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뜩’ 그 깨달음

2009.02.12 02:01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퍼뜩’ 그 깨달음
선지자선교회

1. 백영희목사님께서는 영감으로 깨닫게 해주신 그 현상을 표현할 때 어떤 때는 ‘퍼뜩’이라는 말로 나타내셨습니다.

2. 구속 받은 성도라면 영감으로 깨닫는 정도는 차이가 있겠으나 영감으로 ‘퍼뜩’ 깨달아지는 그 성격은 동일하다 하겠습니다.

3. 아래는 ‘퍼뜩’ 깨달은 그 영감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을 백영희목회설교록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2. 3. 22. 월 새벽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바로 깨닫지 못한 성구가 있으면 그 성구는 여기 호주머니에 적어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오랫동안 여기 적어 있지 안 해도 기억하고 있으나 그걸 깨닫지 못하는 의문 중에 있는 그런 성구를

어떨 때는 목욕탕에 가서 퍼뜩 깨닫게 되고
어떤 때는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에 퍼뜩 깨달아지고
어떨 때는 변소 가서 용변할 때에 깨달아지고 이렇게 깨달아질 때에  

퍼뜩 빛이 오니까 아 환하게 보여서 깨달아졌는데 깨달아진 그것을 아 깨달아졌다 하고 나니까 뒤에 가버리고 없습니다. 없으니까 여러 번 속았기 때문에 깨달아지면 그 자리에 갈 가는 것도 안가고 급한 것도 아니고 변소 들어갔다가 나오지도 안하고 자꾸 재론 재론할라 하지만 붓을 안 가지고 있으니 기록하지는 못하겠고 또 새기고 또 새기고 수십 번 새겨서 자기에게 박히도록 이렇게 깨달아 새기고 난 다음에 이제 그 자리를 떠나 나와도 나중에 보면 어디로 갔는지 없어서 다시 그걸 깨달으려고 자꾸 이래 기도하고 생각하면 다시 그것이 새로 발견이 되어 지고 이렇게 되는 것이 발단적인 이 깨달음의 지식인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안 믿는 사람이 과학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발명과 같은 것이라 그 말이요.

이러니까 그것을 기록하고 이래 가지고 오랫동안 깨닫고 자기 혼자 그와 같이 살고 이렇게 한 것이 그것이 그 사람의 교리와 신조가 돼 가지고 그 말로 발표가 되고 나가는 것이니까 그렇게 쉽게 알아지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년 7월 19일 화 새벽

그러기 때문에

설교에나,
자기가 움직이는 무슨 일하는 작업하는 데에서나,  
자기는 밥 먹는 데에서나,
길을 훨훨 가면서도

'주님이 이 길 가는 가운데에서 나에게 인도해 주시는 그 인도를 받겠다.' 어떤 사람은 변소 가 가지고서 용변하면서 '주님이 혹 여게서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지 모른다.' 이러니까 용변하다가 그 일을 턱 하나님이 가르쳐서 '아이쿠,' 그러면 원청 복잡한 일이니까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그만 거기 가 가지고서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한번 퍼뜩 지나가 버리면 모르니까 거기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 미친 사람 비슷하지마는 자꾸 재독을 합니다. 수십 번 재독하요, 안 잊어버리려고. 수십 번 재독해.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7. 11. 4. 수 새벽  

성경에 어떤 일이든지 ‘이거 내가 모르니까, 난해절이고 모르니까 그만 그냥 둬 두자’ 그래서 안 됩니다.억지로 또 알라고 해도 안 됩니다.

다만 그것을 자기가, 억지로 알라 해야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알려 줘야 되니까 그것을 항상 가지고 기다릴 의무가 있습니다. 기다리며 ‘내가 이거 모르니까 주님이여 요거 가르쳐 주옵소서’ 이럴 때는

변소간 갈 때 가르쳐 주기도 하고,
밥 먹을 때 가르쳐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데 가르쳐 줄 때도 있고,
또 심방할 때 가르쳐 주기도 하고
자기가 길을 걸어갈 때 가르쳐 주고,

당신이 가르쳐 주고 싶은 대로 가르쳐 주지 그분이 잘 알아 가르쳐주기 때문에 언제 줄지 모르기 때문에 ‘이거 내가 모르니까 이거 알려 주옵소서’ 하고서 기다리고 있는 그것은 우리가 의무입니다. 기다리고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뭐 당장에 연구를 한다고 알아지는 것 아니오.

그러기 때문에 ‘책상에서 나는 알겠다’ 책상에서 아는 사람 쳐놓고 안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책상에서 연구해 가지고 알았다’ 하면 그건 거짓말쟁이오. 왜? 모든 사람이 경험할 때 자기가 다 그것 알고 모든 생활 하는 이런 생활에서 알려 주고 저런 생활에서 알려 줬기 때문에 당신이 알려 주고 싶은 대로 알려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0. 5. 14. 수 새벽

자기의 모든 사정을 하나님 앞에 낱낱이 다 의논을 해서 그 사정을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가르쳐 주지 안해도 그렇게 하나님한테 묻고저 의논하는 자에게는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도 그럴 때에 심령이 어두울 때 있고 또 가르쳐도 모를 때가 있다 이기요.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도한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고 꼭 나와 함께 계시다가

어느 일을 할 때에
누구를 만나서 말을 할 때에
혹은 잠깐 동안 무슨 고요한 공상을 할 때에

그럴 때에 가장 우리로 하여금 깨닫기 쉽고 알아듣기 쉬울 그 형편과 분위기를 봐서 그때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아무리 엎드려서 아무리 눈을 감고 아무리 누구에게 돌아다니며 이걸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모르던 그런 것을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구하는 이런 사람들은

혹은 자기가 변소간에 들어갔을 때에 그때 갑자기 뭘 자기에게 턱 넣어 줘서 이기로구나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깨달아지고

어떨  때에는 식사를 할 때에,

어떨 때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내 마음이 잠깐 동안 무슨 그 일을 하면서 그 마음이 공상같이 되어졌을 때에 그때에 그것을 딱 넣어줘서 그 가장 내가 알아듣기를 잘하고 나에게 기억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회에 우리에게 알려 줘서 자기가 기도할 그 시간에 어떻게 해야 될 것을 하나님이 알려 바로 줘서 받는 것도 있지마는 이렇게 기도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자기 모든 형편 사정을 바로 살아 나갈 수 있도록 할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기회를 타 가지고서  하십니다.

우리는 혹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그 사건을 잊어 버려도 주님은 잊어 버리지 않습니다. 잊어버리지 안하고 그것을 꼭 듣고 있다가 듣고 있다가서 가르쳐 주십니다.

그 성경을 깨닫는 것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깨닫는 것도 내가 이 성 경 이것을 무슨 뜻인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고 싶은 그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것도 찾는 사람 있지마는 사람들이 말한 주석이나 그런 걸 찾는 것 보다도 그걸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이기 뭐인가 하나님한테 가르쳐 달라는 그런 마음을 놓지 아니하고 이래 있을 때에 그 지나가는 때에 뭐 이런 것 저런 것 볼  때에 그때에 자기에게 깨닫게 해 주시 가지고서 그걸 깨달아 보면 이것은 그저 사람들이 생각하기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 거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깨달은 것은 확신이 있습니다. 요거는 진리다 뭐 자기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요거는 바로 깨달은 고런 마음에 확실히 영감이 와 가지고 깨달아 진 것은 주석이 뭐 열개 백개가 틀리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그것이  맞다 이기요.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0. 7. 26. 토 새벽

이제 봉지를 떼 놨으니까 교역자 되는 분들은 자기가 가 가지고 그것을 명상으로 연구하고, 성경 상고로 연구하고, 명상으로 연구하고, 또 도리를 명상하면서 현실에서 실행하면 자기 명상하는 것이 하나씩 둘씩 알려집니다.

책 놓고 무릎 꿇고 기도한다고 알아지는 것 아니오. 요것을 명상하면서 자기가 알려고 하면  

변소간에 가다가 알아지고,
세수하다가 알아지고,
또 누구하고 얘기할 때 알아지고,

하나님 언제 가르쳐 줄지 몰라.

그거는 당신이 가르쳐 주고 싶을 때 줘.
그러니 그때가 어느 때인고 하니 내가 생각한 것을 잊어버릴 때라.
그때에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딱 가르쳐 준다 말이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1. 6. 5. 금 새벽

일하면서
길가에 가면서
차에 가면서도 그 뭐 깨달을 수 있겠소.

성경보는 양성원 학생들은 성경보니까 거서 깨달을려고 애를 쓰지마는
또 잠시 나오든지  
변소간에 가든지
밥을 먹든지
먹으면서 그 세 가지 언제든지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다 말이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7. 3. 9. 월 새벽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이거 자꾸 밤낮 생각이 그것이니까 생각하다가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변소 가다가, 그걸 변소 갔다가 용변하다가 그게 깨달아졌다 말이오. 용변하다가 깨달아지니까, 모르는 것 깨달아지니 눈 밝아진 거 아닙니까? 깨달아졌어. 깨달아졌으면은 그만 깨달아졌으니까 ‘아, 급한 일 봐야겠다.’ 안 가.

자, 깨달아졌으면 이걸 종이도 안 가지고 왔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지 이걸 그만 그때 그만 놓치면 잊어버릴터이니까, 이 깨달은 진리를 잊어버릴 터이니까 잊어버리지 안할라고, 용변하면서 용변 다 했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또 익히고 익히고 자꾸 익히고 몇 십 번이든지 익혀서 ‘내가 여게서 나가도 종이에 쓸 때까지 잊어버리지 안해야 되겠다.’ 요렇게 생각을 하고 나가도 나오면 깜깜하게 잊어버려 버리요. 모르는 것 많애. 이러니까 안 잊어버릴라고 야단을 쳐.

애를 써. 이렇게 초비상적으로 비상뿐 아니라 초비상이라. 비상에 초월한 초비상적으로 주님에게 달려갔어. 이게 있어야 돼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09. 10. 토 새벽.

이거 없이 성경을 자꾸 많이 좔좔좔좔 읽기만 하고 외우기만 하고 이러니까  학생들 때는, 어릴 때는 그들이 깨달음은 아직까지 가질 때가 시기적으로 아니기  때문에 외워만 놓으면은 자연히 자기 생활에서 깨닫게 되는 때가옵니다.

변소 서도 깨닫고
길 걸을 때도 깨닫고

생각만 있으면
또 이야기 할 때도 깨닫고  
이래 깨달아지지마는 조금 더 장성한 사람들은 잘못하면 자꾸 외식으로 삐끌어지기 쉽다 말이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8. 26. 월 새벽

그래도, 그래 놓으니까 뭐 어데서 뭐 이단이니 그래 쌓아도 이단은 그저 그래도 그 사람들이 좀 마음에 그래 쌓는 게 좋아요. 이단이라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그것보다는 이단이라고 하는 그게 나는 더 좋아요.

왜? 이단이라 하는 그거는 틀렸다 하니까 이거 틀렸다 말했으니 이거 참 틀렸는가? 안 틀렸는가? 좀 자기가 착안을 해 가지고 좀 궁구해 보면 좋겠어요.

너무도 많은 실험과 경험을 해 가지고 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 말해도 염려되는 그런 말은 별로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설교할 때 툭 튀어 나오면 이걸 어째 한번 설교를 한번 해 놓으면 이거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것이 옛사람이라는 이것을 제가 대구 주암산 집회 때에 이래 퍼뜩 한번 말해 놓고 그걸 말을 표시를 그때 왜 뭣 때문에 이 말 했는고? 이 말 해 놨으니까 이 뒤에 손 골에 돼지 몰리듯이 얼마나 몰릴 것이고 이래 놓고 몰릴 것이라 하니까 지금 몰리지 않으려고 자꾸 이래 성경을 상고해 가지고 딱 알고 난 다음에는 담대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내 입에다 넣어서 툭 튀어 나오도록 해가지고 날 고생을 줘 가지고 나로 궁구해 가지고 아무데 가도 이거는 틀림없는 변증을 하고 증거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렇게 나를 길러 만들어요. 오늘까지 나를 하나님이 기르시기를 그래 길러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거 네 가지 말한 것도 그것도 자꾸 하나님 앞에 뭣을 무슨 말씀을 증거해 주시렵니까 이래 물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 주신 그 설교 제목이라야 내가 확신을 가지고 하지 그저 이 무슨 주석이나 뭐 보고 다른 사람이 이런 설교 하니까 나도 이런 설교 하겠다 그런 설교는 내가 평생 해보지를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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