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7 23:07
■ 백영희 목사님을 꿈에서 꿈꾸다
몇 년 만에 한번 씩은 백영희 목사님을 꿈꾼다. 이번에는 보름 전인가 꿈을 꾸었다. 어떤 때는 자고 일어나서 어떤 꿈을 꾸었는지 명확히 떠오르는데 어떤 때는 꿈을 꾼 것은 알겠는데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 꿈은 그 중간 정도였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족한 종은 보통 꿈을 잘 꾸지 않는데 꿈을 꾸더라도 거의가 일어나면 꿈을 꾼 여운이 없다.
부족한 종은 서부교회 중간 반사 시절에 백영희 목사님께 사춘기적 반항을 내내하였다. 그러니까 적대적 반항이 아니라 사춘기적 반항이었다. 사춘기 자녀의 부모가 되어 본 분들이라면 사춘기의 반항이 어떤 성격인지 너무 잘 알 것이다.
자녀가 사춘기 반항을 한다고 자기 부모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시기의 반항은 자식이 부모이니까 반항을 하는 것이다. 사춘기 반항을 하더라도 부모 자식 간에 사이는 서로 간에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이다.
이와 같이 부족한 종이 과거에 백영희 목사님께 반항을 많이 하였더라도 과거 그 당시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신적 반항을 한 적이 없다. 그런 것은 신앙의 아버지이셨기 때문이다. 신앙으로 낳고 기르고 주의 종으로 등용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 제일의 성경적 교리와 신조와 행정의 최고 부한 형편에 있었다.
부족한 종이 백영희 목사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면목이 없다. 지금 생존하셨더라면 마구 야단은 치지 않으실지라도 야단맞을 것이 보일 것이 분명하다.
백영희 목사님께서는 권위가 크셨지만 인자하심도 크셨다. 그래서 저만치쯤 있는 것이 편하지만 또한 가까이 있는 것은 더 좋았다. 좋았다기보다는 심령이 기쁨으로 벅찼다.
얼마 전에 백영희 목사님을 꿈에서 꾸고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전혀 다 잊어버렸는데 지금 꿈 꾼 것이 생각 난 김에 이렇게 글을 적어본다.
- 2019. 10. 17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