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아닌 예언과 영감의 두 성격

2010.07.06 21:33

김반석 조회 수: 추천:

■ 예언 아닌 예언과 영감의 두 성격
선지자선교회
1. 예언 아닌 예언

요즈음도 예언파 지시파가 있는 모양입니다. 한창 예언파 지시파라 해서 난리를 피우다가 그 정체가 무엇인지 탄로가 나서 사그라졌는데 요사이 또 날뛰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이리하여 예언파의 폐해를 실제 있은 사실이라 하면서 어느 분이 들려주었습니다. 잘 사는 가정에게 남편과 이혼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하여 그 가정을 쪼개서 풍지 박산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이렇게 예언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고 마귀의 장난입니다.

벧후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막10:9에는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하셨는데, 예언이라 하면서 그 가정을 나누게 했으니 이는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요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예언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언 아닌 예언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미혹에 사로잡힌 마귀의 장난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교회 중에는 이 예언 아닌 예언을 예언이라고 미혹하고 부추겨서 미혹을 주고 또 미혹하게 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곧 예언의 말씀입니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예언의 말씀이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 예언이라 말하는 것은 다 사람들이 낸 거짓말입니다.  

계1:2-3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셨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예언입니다.

요한계시록 즉 하나님의 말씀에는 예언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주 하나님과 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예언한 말씀이 있고 또 믿는 우리와 믿는 우리가 가지는 행위에 대해서 그 상급과 심판이 있는 그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벧후1:21에서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하신대로 신구약 육십 육권 성경말씀만 예언이지 신구약 육십 육권 성경 말씀 외에는 예언이 아닙니다.  


2. 기록적 영감과 조명적 영감

어떤 목회자가 묻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주의 종이 성령의 감동되어 기록하면 예언 즉 성경이 되지 않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답하기를 지금 이 시대에 주시는 성령의 감동은 신구약 육십 육권 속에 있는 그 진리에 속한 것이지 그 진리 외의 진리가 필요해서 주신 그 감동이 아니라 하는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주시는 성령의 감동은 신구약 육십 육권에 있는 말씀을 밝히 깨닫는 조명적 감동이지 성경을 기록하는 기록적 감동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면을 혼동하여 오늘 교회 중에는 치우쳐서 성경 기록을 말하는 그 오류와 미혹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에는 성경을 기록하는 기록적 영감과 성경을 깨닫는 조명적 영감이 있으니, 이 둘을 구분해서 그 영감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