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종신형을 선고받은 아버지

  선지자선교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돌아왔다.

1943517!

 

고난 속에서도 세월이 흐르기 마련이다. 여수경찰서에 검속 된 날이 1940925일이고 광주형무소에서 16개월 선고받고 수감된 날은 19411117일 임으로 그 날이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의 만기출소 일이다. 집 떠나신 지 거의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1943213일에 황덕순 고모께 쓴 편지에는

 

네가 4월경에 면회 온다고 했는데 517일이 출소일이니 한 달만 더 기다리면 517일에 옥문 전에서 반갑게 만나게 될 텐데 공연히 시간과 돈을 낭비해서 되겠나,,,,, 라고 쓰여 있었다.

 

이날을 어느 명절에 비할 수 있겠는가. 얼마 만에 보게 되는 남편이며 얼마 만에 보게 되는 아버지인가. 또 얼마 만에 보게 되는 아들인가. 달력에다 표를 해 놓고 달력만 바라보며 손꼽아 기다린 날이 아닌가! 애양원 식구들도 모두 함께 손꼽아 기다려 온 날이다.

 

엄마는(36)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새벽부터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매만지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동안 남편 없이 험한 세파를 헤쳐 오면서 겪었던 설움과 고초야 이루 말 할 수 없지만, 이제 남편이 돌아와 함께 사는데 그까짓 과거의 고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엄마의 들뜬 마음속에 자리한 뿌듯한 행복감을 눈치 챌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우리 다섯 남매에게도 미리 빨아 두었던 새 옷과 신발도 정성스레 준비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다가, 웃다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찌 보면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 남매들의 기쁨 역시 엄마에 못지않았다. 영원히 올 것 같지 않던 그 날이 왔고, 다시는 못 볼 것 같던 아버지를 이제 곧 만나볼 수 있게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대로 하늘을 날아 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손에 손을 잡고 아빠가 갇혀있는 그러나 곧 풀려나올 광주형무소로 향했다. 다른 때는 쳐다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게 여겨지던 높다란 담장도 오늘은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다.

 

우리들은 형무소 정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제각각 아빠를 만나는 달콤한 상상 속에 빠져든다. 나를 끌어안고 수염 난 뺨으로 내 볼을 비비는 아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동희가 벌써 이렇게 컸나? 하는 아빠,,,,,,

 

그러나 굳게 닫힌 철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엄마가 어디선가 먹을 것을 사왔다. 정문 앞에 쭈그려 앉은 우리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를 만난다는 희망에 찬 마음으로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아무 것도 부끄럽지도 부럽지도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기다림과 설레 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느새 정오가 지나 있었다.

 

그런데도 아빠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쩐 일일까? 우리 가슴속으로 슬금슬금 초조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대감 사이로 끼어드는 알지 못할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 심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우려의 말을 뱉어내게 했으리라.

엄마, 오늘 아빠 못 나오시는 것 아닐까요?

그럴 리 없다. 형기가 만료되면 당연히 나오는 거란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틀림없이 나오실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 역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이곳저곳을 서성이는 모습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갔다. 사방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더는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엄마가 담당자를 만나겠다며 형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도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사무실 쪽문은 열렸다. 그곳에서 창백한 얼굴로 엄마가 걸어 나왔다. 아빠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의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며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면서 나오는 엄마를 큰오빠가 달려가 부축했다.

 

우리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엄마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엄마의 넋이 빠진 듯한 모습은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확실한 말이었다. 우리는 이미 상태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들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윽고 엄마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파랗게 질린 얼굴을 좌우로 마구 흔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꼭 감은 어머니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는 출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의 그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뉘라서 어머니의 그 절망적인 기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기대가 무너지고 난 가슴속에 하얗게 쌓이는 그 허망함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그 간절한 갈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실망감에 다들 어머니처럼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윽고 목이 멘 어머니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오늘 종신형을 선고 받았단다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종신형이라니! 아버지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살아서는 감옥 밖의 세상을 볼 수 없게 한단 말인가. 그토록 학수고대하며 형이 만기되는 시간만을 기다려왔는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소망의 탑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종신형! 이것은 살아서는 이제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말이다.

 

어머니와 어린 우리들을 위로하고 달래는 큰오빠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다.

아빠 바보야! 고개 한번 숙이면 되는 걸 정말 바보야!

고인 눈물은 뺨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울지 마 하면서 울었고,

걱정 마 하면서 울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눈물의 홍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들의 걸음걸이는 패잔병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채, 온통 캄캄한 절망만 한 움큼 안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걸음에 힘이 있을 리 없었다. 범냇골 산꼭대기 다 찌그러진 판잣집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또다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껏 고생한 세월 속에서 그래도 아빠가 나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기대와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는 그나마 그런 기대도 품을 수 없는 막막한 뿐이었다.

 

이제 달력에는 아빠의 출옥일을 표시할 수 없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뛰논다는 것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아버지는 형기를 다 복역하고도 신앙의 지조를 무너뜨리지 않아 종신형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다음은 일본 재판부의 당시 종신형 결정문인데 이것은 해방 후 안용준 목사가 광주지방검찰청장 원택연 장로께 부탁해서 광주형무소에게 찾아낸 조서원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조서문들이 있지만 다 소개할 수 없다.

 

소화 18년 예구항(豫拘抗) 1

 

결 정

 

본적: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685번지

주거: 부산 범일정 1474번지

광주 형무소 재감중

목사 성손(性孫) 대촌양원(大村良源) 42

 

우자(右者)에 대한 광주지방법원 소화 18년 예구 제2호 예방 구금청구 사건에 관하여 소화 18520일 동원에서 한 결정에 대하여 항고인(피청구인)이 항고한 것을 당원은 조선총독부 검사 근등춘의(近藤春義)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를 좌()와 같이함.

 

주 문

본 건 항고는 이를 기각함.

 

이 유

본건 기록을 사열한 즉 항고인은 기독교의 목사로서 기독신관에 입각한 국가관에 의하여 여호와 신은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주재 섭리하는 지상의 유일 절대전지 신으로서, 황송하옵게도 천조대신께서도 그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여기고 또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인고로 할 수 없는 일이며 장래에는 아국까지도 포함하여 현존 세계 각 국가의 통치 보직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재림할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하는 영원한 이상 왕국이 실현된다고 망신하고 여사한 이상 왕국의 실현을 기구하여 그 반국가 사상을 다수 교도에게 선전 고취하여 우리 국민의 국체의식을 마비 동요시켜 이로써 국체 변혁을 촉진 달성시키기를 기도하고 이를 선동하였기 때문에 소화 1611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죄에 의한 징역 16개월에 처하여 소화 18516일에는 이 형기가 종결하게 되나 수형 중에도 우리 존엄한 국체에 대하여 아직도 각성함에 이르지 못하여 의연히 과거대로 기독교리에 의한 반국가적 궤격 사상을 고집하여 포기하지 않으므로 바로 사회에 석방할 때에는 다시 치안유지법 제 1장에 제시한 죄를 범할 우려가 현저하다고 인정되어 치안유지법 제 39조 제 1항에 의하여 항고인을 예방 구금에 처함이 적당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취지에서 나온 원 결정 역시 적당하므로 본건 항고는 기각을 면치 못하게 되고 형사소송법 제 166조 제 1항 후란에 의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함

 

소화 18916

대구 복심법원 형사 제 1

재판장 조선총독부 판사 고도행열랑 인

유동정행 인

축원소웅 인

 

 

우등본야

소화 18920

대구 복심법원 형사부

조선 총독부 재판소 서기 유전계

 

아버지는 종신형 결정서를 정신없이 읽고 난 후 두 눈엔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후 쓴 시

나를 치는 모진 질고여

너의 강한 세력으로 나를 쳐보라

모진 질고의 내면에 묻혀 있는

신애(神愛)의 진리를 맛보리라.

 

당시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난 후의 심경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걱정과 근심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였다.

 

광주형무소에서 16개월 간 복역하는 동안 온갖 방법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시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라 여기며 동방요배와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꿋꿋이 신앙을 사수하였던 아버지는 종신형 선고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버지가 종신형을 받은 직후에 보인 반응은

, 좋습니다. 나는 감옥에 있어도 예수와 함께 살 것이고, 밖에 나가도 예수와 함께 살 것인즉 예수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나를 감옥에 가둠은 나에게 유익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될 대로 될 것이오니 주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따르리이다였다.

 

기독교 신앙이란 고난을 통해서 더욱 단련된다는 아버지의 신앙관을 잘 보여 준 것이다. , 아버지는 일본은 망한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우상숭배 하는 나라는 다 망했다라고 말했다.

 

세상에서는 더할 수 없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일 속에서도 아버지는 만족한 생활자로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와 섭리를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