞아 죽고 한 성도들의 그 믿음이 그 어떠한 상태로 역사하였던가? 보고 체험할 때가 왔다.
아직도 나 자신을 잘 알 수 없다. 나는 생각하기를 사자가 달려들어올 때 천성문을 바라보며 예수님만 생각하다 사자에게 물려 목숨이 끊어져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도 했다. 또 옛날같이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피가 다 빠져서 죽도록 오래 고통하는 일은 몹시 주저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지금은 목을 달아매면 3분 내에 죽는다고 하니 그것은 무엇보다도 쉬울 것 같았다.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문제는 간단하고 쉽다고 생각했다.
성도들이 한 사람씩 수갑을 두 손에 찬 채 일렬로 서서 나오는 광경은 거룩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이 영광의 대열 속에 이 보잘것없고 가치 없는 내가 한 사람으로 끼였다니! 이것이 사실이라니. 아! 굉장하구나!”
나는 창공을 향해 소리 높여 찬송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를 태우려고 기다리는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나는 돌아서서 평양 경찰서 건물을 바라보았다.
“1년 동안 고생도 많았지만 충실히 증거할 수 있었던 평양 경찰서야! 1년의 수업증을 받고 나는 더 높은 급인 평양 형무소로 옮겨간다. 너는 그동안 나에게 예수님 약속의 궤도에 나를 올라서게 해주었다. 천국에 가서도 너를 기억하마.”
자동차는 우리들을 태우고 서서히 평양 형무소를 향해 떠나갔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245 | 27. 히가시 긴수 | 선지자 | 2016.01.09 |
| 244 | 26. 큰밥과 고깃국 | 선지자 | 2016.01.09 |
| 243 | 25. 귀가 | 선지자 | 2016.01.09 |
| 242 | 24. 소녀 사형수 | 선지자 | 2016.01.09 |
| 241 | 23. 일본여자 포주 | 선지자 | 2016.01.09 |
| 240 | 22. 쇠고랑 | 선지자 | 2016.01.09 |
| 239 | 21. 사기범 전과자 | 선지자 | 2016.01.09 |
| 238 | 20. 최덕지 선생 | 선지자 | 2016.01.09 |
| 237 | 19. 만주 여자 사형수 | 선지자 | 2016.01.09 |
| 236 | 18. 우스워서 기절할 뻔 | 선지자 | 2016.01.09 |
| 235 | 17. 형무소 유치원 | 선지자 | 2016.01.09 |
| 234 | 16. 옴쟁이 갓난아기 | 선지자 | 2016.01.09 |
| 233 | 15. 재판소행 | 선지자 | 2016.01.09 |
| 232 | 14. 평양 형무소 | 선지자 | 2016.01.09 |
| » | 13. 평양 경찰서 유치장 | 선지자 | 2016.01.09 |
| 230 | 12. 유치장 이동 | 선지자 | 2016.01.09 |
| 229 | 11. 고향으로 호송 | 선지자 | 2016.01.09 |
| 228 | 10. 일본의 유치장 | 선지자 | 2016.01.09 |
| 227 | 9. 유황불로 일본은 망합니다 | 선지자 | 2016.01.09 |
| 226 | 8. 동경행 | 선지자 | 2016.0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