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0 14:33
11 ● 청주구금소 독방에서 쓴 시
빈 방 홀로 지키니 고적감이 밀려오누나
성삼위 함께 하여 네 식구 되었도다.
온갖 고난이여, 올 테면 다 오너라
괴로움 중에 진리를 모두 체험하리라
본가를 멀리 떠나 옥중에 들어오니
밤 깊고 옥 깊고 마음 가득 수심도 깊다.
밤 깊고 옥 깊고 마음 가득 수심도 깊으나
주와 함께 동거하니 기쁨이 충만하도다
옥중 고생 4년은 길고 긴 날이나
주와 함께 동락하니 하루와 같도다
지난 4년 편안히 보호해 주신 주는
미래에도 그리하실 줄 확신하노라
편지를 쓰고 시를 짓는다고 해서 불기 없는 방이 따뜻해질 리 없다. 온몸이 덜덜 떨려온다. 이러한 강추위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얼음덩이로 만들려는 것 같다. 독방 한쪽 구석에 붙인 아버지의 몸은 쭈그리고 앉으면 일어설 수도, 누울 수도 없게 꽁꽁 얼어붙는다. 사람의 육체는 상황 변화에 따라 움츠러들기도 하고, 심하면 동작을 멈춰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동작이 멈추면 그 사람의 생명도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날 밤은 유난히 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다. 영양실조에 독감까지 걸린 아버지는 온 몸이 불덩이처럼 열리 오르고 두통이 심해졌다. 그 추위 속에서 비몽사몽 헤매다가 의식을 일었다. 새벽에 아버지 방에 들른 간수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몸을 보고 얼어 죽은 줄 알고 곧 바로 어느 음침한 병실로 옮겨버렸다. 숨도 쉬는 것 같지 않고 꼭 죽은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음침한 병실이 분명했다. 하나님이 날 살리셨구나! 선뜻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엎어진 채 입에서는 절로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하는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간수가 오더니 흥! 이놈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구만! 하며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며 찬물을 끼얹었지만 감사에 넘쳐 저절로 나오는 찬송을 뉘라서 막을 수 있으랴.
이러한 모진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아버지의 양쪽 귀에선 진물이 줄줄 내리기도 한다. 감옥이란 다시없는 연단소인 것 같다. 만일 이런 옥고의 연단이 없었던들 훗날 어떻게 죽음을 불사할 믿음이 생겼을까 싶다.
그런 와중에도 한 달에 한번씩 도착하는 아버지의 편지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때는 동인 오빠에게, 또 어떤 때는 할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보내온 편지를 온 식구가 돌려 읽으며 더욱 강건해지는 아버지의 신앙심을 확인하곤 했다.
아버지의 편지가 올 때쯤이면 할아버지는 예감으로 미리 아는지 돌담 밑에 웅크리고 앉아 우체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우체부가 편지를 건네주면 할아버지는 손에 편지를 쥐고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들어 왔다.
편지를 개봉하는 할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떨렸고, 그 입에서는 우리 양원이, 우리 양원이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편지를 다 읽은 할아버지는 두 다리를 쭉 뻗은 채로 아이고, 양원아! 불쌍한 내 아들아 하며 통곡을 터트린다.
동인, 동신 보아라.
지식에 대하여는 비록 학교에 안 다녀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느니라. 지식은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인 즉 무슨 일에서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세계 대부흥사 무디 선생도 양화공장 직공이었고, 웅덩이에 내어버린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줄이야! 나일 강물 갈대밭 속에 내어버린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주가 될 줄이야! 통 만드는 너희들의 장래도 어떻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느냐?
그러므로 항상 근신하고 수양에만 노력하여 학식과 덕행에 많이 힘써야 한다. 분투와 건강한 뜻을 세우고 필사의 노력으로 끝까지 인내하여라. 옛날 요셉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믿고 의지하여 지덕의 완성에 나아가라.
1942, 12, 10
그래서 두 오빠는 공장을 갔다 오면 틈틈이 책을 읽었고 우리 동생들에겐 한글을 가르쳤다. 또 아버지는 우리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니 우리 모두의 키를 재어 보내 달라고 편지하곤 했다. 그럴 땐 큰오빠가 우리 동생들을 벽에 세워 놓고 키를 잰 것을 적어 아버지께 편지로 보냈다.
다음은 아버지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다,
동인 모친에게
,,,,,,,이상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달마다 한 번도 어기지 않던 당신의 면회가 이렇게 늦은 걸 보니 아마도 집안에 무슨 변이 생긴 것 같습니다. 누가 아픈지요? 무슨 별 일 인지요? 하여튼 면회를 못 오게 될 사정이면 편지라도 해주셔야 한가지만을 위해서 기도를 할 터인데 편지마저 없으니 무슨 일인가 하여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속히 소식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밤마다 꿈속에서 보는 당신의 마음과 몸에 근심과 불안이 가득해 보였는데 아마 근심 걱정에 눌려 병이 된 모양 같습니다. 그러나 근심과 걱정은 절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이란 병중의 병이요, 죄 중의 큰 죄가 되는 것이외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는 머리가 아프니 배가 아프니 손이니 발이니 하여 병인 줄 아나 근심이 병인 줄 아는 자 적고 도적질이나 살인이나 간음은 죄인 줄 아나 걱정이 죄가 되는 줄 아는 자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불신의 죄가 아닐까요? 믿음 없는 것 보다 큰 죄는 없는 듯 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면 주께서 권고해 주신다고 했는데 맡기지 않고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이 불순종이 아니겠습니까? 육신의 생각은 근심을 이루고 근심이 맺혀 병이 되는 것이요. 영적인 생각은 자족하는 마음을 생기게 하고 자족할 줄 아는 것은 일대 거부가 되는 것이올시다. 걱정은 병중의 큰 병이요 죄 중의 큰 죄가 되는 것이요, 자족은 부자 보다 나은 만족한 생활자외다.
내가 항상 말하거니와 고난은 참으로 큰 복이외다. 꿀같이 달게 받으사이다. 참고 견디기만 하면 입 보다 더 큰 복은 없는 법이외다. 부자나 학자나 모든 성인군자까지도 다 고난의 산물이 아닐까요? 고난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닐까요? 고난은 복을 거두는 씨가 아닐까요? 고난 중에 자기 과거의 죄를 다 깨닫게 되어 사죄의 은혜도 받고, 세상의 벗이 되어 죄 중에 빠진 자에게는 채찍이 되어 하나님에게로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육체의 염려와 생각의 염려는 우리의 신앙 생명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걱정의 돌짝밭이요. 염려의 가시덤불이외다. 그래서 이 걱정 근심이 우리가 받은 구원의 즐거움을 빼앗고 장래 하늘 영광을 못 보게 눈을 가리우게 하는 것이외다.
옛날 이스라엘은 몰록에게 장자를 바침으로도 기뻐하였거든 하물며 아브라함이 독자를 하나님께 바친 즐거움이리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선조가 되었고 오늘날 우리의 본이 되었나이다.
당신이 나를 위하여는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 주소서. 한 덩어리 주먹밥, 한잔의 소금국물의 맛이야말로 신선의 요리요. 천사의 떡 맛이외다. 당신은 엄동설한의 고생을 염려하나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 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이오 일꾼인 나를 밥을 먹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식량을 본래 적게 하셨으니 이 밥으로도 내게는 만족이요, 나의 키를 적게 하심으로 옷과 이불은 나의 발등을 덮으니 이만하면 만족이 아닐까요?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곱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이며 일하는 일꾼을 밥 아니 먹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주께서는, 적게 믿는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고 꾸지람을 하십니다. 염려할 것은 다만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없는 것을 탄식할 뿐이오니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외다. 안심하소서,,,,,,,
1942년 10월 14일
그 당시 아버지가 감옥에서 쓴 편지에는 항상 만족하라, 인내하라, 감사하라 등의 말이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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