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불같은 할아버지의 신앙 (손문준 목사의 증언에 따름)

  선지자선교회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인한 기독교 박해도 한풀 꺾이고, 비로소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의 의해 본격적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할 때이다.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흙 냄새 물씬 풍기는 가난한 마을에서는 할아버지 손종일을 두고 미친놈이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만만치 않은 손씨 가문에 대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머리카락 한 올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던 시대에 할아버지가 거침없이 상투를 싹둑 잘라버렸으니 미친놈 소리를 들을 만 했다. 그뿐이 아니다. 친척 어른들이 조상님 묘에 절을 올리는 자리에서 함께 절을 하기는커녕 정성 들여 차린 제사상을 홀딱 뒤엎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토록 즐기던 술과 담배도 하루아침에 뚝 끊어 버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님만 입에 올렸다.

 

사정이 그러니 유고 사상에 물들어 있는 완고한 마을 사람들의 눈엔 할아버지가 정신이 온전히 박힌 인간으로 비쳤을 리 만무했다. 마을 사람들 뿐 아니라 집안의 어른들까지도 손종일이 미쳤다고 단정해 버렸다. 할아버지가 길거리에 다니며 예수, 예수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동네 아낙네들이 미쳤다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할머니는 부끄러워 볼을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 , 영감 오기만 해 봐라, , 사생결단을 낼끼다. 할아버지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속이 편치 않던 할머니는 치마폭을 잔뜩 움켜지고 할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마침 할아버지가 사립문을 들어서자 느닷없이 소리를 지른다.

 

아니 당신 참말로 미쳤는갑소. 상투 자르고 조상님 제사상까지 뒤엎더니 와 당신 미친 사람처럼 길거리에 댕김시러 무어라고 중얼대는기요. 제발 그 예수, 예수 소리 안 집어 치울라요. 내사 마 남 부끄러워 못살것소.

 

할머니와 할아버지간에 한 바탕 말다툼이 벌어진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할아버지가 최초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은 38세 되던 19055월로 이웃집 형뻘 되는 사람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은밀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기요?

손 서방, 내 자네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안 왔나.

나름대로 강직한 시국관을 가지고 잇던 그 형님은 할아버지를 찾아와 명성황후 시해를 기점으로 점점 노골화되는 일본의 검은 야욕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곤 했다.

 

할아버지 역시 수상하게 돌아가는 세월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터라 두 사람은 마음이 통했고, 만나면 언제나 얼굴을 맞대고 울분과 한탄을 토로했다. 비록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농사꾼이지만 강제로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을 용납할 수 없는 심정이다.

 

그 날 역시 어떻게 될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나라의 운명과 갈수록 심해지는 일본인들의 폭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는 속에서 불이 활활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심란한 마음을 달랠 겸 냉수나 한 사발 들이키려고 일어서는 할아버지를 그 형님이 잡아 앉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은근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자네 내 말 잘 들어 보래이, 내 진작 마음은 묵고 있었다네, 오늘 만난 짐에 제일 좋은 선물 한 개 전할라꼬 안 하나.

 

제일 좋은 선물이 뭐꼬?

 

할아버지의 반문에 그 형님은 그 후 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따르고 순종한 바로 그 이름을 꺼냈다.

 

예수라네

 

이웃집 형님은 소리 죽여, 그러나 열정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복음을 전했다. 그것이 할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신앙의 첫 출발이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 날 이후 할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신앙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에 예수라는 글자가 입력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꼽아 주일을 기다렸다. 마침내 주일 아침이 되자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당에 들어섰다. 모두들 반갑게 맞아 주었다. 특히 이웃집 형님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난생 처음 접하는 의식이지만 어색한 기분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예배시간 내내 어떤 알지 못하는 기운이 포근하게 전신을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처음 교회에 나온 할아버지를 위해 한 신도가 기도를 드릴 때는 떨리는 감동까지 맛보았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왔습니다. 여태 미로(迷路) 같은 세상을 헤매 다니다가 이제야 제 길을 찾아 왔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수 없이 가시에 찔리고 수렁에 빠진, 상처투성이의 아들이 아버지께 의지하고자 찾아 왔습니다. 귀하게 받아 주시고 그 가정에도 축복을 내려 주옵소서. 세상에서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여전히 캄캄한 이 나라 이 나라 이 땅의 복음 전파를 위해 귀한 씨앗이 되게 하옵소서,,,

 

뜨거운 불길이 할아버지의 가슴을 활활 태웠다. 속에 있는 것들이 남김없이 다 탈 때까지 그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 때부터 과거의 할아버지는 사라졌다. 예수님께서 단 한 순간에 그의 영혼을 사로잡아 변화시키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새롭게 태어났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사에 경건한 신앙인이 되어 갔다. 밤을 새워 성경을 탐독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전했다.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신앙이 자랄수록 집안 어른들의 핍박과 조롱 역시 그 강도가 더해 갔다. 가장 가까운 할머니조차 할아버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해마다 명절이면 으레 조상 묘에 절하는 것이 무엇 보가 마음에 걸렸던 할아버지는 모종의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기 혼자의 변화만으로는 이 몰이해(沒理解)의 벽을 뛰어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사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할지라도 내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 목에 칼이 들어 와도 내 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사람들에게 그 점을 분명히 밝히자.

 

고루한 유교 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고는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갈 길이 없다고 판단한 할아버지는 충격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가장 큰 명절인 설날 아침에 그 방법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설날 아침, 손씨 문중 일가가 다 모여 조상의 묘에 절을 하는 중이다. 모두들 묘 앞에 절을 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장승처럼 서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제사상을 훌떡 뒤엎어 버렸다. 제물로 놓여 있던 과일이며 나물이며 음식물과 그릇들이 떼굴떼굴 굴러 사방으로 흩어지고 깨어져 저 멀리 개울 우물까지 굴러 떨어졌다. 삽시간에 성묘 자리는 난장판이 되고,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동안 멍한 자세로 서있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조상님께 드리는 음식상을 뒤집어엎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불효 중의 불효요, 죄악중의 죄악이었다.

 

정신을 차린 친척 어른들은 한꺼번에 할아버지에게 달라 들어 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인정사정없는 폭행이 근 한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미치지 않았다면 이따위 개망나니 짓을 저지를 수 없다고 하면서 무자비하게 발길질을 했고, 예수인지 뭔지 하는 서양 귀신에게 단단히 홀린 모양이니 때려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며 주먹질을 해댔다.

 

할아버지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매를 아무런 저항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축 늘어진 할아버지의 몸을 일으켜 세워 커다란 감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할아버지는 변함없이 꿋꿋했다. 감나무에 매달린 채로 여전히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여보시오, 어르신들. 내 말 좀 들으시오. 하나님은 유일신이시니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도 숭배해서는 아니 되오. 죽은 묘에 절하지 마시오. 하나님이 싫어한단 말이오.

저저, 미친 놈.

사람들은 더는 상종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젓고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섰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마침 할머니는 이웃 마을로 마실가고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광을 뒤져 제사 때 쓰려고 소중히 보관해 놓은 제기(祭器) 한 벌을 꺼냈다. 그리고는 마당에 불을 태우고는 그 제기들을 집어 넣었다. 불꽃이 활 활 타올랐다. 우상 숭배하는 도구이니 태워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때 공교롭게도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불길이 한쪽 옆에 쌓아 놓은 짚더미에 옮겨 붙었다. 동네 사람들이 놀라 사방에서 뛰어 왔다. 일대 소란이 벌어진 후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불을 다 끈 사람들은 화재의 원인을 캐물었고 할아버지가 제기를 태우다가 불을 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처구니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듯 할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보며 고개만 설레설레 젓고 가버렸다.

 

그 일로 할아버지가 또 한 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그와 같은 행적은 그 당시 봉건적인 관습으로 볼 때 마을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결국 온 동네에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그토록 많은 반대와 몰이해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믿음과 전도는 중단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 되었는데, 미치지 않았느냐고 몰아세우던 할머니가 먼저 예수님을 영접했고 그 이후 멸시와 조롱을 감추지 않던 친척들이 하나 둘 예수님 품에 안기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할아버지의 변화된 삶과 불굴의 신앙이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배후에서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된 후부터 새벽 기도와 아침, 저녁 가정예배, 십일조 헌금과 주일 성수는 어길 수 없는 가정의 규칙이 되었다. 그 때 아버지 손양원은 7살이었다.

 

할아버지는 당시에 어린 소년이던 7살짜리 아들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비 오는 날에는 등에 업고 데리고 갔다가 시간 맞추어서 데려오곤 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은 비가 온다고 거르고, 눈이 온다고 게으름을 피울 성질의 것이 아니라면서.

 

할아버지는 아버지 손양원(어릴 때 이름은 준연)을 포함해서 아들 세 명과 딸(봉연) 한 명을 두었다. 그 세 아들(양원, 문준, 의원)이 모두 목사가 되었다. 부전자전이라 했다. 신실한 할아버지 밑에 탕아가 있을 리 없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아들 전부를 목회의 길로 인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또한 할아버지의 깊은 신앙의 증거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역시 신앙의 연륜을 쌓아 나중에 장로가 되었다. 교회가 없는 곳에 개척교회인 칠원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1923년 봄에 칠원교회에서 저 유명한 길선주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당 건축을 위한 부흥회가 열렸다. 할아버지는 부엌 도구만 남기고 가진 것을 몽땅 교회당 건축을 위해 바쳤다. 처음에 할아버지가 세마지기만 바치겠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나머지 두마지기를 추가로 바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이제 교회 짓다가 망해도 톡톡히 망한다며 동정은커녕 비난을 하는 판이었다.

 

세상에 망하는 종류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화재로 집을 날릴 수도 있고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만나 쓰러 질 수도 있고, 술과 여자와 노름 등으로 일시에 재산을 몽땅 날리는 사람도 있는데 교회 짓다가 망하면 그래도 교회는 남아 있지 않습니까? 하고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았다. 사실 그때 형편으로는 매일 매일 끼니를 이어 가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작은 아버지 손문준이 유학 가 있는 일본 동경에서 대지진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할아버지는 생사를 모르는 작은 아버지를 위해 침식을 전폐하고 기도만 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동경에서 작은 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송금 수표가 동봉되어 왔는데 그때 동봉된 돈은 논 다섯 마지기를 사고도 세 마지기를 더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그 돈은 작은 아버지가 당시 지진으로 폐허가 된 건물 복구와 구호 사업을 위해 열심히 일해 받은 수고비다. 그 외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적과 같은 일화가 많이 있지만 다 말할 수는 없다.

 

평생을 가난하게 사신 할아버지는 자손들에게 토지나 값비싼 보석 대신 믿음이라는 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처음 교회에 나가던 날, 한 신도가 할아버지를 위해 해준 기도의 내용대로 민족을 위한 복음의 씨앗을 자식들의 가슴 밭에 뿌려 주셨다. 할아버지의 삶은 글자 그대로 씨 뿌리는 자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