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박윤선 나는 신사참배 죄인입니다

 

황영준(광주동산교회)

 

한국교회가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시대적 사명을 자기 십자가로 감당했던 기독교인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즉 우상숭배를 거부했던 일과 무신론 공산주의에 굴복하지 않은 일로 순교하신 목회자나 성도들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감동입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2007년 대부흥은 100년 전 그 때처럼 회개의 은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묵은 땅 같이 굳어진 죄로부터 회개하고 주님을 향하여 바로 서야합니다.

  선지자선교회

일제 때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거부한 일로 투옥되었던 이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거나 감옥생활 중에 순교했고, 1945815일 조국광복으로 승리한 성도들이 감옥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817일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기독교인을 제거하려고 작정했던 그 날에 출옥했던 것입니다.

출옥 성도 20여명이 평양산정현교회에 모여 교회재건운동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교회의 지도자(목사, 장로)들은 신사참배를 했으니 권징의 길을 취하여 통회자복한 뒤 교역에 나설 것.

 

둘째, 권징은 자책이나 자숙의 방법으로 하되 목사는 최소한 2개월간 휴직하고 통회 자복할 것.

 

셋째, 목사나 장로가 휴직 중에는 집사나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할 것 등이었습니다.

 

북한의 5도연합노회는 이 제안대로 '전 교회는 신사참배의 죄과를 통회하고, 교직자는 2개월간 근신하기로 한다.'고 결의했다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주장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장이었던 홍 목사님이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고생한 사람이나 고생은 마찬가지다. 교회를 버리고 해외로 도피생활을 했거나 은둔생활을 한 사람의 수고 보다는 교회를 등에 지고 일제의 강압에 할 수 없이 굴한 사람의 수고가 더 높이 평가돼야 한다.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책벌은 하나님과의 직접 관계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다.' 라고 주장했답니다.

이런 분들이 해방 후 한국교회를 주도해 왔습니다. 말하자면 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과거의 허물을 회개할 때 놀라운 은혜가 회복되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92년에 템풀턴상을 수상했습니다.

 

축하행사 때 인사말을 하면서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하고 공개했습니다.

 

19509·28 수복이 있기 전. 부산 초량교회에서 모였던 피난교역자부흥회 때도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때 고신 교사와 초량교회당은 피난교역자들이 꽉꽉 차있었습니다. 초량교회 담임 한상동 목사님과 몇 분이 의논하여 박형룡 김치선 박윤선 목사님을 강사로 집회를 가졌습니다. 박형룡 목사님은 8·15해방은 하나님의 큰 선물인데, 해방 후에 백성들이 바로 살지않고 '자유! 자유!' 하며 방자히 행하여 이런 전쟁이 왔다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집회를 인도하면서 자신의 신사참배를 고백했습니다.

 

"나도 단 한 번이지만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그 일로 인하여 원통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때에 그 죄를 회중 앞에 공고백하였던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한부선 선교사의 철저한 신사참배 반대활동과 감옥생활 그리고 추방사건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목회자들의 회개가 터졌던 것입니다.

 

"집회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였고, 처음에는 (집회를)찬성하지 않던 이들도 점차 가담하게 되었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으로 기억되는데, 그 시간에 참석한 교역자들 거의 대부분이 크게 통회하며 자복하는 회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뼈아픈 회개는 과거 일제 핍박 시에 신사참배를 한 그 죄를 인한 것이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설교하는 나 자신부터 내 죄를 회개하면서 증거 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교역자들이 한 사람씩 회개하는 기도가 이어져서 집회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자서전 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회개운동은 울산 온산 제주도로 이어졌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한상동 이학인 두 목사님과 함께 제주서부교회에서 한 주간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은, 이처럼 교역자들의 통회 자복의 회개가 있은 후에 유엔군이 승리하고 공산군은 삼팔선 이북으로 물러가게 된 사실이다. 회개의 사건에 뒤이어서 승전한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도와주신 결과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거룩한 결단과 교회갱신은 주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길이며 나아가 나라가 복을 받는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1907년 대부흥 100주년. 애통기도와 회개로 불이 붙었습니다. 남의 탓에 익숙한 이 세대에 교역자들의 모범적인 무릎 기도는 역시 교회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