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

  선지자선교회

아버지는 1905913일 수요일, 여수내무서 율촌분주소 소장 및 내무서원들에 의해 잡혀가서 서울이 수복되던 날인 928일에 여수 미평과수원에서 총에 맞아 48세로 순교했다. 그전에 여러 차례 피신할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는 한사코 거절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 서울에 있던 일부 목사들이 남쪽으로 몸을 피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거야말로 큰일이로다. 이 민족의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 채찍을 드셨는데 서울에서 회개를 외치다 제물이 되어야 할 목자들이 양 떼를 두고 내려왔다니 이를 어떻게 할꼬? 나라도 올라가야 하겠구나 하고 걱정하던 아버지였으니 피난은 애당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버지는 실제로 상경하려고 했으나 길이 열리지 않아서 못 올라간 것이다. 721일 순천에서 내려온 나덕환 목사님이 피난을 권유했지만 아버지의 거부 의사는 완강했다.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하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 이름으로 죽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나는 이왕 감옥에서 죽었을 사람입니다. 8,15 해방 이전에 죽지 않고 더 산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724일인가 박재봉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내려온 김홍복 집사님이 간곡히 권할 때도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김 집사님은 아버지에게 한국 교회의 장래를 위해 우선 피하고 보자며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애양원 교회가 중요하듯이 한국 교회의 장래 역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민족의 장래가 달려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잠시만 피신했다 오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바로 그 점을 짚고 넘어 갑시다. 한국 교회의 일부가 애양원 교회요, 한국 민족의 일부가 애양원 식구들 아닙니까? 한 교회의 양떼들을 무시하고 한국 교회를 중요시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노회가 분리되고 총회가 싸움터로 변하고 남북이 갈라지고, 지도자들이 필요할 때는 교회를 지킨다고 하고 위급할 때는 나 몰라라고 양 떼들을 팽개치고 달아나니 이대로 갔다가는 이 나라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까 두렵습니다.

 

이 난국에 가장 급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양을 먹이던 목자가 내 양떼의 신앙을 돌봐야 할 때입니다. 나는 비록 불의 불충하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이번에 제물이 되어볼까 소원합니다.

 

그분은 더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그래도 우선 살아야 일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참 틀린 말이오. 내가 조금 전에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희생의 제물이 되겠노라 말하기도 했거니와 우리 기독교는 본시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 잘 죽기 위한 종교인 것입니다. 꼭 살아서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씨가 죽어야 싹이 나듯이 죽어서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724일 낮에 철민 오빠도 달려 와서 아버지를 뵙고 애걸복걸 사정했다.

아버지 이대로 있으면 죽는 건 뻔한 일입니다. 어서 나와 함께 피신해요. 하며 피신을 권했지만 아버지의 고집도 대단한 고집이라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할 수없이 어머니에게라도 권해서 함께 피난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만났으나 어머니 역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피난처가 어디 있느냐 피난처는 주의 품뿐이다. 재림도 가까웠는데 어디로 간단 말이냐?

 

사람들이 아버지를 강제로 배에다 몇 번이나 태웠으나 도로 뛰쳐나왔다. 몸도 성치 않는 나환자들을 버리고 나만 살자고 어디로 피난 가겠느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며 결국 아버지는 나환자들 때문에 피신을 못했다. 그래서 서울이며 전주 등지에서 내려온 이들과 애양원 식구들 중 일부는 남해도를 떠났지만 부모님은 남은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꿋꿋이 애양원을 지켰다.

 

여수는 727일에 완전히 붉은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다.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방방곡곡엔 온통 붉은 물이 들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날뛰며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렀다. 여순 반란 사건 때 전세가 불리해지자 어디엔가 숨어있던 좌익인사들이 제 세상 만난 듯 활개치며 돌아다녔고 우익인사들은 여기저기서 반동분자로 몰려 잡혀가고 학살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느 동네에 숨었던 경관 몇이 죽었느니, 서울서 피난 오다가 어느 목사가 순교를 당했느니 어느 부자가 인민재판을 받아 학살당했느니 하는 소문이 빗발처럼 들려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까지 멀쩡히 살아있던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어떻게 돌아 가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진리가 무너지고 불의가 판치는 무법천지가 되어갔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환자들은 교회 나무 바닥을 뜯어내고 아버지를 그 속에 숨어서 기도하라고 권하기도 했고 또 병원 내에다 사과 궤짝을 포개놓고 그 뒤에 숨어서 기도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당신들이 왜 나를 괴롭게 하오? 제발 이러지들 말아요. 이것이 날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비겁한 자로 만드는 것이외다. 교회를 두고 내가 어디를 간단 말이오,,,,,, 라고 말씀하셨다.

 

애양원도 심각한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다. 점령군인 인민군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그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반대표시를 했다간 그 자리에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환영하고 지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반대할 것이다. 순교를 두려워하지 말라. 순교보다 복된 은혜는 없다고 설교하고 다니는 아버지인데 목숨이 아까워 지조를 굽힌다고 하면 화를 낼 것이다.

 

실제로 애양원 총무과에서는 차, 과장, 학교직원, 제직 및 유지 등 약 40여명이 모여 이 일을 놓고 여러 번 토론이 벌어졌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그들의 마음을 바로 잡아주곤 했다.

 

목사님, 환영행사 같은 것은 못한다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인공기 정도는 달아 주어야 애양원이 무사하지 않을까요?

 

누군가 말을 꺼냈다. 이에 아버지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안됩니다. 국기를 단다는 것은 그들을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깨끗이 살다가 죽는 게 낫지 무신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되오.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앞장서서 막을 테니 염려하지 마시오.

 

아버지가 단호하게 그들의 입을 막자 그래도 마음에 불안이 가득한 그들은 목사님을 잡아가고 나서 또다시 이 애양원을 못살게 괴롭게 하면 그땐 어찌 합니까? 하고 물어왔다.

 

그럴 땐 아버지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순교하십시오. 그런 정신으로 견디십시오.

 

그리고 아버지는 평소부터 해오던 말씀을 했다.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죽거나 노방 전도하다 죽거나 고요한 곳에서 기도하다가 죽거나 할지언정, 약사발 들고 앓다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하던 대로 아버지는 순교를 각오하고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며 신앙을 지켜 나갔다. 또 신앙이 약한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서 만일의 경우 신앙이 좌절되지 않도록 했다.

 

공산당들이 닥치기 일주일 전부터 애양원에는 하루 세 번씩 종을 쳐서 모여 부흥집회를 열었다. 풍금 반주도 필요 없고 인도자도 필요 없다. 손뼉을 쳐가며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나환자들은 마치 총칼 메고 전쟁터를 돌진하는 용사들 같다. 아버지는 일주일간의 부흥회 기간 중 마지막날 토요일에는 모든 나환자들에게 철야기도와 금식까지 하게 하셨다.

 

첫째도 순교요, 둘째도 순교요, 셋째도 순교입니다. 순교를 각오하십시오. 때가 왔으니 잘 살려고 노력 말고 잘 죽기를 원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대접받았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순교할 때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생활화된 말씀이다. 아버지는 평소 공산당이니 좌익이니 따위의 말씀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잡히기 전 하루 전날 밤 예배 시간에 아버지는 죽도록 충성하라 (20:10)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그 설교의 내용은 어떻게 살아야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떻게 죽어야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신앙과 삶을 꾸밈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 가운데 유독 순교에 대한 말씀도 많았는데 어쩌면 그때 이미 아버지는 순교를 예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설교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나환자들에게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설교였다.

 

실제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죽도록 충성하는 것인가?

 

첫째로 충() 자는 입 구()와 마음 심()을 요지부동하도록 한데 못질해 놓은 글자입니다. 즉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음에서 움직여 행실로 합치되는 것이 충입니다. 감사와 회개와 찬송과 기도가 합치되어야 할 것이요, 가족이나 친우를 권면하는 말과 자기의 생활이 합치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의 언어와 행동이 합치지 못할진대 어찌 충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로 자기가 가진 힘대로 힘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셋째는 죽음을 무릅쓰는 모험적 신앙이 충성입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죽음을 겁내지 않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려 죽기까지 하려는 신앙이 충성입니다. 진심으로 솔직하게 단순하게 일편단심으로 주를 사랑하는 굳은 마음의 결과로 희생이 되는 법이니 이것이 자연스러운 순교일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간 순교자들은 모두가 그 신앙생활에 있어서 순교의 준비가 평상시부터 되어 있었지 우연히 일시의 기분으로 된 일은 절대 없습니다.

 

넷째로 죽는 날까지 참는 힘이 또한 충성입니다. 매일 당하는 모든 일에서 매사 매사를 해 나가면서 참고참고 또 참아나가면서 일보 전진하는 생활이 충성입니다. 동시에 순교의 생활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일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나가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것이 순교입니다. 그래서 땀이 귀한 것이요, 피가 귀중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내 날이요, 지금 이 시간이 내 시간인줄 아는 자는 날마다 충성할 수 있고, 시간마다 순교의 각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만족해 가면서 죽도록 충성을 다 해야 합니다.,,,,,,,

 

인민군과 내무 서에서 그런 아버지의 신앙심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섣불리 붙잡아 가지 않는 것은 좀 더 두고 보면서 회유를 하여 제 편으로 만들어 보려는 의도인 것 같기도 했고 애양원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단합된 힘이 은근히 겁나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환자들이 모인 집단을 때려 부수기 위해 무장한 병력이 무턱대고 출동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손들고 인민군을 환영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틀림없이 양식이 떨어졌을 텐데 식량을 무상으로 배급해 준다고 하는데도 받으러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913일 점심때가 지난 무렵에 율촌분주소 소장을 비롯한 다섯 사람이 무장을 하고 애양원으로 들이닥쳤다.

 

문 열어 하는 요란한 소리에 애양원에 있던 큰 세퍼드가 뛰어나와 요란스럽게 짖었다. 그들은 즉시 개한테 총을 쏘았고 개는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다. 여기에 놀란 문지기가 이 소식을 알리려고 원내를 뛰어 들어가는데 이 문지기에게 또 총 한 방을 쏘니 그 역시 말 한 마디 못 하고 쓰러졌다. 그들은 오자마자 아버지를 찾았다.

여기 손양원 목사인지 개새끼인지 있단 말을 듣고 왔다. 만일 손양원 목사 안 내놓으면 여기 있는 문둥이 동무들 전부 쏴 죽이겠다.

 

출타중이라 애양원 안에 없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손 목사가 여기 있다는 걸 다 알고 왔다. 우리가 들어가서 찾으랴?

그들은 좀처럼 돌아갈 기세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찾아왔다고 해서 몸을 피할 아버지도 아닌 바에야 궁색하게 거짓말이나 늘어놓을 까닭도 없다 싶었다. 그들을 상대하던 박 장로님이 청년 한 명을 시켜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하게 했다.

 

그 때 아버지는 그 날 밤 삼일예배 때 할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하여 잠시 방에 누워 있었다. 밖에서 청년이 아버지를 부르자 아버지는 다급한 그 목소리를 듣고 사태를 짐작한 듯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가볍게 말했다.

누군가 날 찾아온 모양이군.

, 내무서에서 총을 들고 왔길래 안 계신다고 했지만 다 알고 왔다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이때 아버지는 주위의 공기를 알아차리고는 양복을 입으며,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놓고, 기타 귀중품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놓았다. 아버지는 다소 창백한 얼굴로, 그러나 결연한 태도로 방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교회당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평소에 애양원 환우들에게, 누구든지 날 찾아오거든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전하시오 하고 당부하곤 했는데 그 말씀대로 기도하기 위해 교회를 찾아간 것이다.

 

애양원 직원들은 총을 앞세운 공산군을 교회 안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구두를 신은 채 한참 기도하고 있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동무가 손 목사요?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아버지는 그 물음에는 대답도 없이 한참동안 더 엎드린 채 기도를 계속하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손 목사요.

잠깐만 갑시다. 조사할 일이 있으니.

이미 사태를 짐작한 듯 아버지는 아무 반항도 없이 따발총을 든 공산군의 감시를 받으며 순순히 그들을 따라 나섰다. 평소 때 허리 아픈 증세가 도진 아버지는 창백해진 얼굴을 숙이고 지팡이를 의지하며 가만가만 걸어갔다.

 

애양원 환우들이 끌려가는 아버지 뒤를 주춤주춤 따라갔다. 그러자 그들은 동무들, 더 이상 따라오지 말고 조용히 하시오. 손 목사는 곧 보내 주겠소. 소란을 피우면 손 목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알아두시오 하고 총부리를 휘두르며 위협했다.

 

이 총부리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양원 식구들은 점점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정들었던 나환자를 남겨두고 애양원 정문을 떠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에덴동산과 같은 애양원의 오후! 가지각색 아름다운 꽃들과 예쁜 새들은 한데 어울려 아직도 한창이구나. 너희들은 죽음을 향해 마지막 길을 떠나는 아버지를 아는지, 모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