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미국행
“어 이거 안 선생님 아니시오?”
하며 키가 큰 미국인이 들어선다. 자세히 보니 그는 에드워드 아담스 선교사였다. 그는 몹시 반가워하면서
“아 선생님! 참 반갑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안 선생님 찾아가려고 했는데 집을 아는 이가 없어서 못 가봤어요.”
그는 한국어에 아주 능통했다. 그는 내가 대구 여고보 시절부터 아는 사이고 내가 일본 정부에 ‘경고’하고 돌아왔을 때 여러 선교사들이 닥터 바이럼과 같이 내 간증을 들은 일이 있었던 관계로 나를 몹시 아껴 주던 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후 해방이 되자 쫓겨갔던 미국에서 곧 되돌아와 다시 선교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반가워하는 표정과 그 진정한 친절은 그의 말과 행동에 뚜렷이 보였다. 나는 이제 방금 대사에게 푸대접을 받은 직후인 만큼 그가 큰 위로가 되어서 그만 눈물이 나을 것 같았다.
“대체 안 선생님이 이런 곳엔 어떻게 오신 것입니까?”
내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억제하면서 우물쭈물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슨 볼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고 재차 묻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솔직하게 모든 곡절을 다 얘기했다. 아담스 선교사는
“안 선생님, 저와 함께 대사관에 다시 들어가십시다.”
하며 나를 재촉해서 먼저 급하게 대사실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나도 하는 수 없이 그가 앞으로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대사관실로 인도한 후 의자를 가져다 주면서
“여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주시지요”
하더니 대사에게 무어라고 한참 이야기를 했다. 대사는 아담스 선교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 씨, 아이 씨.”
를 연발하면서 나를 보고 또 보고 또 아담스의 말을 정중하게 들으며 또 나를 보는데, 보는 그 시선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얼마쯤이나 듣고 또 나를 보더니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 앞으로 오더니 공손하게 내게 한국식 절을 하면서 무어라고 말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아담스가 통역을 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우리나라에 당신을 모시는 것은 미국인으로서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가를 몰라서 큰 실례를 했습니다.”
하고 손수건을 꺼내며 눈물을 닦았다.
“내일 새벽 6시에 홍콩에서 오는 비행기가 있는데 이 비행기에 못 가시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민간 비행기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안 가니까요.”
“내일 새벽 6시요?”
“네. 지금이 오후 4시니까 이제부터 약 14시간 후란 말이지요.”
“14시간 안으로 떠나라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일 새벽 6시에 떠나시겠어요? 그러면 내일 새벽 6시까지 여기 오십시오. 저희가 자동차로 비행기 타는 공항에 모셔 갈 테니까요.”
나는 14시간 내에 어머니와 이별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기왕 갈 바엔 한 달이나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곧 결심을 하고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허둥지둥 나와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와서 사실대로 얘기를 했다. 그때 윤 장로 부부는 평양을 아주 떠나서 서울에 와서 살 때이므로 여러 아는 이에게 기별을 해서 새벽 5시에 모두 우리 집에 모였다. 우리들은 감격적인 예배를 드린 후에 저마다 택시를 타고 모두 대사관 비행기 예약소로 향했다.
“큰일을 하고 곧 돌아오세요.”
저마다 같은 말로 인사하는 이 말에 나는
‘말도 모르고 다 곯은 노처녀가 무슨 큰일을 미국에 가서 할 수 있을까? 어리둥절해서 헤매다가 돌아오게 되면 부끄러워 뭐라고 이 기대에 보답하고 해명할 것인가?’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판단했지만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힘을 내었다.
“미국에 가서도 잘 순종하고 좋은 증인이 되어 보겠어요. 그리고 잘 있다 오겠어요,”
하고 어머니 곁에 가서
“어머니, 제가 없는 동안에 먼저 천당 가시지 마시고 기다리셔야합니다. 석 달 후면 꼭 돌아오겠습니다.”
한즉 어머니는 만족한 듯이 웃음을 머금으면서
“얘, 감옥에 갈 때도 천성문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천국 같은 미국을 가면서 뭐 때문에 급하게 돌아오려고 하냐. 너는 미국에서 나는 한국에서, 각자 천국문에서 만나자구나. 내 걱정 마라. 일제 때 배급을 안 줘도 살았는데 염려할 것 하나도 없다. 네가 좋아하는 공부나 더 해서 배우고 싶은 것 배워 가지고 오려무나.”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
| 265 |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 임원들 신사참배
| 선지자 | 2016.01.10 |
| 264 |
한경직 목사 템플턴상 수상-나는 신사참배를 한 죄인입니다
| 선지자 | 2016.01.10 |
| 263 | 한경직, 박윤선 나는 신사참배 죄인입니다 | 선지자 | 2016.01.10 |
| 262 |
신사참배와 서정환 전도사
| 선지자 | 2016.01.09 |
| » | 43. 미국행 | 선지자 | 2016.01.09 |
| 260 | 42. 어촌과 왕지네 | 선지자 | 2016.01.09 |
| 259 | 41. 소련군과 주영하 | 선지자 | 2016.01.09 |
| 258 | 40. 대자연의 탄식 | 선지자 | 2016.01.09 |
| 257 | 39. 유황불 | 선지자 | 2016.01.09 |
| 256 | 38. 일본인들 | 선지자 | 2016.01.09 |
| 255 | 37. 최봉석 목사 | 선지자 | 2016.01.09 |
| 254 | 36. 주기철 목사와 손가락 회화 | 선지자 | 2016.01.09 |
| 253 | 35. 높은 자보다 더 높으신 이 | 선지자 | 2016.01.09 |
| 252 | 34. 회개하는 간수 | 선지자 | 2016.01.09 |
| 251 | 33. 밤길 같은 앞길 | 선지자 | 2016.01.09 |
| 250 | 32. 큰 바위와 물결 | 선지자 | 2016.01.09 |
| 249 | 31. 학살자의 급사 | 선지자 | 2016.01.09 |
| 248 | 30. 진짜 죄수 | 선지자 | 2016.01.09 |
| 247 | 29. 부친의 회개 | 선지자 | 2016.01.09 |
| 246 | 28. 파송객 | 선지자 | 2016.0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