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고난이여 올테면 오너라 (안용준 목사님의 증언에 따름)

  선지자선교회

1940925일 수요일,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바야흐로 가을 기운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들판에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벼 이삭들이 마냥 풍요로워 보이기만 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 잎들은 들판을 건너온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고운 옷 갈아입은 잠자리들은 높디높은 하늘을 유유히 비행하고 있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외부의 평화와는 달리 애양원 지붕위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날이다. 우리 가족들이 드디어 수난의 길로 접어들게 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 때 까지만 해도 다른 교회에 가해지는 박해에 비해 애양원은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다. 신사 참배 강요도 심하지 않았고 유형무형의 간섭도 덜 한 편이었다. 나환자 수용소라는 특성 때문에 어지간한 말썽은 눈감아 주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악한 일본 경찰이 신사참배 반대를 강력히 주장하고 다니는 아버지를 결코 잊었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애양원 교회에서건, 설교 때마다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로서 하나님의 십계명 중 제1,2계명을 범하는 것이므로 절대로 금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부흥집회 때마다 그랬고, 또 믿음의 신도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신사 참배의 부당성에 대하여 설교했다. 그런 아버지를 가만히 놔둘 그들이 아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가냘픈 몸을 내맡김 채 시름없이 한들거리고 있는 코스모스 사이로 여수 경찰서 소속 형사 두 명이 바삐 걸어 왔다. 그들은 집에 당도하자마자 다짜고짜 아버지를 찾았다.

손 목사 집에 있나?

 

무례하기 짝이 없는 불청객의 목소리에 놀란 어머니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누구신지요?

우리는 여수경찰서에서 온 형사다. 손 목사를 연행하러 왔다.

 

아버지는 그때 애양원 교회에서 삼일 밤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당회가 열리고 있었기에 거기 참석하느라 아직 귀가하지 않은 상태이고 어머니만 일찍 돌아온 것이다.

 

안 계신다고 대답하자 그들은 마루에 걸터앉아 사방을 휘둘러본다. 거만하고 위압적인 눈빛이다. 식구들이 무슨 일 대문에 그러는지 대충은 짐작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가족은 물론 애양원의 기둥인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 아버지가 잡혀 가면 우리 가족과 애양원은 또 어찌 될 것인가.

 

하필 그 때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다. 형사 두 명이 총알 같이 튀어 나가 아버지를 낚아채더니 밖으로 끌고 갔다. 아버지는 이미 사태를 짐작한 듯 조용히 그를 따라나섰다. 왜 이러느냐는 항변의 말 한 마디도, 잡혀가지 않으려는 저항의 몸짓도 없었다. 잠깐 뒤를 돌아보며 사색이 되어 있는 어머니에게 걱정 말고 기도나 해 주구려 했을 뿐이다.

 

이 짧은 이별의 말을 던지고 떠난 아버지는 그 날 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무려 만 5년을 형무소에서 보냈다. 나중에 전해 듣게 된 아버지의 죄목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과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그따위 죄를 아버지가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잡혀간 아버지는 10개월이 다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기다리면 풀려나올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기소 당하여 복역을 하게 되는 건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다. 답답한 시간이 자꾸 만 흘러갔다. 애양원 식구들과 우리 형제자매들의 불안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어머니의 심정 도한 말이 아니다. 졸지에 가장을 잃어버렸으니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달리 무슨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매일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할 따름이다.

 

하루가 일년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나날이다. 잡혀가면 온갖 고초를 다 겪는다는데 경찰서에서 고문은 안 받고 지내는지, 몸은 건강한지, 앞으로 얼마나 더 지나야 나올 수 있는 건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신변을 염려하는 마음도 컸지만 그 보다 더 어머니의 마음을 강하게 지배했던 것은 경찰의 고문과 회유에 못이 혹시라도 아버지가 신앙의 절개를 꺾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였다. 경찰서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후 신사참배를 하고 풀려 난 목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많기에 그럴 분이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만의 하나 그런 나약한 결정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더 이상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젖먹이를 들쳐 업고 여수행 기차를 탔다.

 

여수에 도착한 어머니는 안면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석방 유무를 알려고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던 중 어찌어찌 하다가 어머니가 알고 있는 분을 통해 유치장에 밥해 주고 심부름하는 이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찾아가서 아버지에 대해 간곡히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손 목사는 재판 마치고 어쩌면 오늘 내일로 여수 경찰서를 떠난다고 들었습니다.하고 귀띔해 주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이면 아버지가 여수경찰서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일찍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모두 데리고 기차를 타고 여수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수경찰서 앞으로 가서 무작정 기다렸다. 10개월 간 얼굴도 못 본 아버지를 만나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우리 형제의 가슴은 마냥 설레었다. 경찰서 문이 열리는 순간 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큰오빠다.

 

저기 아버지 오신다.

다들 큰오빠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 거기에 아버지가 계셨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머리를 빡빡 깎은 상태로 형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걸어 나오는 아버지는 척 보기에도 풀려 나오는 사람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지만 어머니는 형사들이 다른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틈을 타 얼른 아버지 곁으로 갔다.

 

어디로 가십니까?

광주로,,,

채 대답을 다 듣지 않고 어머니는 숨겨 가지고 온 성경책을 펼쳤다. 반갑다고 인사나 나누고 안부나 물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니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성경 한 구절을 손으로 가리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보! 여기 이 말씀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이 아닙니다.

염려마오. 걱정 말고 기도나 해주구려.

아버지 역시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 형사가 걸어와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잠깐 동안의 상면, 그리고 또 다시 긴 이별,,,,, 아버지는 광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께 펼쳐 보인 말씀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10)

 

그때는 내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아 그 상황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없었지만, 어른이 되어 그때 일을 찬찬히 뒤집어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곤 한다. 어머니는 보통의 아내들처럼 남편의 육신의 삶을 염려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장 많이 걱정한 것은 아버지가 당할 고초가 아니라 혹시 아버지의 마음이 약해져서 우상 숭배하는 죄를 범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맨 처음 여수경찰서로 끌려갔던 때는 39세 때다. 이곳에서 10개월 동안 미결수로 있는 동안 여러 차례 불려나가 심문을 받았다. 금성구웅(金城久雄) 형사에게, 가루베 형사에게, 또 어떤 때는 요다 검사에게 거의 비슷한 내용의 모진 심문을 수없이 받아야 했다.

 

여수경찰서의 밤은 깊어 간다. 가끔 유치장 쇠문 닫는 소리만 꽝꽝 하고 밤의 적막을 깨트린다. 그들은 밤새도록 아버지를 협박하고 회유하고 뺨을 때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평소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는 전도할 기회가 많았으나 경찰서 형무소 관리들에게는 전도할 기회가 없었다. 감옥소 고통 속에서도 마음 문이 열리지 않은 불신자들을 전도한다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성경관, 재림관, 심판관 등을 설명했다. 여기선 지명상 간단히 쓴다.(자세한 것은 기독교 서점에 있는 [손양원 목사 옥중 목회] 보이스사에 기록됨)

 

,,,,,,이봐, 손 목사. 그래 다른 목사들은 물론 신학교수, 신학박사들 까지 모두 신사참배를 하고 노회장, 총회장도 다 국민의식으로 시인하는데 왜 그리 독특한 예수를 믿소?

 

본시 기독교는 지식적 종교가 아니고 신앙적 종교이며 감정적 종교가 아니고 체험적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학사, 박사가 믿지 못하는 진리를 무식한 노인들도 믿을 수 있고, 또한 무식한 자들이 체험하는 사실을 박사, 학사가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로 지식적 세계와 신앙적 세계는 통하는 점도 있으나 통하지 못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초자연적 종교라는 것입니다.

 

손 목사, 당신 보아하니 다루기가 좀 곤란한 사람 같은데 신사참배 하기 전에는 햇빛 보기가 힘들 것이요. 그리 아시오.

 

내 몸은 비록 형무소에 감금되어 있으나 내 신앙은 감금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특히 말세론에 대해, 또는 일본의 천황 숭배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답은 언제나 변함없이 명쾌했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 하나가 올가미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올가미에 두려움 없이 목을 디밀었다.

 

어느 날인가는 가루베 형사가 성경에 대해 도 물어 왔다.

아버지는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 66권의 성경에 대해 설명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책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여 그 예언을 강림한 책이며, 하나님의 뜻에 다라 사람이 살아 갈 도리와 내세의 부활을 밝힌 책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 되시는 신이시며, 예수님은 그분의 아들 되시는 신이시니,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일체가 되신 고로 기독교에서는 이를 삼위일체라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것이냐?

가루베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싸늘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차근차근 하나님을 증거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주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천하 만민의 심판주이십니다.

 

그게 다 무슨 뜻인가.

하나씩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 함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내려 보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의이시라 함은 모든 사람의 의와 불의를 밝혀 의에 대해서는 상을 주고 불의에 대해서는 벌을 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의란 바른 것을 말하는데 그 기준은 모두 성경에 근거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의입니다.

 

그러면 교육칙어(?育則語)는 의인가 불의인가?

가루베가 아버지의 설명을 중도에서 자르며 끼어든다.

 

교육칙어라도 성경에 일치하면 의로운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불의입니다.

가루베는 책상을 꽝 소리 나게 치며 버럭 화를 냈다.

 

이런 괘씸한,,,,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하던 말을 계속해 나갔다.

 

셋째, 하나님은 빛이라 함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게 죄를 자각하게 하고 나아가 심판의 날에 가게 될 천국과 지옥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이 영이시라 함은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인간의 심중에 계시는 무소부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고 못 하실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라 하심은 천지만물은 모두 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라 말입니다. 창세기 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잇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그렇다는 말이냐?

물론입니다. 일본은 물론 세계 각 국은 전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전 세계와 인류는 오직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쟁이 치고 말 못하는 놈 없다더니만, 계속해 봐.

가루베는 치미는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 듯 신음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말을 재촉했다.

 

여섯째, 하나님은 주재자이시라 함은 세상 모든 이치가, 사람의 나고 죽음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천황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호흡, 국토와 국민을 통치할 지위와 권력을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말세에 만민의 심판주이시라 함은 천년왕국이 지나고 무궁세계가 오면 불신자들은 준엄한 벌을 받아 지옥으로 추방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신도만이 눈물도 괴로움도 병도 죽음도 없는 참 행복한 세계에 남게 됨을 말합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이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의 대략적인 설명입니다.

 

한번은 요다 검사에게 불려가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문을 받았다.

그대는 1938년 구례에서 개최된 조선기독교 순천노회에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순천선교회는 그 결의에 반대해 순천노회와 분리됐다고 하던데 그 일도 알고 있는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애양원교회도 그래서 순천노회로부터 분리되었는가?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시인했다. 요다 검사는 전의를 다지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 물고 나서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신앙에 대해 파고든다.

 

그대는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아버지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를 주재하시며 절대불멸,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는가?

다른 신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높은 지위의 신은 없습니다. 이는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신사참배에 대해 그대가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하라.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애양원이나 초빙되어 간 다른 교회에서 늘 설교하던 말씀 그대로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성격에 의하면 하나님 이외의 신에게 절하지 말라, 내 앞에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고 되어 있고 신사의 신은 신이기는 하나 하나님은 아니며, 신의 형상을 만들어 모셨으니 분명한 우상이므로 참배해서는 안됩니다. 우상 숭배하고 예배하면 하나님이 그 예배 받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반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오?

첫째, 신사참배, 동방요배는 하나님이 금하신 계명이니 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의 명령도 거역할 수 없을진대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찌 거역하겠습니까?

 

둘째, 우상에게 절하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을 얻고자 함인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어찌 구원을 바라겠습니까?

 

셋째, 국민 된 도리로서 못하겠습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우상 숭배하는 나라는 망하고 예수 잘 믿는 나라는 축복 받는 것을 뻔히 알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가 망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보 손 목사, 우리 천황폐하께서는 현인신(賢人神))이다. 즉 신의 아들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1억 국민이 다 그렇게 믿는데 어찌 손 목사만 이를 믿지 않는가? 하며 검사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1억 인이 그렇게 믿는다 해도 나는 그렇게 믿지 않소. 현인신이란 하나님 아들밖에는 있을 수 없소.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요 천황은 한 인간의 아들입니다. 천황이 신의 아들이란 것을 증거 해 주시오. 나도 예수가 하나님 아들 현인신이란 것을 말하겠소. 하며 아버지는 힘주어 말하니

손 목사가 말하시오, 무슨 증거로 그러는지? 하고 다시 물었다.

첫째 증거로 이 땅에 탄생하실 예수에 대해서는 4천년 전에 이미 예언되어 그 예언대로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천황의 탄생은 언제 예언이 되어 있었습니까?

 

둘째, 예수는 성령으로 동정녀 몸에서 탄생되었습니다. 천황은 우리와 같은 양부모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셋째, 예수는 33년 간 지상에서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셨는데 천황은 기사와 이적 등을 행했단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넷째, 예수는 인생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천황은 인생의 죄를 대속 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이 없습니다.

 

다섯째, 예수는 죽은 후 3일 만에 살아났습니다. 역대 천황 중 그 누가 부활한 사실이 있습니까?

 

여섯째, 예수는 부활 후 그의 제자들과 함께 40일 간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언, 성취, 처녀 탄생, 기사, 이적, 속죄, 구원, 부활, 승천 같은 사실이 하나님 아들임을 증거하지 않습니까? 천황이 신의 아들 됨을 나타내는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 이거 안 되겠네 하며 검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외에도 간수들과 문답한 조서들이 많지만 다 소개할 수 없다. 이렇게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에서 10개월 간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다 마침내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서 생명이 위독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검사 앞에 불려갈 때도 걸을 기력이 없어서 들것에 실려 다녔다.

 

극도로 쇠약해진 건강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렇듯 강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토대로 신념을 굽히지 않으니 일본 경찰이 아버지를 석방해 줄 리 없다. 그리고 그들 마음은 더욱 강퍅해 졌다. 그 형사는 아버지를 기소할 목적으로 10개월 간 아버지와 문답한 것을 500여 쪽의 조서(調書)를 작성해서 상부에 보고했다. 이로써 아버지는 미결수 생활을 마치고 광주구치소로 가게 되었다.

1941721일 아버지는 여수경찰서에서 광주구치소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같은 해 114일에 징역 16개월의 형을 확정 받고 그 후 곧바로 광주형무소로 옮겨가서 복역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