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0 14:39
18 ● 일본이 손을 들었다
생략
그런데 실제로 아버지는 부활하듯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어느 황혼 녘 거지 중 상거지 형상을 하고 아버지가 고아원에 간신히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행색은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다. 수염은 자랄 대로 자라 턱까지 길게 흘러내렸고 얼굴빛은 폐결핵 말기 환자처럼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으며 눈은 십리나 들어 간 듯 퀭하니 뚫려있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은 흡사 송장이 서있는 것만 같았다.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 그대로였다.
신발은 다 떨어진 슬리퍼였고 옷은 푸른 죄수복 그대로였다. 그러나 움푹 패여 쑥 들어간 두 눈에서는 형언키 어려운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8월 17일 감옥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아무도 마중 나간 사람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그 가족이 갈아입을 옷과 신발 따위를 가지고 출옥 마중을 나갔지만 우리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 다니고 숨어 지내는 바람에 해방의 소식조차 그 즉시 전해 듣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두 오빠는 두 오빠대로, 산 속이나 인적이 뜸한 곳만을 전전하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2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해방된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누가 아버지를 마중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갈아입을 옷과 신발을 챙겨줄 수 있었겠는가. 다만 하나님의 말 없는 마중을 받았을 뿐이다.
아버지는 고아원에서 푸른 죄수복과 슬리퍼를 벗어버리고 몸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신도 갈아 신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위해 준비해둔 옷이 있을 리 없었으니 기껏 골라 입은 옷이 몸에 맞을 턱이 없다. 뼈와 가죽만 남은 몸에 헐렁한 옷을 걸치고 서있는 모습은 들판에 세워둔 허수아비 형상이었다. 고아원 원생들이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왔다며 우르르 아버지 곁으로 몰려든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흡사 동물원에 데려다놓은 희귀한 동물을 구경하듯 아버지를 쳐다본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누추한 아버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남들의 눈에야 어떻게 비치든지 그분은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아버지다.
내 작은 가슴은 해후의 기쁨으로 덜덜 떨리다 못해 활활 불이 붙는 것 같았다. 황홀한 꿈 속 같은 만남, 극적이고 극적인 해후가 아닌가.
어디 보자. 이놈들아, 귀여운 내 새끼들. 그동안 얼마나 공생이 많았느냐? 아버지는 우리 남매를 한꺼번에 얼싸안았다. 우리는 아빠! 한마디하고는 아빠의 품속에 안기었다. 나와 동장이는 아버지의 체취를 깊이 들이마시며 그 품에 안기자마자 그동안 쌓였던 설움들을 모조리 토해놓기 시작했다.
아,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아버지의 눈에도 엷은 물기가 어렸다. 이렇게 좋은 날이 또 있을까? 그러나 온 국민이 다 기쁨으로 맞아들인 그 날. 주체 못할 기쁨 속에서 아픈 가슴을 달래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주기철 목사님 아들 영해 오빠다.
이 기쁜 날에도 영해 오빠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앞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영해 오빠는 목사님! 하고 한 마디 불러놓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아버지를 꽉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설움에 복 바친 영해 오빠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엉 목놓아 울었다. 제가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영해입니다. 흐윽 흐으흑
아, 네가 바로 감옥에서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이란 말이냐? 내가 가장 존경하던 주기철 형님 아들을 보니 마치 기철 형님을 본 듯하구나. 아버지 역시 그렇게 말을 해놓고 나서 그 불쌍한 아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한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서로 안고 흐느끼기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보다 다섯 살 위인 주기철 목사님을 아버지는 평소에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해왔다. 아버지는 영해 오빠를 만나자 주 목사님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넋을 잃고 울고 있던 영해 오빠가 갑자기 주먹으로 눈물을 쓰윽 닦아내더니 구석에서 도끼를 찾아 들고 고아원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원생들이 우르르 영해 오빠 뒤를 따라갔다.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손에는 도끼 감아쥐고 뛰쳐나갔으니 일이 나도 단단히 났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영해 형이 도끼 들고 달려간다
무순 일이냐? 영해 형이 왜 저리 실성 한 듯 뛰어가냐?
원생들이 제각각 소리소리 지르며 영해 오빠의 뒤를 쫓아갔다.
영해 오빠는 큰 공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 고원에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둔 가미다나 우상이 세워져 있었다. 공원을 오고 가든 사람들에게 절을 하라고 만들어 세워 놓은 가미다나 우상이다. 영해 오빠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도끼를 치켜들어 그 우상을 단 한방에 부서 버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자기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은 해방의 기쁨도 맛보지 못하고 이 좋은 날에 이 밝은 산하도 보지 못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가 버렸으니 그때 오빠의 가슴은 얼마나 미어졌을 것인가? 억울하고 분해서 도저히 묵묵히 참고 있을 수 없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박살을 내고 싶었으리라. 그런 분노가 기미다나 우상을 부수게 했으리라.
평소에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영해 오빠였는데 그 날만은 가만히 참고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온화하고 매사에 긍적적인 그 오빠도 다들 기뻐 날뛰는 그 날의 그 들뜬 분위기를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영해 오빠는 우리 가족과 참으로 깊은 인연을 맺은 사이였다. 두 오빠가 통 공장에서 일할 때에도 함께 일했다. 그 시절 영해 오빠에게는 우리 집이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마음의 안식처였다. 우리 가족과 고락을 함께 하며 어둡고 험한 세월을 같이 건너 온 오빠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1944, 4, 21) 소식을 가장 먼저 우리 집에 울분과 함께 전하기도 했던 오빠이다.
한날 우리 가정 예배 후 영해 오빠가 오더니 사모님, 아버지가 오늘 감옥에서 순교하셨어요 하며 흐느낀다. 이 말에 놀란 우리 가족들 모두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고 그 때 눈물범벅이 된 영해 오빠의 얼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즉시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소식을 옥중의 아버지께 1944년 5월 3일 편지로 알렸는데 그 때 아버지의 답장엔 이런 말이 왔다.
,,,,,,, 그런데 나를 유독 사랑하시던 주기 형님의 부음을 듣는 순간 나로서는 천지가 황혼하고 수족이 떨립니다. 노모님과 사모에게 조문과 위안을 간절히 부탁하나이다. 그런데 병명은 무엇이며 별세는 자택인지 큰댁인지요. 알려주소,,,,,,,
죽 형님 또는 큰댁이란 단어는 모두 암호이다. 그 이유는 당시 감옥 안에 죄수와 서신 왕래 할 땐, 친가족, 친척 외에 기사는 못쓰도록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기는 주기철을 뜻하며큰댁은 감옥소를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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